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8:47:34

JOKKA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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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 정현욱 O :: 오승환 K :: 권혁 K : 권오준 A : 안지만

1. 개요2. 유래3. 활약상
3.1. 2006년 이전3.2. 2007년3.3. 2008년3.4. 2009년3.5. 2010년3.6. 2011년3.7. 2012년3.8. 해산 이후
4. 성적 및 분석
4.1. 정현욱4.2. 오승환4.3. 권혁4.4. 권오준4.5. 안지만
5. 정말로 선동열이 키웠나?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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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2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뒷문을 책임졌던 핵심 필승조 정현욱, 오승환, 권혁, 권오준, 안지만의 이니셜 앞 글자를 따온 말이다.

자타공인 KBO 역대 최강의 불펜진으로[1] 타선의 채최박과 함께 2010년대 초반 삼성 왕조를 개창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팬들 사이에서는 속된 말로 상대 타자들 보고 조까라는 뜻과, 또 조커와 비슷한 발음으로 비록 선발진은 아니지만 팀의 승리를 이끄는 비장의 카드라는 두 개의 뜻 모두를 담아내는 JOKKA라는 명칭이 주로 쓰인다.

다른 명칭으로는 안정권KO가 있다.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의 등판 순서를 고려했을 때 이쪽이 좀 더 현실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지만[2] 셋업맨으로서 마무리 투수 오승환 직전에 등판하던 안지만 때문에 역시 등판 순서는 맞지 않고, 무엇보다 안정권KO는 2006년 대활약한 권오준, 오승환을 묶어 부른 KO펀치와 둘의 부상으로 2010년 집단 마무리로 활약한 안지만, 정현욱, 권혁을 지칭하던 안정권을 서로 덧대기한 느낌이 없지않게 있어서 안정권KO라는 명칭은 현재 잘 쓰이지 않는다. 욕설이 연상되는 JOKKA를 쓸 수 없는 언론사에서 간간히 썼다.

왕조 이후 2차 암흑기를 맞이하고 2022 시즌과 2023 시즌을 거치며 불펜 ERA가 리그 1위까지 치솟을 정도로 엄청나게 쇠약해지면서, 이 시절 불펜진을 그리워하는 삼성팬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2024년 기준 현재는 이 때보단 나아진 편에 속하지만 아직도 불안정한건 여전하다.

2. 유래

권오준 오승환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셋업맨과 마무리를 이루며 K-O펀치라는 별명이 붙었다.[3] 그리고 권오준-권혁을 쌍권총이라고 부르다가 권오원까지 합쳐 잠시 세명을 삼권총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여기에 2010년 안지만과 정현욱, 권혁이 5의 공식[4]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맹활약하면서 이들의 영어 이름 앞글자에서 이니셜을 따 JOKKA 라인으로 불렸다.

파일:삼성불펜기록2.jpg
파일:삼성불펜기록1.jpg
2007시즌에서 2013시즌까지 7년 동안 7회 리드 시 414승 9패 2무(승률 0.979), 2011년부터 2014년까지 7회 리드 시 144연승이라는 두가지의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우는데, 이 전의 기록조차도 2009년부터 2011년 까지 삼성이 세운 7회 리드 시 130연승이라는 기록이다.

이 때는 삼성이 6-7회까지 앞서 있었으면 경기는 사실상 끝난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이 되면 상대팀 팬들은 TV를 껐거나 집에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특히, 채최박 클린업 트리오가 아직 터지기 전이고 JOKKA 라인이 풀로 돌아갈 수 있었던 11시즌의 경우, 승리 공식이 배영섭 출루, 최형우의 타점 후 적은 점수차로 선발이 6회까지 리드한다면 필승조 투입으로 승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인욱, 이우선이 패전조와 추격조 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즉, 이 둘은 타팀이었다면 필승조는 따놓은 당상이었다는 말도 있었다.

또한 삼성 전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시리즈 동안 삼성 상대로 1승이라도 하면 대성공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왕조 시기의 삼성은 4대 구기 종목(야구,축구,농구,배구) 통틀어 가장 많은 감독들이 뽑은 국내 최고의 프로스포츠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허용된 팀이었는데 그 일부인 필승조도 당연히 완벽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우스갯소리로 이때 삼성 불펜은 일본에서도 중간은 간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덧붙여서 농담으로 류현진이 이 당시 삼성에서 뛰었다면 30승도 가능했을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때는 상대팀 팬들이 삼성과 경기 했을때 경기를 아예 안 봤거나 직관을 아예 안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집에서 경기를 보거나 직관 중일때도 삼성이 이기고 있는 상태에서 6-7회때 불펜을 가동하면 상대팀 팬들이 TV를 아예 껐거나 차가 막혀서 집에 일찍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즉 JOKKA 라인이 6-7회 이후 앞서있는 상태에서 올라오면 우스갯소리로 상대팀 입장에서 7-9회는 없는걸로 봐야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한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즉, 이 당시 삼성 불펜은 대한민국 KBO 역사상 최고의 불펜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SK 왕조의 벌떼 불펜보다도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삼성이 왜 1위였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의견들이 말이 나왔다. 삼성의 승리가 당연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이때 삼성은 강했다.

