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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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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
'''70
박진만 [[틀:삼성 라이온즈 감독| ★ ]] · 73
정대현 · 75
손주인 · 77
배영섭· 84 강영식 · 85 이진영 · 90 박찬도 · 97 강명구 · 98 채상병 · # 이종욱''' |
|||
2군 | |||
71
조동찬 · 74
박한이 · 79
정민태 · 87
박희수 · 92 정병곤 · # 이흥련 · # 최일언 [[틀: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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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 육성군 / 재활군 | |||
82 김정혁 · 88 정현욱 · 91 다바타 | |||
컨디셔닝 파트 | |||
00
정연창 · 72
나이토 · 81 권오경 · 83 윤석훈 · 86 한흥일 · 93 윤성철 · 95 박승주 · 96 허준환 · 08 김용해 · 09 염상철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1군 엔트리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
박한이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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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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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2005 | 2006 | 2011 | ||||||||||||||||||||||||||||||||||||||||||||||||||||||||||||||||||||||||||||||||||||||||||||||||||||||||||||||||||||||||||||||||||||||||||||||||||||||||||||||||||||||||||
2012 | 2013 | 2014 |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1998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00~2019)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tablebgcolor=#002561> |
KBO 리그 역대 최다안타 1위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백인천 MBC 청룡 / 103개 |
박종훈 OB 베어스 / 117개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117개 |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 112개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133개 |
이광은 MBC 청룡 / 124개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124개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131개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137개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146개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60개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152개 |
김형석 OB 베어스 / 147개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96개 |
최태원 쌍방울 레이더스 / 147개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151개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70개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156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92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70개 장원진 두산 베어스 / 170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67개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 172개 |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151개 |
홍성흔 두산 베어스 / 165개 |
이병규 LG 트윈스 / 157개 |
이용규 KIA 타이거즈 / 154개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이현곤 KIA 타이거즈 / 154개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168개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172개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74개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74개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58개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72개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201개 |
유한준 넥센 히어로즈 / 188개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95개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93개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90개 |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197개 |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199개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92개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193개 |
손아섭 NC 다이노스 / 187개 |
레이예스 롯데 자이언츠 / 202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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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다안타왕은 1990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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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역대 득점 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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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55득점 백인천 MBC 청룡 / 55득점 |
이해창 MBC 청룡 / 65득점 |
이해창 MBC 청룡 / 62득점 홍문종 해태 타이거즈 / 62득점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67득점 |
김재박 MBC 청룡 / 67득점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이광은 MBC 청룡 / 67득점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81득점 |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93득점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91득점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91득점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06득점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85개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13득점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93득점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94득점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12득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00타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8타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09타점 |
이병규 LG 트윈스 / 107타점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3타점 |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15타점 |
이종범 KIA 타이거즈 / 100득점 |
박용택 LG 트윈스 / 90득점 데이비스 한화 이글스 / 90득점 |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89득점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고영민 두산 베어스 / 89득점 |
이종욱 두산 베어스 / 89득점 |
정근우 SK 와이번스 / 98득점 최희섭 KIA 타이거즈 / 98득점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99득점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97득점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이용규 KIA 타이거즈 / 86득점 |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91득점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135득점 |
