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04:05:48

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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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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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0 박진만 [[틀:삼성 라이온즈 감독|
]] · 73 정대현 · 75 손주인 · 77 배영섭
· 84 강영식 · 85 이진영 · 90 박찬도 · 97 강명구
· 98 채상병 · # 이종욱'''
2군
71 조동찬 · 74 박한이 · 79 정민태 · 87 박희수
· 92 정병곤 · # 이흥련 · # 최일언
[[틀: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
(3군) 육성군 / 재활군
82 김정혁 · 88 정현욱 · 91 다바타
컨디셔닝 파트
00 정연창 · 72 나이토 · 81 권오경 · 83 윤석훈
· 86 한흥일 · 93 윤성철 · 95 박승주 · 96 허준환
· 08 김용해 · 09 염상철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 입대 선수 1군 엔트리 등록 선수 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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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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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sv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png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파일:키움 히어로즈 엠블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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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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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200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신현석 (1) (2) {{{#!folding (6명) 강영수
이광근 (1)
최계훈
{{{#!folding (4명) {{{#!folding (5명)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박원진 (1)
이경민 (1)
임성주
박상범
박은진
여태구
허정욱
김형주 (1)
윤형석 (1)
최광천
김경기
전일수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정민태 김홍집 최상덕 위재영 최원호
{{{#!folding (고졸)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최영필{{{#!folding (고졸) 고호봉
{{{#!folding (고졸)
박장희
{{{#!folding (고졸)
이상현 설의석
2002년 이후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에서 제외
조순권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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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colbgcolor=#EF8B01><colcolor=#F8D1A6> 연도 <colbgcolor=#F8D1A6><colcolor=#EF8B01> 2005년
이름 박진만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거상장(3등급)

박진만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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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1.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2.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3.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우승 엠블럼 V4.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8 2000 2003
2004 2005 2006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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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수 부문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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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1982 1983 1984 1985 1986
오대석
삼성 라이온즈
김재박
MBC 청룡
김재박
MBC 청룡
김재박
MBC 청룡
김재박
MBC 청룡
<rowcolor=#d0ad67> 1987 1988 1989 1990 1991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김재박
MBC 청룡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1992 1993 1994 1995 1996
박계원
롯데 자이언츠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김민호
OB 베어스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rowcolor=#d0ad67>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유지현
LG 트윈스
유지현
LG 트윈스
박진만
현대 유니콘스
박진만
현대 유니콘스
<rowcolor=#d0ad67> 2002 2003 2004 2005 2006
브리또
삼성 라이온즈
홍세완
KIA 타이거즈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손시헌
두산 베어스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2007 2008 2009 2010 2011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박기혁
롯데 자이언츠
손시헌
두산 베어스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이대수
한화 이글스
<rowcolor=#d0ad67> 2012 2013 2014 2015 2016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김재호
두산 베어스
김재호
두산 베어스
<rowcolor=#d0ad67> 2017 2018 2019 2020 2021
김선빈
KIA 타이거즈
김하성
넥센 히어로즈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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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
LG 트윈스
오지환
LG 트윈스
박찬호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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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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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0ad67> 2001 2002 2003 2004 2005
박진만
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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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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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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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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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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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용
현대 유니콘스
윤석민
KIA 타이거즈
강봉규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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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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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두산 베어스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박용택
LG 트윈스
손승락
넥센 히어로즈
차우찬
삼성 라이온즈
<rowcolor=#d0ad67> 2016 2017 2018 2019 2020
김재호
두산 베어스
유한준
kt wiz
김광현
SK 와이번스
채은성
LG 트윈스
나성범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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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표
kt wiz
이지영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
키움 히어로즈
원태인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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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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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1983 1984 1985 1986
김유동
OB 베어스 / 외야수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유두열
롯데 자이언츠 / 외야수
-[a] 김정수
해태 타이거즈 / 투수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 외야수
문희수
해태 타이거즈 / 투수
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용수
LG 트윈스 / 투수
장채근
해태 타이거즈 / 포수
1992 1993 1994 1995 1996
박동희
롯데 자이언츠 / 투수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용수
LG 트윈스 / 투수
김민호
OB 베어스 / 내야수
이강철
해태 타이거즈 / 투수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투수
구대성
한화 이글스 / 투수
퀸란
현대 유니콘스 / 내야수
우즈
두산 베어스 / 내야수
2002 2003 2004 2005 2006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 지명타자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조용준
현대 유니콘스 / 투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2007 2008 2009 2010 2011
김재현
SK 와이번스 / 지명타자
최정
SK 와이번스 / 내야수
나지완
KIA 타이거즈 / 외야수
박정권
SK 와이번스 / 내야수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2012 2013 2014 2015 201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나바로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정수빈
두산 베어스 / 외야수
양의지
두산 베어스 / 포수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
KIA 타이거즈 / 투수
한동민
SK 와이번스 / 외야수
오재일
두산 베어스 / 내야수
양의지
NC 다이노스 / 포수
박경수
kt wiz / 내야수
2022 2023 2024
김강민
SSG 랜더스 / 외야수
오지환
LG 트윈스 / 내야수
김선빈
KIA 타이거즈 / 내야수
[a]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한 한국시리즈 미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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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올스타 4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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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2위 3위 4위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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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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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위 32위 33위 35위
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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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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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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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위 17위 23위 36위
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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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위 37위 38위 39위
전준호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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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15위 19위 22위
양준혁 박용택 이병규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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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우타 거포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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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29위 30위 40위
장종훈 김동주 심정수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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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전천후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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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8위 16위 21위
송진우 구대성 김용수 임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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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 순위
}}}}}}}}} ||

