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10:36:35

숙손건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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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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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서기(序記)」 2권 「태조기(太祖紀)」 3권 「태종기(太宗紀)」
탁발부 · 대나라 탁발규 탁발사
4권 「세조·공종기(世祖恭宗紀)」 5권 「고종기(高宗紀)」 6권 「현조기(顯祖紀)」
탁발도 · 탁발황 탁발준(浚) 탁발홍
7권 「고조기(高祖紀)」 8권 「세종기(世宗紀)」 9권 「숙종기(肅宗紀)」
원굉 원각 원후
10권 「효장제기(孝莊帝紀)」 11권 「폐출삼제기(廢出三帝紀)」 12권 「효정제기(孝靜帝紀)」
원자유 원공 · 원랑 · 원수 원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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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열전(列傳) ]
13권 「황후전(皇后傳)」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도무선목황후 · 명원소애황후 · 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경목공황후 · 문성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풍폐후 · 효문유황후 · 효문소황후 · 선무순황후 · 선무황후 · 선무영황후
효명황후 · 효정황후
14권 「신원·평문제제자손전(神元平文諸帝子孫傳)」
탁발흘라 , 탁발제,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진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15권 「소성자손전(昭成子孫傳)」 16권 「도무7왕전(道武七王傳)」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虔) · 탁발순 · 탁발의열
탁발굴돌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17권 「명원6왕전(明元六王傳)」 18권 「태무5왕전(太武五王傳)」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9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20권 「문성5왕전(文成五王傳)」 21권 「헌문6왕전(獻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 · 탁발간(簡) · 탁발약 · 탁발맹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22권 「효문5왕전(孝文五王傳)」 23권 「위조등전(衛操等傳)」 24권 「연봉등전(燕鳳等傳)」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위조 · 막함 · 유고인 연봉 · 허겸 · 장곤 · 최현백 · 등연
25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26권 「장손비등전(長孫肥等傳)」 27권 「목숭전(穆崇傳)」
장손숭 · 장손도생 장손비 · 울고진 목숭
28권 「화발등전(和跋等傳)」 29권 「해근등전(奚斤等傳)」
화발 · 해목 · 막제 · 유업연 · 하적간 · 이율 · 유결 · 고필 · 장려 해근 · 숙손건
30권 「왕건등전(王建等傳)」
왕건 · 안동 · 누복련 · 구퇴 · 아청 · 유니 · 해권 · 차이락 · 숙석 · 내대천 · 주기 · 두대전 · 주관 · 염대비 · 울발 · 육진 · 여락발
31권 「우율제전(于栗磾傳)」 32권 「고호등전(高湖等傳)」
우율제 고호 · 최영 · 봉의
33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왕헌 ·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설제
34권 「왕낙아등전(王洛兒等傳)」 35권 「최호전(崔浩傳)」 36권 「이순전(李順傳)」
왕낙아 · 차노두 · 노노원 · 진건 · 만안국 최호 이순
37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38권 「조옹등전(刁雍等傳)」 39권 「이보전(李寶傳)」
사마휴지 · 사마초지 · 사마경지 · 사마숙번
사마천조
조옹(刁雍) · 왕혜룡 · 한연지 · 원식 이보
40권 「육사전(陸俟傳)」 41권 「원하전(源賀傳)」 42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육사 원하 설변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43권 「엄릉등전(嚴棱等傳)」 44권 「나결등전(羅結等傳)」
엄릉 · 모수지 · 당화 · 유휴빈 · 방법수 나결 · 이발 · 을괴 · 화기노 · 순퇴 · 설야저 · 우문복 · 비우 · 맹위
45권 「위랑등전(韋閬等傳)」 46권 「두근등전(竇瑾等傳)」 47권 「노현전(盧玄傳)」
위랑 · 두전 · 배준 · 신소선 · 유숭 두근 · 허언 · 이흔 노현
48권 「고윤전(高允傳)」 49권 「이령등전(李靈等傳)」 50권 「울원등전(尉元等傳)」
고윤 이령 · 최감 울원 · 모용백요
51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52권 「조일등전(趙逸等傳)」
조일 · 호방회 · 호수 · 송요 · 장담 · 종흠 · 단승근 · 감인 · 유병 · 조유 · 색창 · 음중달
53권 「이효백등전(李孝伯等傳)」 5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55권 「유명근등전(游明根等傳)」
이효백 · 이형 유아 · 고려 유명근 · 유방
56권 「정희등전(鄭羲等傳)」 57권 「고우등전(高祐等傳)」 58권 「양파전(楊播傳)」
정희 · 최변 고우 · 최정 양파
59권 「유창등전(劉昶等傳)」 6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61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한기린 · 정준 설안도 · 필중경 · 심문수 · 장당 · 전익종 · 맹표
62권 「이표등전(李彪等傳)」 63권 「왕숙등전(王肅等傳)」 64권 「곽조등전(郭祚等傳)」
이표 · 고도열 왕숙 · 송변 곽조 · 장이
65권 「형만등전(邢巒等傳)」 66권 「이숭등전(李崇等傳)」 67권 「최광전(崔光傳)」
