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20:17:33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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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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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三國志
정사 명칭 <colbgcolor=#ffffff,#191919>삼국지 三國志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저자 진수
분류 역사서
시기 후한 말기~ 3세기 서진
연의 명칭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1], 三國演義[2]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3]
저자 나관중
분류 소설
시기 14세기 ~
1. 개요2. 연의와 정사3. 인기와 영향력4. 관련 작품5. 관련 정보6. 주요 사건과 전투7. 지명8. 여담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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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2세기 말~ 3세기 말의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 배경으로 한 역사서 정사 삼국지 혹은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2. 연의와 정사

삼국지는 크게 역사서 정사 삼국지와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로 나뉜다. 이 둘은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은 서로 다른 부분도 많다.[4] 중국의 서기 184년 후한의 쇠퇴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한 군웅할거 시대부터 사마염이 건국한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280년까지 있었던 약 백여년의 역사를 다룬 책[5]으로 이것의 소설판인 삼국지연의는 중국 4대 기서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많으며 21세기인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동아시아권을 대표하는 고전소설이다.

정사(正史)는 말 그대로 \'정확한 사실의 역 기록'이며 연의는 소설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토대로 쓴 역사소설'이다. 삼국지연의는 관우 제갈량이 스타가 된 소설이기도 하며 연의 이후로 더욱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 취급을 받고 이미 민간 신앙에서 무신(武神)으로 불리며 '관왕'으로 통용되어 무속 신앙의 대상이 된 관우는 더욱 신격화가 된다.[6] 여기에 다른 오호대장군도 정도는 다르지만 무속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근데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관우가 관제묘로서 신으로 추앙받고 백성들이 유비 등을 추앙하고 제갈량 등을 지혜의 화신으로 섬긴 것은 연의보다 훨씬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추가로 많이 착각하지만 조조는 연의 이전에도 악역이었다.[7] 병역을 2년에서 평생으로 늘린 둔전제, 조위를 이은 서진의 몰락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즉, 연의 이전에도 이미 관우, 제갈량, 조조 등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연의에서는 그러한 평가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상 현대의 '삼국지 컨텐츠'는, 정사를 토대로 가감한 연의의 내용 위주이며 연의와 정사의 구분은 모호하다고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실제 역사, 삼국지연의라는 소설, 각지의 민담, 그 후에 여러 창작 작품들에서의 모습이 뒤섞인 이미지인 것이다. 그래서 2010년 이후에는 정사, 연의 식으로 확실시 구분하는 미디어 믹스보다는 둘을 적절하게 섞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2010년 드라마 삼국이나 2017년의 대군사 사마의같이 기존의 삼국지의 주제였던 "영웅들의 천하쟁패"에서 벗어나 한 세력의 내부 분쟁에 집중하는 등 파고파도 계속 소재가 쏟아지는 물건이기도 하다. 가끔 연의와 정사를 헷갈리고 연의의 인물과 사건들을 실제 역사로 알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연의는 삼국시대 이후 천년후에 쓰인 소설이다. 물론 완전 허구가 아니라 7실 3허라 할 만큼 역사에 허구를 덧붙인 정도. 그리고 정사 삼국지는 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장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고 오히려 그들이 죽은 이후 삼국시대가 더 비중이 큰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비중을 보여주는데 이는 진수가 삼국시대가 거의 끝날 때쯤 삼국지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사실, 삼국시대는 대중적으로는 대단히 유명한 시기지만,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을 기점으로 본다고 해도 100년, 실질적인 삼국시대는 50여 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역사학 연구에서 삼국시대만을 주로 다루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삼국시대를 서진이 한 번 통일해서 완결을 냈다가 나중에 다시 쪼개지면서 이후의 역사가 쭈욱 진행되기 때문에, 큰 줄기만 보자면 삼국시대를 통째로 생략해도 중국사의 전체 흐름 이해에는 지장이 없다. 통일왕조 1( 한나라)과 통일왕조 2( 사마진) 사이에 잠깐 투닥이던 중간기일 뿐이고 큰 그림에서 후한 말과 위진남북조를 이어가는 시대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정도. 이것은 혹자들이 하는 말처럼 무슨 삼국시대가 존재감이 없다는 이유보다는, 원래 전문적인 역사학에서는 인물 하나, 자잘한 사건 하나하나에 큰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학에서는 삼국시대보다는 황건적의 난을 더 깊게 연구한다고 한다.