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
in 2002. 6. 6. SK 와이번스 공식 홈페이지 팬 투표 선정

OF / 태평양

OF / 현대

OF / 현대

SS / 현대

2B / 청보

3B / 태평양
''' '''
LHP / SK RHP / 현대

1B / 현대
''''''
DH / SK
''''''
C / 현대


OF / SSG

OF / SK

OF / SK

SS / SK

2B / SK

3B / SSG
''' '''
LHP / SSG RHP / 현대

1B / 현대
''''''
DH / SK
''''''
C / SK
''''''
RP / 현대

보유 기록
통산 최다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1] 5개
}}} ||
박진만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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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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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ecd00>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rowcolor=#FFF>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rowcolor=#FFF>
1999
2000 2001
2002~200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7ab 75%, #074ca1 25%);"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rowcolor=#FFF>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rowcolor=#FFF>
2016
2017 2018 2019
2020~2021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 (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박해민
이원석 (임시 주장)
<rowcolor=#FFF> 2022 2023 2024~
김헌곤 오재일
피렐라 (임시 주장)
오재일 구자욱
강민호 (임시 주장)
구자욱

류지혁 (임시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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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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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00 2001 2002 2003 2004
최태원 양용모 박계원 김기태 조원우
<rowcolor=#fff> 2005 2006 2007 2008 2009
강성우 김재현 김원형 이호준 김원형 박경완 김재현
<rowcolor=#fff> 2010 2011 2012 2013 2014
김재현 이호준 박정권 정근우 박진만
<rowcolor=#fff> 2015 2016 2017 2018~2019 2020
조동화 김강민 박정권 이재원 최정
<rowcolor=#fff> 2021 2022 2023 2024 2025
이재원
한유섬 (임시 주장)
한유섬 한유섬 오태곤 추신수 김광현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2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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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박창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9)
류영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1991)
박용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3)
김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1995)
감독 대행
조창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
<rowcolor=#fff> 5대 6대 7대 8대 9대
정순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1997)
이철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신용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신용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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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11대 12대 13대
장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2009)
장효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0~2011)
감독 대행
양일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
장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2016)
성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rowcolor=#fff> 14대 15대 16대 17대
오치아이 파일:일본 국기.svg
(2020~2021)
박진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감독 대행
최태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김재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정대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rowcolor=#fff> 17대
이병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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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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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ecd00> 1대 2대 3대 4대 5대
서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rowcolor=#fff> 6대
7대
8대 8대 9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2)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1995)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1997)
감독대행
조창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
서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1999)
<rowcolor=#fff>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김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rowcolor=#fff> 15대 15대 16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원정 워드마크.svg
허삼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2022)
감독대행
박진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번
유영환
(1993~1995)
박진만
(1996~2004)
차화준
(2005~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
김재걸
(2001~2004)
<colbgcolor=#c0c0c0><colcolor=#074ca1,#5ea2f8> 박진만
(2005~2010)
김상수
(2011~2022)
SK 와이번스 등번호 7번
김재현
(2005~2010)
박진만
(2011~2015)
박재상
(2016~2017)
SK 와이번스 등번호 74번
조원우
(2014~2015)
박진만
(2016)
최상덕
(2017~202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
이종두
(2013~2016)
박진만
(2017~2022)
이병규
(202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0번
허삼영
(2020~2022)
박진만
(2023~)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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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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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김응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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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0 이승호 · 15 구대성 · 19 정대현 · 20 정민태
21 송진우 · 30 김수경 · 39 임창용 · 35 진필중
54 임선동 · 59 박석진 · 61 손민한
포수 22 홍성흔 · 26 박경완
내야수 5 김한수 · 6 김태균 · 7 박진만
18 김동주 · 31 박종호 · 36 이승엽
외야수 1 장성호 · 8 정수근 · 9 이병규
11 김기태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응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1 강병철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주성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2 아시안 게임
김인식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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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8 노장진 · 20 이승호 · 21 송진우
27 박명환 · 37 임창용 · 41 김진우
47 이상훈 · 51 조용준 · 55 정재복
포수 22 홍성흔 · 44 김상훈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김한수 · 10 김동주
14 김민재 · 16 김종국 · 36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34 이영우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3 야구선수권 대회
김재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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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1 조규제 · 17 조웅천 · 19 이강철
20 정민태 · 37 임창용 · 41 김진웅
47 이승호 · 51 조용준 · 55 김진우
포수 12 진갑용 · 44 조인성
내야수 1 장성호 · 3 박진만 · 5 정성훈 · 14 김민재
16 김종국 · 18 김동주 · 27 이승엽
외야수 7 이종범 · 33 박한이
35 이진영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김성한
투수·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조범현
