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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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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ynasty

스포츠에서 오랜 기간 디펜딩 챔피언 성적을 유지한 팀.

농구 NBA 등에선 3-peat을 기준으로 삼는다.

2. 농구

2.1. 미국

6년 동안 한 번의 3-peat을 포함해 총 5회 우승. 조지 마이칸 등이 군림했다. 하지만 1960년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지를 이전한 후 이 시기의 스타들은 기념되지 못하고 있고, 영구 결번도 조지 마이칸을 제외하고는 해제된 상태다. 이를 비판하는 팬들은 미니애폴리스 시기의 선수들을 존중하지 않을 거면 5회 우승을 반납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1]
13년 동안 한 번의 8-peat을 포함해 총 11회 우승.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11회 우승), 샘 존스(10회 우승), 밥 쿠지(6회 우승), 존 하블리첵(6회 우승)[2] 등이 군림했다. 이 당시 감독으로는 8-peat을 차지할 당시에는 레드 아워백이였으며, 빌 러셀이 선수 겸 감독으로 1966-67 시즌부터 부임하여 1968년, 1969년에 리핏을 차지하게 된다.
샐러리 캡 도입 이후의 최초의 왕조라고 볼 수 있으며, 8년 동안 두 번의 3-peat으로 총 6회 우승. 이 당시 감독으로는 필 잭슨이였으며,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등이 군림했던 NBA의 세계화를 연 왕조이다. 특히 1995-96 시즌은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72승)[3]에 파이널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농구 역사상 최강의 팀[4]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 조던의 자발적인 퇴장으로 우승이 끊어져 불패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3년 동안 단 한번의 3-peat으로 총 3회 우승. 샤킬 오닐[5] 코비 브라이언트등이 군림했다. 오닐이 단 한번의 MVP에도 불구하고, 3년 연속 NBA 파이널 MVP를 수상했기 때문에 시대의 지배자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넓게 잡는 경우에는 2010년까지 포함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코비가 남아 있었고 2008년에 파우 가솔을 영입하면서 3연속 파이널에 진출하여 2009년, 2010년에 리핏을 차지하게 된다. 2000~2010년의 11년 동안 7번의 파이널 진출을 통해 5번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당시 감독으로는 불스 왕조를 이끌었던 필 잭슨이다.
  • 휴스턴 코메츠( WNBA): 1997~2000
WNBA를 출범한 해부터 4-peat을 거두며 WNBA 최초의 왕조를 이룬 구단. 경영난으로 2008년에 사라졌다.

2.1.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

다음의 구단은 특정 기간 동안[6]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많이 차지해서 다수의 농구 팬들, 미국 언론으로부터 왕조로 인정받고 있지만, 통상적인 왕조의 기준인 3-peat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란이 있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 샐러리 캡 제도로 인해 슈퍼팀을 만들어도 3-peat이 어렵다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지 팬들은 일반적으로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 또는 이례적으로 긴 기간 동안 별도의 침체기 없이 꾸준한 성적과 우승을 동반한 팀의 경우도 왕조로 간주한다.[7]
일명 쇼타임 레이커스라 불려지며, 80년대에 8번의 파이널 진출, 5번의 우승(1980년, 1982년, 1985년, 1987년, 1988년)을 거두었다. 1981년까지 폴 웨스트헤드가 지휘하다가 물러나자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팻 라일리가 감독자리를 이어받아 지휘를 하게 되었으며, 매직 존슨, 카림 압둘자바, 제임스 워디 등이 군림하였다.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우선 3-peat이 없다는 점인데, 80년대 레이커스는 1987, 1988년에 리핏을 한 것 이외에 나머지 3번은 연속 우승이 아니다. 그리고 80년대는 동고서저였기 때문에 서부에서는 실질적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레이커스 단 하나였으며, 동부에는 보스턴 셀틱스 이외에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있었다.[8] 우선 보스턴 셀틱스는 80년대에 5번의 파이널 진출을 통해 3번의 우승(1981년, 1984년, 1986년)을 이뤄냈는데, 1984~1987년에는 4연속 파이널 진출이였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는 1988~1990년 3연속 파이널 진출을 통해 리핏(1989, 1990년)을 차지하였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80년대에 우승이 단 1번(1983년)이지만 80년대 통틀어 53.5승을 거두었고, 파이널에 3번 진출했던 4년 동안(1980~1983) 정규 시즌에 59-62-58-65승이나 거두었던 팀에, 198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2승 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팀이다. 레이커스는 이 세팀을 상대로 파이널에 진적이 있으며, 1983년(vs 필라델피아), 1989년(vs 디트로이트) 파이널은 0-4 스윕 패배를 당했다는 점이 오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렉 포포비치의 지휘 아래에 해당 기간 동안 5회 우승(1999년, 2003년, 2005년, 2007년, 2014년)을 차지하였는데, 주축 선수라고 한다면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카와이 레너드[9]가 있다. 왕조로 보는 주된 의견은 같은 감독의 지휘 아래에 5회 우승 이외에도 20시즌 연속 정규 시즌 6할 이상의 승률[10] 18시즌 연속 정규 시즌 50승 이상[11][12]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단한 이유는 샐러리캡 체제의 특성상 슈퍼팀 혹은 왕조도 오랜 기간 동안 전력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논란거리라고 한다면 3-peat은 물론 리핏조차 없다는 점과 동시대 밀레니엄 레이커스 왕조가 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해당 시기의 서부 플레이오프에 레이커스와의 맞대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게 스퍼스이기 때문이다.
8년 동안 6번의 파이널 진출을 통해 4번의 우승(2015년, 2017년, 2018년, 2022년)을 거두었다. 스티브 커의 지휘 아래, 주축 선수로는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 안드레 이궈달라, 케빈 듀란트 등이 군림하였다. 특히 5연속 파이널에 진출하던 2015~2019년의 5시즌 동안 490전 399승 91패로 81.4% 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였으며, 2015-16 시즌에는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73승)을 기록하였다. 특히 2017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6승 1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는데 1996년 시카고 불스와 비교해서 역대 최강팀이 어느 팀인가 하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와 마찬가지로 3-peat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2016년에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을 거두고도 파이널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패배했다는 점이 큰 오점이다. 이후 케빈 듀란트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하고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이 장기 부상을 당하면서 19-20 시즌에는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20-21 시즌에는 플레이-인-토너먼트에서 탈락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못하였지만, 커탐그가 완전히 복귀한 2022 NBA 파이널에서 우승을 하면서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

2.2. 대한민국

한국프로농구 원년 우승 이후 2001년 인수 및 재창단 과정에서 암흑기에 빠져들었으나 2000년대 후반 강팀으로 도약했다.[13] 그리고 2012-13~2013-14 시즌에 챔피언 결정전 2연속 우승, 2014-15 시즌에 통합 우승을 하며 KBL 최초로 3연패를 이룬 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게 우승 컵을 넘겼다.
임달식 감독의 지도 아래 하은주의 강력한 높이를 앞세워 6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선수들로는 막을 수 없었던 하은주의 존재 때문에 저평가를 받고 있는 왕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2-13 시즌에 춘천 우리은행 한새에게 패하면서 왕조를 마무리했다.
위성우 감독 부임 후 신한은행의 독주를 끝내며 6연속 우승을 기록하였다. 2012-13 시즌, 2013-14 시즌, 2014-15 시즌에는 각각 삼성생명, 신한은행, KB 스타즈가 차례로 도전했으나 2015-16 시즌에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5구단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리그를 독주했다.[14] 2018-19 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에게 패배했다.

3. 배구

3.1. 대한민국

V-리그 원년인 2005년 우승[15]을 차지하면서 이후 2007-08 시즌부터 7연속 우승을 했다.[16] 이후 2014-15 시즌 이후 투자를 줄이고 마지막에는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에게 우승자의 자리를 내주며 막을 내렸다. 몰빵배구로 저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V-리그 창단 이래 매년 플레이오프에 출석하는 대표적인 강팀이지만 정작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 밀려 우승을 못 하는 콩라인의 이미지가 씌워져 있었다. 그러나 박기원 감독 부임 이후 2017-18시즌 드디어 첫 우승을 맛보았고, 다른 팀이 몰락하는 사이 2020년대에는 V-리그의 절대 강자로 등극하며 끝내 3연속 통합우승으로 왕조를 건설한데 이어, V-리그 사상 최초의 4연속 통합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었다.

4. 야구

4.1. 미국

파일:MLB 로고.svg MLB 역대 왕조팀
★★★★
1936~1939
뉴욕 양키스
★★★★★
1949~1953
뉴욕 양키스
★★★
1972~1974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98~2000
뉴욕 양키스
1920~1965 시즌은 통칭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린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 영입을 시작으로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등의 올타임 레전드들이 팀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초거대 야구단으로 거듭난다.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 20회[19], 아메리칸리그 우승 29회를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1927년의 양키스는 야구 역사상 최강의 팀으로 평가되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밥 뮤젤로 구성된 클린업 트리오 역시 역대 최강으로 꼽힌다. 야구에서 흔히 쓰이는 살인 타선(Murderers row)이라는 말이 이 시기 양키스의 타선 때문에 만들어졌다. 세대 교체를 서너 번씩 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질 않는 양키스 때문에 뉴욕을 박차고 나간 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니 말 다 한 셈이다. 범위를 좁히면 1927년부터 1962년까지 35시즌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을 19회 달성했다. 35번 중 19번을 승리하면 승률이 5할이 넘는 셈인데 이 기간 동안 월드 시리즈에서 이긴 것이 19번이니...[20]

1995~2001 시즌은 뉴 그레이트 양키스로 불렸는데, 조 토레 감독의 지휘로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 버니 윌리엄스 등 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4회, 아메리칸리그 우승 5회, 동부 지구 우승 5회를 차지했으며, 플레이오프를 개근했다. 특히 1998년에는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도 기록한 적 없는 정규 시즌 114승을 찍었고, 포스트시즌 11승(DS 3승, CS 4승, WS 4승)을 더해 역대 한 시즌 최다 승(125승)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도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불리는 등 세계구급 강팀으로 군림하나, 플레이오프 불운이 이어지며 1990년대 말만큼의 우승을 하진 못하게 된다.[21]
지금은 빌리 빈 머니볼로 유명한 팀이지만 20세기에는 월드시리즈를 9차례나 제패했던 명문 구단이다. 특히 1970년대에 구단주 찰리 핀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972년~76년까지 월드시리즈 3회 연속 우승과 3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우승, 5년 연속 지구 우승을 기록하며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이 때 달성한 월드시리즈 3연패는 메이저리그에서 오직 오클랜드와 뉴욕 양키스만 가지고 있는 기록. 이 시기 팀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들로는 롤리 핑거스, 캣피시 헌터, 레지 잭슨, 바이다 블루, 진 테나스 등이 있다.

4.2. 일본

파일:NPB 로고.svg 일본프로야구 역대 왕조팀
★★★★★★
1938추계~1943
도쿄 교진군*
★★★
1951~1953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56~1958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5~1973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75~1977
한큐 브레이브스
★★★
1986~1988
세이부 라이온즈
★★★
1990~1992
세이부 라이온즈
★★★★
2017~202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단일리그 시절 기록
1938추계~1943 시즌은 현행 양대 리그 체제가 확립되기 이전이었다. 단일 리그 시기 6연패를 했다. 그러나 일본야구연맹이 터져버린 이후에는 이 커리어가 계승되지 않으므로 일본직업야구 시절의 유일한 왕조라고 볼 수 있다.

