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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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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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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 대한민국장(重章) 수훈자 파일:건국훈장1대한민국장.png
1983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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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서훈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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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
전두환
全斗煥 | Chun Doo-hwan
파일:전두환.jpg
대통령 재임 중 사진
파일:전두환.png
대통령 기록관 사진[1]
파일:전두환대통령초상화.png
공식 초상화
출생 1931년 1월 18일 ([age(1931-01-18)]세)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2]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3]
재임 1980년 8월 27일[4] ~ 1988년 2월 24일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0px-Chun_Doo-Hwan_signature.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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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완산 전씨 23세손[5]
부모 아버지 전상우, 어머니 김점문
형제자매 6남 5녀 중 4남
아내 이순자
자녀 전재국, 전효선, 전재용, 전재만
학력 육군사관학교 군사학 학사 (11기)
병역 육군 대장 전역( 국군보안사령부)
종교 가톨릭 불교[6]
신체 170cm, B형
약칭
용성(勇星)
아호 일해(日海) 오늘 일해라 }}}}}}}}}

1. 개요2. 상세3. 일생4. 평가5. 선거 이력6. 이모저모7. 각종 타이틀8. 소속 정당9. 다른 정치인과의 사이10. 대중매체에서11.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7]

호는 일해(日海)[8][9][10], 자는 용성(勇星)이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대에 군인으로 재직하였다.

10.26 사태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하나회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여 최규하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제5공화국 시기 3저호황과 맞물려 건국 이래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으며 3S 정책[11]을 통해 프로야구를 출범시키고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였다.

퇴임 후 1995년 노태우와 함께 구속 기소되었으며 반란 수괴죄 및 살인, 뇌물 수수 등으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12][13]

노태우에 이어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되었으나, 같은 해 12월에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14]

2. 상세

하나회 소속 대한민국의 장성이었으나, 박정희 사후 참모총장을 배제하고 정권 장악 과정이 군사반란있었으나 서울의 봄,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봉쇄해 시민 학살을 저질렀고, 집권기 동안 권력 유지를 위해 삼청교육대, 땡전뉴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평화의 댐, 수지 김 사건 등 온갖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들을 자행하였다.

결국 6.29 선언으로 노태우 등과 함께 재판[15]에 회부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에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후보들과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되었다. 이때문에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집권하자마자 삼청교육대 등 인권 유린 사건이 줄을 이었고, 사법적 측면에서 볼 때 식민지 시기보다 엄격한 판결 및 국민 통제가 있었고 국민들에게는 가혹한 고문과 체벌 등이 일상이 되었다.[16] 사법정의 및 언론 기능은 이 시기 완전 무력화되었으며[17],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와 달리, 전두환은 본인이 군인 출신인 만큼 경제는 김재익 전문 관료에게 맡기고 관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국보위 시절부터 유명한 경제 관료들에게 개인 과외를 받을 정도로 경제 공부에 열중했으며 당시 경제에 대해 가르쳐 준 인물 중 한 명이 김재익이다. 과외를 받으며 그의 식견에 감탄한 전두환은 김재익의 정권 참여를 권했다. 그러자 김재익은 자신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불간섭과 외부 압력에 대한 보호를 요구했고 그러면서 나온 유명한 말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였다. 그러나 실상은 다소 다르게 돌아간다. 당시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이루어진 중공업을 막대한 산업투자(특히 중화학공업)를 정리하는 임무가 전두환 정권에게 주어졌다. 김재익은 농업이나 자동차 산업 포기를 외칠 정도의 안정화론자였다. 이런 김재익을 위시로 한 안정화론자들과 발전주의자들의 싸움에서 최종 결정에 관한 사항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재익은 정권 초기의 기초만 다지는 역할을 했을 뿐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사공일 등 경제 보좌진을 등용하며 발전을 이끈 데에는 전두환의 식견과 인물을 보는 눈이 한 몫 했다. 그러나 김재익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알기 쉽게 밑그림을 그려 전두환의 머리에 넣어준 것이 전두환 집권기 내내 큰 영향을 끼쳤다. 상기한 경제의 김재익, 외교의 노신영, 이범석, 오명 등.[18] 중공업 과잉투자가 대대적으로 정리되었고 3저호황을 통해 80년대 전 세계에서 눈에 띄게 빠르고 안정적인 성장을 보였다.