형만 · 이평 이숭 · 최량 최광
68권 「견침등전(甄琛等傳)」 69권 「최휴등전(崔休等傳)」 70권 「유조등전(劉藻等傳)」
견침 · 고총 최휴 · 배정준 · 원번 유조 · 부영 · 부수안 · 이신
71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72권 「양니등전(陽尼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이묘 양니 · 가사백 · 이숙호 · 노시경 · 방량 ·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73권 「해강생등전(奚康生等傳)」 74권 「이주영전(爾朱榮傳)」 75권 「이주조등전(爾朱兆等傳)」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이주영 이주조 · 이주언백 · 이주도율 · 이주천광
76권 「노동등전(盧同等傳)」 77권 「송번등전(宋翻等傳)」 78권 「손소등전(孫紹等傳)」
노동 · 장열 송번 · 신웅 · 양심 · 양기 · 고숭 손소(孫紹) · 장보혜
79권 「성엄등전(成淹等傳)」 80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성엄 · 범소 · 유도부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 녹여 · 장습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하발승 · 후막진열 · 후연
81권 「기준등전(綦儁等傳)」 82권 「이염지등전(李琰之等傳)」
기준 · 산위 · 유인지 · 우문충지 이염지 · 조영 · 상경
83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유나신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고조 · 우경 · 호국진 · 이연실
84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상상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조충 · 노경유 · 이동궤 · 이흥업
85권 「문원전(文苑傳)」
원요 · 배경헌 · 노관 · 봉숙 · 형장 · 배백무 · 형흔 · 온자승
86권 「효감전(孝感傳)」
조염 · 장손려 · 걸복보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87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우제 · 마룡팔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88권 「양리전(良吏傳)」
장순 · 녹생 · 장응 · 송세경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배타 · 두원 · 양돈 · 소숙
89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이 · 이홍지 · 고준 · 장사제 · 양지 · 최섬 · 역도원 · 곡해
90권 「일사전(逸士傳)」
휴과 · 풍량 · 이밀 · 정수
91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연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강식 · 주담 · 이숙 · 서건 · 왕현 · 최욱 · 장소유
92권 「열녀전(列女傳)」
임성국태비
93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증흥 · 구맹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정엄 · 서흘
94권 「엄관전(閹官傳)」
종애 · 구락제 · 단패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진송 · 백정 · 유등 · 가찬 · 양범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95권 「유총등전(劉聰等傳)」
유총 · 석륵 · 유하 · 모용외 · 부건 · 요장 · 여광
96권 「사마예등전(司馬叡等傳)」 97권 「환현등전(桓玄等傳)」 98권 「소도성등전(蕭道成等傳)」
사마예 · 이웅 환현 · 풍발 · 유유 소도성 · 소연
99권 「장실등전(張實等傳)」
장실 · 걸복국인 · 독발오고 · 이고 · 저거몽손
100권 「고구려등전(高句麗等傳)」
고구려 · 백제 · 물길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고막해 · 거란 · 오락후
101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강 · 고창 · 등지 · 만족 · 요족
102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차말 · 우전 · 백정 · 차사국 · 언기 · 쿠처 · 소륵 · 속특 · 파사 · 남천축 · 읍달
103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104권 「자서전(自序傳)」
위수
※ 105권 ~ 114권은 志에 해당. 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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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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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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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 왕세적 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colbgcolor=#dc143c><colcolor=#fff> 단양양왕(丹陽襄王)
叔孫建 | 숙손건
시호 양왕(襄王)
출생 365년
사망 437년 (향년 72세)
작호 안평공(安平公)
→ 수광후(壽光侯) → 단양왕(丹陽王)
을전(乙旃) → 숙손(叔孫)
건(建)
번능건(幡能健)
부친 숙손골(叔孫骨)
출신 항주(恆州) 대군(代郡)
자녀 2남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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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위의 인물. 선비족. 본래 성씨는 '을전(乙旃)'이었으나 효문제의 한화 정책으로 인해 그의 집안은 모두 '숙손(叔孫)'로 바뀌었다.