1951~1953 시즌에는 자이언츠-난카이의 3연전이 치러졌었다. 난카이와의 승부를 모두 승리하면서 3연패 달성. 1호 야구단의 저력을 보여주며 1차 왕조를 세웠다.

1965~1973 시즌은 1951~1953 시즌을 왕조 따위로 만들어버린 무시무시한 시기. 과장이 아니고 해마다 10월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가히 일본의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콤비라 할 만한 홈런왕 오 사다하루,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콤비가 타선을 책임졌던 팀. 9연패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7차전까지 승부를 가져간 적이 없다. 많아야 2패만 내주는 압도적 성적. 일본시리즈 9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흔히 V9 시기라고 부른다. 이 정도면 왕조 선언을 넘어 칭제건원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요미우리 vs 반요미우리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하지만 1974년 1리 차이로 주니치에게 센트럴 리그 우승을 빼앗기며 일본시리즈 진출 좌절로 9-peat 왕조는 종결된다.
1956~1958 시즌은 후쿠오카 시절 왕조. 난카이가 콩조를 달성하고 주르륵 미끄러진 사이 그 틈을 노려 리그 우승을 했고, 바로 3연패를 달성했다. 그러나 지방 사철이라 돈도 없어서 전력 유지가 힘든 나머지 내려왔고, 이후 검은 안개 사건으로 팀은 완전히 멸망 직전까지 갔다.

1986~1992 시즌은 사이타마로 옮기고 세웠으며,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25]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26]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내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츠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의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키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궈타이위엔 등 신진 선수들이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전력만 따지면 V9로 대표되는 요미우리의 최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발야구로 상대를 유린하고, 정상급 투수로 퍼시픽 리그 최강으로 군림. 왕조 되찾으러 왔다는 자이언츠를 2연속 격파하며 자이언츠 천하 종결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1978년 야쿠르트와의 대결에게 3승 4패로 석패를 하고, 1979년엔 플레이오프에서 킨테츠에게 피스윕을 당하면서 왕조는 끝나게 된다.
2014년, 2015년 우승 후 2016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에서 부전패 포함 2승 4패로 떨어지며 왕조는 물거품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기본 전력이 단단했기에 곧바로 재도전이 가능했고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에 내리 우승하며 V9 시절의 요미우리 외에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4연패를 달성한다. 그러나 2021년에는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에도 못가면서 왕조가 끝이 나고 말았다. 2022년엔 포스트시즌엔 갔지만 파이널에서 부전패 포함 1승 4패로 패퇴하면서 확인 사살했다.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왕조라는 표현을 애초에 사용하지 않고 정해진 표현 없이 황금기나 황금시대 등으로 표현하는 일본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2014-2020(7년간 6회 우승), 넓게 잡는 경우는 2011-2020(10년간 7회 우승)[27]까지를 황금기로 인정하는 편이다.

세이부 왕조 감독들이 요미우리 왕조 출신이라면, 이 시기 소뱅 감독들인 아키야마 코지 쿠도 키미야스는 세이부 왕조 멤버이자 일본시리즈 MVP 출신이며, 1999년 일본 시리즈에서 호크스의 35년만의 우승에 공헌을 했다. 또 감독으로서 호크스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오 사다하루는 구단 회장으로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4.3. 대한민국

파일:KBO 로고(세로형).svg KBO 리그 역대 왕조팀
★★★★
1986~1989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
2011~2014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다른 틀 둘러보기: 한국프로축구 역대 왕조팀

KBO 리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로 팬층 역시 두꺼워 논쟁도 자주 발생한다. 왕조는 그중에서도 관심도가 높은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인데 해당 구단간의 성적을 비교하는 민감한 주제다 보니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응원 팀에겐 관대한 기준을 다른 팀에겐 엄격한 기준을 대는 등 팬들부터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에 단발성 우승만 해도 과거의 성적과 연결시키며 왕조를 언급하는 등 용어를 남발하는 언론 역시 논란이 커지는 데에 일조했다. 논란은 후술.

하지만 해태와 삼성만큼은 야구팬들 모두가 이견 없이 왕조를 경험했다고 인정하며 각 팀이 한국시리즈 4연패[28]를 달성한 시기를 지칭한다.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9.jpg
1989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시기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4 1986~1989

김응용 감독이 이끌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팀으로 원조 왕조로 불렸던 팀이다. 해태왕조를 추억하는 2006년 기사 1983년 첫 우승 이후 김성한을 주축으로 선동열, 이순철, 한대화가 가세하고, 기존의 김종모, 김봉연, 이상윤, 문희수 등이 힘을 더하며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에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당시 해태는 정규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1위는 한 번뿐이고 2위를 세 번 기록하며 정규 시즌에선 압도적인 강팀이 아니었으나 포스트시즌에선 뛰어난 응집력을 발휘하며 4연패를 달성한다. 하지만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여 5연패 달성은 실패로 끝나버린다.

연패가 끊어졌지만 해태는 이듬해부터 다시 우승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2년마다 한 번 꼴로 우승을 거두며 당대 최강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첫 우승인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 동안 9번의 우승을 거두었고, 이 시기를 모두 김응용 감독과 함께 하였다.
파일:SpWh9yC.jpg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감독 우승 시기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4 2011~2014

삼성은 원년부터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은 좀처럼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응용, 선동열 감독을 거치며 준우승 징크스를 어느정도 해소했으며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약하게 된다. 류중일 감독은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JOKKA 라인에 신인왕 배영섭, 타격 3관왕 최형우,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으로 감독 부임 첫 해인 2011년 통합 우승을 달성한다. 거기에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구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이승엽의 복귀와 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통합 2연패를 차지했고 2013년에는 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리그 최초로 통합 3연패를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왕조로 인정받았다. 2014년에도 삼성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기자들의 업셋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으며 리그 최초로 통합 4연패까지 달성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삼성의 최전성기로 4년 동안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하는 전무후무한 통합 4연패를 달성한다. 이 시기 투수진은 먹튀였던 에스마일린 카리대가 있긴 하지만 외인투수들도 평타에서 릭 밴덴헐크라는 대박까지 준수한 편이었고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 차우찬 등의 최상위권 선발진들과 안지만, 정현욱, 권혁, 권오준, 오승환, 임창용으로 이루어진 역대 최강의 불펜진이 철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타선에서는 대도 유망주인 김상수, 박해민을 앞세웠고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3-4-5번 라인은 이승엽조차 6번 타자로 뛰게 만들 정도인 당시 최정상급 클린업중 하나였다. 여기에 2014년 영입한 야마이코 나바로는 공수주에서 흠잡을 데 없는 먼치킨급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당시 삼성은 그야말로 리그를 압도한 역대 최강팀이었다.

하지만 2015년 정규 시즌 5연패 후 2015년 한국시리즈 시작 전에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지고 만다. 여기에 연루된 주축 투수들인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29] 이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삼성은 준우승에 그쳤다. 사실 그 동안 확실한 주전들로 왕조를 유지해 왔지만, 팀 뎁스가 얇아져 가고 있는 시점[30]이었으므로 리빌딩하기 적절한 시점에 내려왔다는 평도 많다. 여기에 모기업이 스포츠단의 자립을 요구하며 갑작스럽게 자금 지원을 크게 줄였고 그 여파로 중심 타선인 야마이코 나바로 박석민이 타팀으로 이적한다. 마지막으로 프런트 측은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등 자신들의 삽질을 오로지 류중일 감독의 탓으로 돌리는 언플을 하였고 2016 시즌을 9위로 마무리한 류중일 감독은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도 실패했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삼성의 시대는 저물게 된다.

4.3.1. 3연속 우승에 실패한 구단

이 문단의 팀은 '왕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KBO의 왕조 계보가 해태-현대-SK-삼성이 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현대, SK와 비슷한 성적을 올린 두산이 왕조인가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면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지적받았다.
4연패에 성공한 해태, 삼성을 3연패도 성공하지 못한 현대, SK와 같은 부류로 놓는 것이 적절한가?
현대, SK를 왕조로 인정한다면 유사한 성적을 올린 2002~2006년의 삼성은 왜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왕조의 기준을 새롭게 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3연패라는 기준이 세워지게 되었다.[31]

3연패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야구는 특급 선발이 전경기의 1/5 안팎만 출전하고 홈런왕 타자가 다른 8명의 타자와 같은 기회를 받는 등 에이스 위주의 경기가 불가능한 스포츠다. 그래서 우승팀의 승률이 6할보다 낮을수도 있고 하위팀의 승률이 4할을 넘을 수도 있으며 약팀이 강팀에게 우세를 보이기도 한다. 즉 팀간의 격차가 크지 않아[32] 연속 우승이 쉽지가 않다. 실제로 2연패를 달성한 7팀 중 3연패를 이룬 팀은 1980년대 해태, 2010년대 삼성 단 2팀뿐이다.

다른 의견으로 현대, SK의 성적을 근거로 5년간 3우승을 왕조의 조건으로 하자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생기게 된다.
왕조 기간 동안 연속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을 수 있음. (우승/우승 실패/우승/우승 실패/우승)
두 팀의 왕조 시기가 겹칠 수 있음. (예: 2000~2004 현대 / 2002~2006 삼성)
34년 동안 일곱 번이나 나온 기록을 높게 평가 할 수는 없음.[33]
5년간 3우승은 성적 변동이 크지 않은 야구라는 종목의 특성과 계단식 포스트시즌을 사용하는 KBO 리그 환경 때문에 심심치않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리그 역사가 짧아 이러한 사실이 주목받지 못했으나 더 많은 시즌이 진행되고 순위 데이터가 쌓인 결과 이러한 기준에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생기게 된 것이다.

감독 우승 시기 순위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4 1991~1997 1-3-1-4-4-1-1
해태는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5연패에는 실패하였지만 기존의 선동열,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등의 핵심 전력이 여전했고 80년대 왕조의 막바지에 데뷔했던 이강철, 조계현이 주축으로 성장하고, 1990년대 야수 sWAR 1위를 기록한 홍현우와 1993년에는 투타의 핵심을 이룬 이종범 이대진이, 1990년대 중후반에 임창용이 가세하며 또 다시 전성기를 만들어 가며 왕조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4년 연속 우승하던 1980년대 중후반만큼은 아니어도 스타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진을 이끌며 1991년부터 1993년, 1996년, 1997년까지 1990년대에 우승을 네 번 했다. 무엇보다 4연패 시절에는 통합 우승이 한 번뿐이고, 나머지는 정규 시즌 2위의 성적으로 우승한거라 단기전에만 강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1990년대의 우승은 모두 통합 우승이었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한국시리즈 우승 일주일 만에 해태그룹이 부도를 선언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종범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시키고,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을 삼성에 팔아넘기며, FA였던 이강철, 홍현우를 놓쳐 버린다. 결국 1998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것을 시작으로 기아자동차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감독 우승 시기 순위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4 1998~2004 1-5-1-3-4-1-1
김재박 감독이 이끌었던 팀.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자 분위기 쇄신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렸는데 이때 탄생한 팀이 현대였다.[34] 분위기 쇄신이 목적이었으므로 현대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강팀이 되어야 했다. 프런트 측은 삼성과 머니 게임을 벌여가며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던 해태, 쌍방울의 선수와 유망주 그리고 2000년부터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싹쓸이 했고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정명원, 정민태, 박진만과 같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확보했다. 이 외에도 다른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거나 갈등을 겪었던 전준호, 심정수, 심재학, 박종호, 송지만 등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KBO 구단을 통틀어 역대 최고급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양대 리그였던 2000년에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나란히 18승을 올리는 등 역대 최고급 선발진을 갖게 된다. 선발뿐만 아니라 계투진들도 뛰어났는데, 조웅천, 조용준, 정명원, 신철인, 이상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당시 기준으로 시즌 최다 승인 91승을 거두기도 했다.[35] 이 시즌에 기록한 0.695의 승률은 역대 시즌 승률 3위이며, 전/후기 리그 체제가 아닌 단일 시즌 기준으로는 역대 시즌 승률 1위의 기록이다.