또 한편으로 전두환의 80년대는 한국의 엘리트화가 진행된 시기로 전두환은 소수의 재벌 및 상위 관료로 나라를 재편한 시기였다는 지적이 있다. 실효적인 재벌 견제와 수많은 중소기업 육성책이 지원되었으나, 소위 엘리트 주의라는 것이 기승을 부리며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시기이기 때문. 우리나라에 고질적인 일류 대학교 학벌 선호 문제도 이 시기에 고착화되었다. 이러한 특권층 사회화 부작용은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시기에 한꺼번에 터져나와, 지존파 사건 등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이어진다.

3. 일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두환/일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두환/평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0 제11대 대통령 선거 무소속 2,524 (100.0%) 당선 [19]
1981 제12대 대통령 선거 민주정의당 4,745 (90.2%) 당선 (1위) [20]

6. 이모저모

파일:external/pds25.egloos.com/a0007296_52ab29e9174e8.jpg
  • 2013년 휘호 고진감래가 1,1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기사
  • 알아주는 골초였다. 공식석상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은 당시 사진이나 방송영상에서 꽤 많이 보여왔고, 심지어 본인의 퇴임식에서도 연단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당시 전매청(현 KT&G)에서 전두환이 피는 담배는 최고급 연초만을 엄선해서 납품했다고 한다.[21] 청와대 정례회의 때 본인은 한두 가치 정도만 피우고 늘 놔두고 갔는데, 관료들이 서로 나눠 가지려 했었다고 한다. 출소한 이후에는 나이도 많고 해서 건강을 위해 금연했다고 한다.
  • 식성은 편육, 갈비찜 육식을 즐기는 편이고, 술도 매우 좋아한다고 알려졌다. 또한 전반적으로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했다고 한다.
  • 군 시절 권력과 엄청난 인맥 아래 거침이 없었다. 대령 때 주요 지휘관 회의에 참모로서 참여하였는데 주요 장성들의 담화발표 시 맨 앞줄에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상태로 듣는 등 당시 서슬퍼런 군부 사회에서도 아랑곳 없이 행동했다고 한다.[22] 그가 장군으로 진급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친히 금일봉과 선물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는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도 묘사한 바 있다.
  • 전두환은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축구선수로서 체육특기생이었으며 포지션 골키퍼였다. 학창시절엔 운동하는 건강한 소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여성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하며 여자관계가 꽤 복잡한 걸로도 유명하다. 축구 외에 복싱도 꽤 잘했다고 한다.[23][24] 복싱과 축구를 잘했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싸움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 전두환 정부 시절,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했는데 '골키퍼'는 끝내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골키퍼'를 '문지기'로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전두환이 육사 골키퍼에서 육사 문지기가 되기 때문이다.
  • 공부는 잘 못했지만, 리더십은 대단히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유학성처럼 계급이 높거나, 노태우처럼 공부를 훨씬 더 잘하는 사람들을 전두환이 이끌었던 것을 보면... 그래서 학창시절의 전두환을 시기하는 학생이 대판 싸움을 걸어왔고 이 싸움에 승리한 덕에 학교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어째됐든 입시에는 나름 노력한 덕분인지 육군사관학교를 들어갔는데, 사실 추가합격으로 들어갔다. 1차 합격자들이 육군사관학교 지원을 대거 포기하자[25] 보충인원으로 들어갔는데 행운도 상당히 받쳐줬던 셈.[26]
  • 전두환이 박정희의 눈에 들어온 계기는 5.16 군사정변. 당시 전두환은 대위 계급으로 서울대학교 학군단 훈육장교였는데 박정희가 군사정변을 일으키자 모교로 찾아가서 자신의 후배에 해당하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빼다가 예복을 입히고 박정희 지지 퍼레이드를 벌여줬다. 이후로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정계진출을 권유받지만, 전두환은 거절하고 군에 남는 쪽을 택했다. 이때 박정희는 차지철에게도 같은 권유를 했고, 차지철은 이에 응해 정계에 진출한다.[27]
