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4 13:10:27

대만/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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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수교국 목록
2.1. 중화민국이 단교를 당한 연도
2.1.1. 장제스 정부
2.1.1.1. UN 탈퇴 이전2.1.1.2. UN 탈퇴 이후
2.1.2. 장징궈 정부2.1.3. 리덩후이 정부2.1.4. 천수이볜 정부2.1.5. 마잉주 정부2.1.6. 차이잉원 정부
3. UN에서의 탈퇴4. 역대 정부별 정책 비교5. 스포츠
5.1. 스포츠 대회 유치 시도
6. 이것만은 유리?
6.1. 종교6.2. 여행
7. 미래8. 미수복 영토 주장과 몽골 문제9. 각 국가별 관계10. 관련 문서11. 외부 링크

1. 개요

대만은 왕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으로 유엔의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꿰찼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다시피 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의 정식 수교국[1]은 15개 나라밖에 없다. 그마저도 계속되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 및 개발 조건으로 언제 줄어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이제는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는 나라는 정말 몇 나라 없게 됐다. 아시아에선 한국을 끝으로 수교국이 전멸했고, 유럽에서는 바티칸 하나뿐이다. 그 밖의 나머지 나라들 역시 대부분이 약소국이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이런 나라도 있었어?'라고 할 나라들 투성이다. 영토가 큰 나라가 파라과이(40만 평방km), 인구로는 과테말라(약 1,800만)이며, 그나마도 이 두 나라와 바티칸을 제외하면 국토와 인구 규모가 너무 작아서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따위는 전혀 없는 나라이거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제 몸 간수하기도 바쁜 나라들 밖에 남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수교국들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현재 대만과 수교한 나라들 중 대만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는 약 2,400km 떨어져 있는 팔라우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직항 노선이 개설되어 있는 수교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FTA 협정은 수교국, 미수교국 상관없이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콰라과,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맺고 있다.

2. 수교국 목록

대만의 수교국은 파라과이 바티칸을 제외하면 모두 미니국가들 혹은 경제적으로 곤궁한 나라들 뿐이다. 다음과 같다. 아무 표시도 없으면 중국과 수교한 적이 아예 없는 나라, *표시는 처음에 중국과 수교했다가 나중에 대만으로 갈아탄 나라, **는 처음에 대만과 수교했다가 중국과 수교한 후, 도로 대만으로 수교국을 바꾼 나라들이다.

현재는 수교 관계가 아닌 나라에도, 일단은 ' 대표부'라는 뭔가 어정쩡한 이름으로 사실상 대사관 업무를 대체하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를 참고하자.
파일:diplomatic missions of Taiwan (1).png 파일:Diplomatic_missions_in_Taiwan (1).png

왼쪽 지도는 대만의 공관이 설치된 나라, 오른쪽 지도는 타이완에 자국 공관을 설치한 나라들을 표시한 것이다. 남색은 대사관, 연푸른색은 대표부이며 회색은 이도저도 없는 나라들. 지도를 자세히 보면 대만은 상대국에 대표부를 설치했지만 상대국은 타이베이에 대표부가 없거나 반대로 상대국이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두었는데 대만은 상대국에 대표부를 두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대표부에 대해서는 타이베이 대표부 참고.

한국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외교부 직속으로 두고 있다. 미국의 대사관격인 미국재대협회(American Institute of Taiwan)나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일본대만교류협회(日本台湾交流協会)는 각각 국무부 외무성을 대리해서 영사업무를 보는 비정부기구(정확하게는 반관반민 성격)인 걸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 즉 표면적으로나마 비정부기구의 탈을 쓴 미국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은 대놓고 정부 기관으로서 대표부를 세워 놓은 셈.

물론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대만을 실질적인 나라로 인정하는 나라는 꽤 많은 편이다. 당장 대만을 미승인국 취급하는 미국도 대만과의 관계에서 중국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인 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역시 대만과 어느 정도의 밀월트랙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이런 상황까지 대놓고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는지는 몰라도 정식 승인이 아니면 모른 척 한다.

중국과 대만 두 나라는 현재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나 양안 간 교류 확대는 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영토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한 형태의 대표부는 아니고, 대만은 대만 해협양안관광여유협회(台灣海峽兩岸觀光旅遊協會)라는 이름의 기관을 베이징에 두고[2], 중국은 해협양안여유교류협회(海峡两岸旅游交流协会)라는 기관을 타이베이에 설치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대표부는 상대 나라에 대한 관광 진흥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아직 본격적 외교 관계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철천지 원수였던 두 정권 간의 관계가 이 정도로까지 발전한 게 어디냐만은...

한편 대만은 중국의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홍콩 마카오에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台北經濟文化辦事處)'라는 이름의 사무처를 두고 있는데 일반적인 외교 관계에서의 영사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일단 중국의 영토이므로 대만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이고 따라서 이들 기관은 중화민국 외교부가 아닌 중화민국 행정원 대륙위원회 산하 기관이지만,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시절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교류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3] 홍콩과 마카오 역시 대만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을 두고 있다.

대만의 수교국 15개국의 대사관은 3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대사관특구(使館特區, 영어로는 Diplomatic Quarter)라는 건물에 단체 입주해 있다. 교황 대사관은 커지다러우역 인근에 위치해 있고, 세인트루시아 대사관은 한국 대표부가 입주한 타이베이 101 인근에 있는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에 있다.

15개 수교국 모두 수도에 중화민국 대사관이 있는데, 다만 바티칸 주재 중화민국 대사관은 중화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탈리아 영토에 있다. 이는 바티칸의 영토가 매우 좁아 외국 공관을 설치할 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중화민국 외에 다른 나라들도 교황청 주재 대사관을 로마에 두고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로마 시내에는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사관이 모두 있다.

중화민국 재외공관 사이트 링크

2.1. 중화민국이 단교를 당한 연도[4]

중국어긴 하지만 이 도표에 잘 정리되어 있다. 국부천대 이전 신해혁명 이후 시기부터의 수교·단교 현황이 다 나타나 있다. 도 같이 보면 좋다.
  • 볼드체는 주요국. 대신 대표부를 설치한 나라는 ♤표시.

2.1.1. 장제스 정부

2.1.1.1. UN 탈퇴 이전
2.1.1.2. UN 탈퇴 이후

2.1.2. 장징궈 정부

2.1.3. 리덩후이 정부

2.1.4. 천수이볜 정부

2.1.5. 마잉주 정부

2.1.6. 차이잉원 정부

3. UN에서의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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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은 UN의 창립 국가로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다.[14] 그러나 1971년 10월 25일 알바니아가 제출한 UN 총회 제2758호 결의안이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로 가결되고, 그 직전에 스스로 UN 탈퇴 선언을 함으로써 UN 상임이사국 지위는 물론 회원국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내가 쫓겨나는 게 아니라 내 발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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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UN 총회 직전에 자진 탈퇴를 선언하면서 내려오는 저우수카이(周書楷, 주서해) 당시 중화민국 외교부장[15]의 모습

당시 많은 서방 국가들도 알바니아의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미국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이미 중국과 수교한 상황이었으니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결과.