현대는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까지 3회의 통합 우승과 양대 리그 당시 1회 우승[36]으로 통산 네 번 우승했다. 하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면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갔고 2007 시즌 이후 팀이 인수되어 해체 후 재창단 작업이 이루어지며 최종 4회 우승으로 팀 역사를 마감한다. 그 뒤 신생 구단인 서울 히어로즈가 되었다.
감독 우승 시기 순위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선동열
3 2002~2006 1-4-2-1-1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없이[37] 준우승만 6차례 기록했던 삼성은 최후의 수단으로 해태의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지만 2001년 또 다시 준우승에 그치고, 그해 겨울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던 양준혁을 FA로 재영입하고 SK에 김기태, 김동수, 김상진, 김태한, 정경배, 이용훈을 주고 좌완투수 오상민과 유격수 틸슨 브리또를 받아오는 6대2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이승엽, 마해영의 백투백 끝내기 홈런으로 마침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2003년 준PO에서 패하고 2004년 우승에 실패한 삼성은 김응용 감독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선동열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FA로 심정수, 박진만을 영입하며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뒤 2005년, 2006년에 통합 2연패를 달성하며 해태, 현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구단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2007년부터 3년 동안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며 중위권에 머물렀고 2010 시즌을 끝으로 김응용, 선동열 모두 삼성을 떠나게 된다.

이 시기 삼성은 현대, SK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언론과 팬들로부터 왕조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원인으로는 FA를 싹쓸이하면서 돈성이라는 안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점,[38] 2000년대 초중반은 한국 야구의 암흑기여서 인기가 저조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던 점,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가 삼성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점[39] 등이 있다.
감독 우승 시기 순위
SK 와이번스 김성근 3 2007~2010 1-1-2-1
SK는 하위권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나름 리빌딩도 어느 정도 완료했고 준우승의 공로가 있는 조범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성근 감독을 선임한다. 김성근 감독은 1점을 짜내기 위한 작전과 필요하다면 도발을 걸어 상대 팀의 멘탈을 흔드는 등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구를 했다. 이는 약점이 없는 팀, 포기하지 않는 팀이라는 찬사와 비매너 야구, 번트 야구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논란의 중심이 되는 원인이 되었지만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해[40] 2007년, 2008년, 2010년에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주요 선수들로 김광현, 채병용, 송은범 등이 선발을 이끌었고 정대현, 정우람, 윤길현, 이승호, 전병두, 고효준, 김원형, 조웅천 등이 불펜을 책임졌다. 타선에선 박경완, 김재현, 박재홍, 이호준, 박정권, 김강민, 최정, 정근우, 나주환, 박재상 등이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시즌 중 프런트는 지나치게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경질시키고[41] 이만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긴다. 사실 성적 때문에 부각이 덜 되었지 당시 SK는 내부적으로 잡음이 많았었다.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 등 코칭스태프들이 따로 움직였고 팀 분위기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2011년, 2012년 연속 준우승 이후 2013년에는 6위로 추락하며 전성기를 마감하게 된다.
감독 우승 시기 순위
두산 베어스 김태형 3 2015~2019 1-1-2-2-1
송일수 감독을 경질하고 김태형 감독을 선임한 두산은 원정 도박 사건으로 투수진이 붕괴된 삼성을 상대로 2015년에 업셋 우승을 차지하고 2016년에는 통합 우승을 달성하며 2연패에 성공한다. 그러나 2017년에는 1위에 오르기만 하면 우승해 버리는 KIA 때문에 준우승에 그쳤고 2018년에는 압도적인 정규 시즌 우승[42]을 거뒀음에도 SK에게 충격적인 업셋을 당하며 2년 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43] 하지만 2019년에는 후반기 한 때 9게임차까지 벌어졌던 SK를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했고 시즌 최종전에 승리하면서 정규 시즌 우승에 성공 작년 한국시리즈의 패배를 간접적으로 설욕한다. 이후 2019년에도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020년에는 3위로 정규 시즌을 마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두산의 행보는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모기업의 상황이 좋지가 않고 그 여파로 라울 알칸타라, 오재일, 최주환, 크리스 플렉센이 타팀으로 이적을 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정규 시즌 4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을 거두며 KBO 리그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2년에는 계속되는 선수 유출로 인해 결국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국시리즈 연속 진출도 종지부를 찍었으며 김태형 감독은 계약만료로 물러났다.

4.4. 대만

파일:CPBL 로고.svg 대만프로야구 역대 왕조팀
★★★
1992~1994
슝디 엘리펀츠
★★★
1997~1999
웨이취안 드래곤스
★★★
2002~2004
슝디 엘리펀츠
★★★
2007~2009
퉁이 라이온스
★★★
2017~2019
라미고 몽키스
CPBL 출범 초반 3연속 우승을 통해 슝디는 전국구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특히 1992년과 1994년은 통합 우승으로 타이완 시리즈가 열리지 않았을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다시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두 번째 왕조를 탄생시켰다. 2010년대 후반 압도적인 전력으로 왕조를 탄생시켰다. 2017년 전기리그부터 2019년 전기리그까지 정규리그 5연속 우승을 비롯하여 2017년과 2018년에는 통합 우승을 차지한다. 시기를 넓힐경우 2012년부터 2019년까지 8시즌 가운데 6번 타이완 시리즈의 정상에 올라 2010년대 NPB의 소프트뱅크에 비견될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뽐냈다.

4.5. 호주

데이브 닐슨 감독 취임 이후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자국의 프로선수들의 영입하며 2015년 부터 2019년 까지 호주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4연패를 달성하였으나 2020년 노스이스트 지구 3위를 기록하면서 호주야구를 호령하던 브리즈번 밴디츠의 왕조는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5. 아이스하키

5.1. 북미

다양한 공격 패턴과 끈끈한 수비로 1920년부터 1927년까지 스탠리 컵을 4번 우승하며 NHL 최초의 왕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당시에 인구가 11만명 밖에 안되는 오타와 연고 구단인데다가, NHL 사무국이 여러 미국 팀들을 NHL에 들여오면서 성적과 재정이 계속 떨어졌고, 1934년 NHL을 탈퇴했다.
콘 스마이스 구단주의 좋은 팀 운영과, 타이밍이 잘 맞게 프랭크 마호블리치 같은 선수들의 포텐이 터지면서 1947~1949년, 1962~1964년 2번이나 쓰리핏을 달성했다. 그러나 1966-67시즌 이후로 56년간 스탠리 컵 우승이 없을 정도로 과거에 비해선 몰락한 상태.
고디 하우, 시드 아벨, 테드 린지 같은 유망주들이 서서히 활약하기 시작하며 엄청난 화력의 공격 전술을 선보이며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에서 하키가 인기 스포츠였더라면 조던 시대의 불스처럼 현재까지 언급되는 황금 세대였을것이다. 쓰리핏 두번 달성하는것도 힘든데, 포핏을 두번이나 달성하는 말이 안나오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의 몽레알 스쿼드는 주전부터 후보 선수까지 모두 올스타급의 선수들이었고, 그중 앙리 리샤르는 이 기간에 총 11번의 스탠리 컵우승을 기록해 역사를 썼다.
브라이언 트로티에, 마이크 보시 콤비의 포텐이 터지며 몽레알과 NHL 역사상 유이한 포핏을 남기고 현재는 쇠퇴했다.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의 활약이 정말 돋보였던 시기. 그레츠키 이외에도 마크 메시에, 야리 쿠리, 글렌 앤더슨, 폴 커피, 그랜트 퓨어 등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 7년 동안 스탠리 컵 우승을 5번이나 했다.

6. 축구

후술된 사례 대부분은 리그 기준이고, UCL 기준 왕조[44] 레알 마드리드(55-56~59-60), 아약스(70-71~72-73), 뮌헨(73-74~75-76), 리버풀(76-77~83-84), 밀란(87-88~93-94), 바르사(08-09~14-15), 레알 마드리드(15-16~17-18) 6팀이 주로 언급된다.[45]

6.1. 잉글랜드

이른바 붉은 제국 시대.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리그 우승 9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며, 유러피언컵에서도 8시즌 동안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거뒀다. 또한 FA컵에서도 2회 우승을 거둬 그야말로 트로피를 싹쓸이 하던 시대였다. 특히 당시는 리그 우승팀과 전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팀에게만 유러피언컵에 출전할 자격이 주어졌는데, 1976-77 시즌부터 1984-85 시즌까지 아홉 시즌간 유러피언컵에 개근하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 즉, 저 기간 동안 반드시 리그 우승이든 유러피언컵 우승이든 거뒀다는 것이다. 81~84년에는 리그 쓰리핏을 달성하며 최강팀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렇게 찬란했던 붉은 제국의 최전성기는 리버풀 서포터가 일으킨 헤이젤 참사로 불명예스럽게 종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후에도 몇년간은 간간히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왕조라 불렸던 팀의 저력을 발휘했다.
그냥 퍼거슨의 왕조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86년 알렉스 퍼거슨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1990-91 시즌 컵 위너스 컵 우승을 필두로 에릭 칸토나라는 스타 플레이어와 팀 역사상 최고의 유스들인 Class of 92를 앞세워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프리미어 리그 우승 8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및 1998-99 시즌 트레블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더욱이 이 트레블은 잉글랜드 클럽 역사상 첫 트레블이라 의미가 있고, 트레블을 달성한 경기는 캄프 누의 기적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게 된다. 이후 프랑스에서 건너온 벵거와 티에리 앙리가 이끄는 아스널, 이피엘에 오일머니 시대를 연 로만이 자금을 대주는 첼시의 역습으로 잠시 침체기를 맞았으나[46] 2006년부터 루니,테베즈,호날두,긱스,비디치 등을 중심으로 다시 전력을 재정비, 금방 패권을 탈환해 2013년까지 우승 5회, 준우승 3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이룩했다. 퍼거슨이 부임한 기간 동안 리그 쓰리핏만 2번 기록할 정도로 장기간 꾸준히 최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며, 2번의 빅이어를 추가하고 끝내는 리버풀이 가지고 있던 리그 최다우승 횟수 기록까지 경신하는데 성공했다.
2016년 펩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2017-18 시즌 프리미어 리그의 수많은 기록들을 써내려가며 역대 최다 승점 100점 우승을 달성했으며, 2018-19 시즌에는 리그 2연패를 비롯해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2019-20 시즌에는 또 다른 명장 클롭이 재건시킨 명가 리버풀에게 잠시 왕좌를 내줬지만, 다시 2020-21 시즌부터 2022-23 시즌까지 리그 쓰리핏을 완성, 마침내 2022-23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인테르를 꺾으며 구단의 숙원 사업이었던 빅이어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잉글랜드 축구 클럽의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하며 왕조를 구축했다.