이것은 일반 역사 팬덤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군담물식 역사관때문에 생기는 괴리감 때문이다. 가령 초한쟁패기만 해도 일반인들은 한신이나 장량 소하 같은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비중을 두지만, 역사 연구에서는 대체로 진한교체기의 역사적 흐름 중 하나로 묶어서 연구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수당교체기 원말명초 시기만 해도 어디까지나 이 시기를 묶어서 연구할 뿐이지, 두건덕이나 진우량 이런 인물 하나 하나에 크게 비중을 두고 연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8]

사실 역사적 연구보다는 설화와 민담의 발전사를 연구하는 자료로 쓰는 편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 특히 정사에서 삼국지평화를 걸쳐 삼국지연의로 변화하는 과정과 당시의 시대상을 본다면. 역사상으론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진 몰라도 민담이나 민중문화의 발전에는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란 텍스트는 1800년 동안 민담과 역사서들이 모두 버무려져 만들어진 내용이라 삼국지의 발전 과정을 보려면 민담과 경극 등을 보는 것도 좋다. 캐릭터들의 발전이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밌는데, 일례로 원나라 시기의 연극에서 제갈량은 난세를 종결짓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신선이지만 유비가 황제가 되고 3년밖에 못 산다는 걸 알고 출사를 망설이다가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출사를 결심한다. 이것이 명나라 시기에는 삭제되고 제갈량이 이상을 위해 망설임 없이 출사하는 것으로 바뀐다.

3. 인기와 영향력

나는 『삼국지』야말로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만큼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 의미가 풍부해지고, 이야기가 더욱 다채로워지고, 삶의 의미를 더욱 영원하게 만든 이야기는 없다.
권영민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9]
삼국지연의는 중국 문학의 4대 고전 소설 중의 하나로 매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총 80만 개의 단어와 거의 1,000명에 가까운 극적인 캐릭터들을 (대부분의 역사 인물) 120장에 담고 있다. 삼국지는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 중 하나이며, 이 지역에서 문학적인 영향력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영문학에 대한 그것과 비교되어 왔다. 이 소설은 아마도 후기 제국과 현대 중국에서 가장 널리 읽혀진 역사 소설일 것이다. 허버트 자일스[10]는 중국인들 스스로 삼국지연의가 그들의 모든 소설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영어 위키백과 #
중국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에 하나이며 중국의 역사를 다룬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본고장인 중국은 물론이고, 같은 중화권 홍콩 마카오, 타이완, 싱가포르 화교 사회 등지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으며 당연히 2차 창작도 매우 활발하여 그동안 연극으로 수없이 많이 상영되었고 만화책이나 소설책 등으로도 수없이 많이 출간이 되었으며 영화, 드라마, 게임으로도 많이 제작되었다.[11]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역사물 미디어 믹스라고 봐도 부족할 정도다.

심지어 삼국지에서 나온 지략과 전술 등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 및 회자되기도 한다.[12] 삼국지연의 중국사대기서 중 필두로 꼽히며 지난 몇 백 년 동안 한반도[13]를 비롯한 동아시아권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를 놓친 적이 없는 명소설이다. 사실상 전 세계를 뒤져보아도 이 정도로 영향력있는 문학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포지션 상으로는 헬레니즘 문화권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수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14] 물론 역사적으로는 삼국지가 대충 천 년 정도 늦기는 했다.

