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3:44:15

자(이름)


전근대 동아시아의 호칭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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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시법 경칭 피휘
호칭 종류 묘호 시호 존호 연호 능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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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적3. 용법4. 한국과 일본에서5. 작명법
5.1. 복자와 형제 관계에 따른 법칙5.2. 자와 명을 연관지어 짓는 법칙

1. 개요

자()는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의 한자문화권에서 성년이 되었을 때 성인으로 예우해서 부를 수 있도록 지어주는 새 이름이다. 한국어로는 '자' 라고 읽고, 중국어 병음은 zi이고[1], 일본어로는 'あざな'라고 한다. 한국에서 자를 짓는 관습은 일제강점기 시대까지 유지되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앞뒤로 소멸되었으나,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오늘날에도 양반 가문의 종손을 자처하는 유림들은 쓰기도 한다. 꼭 종손이 아니더라도 뼈대 있는 가문이다 싶으면 1950년대생에게서도 가끔 찾아볼 수 있으나, 족보에 올라가 있기만 하고 실생활에서는 안 쓸 가능성이 크다.

2. 목적

고대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피휘의 관습이 있어[2] 부모나 주군, 스승 등의 한정된 손윗사람이 아니면 타인을 함부로 날 때부터 붙여진 이름인 명(名)으로 부르는 것은 큰 결례였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인 자를 받았다. 그래서 격식을 차려 부르는 이름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courtesy name이라고 번역된다.

자를 짓는 사람은 아버지, 친척 어른,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친족이 아니면서 아버지뻘 이상이 되는, 면식이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사서오경 중 《예기》에 따르면 남자는 스물이 되면 자를 가졌고, 여자는 열다섯이 되면 자를 가진다고 한다. 의외로 여자도 자를 가졌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여성의 경우 이름도 기록에 남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자는 더욱더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생긴 오해인 듯하다. 실제로는 상술했듯 여성도 성인식 때 자를 갖도록 되어 있었고, 매우 드물지만 여성의 자가 알려진 사례가 없지도 않다. 예를 들어 채염의 자는 '소희'[3], 하후휘의 자는 '원용'. 그리고 이름은 전하지 않는데 자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신비의 딸은 이름은 전하지 않으나 자는 '헌영'이었고, 조비의 계후 문덕황후 곽씨도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어나 '여왕'이라는 자가 전해진다.

3. 용법

명(名)은 부모, 군주, 스승 등 명백하게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자는 동료나 동년배가 부르는 이름이다. 이 차이점 때문에 명을 격식을 차리는 이름으로, 자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수직적인 구조가 일반적이었던 고대는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을 낮게 보고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을 높게 보는 것이 상식시되는 시절이었다.

즉, 윗사람이 상대방을 명으로 부르는 것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하대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에 입각한 것이라 실제로는 명으로 부름이 더 속되고, 반대로 동년배거나 비슷한 계층이라 함부로 하대하기 힘든 사람끼리 자로 부름이 더 존중하는 것이었다. 존중의 의미로 서로를 자로 부르는 것이었다. 하급자나 계급이 비슷한 자들끼리도 섣불리 명으로 상대를 부르면 무례하다고 여겼다.[4]

단, 격식을 갖추어 사용하는 이름이라고 해도 자는 어디까지나 동료나 상관 아니면 동년배 정도만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었으며, 자식이나 신하 등 아랫사람이면 부모나 군주의 자를 부를 수 없었다. 다만, 대체로 아내가 남편에게 존대하기는 하는데 적어도 《 한서》에서는 남편의 자를 부르는 여성들이 있으므로 부인이 남편의 자를 부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오류이다. 예컨대 진삼국무쌍에서 황월영이 제갈량에게 '공명님'이라고 부르거나 하는 건 오류가 아니다.

그리고 자에는 어느 정도 존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칭으로도 쓰면 안 된다. 가령 조조나 유비는 자칭할 때 "나 조조가~", "나 유비가~"하는 식으로 명(名)을 사용해야지 "나 조맹덕이~", "나 유현덕이~" 하는 식으로 자를 자칭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5] 그랬다간 자아도취 나르시시즘 환자 같은 말투가 된다.