  • 강력범죄에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수사에 관여한 적도 있는데, 그것이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이다. 1981년에 이윤상이라는 중학생이 모교 체육교사인 주영형(30)에게 유괴당하자, 전두환이 직접 방송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81년도는 전두환이 집권 후 민심 수습책을 고민하던 시기.
범인은 듣거라. 윤상이를 데리고 파출소로 와서 자수하면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겠다. 윤상이가 살면 네놈도 살 것이고, 윤상이가 죽으면 네놈도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이윤상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전두환은 범인 주영형을 체포하자 직권으로 형법을 개정해버리고 주영형을 사형판결 확정 후, 단 열흘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주영형을 체포한 경찰관을 고속승진시킨 끝에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에 속하게 하였다. 이 사건이 해결된 후 전두환은 다시 방송에 출연해서 대국민선언을 했다.
국민 여러분, 아동유괴살인에 대해서는 앞으로 무조건 이렇게 조치할 것입니다.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전두환이 정말 부럽다"고 한 적이 있었다.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전두환은 국민들이 반대하자 어린 대학생이라도 자기 뜻대로 모조리 감옥에 처넣을 수 있는데, 미국은 그게 안 되지 않느냐"고 대답하여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28]
  • 이규동 라인을 이용하려고, 이규동의 차녀 이순자와 결혼했다. 실제로 결혼한 이후에도 여자 관계가 정말 복잡하고, 온갖 이야기가 다 있었다.
  • 그와 8촌 이내의 친척관계를 가진 사람 중 하나가 전직 야구선수인 전현태이다. 명절에는 전두환의 연희동 저택에 세배하러 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선수가 활동했던 구단이 전두환에 대한 반감이 강한 호남지역 팀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방출당했다.
  • 국민들에게는 권위주의로 정치적 억압을 가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말도 재치있게 하는 언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기사 내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 전사모, 국내야구 갤러리, 일베저장소 등의 막장 극우 진영에서는 매우 좋아한다. 전두환 재임 시절 경제호황과 더불어 빈부격차가 최저를 찍은 시기라면서 진정한 서민 대통령이라고 찬양한다. 특히 야갤은 엔두(엔젤두환), 전땅크, 야구의 아버지라 부르면서 띄워준다.
  • 사주와 현실이 가장 불일치가 심한 인물이다. 사주대로라면 대위로 제대한 후 구멍가게를 차려 운영하다가 1996년에 사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합성 갤러리에서 주로 'xx는 xx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나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라는 대사가 합성 소스로 쓰이며 그의 전차와 함께 등장한다. 전차를 타고 나타나서 짜라빠빠를 진압하러 갔다가 패배하거나, 인관 관악기로 바뀌기도 하며 설날에 심영에게 세배를 받고 전차를 심영에게 주기도 한다. 그 덕분에 전차를 보면 전두환이 떠오르는 인터넷 밈이 생기기도. 보통 동시대의 M48을 타고 나왔지만 최근에는 장태완 장군과 겹쳐서인지 은근 K2 흑표 전차와 많이 얽히는 편이다. 그런데 흑표는 국방정책으로 유명한 노무현이나 박근혜와 엮이기도...
  • 2010년 1월 SS501 멤버 김현중이 전두환 팔순잔치에 참석했다가 대중들에게 욕을 먹었다. 김현중 본인은 소속사인 DSP 이호연 사장 생일에 참석한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전두환과 이호연 사장 생일이 1월 18일로 같긴 하다. 이호연은 연예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는데, 전두환과도 인연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 1990년대 후반에 조훈현을 바둑으로 이긴 적이 있다. #