중화권은 아니지만, 동북아시아 한자문화권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도 전근대 시기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고 현대에 와서도 소설책이나 만화책으로 수없이 많이 출간된 데다 게임도 활발히 제작되기 때문에 역시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매우 높다. 이미 수백 년 전에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는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소설과 민담 등에서 빈번하게 인용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 등지에서도 삼국지 관련 대화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삼국지와 관련된 배경지식이 있고 언어의 장벽이 없이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생판 처음 만난 동아시아권의 사람들이라도 자연스럽게 삼국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질 수가 있을 정도다.

특이하게도 한자문화권이 아닌 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 근세, 근대 시기에 태국으로 이주한 중국계 태국인들에 의해 소개되었는데 중국계 태국인이 아닌 태국인들 중에도 삼국지를 알고 있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지만, 삼국지의 높은 인지도는 어디까지나 한자문화권의 영향권인 동아시아권 국가에 국한하는 것에 비해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양권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15] 서양에서는 와패니즈들이 일본 만화, 게임등을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하기도 한다. 특히 높은 확률로 일본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 SD건담 삼국전을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한 경우가 많다. 삼국지를 읽어본 적이 없는 서양인들이나 와패니즈들은 일본 문화 컨텐츠에서 종종 삼국지 관련 비유나 드립이 나올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벙찌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삼국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경우도 있다. 와패니즈들의 악평과 별개로 서양의 학자들은 흔히 삼국지연의를 소개할 때 동아시아에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영향력을 끼친 소설이라고 소개한다.[16]

2004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학생 전 범위에서 삼국지가 기억에 남는 도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성인 4명 중의 1명은 1년에 1권도 안 읽는 책맹임을 감안했을 때, "책을 읽는 한도 내에선 모든 사람이 거의 다 읽어봤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각종 신문 기사에서 뻑하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인용을 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언어생활에서 삼국지를 잘 모르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자문화권에 속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문법만큼 어려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OOO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태극전사의 감독직을 수락했다.", "OOO 정부가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인적쇄신의 칼을 빼들었다.", "OO 회사가 심각한 적자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다가오는 대선, 여야 대권주자들의 군웅할거", "강원 지자체들이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도원결의를 맺었다" 처럼 삼국지의 내용이 들어간 사자성어나 격언 같은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실린다. 여기서 십상시, 삼고초려, 읍참마속, 고육지책, 군웅할거, 도원결의에 대한 주석이나 보충 설명 따위는 아예 없다.

그만큼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누구든지 알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상식선의 어휘인 것이다. 이들 중에서 삼국지 내용을 잘 몰라도 한자만으로 뜻을 알 수 있는 사자성어는 군웅할거, 고육지책 정도밖에 없다. 나머지는 대충 어떤 뜻인지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은유적인 의미가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독자들이 전부 다 삼국지를 읽어봤고 상식선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전제로 신문 기사가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자 어휘들은 대부분 초등교과과정 한문 과목에서 다 가르치는 말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과과정을 이수한 사람' 을 전제로 한다고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다.

그 외에도 정당, 스포츠, 아이돌, 대기업, 음원 차트같은 경쟁구도가 보이는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3가지가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천하삼분지계라는 표현이 쉽게 나오고,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선거판에 출마 선언을 하면 "OOO 후보가 공개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야말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격이다" 등의 관용어나 격언은 물론이며, 자주 쓰는 단어들인 계륵, 수어지교, 복룡봉추, 백미(白眉), 삼고초려, 읍참마속, 왕좌지재, 군웅할거, 고육지책, 인중여포 마중적토[17], 도원결의 등도 삼국지에서 비롯된 말이다. 도시 이름도 아닌 장판파, 낙봉파, 적벽 등의 지명도 유명하며, 심지어, 본 뜻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동남풍'[18] 같은 단어도 언론에서 종종 인용하곤 한다.