테임즈 NC 다이노스 / 130득점 |
정근우 한화 이글스 / 121득점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버나디나 KIA 타이거즈 / 118득점 |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18득점 |
김하성 키움 히어로즈 / 112득점 |
로하스 kt wiz / 116득점 |
구자욱 삼성 라이온즈 / 107득점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피렐라 삼성 라이온즈 / 102득점 |
홍창기 LG 트윈스 / 109득점 |
김도영 KIA 타이거즈 / 143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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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점왕은 2000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 |
OF |
OF |
O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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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
2B |
|||
3B |
''' ''' SP / CP |
1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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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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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wiki style="margin: -5px 0px" | <tablewidth=100%> 2000안타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
|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
|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
}}}}}}}}} |
300홈런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
|
최정 (2005~) 2018년 / 495홈런 |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500도루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 | }}} | ||
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
보유 기록 | |
16년 연속 100안타[1] | 2001~2016 |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득점 | 52득점 |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볼넷 | 48개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출장 | 63경기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타수 | 229타수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안타 | 57개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타점 | 28타점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득점 | 38득점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사사구 | 41개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볼넷 | 36개 |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루타 | 79루타 |
박한이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 ||||||||||||||||||||||||||||||||||||||||||||||||||||||||||||||||||||
정경주 (2000) |
→ |
<colbgcolor=#228b22> 박한이 (2001) |
→ |
박봉수 (2002)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 |||||||||||||||||||||||||||||||||||||||||||||||||||||||||||||||||||||
이정호 (2001) |
→ |
박한이 (2002~2019) |
→ | 결번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4번 | |||||||||||||||||||||||||||||||||||||||||||||||||||||||||||||||||||||
박재현 (2017~2020) |
→ |
박한이 (2021~) |
→ | 현역 |
A대표팀 참가 경력 | |||||||||||||||||||||||||||||||||||||||||||||||||||||
|
|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4 | ||
박한이 朴漢伊 | Park Han-yi |
||
출생 | 1979년 1월 28일 ([age(1979-01-28)]세) |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초량초등학교 (졸업) 부산중학교 (졸업) 부산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
|
신체 | 182cm, 97kg, B형[2] | |
포지션[3] | 우익수[4], 중견수[5], 좌익수[6], 1루수[7] | |
투타 | 좌투좌타 | |
프로 입단 | 1997년 2차 6라운드 (전체 44번, 삼성)[8]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2001~2019) | |
지도자 |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야수코치 (2021)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22)[9]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22~2023)[10]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23)[11]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야수코치 (2024)[12]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24~)[13] |
|
병역 |
예술체육요원 (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
|
등장곡 | 노브레인 - Radio Radio[14] | |
응원가 |
Steam - Na Na Hey Hey Kiss Him Goodbye (2003~2017)[]안타 안타! 안타 안타! 헤이 헤이 헤이~ 박한이~ ×4][16][17] 구단 자작곡 (2018)[18] 구단 자작곡 (2018)[19][20] 구단 자작곡 (2019)[21]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가족 |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배우자 | 조명진 | |
자녀 | 딸 박수영 | |
종교 | 불교[22] |
[clearfix]
1. 개요
前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이자 現 삼성 라이온즈 코치.
외야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는 와중에도 묵묵히 대구의 외야를 지키던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라이온즈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해온 꾸준함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25][26] 또한 데뷔 이래 16년 연속으로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선수이며 이를 오직 한 팀에서만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27]
박한이는 뛰어난 선구안을 통한 출루 능력으로 크게 빛나지는 않으나 삼성 라이온즈에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높은 누적을 쌓아올렸다는 점에서 팀 레전드로 자주 언급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 스탯티즈 기준 삼성 라이온즈 한 팀으로 한정하면 영결 트리오 다음가는 누적 WAR 4위로 그에 걸맞게 영구결번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선수이며, 결정적으로 가을야구나 중요한 경기만 되면 부진하는 팀 컬러를 잠시동안 완전히 바꾸어 이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이 하나도 없던 팀을 1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무려 7회나 우승을 안겨주었다는 점, 삼성 소속으로 가장 많이 끝내기 안타를 쳐내는 특유의 클러치 능력으로 팬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다.
현재는 13년동안 한국시리즈 7회 우승이라는 KBO 리그 역사상 최강팀으로 불린 전성기 삼성 라이온즈의 핵심 멤버였다는 점, 그리고 꾸준히 활약하며 대단한 누적 성적을 올렸다는 점, 현대야구에서 가장 각광받는 스탯인 출루에 강점을 보였다는 점으로 인해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KBO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외야수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만약 박한이가 숙취운전으로 인한 불명예 은퇴만 하지 않았다면 영구결번은 사실상 확정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의 등번호 33번은 공식적 영구결번은 아니나 아직 그의 등번호를 단 삼성 선수가 없다.