  • 인물에 대해 주로 알려져 있는 이미지와 다르게 전두환 정권 때부터 사회의 자율화 및 다양한 문화컨텐츠가 성장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시작된 것도 5공 시절이고 교복이 폐지됐으며[29] 통금해제에 현재의 포맷과 같은 가요프로와 영화, 드라마, 예능 산업이 태동한 시기였다. 비록 국민들을 정치에서 관심을 떼고 우민화 시키려는 의도라는 말이 많고, 검열을 다소 완화한것과는 별개로 정치적인 검열은 몹시 엄격하기 짝이 없었기는 했지만. 자세한 건 평가 항목 참조.
  • 어느덧 만 [age(1931-01-18)]세라서 그런지, 확실히 나이가 많이 든 것이 눈에 띈다.
  • 초대형 개신교회 중 하나인 김삼환 목사의 명성교회 불교 신자인 전두환을 초청 한 적이 있다. 메인 예배인 3부 예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맨 앞자리에 앉히고, 전두환이 왔다고 소개했다. 물론 1회성 방문으로 김삼환 목사와의 개인적인 친분에서 갔을 가능성이 크다.[31]
  •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했을 때, 전두환의 손녀 전수현[32] 해외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을 사진첩에 올려 놓고는 "우리 나라는 아직도 발전하려면 멀었다"라는 식의 글을 써서 구설수가 된 적이 있으며 당시 네티즌들의 큰 공분을 샀다.
  • 출판사인 시공사와 대형 서점인 리브로의 실질적인 소유주이다. 1989년에 자신의 비자금을 털어서 아들인 전재국에게 출판사를 세워주는데, 이 회사가 바로 시공사이다.
  • 본인이 대머리라 그런지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대머리'가 금지어였다. 아내인 이순자 주걱턱이었기에 '주걱턱'도 금지어였다. 그래서 유머 일번지 일요일밤의 대행진,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당대의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끝날 때까지 대머리와 주걱턱을 개그소재로 삼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었으며 당시 방송사 PD들이 대본에 혹시 대머리나 주걱턱 같은 개그나 정치풍자 유머가 들어가서 전두환이나 이순자 그 외 방송사 임원진들을 자극하는 장면이 있을까봐 미리 대본을 검열했다.[33] 아기공룡 둘리로 유명한 김수정이나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김성환도 대머리를 그렸다는 이유로 만화연재가 짤리는 곤욕을 당해야 했다.[34]
  • 개그집에서도 사정없이 까이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개그집에 실린 내용 중 이런 내용이 있는데 외국에서 머리를 집어넣어 아이큐를 측정하는 기계를 도입해 실험을 하려고 영부인 이순자가 먼저 해보니 차마 말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와서 보다못한 전두환이 자기가 시험해보겠다며 머리를 넣으니 기계가 답하기를 "돌 갖고 장난치지 마시오" 라고 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밖으로 가서 큰 돌을 갖고 와서 기계에 넣으니 기계가 다시 왈, "각하, 안녕하십니까?", 아울러 '전두환과 개가 경주해서'란 개그 역시 인기를 끌었는데 결과에 따라 평이 다르다는게 이 개그의 포인트; 실례로 '개가 이겼을 경우'엔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둘 다 무승부인 경우'엔 '개 같은 놈'이며 '개를 이겼을 경우'엔 개보다 더한 놈'으로 불리는 식이다. 아예 이 개그를 다룬 유머집마저 있을 정도이다.
  • 배우 박상아가 전두환의 둘째 며느리다. 전재용과 불륜관계였으나, 결국 전재용이 이혼하고서 결혼했다.
  • 추징금 약 1000억원, 서울시 서대문구 세금 고액체납자 명단 1위에 올라와 있다. 골프 칠돈은 있고 세금 낼돈은 없다
  • 정치인 윤상현이 전두환의 딸인 전효선과 결혼하여 사위였으나, 2005년에 이혼했다. 윤상현과 전효선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2녀이다.
  • 유명 코미디언인 이주일은 전두환 정권 초기에 방송출연 금지 연예인으로 찍혔다. 공식적으로는 시청자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게 이유이지만, 실제로는 전두환 정권이 사회 분위기를 휘어 잡기 위해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연예인들을 탄압하였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막상 전두환 본인은 언론탄압과는 별개로 이주일의 개그를 꽤 재미나게 보았다고 하며[35] 오히려 이후 박종환 감독의 주선으로 만나서 사적으로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출연금지조치가 풀린 건 덤. 이주일의 동료 코미디언인 최병서의 회고에 따르면, 이주일이 최병서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뜬금없이 한밤중에 전두환의 집에 찾아갔는데[36], 전두환은 내쫒기는커녕 오히려 반갑게 맞이하며 술상을 차려오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최병서 일화