수비·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정진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김인식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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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 손민한 · 17 오승환 · 15 구대성 · 21 정대현 · 26 서재응
27 박명환 · 28 전병두 · 36 배영수 · 41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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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20 진갑용 · 22 홍성흔 · 44 조인성
내야수 3 박진만 · 5 정성훈 · 6 김재걸
11 최희섭 · 14 김민재 · 16 김종국
25 이승엽 · 52 김태균 · 55 이범호
외야수 7 이종범 · 9 이병규 · 12 송지만
33 박용택 · 35 이진영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1''' 김인식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수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류중일
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류지현
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0 조범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6 아시안 게임
김재박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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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6 정민혁 · 20 윤석민 · 21 오승환
23 신철인 · 51 류현진 · 55 장원삼
59 이혜천 · 61 손민한 · 67 우규민
포수 44 조인성 · 47 강민호
내야수 1 장성호 · 7 박진만 · 8 정근우
10 이대호 · 16 박기혁 · 66 조동찬
외야수 9 이병규 · 15 이용규 · 31 이택근
35 이진영 · 62 박재홍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0''' 김재박
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9 양상문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8 김무관
작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정진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7 야구선수권 대회
김경문호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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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3 장원삼 · 14 류택현 · 17 전병호
19 정대현 · 22 한기주 · 47 권혁
51 류제국 · 61 박찬호 · 99 류현진
포수 26 박경완 · 44 조인성
내야수 2 김민재 · 3 고영민 · 7 박진만 · 8 정근우
10 이대호 · 18 김동주 · 31 이현곤
외야수 1 장성호 · 9 이병규 · 29 이택근
39 이종욱 · 53 이대형 · 69 민병헌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4''' 김경문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8 김기태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7 김광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
김경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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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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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 우규민 · 17 김광현 · 21 정대현 · 22 한기주
32 김선우 · 41 황두성 · 47 권혁
55 장원삼 · 61 손민한 · 99 류현진
포수 20 진갑용 · 44 조인성
내야수 7 박진만 · 10 이대호 · 13 손시헌 · 14 고영민
16 정성훈 · 18 김동주 · 25 이승엽
외야수 12 김주찬 · 15 이용규 · 29 이택근
35 이진영 · 39 이종욱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4''' 김경문
수석·수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7 김광수
타격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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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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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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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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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7 김용일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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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김경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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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기주 · 28 윤석민 · 47 권혁
51 봉중근 · 91 송승준 · 99 류현진
포수 20 진갑용 · 37 강민호
내야수 3 고영민 · 7 박진만 · 8 정근우 · 10 이대호
14 김민재 · 18 김동주 · 25 이승엽
외야수 15 이용규 · 29 이택근 · 35 이진영
39 이종욱 · 50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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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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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수비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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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4 박진만 프로필.jpg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0 [[감독#s-2|
]]
박진만
朴鎭萬 | Park Jin-Man
출생 1976년 11월 30일 ([age(1976-11-30)]세)
경기도 인천시 남구
(現 인천광역시 남동구)[2]
거주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범어 센트럴 푸르지오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인천서화초등학교 (졸업)[3]
상인천중학교 (졸업)
인천고등학교 (졸업)[4]
경기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졸업 불명)[5]
신체 178cm[6], 82kg, B형[7]
포지션 유격수[8]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고졸우선지명 ( 현대)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6~2004)
삼성 라이온즈 (2005~2010)
SK 와이번스 (2011~2015)
지도자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17)[9]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17~2018)[10]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작전코치 (2018)[11]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코치 (2019)
삼성 라이온즈 1군 작전코치 (2020~2021)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22)[12]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 (2022)[13]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23~)
병역 예술체육요원
(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부문)
계약 2023 - 2025 / 12억원[14]
연봉 2025 / 2억 5,000만 원
상훈 체육훈장 거상장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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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4ca1><colcolor=#fff> 가족 <colcolor=#373a3c,#ddd>배우자 고영미(1977년생), 자녀
등장곡 현대 유니콘스 시절
Jamelia - 〈Superstar〉
SK 와이번스 시절
Maroon 5 - 〈 Payphone[15]
응원가 현대 유니콘스 시절
동요 - 〈우리 모두 다같이〉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응원가 보기]
마오리족 민요 〈 Pokarekare ana[16][17][18][19]
윌리엄텔 서곡[20][21]
코요태 - 〈 I Love Rock & Roll[22][23][24]

SK 와이번스 시절
비스트 - 〈Beautiful〉[25] 듣기
}}}}}}}}} ||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수비3.2. 타격3.3. 주루
4. 지도자 경력
4.1. 지도자 성적
5. 여담
5.1. 인천의 아들5.2. 유관기운5.3. 별명5.4. 그 외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야구인. 現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KBO 리그 역사상 150홈런을 쳐낸 최초의 유격수[26]이며, 베이징 올림픽 등 국가대표 유격수였다 보니 별명이 국민 유격수였다. 번호는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SK에서 은퇴할 때까지 줄곧 7번을 달았다.[27]

2023년 기준으로 KBO 리그 최연소 1군 감독이었으나[28] 2024년 KIA 타이거즈의 새 감독으로 1981년생 이범호 감독이 취임하며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박진만/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현대 시절 삼성 시절 2011년 2012년
{{{#!wiki style="margin: -16px -11px" 2013년 2014년 2015년 }}}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000년 2002년 2003년 2006 WBC
{{{#!wiki style="margin: -16px -11px" 2006 AG 2007년 2008년 }}}
아마추어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김태균: 유격수 쪽으로 공이 가면 아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수비를 했어요. 수비로서는 대한민국 최고이지 않았나...