또한 삼성 상대할때 투수전에 들어갔으면 사실상 진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때 삼성을 이기려면 삼성 선발 투수를 무너뜨리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그 선발투수들 마저도 굉장히 강했다.

3. 활약상

3.1. 2006년 이전

  • 가장 먼저 데뷔한 선수는 1998년에 데뷔한 정현욱으로, 그저 그런 선발 유망주 수준의 성적을 남기다 2004년 병역비리에 걸리면서 단기징역을 살았고, 이후 공익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3년 가량의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 두 번째로 1군에 데뷔한 선수는 2002년에 데뷔한 권혁으로, 2003년 9월 6일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당시 최고의 선발투수였던 정민태를 상대로 데뷔 첫 선발승을 거두는 등 데뷔 2년만에 타고투저를 감안할 때 꽤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며 좌완 파이어볼러 필승조로 자리잡았다.[5] 2004년 시즌 후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 2006년 시즌 후반에 복귀했다.
  • 세 번째로 1군에 데뷔한 선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삼성에 입단해 2003년에 1군에 데뷔한 안지만으로, 2005년에 반짝 활약을 한 것 외에는 큰 존재감이 없는 투수였다. 여담으로 이때는 안지만이 팀내에서 가장 체중이 적은 선수였다고 한다.[6]
  • 네 번째로 1군에 데뷔한 선수는 권오준[7]으로, 역시 2003년에 데뷔했으며[8]으로 2003년 시즌 중 반짝 등판한 이후 2004년에는 선발투수로서 10승을 거두며 신인상 후보에 올랐었다.[9] 2005년에는 선동열 당시 감독이 권오준을 마무리로 전환시켰고, 17세이브 평균자책점 2.29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 투수에 정착한다. 하지만 어느 돌던지는 후배가 맹활약하자 다시 셋업맨으로 보직을 옮겼고, 2006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KBO 한 시즌 최다 홀드 신기록인 32개의 홀드와 1.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 구단을 통틀어 최고의 셋업맨으로 자리잡게 된다.
  • 가장 데뷔가 늦었던 건 JOKKA중 유일하게 대졸 신인인 2005년에 데뷔한 오승환. 처음에는 팔꿈치 수술 이력과 투구폼을 문제삼은 선동열의 반대로 삼성에 못 올 뻔했으나, 결국 삼성에 2차 1라운드에 지명되어 입단하여 데뷔 시즌부터 10승 10홀드 10세이브에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KBO 사상 전례가 없던 트리플 더블[10]을 달성하면서 신인왕까지 거머쥐게 된다. 이후 마무리로 고정된 2006년에는 무려 47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 깨지지 않은 KBO 리그 한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이다.[11]

3.2. 2007년

병역비리에 걸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정현욱이 2007년에 복귀하면서 처음으로 JOKKA 라인이 한시즌에 같이 뛰게 되었는데, 정현욱은 이 해 8월 중순에서야 소집해제되어 복귀했기에 별다른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해에 오승환은 2년 연속 40세이브를 기록하며 특급마무리로서의 입지를 굳혔으며, 안지만은 선발과 필승조를 오가며 108이닝 동안 5승 3패 7홀드를 기록했으며, 커리어하이를 갱신했다. 다만, 권오준은 전해의 혹사 후유증으로 3.41 방어율과 3승 5패 6홀드라는 비교적 평범한 성적을 냈다.

사실 이 해에 가장 경악스러운 활약을 펼친 건 다름 아닌 권혁으로 불펜투수만으로 나오면서 한때 방어율 1위와 탈삼진 1위를 동시에 석권했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너무 등판한 탓에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다른 선발 투수에 비해 등판 이닝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고, 평균자책점[12]과 탈삼진[13] 모두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세 자릿수 탈삼진과 19개의 홀드(3위)를 기록하며 대활약을 펼쳤다. 다만 이 시기에도 제구는 불안해서 39개의 볼넷과 3개의 사구를 기록했다.

3.3. 2008년

안지만은 커리어 최초의 2점대 방어율과 데뷔 후 두 번째로 많은 9개의 홀드를 기록했으며, 정현욱은 선발과 계투를 오가면서 규정이닝을 채워 평균자책점 9위에 등극했다. 여기에 권혁은 등판이닝은 전년의 절반수준에 그쳤으나 1점대 방어율과 14개의 홀드를 기록했으며 이때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병역 면제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안지만, 정현욱, 권혁과는 달리 K- O 펀치는 전년에 비해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권오준은 각종 부상에 시달려 고작 16⅓이닝 밖에 등판하지 못했으며, 오승환은 이닝당 탈삼진이 1개도 안 되는 부진(?)[14]속에 1개 차이로 아쉽게 3년 연속 40세이브 달성에 실패하고 만다.

3.4. 2009년

잔부상에 시달리던 권오준은 생애 두 번째로 토미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스윙맨 안지만은 무리하게 많은 이닝을 소화하다[15]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으며, 오승환 역시 어깨 인대가 찢어지며 시즌아웃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조원수박차가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 등판했다가 처절하게 털렸으며, 이 때문에 앞선 세 명이 하던 역할이 권혁과 정현욱에 집중되어 버렸다. 물론 이로 인해 정현욱과 권혁은 혹사 후유증으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9월 잔여경기에서 삼성의 발목을 잡아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마감하는 원흉이 되고 말았다.