심지어, 중국의 지리를 뉴스 기사에서 설명할 때도 삼국지를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시에서 대유행한다는 뉴스를 보고 "우한이 어디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형주의 강하입니다." 라고 대답했을 때 삼국지를 읽어봤다면 "아! 형주에 있는 강하가 우한이었어요?" 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가 있다. 삼국지를 읽어봤고 촉한 손오의 세력구도를 잘 알고 있다면 현대 중국의 지리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 #2

실제로, 삼국지 덕후나 역덕후 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형주역병(荆州疫病)' 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침 우한은 삼국지 시대 당시에는 ' 강하'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링크 이곳 근처에서 적벽대전이 일어났을 때 조조군이 전염병으로 인한 사기 저하로 패전하기도 했다. 2020년 글. 이전부터 관우 관련 글이 인터넷에 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형주의 현대 지명인 징저우시에서는 '형주역병' 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

현대 인터넷에서도 방구석 여포나 "장판파를 펼치다" 같은 신조어도 만들어지고, 쿨가이 관우나 마속과 등산 드립 같은 이 존재하며, 똑똑한 사람을 두고 제갈량의 이름을 본떠 X갈량, 제갈X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았을 때, 삼국지의 영향력이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삼국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고 누구든지 읽어봤기 때문에 배경지식과 내용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삼국지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기도 한다. 2020년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진중권 예형에 빗대면서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고 2023년 국민의힘에서는 이준석 한동훈도 삼국지의 내용을 인용하여 설전을 하기도 했다. # 이처럼,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온갖 권모술수를 볼 수 있는 내용으로 현대 사회의 처세술에도 빈번히 인용되기도 한다. #1 #2 하지만, 몇몇 지식인들은 민주주의와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난세의 시대에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의심과 냉소, 배신, 권모술수와 협잡이 난무했던 시기의 삼국지가 소설이 아닌 마치 자기개발서마냥 인기가 많아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 문단의 내용에서 적어도 고사성어와 관련된 부분은 걸러 읽을 필요가 있다. 비단 삼국지가 아니더라도, 현대에 고사성어의 출처와 배경을 알고서 고사성어를 인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잘 생각해보자. 하지만, 삼국지에서 유래된 이야기와 격언들을 사자성어 고사성어로 인용한다는 점에서 거대한 문화적인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근대 시대 이전의 동아시아권에서도 삼국지는 '국민 필독서'로 유명했을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았다. 한국에서도 관왕묘가 지어졌고 삼국지의 등장인물들은 인용구로 자주 쓰였다. 왕건 신라 경애왕을 죽인 견훤을 삼국지의 동탁에다 비유한 것이 삼국사기에 실려있고, 고려 초창기에 만들어진 서운사 요오화상비(了悟和尙碑)에서는 태조 왕건 궁예 견훤을 타도한 것을 조조가 유비를 격멸한 것에 비유하였다.[19] 임꺽정에 등장하는 서림의 머리가 제갈공명 빰친다든가, 흥부전에서 나오는 '비요 비요 장비라' 같은 표현이 있다.

그리고, 삼국지의 내용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각색하기도 매우 좋다. 관우가 대군 가운데서 일대일 전투로 안량의 목을 따온다든지, 유비가 백성들을 데리고 도망가는 부분도 그렇고, 유비와 조조의 경우는 실제 역사상으로도 드라마틱한 세기의 라이벌 구도를 보여주었기에[20] 사서를 조금만 찾아보면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유비와 조조가 정반대로 대비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어려서는 유비가 좋고, 성장하면 조조가 좋아지고, 나이가 더 들면 다시 유비가 좋아진다" 라는 말도 돌아다닌다.