명실상부한 2000년대 KBO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전성기 시절 박진만은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내야수비 중 하나로 불리는 우수한 수비를 보여준 것은 물론, 특유의 펀치력을 바탕으로 하는 준수한 타격 능력을 보였으며, 유격수로서 상위권의 공격력을 보이기도 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개편 이후 스탯티즈 통산 WAR에서 역대 유격수 2위에 위치해있다. 연평균 WAR로 갈 시 김재박, 류지현, 강정호, 김하성 등 연평균 WAR이 박진만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있으나, 박진만의 진정한 진가는 20년동안 거의 빠짐없이 매 시즌 주전 유격수로 나온 내구력과 수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를 꼽을 때 김재박, 이종범, 강정호, 김하성, 오지환, 류지현과 함께 자주 언급되며 이들 중 KBO에서 유격수로 뛴 기간이 짧았던 강정호, 김하성, 이종범[29]을 빼면 역대 세 손가락에 꼽히기도 한다.

2024년 기준 현역 시절 박진만과 가장 툴,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한 선수는 박진만의 팀 핵심 유망주인 이재현이다. 물론 이재현은 아직 3년차이기에 박진만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평가. 박진만은 이재현을 두고 동나이대의 자신보다 우수하다고 극찬[30]하였으며,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도 이재현이 박진만처럼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플레이 스타일과는 별개로 날씨가 더워지면 강해지는 선수였다. 이건 서비스 타임을 보내던 현대 시절은 물론 여름성 시절에도 그랬고, 노쇠화한 이후에도 여름 기간의 성적이 더 좋은 편이다.[31]

3.1. 수비

발은 느린 편이었지만 타구 판단 능력이 뛰어나 수비 범위가 매우 넓었고, 어깨 역시 강견인 편으로[32] 15년 가까이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능력을 보였다. 2010년을 기점으로 글러브질에서 조금씩 노쇠화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33] 때문에 포구할 때의 자세가 많이 불안해졌다. 2010년 잦은 수비 실책의 원인도 이 무릎 부상 때문이었다.[34]

수비 스타일은 김재박, 이종범의 사기적인 수비 범위와 당대 리그 최고의 송구 속도를 바탕으로 한 화려한 수비와는 다른 안정감을 주는 수비를 하였다. 기술로만 치면 역대 가장 뛰어난 수비기술을 가진 선수로 보기도 한다. 독보적으로 평가 되는 부분은 공을 잡고 빼내는 글러브질이며, 공을 던지는 후속 동작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역시 역대 최고로 평가 받는다. 어떤 자세나 상황에도 공을 잡으면 아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며, 공을 잡을 때도 여유 있는 느낌으로 전해진다. 어떤 자세로 송구를 하게 되어도 송구 정확도가 높았다. 참고로 초대 WBC에 참가했을 당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들이 가장 놀랐던 선수로 한국의 박진만을 뽑았으며, 이유로 그의 수비를 뽑았다.

3.2. 타격

수비로 유명한 선수이나 평균은 하는 컨택, 나쁘지 않은 선구안과 유격수답지 않은 일발 장타력[35]으로 유격수 중에서 상당히 우수한 타격 생산성을 올린 선수이다.

데뷔 시즌인 1996년에는 20세 신인 유격수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상당히 우수한 타격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1997년부터 소포모어 징크스가 시작되며 3년 동안은 몹시 좋지 않은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1997년은 2022년 김헌곤 수준으로 타격에서의 부진을 겪었다.

그러나 절치부심하고 타격에 눈을 뜬 2000년 이후로는 굳이 수비를 제하고 타격 생산성으로만 보아도 꾸준히 평균 이상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2000년대 10개 시즌 중 6개 시즌에서 wRC+가 양수이며, 2002시즌과 노쇠화한 2009시즌을 빼면 모두 wRC+ 90 이상을 기록, 유격수 중 상위권의 타격 성적을 올렸다.

유격수 기간 동안 올타임급 퍼포먼스를 보였던 이종범이나 40홈런 유격수인 강정호엔 미치지 못하지만 통산 wRC+가 95.2, 뉴탯티즈 기준 100.1로 평균 수준이기에 보통 평균 wRC+가 90 정도쯤 되는 유격수치고는 상당히 준수한 타격을 보여주었으며, 이것도 말년 들어서 아주 심하게 깎아먹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성기의 박진만은 포지션을 불문하고 리그 상위권의 공격력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인 2001 시즌에는 3할에 20홈런을, 삼성 라이온즈 시절인 2006, 2007 시즌에는 2년 연속으로 wRC+ 140 이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몬스터 시즌으로 명실공히 평가받는 2015년 야마이코 나바로나 역시나 엄청난 타격 성적으로 눈도장을 찍은 구자욱의 데뷔 1-2년차와 비슷한 타격 생산성을 올린 것이다.[36] 특히 화룡점정인 2007년에는 wRC+가 무려 154.5로, 이는 대충 역대 3루수 시즌 중 손에 꼽는 2015년 박석민,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2년간의 김하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뉴탯티즈 기준 통산 wRC+인 100.1은 통산 기록이 집계되는 3000타석 기준으로 KBO 리그 역대 9위에 해당하며[37] 박진만의 통산 oWAR는 유격수 역대 5위에 해당한다. 즉 타격으로만 봐도 역대 유격수 중 최상위권이다.