3.5. 2010년

안정권 트리오가 세 명 다 커리어하이를 갱신하며 2010년 삼성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 안지만은 팀 동료 차우찬과 승률왕 다툼을 펼쳤으며 9승 3패 9세이브 8홀드에 2.74의 평균자책점과 데뷔 후 최다인 95개의 탈삼진을 기록했으며 조동찬과 함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선발,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시즌 후에는 삼성 자체 고과 산정에서 투수고과 1위로 선정되며 다시 억대연봉으로 진입하게 되었다.[16]
  • 권혁은 고질적인 제구불안이 해결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탈삼진과 사사구의 비율이 3:1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2.09의 평균자책점과 7승 1패 4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시즌 후반 롯데전에서 폭투로 삼성의 5의 공식을 마감시킨 것을 시작으로 다시 제구난조가 시작되었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최악의 부진에 빠지며 최고의 시즌을 최악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 정현욱 역시 안지만과 같은 9승을 기록했으며 각각 팀내 최다인 12세이브와 11홀드를 기록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 안정권 트리오에 대해 특기할 사항으로는 선동렬 감독이 이전까지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관리를 드디어 세 명 모두에게 하기 시작했다. 이때 선동렬 감독은 이전까지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등판간격과 소화이닝 수를 정확하게 지켜줬다. 3경기 이상 연투는 지양하고 2이닝 이상 던진 선수는 다음날 경기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등판시키지 않는 식이었다. 다만 이때 선발투수를 5이닝만 소화하게 하고는 바로 내리면서 이 원칙을 지키려 들었고 그 때문에 동점이나 지고 있지만 뒤집을 수 있는 상황에서 원칙을 지킨답시고 추격조 투수를 등판시키면서 엄청나게 까였다. 원칙을 지키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선발투수를 5이닝만 소화시키게 하고 내린 게 불펜투수의 가용 폭을 좁힌 원인이기 때문.

권오준은 32⅓이닝동안 3.58의 준수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수술 복귀를 알렸으나 정작 문제는 오승환이었다. 복귀하자 마자 이진영에게 홈런을 맞으며 블론세이브, 이 후 롯데전에서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으며 다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부진을 펼치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로 시즌 아웃되었다가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복귀했다. 근데 여기서 선동렬이 복귀 후 첫 등판을 만루상황에서 시키는 짓을 저질렀고, 결국 오승환은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강판당하고 만다. 이후 등판에서는 1⅓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팀은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3.6.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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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11삼성불펜.jpg

2011년 오승환이 완전체로 돌아왔으며, 권오준도 쌍권총 콤비 권혁과 함께 각각 좌-우를 나눠맡으면서 원포인트 릴리프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장원삼의 공백 때문에 잠시 선발 투수를 맡았던 안지만이 11승과 17홀드를, 정현욱이 1개 차이로 리그 2위를 기록한 24홀드[17]를 기록하면서 불펜 야구를 제대로 보여줬다. 거기에 오승환이 0.63의 방어율과 1승 47세이브, 1 블론세이브[18]라는 비현실적인 성적을 기록했으며, 2011년 삼성의 불펜 방어율 2.44[19] 팀 블론세이브가 고작 8개[20]에 구원 성공률이 93.13%[21][22]로 압도적 1위였다. 또한, 당시 133G체제에서의 WAR합은 12.62[23]로 이를 144G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WAR 13.67이라는 수치가 찍힌다!

개개인의 자세한 활약상에 대해서는 삼성 라이온즈/2011년과 각각의 선수들의 2011년 항목을 참고하는 게 좋다.

3.7. 2012년

5명 전원 시즌 출발이 좋지 못했다. 이 중에서 권혁과 권오준은 5월 말에 성적부진으로 같이 2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정현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점점 회복세를 펼쳤다. 거기에 심창민, 정인욱이 가세하면서 예년과 마찬가지로 2.64의 압도적인 불펜 평균자책점[24]과 작년보다 줄어든 5개의 팀 블론 세이브[25]를 기록하며 여전히 KBO 최강의 불펜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권오준은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한 번 토미존 서저리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정현욱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크게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단, 2012년 삼성 필승조는 '오승환 - 안지만 - 심창민 - 권오준 - 권혁'이다. 추격조로 강등된 정현욱 대신 심창민이 필승조 자리에 합류했다.

역시 자세한 활약상은 항목이 길어지므로 삼성 라이온즈/2012년과 각 선수들의 2012년 항목을 참고 바람.

