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23:40:14

일연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문화부 심볼.svg 이달의 문화인물
(1990-1997)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90년
7월
김정희
8월
장영실
9월
김소월
10월
세종대왕
11월
김홍도
12월
신재효
1991년
1월
나운규
2월
정철
3월
한용운
4월
김정호
5월
방정환
6월
정약용
7월
문익점
8월
안익태
9월
허준
10월
주시경
11월
윤선도
12월
이해랑
1992년
1월
이황
2월
정선
3월
박지원
4월
우장춘
5월
신사임당
6월
류성룡
7월
일연
8월
홍난파
9월
고유섭
10월
이윤재
11월
안창호
12월
윤동주
1993년
1월
이이
2월
이인문
3월
장보고
4월
이천
5월
윤극영
6월
원효
7월
지석영
8월
안중근
9월
박연
10월
최현배
11월
장지연
12월
윤백남
1994년
1월
우륵
2월
황희
3월
김유정
4월
홍대용
5월
강소천
6월
이상백
7월
안견
8월
박은식
9월
박승희
10월
이희승
11월
정도전
12월
신채호
1995년
1월
강세황
2월
조식
3월
월터 정
4월
최무선
5월
이원수
6월
김병로
7월
이육사
8월
김구
9월
채동선
10월
김윤경
11월
이수광
12월
곽재우
1996년
1월
김만중
2월
최치원
3월
이순지
4월
서재필
5월
김명국
6월
유일한
7월
도선
8월
심훈
9월
왕산악
10월
정인승
11월
전형필
12월
이제마
1997년
1월
송석하
2월
성현
3월
최윤덕
4월
이중환
5월
초의 (의순)
6월
한호
7월
이세보
8월
박제가
9월
박진
10월
장지영
11월
왕인
12월
송진우
※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이달의 문화인물(1998-2005) }}}}}}}}}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
등장인물 및 단체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직접적으로 언급된 인물/단체
단군
동명성왕 온조왕
이사부 백결선생 의자왕 계백
김관창 김유신 문무왕 원효
혜초 장보고 고왕 강감찬
서희 정중부 최무선 죽림고회
김부식 지눌 의천 이종무
정몽주 문익점 최충 일연
최영 황희 맹사성 장영실
신숙주 한명회 이이 이황
신사임당 곽재우 조헌 김시민
이순신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사육신 생육신 논개 권율
홍길동 임꺽정 삼학사 박문수
한석봉 김홍도 김병연 김정호
영조 정조 정약용 전봉준
황진이 홍경래 김옥균
안중근 이완용 윤동주 지석영
손병희 유관순 안창호 방정환
김두한 이상 이중섭
간접적으로 언급된 인물/단체
민족대표 33인 김좌진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
기울임체 는 부정적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1] 실제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후대 인물 허균이 창작한 의적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논란이 있지만 간접적인 언급으로 소설 홍길동전에서 대중화된 의적 이미지를 노래 가사로 사용했으므로 저자 허균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승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각관 각예 각운 경한 광지
교웅 균여 균정 김윤후 나옹
덕겸 덕소 도휴 몽여 묘청
무학대사 보우 복구 소현 신돈
연온 요세 월송 의장 의천
일연 일인 정현 종린 종참
지겸 지눌 지인 징엄 천영
천인 총서 충감 충지 충희
탁연 탄연 학일 해린 허월
현응 혜심 혼원 희랑 }}}}}}}}}

파일:일연 표준영정.jpg
<colbgcolor=#d6d6d6,#2D2F34> 본명 전견명(全見明) [1]
회연(晦然), 일연(一然)
목암(睦庵)[2]
법명 일연(一然)
시호 보각(普覺)
출생 1206년 7월 18일[3]
고려 경상도 장산군
(現 경상북도 경산시)
사망 1289년 7월 26일[4] (향년 83세)
고려 경상도 군위군 인각사
(現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612 인각사)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고려 승려. 속명은 전견명(全見明). 자(字)는 회연(晦然), 일연(一然)인데, 일연을 법명으로 사용했다. 호는 목암(睦庵).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편찬했다.

오늘날의 경상북도 경산시인 압량군 출생으로 원효 대사와 동향이다. 일연 본인도 삼국유사에서 원효에 대해 '원효의 살아온 내력과 학문이며 업적은 모두 당나라 승전과 행장에 실렸으니 여기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썼을 정도. 대신 '이 나라에서 전하는 한두 가지 특이한 일을 적어 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는 '이러이러한 책에 자세히 쓰여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는데 더 알고 싶으면 책을 읽어보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서술이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가락국기를 인용해 수로왕에 대해선 자세히 적었는데 그 다음 왕들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를 시전하셨다. 문제는 앞에 쓴 원효의 행적이야 다행히 지금까지 다른 기록에 남았지만, 어떤 경우는 자세하게 쓰여 있다고 추천한 책이 지금은 소실되어 결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게 문제. 물론 일연이라고 자기가 보고 참조한 책들이 하나도 후대에 전해지지 못할 줄은 예상도 못 했을 테니 일연의 책임은 아니다.