3.3. 주루

주력은 유격수치고는 느린 편에 가까웠다.[38] 도루의 경우 데뷔 시즌인 1996년과 삼성 이적 후인 2006년엔 두 자릿수 도루를 하긴 했지만, 커리어 전반적으로 성공률이 높지 않았고 도루 시도가 20번을 넘은 시즌이 없었다.

주자로서는 단점이었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박진만의 수비센스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워낙 타구 판단 능력이 뛰어났고 타자의 타격 유형을 보고 예측 수비를 했기에 스타트가 좋아서 부족한 주력을 커버했다.[39][40]

4.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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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지도자 성적

역대 감독 전적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22 삼성 50 28 22 0 .560 7위[41] -
2023 144 61 82 1 .427 8위 -
2024 144 78 64 2 .549 2위 준우승
KBO 통산
(3시즌)
338 167 168 3 .499 준우승 1회

5. 여담

5.1. 인천의 아들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직을 맡은 지금은 퇴색되었지만, 현역 시절에는 고교 선배 김경기와 함께 인천 야구의 적장자 중 하나로 꼽혔다. 출신 성분 자체가 확실한 로컬 보이였기 때문이다. 박진만은 인천에서 태어나서 초·중·고교를 모두 인천에서 졸업한 뒤 인천 연고팀에 바로 입단한 인천야구의 확실한 성골이었다. 역대 인천 연고팀을 빛냈던 스타 중에는 인천 출신 스타들이 많았지만 대학교까지 인천에서 나온 선수는 흔치 않았다.[42] 당연히 인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눈웃음이 매력적인 귀여운 외모는 덤. 이 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올드 팬들은 집안의 막내아들 내지는 손자가 커가는 것처럼 생각하면 박진만을 응원했다.

애초부터 안정적이었던 수비에 절망적이었던 타격 실력까지 급성장하며, 당시 박진만 팬들의 지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인천 팬들로부터 모진 질타를 받은 바 있다. 현대 유니콘스 서울특별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정민태와 함께 " 서울로 가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카더라 때문. 그런데 무려 14년 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를 기념한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진만은 "당시 수원으로 가면서 한편으론 상당히 아쉬웠다."라며 "인천에서 경기하면 편안했는데 고향을 떠나 선수 생활을 하며 안정감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인천 토박이로서 인천을 위해 꾸준히 야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포부까지 전하면서 오랜 루머의 종지부를 찍은 셈.

은퇴 후, 박진만이 인천 야구에서 지니는 상징성과 그간의 활약상을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그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7번을 KBO 영구결번하자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다만 SK 와이번스에는 다른 레전드 7번 김재현도 있었고, 박진만이 그의 번호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명성이 조금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어서 더 지켜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5년 12월 현재 팀 공식 홈페이지 상으로는 박재상이 7번을 가져간 것으로 되어 있어 영구결번은 어려울 듯. 그리고 솩갤러들은 왜 저딴 놈이 7번을 물려받았냐며 가루가 되도록 깠는데 개막하고 보니 그 물려받은 놈이 엄청 잘 하고 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이후 인천 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은 박경완이 되었다.[43] 사실 가장 인천 순혈주의에 맞는 것은 박진만이 맞는데 박진만은 선수 경력 중간에 삼성에 왔었고 코칭스태프 경력 역시 삼성에서 주로 쌓아, 은퇴 이후로는 SK색이 옅어졌다.

2024시즌 초, 삼성이 SSG전에서 부진하자 '나는 인천 사람이니까...'와 같은 식으로 박진만을 놀리는 밈이 생겼다. 그러나 이후 SSG전 5연승을 달성하자 어느 정도는 사장되었다.

5.2. 유관기운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우승반지를 6개[44] 받았다. 특히 2003년과 2004년에 현대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하고 삼성으로 이적해 2005년과 2006년에 또 다시 2년 연속 우승반지를 가져가면서 4년 연속으로 우승반지를 껴봤다. 다만 이 기록은 삼성 왕조의 등장으로 아주 희귀한 기록은 아니게 되었는데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반지 6개만 되어도 충분히 반지캡터라 부를 수 있었다.[45] 그런데 2011~2014년, 삼성이 4연패를 하면서 배영수, 박한이, 진갑용 등 삼성의 고참 선수들이 대거 6~7개의 반지를 갖게 되니 박진만의 기록은 다소 평범해졌다. 특히 배영수가 2019년 두산에서 마지막으로 8번째 우승반지를 끼고 은퇴하면서 2개 팀 출신으로 반지 최다도 아니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반지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박진만이 현대-삼성-SK로 이어지는 당대의 강팀에서 모두 뛰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했을 때는 대놓고 현대의 핵심 전력이었고, 삼성의 우승을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박진만은 감독 취임 때 자신이 상위권 팀에만 뛴 사실을 언급하며 삼성의 목표는 무조건 우승이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5.3. 별명

박진만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만두이다. 뜻을 궁금해하는 야구팬도 있는데 순수하게 이름(박진'만두')에서 따온 것이다. 친구 이승엽은 오래 전에 인터뷰에서 '은퇴하면 만두집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기도(...) 그래서인지 삼성 감독 취임식 때도 구단에서 만두를 준비해 나눠줬다. 오승환은 식사 메뉴로 만두가 나올 때마다 박진만을 의식하는 모습. 이 만두라는 별명은 응용하기도 쉬워 만두신, 명인만두를 거쳐 SK와의 계약으로 탄생한 고향만두, 화나면 김치만두, 이병규와 있으면 만두라면, 무언가 잘못하면 터진 만두에 잘할 때는 대왕만두 등등이 된다. 김헌곤 유니버스의 등장 이후로는 비비곤이라는 별명도 탄생했다. 그 외에도 수비만, 삐삐밴드[46]가 있고 중계진이나 언론에선 주로 '명품 유격수'라는 별명을 사용해 그의 수비를 칭찬했다.