3.8. 해산 이후

정현욱이 JOKKA 멤버 중 첫 FA 자격자가 되었다. 그런데 계약 기간에 이견을 보여[26] 삼성과의 협상이 결렬되었으며 이 후 4년 계약을 제시한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되면서[27] JOKKA 라인은 6년 만에 해산하게 되었다. 이하는 그 후의 행보들.
  • 정현욱: FA로 팀을 떠날 당시 삼성 라이온즈를 비하하는 인터뷰를 남기며 논란이 되었으나 막상 LG에서는 첫 해만 반짝하고 위암 투병으로 인해 별 활약을 못했다. 이후 오치아이 에이지가 2군 감독으로 영전하며 삼성의 1군 투수코치가 되었는데 2022년까지는 평가가 그럭저럭이었으나 2023년에 투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하락하며 비판받는 중이다.
  • 오승환: 한신 타이거스 진출 이후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밝혀지면서, KBO 리그로 복귀한다면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아야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후 일본을 거쳐 MLB로 진출해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가다가, 징계가 끝난 2020시즌 하반기부터 다시 마무리 보직을 맡아 활동 중이고, 2021시즌에는 여전한 관록투로 역대 최고령 40세이브 기록을 포함 세이브왕을 또 한 번 차지했고, 결국 2023년에 KBO 통산 400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 권혁: 같이 이적한 삼성의 새로운 금지어와 달리 겸손한 인터뷰를 하면서 삼성 팬들에게 한화가서도 잘하라는 격려[28]이를 받았으나, 성적에 미쳐 선수들의 팔을 갈아넣은 희대의 막장감독에게 KBO 역사상 최악의 혹사를 당하며 그야말로 선동렬 시절에 버금가는 악몽같은 상황에 직면해있다. 다행히(?) 구원투수로 정우람이 와서 2015시즌의 역대급 혹사를 볼 확률은 적어질 것으로 보였으나... 2016년에도 역대급 혹사를 당하다가 결국 8월 시즌 아웃되었다. 그나마 2017년에는 김성근의 경질로 혹사당할 위기를 벗어나 관리받고 다음 시즌 복귀를 노리는 중. 그 뒤로는 두산으로 이적했다가 2019년에 5인 중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하나 적립하고, 2020 시즌을 끝으로 은퇴. 2021년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다가 2022년 SPOTV의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 권오준: 세 차례나 토미존 서저리를 받아가면서까지 재기를 노렸으나 2014년 스프링캠프에서 골절상을 당하며 복귀가 늦어졌고 결국 한해 늦은 2015년이 되어서야 복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속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이쪽도 사실상 선수 커리어가 끝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2016년 중반 이후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군 선수들의 성장이 더디고 앞서 언급된 도박 사건 연루 선수들이 방출되면서 일단 기회를 조금 더 부여받게 되었다는 게 선수 본인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상황. 2017년 시망한 삼성 불펜에서 그나마 괜찮은 활약을 해준 사람들 중 한명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7시즌 종료 후 2년 6억에 FA계약을 맺고 삼성에서의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데까지 성공했다. 2018년에도 타고투저의 광풍 속에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본인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쇠화는 어쩔 수 없었는지 2020년 10월 30일 은퇴를 했다. 이후로는 삼성의 퓨처스 스카우터 및 육성군 사이드암 투수지도를 맡는 중.

4. 성적 및 분석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이다.
  •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성적만 표시.

4.1. 정현욱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8 삼성 라이온즈 5 7⅔ 1 0 0 0 4.70 6 6 2
1999 25 78⅔ 3 7 0 0 5.03 80 32 56
2000 2 5 0 0 0 0 3.60 6 3 2
2001 1군 기록 없음
2002 20 36 1 1 0 0 4.00 32 18 34
2003 43 85⅓ 4 5 1 3 4.59 91 34 77
2004 27 85⅔ 4 5 0 1 3.36 81 42 67
2005 군복무(공익근무)
2006
2007 11 14⅔ 0 1 1 0 5.52 15 11 6
2008 53 127[29] 10 4 0 11 3.40 108 56 97
2009 62 79 8 5 6 16
(2위)
3.42 77 38 66
2010 61 70⅓ 9 1 12 11 3.20 66 30 61
2011 59 72⅓ 4 3 1 24
(2위)
2.36 70 34 52
2012 54 62⅔ 2 5 0 3 3.16 57 21 48
통산 422 725⅓ 46 37 21 69 3.86 689 325 568

파이어볼러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주무기는 투심이다. 정현욱에게 패스트볼은 포심이 아닌 투심이라는 주변의 언급도 있었다. 전성기 때 투심은 150km/h를 넘나들었으며, 2009 WBC에서 10.1 이닝동안 탈삼진을 무려 13개나 잡아내며 괴물같은 활약을 했고, 실점은 류현진의 분식 회계에 의한 1실점밖에 없었다. 또한 커브와 스플리터도 수준급이었다. JOKKA 라인의 멤버중 최고참 멤버로 위기 상황에서 노련함을 발휘해 상대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구속이 떨어져 구위가 상당히 하락했고, 암까지 발발해 일찍 마운드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4.2. 오승환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5 삼성 라이온즈 61 99 10 1 16 11 1.18 46 20 115
(5위)
2006 63
(5위)
79⅓ 4 3 47
(1위)
0 1.59 43 13 109
2007 60 63⅓ 4 4 40
(1위)
0 1.40 41 19 69
2008 57 57⅔ 1 1 39
(1위)
0 1.40 34 16 51
2009 35 31⅔ 2 2 19
(4위)
0 4.83 28 17 51
2010 16 14 0 0 4 0 4.50 13 5 19
2011 54 57 1 0 47
(1위)
0 0.63 27 11 76
2012 50 55⅔ 2 1 37
(1위)
0 1.94 33 16 81
2013 48 51⅔ 4 1 28 0 1.74 33 12 54
통산 444 510⅓ 28 13 277
(1위)
11 1.69 298 129 625