6.2.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왕조이자 또한 사상 처음으로 자국 리그를 넘어 유럽 전역을 울리는 제국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팀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과 미겔 무뇨스를 중심으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프란시스코 헨토, 레몽 코파, 호세 산타마리아로 이루어진 저승사자 군단이었다. 특히 1955-56 시즌부터 1959-60 시즌까지 유러피언컵 5연패를 달성했으며, 라리가에서도 리그 5연패를 포함해 8번의 우승을 기록했다. 챔피언스 리그 연속 우승이 20년 넘게 나오지 않았던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 5연패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적기 때문에, 거의 불멸의 연속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때 8년 18일 동안 121경기 연속 홈 무패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여전히 세계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47]

1960년대 저승사자 군단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이번에는 스페인 국내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이 정책은 1980년대까지 이어져 이른바 '독수리 5형제'가 결성되었고 울리 슈틸리케, 첸도, 우고 산체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호르헤 발다노 등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을 필두로 라리가 5연패, UEFA컵 2연패를 달성해 챔스 5연패 시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중심으로 세르히오 라모스, 루카 모드리치, 마르셀루, 토니 크로스, 카세미루, 가레스 베일, 카림 벤제마 등과 함께 또 한번의 왕조를 구축하였다. 2013-14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지휘 하에 구단 역사상 10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지네딘 지단이 지휘하기 시작한 2016년 1월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 라리가 1회 우승, UEFA 슈퍼컵 2회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우승을 달성하였다. 특히 2015-16 시즌부터 2017-18 시즌까지의 3연패를 포함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5년간 4차례 우승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챔피언스 리그가 현행 체제로 개편된 이후 그동안 2연패를 달성한 팀이 전무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레알 마드리드의 이러한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팀의 주축 멤버인 루카 모드리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NBA 시카고 불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쓰리핏과 비교하며 레알 마드리드가 축구의 왕조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지단이 자진 사임하고 호날두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로 떠나며 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왕조이자 전성기는 이대로 끝나나 싶었으나, 다시 벤제마가 역대급 퍼포먼스로 팀을 멱살 캐리하고 크카모 역시 노쇠화에도 불구하고 클래스를 보여주며 21-22 시즌 리그-챔스 더블과 발롱도르를 배출하며 전성기의 끝자락에서 화려하게 잔불을 태웠다.
바르셀로나의 첫 번째 왕조는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지휘하던 1990년대 드림팀 시절이다. 호마리우, 미카엘 라우드루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펩 과르디올라, 로날드 쿠만, 호세 마리 바케로, 혼 안도니 고이코에체아, 치키 베히리스타인 등이 주축이 된 이 위대한 팀은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라리가 4연패와 1991-92 시즌 사상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하며 절정을 찍는다. 하지만 19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에 충격적인 0-4 패배를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고, 설상가상으로 크루이프와 주축 선수들의 불화로 성적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결국 크루이프가 감독직을 사퇴하고 주축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드림팀은 해체되었다.

바르셀로나의 두 번째 왕조는 축구사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팀이다. 이 기간 동안 사상 최초의 시즌 6관왕을 포함해 2번의 트레블과 1번의 더블을 해냈다. 2008년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한 후 라 마시아의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하며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카를레스 푸욜, 세르히오 부스케츠, 제라르 피케, 다니 알베스, 빅토르 발데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팀을 구성하며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바꾼 전술인 티키타카를 사용하며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축구계를 휩쓸었다. 2012년 펩이 떠난 이후 약간의 부침을 겪었지만 2014년 루이스 엔리케가 부임하고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스가 영입되며 세기의 공격진 MSN을 구축하였고 2014-15 시즌 역사상 최초로 두 번의 트레블에 성공했다. 또한 라리가에서 0809~1819까지 11시즌 동안 8번 우승을 하며 리그 패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 기간 동안 바르셀로나는 무려 23개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위의 두 구단처럼 국내 리그 또는 대륙 대항전 최상위 레벨의 대회에 3연패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비야는 유럽 축구 대항전 차상위 레벨의 대회인 UEFA 유로파 리그 3연패를 이 시기에 기록하였으며, 이를 통해 UEFA 배지 오브 오너를 유로파 버전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구단이다. 이 시기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바르샤와 유로파의 세비야로 인해 라리가의 위상은 실력 측면에서 세계 최강이라 부르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 다만 상술되었듯 어디까지나 중위권 팀들의 대회인 유로파에 한정된 왕조인지라 축구역사의 위대한 왕조들을 꼽을 때 세비야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6.3. 이탈리아

1930년대 세리에 A 프로 개편 후 첫 5연패를 차지했고, 1970년대~1980년대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명장 조반니 트라파토니 시절 세리에 A 6회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유러피언컵 1회, 컵위너스컵 1회, UEFA컵 1회, 도요타컵 1회 등 14개 트로피를 쓸어담았다. 이 당시 UEFA 주관 대회를 최초로 전부 제패한 기념으로[48] UEFA에서 UEFA Plaque라는 명예 트로피를 최초이자 최후로 지급받았다. 이후 칼초폴리로 한때 휘청했지만 2011-12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리그는 한 시즌도 빼놓지 않고 우승하면서 다시 왕조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2019-20 시즌을 마지막으로 세리에 A 우승을 하지못하고 있다.
1940년대 세리에 A를 지배한 위대한 토리노(Grande Torino). 1942년이 동떨어져 있어 있어 왕조의 정의에 맞나 갸우뚱 할 수도 있겠지만, 1943, 1944년 시즌은 세계대전으로 리그 자체가 무산되었던 기간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6연패이며, 무산되지 않았다면 그 이상도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시즌을 기준으로 당시 토리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선수 10명, 프랑스 국가대표팀 선수 1명, 舊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대표팀 1명, 이탈리아 U-20 선수 1명 등을 보유한 초호화 팀이었다.[49] 이렇게 1940년대를 지배했던 토리노는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 1975년 시즌이 되어서야 우승을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위상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전자는 카테나치오의 창시자인 엘레니오 에레라의 조련하에 유러피언컵 2연속 우승 및 준우승 1회, 세리에 A 우승 3회를 기록하며 40년대의 위대한 토리노와 더불어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로 불렸다. 후자는 로베르토 만치니, 주제 무리뉴 휘하에서 세리에 A 5연패,[50]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2회를 기록하였다. 특히 2009-10 시즌은 숨막히는 수비 라인과 미들진의 조직력이 극대화된 시절로 결국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까지 달성했다.[51]
토탈사커 이후 최대의 변혁이자 현대 축구의 기본틀 중 하나인 '압박 축구 전술'을 완성한 아리고 사키와 후임 파비오 카펠로 휘하의 87~94년 동안 오렌지 삼총사를[52] 앞세워 리그에서 3연패를 포함해 4회를 우승을 기록했으며, 특히 1991-92 시즌에는 무패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까지 무패를 이어가며 5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 또한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2연패를 포함해 3회의 우승을 거두었으며 특히 세번째 우승의 경우 크루이프가 감독을 맡고 스토이치코프,호마리우라는 역대급 원투펀치를 지닌 바르셀로나 드림팀을 결승전에서 4:0으로 묵사발 내며 진정한 시대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온 유럽에 과시했다. 이 당시의 밀란은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꼽힌다. 괜히 밀란 제너레이션으로 불리는게 아니다.

밀란 제네레이션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다가 안드레아 피를로, 카카,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안드리 셰브첸코등으로 대표되는 뉴 밀란 제네레이션으로 또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비록 리그에서의 지배력이 아쉬웠고[53] 때문에 간신히 챔스티켓을 얻을때가 있는 등 원조 밀란 제네레이션 만큼의 압도적인 포스는 발휘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5년간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4강 1회, 8강 1회를 기록하여 현재까지 밀란의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 시기가 바로 이 시기.

6.4. 독일

통합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1부에 초대받지 못한 2부 리그 팀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팀의 역사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비록 분데스리가에서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 발목을 잡히고 1974-75 시즌 리그 10위로 추락할때도 있었으나, 전성기 기간 동안 리그 우승 3회와 유러피언컵 우승 3연패를 기록했다. 또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클럽의 전성기를 이끈 삼총사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로 대표되는 팀의 주축 선수들이 국대에서도 무척 뛰어나 독일의 첫 전성기를 이끌며 1966년 월드컵 준우승, 1970년 월드컵 4강, 1972년 유로 우승, 1974년 월드컵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54]

2차 전성기는 2010년대의 일명 레바뮌[55]의 시대였다. 시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2010년에 홈에서 열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패배해 깊은 상처를 남기고 2012년에는 컵-리그-챔스를 모조리 준우승 해버리는 일명 콩레블의 비극을 겪었으나, 바로 다음 시즌인 2013년에 팬들이 흘린 눈물을 보상이라도 하듯 분데스리가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고 이 시즌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유럽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리그 11연패를 진행중이며, 특히 2020년에는 2번째 트레블까지 달성해 본래 바르샤만이 보유하고 있던 2트레블과 6관왕의 기록을 뮌헨 역시 가지게 되었다. 2020년 2번째 트레블을 기록한 이후 리그 3연속 우승을 추가했으나 2023-24 시즌 바이어 04 레버쿠젠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뮌헨의 리그 우승 기록은 11연패에 그치게 되었다.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70년대 분데스리가를 양분한 팀.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우도 라테크 감독의 지휘 아래, 귄터 네처, 유프 하인케스, 베르티 포크츠, 우베 란, 울리 슈틸리케, 알란 시몬센 등을 앞세워 70년대에만 리그 5회 우승, UEFA컵 2회 우승, DFB-포칼 1회 우승, 유러피언컵 1회 준우승을 거두었다. 특히 1974-75 시즌 ~ 1976-77 시즌에 달성한 리그 3연패는 독일에서 오직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만 달성한 기록.

6.5.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었던 팀. 리누스 미헬스가 그의 분신 요한 크라이프를 앞세워 이룬 토털 혁명을 토대로 리그 우승 6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3회를 거뒀다. 1971-72 시즌에는[56] 48전 42승 5무 1패, 135득점 27실점, 승률 87.5%라는 엽기적인 팀 기록을 찍으며 트레블을 달성했다. 심지어 해당 시즌엔 무패 우승과 트레블을 동시에 달성할 뻔 했다. 87.5%라는 승률은 유럽 대회 참가 클럽 중 단일 시즌 최고 승률이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 쓰리핏과 트레블을 동시에 한꺼번에 이룩한 역사상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57]
초기 에레디비시에서 AFC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의 대결 구도에서는 한발 떨어져 있었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 리그 2연속 우승을 거두면서 주목 받았다. 다만, 이 시기에는 크루이프를 앞세운 아약스의 위세가 너무 강해서 상대적으로 빛을 못 보았다. 클럽의 황금 시대를 연 것은 1985-86 시즌인데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네덜란드 리그 4연패에 컵 대회 3회 우승으로 완전히 리그를 장악했다. 유럽 무대에서도 그 위세를 떨쳐 1987-88 유러피언컵 대회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제압하고 첫 우승에 성공하며 트레블을 달성한다.