2023년 삼성 감독을 맡으면서 김헌곤과 비슷하게 부정적 별명들이 우후죽순 붙었다. 감독대행 시절 좋은 성적으로 호평받았으나 2023년 5월부터 루징시리즈를 반복하고 한달 반의 짧은 기간 동안 승패마진 -10을 달성하자 루징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외에도 데이터를 전혀 보지 않는 감야구를 통한 투수 교체를 한다는 점에서 다트야구, 성급한 교체판단에 따른 조급만, 심판의 오심에 대한 부족한 항의라는 점에서 박수만, 인터뷰로 선수탓만 한다고 남탓만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비시즌에는 위르겐 클린스만의 클린스만호가 아시안컵에서 막장 경기력으로 4강 탈락하자 박진스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근에는 딱히 부정적 별명으로 불리지 않고 까여도 그냥 만두, 돌진만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삼성 감독 시기부터 언론에서는 박진만을 "국민 유격수"라 칭한다. 아무래도 부정적 별명은 물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만두 역시 뭔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기는 가벼운 표현이라 그의 선수 생활을 가장 잘 설명하는 별명으로 칭해지고 있다.

5.4. 그 외

  • 오지환이 삼진 1,005개를 기록하기 이전에 유격수 중에서 통산 삼진이 1,003개로 1위였다.[48] 박진만은 20시즌이나 뛰었다 보니 그만큼 누적 기록도 높을 수밖에 없고, 적게 나온 시즌을 감안해도 대략 한 시즌당 60~70개의 삼진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삼진이 많은 타입은 아니다.
  • 가톨릭 신자였다는 말이 있다. 마침 후임 유격수 김상수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 아무튼 이 사실 때문에 불암콩콩코믹스에서 (가톨릭 신자라) 예배를 안나왔다는 이유로 이만수가 박진만을 향해 총을 쏴서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이외에도 플옵 편에서 스파이라고 하면서 총을 쏴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 LG 이병규와 국대를 자주 가고 야구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여 친해졌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결혼식이 겹칠뻔했는데 다행히 이병규의 결혼식 다음 날 결혼했다고. 감독이 되면서 이병규를 수석코치로 데려왔다. 2024년에는 이병규와 같이 항의하러 나오는 모습이 쓸데없이 칼군무라 화제가 되었다. 패트와 매트 실사판이라는 반응. #
  • 야구를 시작하기 전 어렸을 때의 장래희망은 파일럿이었다고 한다.
  • 동갑내기 이승엽과 친구이며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나이에 데뷔했지만 이쪽은 고등학교 때 1년 유급을 하여 데뷔가 1년 늦었다. 선수 시절 때는 서로 삼성과 현대의 대표 선수로 경쟁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국가대표로 같이 뛰기도 했고, 서로 내야 수비를 보는 상황에서 베이스로 출루를 하면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아쉽게도 박진만이 삼성에서 활약했을 때 이승엽은 일본에서 뛰었고 이승엽이 국내 복귀를 했을 때의 박진만은 이미 SK 선수로 활동 중이라, 한 팀에서 뛰지는 못하였다. 그러다 이승엽이 커리어 말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박진만이 팀의 코치가 되어 선수와 코치로 한솥밥을 먹긴 했다.
    이후 이승엽은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박진만은 삼성의 정식 감독이 되어 2023 시즌부터는 한 팀의 감독으로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 둘은 리그에서 가장 극도의 올드스쿨형 감독에 훈련을 중시해 각 팀 선수들에게 지독한 특훈을 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49] 재미있게도 이승엽은 대구 야구의 상징격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구단인 두산의 감독이고, 박진만은 삼성 선수 경력이 있긴 하지만 인천 야구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대구 구단인 삼성의 감독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감독 자리에 오르자 이 둘과 거의 비슷한 성향의 김성근 감독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2024년에는 둘 다 자신의 모체 팀에게 친정사랑을 시전[50]하고 있어 스파이 이 퍼지고 있다. 그나마 박진만은 SSG전 5연승을 달리며 친정팀과의 상성 문제를 극복한 모습이지만, 이승엽은 이미 기록한 성적부터가 2승 10패(...)라 이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으려면 남은 경기를 다 이겨야 한다.
  • 유격수 출신 감독이라 그런지 내야수들에게 수비 훈련을 많이 시키고, 선수들도 실제로 성장한 모습이라 수비 면에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가 펑고치는 모습을 직접 보자. 박진만은 프로 초년병 시절 김재박 감독의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펑고를 많이 받았으며 그 결과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한 유격수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김재박이 박재홍의 유튜브 채널에서 술회하기를 한 단계 더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박진만의 성격이 온순하고 느긋하여 안주하는 듯 보이자, 본인이 직접 맹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 2022년 8월 18일 한화전에서 원형탈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카메라로 보여주었다.[51] 탈모가 있는 것치고는 동안인데 4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주름이 없고 매끈해서 모자를 쓰면 선수 시절과 큰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 다만 옛날보다 살집이 붙긴 했다.
  • 배우 허정도와 닮았다. 야구 선수 중엔최정, 젊은 시절엔 삼성의 이재현이 보인다는 의견도 꽤 있다.
  • 팬 서비스는 매우 좋은 편. 사람도 좋고 야구도 잘한다는 말을 듣던 선수 시절에는[52]매우 좋았고, 감독으로서 평가가 극심하게 떨어지고 비호감 행동을 반복해 민심을 잃었던 2023년 시점에서도 팬 서비스는 상당히 좋았다.
  • 리더십이 좋은 편인지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삼성과 SK에서 주장직을 역임했다. 삼성과의 재계약 당시에는 아예 차기 감독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 2008년 기사인데 정확히 15년이 지나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 선수때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감독으로서 인터뷰 시 말을 저는 등 언변은 좋지 못하다.