7. 각종 타이틀

8. 소속 정당

9. 다른 정치인과의 사이

9.1. 박정희

박정희가 소장이던 시절에 전두환은 대위에 불과했으니 계급 차이가 상당했었다. 나이 차이도 14살이니, 당연히 전두환은 박정희에게 꼼짝 못했을 수밖에 없다.

5.16 직후 전두환은 군사정변 지지시위를 벌임으로서 박정희의 눈에 들게 되었고 이후 군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전두환에게 있어 박정희는 주군이자 은인인 셈.

박정희는 전두환을 위해서 하나회를 만들어주고 꼭 하나회 출신들 위주로 진급시켜줬다. 대위까지는 동기들 중 가장 진급이 느렸던 전두환이었지만 박정희의 도움 덕분에 소령은 그 계급을 달고 있는 척만 하고 사실상 생략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짧게 달고 있었으며 중령부터는 되려 동기들 중 가장 진급이 빨랐다.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잘해야 중령 정도에서 제대했을 전두환이 순전히 박정희 덕분에 장성급 장교가 될 수 있었다.

박정희 덕분에 당시 장성급들도 못건드리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이게 어찌나 심했던지 12.12 군사반란 당시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이 3명의 중장들이 소장인 전두환의 부하로 활약했을 정도였다.

9.2. 노태우

역사는 그들의 우정에 돌이킬 수 없는 애증의 골을 심어 놓았다. 우리 역사가 민주주의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그들의 악연은 더욱 깊어져갔던 것이다.
드라마 '제5공화국' 마지막회 中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고,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쿠데타를 같이 일으키는 듯 사이는 좋았으나,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버리자 이때 "노태우 그 놈이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귀싸대기 맞는다"라는 말을 했었다.[39] 하지만 1996년 재판 당시 같은 자리에 마주했을 때는 자네 구치소에서 계란 후라이 주나? 하며 훈훈하게 털어버린 듯 하다. 이후로도 노태우가 와병 중일 때 병문안 갔던 적도 있었다.[40]

어차피 둘은 평생 친구인 사이이기 때문에, 한 두가지 일로 사이가 벌어져도 결국 같이 가야만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9.3. 김영삼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치소에 넣은 인물로, 결국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공약을 비롯한 정치 상황상 사면되었긴 하지만, 전두환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경멸하였다.[41] 그리고 전두환을 사면을 해준 것이 잘못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42]

김영삼이 사망할 당시 전두환이 김영삼의 빈소에 간 적은 있었으나, 화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9.4. 김대중

미국의 압력으로 좌절되었지만 내란음모사건으로 김대중을 죽이려고 했고, 이후에는 정치적으로 유배시키기도 했으나, 1997년에 김대중이 당선되고 나서,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을 前 대통령으로서 어느 정도 예우해줬으며, 국정에 대해서 의논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도 이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한다고 언급한다.

비록 자기 자신이 김대중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고, 5.18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의 고향 합천출신 친척을 둔 위키러의 증언으로는 매년 신년인사등으로 전사모, 장세동 등의 측근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YS와는 정 반대로 "진심으로 김대중을 존경한다."라는 증언이 나왔다고 한다. 김대중의 건강이 나빠지자 문병을 가기도 했고, 영결식에도 직접 참석해 조문을 하기도 했다.

9.5. 노무현

5공 청문회 당시, 청문회에서 전두환이 퇴장한 후 명패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나 2004년 대통령 임기 중 설에 유인태 정무수석을 보내서 세배를 드린 것, 전두환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해서 만찬을 대접한 것을 보았을때 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한 것으로 보인다.

9.6. 이명박

전두환과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던 김영삼이 발탁해서 키운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이명박 17대 대선 후보 시절에 정치 원로들 예방 차원에서 만난 것을 빼면 딱히 접점은 없지만, 훗날 전두환을 만찬에 초청해서 극진히 예우하는 등 그럭저럭 원만했던 관계로 보인다.

9.7.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가 암살당하면서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전두환에게서 6억을 받았다. 전두환이 박근혜 탄핵 사태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추가바람. # 박근혜 정부에서 전두환 추징금 환수에 박차를 가하면서 사이가 벌어졌는데, 그 이유가 전두환이 5공시절 최태민 강원도로 보낸 것에 대한 앙금이 쌓여서... 라는 이 있다.[43]

전여옥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가 전두환을 방문해 "박근혜를 대통령 만들겠다"고 했더니, '꼭 그래야겠는가'[44] 라는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거나 뭔가를 알고 있었을지도.[45]

9.8. 문재인

여단장 시절인 1976년, 문재인에게 특전사 최우수 표창을 직접 준 적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이 복학 뒤 1980년 5.17 내란 때 복학생협의회 활동으로 문제가 되어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문재인에게 사령관도 표창을 수여했는데 그 사령관이 전두환 반란 때 맞섰던 정병주 소장이라는 것.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세워진 후 과거 청산을 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사하면서 점차 전두환의 입지가 위태해져 가고 있다.