2. 생애

숙손건의 아버지 숙손골은 대왕(代王) 탁발십익건의 모친인 평문황후 왕씨에게 양육되면서 다른 왕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숙손건은 젊은 시절부터 지혜와 용맹으로 이름을 떨쳤고, 대나라 멸망 이후부터 탁발규 하란부에 의탁할 때까지 숙손건은 늘 탁발규의 곁에서 시종하였다.

등국 원년(386년) 정월, 탁발규가 마침내 자립하여 대나라를 세우자, 숙손건은 외조대인(外朝大人)으로 임명되었고, 안동 등과 함께 13인이 번갈아가며 국가의 여러 정무를 맡고, 군국(軍國)의 계책에 참여하였다. 얼마 뒤, 탁발규는 국호를 위(魏)로 바꾸고 위왕(魏王)을 칭하였다.

등국 6년(391년) 7월, 위왕 탁발규가 탁발고 후연으로 파견해 성무제 모용수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였다. 이때 숙손건도 탁발고를 따라 후연의 사신으로 갔는데, 모용수의 자제들은 권세를 부려 사신으로 온 탁발고를 억류시키면서 숙손건도 같이 억류되었다가 6년 후에야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후장군(後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숙손건은 이후 도수사자(都水使者), 중령군(中領軍)을 역임하다가, 안평공(安平公)의 작위를 받고 용양장군(龍驤將軍)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병주자사(并州刺史)로 부임하였으나, 공무상의 문제로 면직되어 업성(鄴城)에서 뜰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명원제 탁발사는 즉위한 후, 숙손건의 과거 공로를 기억하여 그를 정직장군(正直將軍)•상주자사(相州刺史)로 임명하였다.

태상 원년(416년) 9월, 당시 호(胡)족들이 유호(劉虎)를 솔선왕(率善王)으로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공손표(公孫表)가 이끄는 군대를 대파하였다. 명원제는 숙손건에게 과거의 안평공(安平公) 작위를 회복시켜주고, 공손표 등을 감독하여 유호를 토벌하게 하였다. 숙손건은 유호를 격파하여 10,000여 명의 목을 베었고, 남은 무리는 달아나다 심수(沁水)에 투신하여 죽었는데, 이로 인해 강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숙손건은 유호, 사마순재(司馬順宰) 등을 모두 죽였고, 적의 남은 무리 100,000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때 동진 장수 유유 후진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하면서 그의 부장 왕중덕(王仲德)을 선봉으로 삼아 북위의 활대(滑臺)를 압박하게 하였다. 그러자 당시 북위의 연주(兗州) 자사 울건(尉建)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활대를 포기하고 황하를 건너갔다. 이에 왕중덕은 활대에 들어가며 다음과 같이 공언하였다.
"우리 진(晉)의 본래 뜻은 70,000필의 비단을 제공하고 위(魏)에게 통로를 요청하려 한 것이었는데, 위의 수비 장수가 이렇게 쉽게 성을 버릴 줄은 몰랐다."
명원제는 이 소식을 듣고 울건에게 하내(河內)에서 방두(枋頭)로 이동하여 적의 형세를 관찰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왕중덕이 활대에 입성한 지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렵, 명원제는 울건에게 황하를 건너 위세를 드러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울건이 명령을 따르지 않자, 명원제는 숙손건과 공손표를 방두로 파견하여 울건을 문책하게 하였고, 결국 울건은 성 아래에서 참수되어 시신은 황하에 던져졌다.