6. 관련 문서


[1] 김재박과 타이 기록이다. [2] 인천시 직할시로 승격된 것은 박진만 출생 이후인 1981년이며, 남동구가 남구에서 분구된 건 1988년이고, 모체였던 남구는 2018년에 미추홀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중 박진만이 태어난 곳은 그가 태어날 당시엔 남구였으나 현재는 분구되어 남동구가 된 곳이다. [3] 인천청천초 축구부로 뛰다가 4학년 때 전학. [4] 인천고 2학년 시절 무릎 부상으로 1년 유급. [5] 03학번, 프로생활 중에 입학했으며 졸업여부는 불명이다. 기사 [6] 현역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오승환과 큰 차이가 없다. [7] # [8] 20년의 선수생활 중 마지막 시즌인 15시즌을 제외하면 모든 시즌을 유격수로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왔고 마지막 시즌도 유격수로 150이닝 가까이 소화했다. 데뷔시즌인 1996시즌부터 2009시즌까지 거의 15년 동안 유격수로만 출전했다. 통산 1993경기 중 1861경기를 유격수로 출전했다. [9] ~4월 27일 [10] 2017년 4월 28일~2018년 6월 25일 [11] 6월 26일~ [12] ~7월 31일 [13] 8월 1일~ [14] 계약금 3억원 / 연봉 총액 7억 5,000만 원 / 옵션 1억 5,000만 원. [15] I'm at a payphone trying to call home All of my change I've spent on you (SK! 박진만!)
Where are the times gone baby It's all wrong, where are the plans we made for two (SK! 박진만!)
[16] 박진만을(박진만을~)~사랑해요(사랑해요~)~삼성의 박진만~사랑해요~*4 [17] 가사 때문에 삼성 팬들 사이에서도 김용일의 최악의 응원가로 손꼽히는 노래이기도 하다. [18] 2009~2010 정규시즌에 사용되었으나, 응원가가 하도 비판을 받았는지 김용일이 2010 시즌 중간에 쓰다가 조용히 사장시켰다. 이후 박진만 타석엔 타자 공통 응원가만 사용되었다. [19] SK 와이번스의 전 외야수 박재상의 응원가이기도 한데, 박진만은 그 뒷부분을 쓴다. 사족으로 박진만의 SK 와이번스 7번은 박재상이 물려받았다. [20]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날려라 박진만 날려라 [21] 2005~2007년까지 사용 [22] 박진만 안타를 쳐주세요 박진만 안타를 쳐주세요 박진만 워오오오×2 [23] 2008년,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사용 [24] 박기혁의 과거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응원가, 이지영 키움 히어로즈 응원가와 같다. [25]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26] 이종범 장종훈이 유격수 출신이긴 하지만 포지션 변경으로 인해 유격수로서 쳐낸 홈런은 150홈런에 미치지 못한다. 대형 유격수라 불렸던 홍세완은 무릎부상으로 인한 짧은 커리어로 인해, 김하성 강정호는 해외진출로 인해 달성하지 못하였다. 오지환이 2024 시즌 종료 기준 154홈런으로 역대 두 번째 유격수 150홈런을 달성하였다. [27] 이 7번은 삼성에서 역시나 유격수인 김상수- 이재현이 차례로 물려받았다. [28] 동갑인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보다 50일 늦게 태어났다. [29] 다들 해외진출 경력이 있으며 리턴한 이종범은 2기부터는 외야수로 변신했다. [30] 물론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타격은 일단 더 빨리 성장하고 있기는 하다. 박진만의 경우 데뷔 초기에는 타격이 잘 되지 않았고 수비 실수도 있어서 마음고생을 겪었으며, 김재박의 특훈 끝에 수비가 안정화되었고 2000년 즈음부터 공격까지 살아나며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각성했다. [31] 다만 감독으로써는 여름만 되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2023년 6월 팀의 부진과 더불어 2023년 8월에는 지나치게 선수를 혹사시켰으며, 혹사가 줄어든 2024년에도 6월 초 이해할 수 없는 기용이 여럿 나오고 있고 6월 말 여러 문제점이 터지며 팀이 부진하고 있다. [32] 어깨가 약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의 동영상 같이 어깨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수비를 보이며 완전 빠지는 코스를 처리한 6분 19초의 수비는 승부를 포기했거나 악송구가 되었을 것이다. 김재박 이종범이 던지는 유형의 빨랫줄 송구와는 느낌이 다소 다르다. 신인 시절 송구는 이종범과 같은 류의 빨랫줄송구를 보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유가 붙는다. [33] 이는 본인의 노쇠화도 있지만 그가 뛰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옛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그라운드에 악명 높은 카페트식 인조잔디가 깔렸던 것도 한 몫 했다. 당시 대구 시민야구장은 KIA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무등 야구장과 더불어 최악의 야구장이라고 까였다. 박진만과 같은 시대에 공수겸장 유격수로 평가 받았던 홍세완도 2004년 무등경기장 그라운드가 인조잔디로 바뀐 후 고질적 무릎 부상이 심해졌고 결국 그 여파로 빨리 은퇴하게 되었다. [34] 박진만의 현역 시절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던 현대 시절 홈 그라운드는 모두 흙바닥 내야였다. 