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14 01:04:50

서정갑

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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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정갑(徐貞甲)
출생 1940년 11월 29일 ([age(1940-11-29)]세)

[[만주국|]][[틀:국기|]][[틀:국기|]] 지린성 지린시
학력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 행정학 60[1] / 학사)
육군대학 (정규과정 / 졸업)
경기대학교 안보대학원 ( 행정학 / 석사 과정 수료)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64년 ~ 1992년
임관 학군사관 (2기)
최종 계급 대령 (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중앙문서관리단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현직
경력 前 육군중앙문서관리단장
육군 군사문제연구위원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
대한민국 ROTC중앙회 사무총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7~9대 상임위원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중앙회 이사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 회장 , 명예회장
밝고힘찬나라운동 사무총장

1. 개요2. 생애3. 논란
3.1. 2009년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난동3.2. 2010년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수상
4.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대령, 극우 인사.

2. 생애

1940년 11월 29일 만주국 지린성 지린시에서 태어났다. 1960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행정학과(60학번)에 입학했다. 연세대학교 2학년 때이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는데, 이때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고…"로 시작되는 이른바 혁명공약을 듣고 감명을 받았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사정변을 지지하는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가져 학생군사교육단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4년 연세대학교 졸업 후 학군사관 2기로 육군 소위에 임관했다. 병과는 부관으로, 인사행정 의전을 주로 담당했다.

1968년 장기복무 전환과 동시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그 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 인사참모부에서 근무했으며, 1981년 육군대학 행정처장으로 재직하고, 1983년 육군훈련소 부관참모로 근무하던 당시 병력에 대한 전산분류를 최초로 시도해 체계를 완성해 육군 전산화에 일조했다. 1988년 육군본부 총무과장으로 있을 당시에는 육군의전 편람을 만들기도 했다. 이어 육군본부 부관차감 등을 거쳐 1991년 육군중앙문서관리단장에 보임되었는데, 이 시절 부산 제1문서 보존소에 「전후방 각 부대 작계 5027」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부대가 43년 만에 최초로 표창을 받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그 뒤 1992년 12월 말 대령으로 전역했다. 대령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부관 병과에서는 진급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체감 지위는 전투병과의 소~중장과 비슷하다.

예편 후 1993년 2월 육군 군사문제연구위원에 발탁돼 5년간 근무했다. 1995년 4월 17일 육해공군해병대예비역대령연합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했으며, 1997년 대한민국 ROTC중앙회 사무총장[2], 제7·8·9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2004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중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 밖에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밝고힘찬나라운동 사무총장, 반핵반김 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 국민행동 친북좌익 척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퇴역 이후에는 우익 정치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국민행동본부[3] 본부장으로 '아스팔트 우파의 대부'로 불리며 보수 운동을 해왔다. 보수 논객인 조갑제와 친하며, 이명박 前 대통령 및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와도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복 특히 가오 안 산다고 생각하는지 부관 병과휘장은 생략한 전투복을 착용하고 가스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등 나치 돌격대스러운 모습을 수시로 하고 다닌다.

3. 논란

3.1. 2009년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난동

2009년 6월 15일 국민행동본부 회원들과 함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앞에 모여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다 양측의 충돌이 발생했다. 서정갑은 시민들 앞에서 가스총을 수 차례 발사하며 이 행동을 지휘했다.

2009년 6월 24일 새벽 대한문 앞에 설치된 분향소로 국민행동본부 애국기동단, 고엽제전우회 회원들과 함께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파괴하고 영정을 탈취했다. 서정갑은 공권력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직접 해결했다며 쓰레기를 치웠을 뿐이라면서 "공중도덕을 지키고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상식적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민상주단'은 "그의 만행은 노 전 대통령을 잃고 오열하던 시민들에게 정신ㆍ물질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줬다"라며 서정갑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서정갑은 이 사건으로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3.2. 2010년 자랑스러운 연세인상 수상

2010년 1월 12일 연세대학교 총동문회는 김동건 한국 아나운서클럽회장, 김모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서정갑에게 '2010 자랑스러운 연세인상'을 수여했다. 연세대 총동문회측은 서정갑씨가 전사자 기록 찾기 운동 등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선 경력 등을 인정받아 수장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정갑씨는 "나라를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하라는 명령으로 생각한다" "다시는 나라가 이념적으로 흔들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정갑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연세인 일동"과 연세대 80년~89년 총학생회 회장단 모임은 "부끄럽고 창피하다"면서 "시위 현장에서 가스총을 난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훼손한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서정갑은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연세대인의 치욕이며 국민에게 대신 사과한다"라며 한겨레신문에 서정갑의 수상을 비판하는 광고를 투고하였다.

4. 기타

"당시에 개미 새끼도 하나 그거 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우리 정보기관이 샅샅이 다 뒤졌어요. 그러면 (북한군) 6백여 명 중에 한 놈이라도 안 걸렸다. 그 자체가 그게 말이 됩니까?"
"대한민국에 3대 거짓말이 있어요. 첫째 5.18 때 인민군 들어왔다는 것. 둘째 남양주하고 화성에 땅굴을 뚫어놨다는 것. 셋째 모 사단에 GP에서 총기난사 사건 이때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난사했다는 것."

의외로, 5.18 북한군 개입설, 남양주시 화성시 땅굴설, 530GP 사건의 인민군 개입을 3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4]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 저렇게 확언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이 바로 그 당시 계엄사령부 인사참모부에서 근무했기 때문. https://news.joins.com/article/23361194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어버이연합은 우리 사무실에 2달 동안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마다 버스 2대 타고 몰려와서 '국민행동본부 해체하라' 외치고 아주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 누가 배후에서 조종했는지 모르지만 제가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우리 사무실은 좌파들이 자꾸 공격하기 때문에 사무실 간판을 무쇠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걸 어버이연합이 망치로 두드렸는지 찌그러뜨린 걸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는 것 자체가 싫다"며 "배후 조종한 놈은 아주 나쁜 XX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언젠가는 터지게 돼 있다."라고 밝혔었다.

또다른 보수단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2016년 서정갑은 애국단체총협의회 박정수 집행위원장과 이희범 사무총장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

2020년 5월 18일 부로 국민행동본부장직을 퇴임했다.

[1] # [2] 1997년 7월 5일 동아일보 기사 [3] 박사모, 어버이연합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이명박에 대해 상당히 강한 우호 성향을 보이는 보수단체이다. [4] 다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점의 경우 서청원 조갑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 둘은 극우 성향 인사임에도 불구하고 5.18을 북한군에서 개입한 폭동이 아닌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만 서정갑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폭동이라 주장하지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만 부정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