별명은 "카니", "바카닉", "바카니", "킁킁이", "킁킁갑", " 하니"[28], " 하마"[29] 등 그리고 2013년 FA 계약 이후에는 시장에 거품이 잔뜩 낀 와중에 일찌감치 삼성과 비교적 싸게 재계약하면서 "착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선수 본인은 "착한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2018 시즌이 끝나고 박정진과 임창용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 가운데 현역 최고령 선수[30]에 올랐다. 하지만 숙취운전 적발로 인한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하게 되어 은퇴식마저도 치르지 못했다.[31]
2. 선수 경력
박한이의 선수 경력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통합 선수 경력: 박한이/선수 경력 |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3. 지도자 경력
불명예 은퇴를 했었던 박한이지만, 이를 아쉬워 하며 언제 코치로 오나 기다리고 있던 삼성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듯, 2021년부터 삼성의 코치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팬덤에서는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 11월 23일 구단 측이 코치 제안을 했고 이를 수락하면서 올해 안에 선수단과 인사를 나눌 예정이라고 한다.보직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허삼영 감독에 의하면 우선 육성군 코치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32] 삼성 최고의 선수들 중 하나인지라 많은 팬들은 박한이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다.
한편 코치로 복귀하면서 본인의 은퇴 후 비어 있던 등번호 33번을 달 걸로 보였지만, 74번을 새 등번호로 받게 되었다.[33]
3.1. 2022 시즌
2022년부터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가, 8월 30일부로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1군 타격코치 승격 후 현재까지 팬들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8월부터 승승장구하고 있던 강한울이 9월에는 클러치능력까지 상승하여 대체 불가 톱 타자가 된 부분에 박한이 타격코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 들리면서 더욱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경기 시작전부터 선수들의 분위기를 복돋아주는 모습, 결정적인 찬스에서 대기 타석에 있는 타자에게 직접 찾아가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연거푸 포착되며 박진만 감독대행과 함께 9월 삼성의 상승세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다년계약 후 첫 해부터 부진하던 구자욱 역시 9월 들어 타격감을 되찾으면서 박한이 코치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올라가는 중이다.
일단 타격 지표만 봐도 박한이 코치 콜업 전 삼성의 타격은 팀 타율 0.262에 그쳤으나 타격코치 교체 후 시즌 끝까지 팀 타율 0.301, 팀 OPS 0.814로 타격 지표 대부분에서 1위에 오르는 등 1군 타격코치로 최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김한수 이후 최고의 타격코치로 꼽히고 있다.
3.2. 2023 시즌
2023 시즌에도 1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아직 시범경기지만, 이성규와 김태훈이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다.4월 27일 두산전에서 6:3으로 끌려가던 중 오재일의 역전 만루홈런이 나오자 환하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코치가 되어서도 두나쌩의 기질을 이어가는 듯.
그외에도 지난 시즌처럼 대기중인 타자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다. 결과는 매우 좋다.
그러나 5월 들어 팀 타율이 2할 초반대로 떨어지는 등 타선이 급격히 식어버리고 말았다. 일단 전체적인 싸이클을 보면 팀 타자들이 잘할 때에는 괜찮지만 못할 때에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바람에 아직 평가가 갈리고 있다. 물론 삼성 특성상 사이클이 극명한 타자들이 많기에 부각되는 현상이다.[34] 팀 타선의 침체 여파인지 삼성은 2군 타격코치였던 타치바나 요시이에 코치를 1군으로 콜업해 3인 타격코치 체제[35]로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6월 9일부로 타치바나 코치가 아예 메인 타격코치를 맡게 되면서 2군 타격코치로 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타치바나 코치가 1군으로 올라온 후 삼성 타자들이 무득점 경기를 보여주고 팀 배팅이 전혀 되지 않는 등 타선이 급격히 식어버리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팀 순위마저 최하위로 추락해버리자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이럴거면 박한이 코치를 왜 2군으로 보냈냐며 박진만 감독을 향한 비판여론이 늘어졌다.
이후 타치바나 코치와 공동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오게 되었다. 다만 엔트리에는 올라오지 않았으며 1군과 동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후반기, 삼성 타선이 팀타율 1위를 유지함에 따라 박한이에 대한 호평이 다시 더 올라오고 있다.
2023년 시즌 후 이승엽 감독이 있는 두산 베어스의 타격코치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나왔으나, 이미 두산은 다른 코치들로 빈자리를 채워 코칭스태프 구성을 완료했고 단순 루머로 남게 되었다.