한편, 명원제는 왕중덕의 군사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이 국경을 침범한 이유를 추궁하였다. 이에 왕중덕도 사마 축화지(竺和之)를 보내 명원제의 요구에 응하였고, 명원제는 공손표로 하여금 축화지와 대화하게 하였다. 축화지가 말했다.
"왕 정로장군께서는 유 태위의 명령을 받아 하서(河西)로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이는 낙성(洛城)을 점령하고 산릉(山陵)의 적을 소탕하려는 것이지, 감히 위(魏)의 경계를 침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태위께서 이미 사신을 보내어 위나라의 황제에게 통로를 빌리겠다는 뜻을 전하셨으나, 위나라의 연주자사(兗州刺史)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풍문만 듣고도 성을 버리고 도망갔기에, 빈 성에 들어간 것이지, 싸우거나 공성전을 벌여서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위(魏)와 진(晉)의 화호(和好)의 의리는 이전과 다름없이 유지될 것입니다."
공손표가 답하였다.
"울건이 성을 지키지 못한 죄는 이미 국법에 따라 처벌되었으며, 곧 새롭고 훌륭한 자사를 파견할 것입니다. 귀군(貴軍)은 마땅히 서쪽으로 이동해야 하고, 그리하지 않는다면 작은 일로 인해 큰 문제를 초래하여 화호(和好)의 본의를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
축화지가 다시 말했다.
"왕 정로장군께서는 현재 이곳에 임시로 머물며, 병력이 집결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곧 서쪽으로 나아갈 예정이며, 활대(滑臺)는 다시 위(魏)의 소유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굳이 군기를 세우고 깃발을 펄럭이며 위세를 드러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처럼 왕중덕은 겸손한 태도로 말하며, 스스로 대위(大魏)와 맞설 생각이 없음을 자주 강조하였으나, 공손표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였다. 이에 하는 수 없이 명원제는 다시 숙손건을 유유에게 보내 그의 의도를 살피게 하였고, 유유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낙양(洛陽)은 본래 진(晉)의 옛 수도였으나, 강족 요씨(姚氏)가 이를 점거하였고, 우리 진나라는 오래전부터 산릉(山陵)을 수리하고 회복할 계획을 세웠으나, 내란이 잇따라 일어나 이를 실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사마휴지, 노종지 부자, 사마국번(司馬國璠) 형제, 그리고 여러 환씨(桓氏) 종족들은 모두 진나라의 해충과 같은 존재들인데, 요씨가 이들을 규합하여 진나라를 도모하려 하였으므로 이를 정벌한 것입니다. 우리가 위나라의 영토를 경유하게 된 것은 군대의 처음 출정 시, 중대한 예물로 통로를 빌리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나라의 변경 수비대가 성을 버리고 떠나는 바람에 진나라의 선봉이 서쪽으로 진군하게 되었을 뿐, 감히 위나라의 영토를 침범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유유는 그의 본대가 이미 하남(河南)에 진입한 상황에서 위나라가 동진군의 앞길을 차단할까 두려워 북쪽으로 이동해 침략을 시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나라가 이처럼 항의하여 이내 군대를 철수시켰다.

태상 2년(417년) 5월, 숙손건은 명원제의 명령에 따라 정예병 2,000명을 선별한 뒤, 황하를 따라 진군하여 관중(關中)으로 들어가, 남평공 장손숭과 함께 성고(成皋) 남쪽으로 강을 건너 진군하면서 유유의 동향을 살폈다.

태상 2년(417년) 8월, 후진의 황제인 요홍이 맥없이 항복하여 명원제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유는 병력을 멀쩡히 보존할 수 있었고, 유유가 손쉽게 장안(長安)을 떨어뜨렸다는 소식을 들은 숙손건과 장손숭 등은 퇴각하였다.