10.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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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식이 연기한 전두환 (드라마 제4공화국) 장광이 연기한 전두환 ( 26년(영화), 응답하라 시리즈[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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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화가 연기한 전두환 (드라마 제5공화국)
탤런트 박용식이 전두환과 용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갖은 고초를 겪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 박용식은 훗날 드라마 <땅>과 제4공화국에서 전두환 역을 맡아 혼신의 열연을 보여주었다. 박용식 문서에서도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후속작 제5공화국에서는 이덕화가 전두환 역할을 이어받으며 절륜한 연기를 펼쳤다. 비록 외모적인 유사성은 박용식에 미치진 못했지만, 주인공으로서의 묵직한 포스를 내며, 유의 말투까지 재현해 내며 상당한 싱크로율을 선보였다. 본인도 연기에 상당히 만족했다는 것이 후문. 이를 위해 집안 친척인 최병서에게 특훈을 받았다는 후문도 전해지기도. 그리고 이덕화 본인이 악역 전문배우로 명성을 날린 적이 있는 사람인데 조선왕조오백년 장희재, 사랑의 종말의 남현필, 사랑과 야망의 태수 등 완벽한 인간말종 연기를 달인 수준으로 실감나게 잘했던 과거가 있어서 여기에서도 전두환의 냉혹한 면모를 잘 살려서 연기한 덕분에 외모는 박용식에 비해 미치진 못했지만 분위기는 되려 박용식을 압도했다.[47]

드라마 삼김시대와 영화 26년에서는 장광이 전두환 역할을 맡았다.[48] 해당 작품은 전두환의 퇴임 후 현재의 모습을 담아낸 이미지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와 작은 운동장 급의 광활한 그의 사택에서 쓸쓸히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곽진배에게 붙들려 힘없이 표적에 잡히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갑세 회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선물을 주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데 악역으로서 보이는 악랄한 연기는 일품.

라디오 드라마 격동 50년에서는 신성호가 맡았다.

이 외에도 SBS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에서는 정종준이, MBN 다큐 드라마 대한민국 정치비사에서는 윤동환(젊은 시절)이 전두환 역할을 맡았다. 모두 젊은 시절의 배역이다.

SBS드라마 자이언트에선 56화에 잠시 출연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뒷통수만 나와 배우가 누군지는 추정할 수 없다.[49] 혹시 배우를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11. 관련 문서


