1. 개요
삼국통일전쟁이 끝난 뒤 신라는 중국에서 유교 및 오행사상 등을 수입하면서 오악과 같은 자연개념들도 자국에 사용하고, 중요 산을 지정해 중사(中祀)의 예법으로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다. 조선시대에는 제후국의 예를 따랐기에 사악을 지정했지만, 대한제국 때 칭제건원하고 천자국의 구조를 갖추면서 다시 오악을 정했다.2. 종류
2.1. 신라의 오악
통일 이전 신라는 신라 수도 서라벌 근교의 산들을 오악이라 하였는데, 토함산(吐含山)을 동악, (소) 금강산(金剛山)을 북악[1], 함월산(含月山)을 남악, 선도산(仙桃山)을 서악[2], 단석산(斷石山)을 중악[3]이라 하였다.현대의 지명으로 비정해보면 위치가 꼭 맞게 들어맞지는 않는데, 네이버 지도로 보면 더욱 명확하다.
가령 동악 토함산이 남악 함월산보다 남쪽에 있고, 중악 단석산은 아예 경주 서남쪽에 붙었다.
이를 두고 토함산과 함월산이 비슷한 지역의 산을 가리켰는데[4] 나중에 지명이 서로 뒤바뀌지 않았나 의심하거나, 혹은 기림사가 위치한 현대의 함월산이 당시의 함월산이 아니라고 추측하는 의견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5]
중악 단석산이 서악 선도산보다 서쪽에 있다. 서로 다른 두 기록이 저마다 자기 시절 기준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내용이 꼬였을지도 모른다.
2.2. 통일신라의 오악
통일신라의 오악(五岳) | ||
북악 태백산 | ||
서악 계룡산 | 중악 부악(팔공산) | 동악 토함산 |
남악 지리산 |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시대 나라의 제사 대상이 되었던 오악이 존재했는데, 한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서라벌( 경주시)이 수도였던 신라라 동서남북중의 기준이 한반도 동남부로 약간 치우쳤다. 특히 동악 토함산은 경주 시가지 동쪽에 높은 산이라곤 토함산 하나밖에 없고 그 다음엔 바로 동해바다가 나오니... 중악인 부악(父岳)은 현재의 팔공산을 가리키는데 팔공산은 후삼국시대의 공산 전투 때문에 고려시대에 가서 붙은 명칭이니 당연히 그 이전에는 쓰이지 않았다.
이 산들 외에도 신라에서는 속리산 등을 기타 명산으로 중사 제사를 지내고, 금강산이나 설악산, 무등산 등은 소사(小祀)의 예법으로 전국 여러 명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오악으로 지정한 위 산들을 진산으로서 더 중요하게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2.3. 고려의 오악
덕적산(德積山)· 백악(白岳)· 목멱산(木覓山)에 제사를 지냈으며, 금강산, 지리산, 팔공산, 계룡산에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2.4. 조선의 사악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산들'이란 뜻으로 관용적으로 '오악'이란 단어를 쓰긴 했지만, 실제 국가제례에서 중요하게 챙긴 산은 4곳이었다.- 동악 - 없음
- 서악 - 송악산(松嶽山): 개성에 있는데 고려 궁궐의 진산이다.
- 남악 - 지리산
- 북악 - 비백산(鼻白山): . 함경남도 정평군 구읍리와 독산리 경계에 있는 해발 155 m짜리 작은 산이다.
- 중악 - 북한산: 수도인 한양에 있으므로 당연히 중악일 수밖에 없다.
동방(東方)은 동해(東海)와 여러 산천으로 하고, 남방(南方)은 지리산(智異山)·남해(南海)·웅진(熊津)·가야진(伽倻津)과 여러 산천으로 하고, 중앙(中央)은 삼각산(三角山)·한강(漢江)과 여러 산천으로 하고, 서방(西方)은 송악(松嶽)·서해(西海)·덕진(德津)·평양강(平壤江)·압록강(鴨綠江)과 여러 산천으로 하고, 북방(北方)은 비백산(鼻白山)과 여러 산천으로 한다.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신위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신위
조선의 국가제례는 대사/중사/소사로 나뉜다. 조선에서 제사를 지낸 산은 비단 위의 4곳만이 아니라 더 많지만 그 대부분은 소사(小祀)이고, 중사(中祀)의 격으로 제사 지낸 산은 위 4곳밖에 없다. (대사大祀로 제사 지낸 산은 없다.) 실록 등에서 말하는 오악은 중국 고전에서 인용하여 '중요 산천'을 가리키지만, 실제로 중사로 제사 지낸 산은 이렇게 4곳밖에 없다. 오악도 제사를 지내려고 지정하는 것이다.