태상 2년(417년) 10월 11일[1], 숙손건과 장손숭 등은 수도로 돌아오라는 명원제의 명령을 받고 수도 평성(平城)로 향하였다.

태상 2년(417년) 11월, 숙손건과 장손숭 등이 낙평(樂平)에 이르렀을 때, 명원제는 다시 조서를 내려 진위장군 아청, 장수 주기(周几) 등을 보내, 서산(西山)의 정령족 적촉낙지(翟蜀洛支)를 소탕하고 돌아오게 하였다. 이후 숙손건은 광아진장(廣阿鎮將)으로 전임되었으며, 그의 위세에 도적들이 모두 숨을 정도로 위명(威名)을 크게 떨쳤다.

태상 7년(422년) 12월, 숙손건은 사지절(使持節)•도독전봉제군사(都督前鋒諸軍事)•초병장군(楚兵將軍)•서주자사(徐州刺史)로 임명되어, 군대를 이끌고 평원(平原)에서 황하를 건너 청주(青州)와 연주(兗州)의 여러 군(郡)을 점령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숙손건이 황하를 건너 중령군 아청이 이끄는 7,000명의 병력과 합류하여 확오(碻磝)에 진을 치자, 유송의 연주자사 서염(徐琰)은 팽성(彭城)으로 도망쳤고, 숙손건은 곧바로 동쪽으로 청주에 진입하였다. 이때 사마수지(司馬受之)와 사마수지(司馬秀之)는 미리 제동(濟東) 지역에서 무리를 모았으나, 숙손건이 쳐들어오자 모두 군사를 이끌고 북위에 항복하였다. 숙손건은 임치(臨淄)에 입성하였다.

태상 7년(422년) 정월, 숙손건이 임치(臨淄)에 입성하니, 유송의 전(前) 동모(東牟) 태수 장행(張幸)은 고산(孤山)에 숨어 있다가 숙손건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사 2,000명을 이끌고 여수(女水)에서 숙손건을 맞이하였다. 이에 유송의 청주자사 축기(竺夔)는 백성들을 모아 동양성(東陽城)으로 들어가 방어하였고, 성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산악의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게 하였다. 축기는 또한 백성들에게 곡식과 작물을 베어버리게 하여 북위군이 도착했을 때 식량을 구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유송의 제남(濟南) 태수 원묘(垣苗)는 무리를 이끌고 축기에게 의지하였다. 이때 명원제도 동진 출신의 항장인 건의장군 조옹(刁雍)을 청주자사로 삼아, 기병을 모집해 숙손건을 돕게 하였다. 당시 숙손건이 청주를 공략하기 위해 이끌던 병력은 총 60,000명이었으며, 조옹은 군사 5,000명을 모집하고 조세를 걷어 군량으로 삼은 뒤에 합류하였다.

태상 7년(422년) 3월, 숙손건은 30,000기의 기병을 거느리고 동양성을 압박하였다. 당시 성 안에는 문무관원과 병사가 겨우 1,500명뿐이었으나, 축기와 원묘는 온 힘을 다해 성을 견고히 방어하였다. 이들은 때때로 병력을 출격시켜 북위군을 기습 공격하며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기 하였다. 북위군은 보병과 기병을 동원하여 성을 포위하고, 군대를 10여 리에 걸쳐 배치하였으며, 대규모로 공성 장비를 준비하였다. 축기는 성 밖에 네 겹의 참호를 설치하였으나, 위군은 세 겹을 메운 뒤 동차(橦車)를 이용해 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축기는 땅굴을 통해 병사를 보내 대마(大麻)로 만든 굵은 밧줄을 사용하여 동차를 끌어 넘어뜨리도록 하였다. 이로써 동차는 부러졌지만, 북위군은 다시 긴 포위를 형성하며 공격을 더욱 강화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벽은 점차 무너져 내렸고, 전투병 중 사상자가 속출하여 남은 병력은 지치고 궁핍한 상태에 빠지니, 성은 조만간 함락될 위기에 처하였다.