3.3. 2024 시즌
2024년에는 잔류군 야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다만 6월 이후 삼성 타선이 기복이 너무 심해지고 실투 딸깍 원툴로 전락해버리며 저점을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박한이를 그리워하는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그러나 시즌 종료 시점에서 삼성이 무려 21년 만에 팀 홈런 1위를 달성하고 부족한 타율,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친타자구장인 라팍의 이점을 활용하는 장타 위주의 공격력으로 리그 득점 4위를 마크하자, 이진영 타격코치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박한이를 1군 코치로 올려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김영웅, 이성규 등 1군 최약체던 타자들이 리그 평균보다 살짝 높은 OPS와 20 중반의 홈런을 만들어내면서 용병타자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공격기록을 뽑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반면 박한이 시절에는 김지찬이나 김현준[36] 정도를 빼면 야수에서 신진급 선수가 별로 나오지 않았기에 현재 코치로써의 그에 대한 지지도가 별로 높지 않다.
시즌 종료 이후 같은 팀 출신 이승엽 감독이 있는 두산 베어스로 팀을 옮긴다는 루머가 나오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박한이는 뛰어난 컨택과 선구안을 이용하여 높은 출루 능력을 오랫동안 유지한 현대야구형 리드오프로[37], 출루율이 저평가되던 시기에 활약했기에 임팩트는 부족했을지언정 생각보다 높은 승리기여도와 준수한 수비에 더해 뛰어난 클러치 능력까지 매 시즌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올렸던 외야수로 여겨진다. 또한 커리어 거의 마지막까지 큰 부상 없이 삼성의 외야를 지키며 선술했던 활약을 꾸준히 이어나갔기에 뛰어난 누적을 쌓는데 성공했다.통산 타율과 출루율이 모두 상당히 높으나, 실제로 박한이를 상징하는 기록은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38]이다. 이는 박한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삼성에서 주전으로 뛰며 팀에 기여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며, 이로 인하여 현역 시절에는 꾸준함의 대명사로 주로 불렸다.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은 선수답게 엄청난 누적에 비해 수위타자를 차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20홈런은 한 번도 못 쳐봤고 15홈런을 넘긴 적도 딱 한 번 있을 정도로 그 작은 대구 시민 운동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장타와는 인연이 없는 선수였지만, 통산 홈런은 146개를 기록했다는 점도 꾸준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또 사사구도 86개 골라낸 한 시즌 있는 게 고작이지만, 통산 사사구가 2016시즌에 1,000개를 넘었다는 점도 그러하다. 부상이 있었던 2015시즌을 제외하면 전 시즌 100경기 이상 꾸준하게 출장해 왔다.
4.1. 타격 및 주루
좋은 선구안을 기반으로 하는 낮은 기복과 꾸준함이 장점이며, 현대야구에서 선호되는 출루형 교타자로, 테이블세터에 걸맞은 선수이나 박한이 전성기 시절은 세이버가 한국에 제대로 들어오기 전이고 주력이 최상급이 아니라 톱타자로는 잘 배치되지 않았다. 통산 타율 0.294와 통산 출루율 0.383을 기록했다. 전성기에는 4할 출루율을 3년 연속으로 기록했으며 통산 타출갭도 0.089에 달한다.보통 거포들은 물론이고 교타자들도 축족 반대쪽 다리를 조금씩이나마 드는데, 박한이는 오른다리를 거의 들지 않고 타격한다. 이를 노스텝 타법으로 불리며 때문에 스윙이 간결하고 빠르며 공을 끝까지 보기 때문에 출루율이 높지만, 스윙의 타이밍이 늦어 대부분의 타구를 밀어치기로 만들어내서 장타력에 다소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탓인지 2001년 데뷔 이후 2005년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그는 잠실구장에서 홈런이 없었다.[39] 하지만 이런 점은 느리지 않은 배트스피드와 준수한 배트컨트롤로 상쇄.[40] 신인 시절엔 1번 타자로 나서다 조동찬, 이영욱 등의 다른 1번 타자감이 등장하면서 선동열 감독 하에서는 3번이나 5번 타자로도 가끔 나섰고, 류중일 체제에서는 2번으로 주로 나오고 중심타자 중 한명이 빠질 때는 6번에 배치되기도 했다.
현대야구에 걸맞은 타자이지만 출루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라 김한수 이후 소리없는 강자로 불렸다. 박한이의 단점으로는 파워, 주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 그로 인해 임팩트가 낮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박한이는 파워/주루가 떨어지는 문제로 인해 뛰어난 출루율과 꾸준함에 비해 생각보다는 승리기여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심지어 구단 수뇌부에 박한이 때문에 이긴 경기를 못 봤다는 말을 한 인사가 있었다고도.[41] 박한이가 사실상 팀 레전드라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 심하게 박한 평가에 가깝지만.