미국은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을 대표하는 권리는 포기하되 대만(Taiwan) 지역의 주권국가로서 중화대만공화국(Chinese Republic of Taiwan) 대만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호로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는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알바니아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대부분 반대하고 중화민국 스스로도 거부하여 무산되었다.

중국은 언제나 자신들과 외교 관계를 맺으려는 나라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와, 이 원칙에 따라서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는 해석을 인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따라서 현재 중국과 대만 양쪽과 모두 대사급 외교관계를 가지는 나라는 없다. 무조건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는 대만을 중국의 정통 정부로 인정하고 국교를 맺어온 한국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한국전쟁의 일방 당사자 가운데 하나였던 중국이 UN에 가입하고, 그것도 상임이사국이 됨으로써 휴전 협정이 무효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국 사회에 밀어닥치기도 했다. 이것이 유신헌법 제정의 빌미가 된 면도 있다.

4. 역대 정부별 정책 비교

장제스 총통 시절까지만 해도 2차 대전 승전국 겸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중국의 정통 정부임을 강조하는 '정통-반공 외교'를 펼쳐나갔다. 또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신흥 독립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선봉 계획'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1971년 유엔 축출을 시작으로 주요 우방 국가들이 하나둘씩 단교하면서, 이는 빛을 잃어 나갔다.

1970년대 ~ 1980년대 장징궈 총통 시대에는 정부, 민간을 망라한 국력 전체를 외교에 동원하는 '총력외교', 중국의 정통성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 및 발전을 추구하는 '탄성외교'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최대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의 단교에도 불구하고, 대표부 형식의 비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미국의 경우 < 타이완 관계법>의 제정으로 비공식적이나마 방위공약을 확보했다. 아울러 기존의 중화민국 대신, '차이니즈 타이페이'란 명칭으로 아시아 개발은행(ADB),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의 유력 국제기구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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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리덩후이 총통 시대에는 보다 적극적인 '무실외교'를 표방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흥 경제성장국으로서 대만의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여 해외 지지를 확대하고, 고위 당국자들의 대외 활동도 확대하여 그동안 위축되었던 대외 활동에 활기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리덩후이 총통이 개인 자격으로나마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리콴유 총리와 회견하고, 1995년에는 대만 총통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16] 연설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나마 수교국이 증가세로 돌아서기도 했지만,[17] 이를 경계한 중국의 외교적 고립 획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1992년에 아시아의 마지막 수교국이었던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단교한 것이 대만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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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민진당 출신으로 처음 당선된 천수이볜 총통은 '다원외교'를 내세웠다. 무역, 민간, 인권 등의 여러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가치 지향적 외교를 통해, 대만의 독자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성공하였고, '중화민국' 대신 '대만' 명의로 유엔 재가입 신청도 추진했다. 그러나 천수이볜의 분리독립 추구를 경계한 중국의 방해로 수교국은 도리어 3개국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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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취임한 중국 국민당 마잉주 총통은 '활로외교'를 주창했다. ECFA 성립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화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생존 공간 확보를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양해 아래 그동안 무산되어 온 일부 국제 기구(예: 세계보건회의[WHA],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한 옵서버 참가 자격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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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초의 양안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잉주 총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의 UN 재가입을 비롯한 국제기구 참여 확대 협조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 회담에서 시진핑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 일대일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대한 참여 허용에 대해서만 언급하여 대만 측을 적지 않게 실망시켰다.[18] 어차피 중국은 아쉬울 게 없고, 당시 대만 총통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게 주 목적이었으니까.

2015년 기준 대만은 자유무역협정 TPP에 가입을 추진 중이다. TPP 가입에 대해서는 중국 국민당 외에 친민당, 민주진보당, 대만단결연맹 범람연맹 - 범록연맹 구분없이 일종의 활로가 되기 때문에 위 아 더 월드로 찬성하고 있어 2016년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서 누가 되든 핵심 과제가 된다.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하면서 UN 재가입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 하지만 현실은... 중국의 계속되는 외교적 압박으로 감비아, 상투메 프린시페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복교했다.

2017년 1월 13일에는 타이베이 대표부들 중 유일하게 '중화민국(타이완)'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던 나이지리아 아부자 주재 대표부에 대해 나이지리아 정부가 중화민국(타이완)도 빼고 라고스로 규모를 줄여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19]. 대만 측에서도 상호주의에 따라 대만 주재 나이지리아 대표부를 타이베이 밖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 현재 교외지역인 신베이로 이전한 상태이다.

2017년 6월 13일에는 신해혁명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해 온 파나마마저 대만과의 단교 및 중국과의 수교를 단행했다. 2018년 5월 1일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전격 단교를 선언하였다. 대만 측은 단교를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군사적 지원을 하였음에도 단교 선언을 들어 분노와 절망에 빠졌다. 5월 24일에는 부르키나파소가 일방적 단교를 선언했다. 이어 8월에는 1933년 이래로 국교 관계를 맺어 온 엘살바도르가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총통의 방미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교황청조차 주교 서품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와 합의에 도달하면서, 대만 외교는 큰 위기에 빠져 있다.

5. 스포츠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만이 반(反) 수카르노 세력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측이 참가승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시안게임 참가가 좌절되기도 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경우 이슬람교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정치성향 때문에 참가를 금지시켰다.

IOC는 이에 대해 아시안게임 개최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지만 사실 IOC에서 이걸 가지고 올림픽 참가를 왈가왈부하다간 인도네시아와 뜻이 맞은 아랍 나라들의 반발로 인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러나 당시 아시안게임연맹(AGF) 위원장의 국가이던 인도 일본 등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를 비난하면서 인도에서는 대놓고 1962년 아시안 게임횟수에서 빼버리고 비공인 대회로 하자!!까지 했었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대회를 강행했으며 결국 대만과 이스라엘이 불참 처리된 가운데 열렸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역도연맹은 이 대회의 해당 종목을 인정하지 않고,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당시 육상과 역도는 불참하였다. 일부 나라는 올림픽에 나갈 만한 실력이 안 되는 선수들을 참가시키기도 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IOC에서 제명당했다. 입경고가 아니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정권이 수립된 후 IOC에 복귀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때는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자유당의 피에르 트뤼도 정부의 성향 때문에 '중화민국' 국호를 내세운 올림픽 참가를 금지당하는 불운도 겪었으며, 결국 중국의 압력으로 1984년 동계 올림픽[20]부터는 '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라는 어쩡쩡한 국명으로 참가하고 국기 역시 공식 국기인 ' 청천백일만지홍기' 를 사용하지 못하고 타이완 올림픽위원회의 깃발을 대신 사용해야 하며, 시상식 때도 청천백일기와 삼민주의 대신 중화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 깃발( 매화기)과 중화민국 국기가를 개사한 중화올림픽위원회 회가[21]가 대신 연주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고도 자국의 국기를 볼 수도, 국가를 들을 수 없던 대만 선수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보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5.1. 스포츠 대회 유치 시도

추락하는 외교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인지,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듯 하다.