2005년 신인왕과 동시에 10승 10홀드 10세이브를 동시에 기록하며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그 후 삼성 왕조의 뒷문을 완벽히 걸어잠그며 2006년에 47세이브, 2011년에도 47세이브로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을 가지기도 했다. 주무기는 단연 묵직한 포심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포심은 그의 특유의 그립과 괴물같은 악력으로 최고 157km/h에 이르는 구속으로 상대 타자들이 손도 못댈 정도의 구위를 자랑한다. 그의 투구폼 또한 타이밍을 맞추기 상당히 힘든 투구폼으로, 하나 둘 셋! 하고 오는것이 아닌 하나 둘 세...엣? 정도의 타이밍에 공이 온다고 한다. 또한 오직 포심이 아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서 던지는데, 체인지업은 주로 카운트를 잡거나 한 숨 돌릴때 사용하고, 슬라이더는 헛스윙을 유도할 때 바깥쪽으로 휘어져나가는 횡슬라이더를 주로 구사한다.[30][31]

4.3. 권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2 삼성 라이온즈 2 4 0 1 0 0 13.50 11 0 1
2003 23 39⅓ 3 2 0 2 5.26 40 21 26
2004 37 81 3 3 0 3 4.78 80 42 78
2005 1군 기록 없음
2006 12 8 0 0 0 2 4.50 8 6 6
2007 60 77⅔ 7 1 0 19 2.79 47 42 100
2008 43 47⅔ 6 0 0 15
(4위)
1.32 36 23 37
2009 63 80⅔ 5 7 6 21
(1위)
2.90 64 46 76
2010 60 73⅓ 7 1 4 10 2.09 54 21 73
2011 58 48⅓ 1 3 0 19
(4위)
2.79 38 24 27
2012 64 49⅓ 2 3 1 18 3.10 48 20 38
2013 52 36⅓ 0 1 0 3 3.96 35 17 41
통산 474 545⅓ 34 22 11 112 3.27 461 253 503

좌완에 150km/h 중반대를 넘나드는 구속을 보유했으며, 192cm의 장신에서 뿌려대는 그의 전성기 시절 포심과 슬라이더는 방망이에 맞추는것 조차 어려웠다. 주무기는 빠른 포심과 슬라이더, 그리고 큰 키를 이용한 낙차 큰 커브. 살려조에서 혹사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훌륭한 커리어를 보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권오준과 함께 쌍권총이라고 불리며 삼성의 불펜을 든든히 유지했다.

4.4. 권오준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삼성 라이온즈 13 23 0 1 0 1 3.13 22 6 10
2004 47 153⅓ 11 5 2 7 3.23
(5위)
128 47 142
(5위)
2005 46 63 3 1 17
(5위)
1 2.29 47 17 69
2006 67 80 9 1 2 32
(1위)
1.69 61 35 83
2007 34 34⅔ 3 5 0 6 3.41 32 16 28
2008 19 16⅔ 0 0 0 3 4.32 16 5 17
2009 2 1⅔ 0 0 0 0 0.00 2 2 1
2010 42 32⅔ 1 0 2 3 3.58 39 9 32
2011 53 48⅓ 1 1 0 11 2.79 48 12 52
2012 46 42⅔ 1 3 0 10 2.95 32 13 48
2013 1군 기록 없음
통산 369 495⅔ 29 17 23 74 2.85 427 163 482

주무기는 단연 서클 체인지업과 싱커, 슬라이더. 특히 서클 체인지업은 KBO 리그 역대 최고라고 불릴만한 구위를 자랑했으며, 팀을 위기에서 여러번 구해냈다. NC의 이재학도 권오준의 그립으로 서클 체인지업을 연마했고, 꽤나 유용하게 써먹었다. 또한 사이드암 투수임에도 전성기 시절엔 150km/h를 넘나드는 구속을 자랑했다. 하지만 여러번의 수술과 재활로 인해 구속과 구위가 상당히 떨어져 2012시즌 이후로는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뻔 했으나, 2016~2018시즌에는 극적으로 공의 무브먼트가 살아나면서 관록투로 삼성 계투진에 보탬이 되었다. 한편, 아이러니 하게도 JOKKA 라인 멤버중 유일하게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한 선수다.[32]

4.5. 안지만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3 삼성 라이온즈 14 21⅔ 1 0 0 0 7.89 31 9 11
2004 12 22 0 0 0 0 7.77 30 12 13
2005 63 82⅔ 8 3 0 14
(3위)
3.48 65 43 72
2006 7 6 0 1 0 2 9.00 10 6 4
2007 53 108 5 3 0 7 3.42 100 44 83
2008 51 69⅔ 5 1 0 9 2.97 67 30 64
2009 17 51 2 4 0 1 5.12 54 19 32
2010 67 92 9 3 9 8 2.74 74 32 95
2011 47 86 11 5 0 17 2.83 74 24 77
2012 56 63⅓ 2 2 0 28
(2위)
1.71 42 20 58
2013 54 63⅔ 6 2 0 22
(3위)
3.11 46 26 60
통산 441 666 48 24 9 108 3.49 593 265 569