[1] 좌우 뒤집힌 사진이다. 양복 상의 주머니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다. [2]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2길 14 [3]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27나길 11-14. 노태우와 이웃사촌이다. 연희궁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집 근처에 연희궁로라는 도로 표지가 있었다가 논란이 일자 지워졌다. [4] 보궐선거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당선 확정과 동시에 임기 시작. 정식 취임은 1980년 9월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거행됐다. [5] # [6] 가톨릭 신자였으나 대통령 퇴임 이후 불교로 개종. 참고로 개종 전에 스스로 가톨릭 신자임을 드러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에 군대에서 세례명만 받은 것으로 보인다. [7] 현재는 그 자격이 박탈되었다. [8] 전두환 회고록 3권 186쪽에 의하면, 일해라는 호는 승려 탄허(呑虛)가 지어준 것이라 한다. 회고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탄허 스님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스님은 국민 모두에게 특별히 두루두루 마음을 쓰고 베풀어주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1982년 나에게 일해(日海)라는 아호를 지어주면서 이렇게 풀이해주셨다. <日海: 若以光으로 言之則 螢不如燈이요 燈不如(원문에는 餘로 돼 있으나 如의 오자)月이요 月不如日이며 若以水로 言之則 川不如江이요 江不如河요 河不如海라 日者는 太陽也요 海者는 太陰也니 太陽之下엔 無所不照하고 太陰之中엔 無所不涵也라 無所不照則 萬物이 賴之而生하고 無所不涵則 萬有가 賴之而長이니라> 빛으로 말하면, 반딧불은 등불만 못하고 등불은 달만 못하고 달은 해만 못하다. 물로 말하면, 냇물은 강만 못하고 강은 黃河만 못하고 황하는 바다만 못하다. 해라는 것은 태양이요 바다라는 것은 태음이니, 태양 아래에는 비추지 않는 곳이 없고 태음 가운데에는 적시지 않는 곳이 없다. 비치지 않는 곳이 없으면 세상 모든 물건들이 그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적시지 않는 곳이 없으면 우주의 모든 물건들이 그에 힘입어 자라나느니라." [9] 고향 경남 합천군에는 이 호를 본딴 일해공원이 있다. 일해재단도 여기서 따왔다. [10] 전두환의 호는 '오늘', 아내 이순자의 호는 '한편/또한'이라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자세한 건 땡전뉴스 참조. [11] 대표적인 우민화 정책이다. 즉 "정치는 일부 권력자들이 알아서 할테니 '주권자인 국민들'은 유흥과 오락에 빠져 있어도 된다." 뭐, 그런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각 두문자는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를 뜻한다. [12]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반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결, 확정되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가 박탈되었다.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13] 이중에서 532억 원(추징금의 24.1%)만 납부한 뒤에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14]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3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위키백과 15대 대통령선거, 대선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공약 대결 논란 [15] 군사재판 군사법원에서 군형법에 의거하여 진행되는 재판을 이르는 것이며, 전두환과 노태우 등 내란 수괴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들은 최종적으로 형법상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를 받아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장태완 등이 군형법상 내란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으나, 검찰의 법리 및 공소시효 등의 검토 결과 형법이 적용되었다. [16] 이 당시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는데, 일본인 관광객은 한국인들에게 "식민지 시기가 더 행복하지 않냐"고, 일본 신문은 공공연히 일본 지배가 나았다는 망언을 했다. 일본인과 일본 매체의 이런 망언은 우리나라에서 반일 소재로 사용되었다. [17] 이 부분은 유신의 악습을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다 [18] 자세한 것은 이장규의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참고. [19] 간접선거 [20] 간접선거 [21] 1980년 이진희와의 대담에서는 태양을 피웠고, 1982년 이후로는 장미를 피운 것으로 보인다. [22]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육사 11기생인데 그 위의 선배들은 전시 상황이라 약식으로 교육받았고, 자기 기수부터 정식 교육 과정을 이수하였으니 실질적인 육사 1기생은 자신들이다 하는 그런 자부심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육사 선배들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거기에다 군내에서 무시 못할 사조직의 수장으로 인망도 높았으니,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배들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12·12사건 주동자 가운데에는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전두환 위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23] 축구와 복싱에 일가견이 있어 박정희가 청와대에서 축구경기 또는 복싱매치를 시청할 때 전두환을 불러 같이 보았다는데, 이는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그려지는 장면이다. [24] 헌데 박정희는 프로레슬링을 좋아했지만 전두환은 프로레슬링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루는 프로레슬링을 관람하고 있던 박정희에게 전두환이 "각하, 프로레슬링은 쇼인데 뭐하러 보십니까?"라고 했다가 분노한 박정희에게 얻어맞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박정희가 팬이어서 그런지 박정희 정권 때는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이 가장 인기 스포츠였다. [25] 입학년도가 1951년도였다. 