6.6. 프랑스

2000년대 리그 1 7연패를 달성하며 프랑스의 최강자로 군림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했던 시절.
2012-13 시즌부터 2015-16 시즌까지 4연패, 그리고 2017-18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3연패를 달성하였다.

6.6.1. 논란 사례

해당 문서에 왕조 선정에 논란이 있는 구단은 성적 혹은 3-peat 이상의 연속 우승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지만,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는 성적과 연속 우승의 조건을 충족하지만 후술할 다른 이유로 인해 논란이 있는 팀이다. 마르세유의 최전성기는 1988-89 시즌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기부터 자국 리그 4연패[58]에 유럽 대회에서는 1991년에는 유러피언컵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거둬들이면서 유럽 강호로 발돋움했다.[59] 그리고 소속 선수였던 장피에르 파팽이 최초로 프랑스 리거 발롱도르 수상자가 되었다. 그리고 1992, 1993년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유러피언 컵이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된 1993년도에 결승까지 진출하여 AC 밀란을 1:0으로 이기면서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대회 우승[60]을 거두며 마침내 구단이 염원하던 빅 이어를 들어올리게 된다.

그러나, 마르세유의 영광은 승부 조작과 약물 의혹 등의 스캔들로 심각하게 얼룩지게 된다.

1992-93 시즌 마지막 경기 상대인 발랑시엔 FC와의 경기에서 발랑시엔 선수들이 자수하는 바람에 마르세유의 승부 조작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발랑시엔 선수인 자크 글리스만이 감독인 보로 프리모락에게 마르세유 선수인 장자크 에들리에게 자신이 매수 당했다고 고백한 게 계기가 되어 드러났다. 이후 호르헤 부루차가, 크리스토프 로베르도 마르세유에 매수당했다고 고백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들은 에들리가 발랑시엔 선수들에게 경기에서 져줄 것과 부상 위험을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마르세유는 5월 20일에 발랑시엔과 경기를 치르고 엿새 뒤에 챔스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마르세유는 챔스 결승전 이전의 마지막 경기를 매수로 쉽게 넘겨 일찍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럽 정상을 노리겠다며 검은 돈을 사용한 것이다. 이에 대한 처벌로서 마르세유는 1994년 2부 리그로 강등되고 1992-93 리그 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슈퍼컵, 인터컨티넨탈컵 등의 각종 국제 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한 2006년에는 당시 마르세유 선수였던 장자크 에들리가 자서전에서 당시 루디 푈러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금지 약물을 도핑 후 경기에 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UEFA는 공소 시효인 10년이 지났다는 것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하였다. 또한 당시 도핑 테스트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왔고 해당 자서전 발간 이후 마르셀 드사이를 비롯하여 동료 선수들 또한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약물 의혹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199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리그 우승은 승부 조작으로 1992-93 시즌만 박탈된 것이다.

한편 밀란의 팬들은 이러한 마르세유의 승부 조작 이력, 도핑 폭로 때문에 '그렇다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도 도핑을 썼던 게 아니냐?' 의심하며 도둑질 해간 빅이어를 돌려달라 아우성을 쳤는데, 상술됐듯 엄연히 당시 실시된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고 경기를 치른 것이며, 결국 마르세유가 챔스 결승에서 도핑했다는 근거는 한참 후대에 나온 장자크 에들리의 개인 주장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게다가 또 한 가지 문제는, 마르세유 챔스 우승 멤버 상당수가 승부 조작 징계 이후 세리에로 탈출했고, 그들이 밀란과 유베로 이적해 챔스 우승에도 기여했다는 것이다. 만약 마르세유가 도핑을 한게 맞다면 이는 곧 밀란과 유베 역시 챔스 우승 과정에서 그때 그 도핑 선수들이 참여 했다는 뜻인지라 이야기가 엄청 복잡해진다.

아무튼 리그앙에서의 강력한 헤게모니와 리그앙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 성과로 따지면 오히려 위의 리옹과 파리보다도 더 왕조에 걸맞지만, 승부 조작과 도핑 의혹 때문에 왕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도핑 의혹은 말 그대로 증거없는 의혹일 뿐이지만 승부 조작은 빼박이기 때문에...다만 유벤투스 역시 유럽 축구계 역대급 흑역사인 칼치오폴리로 국내에선 아예 주작투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인데 정작 위의 유벤투스 항목에는 왕조로서 서술되어 있는지라 문서의 일관성과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긴 하다.

6.7. 대한민국

파일:K리그 로고(흰색).svg K리그 역대 왕조팀
★★★
1993~1995
파일:일화 천마 엠블럼 (1989~1999).svg 일화 천마
★★★
2001~2003
파일: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2000-2005).svg 성남 일화 천마
★★★★★
2017~2021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svg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1 기록만 서술하며,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다른 틀 둘러보기: 한국프로야구 역대 왕조팀

K리그에서 최초로 왕조를 구축했다. 동대문 연고 시절인 1993~1995 시즌과 연고지를 성남으로 이전한 이후인 2001~2003 시즌에 각각 3연패를 기록하는 등 통산 7회 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1995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K리그 팀 중 최초로 시즌 더블을 달성하였고 2003 시즌에는 승점 91점을 기록하며 당시 최다 승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4년과 2015년 연속해서 K리그 정상에 오르면서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61] 하지만, 2016년 심판매수 사건으로 승점 9점을 삭감당하는 징계를 받으며 리그를 2위로 마감했고, 왕조 달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최초의 왕조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하며 결국 2017~2021년 리그 5연패를 달성했고, 왕조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대미문의 K리그1 통산 9회 우승을 이루 K리그1, K리그2 역대 최다 우승이라는 족적을 남겼다.[62] 더불어 2016년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한 번 아시아 최강으로 군림했다. 2018년에는 스플릿 라운드 시작 전 유일하게 우승을 이뤘고 2020년에는 K리그1 FA컵에서 동시에 우승하면서 한국 프로 축구 사상 세 번째 더블을 달성했다. 2022년에는 감독이라는 거대한 마이너스 요인[63]과 더불어 경기 내외적으로 악재가 겹쳤고 끝내 리그 2위 성적을 거두며 리그 연속 우승 행진을 마감한다.[64] 그래도 FA컵에서는 우승 컵을 들어올리며 2014년 이후 공식 대회 9연속 우승을 이뤘다.

7. e스포츠

7.1. 리그 오브 레전드

LoL e스포츠에서의 왕조는 이전까지는 기성 스포츠와 같이 국제 대회나 리그 대회를 각각 나눠 3연패를 거둔 '클럽 대항전' 팀을 왕조로 통칭하고 있었으나, 2023년 월즈 이후부터 국내 커뮤니티를 필두로 이전과는 별개의 기준으로 왕조를 구분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시작되었다.[65]

그 중 라이엇 게임즈 주관 메이저 최고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 LoL e스포츠 내에서도 그 어떤 대회들보다 비교가 불가할 정도의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MSI 역시 일반적인 리그와는 위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지역 리그 3연패를 한다고 해도 국제대회에서 그에 맞는 호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왕조로써 인정해주지 않겠다라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66][67]

더 간단하게 정리하면 쓰리핏은 하되[68], 국제 왕중왕전 우승은 한 번 이상 해야 한다. 이걸 국내 스포츠의 예시로 들이밀면 한국 4대 스포츠 중 왕조는 축구의 일화 천마[69]와 야구의 삼성 라이온즈[70] 밖에 남지 않는다.

이 기준으로 인해 MSI나 월즈 우승팀을 배출해내지 못한 북미에서는 왕조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으며, 전력상 나올 수도 없다.[71]

7.1.1. 대한민국

  • T1: 2015 스프링~2017 MSI
지금은 T1, 과거에는 SKT라는 약칭으로 불렸던 LCK 리그 최초의 3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 유일하게 LCK 3시즌 연속 우승을 두 번 기록한 팀, 왕조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인증된 팀이다.[72] SKT T1 K로 데뷔한 2013년부터 뛰어난 모습을 보이며 롤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으며 2013 서머를 제패하고 월드 챔피언십 우승까지 우승하며 순식간에 세계 최강팀의 자리를 차지했다.

2013-14 윈터와 2014년 올스타 인비테이셔널 전승 우승을 제외한 이후부터의 부진으로 반짝 활약이냐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있던 상황에서. 단일팀으로의 통합과 LCK가 풀리그제로 전환된 2015 스프링부터 페이커를 필두로 벵기, , 울프가 맹활약, 탑에서도 절정의 기량에 달한 마린이 라인을 초토화시키고, 식스맨으로는 이지훈의 활약까지 더해져 많은 부분에서 활약이 두드러졌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5 MSI 결승에서 삐끗해 준우승 이후 2015 서머에서 다른 팀들을 모두 찍어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월즈에서도 단 1패만 허용하고 우승하며 역대 단일시즌 최강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마린과 이지훈이 팀을 떠나고 벵기의 폼이 떨어지며 이전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새롭게 영입한 탑 라이너 듀크, 정글러로 블랭크가 팀에 적응하면서 점점 경기력이 좋아졌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도장깨기에 성공하며 2016 스프링에서도 우승컵을 거머쥐고 LCK 최초의 3연속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이후부터 롤판을 휘어잡는 LCK의 첫 왕조를 열었다. 이어진 MSI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6 서머에서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월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의 월즈 연속 우승팀이 되었다. 2017년에는 피넛 후니를 영입하고 2017 스프링-2017 MSI를 우승하며 기세를 올려 왕조의 건재함을 알렸다. 고로 이 시기의 SKT는 단순히 자국리그 쓰리핏 뿐만 아니라 후술할 2017년까지 국제대회 4연속 우승[73]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움으로써 LCK를 넘어 세계적인 왕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7 리프트 라이벌즈 준우승과 서머 준우승을 기록했고, 월즈에서는 페이커의 원맨캐리로 결승에는 진출했지만 전년도 준우승팀인 삼성에게 패배하게 되고 글로벌 인준 코멘터리를 통해 SKT 왕조가 끝났음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었다.
약칭 DK라 불리는 LCK에서 유일하게 3시즌 연속 통합 우승[74]을 기록한 팀. 2019년에 LCK로 승격할 때에도 상체의 힘은 굉장히 강력하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였고 너구리, 캐니언, 쇼메이커를 중심으로 승격 첫 해에 월즈 8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20년에 들어 고스트를 영입하고, 베릴이 각성하며 하체의 약점을 지우고, 2020 MSC에서 얻은 교훈으로 팀 전체가 2020 서머에 각성했다. 이 당시 담원은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20분대에서 마무리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규시즌을 지배했고, 이후 결승에서도 DRX를 압도하며 서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월즈에서도 세계 최강팀의 무력을 선보이며 우승해 3년 만에 LCK의 1부 리그 지위를 되찾아왔다. 이후 너구리가 FPX로 이적하고 FPX에서 매우 좋지 않은 폼을 보이며 은퇴하려던 김정균 감독을 영입했다. 이는 확실한 전력 악화로 여겨졌으나 그러한 여론을 불식시킬 정도로 여전히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며 2021 스프링에서 재차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MSI에서 준우승하고 서머 1라운드에서 주춤하긴 했으나 다시 폼을 되찾고 3시즌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과 함께 새로운 LCK 왕조를 세웠다. 이어진 2021 월즈에서도 역대 3번째 그룹 스테이지 전승을 기록하고 RNG, SKT, 삼성에 이어 역대 4번째로 2년 연속 월즈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전의 15~17 SKT에 비해 국제전 성과가 빈약하고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를 통해 왕조로 인증되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LCK-월즈에서 최정상에 올랐다는 점, 6번 연속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는 점, 그리고 최초의 LCK 3연속 통합 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국내 리그 쓰리핏에 어울리는 기록을 세운 팀으로 남게 되었다.