2009 가오슝 월드 게임[22]을 개최하였고,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였으며, 2018년 아시안 게임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노리기도 했었다. 2011년과 2013년에 프로야구 아시아 시리즈를 대만에서 개최하였으며, 그 중 2011년 대회에서 삼성 라이온즈 한국프로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국제올림픽위원회 FIFA 등도 결국 중국 본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중화민국으로써는 가능성이 없다. 그나마 2030 엑스포를 노릴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국내에서 개최했던 월드 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국기와 국가를 정식으로 올리지 못하고 '꼼수'를 써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단 경기 출전 자체는 여타 국제대회와 마찬가지로 중화 타이베이 명의로 하고, 대신 시설물에 걸어놓는 개최국 표식만 비로소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쓴 것. 중국 야구팀을 상대할 때도 국기를 휘날렸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6. 이것만은 유리?

6.1. 종교

현재 중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될 처지가 아니라서 종교인들의 국제대회만큼은 대만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만은 세계 주요 종교들이 강세를 보이는 나라는 아니여서 한계가 있다. 왜냐면 세계의 4대 종교 중 대만에서 종교 인구 숫자가 3% 이상 되는 종교가 단 하나도 없다. 물론 대륙보다는 종교적으로 훨씬 자유롭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장점이다.

일본의 융합처럼 대만에는 대만식의 불교와 혼합된 도교가 존재하는데, 대만의 미아오에 가 보면 월하노인과 부처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정식 도교라고 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정식 불교라고 보기에도 힘들다. (무엇보다 대만에도 정식 불교가 있다.) 아무튼 저러한 대만식의 도교+불교가 혼합된 종교가 대만에서 가장 대중적인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만에서 ~~미아오(묘,廟)라고 되어있는 곳은 전부 저 대만식 종교의 사원이다.)

4대 종교 중 기독교는 가톨릭 개신교가 각각 2%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정교회는 이보다 교세가 더 적다. 그나마 개신교는 한국 국적의 선교사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는 편이지만, 가톨릭은 사제의 숫자가 성당의 숫자보다 적어서 1명의 사제가 2~3개 성당, 심하면 공소를 포함하여 10개 이상을 맡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만의 한 교구( 타이중 교구)는 1990년 이후 단 한 명의 사제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한국은 1년에 사제가 전국적으로 100여 명 이상 배출이 되지만, 대만은 1년에 사제를 2~3명도 배출 못한다. 그리고 이게 7개 교구를 전부 합친 숫자다. 대만 전체 가톨릭 사제 중 대만 국적을 가진 이가 반이 안 된다. 또한 가톨릭도 20세기 중후반까지는 대만에서 선교를 하면서 중국어가 능통한 사제들을 키우다가 중국으로 넘어가서 선교할 방침을 세웠었으나, 이마저도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선교사를 양성하거나 중국 지하 교회를 활성화 시키는 방향으로 선교 정책을 대선회해 대만 가톨릭 교회는 사제가 더욱 부족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 교회'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돌아가거나 지하 교회의 형태로 활동해야 하는 대륙의 교회와는 달리, 교황청과 온전한 일치를 누리는 장점은 매우 강력하다. 당장 바티칸과의 관계만 보더라도, 대륙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수준. 정교회는 200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휘하 홍콩-남아시아 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겨우 다시 설립되었으며, 사제는 외국인 단 한 명이고, 신자들도 아직까지는 서양인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기독교를 아무리 키운들 서구권 국가가 지원할 리가 없다는 것이지만[23] 멀리 갈 거 없이 대만을 이렇게 고립시킨 것도 한 겨레인 중국이다.

이슬람은 1% 미만의 점유를 보인다. 일단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하여 타이베이에 있는 지하철 역들 중 큰 규모의 역에 기도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다.

6.2. 여행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isa_requirements_for_Taiwanese_citizens_%286%29.png

연두색: 무사증 입국시 국민번호 필요
녹색: 무사증 입국시 국민번호 불필요
청색: 도착사증
하늘색: 전자사증
노란색: 중국 본토
회색: 비자 필요

중화민국의 여권은 중국 여권보다 위상이 매우 높다.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국가 숫자만 비교해도 중국이 고작 50개국에 불과한 반면 중화민국 여권은 164개국이나 된다. 물론 세르비아[24], 노르웨이[25]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중화민국 국적자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혹은 까다롭게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서방 국가 대부분이 대만에 대해서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준다. 그러나 중국이 중국 대륙을 무기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삶의 질 자체는 여전히 한참 멀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이주하려거나 불법 체류하려는 중국인이 많은 반면, 대만은 중국 대륙에 비하면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불법 체류율이 낮기 때문.

반대로 중국에서는 비자를 요구하지만 대만에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외국 국적도 많다. 애초에 중국은 자국 체제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것 같다고 판단될 경우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대만은 이미 체제가 잘 정착된 국가이므로 최소한 서방 국가에 대해서는 거리낄 게 없어서 그렇다. 심지어 외교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말 현재 6개국(미국, 일본, 한국, 독일, 영국, 호주)에서 대만 여권으로 자동출입국심사를 받을 수 있다.

단 중화민국 국민의 무사증 입국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여권에 국민번호가 있냐 없냐의 여부로 나누어진다. 위의 자료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한국 등은 중화민국 여권에 국민번호가 없어도 OK인데, 연두색으로 표시된 미국/유럽국가/일본 등은 중화민국 여권에 국민번호가 있어야 무사증 입국이 된다.

중화민국 국민은 대만에 호적이 없으면 여권에 국민번호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화교/대한민국 문서를 참고.

‘재한 화교-재일 동포’의 동병상련

7. 미래

매우 비참하며, 그들의 존속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2000년~ 2008년에 걸친 천수이볜 통치기간의 분리주의적·탈중국적 성향이 강해진 탓에 중국의 압박도 심해져[26], 일각에서는 중국에 그대로 흡수되거나 홍콩, 마카오와 같은 일국양제 형태가 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는 2008년 5월에는 대만 정부가 파푸아뉴기니와 수교를 맺도록 다리를 놔주겠다는 외교 브로커에게 거액을 사기당하기까지 했다(…). 너무 불쌍한 거 아니냐 이정도면

파라과이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때 중국과의 수교를 고려했으나, 2008년 국민당 정부가 재집권하면서, 중국과의 수교국 숫자 늘리기 쟁탈전은 일단 휴전된 상태다. 중국 측도 이 휴전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대만과 수교 중인 일부 국가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고 자신들과 수교하겠다고 한 제안을 에둘러 거절했다. 파라과이가 대만 단교-중국 수교를 하려던 계획도 중국의 거절로 무산된 상태. 단, 감비아는 대만과 단교했다. 역시나 중국의 수교 제안 거절로 인해 중국 국가 승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수교국 쟁탈전 휴전이 차이잉원 정권에서 유지될지 끝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일단 차이잉원 본인도 이쪽에 대해 2016년 당선인 신분에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차이잉원이 당선되고 난 3월에 중국과 감비아가 전격 복교하면서 다시 수교 쟁탈전이 벌어지나 했으나, 감비아는 대만과 단교한지 이미 3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고 차이잉원이 취임하고 나서 수개월이 지난 12월까지는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12월에 상투메 프린시페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바로 중국과 수교했다.