위서 무제기에 보면 조조 스스로가 "너희들이 조공(曹公)을 보고 싶은가? 나 역시 사람일 뿐이다. 눈이 4개도 아니고 입이 두 개도 아니나 다만 지모가 많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조공(曹公)'은 존대의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이때는 자신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논지를 강조하기 위한 반어법으로 사용하였다. 이런 특수한 용법을 가지고 보편적으로 자신에게 존칭을 사용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슷한 예로 장판 전투에서 장비가 위군에게 "내가 바로 장익덕이다. 앞으로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라고 외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적군을 도발하기 위한 특수한 경우다. 이는 '내가' 대신에 '이 몸이'를 쓰는 경우와 유사하다.

꼭 성과 자를 붙여 부르지는 않고 자만 단독으로 부를 때도 있다. 정사 삼국지나 한서, 후한서 등에서도 성 안 붙이고 자만 불러서 말한다. 그 유명한 논영회 때 조조가 유비에게 원소를 '원본초'라고 하지 않고 그냥 '본초'라고 쓰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고, 후한 말쯤에 허사 진등이 없는 자리에서 그를 '진원룡'이라고 부른 것이나 진등이 유비가 없는 자리에서 유현덕을 공경한다고 쓰거나 원소가 유비를 서주목으로 인정할 때 '유현덕은 고아하고 신의가 있으며...' 하는 식으로 가끔 쓰였 뿐이다.

정리하자면, 내 부모, 군주, 스승[6] 정도쯤 되는[7] 윗사람(공식 문서에서 지칭할 때 포함)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8], 동급의 사람(친구나 친지 또는 윗사람이 친근하게 대할 때 포함)은 나를 자로 부르며, 아랫사람(실지로 아랫사람이 아니더라도 존중을 담는 경우 포함)은 나를 존칭으로 부른다.

삼국지의 유비를 예로 들어 보자. 헌제처럼 윗사람은 "유비"라고 부르고, 동급인 다른 군주들은 "현덕"이라 부르며, 아랫사람은 (유비가 예주자사 및 좌장군을 제수받은 적이 있으므로) "유 예주", "유 좌장군"이나 연의에서처럼 "유 황숙"이라고 부른다. 그냥 "유 공"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 현덕공"이라고 자에 높임말을 붙임은 잘못이다. 한편 편지에서는 족하라고 부른다. 조조와 유비가 사이가 좋았을 때는 "유 현덕을 믿습니다." 라고 자를 불렀지만 사이가 틀어져서 싸울 때는 "네 이놈 유비!" 로 이름을 부르는데, 이는 예의 차릴 필요도 없는 아랫사람이라고 까내리는 것이다.

중국사의 몇몇 인물은 이름보다 자로 더 유명한 경우가 종종 있다. 관중, 오자서, 항우, 소정방, 나관중, 장제스 등. 조자룡이나 제갈공명도 자가 유명한 케이스지만 이들은 삼국지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본명이 조운, 제갈량이란 사실도 꽤나 알려졌다.

4. 한국과 일본에서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호적상의 이름을 지을 때 유행에 뒤떨어진다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집안에서 정해 놓은 항렬자를 쓰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때 항렬자에 맞지 않는 이름을 족보에 그대로 올려주는 집안도 있지만, 항렬자를 쓰지 않는 이름을 족보에 올려주지 않는 엄격한 집안인 경우 족보에는 항렬자에 맞춘 이름을 적당히 지어 본명처럼 올려놓되 호적상의 이름은 '자'의 형식을 빌려 그 옆에 조그맣게 적어놓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족보에 자로 기록된 이름을 호적상 실명으로 쓰고 족보에 올라간 이름은 통상 쓰지 않는다. 이때는 족보에 자로 기재한 이름을 사실상 명(名)으로서 쓰는 것이므로 전통적인 자의 용례와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 조조 맹덕(曹操 孟德)'과 같이 성명과 자를 함께 부른 경우는 없다. 자를 굳이 쓰는 것이 명을 부르지 않기 위함이기 때문에, 명과 자를 함께 부르는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무례에 해당한다. 때문에 매체에서 흔히 표현하는 방법은 자만 부르거나 성+자 형식으로 부르며 조조를 예시로 들자면 맹덕 혹은 조맹덕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삼국지 관련물에서 '관우 운장'과 같이 성명+자 형식으로 쓰는 건 주로 일본판 매체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다.[9]

