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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제517호 | ||
경주 진지왕릉 慶州 眞智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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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4길 80-100 (서악동)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면적 | 741㎡ | |
지정연도 | 2011년 7월 28일 | |
제작시기 | 신라[1] | |
위치 |
[clearfix]
1. 개요
남쪽에서 바라본 진지왕릉 항공 전경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신라 제25대 국왕 진지왕 김사륜의 능이다. 사적 제517호로 지정되었다.[2]
2. 상세
진지왕은 비록 폐위당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왕위는 돌고 돌아 손자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에 즉위했고 그 왕통이 신라 중대 내내 이어졌는데, 그런 위상에 맞지 않게 진지왕릉은 위 사진으로도 알 수 있듯 매우 작다.[3] 사실 아버지이자 정복왕인 진흥왕릉이 의외로 소박하게 조성됐기 때문에 진지왕도 거기에 따라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다만 이 고분이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진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된 것으로, 현재 이 고분이 조선시대에 진지왕릉으로 비정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정됐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그렇듯 진짜 진지왕릉이라고 확실시되는 건 아니고 추정하는 정도다. 여기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이 바로 아버지 진흥왕과 진지왕 등의 능역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비정이 잘못됐다는 비판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도 저서 《신라진흥왕릉고》(新羅眞興王陵考)에서 무열왕릉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 4기를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능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유의건도 나릉진안설이란 책을 써서 무지한 지역 노인들과 능참봉의 말만 믿고 잘못된 비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진흥왕과 진지왕이 태종 무열왕의 직계 조상이므로 무열왕릉 바로 위쪽에 있다는 것도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김정희가 진짜 진지왕릉이 여기일 것이라 지목한 서악동 고분군의 모습. 서악동 고분군 아래쪽 무열왕릉과의 관계나 배치를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근현대에 공식적으로 진지왕릉으로 지정된 것은 위쪽의 고분이다.
왕릉 아래쪽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65호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는데 원래는 이 자리에 왕릉을 지키는 원찰이 있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석탑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3. 외부 링크
4. 사적 제517호
일제시대 고적으로 관리하여 오던 것을 1963년 사적으로 일괄 지정하였으며, 2011년 문성왕릉과 분리하여 재지정하였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왕비는 지도부인이며, 무열왕은 진지왕의 손자이다.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삼았으며, 진흥왕의 뜻을 받들어 내리서성을 쌓고 백제군을 격퇴하였다. 또한 중국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외교관계를 맺었다.
진지왕릉은 호석으로 추정되는 괴석의 일부가 봉분에 노출되어 있으며, 봉토 및 주변에는 잔디를 식재하여 토사유실을 방지하고 있다. 봉분 정면에 표석 1기와 문화재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 남동쪽으로 길이 32m의 석축이 만들어져 있다. 주변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왕비는 지도부인이며, 무열왕은 진지왕의 손자이다.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삼았으며, 진흥왕의 뜻을 받들어 내리서성을 쌓고 백제군을 격퇴하였다. 또한 중국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외교관계를 맺었다.
진지왕릉은 호석으로 추정되는 괴석의 일부가 봉분에 노출되어 있으며, 봉토 및 주변에는 잔디를 식재하여 토사유실을 방지하고 있다. 봉분 정면에 표석 1기와 문화재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 남동쪽으로 길이 32m의 석축이 만들어져 있다. 주변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