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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저장 성 항저우시 상청구 장생로 5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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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저장 성 항저우시에 두었던 정부청사이다.2. 상세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임시정부는 일제의 추적으로 상하이 조계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항저우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임시정부는 김철의 활동으로 청태 제2여사[1]에서 판공처를 개설하여 활동하였다. 곧이어 중국국민당의 도움으로 서호 부근 장생로 호변촌 23호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이후에도 임시정부는 항저우 내에서 한 차례 더 청사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항저우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임시정부 청사는 1933년부터 1934년까지 사용한 건물이며 일명 호변촌청사라고도 불린다. 항저우임시정부청사는 중국 정부의 도움으로 복원이 되었다. 2002년 중국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07년 11월에 개관하였다. 지금은 항저우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