한자 4글자 이름이 보편적인 일본인들에게 성명+자로 4글자를 맞추는 것이 친숙하게 느껴져서 널리 퍼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코에이 삼국지 등 대부분의 일본 삼국지 매체에서는 성명+자 표기가 널리 쓰였고, 이것이 국내에 무분별하게 들어오면서 한국에서도 간혹 성명+자 표기를 쓰는 경우가 생겼다.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제갈공명, 사마중달같이 성+자가 4자인 경우에는 제갈량 공명, 사마의 중달이라고 안 부르는 것을 보면 4글자 맞추기가 목적임을 알 수 있다.

5. 작명법

자를 짓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스승이나 부모는 물론 지인이 지어주는 것도 있으며 친구와 우정으로 짓는 경우도 있다.[10] 여하간 자가 겹치는 경우도 있는 등 그 시대에 자를 짓는 방법은 매우 한정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항적[11]이나 유방[12]처럼 후한 이전에는 자가 한 글자인 경우도 있었다.

자를 짓는 데는 정해진 법칙이 없으므로 어떤 자를 짓느냐는 전적으로 짓는 사람의 재량이지만, 몇 가지 통례가 있다. 한국의 자와 중국의 자는 각 나라별로, 시대별로 취향, 유행, 사조 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전해왔다. 이 또한 일정한 법칙은 없고, 사례들을 통해 유형화할 수는 있지만 일일이 열거하자면 문서가 지나치게 길어지므로 굳이 여기 적지 않는다. 정 궁금한 사람은 여러 가문의 족보를 볼 것. 아래 예시는 거의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을 예로 든 것이지만, 후세 사람들의 자를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5.1. 복자와 형제 관계에 따른 법칙

일반적으로 자는 복자(두 글자)로 지어진다. 다만 항적 같은 경우처럼 신나라(新) 이전까지는 한 글자로 짓는 경우도 흔했고, 후한 대부터 복자가 정석이 된다. 형제의 서열에 따라 특정한 글자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름에 '원(元)'이나 '백(伯)', '맹(孟)'이 들어가면 맏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마씨 일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에서 위나라 사마의의 자가 중달(仲達)인데, 그의 형인 사마랑은 자가 백달(伯達)이다. 그리고 사마의의 동생인 사마부의 자는 숙달(叔達)이다. 여기서 각각 백달, 중달, 숙달의 '백, 중, 숙'에서 '백'은 맏이, '중'은 둘째, '숙'은 셋째를 뜻한다. 백중숙계 문서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다.

때로는 자를 지을 때, 문중의 같은 세대끼리 한 글자를 공유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자(子)". 이 외에도 예(禮) · 사(士) · 세(世)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원소의 아들들은 "현(顯)"을 사용했으며( 원담: 현사, 원희: 현혁, 원상: 현보) 손권의 모든 아들들(손등: 자고, 손려: 자지, 손화: 자효, 손패: 자위, 손분: 자양, 손휴: 자열, 손량: 자명)과 조조의 아들 중 다섯은(조앙: 자수, 조비: 자환, 조창: 자문, 조식: 자건, 조준: 자안) "자(子)"를 사용했다.[13]