하나의 중국에 따른 대만과 중국 중 양자택일적으로 수교하는 상황이 깨지려면 꽤 영향력이 있는 나라[27]들이 중국과 관계가 나빠질 것을 각오하고 대만과 수교해야 한다. 미국도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예전처럼 대만을 적극적으로는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사실 대만이 존속함으로써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서태평양에서 중국을 상대하기 편해진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7대 군구 중 하나인 난징군구의 군사력은 대부분 대만 병합을 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만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이 군사력은 모두 분쟁지역인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분쟁 지역에 투입될 수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서태평양에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이전보다 어려워진다. 중국과 대만의 국력 차이가 넘사벽이 되고 미국에서도 가끔씩 대만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만에 대한 방위 보장을 규정한 대만관계법이 유지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이 대만과 다시 외교관계를 복원하려고 해서 어느정도는 숨통이 트였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대만 재수교 찬성론자가 요직에 임명되는 등 대만과 재수교를 해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폐기하려 시도하는게 아니라 하는 말이 나온다.

현재로서는 대만의 외교는 주로 타이베이 대표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고, 수교국의 증가는 고사하고 더 단교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듯. 오죽하면 외교부가 단교부라는 오명을 썼을까.

수교국이 줄어들자 대만은 수교국 11개국에 무비자 정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 그리고 대만 측은 남은 수교국에 발전소를 짓고 경협과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

다음 표는 주요 연도별로 중국과 대만의 수교국 숫자를 비교한 것이다.
연도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비고
1969년 44 67 프랑스 등이 대륙을 선택하는 등 이 시기에도 이미 암울하다
1971년 66 54 중국 UN가입, 중화민국 UN 탈퇴
1975년 106 26 장제스 사망
1979년 120 22 미국- 중화민국 단교
1985년 133 23
1992년 156 29 대한민국- 중화민국 단교
2000년 166 29
2007년 170 23
2013년 170 22 감비아- 중화민국 단교[28]
2016년 172 21 감비아- 중화인민공화국 수교
상투메 프린시페-중화민국 단교
단교 직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2017년 173 20 파나마-중화인민공화국 수교
2018년 178 17 5월 도미니카 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단교
8월 엘살바도르 단교
2019년 180 15 9월 솔로몬 제도, 키리바시 단교

하도 단교가 이어지다보니 대만의 여론은 의외로 단교에 무덤덤하다. 주요 국가와는 진작에 단교했으므로 지금은 단교할 나라들이 모두 국제사회의 변방 국가들이고, 공식적으로는 외교관계가 없지만 교류가 많은 주요 친서방 국가(미국, 일본 등)들이 대만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으므로 당장 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은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할 수도 있는수교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쓰는 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대만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이게 중국의 대만 합병 야욕을 보여준다며 단교 사태가 국민 단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관련 기사

물론 하나라도 수교국이 있는 것이 대만의 국제적 입지에 도움이 되므로 위의 주장들이 대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작은 변방 국가라도 국제기구에서 나라로 인정되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변방 국가라도 더 많은 나라와 수교를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국제사회에 대만의 입장을 전달해줄 수 있는 나라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도 WHO와 같은 곳에서는 대만의 총회 참석에 찬성하는 국가들이 총회 등에서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만 가입 문제를 꾸준히 올리고 있는데 이 국가들 중에는 미국, 일본 같은 친서방 주요 국가뿐만 아니라 대만의 수교국들도 있다. 또한 이들은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대만의 UN 가입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찬성하고 있다.

그리고 대만의 수교국이 줄어들자 2018년 9월 5일에 미국 상원은 대만과 단교하는 나라들을 제재할 수 있는 대만 단교국 제재법을 발의했다. # 그리고 미국 측은 대만과 단교한 나라들의 대사들을 불러들이는 조치를 취했다. # 자기 자신부터 제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대만과 우호적이고 계속 수교하던 팔라우조차도 대만과 단교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 대만은 수교국들의 수가 줄어들자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권 국가들과 일본과 비공식외교를 강화했다. # 그나마 극우 성향의 브라질 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중국과의 우호조약 파기 및 당선 후 대만 방문을 공약으로 한 것이 작은 위안.

미국이 대만을 나라로 인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자세한 것은 미국-대만 관계 참조.

2018년 8월 엘살바도르와의 단교 이후 한동안 대만과 단교한다는 나라는 나오지 않았다. 중국은 이후에도 에스와티니, 팔라우 등 대만 수교국들을 계속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단교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수교국이 계속 줄어 위기감을 느낀 대만 정부가 수교국 유지에 안간힘을 쓰며 각종 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대만과 단교하는 나라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대만의 남은 수교국들이 대부분 오세아니아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몰려 있고 모두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이라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중국과 수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솔로몬 제도가 중국과 수교하는 것을 검토하더니 2019년 9월 16일 솔로몬 제도가 단교를 선언하면서 다시 위기에 봉착된 상태이다. # 그걸로 그치지 않고 9월 20일 키리바시도 단교를 선언했다. #

대만은 중국과의 무역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영국과 무역협정체결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반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

투발루, 팔라우, 나우루, 마셜 제도로 한 수교국 기구를 만든다. #
다만 더이상의 단교국은 나오지않을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만의 수교국 15개국이 모두 미국이 외교권을 가지고 있는 카리브해 섬나라 들이거나 소국 또는 미국의 영향권인 중남미 국가들이라 안그래도 중국과 패권경쟁중인 미국이 대만에게 힘을실어 주고있는 실정이라 미국의 눈치를 안볼수없기 때문 실제로 솔로몬제도 키리바시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자 재네들이 지금 어떤시국인데 중국과 수교를 하냐며 경악을 했고 미국이 솔로몬제도 키리바시의 대사들을 초치해 항의하고 더이상 대만과 단교한 나라들을 제제한다고 하자 투발루 나우루 마셜제도 팔라우등 나머지 나라들은 절대로 대만과 단교안한다고 선언까지 했다. 이들 나라는 많은부분을 미국에 의지하고 있기때문에 굳이 미국과 척까지 지며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할 필요성은 없기때문이다.

8. 미수복 영토 주장과 몽골 문제

파일:attachment/중화민국/외교/ROC-claim.jpg

중화민국이 주장하는 미수복영토, 분쟁 지역.[29] 현재 대만이 주장하는 영토를 실효지배하는 다른 나라는 14개국에 이르고 있다.[30] 꿈은 큰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대륙 지구의 행정구역은 중화민국/미수복지구 문서 참고.