구원군을 이끌고 팽성에 도착한 유송의 장수 단도제는 청주 서주의 상황이 모두 위급함을 알게 되었으나, 그가 지휘하는 병력이 적어 동시에 두 지역을 지원할 수 없었다. 청주가 더 가깝고 축기의 병력이 약하였으므로, 단도제는 왕중덕과 함께 신속히 청주로 진군하였다.

태상 7년(422년) 4월, 숙손건은 동양성을 공격하여 북쪽 성벽 30보가량을 무너뜨렸으나, 조옹이 신속히 입성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숙손건은 이를 허락하지 않아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이후 조옹은 단도제 등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숙손건에게 말했다.
"적은 관군(官軍)의 돌격 기병을 두려워하여 쇠사슬로 연결된 수레를 사용해 진형을 구축하였습니다. 대현(大峴) 이남 지역은 곳곳이 협소하여 수레가 정렬하기 어려운 지형입니다. 제가 모집한 병력 5,000명을 이끌고 험지에 주둔하여 적을 저지한다면, 이를 격파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름의 더위로 인해 북위군은 많은 병사가 역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었고, 숙손건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역병으로 인해 병력의 절반 이상이 병들었고, 만약 이대로 계속 대치하면 병사들이 스스로 죽어 없어질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전투를 벌일 필요가 있겠는가? 지금은 병력을 온전하게 보존하며 퇴각하는 것이 최고의 계책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단도제가 군대를 임구(臨朐)에 주둔시키니, 숙손건 등은 진영과 공성 장비를 불태우고 도주하였다. 단도제는 서둘러 동양성에 도착하였으나 군량이 부족하여 숙손건을 추격할 수 없었다. 축기는 동양성이 파괴되어 더는 방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불기성(不其城)으로 진영을 옮겼다.

숙손건이 동양성을 떠나 활대로 향하자, 단도제는 왕중덕을 윤묘(尹夘)로 보내고, 자신은 군대를 호륙(湖陸)에 주둔시켰다. 그러나 왕중덕은 그가 윤모에 이르기도 전에 숙손건이 이미 멀리 퇴각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로 군대를 돌려 단도제에게 합류하였다. 이후 조옹이 윤묘로 가서 주둔하며 초(譙), 양(梁), 팽(彭), 패(沛) 지역의 백성 5,000여 호를 소집하여 27개의 진영을 만들어 이들을 통솔하였다.

태상 7년(422년) 4월 11일[2], 명원제는 하내(河內)로 가서 태행산(太行山)을 넘어 고도(高都)에 이르렀다. 이때 숙손건은 활대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해근과 합류하고 호뢰(虎牢)를 함께 공격하였다. 한편, 단도제는 호륙에, 유수(劉粹)는 항성(項城)에, 심숙리(沈叔貍)는 고교(高橋)에 각각 주둔하였으나, 모두 북위군의 강력한 병력을 두려워하여 진군하지 못하였다. 결국 호뢰성은 함락되었고, 숙손건은 이 공로로 수광후(壽光侯)에 봉해졌으며, 진남장군(鎮南將軍)으로 승진하였다.

신가 원년(428년) 10월, 정주(定州)의 정령족 선우대양(鮮于臺陽) 등이 2,000여 호를 이끌고 배반하여 태행산으로 들어가니, 정주의 관군만으로는 이를 토벌할 수 없었다. 이에 태무제 탁발도는 숙손건을 파견해 선우대양을 토벌하였다.