2. 생애

1206년에 경산에서 태어났다. 1214년(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현재 광주광역시 인근) 무량사(無量寺)에서 대웅 밑에서 학문을 닦았다. 1219년(14세) 설악산 진전사[5]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계속 공부하다가 1227년(22세) 승과 시험에 급제해서 22년 동안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비슬산 대견사에서 초임 주지를 지냈다. 1237년(32세) 삼중대사, 1246년(41세) 선사가 되었는데 이 시기는 몽골 제국이 본격적으로 고려 침략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1259년(54세)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56세)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군 선원사의 주지가 되어 보조국사 지눌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1264년(59세)에 경상북도 포항시에 있는 오어사로 옮겨 후학을 가르쳤다.

1268년(63세) 운해사에서 대덕 1백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를 조직해 맹주가 되었다. 1277년(72세) 운문사 주지가 되었으며 당시 경주에 와 있던 충렬왕의 부름을 받아 충렬왕을 1년 가까이 모시면서 충렬왕에게 법을 강론했다.

1283년(78세) 충렬왕을 따라 개성으로 돌아가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다. 그러나 노모를 모신다는 이유로 고향에 가기를 청해 반 년 동안 살았지만 그해에 어머니는 아흔여섯 살로 숨을 거두었다.

1284년(79세)에 경상도 군위군(현 대구광역시 군위군)의 인각사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를 열었다. 1289년 군위군 인각사에서 세수 84세로 사망했다. 이후 나라에서 보각국존(普覺國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생전에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 신화, 설화, 향가를 집대성한 책으로 현대에서도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사기와 더불어 귀중한 자료이다. 대표작인 삼국유사 이외에도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선문염송사원 30권, 어록 2권, 게송잡저 3권 등 많은 불교 저서를 남겼다.

3. 여담

  • 현재 경산시에는 일연의 이름을 딴 도로인 일연로가 존재하며 경산시는 자기네 도시를 일연, 원효, 설총 등 삼성현이 태어난 고장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이름을 딴 도로인 원효로, 설총로, 삼성현로도 있다.
  • 징기스칸 4에서는 한글 정발판에서만 시나리오 1에서 등장한다. 얼굴은 돌려쓰기가 아니라 의외로 고유 일러스트. 능력치는 정치 72, 전투 33, 지모 86이다. 문화와 등용 특기를 가지고 있어서 타 문화권의 능력치 좋은 장수를 빼 오는 플레이에 유용하다. 한글정발판 기준으로 고려에서 정치 능력치는 이성계와 동일한 수치로 최고치이며 지모 능력치는 가장 높은 장수다. 단 시나리오 2의 원종 시대에도 일연이 활약했는데 시나리오 1에만 나오는 것은 고증이 아쉬운 부분.
  • 시험에 "일연은 삼국유사를 편찬하였으며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내용의 선지가 자주 나온다. < 삼국유사>를 김부식의 < 삼국사기>로 바꿔서 출제가 종종 되며 단순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단골로 틀리는 문제. 생각 없이 외우지 말고 제목을 이해하면 전혀 헷갈릴 일이 없다. <삼국유사>의 '유사'는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 <삼국사기>의 '사기'는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제목만 봐도 김부식이 편찬한 관찬 사서가 <삼국사기>이고 일연이 저술한 야사들을 모아 교차검증 등을 하여 지은 책이 <삼국유사>라고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내용 면에서도 <삼국사기>와 비교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물론 논란이 있는 표현이지만) <삼국사기>는 신라 계승 의식을 표방하고 유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삼국유사>는 고조선 계승 의식이 엿보이며 불교적이다. 역시나 서로의 내용을 뒤바꿔서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기억해야 한다. 이 역시 각각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문벌귀족 세력이 집권할 당시 편찬된 관찬사서이다. 고려의 입장에서는 이전 시대의 왕조인 신라를 계승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했음이 당연하다.

    반면 <삼국유사>는 원 간섭기에 저술되었는데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면서 민족 의식을 고취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의식이 나타났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또 삼국유사가 실제로 삼국사기보다 민족주의적이라 보기는 힘들다. 삼국사기 참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승휴의 < 제왕운기> 역시 고조선사를 다룬 것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두면 좋다.
  • 만화가 윤승운은 자신의 작품에서 일연을 뛰어난 학자이자, 역사가, 그리고 고승이라고 설명했다.

[1] 보각국사비 내용에 속성(俗姓)이 김씨로 기록되어 알려졌지만, 비문의 글씨체가 왕희치 서체로 쓰여져 있어서 전씨로 판독되었다. # [2] 무극(無極)이 호라고 알려졌으나, 일연의 제자의 이름이다. [3] 음력 6월 11일. [4] 음력 7월 8일. [5]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선불교를 배우고 돌아와 구산선문 중 가지산파를 개창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