7.1.2. 중국

약칭 EDG라 불리는 팀. 클리어러브와 나메이를 필두로 창단해인 2014년에 2회의 리그 우승을 독식하였고, 중국식 난전 메타를 선도했던 OMG를 무너뜨린 이후부터 여론 자체를 반전시켰다. LCK의 엑소더스 이후 데프트와 폰이라는 용병을 영입하여 2015 스프링 우승으로 LPL 최초의 3연속 우승팀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2015 MSI에서 LPL 최초의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대회에서도 본격적인 명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75]
약칭 JDG. 2019년 서머 준우승, 2020년 스프링 우승과 2020 서머 준우승을 시작으로 LPL의 신흥 강팀으로 올라서고, 2022 서머 우승 직후 롤드컵 1시드 진출로 명실상부한 세계구급 강팀으로 거듭났다. 특히나 2022~23 롤드컵 4강에서 T1에게 져서 탈락했지만 2023년을 앞두고 나이트와 룰러를 영입하며 역대급 로스터를 구축했던 것과 22 서머부터 23 스프링-서머 우승으로 한동안 우승팀이 다양했던 LPL에서 EDG 이후로 또 다른 쓰리핏을 일궈내고, 2023 MSI 우승으로 국제대회의 새로운 강자로 변모하게 되었다.

7.1.3. 유럽

약칭 G2. 특유의 트래시 토크와 참신한 팀컬러를 토대로 2016년 승격하자마자 LEC에서 전무후무한 4시즌 연속 우승을 두 번이나 달성한 전설적인 팀이면서 리그 창설 이후부터 프나틱이 쭉 지배하던 유럽 롤판의 패권을 뺏어온 팀. 16 스프링부터~17 서머까지 포핏을 차지하는 것과는 달리 속칭 암흑군주로 불렸던 것과 2018년 스프링 서머 모두 프나틱에게 패권을 빼앗기고 이어진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3시드로 진출했지만 전적이 있던 만큼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룹 스테이지에서 LCK의 2번 시드인 아프리카 프릭스를 잡아내며 기대감을 높이더니 결국 순위 결정전에서 플래시 울브즈를 꺾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8강 상대는 그랜드슬램을 노리던 RNG로 많은 전문가들은 당연히 RNG의 낙승을 예상했지만 원더와 퍽즈의 신들린 캐리쇼에 힘입어 RNG를 꺾고 4강에 진출, LOL판 역사상 최고의 업셋을 일으키며 암흑 군주라는 오명을 씻어냈다.

이후 2019년에는 라이벌 팀인 프나틱의 캡스를 데려오고 퍽즈를 바텀 라이너로 내리는 등 유럽 최강 라인업으로 똘똘뭉친 2기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변칙적인 전략과 매우 넓은 챔프폭을 바탕으로 스프링과 MSI까지 우승을 차지하면서 팀 역사상 메이저 국제 대회 첫 우승을 기록했고, 안방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저평가를 받던 1기 시절때와는 달리 프나틱의 시즌 1 챔피언십 우승 이후로 8년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기록한 유럽팀이 되었다. 이어서 서머에서도 우승을 달성하고, FPX에게 패배하기 이전까지는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역대 최초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76]이라는 대기록에 근접했었다. 그리고 2020 스프링 때는 퍽즈와 캡스를 미드-바텀 라인으로 서로 스왑하는 강수를 보이면서도 다시 우승을 차지하고, 서머에서는 원래 라인으로 돌아가 불안함을 노출하는 상황에서도 두 번째 4시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LEC 역사에 길이 남을 팀으로 남게 되었다.

7.1.4. 배제된 팀

본인들 지역 리그 내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할 경우, 이전까지는 리그 왕조 건설에 성공했다라고 평할 수 있었으나, 앞선 팀들과 비교해봤을때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거나 여러 단점들이 튀어나오는 팀들 위주로 작성되어 있다.
  • Fnatic: 2013 스프링~2014 스프링
FNC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월드 챔피언십 초대 대회였던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1 챔피언십 우승 팀이자 EU 스타일의 창시자인 엑스페케를 중심으로 초창기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를 지배했던 팀이다.

LEC 역대 최다 결승 진출팀이자 롤드컵 역대 최다 진출팀으로 유럽 최고의 근본팀으로 불린다. LCS EU가 창설되자마자 3회 연속 우승을 이뤄내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판 최초의 쓰리핏을 달성한 팀이 되었지만, 2013 월즈 4강과 2014 월즈에서 그룹 스테이지로 탈락하게 되고, 로스터 전면 변경으로 팀에 대격변이 일어나게 된다.
새롭게 리그에 참가했던 16 스프링 당시 승격팀이었기에 세간의 저평가를 받았었고, 하위권 전력 팀들 중 변수가 많은 팀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퍽즈 트릭을 중심으로 승격팀 돌풍을 일으키며 기적적인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신흥강호로 올라선데다가 팀 특유의 트래시 토크로 악동 이미지도 만들어졌다. 16 서머에서는 유럽 리그의 질적저하와 하향평준화로 어지러운 상황이 된 가운데 역시 어지러운 경기력을 보여주면서도 개인기량과 특유의 한타력은 건재했던 G2가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MSI와 월즈에서 처참한 경기력으로 역대 메이저 지역 리그 1시드팀 중에서도 손꼽히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았기에 유럽 안방에서나 먹히는 팀이라는, 소위 '암흑 군주'라는 오명으로 저평가를 받았다. 17 스프링에도 유럽 리그 질적 저하의 최대 수혜자 소리를 들었지만 어찌됐든 3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MSI에서 분전하여 결승까지 진출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내는데 성공했다. 17 서머에는 정규시즌 휘청했지만 포스트시즌에 각성하여 유럽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롤드컵에서 또 다시 조별 탈락을 기록하고 로스터도 퍽즈를 제외한 전원과 계약 종료되는 등 리그 내 강세와는 달리 두드러지는 국제전 약세로 인해 암흑군주팀이라는 오명 역시 굳게 쐐기가 박히게 된다.
약칭 TSM. 시즌 1때부터 활동한 유서 깊은 팀이며, 북미 최대 팬덤을 가진 팀이다. 비역슨이라는 전설적인 선수를 필두로 LCS NA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던 팀이다. 쓰리핏을 이뤄낸 시기에는 비역슨과 함께 북체롤 후보로 불리는 더블리프트까지 영입하여 압도적인 전력을 갖췄다. 2013 스프링부터 2017 서머까지 전대회 결승 진출로 무려 10회 연속 결승 진출을 이뤄내고 LCS 역대 최다 우승을 거머쥔 전설적인 팀이다.

2016 서머 정규시즌에서 1옵션 비역슨의 캐리와 특급신인 바이오프로스트의 활약에 힘입어 팀원 전체적으로 좋은 폼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했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17승 1패를 기록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경쟁팀을 체급 차이로 찍어눌렀다. 아직까지도 LCS 역대 최강의 단일시즌을 보낸 팀으로 손꼽힐 정도.[77] 북미 역대 최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고도 월즈에서 조별리그 3승3패로 탈락해버렸지만 그래도 유럽팀은 이겼다. 17 스프링에서는 전시즌만큼 압도적인 포스를 보이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북미팀 중 가장 뛰어난 개인기량을 가졌다는것을 증명하며 경쟁자 C9을 제치고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7 서머에는 초반에 휘청했음에도 팀원들이 폼을 되찾으며 아슬아슬하게 정규시즌을 우승했고, 포스트시즌에서 여유롭게 쓰리핏을 달성하였다. 다만 이렇게 북미 최초의 3연속 우승팀이라는 기록과는 달리 MSI, 월즈 모두 타이 브레이커 끝에 그룹 광탈을 기록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약칭 TL. 2017년 이전까지 리그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결승 진출에는 번번이 실패한 팀이었고, 17 스프링~서머에서는 강등권을 전전하는 약팀이었다.

하지만 2018 스토브리그에서 임팩트, 더블리프트 등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들을 영입하고 순식간에 팀의 체급과 벨류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그간 소수의 몇팀이 군림하던 우승 경쟁 체제를 끊을 북미 팀으로 평가받았다. 18 스프링 정규시즌에는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4강 징크스를 뚫고 타팀을 압도하며 팀 첫 우승을 차지했다. 18 서머에서 메타 대격변과 북미팀들의 메타 적응실패로 대혼돈이 일어나는 가운데 더블리프트의 캐리를 앞세워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렇듯 2018년 새로운 북미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MSI와 월즈에서 크게 실패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9 스토브리그에서 코어장전 젠슨을 영입하였다. 18년보다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으며, 결승에서는 패패승승승으로 기사회생하며 3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또 다른 팀으로 남게되었다. 이렇게 진출한 MSI에서 그룹 스테이지 내내 헤매다가 4위 막차를 타며 기대가 없었으나, 4강에서 당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던 IG를 3:1로 때려잡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셧아웃 패배하고 준우승하긴 했으나 4강에서의 업셋은 18년 롤드컵 RNG와 G2의 8강과 함께 역대 롤판 최고 업셋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어진 19 서머에서 계속되는 포스트시즌 접전을 뚫고 4연속 LCS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해당 기간 내의 월즈에서의 성적이 매우 좋지 않다.
  • T1: 2019 스프링~2020 스프링
2018년도 암흑기 이후 , 마타, 테디 등을 영입해 슈퍼팀을 완성시킨 T1은 정규시즌에서는 부침이 있기는 했으나 결국 포스트시즌의 T1을 보여주며 LCK 3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선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2019 MSI에서는 1557이라는 굴욕을 겪기도 했으며, 4강에서 G2에게 무너지면서 국제대회 진출시 최소 결승을 가던 기록마저 깨지게 되고, 월즈에서도 4강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또다시 G2에게 무릎을 꿇으며 국제대회 우승컵을 하나도 들지 못했다. 이후 2020 스프링에서는 칸나의 활약을 앞세워 우승을 하였으나 MSI 대체 대회격으로 열린 MSC에서는 1승 2패로 탈락, 서머 시즌 4위와 롤드컵 선발전까지 패배하며 시즌이 끝났다. 또한 LCK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그동안 정규시즌 1위를 달성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약칭 RNG. 2018년도 그랜드 슬램 실패와 2019년 월즈에서 떨어진 이후부터 2020년까지 암흑기를 보내다가 2021년 스프링에서는 FPX를 논란을 일으킨 MSI에서는 담원 기아를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서머 우승 실패 및 월즈 3시드로 진출해 녹아웃 8강전에서 EDG와의 졸전 끝에 탈락, 2022 스프링에서는 TES를 또 한번 논란이 많던 MSI에서 T1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서머 우승 실패 및 월즈 4시드로 진출해 녹아웃 8강전에서 T1에게 완패당했다.