다만, 워낙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책을 읽는 사람들만 포함하면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이 꽤 많은지는 몰라도 전체를 따지면 내용이 너무나도 길고 방대하기 때문에 다 읽어보지는 못하고 조금씩 겉만 핥아본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부터, 65권에 달하는 기전체 역사서를 일반적으로 통째로 다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를 책으로 접하지 않고 만화 영화, 드라마, 게임 같은 기타 창작물로 접한 경우도 많은데, 삼국지를 다루는 만화나 게임 같은 경우도 고증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는 전혀 거리가 멀고 대중적인 부분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대부분이다.

게다가, 정사 삼국지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번역된 경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것들도 발번역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으니 안 읽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기보다는 '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편이 맞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대중매체 속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라서 원전을 읽지 않았어도 등장인물의 이름 정도는 정말 많이 알려진 편이기 때문에 친구 몇 명만 모여 있어도 대화를 걸면 두세 명쯤 30분짜리 대화에 끼워넣을 수도 있다.

사실 삼국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작 삼국이 제대로 싸우는 것을 다루는 작품은 없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여러 군웅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조위 조조가 패권을 쥐자, 이에 대립하는 촉한 유비 제갈량의 분투가 주 스토리 라인이다. 손오는 가끔씩 유비나 조조를 뒷치기하거나 훼방 놓는 것이 대부분이며, 그나마 삼국지연의에 와서야 손씨 정권의 오나라가 주요 세력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4. 관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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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워낙 많이 유명한 작품인 만큼 소설, 사극, 만화, 애니, 게임 등 매체들이 많이 써먹는, 통칭 삼국지물이 형성된 작품군이기도 하다. 주로 여체화 모에 페티쉬 뽕빨물 양산형 게임에서 "유명한 삼국지 오리지널 캐릭터를 게임에서 직접 만나보세요"를 밀고 있지만 정작 현질을 해야 얻을 수 있는건 함정이다.

카드가 나오는 형태의 소셜 게임에선 거의 단골 메뉴급으로 자주 나온다. 특히 주로 게임 내의 카드 속성이 3가지로 구분되는 경우 그냥 세력별로 나누면 되기 때문에 매우 써먹기 좋기 때문.[21]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온다. 캐릭터 짜느라 머리 깨질 일 없이 이름, 성격, 특기, 외형이 알려진 수백 명의 인물들을 저작권의 문제 없이 활용할 수 있으니 제작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리하다.

게다가 캐릭터의 행동이나 스토리를 플레이어에게 제대로 전달시키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삼국지 관련 게임이라면 " 제갈공명 몰라? 적벽대전 몰라?"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그런 만큼 삼국지 관련 미디어 믹스가 수없이 많이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수준과 질이 낮은 작품도 범람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극심한데 매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삼국지 관련 게임이 쏟아지고 또 망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괜찮은 작품이더라도 워낙 흔한 소재라서 묻히거나 잊히기 쉽다. 왠지 표절이나 한듯 중복된 인물들이 있기도 하다.

5.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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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요 사건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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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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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지명/량주|
양주(凉州)[23]
]]
( 마등, 한수, 동탁, 이각)
[[삼국지/지명/병주|
병주(幷州)
]]
( 정원, 장양, 장연, 하진)
[[삼국지/지명/유주|
유주(幽州)
]]
( 공손찬, 원소, 공손도, 유우, 유비)
[[삼국지/지명/기주|
기주(冀州)
]]
( 원소, 조조, 한복, 유비)
[[삼국지/지명/옹주|
옹주(雍州)
]]
( 동탁, 이각, 여포, 하진)
[[삼국지/지명/사례교위부|
사례(司隸)
]]
( 하진, 동탁, 조조)
[[삼국지/지명/연주|
연주(兗州)
]]
( 조조, 유대, 교모, 하진)
[[삼국지/지명/청주|
청주(靑州)
]]
( 장각, 공융, 유비, 원담)
[[삼국지/지명/예주|
예주(豫州)
]]
( 조조, 원술, 장각, 공주)
[[삼국지/지명/서주|
서주(徐州)
]]
( 도겸, 유비, 여포, 손견)
[[삼국지/지명/익주|
익주(益州)
]]
( 유비, 유언, 장로, 맹획)
[[삼국지/지명/형주|
형주(荊州)
]]
( 유표, 유비, 손견, 손권, 원술, 장수)
[[삼국지/지명/양주|
양주(揚州)
]]
( 손권, 손책, 원술, 유요, 엄백호, 왕랑)
 
