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02:33:28

최동오(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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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최동오
崔東旿[1]로 표기한 문헌도 있다.]
파일:최동오.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최학원(崔學源), 지석호(池錫浩)
의산(義山)
본관 해주 최씨
출생 1892년 6월 22일
평안도 의주부 월화면 마룡동
(現 평안북도 피현군 용흥리)
사망 1963년 9월 16일 (향년 71세)
평양시 남산병원
본관 해주 최씨
가족 아들 최덕신
손자 최건국, 최인국
묘소 애국렬사릉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 위패-212호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북한 정치인.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892년 6월 22일 평안도 의주부 월화면 마룡동(現 평안북도 피현군 용흥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당시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면 남문동(現 의주군 의주읍) 의주읍성 남문 밖 거리에서 최안국(崔安國)과 함께 군중들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했고, 3월 3일에는 기독교계 인사들과 공동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독립민회를 결성한 뒤 간사에 취임했다. 이튿날인 3월 4일 양실학원(養實學園)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중 일본 제국 육군 헌병대에 체포돼 1개월간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석방 후 그해 10월 중화민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부장, 국민부 외교위원장, 화성의숙 숙장 등을 역임했다. 당시 화성의숙에서 김일성이 배우러 다녔다. 김일성이 26년 겨울까지 약 6개월 화성의숙에 있을 때[2] 최동오는 김일성을 자기 집으로 불러 밥을 먹이는 등 마치 아들 돌보듯 아꼈다고 한다. # 이 인연으로 한국전쟁 발발했을 때 김일성이 납북 혹은 모시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과도입법의원 부의장, 민족자주연맹 상무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

1950년 5월, 남한에서 체포되어 수감 도중 6.25가 발발하였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앞서 말한 김일성의 설득과 함께 납북됐다. 이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에 선출, 1963년 9월 16일 평양시 남산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애국지사 직함으로 안장되었으며 1990년 8월 15일, 조국통일상이 추서되었다. 이후 아들 최덕신도 월북 후 김일성에게 극진한 특별대우를 받으며 북한 내 단체 간부를 하다가 죽었고 부친처럼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한편,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1년 11월 22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최동오를 기리는 무후선열 위패가 봉안되었다.

3.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

[1] [2] 다니던 도중 김일성은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다른 방안을 찾겠다고 퇴학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