최고의 주무기는 단연 홈플레이트 앞에서 얄밉게 떨어지는 130km/h대의 슬라이더와 스플리터. 만루나 득점권 상황에서 상대 선수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 방망이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했으며, 평균 145km/h~152km/h사이에서 형성되는 묵직하고 빠른 패스트볼[33] 진갑용의 노련함이 합쳐져 완벽체를 이루었다. 또한 선발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상황에서 꺼내들 수 있는 카드였으며, 2010 시즌에는 오승환이 부진하자 마무리로도 나온 경험이 있다. 더불어 주자 견제 능력도 뛰어나, 봉중근, 차우찬과 함께 KBO 최고의 견제 능력을 지닌 투수로 평가받는다. 투구폼 자체가 워낙 일관성 있어서 견제 여부를 모르고 뛰다가 런다운에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

5. 정말로 선동열이 키웠나?

선까와 선빠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논쟁. 선까와 선빠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선까의 주장
  • 조계현이 1군 투수코치로 부임한 후[34] 2009년에 JOKKA가 망했으며 조원수박차까지 등장했으며 양일환이 복귀하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 선동열은 애초에 오승환을 뽑지도 않으려 했다.[35][36]
  • 5명 다 원래부터 대 투수로 성장할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큰 거지야잘잘, 선동열이 육성을 잘해서 큰 게 아니며 2010년에 혹사당하지 않은 것도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의 공이 컸던 거다.[반론]
  • 권오준은 군 제대 후인 2003년부터[38] 김응용 감독이 1군에서 제대로 밀어주는 등 기회를 주었고 권혁 역시 김응용 감독 시절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고 시속 150km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흔치 않은 좌완 파이어볼러로 유명했다.[39]
  • 권혁, 권오준, 정현욱은 선발투수감이었는데 무리하게 계투로 전환시키는 바람에 2000년대 중후반 삼성 선발이 부실해진 원인이다.[40]

선빠의 주장
  • 오승환이 가장 고마워한 감독이 다름아닌 선동열이다. 선동열이 아무 것도 안 했다면 이런 말이 나올 리가 없다.
  • 정현욱은 병풍 사건 전까지 그저 그런 투수였는데 복귀 후 선동열 감독 밑에서 포텐이 터졌다.[반론2]
  • 오승환을 제외한 4명은 김응용 시절이 아니라 선동열 시절에 포텐이 폭발했다.
  • 권혁은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인데, 투피치 투수를 선발로 키웠으면 오히려 실패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투피치 투수 중에 성공한 예는 매우 적다.

선동열이 경질당한 직후였던 2011년 시즌만 해도 맹렬한 키배가 벌어지곤 했으나.. 지금은 타어강 이후로 선동렬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면서 선빠들도 같이 침묵했다. 결국 선동열이 키웠냐는 논쟁은 류중일통합4연패의 공치사 문제와 뗄 수가 없는데, 선동열의 삼성 재임 기간은 혹사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 크다. (관리를 시작했다는 2010년이 마지막 시즌일 정도니...)

근데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삼성에서 성공했다고 반드시 KIA에서 성공하란 법은 없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다만, 안지만의 성장은 대부분 윤성환, 차우찬과 더불어 선동열의 공적으로 본다. 2005년에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2007~2009년에 불펜 필승조와 스윙맨을 오갔으며, 2010년에는 A급 불펜으로 각성했기 때문이다.