[[삼국지/지명/교주|
교주(交州)
]]
( 사섭)

8. 여담

  • 삼국지가 184년부터 280년까지 약 100여년이라고 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인기 차이가 굉장히 크다. 삼국지를 대충 아는 사람들은 오장원이 삼국지의 후반부 에피소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갈량이 사망하는 오장원 전투가 234년으로 삼국지 전체 기간의 딱 중간쯤이다. 황건적~오장원이 50년으로 절반이고 이후 삼국통일까지 46년이다. 그만큼 후반부의 인지도나 2차 창작물에서의 비중이 극도로 낮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9. 관련 문서


[1] 한국과 일본에서는 삼국지연의라고 부른다. [2] 중화권과 베트남(베트남어로 Tam quốc diễn nghĩa)에서는 삼국연의라고 부른다. [3] 남녀끼리의 연애를 다룬 Romance가 아니라 중세 서사시의 일종이라는 뜻의 Romance다. [4] 다만 삼국지를 말할 때 흔히 말하는 ' 정사'에는 정사 삼국지 이외에 삼국시대를 일부 다룬 후한서 진서 등 몇몇 역사서의 내용을 포함해서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나관중 이후 시대 삼국지연의 판본 오리지널 설정이나 화관색전 등이 포함되기도, 않기도 한다. 심지어는 20세기, 21세기에 창작된 설정이 후대 삼국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 가령 도원결의 에피소드 시작 장면을 "황건적을 물리칠 의병을 구한다는 방문 앞에서 우연히 세 사람이 만났다"고 하면 기존 연의를 따른 것이고 "유비가 차(茶)를 사러 갔다 황건적 마원의를 만나 위기를 겪고 장비 덕에 목숨을 건진 뒤 장비에게 가보인 칼을 줬다가 어머니가 서운해하며 차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라고 하면 요시카와 에이지를 따른 본이다. 그밖에 코에이 테크모사의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 시작된 수많은 설정들이 있다. [5] 극소수는 영제의 즉위 때부터 치는 경우도 있다. [6] 삼국지연의로 인해 관우 신격화가 시작되었다는 오해가 있는데, 관우 신앙은 관우가 죽고 난 뒤 얼마 뒤부터 시작되어 이미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관중이 14세기 인물인데, 그가 출생하기 전에 원나라 당시에 이미 관우에게 바쳐졌던 칭호가 현령의용무안영제왕(顯靈義勇武安英濟王)였다. 황제들이 관우에게 왕의 칭호를 바친 것은 송나라 시절부터이며, 점점 관우의 위상이 올라가다가 명나라 시절엔 관왕에서 관제까지 올라간 것이다. 즉 나관중 시절에 관우는 이미 관공, 관왕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이런 관우 신앙이 더욱 퍼지는데 공헌한 게 삼국지연의라고 볼 수 있다.여담으로 한국 서울에 있는 동묘가 바로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7] 이는 삼국시대가 끝나고부터 고작 몇십 년 이후의 사람인 석륵이 "장부가 일을 꾸미는 데 있어서는 마음이 호탕해서 일월과 같아야 하오. 짐은 조맹덕 부자나 사마중달 부자처럼 고아나 과부를 속이며 간교한 술책으로 천하를 빼앗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비꼬고 있다. [8] 삼국지에서 예를 들어 안량의 경우를 보면, 당시 중국 최강의 세력은 하북의 지배자 원소였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장수 중 하나였으며 진수가 '명장'이라고 굳이 기록한 안량이라면 당연히 능력이 뛰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성기가 빛났다고 한들 결국 원소는 난세에서 일어섰다가 무너진 세력 중 하나일 뿐이다. 역사학 측면에서 보면 '위나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원소를 포함한 당대 여러 세력과 싸웠다' 정도인데, 원소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에 그렇게까지 주목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안량은 열전도 없고, 다른 인물들의 기록에 몇번씩 언급될 뿐이다. 