이 팀은 여타 3회 리그 우승 팀과는 다르게 16~17 SKT와 마찬가지로 MSI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해당 목록에 등재되었다. 특히나 2022 MSI 우승 직후 공식 글로벌 채널의 방송 송출 마지막 삽화 사진에 "The Dream Chaser, The Dynasty Builder". 풀어서 번역하자면 "왕조 건설이라는 꿈을 쫒는 팀"으로 표기될 정도로[78], 향후 행보를 어떻게 보내냐에 근거해 왕조 건설 여부를 주목받던 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팀이 봄이 지나고 나면 성적이 떨어지고 힘을 못쓰는 팀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2021~22년까지 MSI와 월즈에서 각종 논란과 사건사고를 일으킴으로써 전세계적인 악당팀이 되었고, 월즈 이후에는 중국 내부 여론에도 비판을 넘어 온갖 비하와 각종 오명을 한꺼번에 받게 되고, 결국 2023년에 팀 로스터가 와해되었다.[79]
GEN 혹은 Gen.G라는 약칭을 쓰고 있는 팀. 22년도에 도란-피넛-쵸비-룰러-리헨즈라는 도넛츄러스라는 슈퍼팀을 결성해 스프링 시즌 준우승을 기록했던 젠지는 서머 시즌에 17승 1패 +30이라는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1위로 마무리하고, 결승전에서 젠지 리브랜딩 이후 결승전에서 꺾어내지 못했던 T1을 3:0으로 잡아내며 많은 월즈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열린 월즈에서 그룹 스테이지를 패배로 시작했지만, 이후 타이브레이커 포함 6연승을 내달리며 1위로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에서 디플러스와 풀세트 접전을 가며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더니 4강에서는 사실상 룰러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부진하며 DRX에게 역대급 업셋을 당했다.

이후 2023 스토브리그에서 룰러와 리헨즈가 나가고, 그 빈자리를 페이즈와 딜라이트로 채우면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 젠지는 스프링 시즌 다시 한 번 T1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MSI에서 T1에게 2:3, BLG에게 0:3으로 패배해 국제전 잔혹사를 끊지 못했지만, 서머 시즌에서 다시 한번 T1을 상대로 결승전에서 승리해 T1, 디플러스에 이어 LCK 3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작년에 이어 LCK 1시드 자격으로 자국에서 열리는 월즈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월즈에서 스위스 스테이지 3R만에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녹아웃 스테이지로 진출했다. 정말 이 과정에서 보여준 경기력도 매우 좋았기에 이번에야말로 국제전 잔혹사를 끊을 수 있을거라고 많은 이들이 기대할 정도였고, 특히 상대가 스위스 스테이지를 간신히 뚫어낸 BLG로 결정되고 같은 브라켓에 NRG와 WBG가 포함되자 최소 결승까지는 쉽게 갈 수 있을거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이 탕후루라는 별칭으로 부르던 조에 배정되었던 젠지가 럼자오자레 참사을 당하자 온갖 비판, 비난, 조롱을 들으면서[80][81]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는 그림으로 이어졌다. 8강 1세트부터 시작되었던 불길한 조짐에 화룡점정을 찍은 2세트 럼자오자레, 2021년 4강 EDG전이 떠오르는 '5연 자르반', 이번 월즈 부동의 1티어 오리아나가 풀려도 끝끝내 픽하지 못하는 선수의 좁은 챔프폭 ,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 이해할 수 없는 우틀않과 졸전을 보인 끝에 BLG에게 2:3으로 패배, 더 나아가 나진 화이트 실드 이후로 3315일만에 한국팀이 5중국인 팀에게 패배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고로 2022-23 젠지는 22 서머 우승과 그 해 스토브 리그에서 상체를 그대로 은존시키면서 하체를 신예들로 구성해 그 해의 리그를 전부 제패한 쓰리핏 팀으로 남게 되었지만, 국내를 호령한 것과는 달리 국제전에서 기대치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곧장 드러났다. 또한 그동안의 역사를 통틀어 LCK 1시드 자격으로 월즈에 진출했던 팀들 중 가장 최악의 팀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되었고, 이후 스토브리그에서 쵸비와 페이즈를 제외한 기존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이듬해, 기인-캐니언-쵸비-페이즈-리헨즈로 로스터가 재편성된 젠지는 스토브 당시 T1과 한화생명보다 순위가 낮을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스프링 시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해 LCK 역사상 최초로 포핏을 달성하며 리그 한정 최고의 왕조에 등극하였다. 다만 최근 몇년간의 국제전에서의 부진을 씻어야 한다는 숙제가 아직 남아있다.

