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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경주 일성왕릉 慶州 逸聖王陵 Tomb of King Ilseong\, Gyeongju |
||
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 경북 경주시 탑동 산23번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수량/면적 | 1\,392㎡ | |
지정일 | 1969년 8월 27일 | |
시대 | 신라 일성왕(서기 154년경) | |
소유단체 | 국가유산청 | |
관리단체 | 경주시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colbgcolor=#000>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
||
<colcolor=#fff> 국가·위치 |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경상북도 경주시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976 | |
등재연도 | 2000년 | |
등재기준 | (ⅱ)[1], (ⅲ)[2] | }}} |
|
<colbgcolor=#4a2d5b> 경주 일성왕릉 |
[clearfix]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산23번지에 위치한 신라 제7대 국왕 일성 이사금 박일성의 능이다. 1969년 8월 27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3]2. 상세
조선 영조때 일성 이사금의 능으로 비정되었다.이 왕릉은 1960년도 정비 과정에서 석실분으로 밝혀졌는데 석실분은 6세기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짜 일성 이사금의 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신라왕릉 문서에도 있듯 고고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조선 시대에 비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무덤의 주인을 경애왕(제55대)이나 효공왕(제52대)으로 보는 설도 있다. 경애왕릉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해목령 아래'라는 지형적 특징에 주목한 것이고,[4] 효공왕릉설은 이근직 교수가 주장한 것인데 삼국유사에서 효공왕릉 근처에 있었다는 구지제 저수지를 현재 일성왕릉 앞에 있는 금강저수지로 비정하고, 이에 따라 구지제 옆 산허리에 해당하는 이 무덤을 효공왕릉이라고 주장했다.
무덤의 정체와 별개로 호수와 소나무숲을 끼고 있는 주변 경치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 심야괴담회> 2021년 7월 1일 방송 분에서 이 왕릉에 대해 다루었다. 왕릉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왕릉의 주인공이 일성왕이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경애왕이며, 그 귀신 역시 경애왕의 유령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 영상 이 소문에 대해 7월 17일 고스트 헌터로 유명한 유튜버 윤시원이 직접 경애왕릉과 일성왕릉을 방문해 괴담의 실체에 대해 조사했다. 영상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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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3]
처음 지정될 당시 사적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문화유산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유산의 중요도로 오인될 수 있음을 고려해 따로 번호를 매기지 않고 있다.
[4]
해목령은
남산(경주)에 지금도 있는,
게의 눈처럼 생긴 바위와 그 바위가 있는 고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