중화민국은 청나라의 계승을 주장한 만큼, 몽골 역시 자신의 영토로 보고 있다. 몽골이 독립하게 된 계기는 적백내전 때 소련에 점령된 것으로, 소련은 자국의 위성국으로서 몽골의 독립을 보장해 준 것이다. 대만은 소련 때문에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였다가 소련과 단교한 후 이를 취소하였다. 따라서 대만은 몽골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냉전 시대 때는 비공식 관계조차도 없었다. 몽골 역시 중국과 수교한 나라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거하여 대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 서로에 위협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중공을 어떻게 해야 위협이 되는 말든하지 실제로는 소 닭 보는 관계였고, 둘 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부담스러운 이웃을 두고 있는 사정으로 인해 비공식 외교 관계를 개시하여 2002년 상호 대표부를 세웠다. # # 역시 적의 적은 나의 편

그리고 현재 (외)몽골은 중화민국의 이른바 '대륙지구'에서 빠져 있다. 법이 개정될 때 대륙지구를 '중공(중국공산당) 치하에 있는 지구'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2012년 중화민국 행정원 대륙위원회는 "국민 정부가 몽골의 독립을 승인했으며, 현재 몽골이 국제 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영토에서 몽골을 제외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9. 각 국가별 관계

9.1. 중국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양안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1.1. 홍콩 특별행정구

중국 본토가 공산화된 후 수많은 중국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공산당을 피해 타이완 홍콩으로 이주했고, 반공의 보루로서 홍콩 - 타이완 간 교류가 급증했다. 과거는 물론 지금도 홍콩 - 타이베이 항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국제 항로 중 하나이고 수많은 홍콩 영화가 타이완에서 촬영되기도 했으며, 상호 지역의 기업이 건너편에 진출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가 매우 많으며 국민들의 감정도 서로 우호적인 편이다. 중화항공의 알짜배기 노선이 타이베이 - 홍콩 항로기도 하고.

그러나 홍콩은 비록 상당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과거에는 영국,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해서 중앙 정부의 간섭을 받는 존재이므로 공적인 영역에서는 일관적으로 본국의 방침을 따라 중화민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양안관계 사이에서 제삼자적인 성격을 가진 홍콩이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의 중재지 역할도 종종 수행하는데, 가령 중국 국민당 중국 공산당의 3차 국공 합작이라 불린 2005년 정당 간 회담은 홍콩에서 열렸다.

9.1.2. 마카오 특별행정구

9.2. 대한민국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대만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화민국/국민정부 시절부터 유구한 관계를 이어왔고, 타이완 역시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대륙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수장인 장제스는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수여받는 등 최고 우방의 하나였다. 정치사적으로 2.28 사건 이후 40년 가까이 계엄령 아래 공포 정치가 이루어진 점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 1980년대 정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등 공통점이 있으며, 1992년 대륙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측이 내세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민국과 단교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중국' '자유중국'이자 한국과 같은 처지인 반공 전선의 첨단으로서 '중공'에 대항하는 간접적인 동맹 같은 관계였다. 92년 이후로는 형식상의 대표부를 두고 예전같지는 않지만 그리 적대적이지는 않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반한과 친한 감정이 공존하며, 한류의 소비도 많은 애증의 관계. 특히 야구 분야에 반한 감정이 심한데 한국과 야구를 하면 항상 대만이 진다는 이유로 반한 감정이 좀 있다. 대만에서 양국 간 야구 경기라도 개최되면 관중석에는 한국에 대한 드립이 난무한다.[31]

한국 드라마와 노래는 TV에서 끊이지 않고 방영되며, 꽃보다 할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다. 한국 가수의 곡을 모티브로 작곡하는 가수들도 생길 정도.

한 번은 어떤 대만인이 한국 제품을 모두 버리자며 한국 기업의 LCD 모니터를 집어던지는 모습이 보도됐는데 모니터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오히려 그 대만인이 나서서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증명해 버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3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편파 판정 논란 직후 "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와서 사과해도 용서 못 한다!"는 말도 나왔는데, 역설적으로 대만 내의 한류 위상이 어떤지 알려주는 말이 되었다.

대만 내 정치인들이 한국 드립 조성에 일조하기도 한다. 한중 FTA가 타결되고 나서 중국 국민당에서 찍은 광고 한국어 번역만 봐도 그렇다. 한중 FTA를 막는 게 아니라 민진당을 선거에서 참패시켜 동력을 상실케 해 ECFA 확대를 빠르게 하자는 것[33]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국민당이 민진당한테 관광당했으니 제로 ECFA 서비스 / 투자 협정은 국민당의 지방 선거 참패 이후 비준 동의안이 멈췄다. 그 이외에도 일부 중화민국 사람들이나 황색 언론이 뭔가 이상한 드립을 치면서 한국과 얽어넣기를 시전한다. 반대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서 한국 정치인들의 이미지를 끌어오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마잉주 셰창팅이 서로 자신이야말로 대만 이명박이라고 홍보하기도 했으며, 마잉주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만은 한국의 주요 교역국들 중의 하나이고, 한국 드립과는 별개로 중화민국 정치인들도 TPP 가입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대로 위에 이런 한국 드립 때문에 일부 한국인의 반대만 감정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특히 대만이 일본에 워낙 친화적인지라, 이런 대만의 친일적인 성향과 엮여 "아, 쟤네들은 친일파니까 혐한하는구나." 하고 단정짓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대만의 대(對)한국 감정, 더 나아가 아예 대만에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 대만으로 여행을 가는 한국인들이 많아져서 옛날보다는 관심이 증가했다.

한국에서 대만(타이완)과 태국(타이)을 헷갈리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1990년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교류가 끊기고, 경제적으로도 성장해 굳이 더 이상 중화민국이 롤 모델이 될 이유가 사라져 인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발음의 태국과 헷갈리기도 딱 좋았고, 단교되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만큼 교통요지로 인지도가 높거나 관광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으니 존재감 없이 중국의 일부로 묻혀 갔다. 그러나 이념 대립이 심했던 시기를 거친 세대는 대부분 대만을 잘 알고 있다. 이 시기 이른바 '자유 중국'[34] 일본과 함께 한국이 롤모델로 삼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만을 더 이상 모델로 할 필요가 없어지자 경제 분야에서 대만의 존재감이 희석되었다. 또 대만의 스포츠 실력이 돋보이지 않는 수준인 것도 한몫한다. 인구 2천만 명에 그런 대로 부유한 나라임에도 전반적으로 스포츠계에서 존재감이 없다.