신인 시절 뛰던 숭의야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처럼 내야 전체가 흙으로만 이뤄진 구조였고 삼성 이적 전까지 뛰던 수원야구장은 외야와 내야 가운데에 천연잔디가 깔린 야구장이었다. [35] 정확히는 커리어 평균을 내보면 박진만은 메이저리그에서의 김하성과 느낌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굳이 KBO 시절 김하성과 비교하면 장타력은 김하성이 압도 우위이나, 박진만은 투신타병 시대였던 2006-2007년에 좋은 출루율을 찍으며 김하성의 KBO 시절 전성기와 비슷한 타격지표를 기록했다. [36] 다만 팀 내에 쟁쟁한 타자들이 많았고, 포지션이 체력 소모가 심한 유격수였기에 주로 하위타선, 그 중에도 9번 타자에 배치되곤 했다. 타격에서의 전성기였던 삼성 시절엔 간혹 5번에 위치했던 적도 있다. [37] 단 KBO에서 지금까지 3000타석을 채운 유격수가 22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38] 일반 야수들과 비교하면 평균을 살짝 넘은 정도. [39] 데뷔 시절 현대 감독이었던 김재박 전 감독이 박진만의 느린 발 때문에 프로의 빠른 타구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경기가 끝나고 밤마다 펑고를 시켜 타구 반응 속도를 높이려 했다. [40] 비슷하게 수비력이 좋은 유격수이지만 주력이 느린 사례로 손시헌이 있다. [41] 허삼영 감독 사퇴 후 잔여 경기 감독 대행 [42] 당장 '미스터 인천'이라고 불리던 김경기도 대학은 서울( 고려대)에서 나왔다. 그 외 양승관, 김동기, 위재영 정도가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부 인천에서 졸업한 스타다. [43] 박경완이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 전주 출신), 쌍방울 레이더스 - 현대 유니콘스 - SK 와이번스로 이어지는 커리어로 봤을 때 인천 야구의 상징 중 하나였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완전한 프랜차이즈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까지는 인천에 영구결번을 받을 만한 프랜차이즈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은퇴 후의 김광현 최정이 현재로서 확정적이지만, 출신 팜까지 따지면 김광현은 안산공업고등학교 출신, 최정은 수원 유신고등학교 출신으로 둘 다 인천 출신은 아니다. 애초에 출신까지 인천 순혈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박경완 정도면 충분히 인천 레전드로 인정받을 만하다. 은퇴 후 커리어도 SK에서 이어가고 있다. [44] 권혁, 선동열, 조동찬과 우승반지 개수가 동일. 참고로 이 분야 최강은 해태의 김정수로 해태에서 8번 진출하여 8번 우승반지를 꼈다. 뒤이어 배영수도 삼성 7회, 두산 1회로 총 8개의 우승반지를 달성하고 은퇴. 그 다음으로 역시 해태의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그리고 삼성의 진갑용, 박한이의 7개다. [45] 8개 1명, 7개 3명, 6개 2명(박진만 포함) [46] 신인시절 수비와 더불어 2할8푼을 치는 준수한 활약으로 당시 신인왕을 수상해 차기 프랜차이즈로 거론되던 박재홍과 엮어 만든 별명. 둘 다 박씨라 이니셜의 P를 딴 것이다. [47] 박진만 외에 이 때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손민한, 정수근, 장성호, 이승호(SK)가 있다.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였던 정대현은 이미 병역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병역특례와는 무관하다. 당시의 몇몇 기사에서는 정대현이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나온 것도 있으나 이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기사가 전혀 없었다. 당시 기자들이 유일한 아마추어 팀 소속 선수이니 미필이겠지 지레짐작한 것이 컸다. 나중에는 김수경도 병역특례가 아니라고 나온다. [48] 다만 오지환은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기록하는데다 겨우 10시즌만 뛰고 박진만의 통산 삼진 기록을 넘겨버렸다. [49] 실제로 두 선수 모두 우수한 재능과 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깨버릴 정도로 지독한 노력으로 크게 성장한 면이 있는데, 이승엽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명언을 남기며 훈련과 노력을 중시하는 대표적 선수였고 박진만은 현대 시절 김재박의 특훈으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각성했다. [50] 박진만은 열세 구단이 키움, SSG로 모두 현대/SK의 후신/실질적 후신 구단이며 이승엽은 열세 구단이 삼성이다. [51] 다만 현역 선수 시절부터 탈모의 기미는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 은퇴 후 코치 시절이던 2020년의 모습을 보면 탈모가 꽤나 진행됐다는 게 느껴질 정도. # [52]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가 박진만 감독에 대해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언급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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