8. 관련 문서



[1] 사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NBA 최초의 슈퍼스타였던 마이칸이 어느 팀에서도 영구 결번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이칸은 위태로웠던 신생 NBA를 자리잡게 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고 농구의 여러 규칙 (3초룰, 24초 샷클락, 골텐딩 등)을 바꾼 장본인이었다.. 결국 조지 마이칸의 영구 결번은 재지정되었다. [2] 러셀이 은퇴하고 1974년과 1976년에 2번의 우승을 더했다. 총 8회 우승. [3] 이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2015-16 시즌에 73승으로 기록을 갱신한다. [4] 후술할 2016-17 시즌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비교가 많이 이루어진다. [5] 이후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하여 2006년에 우승을 추가하였다. [6] 10년 정도로 잡는 경우가 많다. [7]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별도의 침체기없이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플레이오프를 개근하고 그 사이 6번의 파이널 진출, 5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또 연속 우승은 없지만 밀레니엄 레이커스가 주춤한 사이 03, 05, 07 징검다리로 5년에 걸쳐 3차례 우승을 차지했기에 99년 우승까지 포함해 9년동안 4번의 우승이라는 단기간 동안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에도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8] 물론 80년대에 서부에 레이커스 이외에 2번이나 파이널에 진출한 휴스턴 로키츠도 있었지만, 2번의 파이널 진출은 상대적으로 쉬운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동부에 있었으면 정규 시즌 성적으로는 중위권 정도의 팀이였다. 보스턴,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이외에 밀워키 벅스랑 비교해도 실질적인 전력이 아래라고 보는게 더 타당했다. 그리고 로키츠는 래리 버드를 앞세운 셀틱스와 파이널에서 2번 붙어 모두 졌다.(81, 86) [9] 이후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하여 2019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0] 해당 기간의 정규 시즌에 1133승 459패로 승률 71.2% [11] 우승을 차지한 1998-99 시즌에는 50경기의 단축시즌 체제였으며 이때 스퍼스는 정규 시즌에 37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011-12 시즌은 66경기의 단축시즌이지만 정규 시즌에 50승을 거두었다. [12] 그리고 포포비치 체제하에서 스퍼스는 2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13] 2005-06 시즌부터 다섯 시즌 동안 정규 리그에서 네 번, 챔피언 결정전에서 두 번 우승한다. [14] 2015-16 시즌 정규 리그는 압도적 1위 우리은행과 연패로 6위가 된 KDB생명을 제외한 나머지 4구단이 2, 3위를 놓고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이는 구도가 되었다. [15] 슈퍼리그시절부터 포함하면 9연속 우승 [16] 7연속 우승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이다. [17] 1936~1939 시즌에 4연패, 1949~1953 시즌에 5연패 [18] 1998~2000 시즌에 3연패 [19] 20회 우승은 양키스를 제외하면 메이저 리그에서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인데 양키스는 이 기간 동안에만 20회 우승을 달성했다. [20] 이 엄청난 성적은 드래프트 도입 전 엄청난 인기로 얻은 자금으로 좋은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쓸어모아 이뤄낸 것으로, 1965년 이후 드래프트 도입으로 자금력으로 유망주 독식이 불가능해진 것이 양키스의 독주를 끊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1] 한가지 실예로 2001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7차전 혈투 끝에 마무리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애리조나의 루이스 곤잘레스한테 끝내기안타를 내주며 패했다. [22] 1972~1974 시즌에 3연패 [23] 단일 리그 시절, 현재 센트럴 리그 우승과 동급. [24] 1986~1988 시즌에 3연패, 1990~1992 시즌에 3연패 [25]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 [26] 키야마 코지, 요하라 카즈히로, 오레스테스 스트라데. [27] 소프트뱅크는 2003년 우승 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중 6회나 A클래스에 들었으며 그 중 3번은 페넌트레이스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탈락해 단 한 번도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며 타 팀 팬들로부터 가을의 풍물시라는 조롱이나 받는 신세였는데, 2011년 그 징크스를 깨고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28] 삼성은 통합 4연패 [29] 아직 조사 중인 사건을 두고 언론에서 인민재판식으로 십자포화를 날려대니 도저히 엔트리에 포함시킬 수가 없었다. [30] 예전에는 2군 팜이 두터웠다고 평가 받았으나 4연패로 인해 신인 지명 순위가 계속 밀렸고 우수한 유망주를 픽할 수 없었다. 2015년 2차 드래프트가 그 증거로 삼성 2군은 타팀에 비해 유출이 적었다. 타팀도 삼성 2군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 [31] 국내야구에는 딱 3연패만 한 팀이 없고 3연패에 성공한 두 팀은 다 4연패까지 성공하였기 때문에 좀 애매한 기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당연히 4연패가 3연패보다 훨씬 더 하기 힘들고 드문 기록이며, 실제 수많은 다른 프로 리그들의 사례를 보면 당연히 3연패를 한 구단 중 대부분은 4연패에 실패했다. 이런 다른 리그들에서도 왕조의 기준은 거의 모두 3연패 성공 여부이다. [32] 다른 프로 종목은 승률 차이가 훨씬 크다. 국내 4대 프로 리그 중 나머지 종목인 농구와 배구는 피지컬로 학살하기 쉬운 특성 때문에, 축구는 1류 선수 싹쓸이가 가능한 개방형 리그 특성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 무패 우승팀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야구는 경기 수가 100경기 이상으로 매우 많기에 높은 승률을 만들기가 더욱 어렵다. [33] 1986년부터 2019년까지 해태, 삼성이 2번 현대, SK, 두산이 1번씩으로 해체된 팀을 포함 12팀 중 5팀이나 달성했다. [34]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 [35] 이후 경기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두산이 2016년 93승으로 경신했다. 2000년 현대는 133경기에서 91승. [36] 2000년도에는 양대 리그여서 통합 우승 개념이 모호하나 자리그와 인터리그 경기수가 동일했으며 현대는 그런 상황에서 최고 승률을 기록했으므로 통합 우승으로 칭해도 무리가 없다. [37] V1 자체는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달성했지만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38] 당시 최강팀이던 현대에서 박종호, 심정수, 박진만을 차례로 빼온 게 컸다. 하지만 삼성은 정당한 권리로 FA선수를 영입했으며 현재 시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돈질의 시작은 1990년대 현대가 원조다. [39] 기존 삼성의 공격적인 팀컬러에 익숙해져 있던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식 불펜 야구는 생소했을 뿐더러 그 과정에서 배영수, 권오준, 권혁 등 많은 투수들이 혹사당했고 초반 2연패 이후 4위, 4위, 5위라는 저조한 성적, 그리고 결정적으로 양준혁에게 은퇴를 강요하는 등 삼성 팬덤에게 선동열은 좋은 감독이 아니었다. [40] SK는 이후 2011년, 2012년에도 한국시리즈에 오르며 최초로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 [41]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의 잘못이 큰데, 프런트의 많은 배려와 투자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를 비난하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고 그 결과 프런트와의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 [42] 2위 SK와 14.5게임차가 났는데 이는 85년 삼성의 18.5게임차, 00년 현대의 16게임차에 이어 역대 최다 게임차 정규 시즌 우승 3위에 해당한다. 단일 리그 기준으로는 역대 1위. [43] 14.5게임차 업셋은 역대 최다 게임차 업셋이다. [44]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리그 기준 왕조는 63-64 시즌까지지만 UCL 기준 왕조는 59-60 시즌까지고 아약스의 경우 리그 기준 왕조는 65-66 시즌부터지만 UCL 기준 왕조는 70-71 시즌부터다. [45] 1 2 3 4 [46] 이건 당시 아스널 감독과 첼시 감독이 아르센 벵거 그리고 주제 무리뉴라서 그런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위 미만의 성적을 기록한 적은 없다. [47] 2위는 세르비아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96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48] 주요 대회가 아닌, 인터토토컵 같은 정말 마이너한 대회까지 우승해본 팀은 유벤투스가 유일하다. 애초에 챔피언스 리그나 UEFA 컵 같은 대회에서 우승할 만한 강팀이라면 리그 성적이 너무 좋아서 다른 대회에는 참가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49] 더군다나 당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한, 월드컵 2연패를 차지한 최초이자 1958,1962 브라질과 함께 유이한 팀이었다. [50] 2005-06 시즌 칼초폴리로 인해 얻은 스쿠데토 포함. [51] 사실 1960년대 1964-65 시즌에 3개 대회 결승에 오르며 이탈리아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기회를 잡았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준우승하며 실패. [52] 반바스텐,굴리트,레이가르트 [53] 당시 세리에의 헤게모니는 유벤투스와 인테르가 번갈아 쥐었고 밀란은 사이에 껴있는 신세였다. 때문에 00년대 전체를 통틀어 단 한번밖에 리그우승을 못했다. [54] 사실 1970년대부터는 바이에른이 독일 원탑 클럽이라 바이에른 왕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다른 클럽들의 도전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형국이라, 바이에른의 시대를 저 시기로만 국한하는 것이 적절한가 싶기도 하나, 분데스리가 뿐만 아니라 유럽을 제패한 시기가 이 시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55] 2010년대에 빅클럽 중에서도 유달리 강하고 무적 포스를 풍기는 어나더 레벨의 세 클럽 레알, 바르사, 뮌헨을 일컫는 국내 축구팬들의 용어 [56] 미헬스가 팀을 떠나고 코바치가 맡은 시즌이었다. [57] 뮌헨의 경우 3연패는 1970년대에, 트레블은 2010년대에 각각 다른 시대에 했다 [58] 원래 5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후술할 이유로서 1992-93 시즌 우승을 박탈 당했다. [59] 결승 상대는 유고슬라비아 츠르베나 즈베즈다인데 마르세유는 승부차기에서 3:5로 졌다. [60] 현재까지 프랑스 리그 유일한 챔스 우승팀이다. [61] 당시 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까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따로 치른다는 규칙을 신설했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참가 구단의 원정 부담을 완화하며 전력 손실을 줄여 주었다. [62] 2022년 기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다 우승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 한국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의 11회다. [63] 대표와 함께 2021-2022 전북 축구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특히 2022년에는 노골적인 선수 저격, 팬 무시 등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길 경기는 비기고 비길 경기는 지고 질 경기는 완전히 져버리는 등 울산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에도 승점을 많이 쌓지 못했다. [64] 최종 우승팀은 현대가 라이벌인 울산 현대. [65] 2022~23년을 기점으로 LCK 쓰리핏을 기록한 젠지의 충격적인 월즈 탈락과 더불어 과거부터 뉴스 언론들에 의해 왕조라는 표현이 너무 자주 쓰이고 있는 것도 커뮤니티 내 논쟁에 있어 더욱 큰 원인과 발단이 되었다. 예전부터 14 삼성 형제팀인 삼성 화이트와 삼성 블루의 월즈와 리그 우승 기록을 합쳐서 왕조로 취급하거나, # 아예 롤 마스터즈라는 리그제 이후부터 비메이저로 전락한 대회를 포함해 왕조라는 표현을 썼던 것도 그렇고, #, 17 삼성 갤럭시가 월즈 우승을 차지했을때도 왕조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했던 적도 있다. # # # 또한 2021년 스프링과 LCK 쓰리핏을 달성한 서머 당시의 담원, # # 앞서 언급된 23년 서머에 LCK 쓰리핏을 달성한 젠지, # # 23 월즈를 우승한 T1에 대한 기사를 냈을때와 # # 젠지가 2024 LCK 스프링 우승으로 포핏을 달성했을 때에도 쓰이는 등 #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사례들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66] 이런 여론에 불을 지핀 팀이 Gen.G인데, 2022 서머 ~ 2023 서머의 3연속 우승을 달성했으나, 2022 롤드컵 4강, 2023 MSI 4위, 2023 롤드컵 8강이라는, 아래 T1이나 DK의 우승 시절에 비하면 너무 저조한 국제대회 성적을 거두어서 그렇다.(T1 : 롤드컵 2회 우승/MSI 2회 우승, DK : 롤드컵 1회 우승 1회 준우승/MSI 1회 준우승) 그나마 2022 롤드컵이야 DRX라는 자연재해와 만나 탈락했다라고 양보를 해도, 2023 MSI와 2023 롤드컵에서의 졸전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과 LCK의 위상을 실추시켰다는 논리까지 겹쳤다. [67] 애초에 2019 스프링 ~ 2020 스프링의 3연속 우승 당시의 T1은 롤 커뮤니티에서 왕조로 취급받은 적 자체가 없는데 Gen.G 팬들이 2022 서머 ~ 2023 서머 쓰리핏을 하고나서 왕조라고 올려치기 하면서 그럼 당시 T1도 왕조냐는 반응으로 같이 나온 것에 가깝다. 실제로 리그 쓰리핏이라는 용어 자체도 롤챔스보다 롤드컵의 권위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젠지팬이 밀기 전까지는 롤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쓰이는 사례 자체도 없었다. 타 리그의 경우에도 이 기준이 적용되어 자국 내지는 지역별 리그 기준 쓰리핏을 달성한 팀들의 사례들이 대거 예외로 빠지게 되었다. [68] 이것도 유럽과 북미가 더 어렵다. 이 두 리그는 스플릿 외에도 연간 우승팀을 뽑는 시즌 파이널 단계가 따로 존재하며, 스플릿이 아닌 시즌 파이널 3연패가 진짜 3연패가 된다. 한국 프로야구가 초창기 두 스플릿으로 운영된 뒤 통합 포스트시즌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와 비슷하다. 당연하게도 KBO에서는 스플릿을 3연속 우승했다고 3연패로 인정하진 않았다. 이 때문에 2023 서머, 2023 시즌 파이널, 2024 윈터, 2024 스플릿을 연달아 우승 중인 G2 Esports도 해당 기간 중 1회 우승이 되어 배제된 팀에도 올라갈 수 없다. [69] 리그 우승 1993~1995, 국제전 우승 1995. [70] 리그 우승 2011~2014, 국제전 우승 2011. [71] 2019 팀 리퀴드가 2019 MSI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으나 우승엔 실패했고, 월즈 성적은 계속 그룹 스테이지에 머물렀다. [72] 2016년 월즈 결승전 5세트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와 2017년 월즈 결승전 3세트 글로벌 해설 코멘터리를 참고 바람. 그리고 SKT 시절의 T1을 제외하면 전부 공식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나무위키 문서에 있는 롤e스포츠 왕조들은 T1을 제외하고 쓰리핏+국제대회 우승을 기준으로 왕조의 범주에 포함시킨 비공식적인 예시이다. [73] 2015 월즈 ~ 2017 MSI [74] 정규시즌 1위 + 플레이오프 1위. [75]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아래 논란이 있는 팀들 중 2021 스프링 ~ 2022 MSI 기간의 RNG가 더 호성적(롤드컵에서는 두 팀 모두 8강 2회에 그쳤다.)을 거두었으나, EDG의 MSI 우승이 LPL 최초의 국제대회 우승이라는 점으로 고평가를 받는 것과는 달리, RNG의 2021 MSI, 2022 MSI 우승은 MSI 기간 동안 논란이 있었다는 점에서 저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76] 스프링, 서머, MSI, 월드 챔피언십을 한해에 모두 우승하는 것 [77] 여기에 그나마 비견되는건 20 스프링 C9밖에 없다. [78] 파일:2022 MSI RNG 우승.jpg [79] 스토브 리그를 기점으로 샤오후가 웨이보로 이적하고, 서머에서는 갈라가 LNG로 갔고 밍이 팀을 이탈해 휴식기에 들어감으로써 웨이와 브리드만 남게 되었다. [80] 2023 월즈가 다시 한번 2022년에 이어 LCK 팀이 소환사의 컵을 차지함으로써 대회가 끝났지만 젠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더더욱 증폭되었고, 믿지 못할 팀이라는 말까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나오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디플러스가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던 것보다도 젠지는 더욱 더 엄청난 참사를 일으킨 팀으로 부각되었고, 켈린더 그랜드 슬램을 노리던 징동에게 1:3으로 패배해 똑같이 8강에서 탈락한 KT가 경기 후 졌잘싸라는 동정 여론을 받았던 것에 비교해서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81] 특히나 5년 전 자국에서 열렸던 2018 월즈 당시 LCK 1~2시드였던 KT와 아프리카가 8강에서 조기에 탈락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러한 사태를 2023 젠지가 더 말도 안되는 악몽으로 재현했다는 부분까지 더해져 쉽사리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한술 더 떠서 젠지가 과거 2018년 월즈 당시 1학년 5반을 찍고 그룹 스테이지 탈락으로 2013 오존에 이어 그룹 스테이지로 탈락했던 전적이 있는 것과 LCK 암흑기에 신호탄을 쐈던 팀이라는 흑역사까지 재발굴되는 등, 커뮤니티에서 2018년과 2023년을 서로 비교하거나 그 이상으로 조리돌림하는 그림까지 나오게 될 정도로 여론 자체가 극악으로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