어쨌거나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단교 직후에 비하면 꽤 관심이 생긴 상태. 조립PC 스스로 만들어 본 사람치고 대만제 부품을 안 써본 사람은 많지 않다. 1986년 이후 출생 세대들의 경우에는 대만과 국가 대항 야구 등에서 많이 엮이고, ASUS 등 대만제 부품들을 조립 PC에서 많이 접하게 되어 다시금 인지도가 올라갔다. 특히 전자 부품 면에서는 세계구 급인데, 3대 메인 보드 제조사인 ASUS, MSI, GIGABYTE는 물론 ACER, ASRock, Foxconn 등 유명한 전자 부품 회사들은 모두 대만 회사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도체 회사인 TSMC 또한 대만 회사이다.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강세를 보인다.

2003년 한국 - 대만 간 여객기 운항이 재개된 이후에는 여행도 많이 간다. 서울( 인천, 김포), 부산, 대구, 청주 등에 취항한다. 중화항공, 에바항공,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 에어부산, 제주항공 등과 소규모 항공사까지 모두 운항한다.

또한 모바일 기기 쪽에서는 HTC가 잘 알려져 있다. H가 Hongkong인 줄 알고 홍콩 회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본처럼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은 나라 중 하나로 타이베이 시 번화가에는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 가게들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대만 국산 브랜드의 관계자가 "현재 대만에서는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너무 높아 국산 화장품은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다'고 하였을 정도이다, 드럭 스토어에도 상당히 많은 한국 화장품들을 파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이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2019년 현재에는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대만을 추월하고 대만인들도 이를 인정하여 인터넷 상에서도 혐한감정이 거진 사라졌다고 한다. 영상 참조.[35]

그 밖에도 우왁굳이라는 한국인 스트리머가 생존게임에서 중국인에게 타이완 넘버원을 외쳐 중국인들 도발하는 영상을 번역해 올린영상이 화제가 된 사례도 있다. 자세한건 타이완 넘버원을 참조하자.

에어소프트건 유저에게도 친숙한 나라다. 과거 일본제 에어소프트건의 모방 및 부품 조달에 그쳤지만, 현재는 우수한 리얼리티나 순정 상태에서도 준수한 성능을 뽐내면서 가격은 일본제보다 저렴한 가성비로 통하고 있다. 일부 중년층을 제외하고 많은 에어소프트건 유저들이 가성비로 인해 대만 기업의 GBB와 전동건을 구매하여 사용 중이다.

양국간 사이가 험악한것과 달리 섬짱개라고 부르는 일부 한국인들과 달리 사드배치문제 홍콩민주화 사태등 최근 젋은층 사이에서 반중감정이 생기며 중국에 맞서고있는 대만에 대한 호감이 커지고있다. 그이유로는 중국이 시진핑정권 들어 어그로를 잔뜩끄는데다가 그에 반해 대만은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임과 동시에 공산주의른 국시로하는 중국에 맞서는게 한국과 비슷하고 게다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 지원 정부수립후에는 한국전쟁 파병 경제원조 베트남전쟁 참전등 단교전 까지 워낙 밀접한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고마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리고 단교과정도 왠지 한국이 어려울때 다도와줬는데 돈많은 여자한테 간거같은 느낌을 대만에게 주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넷상에는 타이완 넘버원을 외치는등 대만을 지지하거나 애초에 우리가 대만에게 배은망덕한 짓거리를 핬기 때문에 욕먹어도 싸다는 의견과 대만은 우리가 품어야할 나라라는 반응을 보이는등 호의적이고 대한민국 정부 역시 대만정부와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않다.


9.3. 일본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만-일본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4. 미국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국-대만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우선 태평양 전쟁 때만 해도 일본 제국이란 공동의 적을 둔 연합국의 일원으로 중화민국과 미국 간 관계는 동맹으로서 원활했다. 그 후 중국 국민당 타이완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대만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공산 세력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방어선 역할을 수행, 미국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땐 주한미군처럼 타이중 일대에 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별탈없이 유지되던 동맹 관계는 닉슨 대통령 시절 핑퐁 외교로 미국 - 중화 인민 공화국 간 관계가 급진전된 이후 큰 격변을 맞이하는데 마침 중화민국이 UN에서 사실상 쫓겨난 뒤 양국 간 동맹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던 때다. 그 후 중국과 서방 국가들이 서서히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하고 미국 또한 정식으로 중화 인민 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하는데 중국은 수교 조건으로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 잠재성과, 그의 관계 개선으로 소련을 제어하는 외교력을 노리던 미국은 할 수 없이 1979년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맺어온 동맹 관계를 감안해 그때까지 대사관 부지를 매각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미국은 빡친 중국 측으로부터 본국 내 미국 자산을 동결당하는 보복을 당했다.

미국이 '중화민국'과의 국교를 단절한 이후 양국은 서로의 나라에 대표부를 둬 비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고 타이완 관계법을 통해 미국과의 안보 - 군사적 밀월을 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입김이 강해져[36] 미국의 개입도 예전만은 못해지다보니[37] 미국 내에서도 대만과의 밀월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론이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이 노골적으로 팽창주의를 보이자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이를 견제하려고 다시금 대만을 견제 세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무기 수출도 제한적으로나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만은 한국, 일본과 더불어 앞으로도 중국에 대한 견제망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일단 미국은 양안관계에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 대만이 중국에 편입되는 상황도 물론 원하지 않지만 양안 대립이 격화되어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 역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만 독립을 주장해 타이완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였던 천수이볜 총통 시절에도 미국과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6년 11월 7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차이잉원 총통과 직접 통화하고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중국 봉쇄 정책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중국만 아니라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나, 선거에서 완승(연방 의회 & 주지사 등)한 차기 정권이 저물어가는 정권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이라는 패를 쥐고 동아시아에서의 미국과 한국에 대응하며 외교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도널드 트럼프 역시 대만을 하나의 중국이라 외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카드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양안 관계의 특수성에 대해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는 상황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이와는 달리 '하나의 중국'이라는 특수성을 미국이 인정해주는 것에 대한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다시 말해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이 국제 사회가 원하는 수준으로 제재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특수성을 국제 사회가 인정해줄 까닭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물론 북한 문제 뿐 아니라 동아시아 및 국제 외교, 위안화 절상 등 미국이 원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만 카드를 미국의 이전 정권과는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트럼프가 사용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2018년 1월 9일에 미국과 대만 정부 관리의 상호 방문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만여행법(Taiwan Travel Act)’, 대만이 세계보건기구(WHO) 옵서버 자격을 회복할 수 있도록 미 국무부가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시켰다. 대만여행법은 ▲미국의 군 장성, 행정 기관 관리를 포함한 모든 계급의 관료에 대한 대만 방문, 대만 관리들과의 회동을 허가하고 ▲대만 관리들이 존중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을 방문하게 하고, 미국 측 관계자를 만날 수 있게 하며 ▲ 미국 주재 대만 경제문화대표부를 포함한 미국 주재 대만 기구들이 미국 측과의 협력을 돕는 등 주요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미중관계에 많은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참고로 그 전까지는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에 따라 그동안 대만 정부 관리에 대해 계급을 불문하고 미국 방문 및 접촉을 제한해 왔다. 대신 타이완성이 미국내의 모든 주와 자매결연 비슷한것을 맺어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타이완 성장은 타이완 정부의 장관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타이완 성장의 자격으로 미국과의 비공식적 외교 접촉은 있었다. 이 때문에 대만 국내에선 전혀 의미가 없었던 타이완성장을 계속 임명했었다[38]. 하지만 비공식적 방식이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많을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타이완성장을 아예 임명하지 않는데다가 미국과 직접 교류가 가능해져 저런식의 간접외교는 옛날얘기가 되었다.