5.2. 자와 명을 연관지어 짓는 법칙

자와 명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명(이름)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 자이므로, 그 사람을 나타내는 식별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14]
  • 조운(趙雲)의 "운"과 자룡(子龍)의 "룡"이 대표적인 예. 「虎嘯風冽龍興而致雲: 호랑이가 포효하며 바람은 세차고, 용이 일어나 구름에 미친다」(왕포[王褒]의 글)라 하듯이, 과 구름은 필수 세트인 것 같다. 이것은 육손(陸遜)의 손자 육운(陸雲, 자는 사룡[士龍])에게도 해당이 된다.
  • 제갈근(諸葛瑾)의 자는 자유(子瑜)인데, 근유(瑾瑜)는 매우 아름다운 옥의 이름이다.[15] 한 단어를 두 글자로 나눠서 한 자는 이름자에, 다른 한 자는 자에 쓴 것. 또 주유(周瑜)의 자는 공근(公瑾)인데, 역시 같은 글자들을 쓴다. 이름과 자에 쓴 글자의 위치만 뒤바뀌어 있다.
  • 제갈량(諸葛亮)의 자인 공명(孔明)은 매우[16] 밝다는 뜻이고, 이름인 량(亮) 또한 밝다는 뜻, 구체적으로는 어둠 속에서 비추는 밝은 빛을 의미한다.
  • 사마의의 3남 사마량(司馬亮)은 제갈량과 같은 이름자를 쓰지만 자는 자익(子翼)인데, 익(翼)은 날개라는 뜻이지만 돕는다는 뜻도 갖는 글자며 량(亮)도 밝다는 뜻과 돕는다는 뜻을 모두 가진다. 즉 제갈량과 사마량은 같은 이름자를 쓰지만 전자는 밝다는 뜻으로, 후자는 돕는다는 뜻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자를 참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의 자는 사원(思遠)이다. 이름인 "첨(瞻)"은 바라보다/우러러보다/멀리 보다 등의 의미이고, 자인 사원은 역시 멀리까지 생각하고 내다본다는 뜻이다.
  • 헌제 유협(劉協)의 자는 백화(伯和)이다. 伯은 백중숙계 항렬에 따른 것이라 별 의미 없고[17] 和는 이름인 協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두 글자 모두 '화합한다'는 뜻이 있으며, 또한 두 글자를 합치면 '화협(和協)'이라는 한 단어가 된다.

자와 명의 변(邊: 한자의 왼쪽 부수)이나 방(旁: 한자의 오른쪽 부수)을 일치시키는 경우도 있다. 부수가 같으면 자연히 비슷한 뜻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유(姜維, 자 백약[伯約])는 자와 명의 변이 糸로 일치하고, 우번(虞翻, 자 중상[仲翔])은 자와 명의 방이 羽로 일치한다. 또, 구슬 옥(玉)변은 고귀하고 청결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즐겨 사용된다.

명의 변이나 방만 바꾸어 자로 삼는 경우도 있다. 비의(費禕, 자는 문위[文偉])가 대표적인 예.

같은 계통으로, 명을 간략히 한 형태가 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화타(華佗)의 자 원화[元化]의 化는 佗에서 갓머리를 뺀 꼴이다. 진도(陳到, 자는 숙지[叔至])도 같은 예이다.

공자방(公子魴)[18]의 자 자어(子魚)는 魴의 부수 魚만 남긴 꼴이다. 같은 부수를 쓰는 글자도, 명을 간략히 한 형태에도 해당하는 꼴이다.

또한 등애처럼 책에서 따온 명과 자의 조합도 있다. 비문에 적힌 「文爲世範, 行爲士則: 글[文]은 세상의 모범[範]이며, 실천은 선비[士]의 규칙[則]이다」에서 따와 이름을 등범(鄧範), 자를 사칙(士則)으로 지었지만, 문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등애(鄧艾)로 개명했다고 한다. 『 순자』, 「권학勸學」의 덕조(德操)에서 명과 자를 딴 조조도 있다.

명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자를 짓는 경우가 있다. 음을 양이 보완하고 양이 음을 보완한다는 음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를 들어 주희의 자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인데, 그의 명인 희(熹)가 빛난다는 뜻이 있어, 보완의 의미에서 어두움의 뜻을 가진 '회'자를 사용하였다. 앞의 원, 중은 그가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의 형이 일찍 죽어 둘째 아들(중)로 태어났지만, 사실상 맏아들(원)이 되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위와 같이 이름과 자가 뜻이 반대인 경우로 단목사(端木賜)가 있으니 사()는 주다는 뜻이고 자인 자공()에는 바칠 공이 들어 있다.

아예 남의 이름에서 이름과 자를 따기도 한다. 왕유가 그러한데 유마힐(維摩詰)의 이름에서 각각 유와 마힐을 따서 이름과 자로 삼았다.