6. 여담

  • 마운드에서는 5명 다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지만 마운드 밖에서는 5명 모두 개그캐릭터. 정현욱과 권혁은 실제 성격과 달리 노예와 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야구 카툰이나 칼럼등에서 개그소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안지만은 박석민과 함께 개그 라이온즈의 쌍두마차로 예전부터 활약해왔다. 여기에 오승환은 돌부처 속성 때문에 역시 예전부터 개그소재로 많이 다루어진데다 실제로 안지만과 같이 인터뷰를 하면 이미지와 달리 안지만에 맞먹는 입담을 자랑하곤 한다. 그리고 권오준은…
    파일:external/cfs.tistory.com/1296960499.jpg
    (...)
  • 프야매에서도 이들과 관련해서 08' 정현욱-권혁-오승환을 모으면 발동되는 지키는 야구라는 팀컬러가 있다. 이 팀컬러가 나온 건 2009년.
  • 파일:늙은 JOKKA.gif
    2020년 6월 16일 오승환이 삼성에 마무리로 복귀하여 잠실구장에서 두산 상대로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했을 때, JOKKA 라인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오승환, 권오준은 삼성의 불펜투수로, 정현욱은 삼성의 투수코치로, 권혁은 당시 상대팀 두산의 불펜투수로 현장에 있었다. 남은 안지만은 이 장면을 본인의 인터넷 방송(...)에서 중계하고 있었다.
  • 2020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권오준이 은퇴를 선언하고 시즌 최종전에서 은퇴식을 치르며 은퇴하였고 시즌 종료 후 플레이 오프를 앞두고 권혁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2021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JOKKA 라인의 선수들 중에선 오승환만이 현역으로 남게 되었다.
  • 특기할 사항으로 5명 모두 팬 서비스가 좋다. 오승환, 안지만, 권오준은 조금만 찾아봐도 팬 서비스 미담이 끝이 없고 정현욱, 권혁도 팬 서비스가 좋았다는 증언이 많다. 성적도 팬 서비스도 완벽한 그야말로 완전체다. 10년대 초중반 야수조들이 팬 서비스 논란을 일으킬때 투수조들은 상대적으로 호평일색이었던 이유도 투수조 최고참이었던 JOKKA가 앞장서서 팬서비스를 잘해줬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정당당하게 못던지는 투수 같은 예외도 있다만..
  • 처음 듣는 팬들은 가끔씩 욕으로 오해한다고 한다....
  • 삼성이 6-7회 이후 이기고 있으면 경기는 사실상 끝났다는 의견이 많았다.
  • 이들이 풀로 뛴 11시즌 삼성의 불펜 WAR은 개편 이전 스탯티즈 기준 14.79로 의외로 역대 3위였다. 같은 시즌의 SK가 15.36을 기록해서 2위. 역시 전성기 벌떼불펜의 위용이 살아있던 시절이다. 1위는 2022시즌의 LG가 15.89를 기록했다. LG 역시 불펜이 전원 3점대 이하를 찍으며 강력하긴 했지만 두팀과 달리 선발이 약하던걸 불펜 물량으로 때려박아버린 시즌이라 등판 수가 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서 1위가 되었다.
  • JOKKA 라인의 붕괴 이후에는 불펜명가 삼성의 이름이 무색하게 리그 하위권으로 쳐져있는 상황이다. 한때 심창민, 최충연, 장필준 등 준수하게 활약해준 불펜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10년대 후반 이들은 안좋은 팀 사정때문에 지나치게 혹사당하다 망해버렸고 그 결과 20년대 들어서는 불펜진이 완전히 붕괴되어 삼미보다도 못한 성적을 기록할 정도로 완전히 박살났었다. 결국 2024년 이종열단장의 부임 이후 구단은 임창민, 김재윤, 최성훈, 양현 등 FA와 2차 드래프트를 통한 외부 수혈로 불펜진을 재건했고, 현재는 임창민-오승환-최하늘-김재윤으로 구성된 LOCK 라인이 삼성의 필승조를 맡고있다. 하지만 5월 이후 오승환을 제외한 3명은 무너졌고 오승환도 6월 이후 무너졌다. 겨우 한달 반짝한 라인이라 JOKKA 라인에 비비기는 턱 없이 부족하며 시즌 종료 후 못 참겠어서 왕조 선언합니다 급 흑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7. 관련 문서