군사적으로도 2018년부터 15년 동안 중단됐던 방위산업 콘퍼런스를 해마다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측은 39년만에 대만에 다시 미군을 주둔시켰다. # 물론 대규모 병력은 아니고 외교공관을 지키는 해병대 병력이 일부 주둔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중국한테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중국이 대만병합을 위해 침공을 하게되면 현실적으로 미 공관만 깔끔히 빼놓고(...)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결론적으로 미군을 공격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분노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대만을 많이 인정하고 있으며, 이례적으로 엘살바도르의 대만 단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 자기는...

또한 17개국과 수교하고 있는 대만과 단교하는 국가는 미국과의 관계, 지원을 재검토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과정에서, 미국 백악관이 표시한 세계지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분리해서 표시하는 일도 발생했다. 기사 대만 네티즌들은 " 백악관도 불매운동 해봐라"며 조롱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6월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분류한 것이 확인되었다. (The U.S. Department of Defense has included Taiwan on a list of “countries”) 기사 다른 경우와 달리, 국가 공식문서 특히 국방부 문서에서 명백히 '국가'로 표기한 것이므로 의미가 크다.

9.5. 바티칸

1942년 공식 수교한 이래 계속 외교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대만 내에서 가톨릭 신자 비율은 불과 1 ~ 2%에 불과한 25만 ~ 30만 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바티칸은 유럽 지역의 유일한 공식 수교국으로서 대만에게 있어 현재 가장 중요한 수교국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만 정부는 교황청과의 관계를 극도로 신경쓰고 있다. 그 이유로 전 세계 12억 가톨릭 교회 수장인 교황이라는 상징성, 유럽 최후의 외교 거점인 점, 다른 공식 수교국들로의 파급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대만의 17개 수교국들 중 중남미 국가 10개국은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라서,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이들 나라들 또한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자칫하면 중남미를 중심으로 그나마 남은 수교국들에 대한 연쇄 단교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만은 바티칸의 동향을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과 바티칸은 중국 내 주교 서임권 문제, 지하 교회 문제, 대만과의 외교 관계 등 여러 문제로 공식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바티칸이 국내의 가톨릭 성직자를 자기 마음대로 임명하려는 중국과 수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중국 입장에서도 중국 본토에 자신들의 관리 영역을 넘어서는[39] 종교 조직이 들어오는 것을 용인한다는 것이 되므로 쉽지 않다.

그런데 2018년 9월 중국과 바티칸이 주교 서품 문제에 합의하면서, 대만 외교 당국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 이에 교황의 대만 방문을 추진하였으나 사실상 거절당했다. #

9.6. 독일

국민정부 시절부터 사이가 좋았으며, 나치 독일 때도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 고문단, 무기 등을 파견하거나 수출하는 등 사이가 괜찮았다고 한다.두 나라의 국가 원수가 총통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 절때 아니다 1940년대 초까지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일본 제국과 추축국을 형성하고 왕징웨이 정권이 설립됨에 따라 단교하고 왕징웨이 정권과 수교했다.

2차 대전 후 서독은 양안과 동시 미수교 상태로 있다가 1970년대에 중공과 수교했으나(동독은 일찍이 중공과 수교), 국민 정부 때부터 도운 공이 있어서 경제 면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사이가 좋은 나머지 나치 독일을 옹호하는 집단들도 있다. 2016년에 한 중학교에서 나치 군복을 입고 코스튬 플레이를 펼쳐 파문이 일어나기도 했다. # 정부는 처벌 끝에 교장이 사직했는데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 #

9.7. 팔라우

지리적으로 대만의 가장 가까운 수교국이며, 대만의 수교국 중 유일하게 직항 노선이 개설되어 있는 곳이다. 대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수교국들이 줄타기를 하며 중국과의 수교 의향을 내비치거나[40], 표팔이를 하면서 태도를 매번 바꾸는 것에 비해서[41], 팔라우는 중국의 어선에 발포를 할 정도로 대놓고 강경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으로서는 가장 든든한 수교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팔라우로서도, 자신들이 듣보잡 약소 섬나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수교하는 것보다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만의 경제적인 원조를 받는 것이 훨씬 이득이기도 하다. 또, 국방을 미국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나라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2018년에 들어서서 중국이 대만 단교를 요구하고 있지만 거절하고 있는 상태이다.

9.8. 필리핀

필리핀은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했고, 반공 국가로서 서로 수교했으나 1975년 필리핀이 중공과 수교하며 단교했다. 그래도 지금도 서로에게 대표부를 두어 비공식 외교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9.9. 에스와티니

현재 아프리카 유일의 수교국으로 중국에서는 이 나라와 수교하면 대만의 아프리카 수교국을 제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대놓교 단교를 촉구하며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18년 8월 에스와티니 정부는 대만과 단교할 생각이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