그러니까 5년 후 소대장으로 전선에 투입된다는 소리인데 그래서 포기율이 높았다. 당시에는 그놈의 전쟁이 3년 만에 끝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6] 운동을 통해 군인으로서 출세한 다른 유명인은 박정희의 경호실장이자 10.26 사건 때 같이 피살된 차지철이 있다. 이쪽은 태권도를 잘했다는데 실력이 정말 좋았는지 미국에서 연수하던 시절 덩치 차이가 2배 정도 나는 거구의 미군 생도가 인종차별을 하자 때려눕혔다고 한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으면 "무기로 때린 게 아니냐"라는 반응이 있었을 정도였다. [27] 그러나 이것은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가른 선택이었다. 만약 그리 엇갈린다면서 차지철이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묵묵히 군인으로 남았으면 오히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하고 대통령의 더 큰 신임을 받던[50] 차지철이 일으켰을 수도 있다. 차지철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박정희에게 엄청난 충성을 맹세했고, 이것은 결국 야당의원과 김재규에게 원한을 샀었다. 그리고 그 원한의 결과는 차지철의 죽음이다. 박정희, 차지철의 죽음과 김재규의 잘못된 육본판단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수사권을 가진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을 막을 자가 없었다. [28] 훗날의 도널드 트럼프 김정은을 부러워했다. 주위 사람들이 깍듯하게 대하는 게 부러웠다나. # [29] 상기했듯이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 여러 문제가 있어 얼마 안 가 다시 부활했지만서도. [30] 박정희 이명박은 대머리가 아닌 탈모이다. [31] 당장 정치적인 이유에서 자신이 안 믿는 종교의 교회나 사찰을 방문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32] 전수현은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의 딸로, 1985년 12월 19일생(현재 만 [age(1985-12-19)]살)이다. 2012년 서울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여담으로 여기서 결혼식을 하려면 최소 1억원이 든다고 한다.) 이때 KBS 윤인구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33] 최양락 상상플러스에 출연했을 때 당시의 검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유머러스하게 설명했다. [34] 그나마 고바우 영감은 위낙 네임드급 만화였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연재가 재개되었지만 김수정의 만화는 그대로 연재가 짤리고 다른 작품을 연재해야했다. [35] 박정희도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전유성이 <윤형주의 0시의 다이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싸움을 하면 육박전이다" 라는식의 개그를 쳤다. 하지만 방송사 내 간부진들이 그 유머를 듣고 식겁해서 PD들을 혼내고 전유성에게 3개월 출연정지령이라는 징계를 내렸는데, 막상 해당유머를 들은 박정희는 박장대소하면서 껄껄 웃었다는 후문.(라디오로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스튜어디스를 통해서 전해들었다.) [36] 정확하게는 사기를 당해 금전적인 손해 때문에 실의에 빠져 포장마차에서 과음을 해 취중이었다. 최병서가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중 "병서야, 누군가에게 위로를 좀 받고 싶다"라고 하고는 느닷없이 "혹시 너 전두환 전 대통령 댁 어딘지 아냐?"하기에 찾아가게 된 것이라고 한다. [37] 굳이 말하자면 11대 취임식에서는 수트에 무궁화대훈장을 패용했는데 이것도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이 패용한 모습으로는 마지막이었으며 12대 취임식에서는 훈장 패용 없이 모닝코트 차림이었다. [38] 대통령직 퇴임 후 1988년 11월 백담사에서 은둔할 때 탈당했다. [39] 근데 노태우의 입장에선 전두환이 퇴임 이후에도 뭔가 이상한 기구를 만들어 대놓고 자신이 막후 실세가 되겠다는 식으로 나온터라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40] 이때 호흡기를 꽂고 있는 노태우에게 전두환은 "이 사람아 날 알아보겠는가?" 라고 물었고 노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41] 이명박 대통령 시기에 전직 대통령들이 다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김영삼은 이명박에게 대놓고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쟈는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는 몬 간다."라고 망신을 주는 바람에 격노한 전두환이 집에 가버렸던 일이 있었다. [42] 근데 시대적 배경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맞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이와 비슷하게 백인들이 재산 들고 해외로 도망가는 것을 막으려고 "용서는 하지만 잊진 않겠다."라는 유화책을 써야 했었으니. [43] 여담으로, 당시 김재규를 사형시키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전두환이다. [44] 박근혜는 인간 자체가 빈 깡통이고 이것은 김재규, 이후락, 전두환, 차지철, 김종필, 노태우 등 박정희의 최측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의 경우 박지만이 자기들에게 근혜누나 좀 말려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었다. [45] 정계원로들은 국정 농단의 예측여부를 떠나서 최씨 일가의 존재는 알았다고 한다. [46]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는 카메오로 나왔다. [47] 확실히 장군 시절의 전두환의 모습은 웃음기 없는 냉철한 분위기로 연기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의 모습은 그보다는 다소 희화화된 모습도 보여준다. [48] 이분 이전에 전두환 전담 배우로 유명했던 박용식 씨가 자신의 후배 성우인 박지윤의 친아버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게다가 둘 다 KBS 성우극회 소속이다. [49] 황태섭 역을 이덕화가 맡았는데, 제5공화국에서 이덕화가 전두환 역을 맡아서 배우개그가 성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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