즉 이런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부실한 건 이 사람들이 피래미라서 아니라, 역사학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삼국지 정사를 작성한 통일 왕조의 역사가인 진수 입장에서 굳이 기록을 많이 남길 의미도, 후대 역사가들 입장에서도 주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9] 추천사 부분 참고 [10] 19세기 권위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중국어 교수.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관련 인물이기도 하다. [11] 삼국지 관련 모바일 게임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나오는 수준이다. [12] 한 예로 흔히 중국사에서 역적의 대명사로 쓰여진 망탁조의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해 보자. 역적 4인의 이름자( + + + )로 구성된 이 말은 구성원 중 1명만 빼고 전원 삼국지 주요 등장인물이다. 도 삼국시대의 초반 배경인 동한의 건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기에 간접적으로 얽힌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13] 삼국지연의는 조선시대부터 베스트셀러였다. 출처 [14] 재미있게도 서양 게임사인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에서는 토탈 워: 삼국을 내놓자마자 이듬해 토탈 워 사가: 트로이를 내놓았다. [15] 서양권에서 삼국지랑 맞먹을 만한 작품으로는 아서 왕 전설이나 샤를마뉴의 12기사 등이 있다. [16] 출처: 1, 2, 3 [17] 사람 중에서는 여포가 최고이고, 말 중에서는 적토마가 최고이다. (人中呂布 馬中赤兔) [18] 상승의 기세를 타고 점점 판도를 뒤엎어버리면서 역전을 해낸다는 뜻이다. 유래는 당연히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계책을 사용한 동남풍이다. [19] "이로써 높은 영(靈)의 위력을 의지하고, 잠시 신용(神用)을 수고롭게 하여 먼저 원흉(元兇)의 악당들을 제거하였으니, 마치 위황(魏皇)인 조조(曹操)가 촉(蜀)나라 유비를 격멸한 것과 같다고 하겠다." 조조 보고는 황제라고 하면서 유비 보고는 황제라고는 하지 않고 그저 이름만 쓴 걸 넘어서 아예 격멸의 대상 및 악당이라고 하는 조위정통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확실히 남송 때 성리학의 강한 영향으로 촉한정통론이 우세를 굳히기 이전, 조위정통론이 우세하던 당나라 때의 사관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20] 논영회에서 조조가 대놓고 유비한테 "세상의 영웅은 오직 그대와 나 뿐이오. 본초(원소) 따위는 여기에 낄 수 없소이다." 라고 선언했다거나, 유비는 "나와 조조는 상극이다" 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21] 다만 깊게 들어가면 3국 중 하나에 편입시키기 애매한 인물도 엄청 많은데 이런 경우는 주로 여포나 동탁 세력, 혹은 몹(!)으로 넣는다. [22] 본격적으로 다룬 역사소설 후삼국지 팔왕의 난을 DLC로 다룬 게임 삼탈워 등도 있고, 그 외에도 가남풍이나 사마충 같은 통일 이후의 인물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23] 흔히 서량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24] 당고/ 십상시/ 황건적 [25] 아시 시피. [26] 하지만 삼국사기 초기 왕통, 특히 백제와 신라의 경우 후대의 왕사가 선대로 소급되었다. 중국 삼국시대 초반부(황건적의 난~조위의 건국)의 백제/신라 군주들은 기년과 실제 활동 연대가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야 역시 왕통 계보가 자세히 전하진 않으나 수로왕으로 대표되는 초기사 연대가 소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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