[1] 후배 심창민은 쟁쟁한 선배들과 뛰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열등감이 생기기도 했다 밝혔다. 팬들이 불펜을 보는 눈이 매우 높아졌으며, '네가 저기에 낄 급이 되냐' 식의 댓글을 많이 본 듯 하다. [2] 다만 2011년에는 실제로 이 안정권KO의 순서대로 등판할 뻔도 했지만, 안지만이 5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선발 전환에 실패하면서 없었던 일로 되었다. [3] 참고로 2005년 시즌 중반까지는 권오준이 아니라 오승환이 셋업맨이었다. 이 후 오승환이 활약하자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이 오승환을 마무리에 고정시킨다. [4] 5회까지 리드 시 55전 53승 2패. 그나마 2패도 상대에게 안타나 홈런을 맞은 게 아니라 권혁의 제구 난조로 내준 패배였다. 덧붙여 저 2패는 모두 당시 로 유명한 불꽃타선을 가진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기록. [5] 이때 권혁 선발 투수로 뛰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듬해 투수코치로 선동열이 부임했다. [6] 실제로 신인 시절에는 65kg 가량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이돌 연습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턱선이 살아 있었고 곱상했다. 하지만 경산밥을 먹으면서 몸을 불린 후로는... [7] 안지만은 2003년 4월 15일, 권오준은 2003년 6월 3일. [8] 입단 순서로 따지면 1999년에 입단한 권오준이 두 번째지만, 권오준은 재활과 군복무로 1군 데뷔가 늦었다. 참고로 권오준은 이때 상근예비역이긴 하지만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9] 하지만 신인상은 권오준보다 성적이 한참 처지는 오재영이 받았는데, 이 때문에 신인상 나눠먹기 의혹이 불거졌다. 당장 그 해 스탯을 비교해보면 권오준보다 나은 기록이 누적이고 비율이고 단 하나도 없으며 거의 모든 지표에서 권오준은 5위권, 오재영은 10위권~순위권 외였다. 차라리 장효조- 박종훈에 비교했다면 모를까, 이전버전에선 실력에 우승프리미엄까지 있으니 오재영이 받아야한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10] 공식명칭은 아니고 팬들이 임의로 붙힌 별명이다. 과거에는 홀드를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홀드가 인정되기 시작한 시기에는 선발 투수가 마무리도 맡는 혹사가 유행했으며, 현대에는 선발-중계-마무리로 분업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10승 10홀드 10세이브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으므로 앞으로도 이에 대해 공식명칭이 붙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11] 타이기록은 2011년에 한 번 있는데 기록자가 또 오승환이다. 즉 혼자 공동 1위 두 개를 다 먹고 있는 것. 손승락이 2013년 46세이브로 거의 근접하긴 했다. NPB에서는 이와세 히토키의 46세이브가 최고였다가 2017년에서야 외국인 선수 데니스 사파테가 54세이브로 기록을 경신했다. 즉 아직도 아시아인으로서는 최다 세이브다. [12] 2007 시즌 권혁의 평균자책점은 2.79로 만약 규정이닝을 채웠다면 2.07의 다니엘 리오스에 이어 평균자책점 2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13] 100개로 전체 11위. [14] 그래도 57⅔이닝 동안 무려 51개나 되는 탈삼진을 기록했다. [15]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린 2006년 시즌을 제외하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260⅓이닝을 소화했다. 거기에 2009년에도 시즌 중간에 어깨부상으로 아웃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무려 51이닝을 소화했으니 그야말로 숨겨진 혹사 투수였다. 다만, 2009년은 선발 등판이 더 많았다. [16] 2010년 9000만원, 2011년 1억 7000만원 [17] 1위는 25홀드를 기록한 SK 와이번스 정우람. [18] 심지어 그 경기도 동료들의 도움으로 승리했다.. 즉, 오승환이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한 경기는 모두 승리했다. [19] 2위는 SK 와이번스의 2.78 [20] 안지만, 권혁, 오승환 각각 1개, 정현욱 2개, 권오준 3개. 2위는 10개를 기록한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21] 2위는 85.47%의 SK 와이번스 [22] 따지고 보면 SK 와이번스도 방어율 2.78에 구원성공율 85.47%로 꽤나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23] 오승환: WAR 4.47, 안지만: WAR 3.24, 정현욱: WAR 2.17, 권오준: WAR 1.66, 권혁: WAR 1.08 [24] 2위는 롯데 자이언츠의 3.35. [25] 2위는 10개를 기록한 LG 트윈스. [26] 삼성은 3년을 제시했고 정현욱은 4년을 주장했다. [27] 김기태가 정현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붙잡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8] 일단 2014시즌만 한정해도 분명 부활한 것 같아보였는데 그에 비해 기회를 너무 못받았던 것으로 인해 삼성팬들 사이에서 동정여론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29] 10홀드 이상 투수 중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충족했다. [30] 최고 140km/h중반대에 형성되는 고속슬라이더이다. 이와 같은 빠른 구속으로 몇몇 중계진에서는 커터로 분류하기도 한다. [31] 해외진출 이후 포크볼, 오프스피드 피치로 사용할 커브 등을 장착하면서 레퍼토리가 더 다양해졌다. [32] 하필 잘던지고 있던 시기에 혹사 또한 겹치면서 지속적으로 부상을 달고 살다보니 최종 엔트리 이전의 예비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다가도 결국 부상 치료 차 예비 명단에서도 제외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오승환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교될 정도의 구위를 자랑했다. [34] 원래 조계현은 2군 투수코치를 맡고 있었다가, 2008년 5월 양일환 당시 1군 투수코치와 보직이 맞바뀌었다. [35] 오승환의 팔꿈치 수술 경력과 도움닫기를 두 번 하는 독특한 투구폼 때문에 지명을 만류했다고 한다. 대신 뽑으려던 게 투수 윤석민. [36] 삼성이 불펜에 비해 선발투수가 항상 아쉬웠던 팀 상황을 생각하면 윤석민을 뽑았다면 2009년 충격의 가을야구탈락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야만없이긴 하지만 윤석민을 찍은건 납득가능한 선택이다 [반론] 이 부분은 흔히 오해들을 하는데 10년의 관리는 선동열이 지시한게 맞다. 08년까지 계투진을 갈아넣다 09년 충격적인 연쇄 시즌아웃 사태를 맞은 여파로 관리를 시작한것. 또한 오치아이는 선동열 시절 투수교체 전권을 감독이 가지고 있어서 본인은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고 본인이 밝힌바 있다. 따라서 선발을 5이닝만 던지게 한 뒤 1점이라도 지고 있으면 필승조 관리를 핑계로 추격조를 올려 사실상 경기를 포기하는 짓이 문제였지, 10년의 관리 그 자체는 선동열이 잘한 일 이었다. [38] 2003년이면 선동열이 삼성에 없었던 시절이다. 선동열이 코치로 삼성에 합류한 건 2004년부터다. [39] 실제로 2003년 정민태와의 맞대결에서 21연승 기록을 깨버린 좌완 특급 유망주였다. [40] 오승환은 원래 불펜 보직에 있었다. 안지만은 선발로 꽤 기회를 받았지만 불펜에서 철벽이었던 반면, 선발에서는 4~5점대로 그다지 좋지 못했다. 게다가 안지만 자신도 불펜 보직에 던지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반론2] 이에 대해선 선동열이 가르친게 아니라 00년도 당시 김성근 2군 감독이 배영수와 정현욱의 기초를 죽빵을 갈겨가며 잡아줬기 때문에 성공할수 있었다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도 배영수는 2001년부터 바로 완성형 투수의 자질을 보였고, 정현욱 역시 선동열이 투수코치로 부임하기 전까지 특출나진 않았어도 삼성의 처참한 계투진을 충분히 매꿔줬었다. 이 때문에 김성근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선동열은 이미 기틀이 잡힌 투수를 굴려놓고 운 좋게 공로를 독차지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