10. 관련 문서

11. 외부 링크



[1] 중국이 분단되기 전 중화민국과 수교한 이후, 그 수교를 계속 이어간 나라는 바티칸(1942), 온두라스(1941), 과테말라(1933), 니카라과(1930)(단 니카라과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중국과 수교했었음)이다. 다른 나라는 어찌 되었든 정부를 타이베이로 이전한 후에 수교한 것이다. [2] 나중에는 상하이에도 설치했다. [3] 이마저도 홍콩의 판사처의 경우 영국이 1950년에 중화민국의 승인을 취소해 버렸기 때문에 '중화여행사'라는 안습한 이름으로 1966년에 설립되었다가 2011년에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격상시킨 것이다. [4] 단 이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다. 중화민국과 처음부터 수교하지 않았고 대륙과 수교한 것을 여기 올려놓은 경우가 있어서 [5] 소련의 후계 국가인 오늘날의 러시아 연방과 중화민국은 서로의 지역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6] 영국은 홍콩 문제 때문에 냉전 초기부터 친 중공 노선을 걷는다. [7] 다거우에 있던 영국영사관은 1972년에 폐쇄됨. [8] 한번 지워졌던 분야인데, 수카르노가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바로 즉시 수교한 나라 중 하나가 중화민국이다. 1945년 독립선포 즉시 수교했다가 1950년 단교. 그리고 그 이전 네덜란드령 시절에 설치된 영사관이 있었다. [9] 위에 링크된 도표에는 인도네시아와 수교했다는 얘기가 없지만, 중국어 위키백과의 이 문서에는 인도네시아가 1950년에 중화민국과 단교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10] 1996년에 재수교(3차). [11] 베트남 전쟁으로 나라가 아예 멸망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그대로 통일국가로 전환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는 훗날 비공식관계 수립. [12] 11월 3일에 수교해서 11월 10일에 단교. [13] 2008년 1월 20일 단교. 마잉주 총통은 3월 15일 선거로 뽑혀 5월 20일에 취임하였으므로 천수이볜 시절이다. [14] 중화민국은 1949년 12월 이전까지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륙의 정통 정부였으니 UN 창설시에는 이게 당연했다. UN 헌장의 창립 회원국 목록을 보면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가 명시되어 있다. [15] 이 시기 수교국의 절반이 날아가 외교부가 단교부로 불릴 정도였다. [16] 모교인 코넬대학의 초청을 명목으로 했다. [17]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라트비아, 한번 단교를 했던 니제르와 수교를 맺었다. [18] AIIB의 경우, 이미 대만에서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가입명으로 제시한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중국이 거부한 바 있었다. [19] 비교하자면 워싱턴 DC 주재 대사관을 뉴욕 총영사관으로 완전 통합하는 셈. 본교가 분교로 합쳐지는 것이니 위상 추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 이미 1980년 올림픽부터 적용되었으나 이 해의 동계 올림픽에는 이에 대한 불만으로 불참하였으며, 하계 올림픽은 다른 나라의 집단불참에 동참하여 나타나지 않았던 것 [21] 단 대만 관중들이나 선수들은 실제로 중화민국 국기가 가사대로 부른다. [22]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아예 없다 시피하고 중계도 당연히 안하는 존재감없는 대회이다. 애초에 올림픽에 채택되지 않은 종목으로만 구성된 비인기종목대회이다. [23] 이건 이미 동로마 제국을 포함한 다수의 경우로 증명되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도와달라'는 요청은 '도우면 뭐가 달라지나'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니까. 게다가 오히려 종교전쟁은 같은 계열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니( 30년 전쟁이라든가 수니파 대 시아파라든가). [24] 코소보 문제 탓에 중화민국 국적을 소유한 사람의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다만 이전까지 알려진 바와는 달리 모든 대만인을 입국을 거부하거나 까다롭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르비아가 친중 국가 중 하나다. 게다가 대만은 유럽에서 친구가 없다시피해서.. 밀로셰비치 시절에는 대만인은 세르비아에서 진짜로 입국 거부였다. [25] 노르웨이 세르비아 못지 않게 한때 대만인에 대해 입국심사가 빡빡했다. 노르웨이는 이미 1950년에 대만과 단교해버리고 중국과 수교했으며, 이때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타이베이 대표부 조차도 한동안 노르웨이에 없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난 1992년에서야 타이베이 대표부를 노르웨이에 설치하는 데에 성공했을 정도로 노르웨이는 대만과 사이가 안 좋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EFTA 소속으로, EFTA 국가들도 솅겐 조약이 적용되기때문에, 노르웨이가 아닌 다른 솅겐 가입국을 거쳐서 노르웨이에 입국하면 대만인도 문제가 없다. 단, 노르웨이에 대해 대만인들은 취업 비자(H비자)는 아예 발급이 안 된다. 유학비자(F비자)도 2013년에서야 허용됐다. 그리고 대만인이 다른 EU나 EFTA 국가를 거치지 않고 노르웨이에 직항으로 입국할 경우 노르웨이 무비자 관광 기한은 15일로 제한된다. [26] 민진당은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다. 중국은 미수복영토가 아니라 별개의 국가다.' 라고 주장하는 정당이다. 심지어는 우리는 한 번도 중국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청나라에 복속된 시기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포르투갈 등에 의해 지배되었던 시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창당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과격하여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가 외세의 점령이라고 주장했을 정도이며 지금도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꽤 존재한다. 국공내전 패배로 대륙에서 도망쳐 온 중국 국민당 외성인들 입장에서는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의 당선 자체가 당황스러운 일. [27] 현재 중국의 수교국이면서 중국이 쉽사리 단교 카드를 꺼내들지 못할 법한 파워를 가진 나라여야 한다. 그게 아닌 별볼일없는 나라라면, 쌍방수교 체결하려는 즉시 중국이 단교 선언을 할 것이므로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그레나다가 이걸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얼마나 센 힘을 가진 나라여야 하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이가 나빠졌던 구소련도 안했고 소련이 뭐하러? 중화민국 단교, 중공 수교를 처음으로 한 나라가 바로 소련인데 최강대국인 미국도 일찌감치 돌을 던진 일을 나설 나라가 과연 존재할까? [28] 마잉주 정권 시절의 유일한 단교국. 2016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었다. [29] 대만이 주장하고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지역이 여기서는 누락됐다. 자세한 것은 백두산 참조. 또한 볼쇼이우수리스키 섬(헤이샤쯔 섬)의 동반부 지역, 베트남이 실효 지배하는 통킹만의 섬 또한 여기서 누락됐다. [30] 스프래틀리 군도 백두산 포함, 스프래틀리 군도를 빼도 지도에 나오지 않은 백두산(북한)과 백룡미도(베트남)를 합쳐 12개국이 된다. [31] 어느 나라든 국가 대항 경기가 열리면 각종 드립이 난무하지만,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관심이 많은 나라일수록 드립도 많아진다. 실제로 대만의 한국에 대한 드립은 그 종류가 다양한 편. [32]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던져서 멀쩡하니까 3명이 망치를 들고 친다. 그럼에도 상처만 나고 안 부서졌다. [33] 자유무역협정 항목에 "경쟁적 자유화 효과" 문단 참고. [34] 당시에는 중화민국을 대만 대신 자유 중국이라고 불렀다. [35] 물론 인터넷 댓글을 읽어주는 내용이므로 적절한 필터링을 거쳐야 한다. 다만 채널 주인은 현재 대만 거주중이며, 일반화를 피하기 위해 대만인에게 검수를 받는다고 한다. 또한 어느 나라나 인터넷상에서는 과격해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채널 주인의 말대로 '인터넷상에서 한국 욕이 거의 사라졌다'는 게 사실이라면 현실의 대만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6] 대만으로의 미국 무기 수출에 압력을 가한다든지 [37] 미군이 확실히 개입을 한건 1996년 리덩후이 후보의 당선을 막기위해 중국이 미사일 발사 훈련으로 무력 시위를 하자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대만 관계 법으로 항모 전단을 파견했다. 이 당시만 해도 연안 해군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결국 이 항모 전단의 무력 시위에 깨갱해 한 발 물러섰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물건이 랴오닝급이다. [38] 물론 타이완성장의 역할만 한건 아니었고 무임소장관을 겸하게 해서 평소에는 정부에서 일했다. [39] 현재 중국 본토의 가톨릭 성당에서는 공산당이 내세운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교황에 대해서 언급할 수도 없고,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없다. [40] 중남미의 나라들이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에서도 이들 나라의 움직임을 자주 주시하고 있고, 정상급의 방문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41]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나라들이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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