신가 3년(430년) 7월, 유송의 문제 유의륭이 북벌을 단행하여 유송군과 북위군이 여러 번 충돌할 때, 숙손건이 상표를 올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신(臣)이 이전에 사문(沙門) 승호(僧護)를 보내어 팽성(彭城)의 상황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승호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적이 병력을 북쪽으로 움직여 전선(戰線)을 확장하고 있으며, 적의 선봉장 서탁지(徐卓之)가 이미 팽성에 도착하였고, 대장군 도언지는 군대를 사구(泗口)에 배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말(馬)을 배치하고 군령을 엄히 내려 반드시 무력으로 결전을 준비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신이 듣건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존속할 때 망함을 잊지 않는 데 있습니다. 마땅히 갑병(甲兵)을 정비하고, 둔수(屯戍)를 증강하여 미리 대비함으로써 그들의 침략에 대비해야 합니다. 만약 사전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급작스러운 사태에 적을 제압하고 섬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오월(吳越)의 군대는 배와 노젓기에 능숙하나, 지금 북방 땅에 이르러 그들이 가장 잘하는 점을 버리고 있습니다. 적과 아군의 형세가 이미 다르고, 고생과 편안함의 차이도 같지 않으니, 적을 평정하고 공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이 날에 달려 있습니다. 신이 비록 쇠약하고 책략이 부족하지만, 특별한 총애를 입어 중책을 맡게 되었으니, 반역과 폭도들을 토벌하는 것이 신의 뜻입니다. 이로 인해 신은 말을 먹이고 창을 머리맡에 두며, 미약하나마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남쪽 국경을 우려하지 마시옵소서."
이에 태무제는 숙손건에게 은혜로운 조서를 내려 화답하고, 옷과 말을 하사하였다.

신가 3년(430년) 8월, 북위의 관군장군 안힐(安詰)은 여러 군대를 감독해 도언지를 공격하면서 하남(河南) 수복 작전에 나섰고, 숙손건도 여음공 장손도생과 함께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도언지와 왕중덕 등은 청수(清水)를 넘어 동쪽 청주로 향하였으나, 유송의 연주자사 축영수(竺靈秀)는 북위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수창(須昌)을 버리고 남쪽 호륙으로 도주하였다. 숙손건은 이를 추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5,000여 명의 목을 베었으며, 계속 추격하여 추노(鄒魯)에 도달한 뒤, 범성(范城)에 주둔하였다.

신가 3년(430년) 11월, 숙손건은 유주(幽州) 이남의 수비군을 하상(河上)에 집결시켜 한 길은 낙양(洛陽)을 공격하게 하고, 다른 길은 활대를 공격하게 하였다. 한편, 태무제는 숙손건의 위엄과 명성이 남쪽을 떨게 하여 문제 유의륭이 두려워하게 되었으므로, 그를 평원진대장(平原鎮大將)•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도독기·청·서·제4주제군사(都督冀青徐濟四州諸軍事)로 삼고, 단양왕(丹陽王)에 봉하였다.

신가 4년(431년) 정월, 도언지와 왕중덕이 활대를 구원하려 하였으나, 숙손건은 여음공 장손도생과 함께 이를 막았다. 숙손건은 군대를 나누어 전투를 벌였고, 경기병을 풀어 적의 전후를 차단하였으며, 곡물과 초목을 불태워 적의 보급로를 끊었다. 이로써 도언지의 군대는 굶주리게 되었고, 탈영자가 잇따르게 되니, 이로 인해 안힐 등이 활대를 함락시킬 수 있었다.

숙손건은 신중하고 총명하여, 동서로 전쟁에 나설 때마다 항상 계책을 주도하였다. 군대를 다스림에 있어 엄격하고 정돈되었으며, 호령이 엄중하였다. 또한 인륜을 숭상하고, 어진 이를 예우하며 선비를 사랑하는 데에 뛰어났다. 그는 평원(平原)에 10여 년 동안 머물며 내외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져, 변방에서 그 평판을 크게 얻었으니, 북위 초기의 명장 중 이에 필적할 자가 드물었다. 남방은 그의 위엄과 계략을 두려워하여 청주와 연주를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태연 3년(437년), 숙손건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태무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하였다. 시호는 '양왕(襄王)'이라 하였고, 금릉(金陵)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장남 숙손준이 있긴 했으나 아버지보다 일찍 사망하여 그 동생 숙손린이 단양왕 작위를 이었다.


[1] 정사년 신해월 기유일. 음력으로는 10월 11일이고, 양력으로 11월 5일이다. [2] 임술년 을사월 계미일. 음력으로는 4월 11일이고, 양력으로는 5월 1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