함경도 알대에 비백산보다 훨씬 높은 산이 널렸음에도 비백산을 북악으로 정함은 백두산은 4군 6진 설치 이전까지 조선의 영토가 아니었고 전조인 고려의 북쪽 경계인 천리장성의 동쪽 끝이 비백산이라 고려가 비백산에서 제사를 지낸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18세기 영조 시절에 백두산이 조선 건국과 관련이 있다 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으나, 숙종 대에 청나라와 국경을 획정할 때 확정한 양국간 경계가 백두산 남쪽 사면이었기 때문에 망제(望祭), 즉 멀리서 백두산을 바라보며 제사 지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현대인 기준으로는 전국적으로 꼽히는 산이 아닌 송악산과 비백산이 제사를 받았다. 송악산은 해발 500 m가, 비백산은 200 m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산의 격은 비단 높이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해발 35 m밖에 안 되는 부산의 칠점산도 '산'이라고 불린다. 산(山)인지 악(岳)인지, 제사를 받을 만한지 아닌지는 결국 이름 붙이고 인식하기 나름. 송악산은 이름부터 악이라고 하고, 비백산도 중요하게 여겼으니 제사를 지냈다. 중국의 태산은 우리나라 덕유산보다도 낮지만 태산은 악이되 덕유산은 악이 아니듯,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까지가 악이라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송악산은 북한 지역이지만 한국사에서 중요한 도시인 개성의 진산이라 아는 사람은 알지만, 비백산은 그리 높거나 유명한 산도 아닌데다 북한 지역의 소읍인 정평에 있다보니 인지도는 0에 가깝다.
위 경주의 동악 위치와 마찬가지로 조선/대한제국의 경우 서울시가 비교적 한반도 서쪽에 치우쳤다보니, 특히 서악이 서울시에서 서쪽이라기엔 애매한 위치이다. 송악산이나 후술할 묘향산이나 서울시에서 방향을 따지면 북북서에 가깝다.
2.5. 대한제국의 오악
북악 백두산 | ||
서악 묘향산 | 중악 북한산 | 동악 금강산 |
남악 지리산 |
천자국은 악해독(嶽海瀆)[6]과 같은 중요한 자연물에 깃든 신령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관례에 따라 1893년에 지정했다. 악은 오악이라 하여 다섯 곳을 꼽았지만 바다와 하천은 각각 사해(四海)[7][8], 사독(四瀆)[9] 즉 네 곳을 꼽았다.
현재 이들 중 3악은 북한에, 2악은 남한에 존재한다.
2.6. 기타
- 설악산, 한라산은 들어가지 않는다. 설악산은 원래 같은 강원도에 있는 금강산에게 네임밸류가 밀려서 그닥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그러다 남북분단으로 금강산이 북한에 넘어가 버리면서, 갈 수 없게 된 금강산 대신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 속하게 된 설악산이 그 대체제 격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라산의 경우 한라산이 자리 잡은 제주도가 오랫동안 탐라국으로 따로 존재했고 백두대간과 분리되어 있어 전근대의 국토관 기준으로는 이질적인 산이었기 때문이다.
-
대한제국의 오惡을 찾으시는 분은 을사오적 참조
2.7. 경기 오악
위의 오악들과는 달리 지역별 오악이라 볼 수 있다.감악산( 파주시, 연천군, 양주시), 운악산( 포천시, 가평군), 화악산( 가평군), 송악산( 개성시), 관악산( 서울특별시, 과천시, 안양시)을 경기도의 오악이라 일컫는다. 관악산을 제외하면 모두 한강 이북에 있고 인지도가 높지 않다.
[1]
이 금강산은 강원도에 위치한 금강산이 아닌, 신라시대부터 금강산이라 불린 현재의
소금강산이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21, 경주부 산천조
[3]
『삼국사기』41, 열전 1, 김유신(상)
[4]
실제로 산세가 붙어 있다.
[5]
혹은
부산시
동구가
남구보다 남쪽, 남구가 동구보다 동쪽에 위치한 것처럼, 제후국의 관습인 사악에서 황제국의 관습인 오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뭔가 꼬이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다.
[6]
악해독의 악은 큰 산, 해는 바다, 독은 큰 하천을 의미한다.
[7]
동해,
서해,
남해,
북해를 꼽았는데, 여기서 북해는
함경북도
경성 앞바다를 뜻한다.
한반도는
반도라 북쪽에 바다가 없으니까 어쩔수 없이 동해의 북쪽을 북해로 정한 것이다. 중국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여기를 북해라고 할 수야 있긴 하겠다만
[8]
물론 한자문화권 왕조 중 정말로 북해가 있는 나라는 오직 일본밖에 없긴 하다. 거기다 중국은 서해도 없다 참고로 중국대륙에서는
곽거병 이후 대체로
바이칼 호를 북해로 여긴다.
[9]
한강,
낙동강,
패강,
용흥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