양재사는 이름이 침(綝)이고 자가 재사()인데 침의 뜻은 말리다, 재사의 뜻은 다시 생각한다는 거니 이름과 자가 뜻이 유관하다.

환언범은 자가 사칙(士則)인데 이름과 뜻이 같다.

글귀에서 이름과 자를 따서 형제에게 나누기도 한다. 마기(馬麒)와 마린(馬麟)의 자는 각신(閣臣)과 훈신(勳臣)인데 이름과 자를 짜맞추면 기린각 훈신이 된다.
[1] 중국어에서는 이름을 아예 '名字'라고 이야기한다. 병음은 'ming zi/밍즈'. 자를 짓는 풍습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름이 뭐냐고 묻는 '你叫什麼名字'라는 질문은 정확히는 '이름과 자가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묻는 거다. [2]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어느 시점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왕호에 본명을 그대로 쓰는 등 피휘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삼국시대 후기에는 왕호도 시호를 올리게 되고 법흥왕 김인문 신문왕이 자를 썼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자에 대한 기록도 종종 나타난다. [3] 문희로 널리 알려졌지만 진나라 때 사마소를 피휘하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4] 자가 현덕인 유비를 예로 들면 어머니가 "유비야(또는 비야), 물 좀 떠와라"라고 칭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어머니가 "현덕아, 물 좀 떠와라"라고 하는 것은 현대로 치자면 어미가 자식보고 "유비 씨, 실롄데 물 좀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같이 격식을 차려 말하는 이상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5] 단 하나의 예외로 (朕)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은 그저 특수한 1인칭일 뿐 존칭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6] 논어를 보면 공자는 항상 제자들을 명(名)으로 부른다. [7] 군사부일체를 생각하라 [8] 아무리 자신이 상대보다 명백한 윗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나이가 많고 관직에 오른 경우에는 부모, 군주, 스승이 아닌 이상 함부로 상대의 명(名)을 부르면 결례이며, 공직 생활을 하는 관료라면 관명(官名)으로 불러주어야 한다. 반대로 부모, 군주, 스승이라면 그 상대가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그 사람의 명을 부르는 것이 결례가 아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9] 다만 성명과 자를 아울러 언급하는 것은 호칭으로 쓰지는 않지만 비석 등에서는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그대로 부르라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고, 찾아온 사람에게 확실한 정보 전달을 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는 말 그대로 이름과 자만 쓰기보다는 대부분 관직-이름-자 순서대로 붙여 쓴다. 이런 경우에도 이름과 자 사이에 '字' 자를 적어 구별해 놓을 때도 있을 정도로 상당히 신경 써서 구분하고 있다. [10] 일설에는 주유 제갈근은 상대의 이름에서 각각 따서 제갈근은 주유의 '유(瑜)'를 따서 자유, 주유는 제갈근의 '근(瑾)'을 따 공근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11] 이름은 적(籍), 자는 우(羽). [12] 이름은 방(邦), 자는 계(季). [13] 조충은 '창서', 조우는 '팽조', 조표는 '주호'로 "자(子)"를 안 썼는데(나머지는 자가 미상이다.), 어머니가 달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조준은 적처 소생도 아니다 보니, 이 규칙이 그리 엄격하게 적용된 것 같지는 않다. 지어주는 사람 마음대로이기 때문이다. [14] 특히 선진 시기에는 거의 모든 자가 이 법칙을 따른다. 중유(仲由)의 자가 자로(子路)인 것, 염경(冉耕)의 자가 백우(伯牛)인 것 등이 있다. [15] 원래 瑾과 瑜는 세트로 붙어다닌다. 출전은 춘추좌씨전으로, 瑾瑜匿瑕(아름다운 옥도 흠을 숨기고 있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16] 孔에 '심하다'의 의미가 있다. [17] 다만 차남인데 伯을 쓴 이유는 불명. 자를 가질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이 죽고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8] 동주 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선봉으로 서서 전사하고 초군을 승리로 이끌어 오나라 배 여황을 탈취했다. 그러나 공자 광(후의 합려)이 꾀를 내서 배는 도로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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