그러나 실제로 박한이는 매우 높은 통산 승리기여도를 기록한 선수로 단순히 클러치 능력만으로 설명되는 타자가 아니다. 최근에야 출루율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홍창기같은 타자들이 대우를 받으나 박한이의 현역 시절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예로 장성호가 있는데, 그 또한 출중한 실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출루율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세이버메트릭스가 정착하면서 평가가 올라갔다. 재밌는 점은 장성호와 박한이 둘 다 선구안과 그에 기반한 출루율이 꽤 뛰어난 타자면서 커리어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는 타자들인데, 장성호는 전성기 시절이 기아의 암흑기라 묻힌 감이 있다면 박한이는 같이 활동했던 팀 동료들이 너무 임팩트가 강렬하여 묻힌 감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로 인하여 연봉 인플레가 한창 심하던 왕조 시절에 KBO 역대급 노예계약을 맺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연속 세 자릿수 안타로 대표되는 꾸준함과 류중일 감독 부임 후 삼성 왕조의 주축, 2013년 한국시리즈 MVP, 무엇보다 그가 데뷔 후 삼성 라이온즈를 떠난 적이 없는 원팀맨이기 때문에 구단 관계자들의 박한이에 대한 이미지도 과거에 비해 매우 좋아졌다. 관련기사
장타력은 통산 장타율 0.412에서 드러나듯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편은 아니지만, 팀의 사정 때문에 재능이 꽃피지 못한 측면도 있다. 사실 박한이는 데뷔 초기 4년동안에는 매번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등 장타력이 절대 나쁜 타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박한이가 전성기를 누릴 때의 삼성은 이마양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타격의 팀이었다. 게다가 무지막지한 홈런 개수와는 대조적으로 삼성이라는 팀은 창단 이래로 기동력이라는 부문에 있어선 함량미달이었다. 2015 시즌 전까지 팀 통산 도루 1위가 193개의 양준혁이었다. 2015 시즌 후 김상수가 195개를 기록하며 넘어섰지만 오히려 이는 그동안 삼성이 기동력이 약했다는 것을 대놓고 증명한 것이었다. 이는 80년대 삼성의 1번타자였던 류중일의 통산 도루가 190개도 채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것이 삼성이 한국시리즈를 단 한 번도 제패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타격에는 사이클이 존재하는데다, 집요한 분석이 더해지는 포스트시즌에선 방망이는 믿을 것이 못된다는 속설이 일정부분 통한다. 하지만 기동력은 사이클이 없다. 해태가 김일권, 이순철, 이종범 같은 출중한 대도들을 앞세워 억지로 한 점 한 점을 짜내고 강력한 불펜진으로 걸어 잠가댈 때, 사이클이 떨어진 김성래, 이만수[42], 장효조 등이 장타를 날리지 못하면 삼성은 점수를 낼 방법 자체가 거의 없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80년대 삼성의 우승 실패는 김시진, 장효조라는 정규 시즌에는 엄청난 영웅들이었던 선수들이 가을만 되면 엄청나게 부진했던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로 넘어오면 투수력의 부재만큼이나 타선의 부진이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당장 93년도 한국시리즈는 3차전 박충식이 무려 181개의 공을 던지며 15이닝 완투를 하고도 그 2점을 내지 못해서 무승부. 그 후 5, 6, 7차전에서 합계 5점을 뽑았던 타선(투수진은 4점으로 막았다.)의 부진이 컸고, 90년도 한국시리즈는 (1, 4차전은 투수진이 있는 대로 털렸지만) 4경기동안 단 6점밖에 뽑지 못했다. 삼성이 4대0으로 스윕을 당한 한국시리즈가 3번인데, 셋 모두 투수진의 삽질보다는 타선이 안 좋았음을 볼 수 있다. 타선이 잘했는데도 투수들이 시리즈를 완전히 망친 건 2001년 한국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나마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던 박한이가 1번으로 이동해서 테이블세터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최대한 출루에 집중하고 1번타자 롤을 지속적으로 수행한 대가는 장타력의 약화였다.[43] 애초에 박한이의 스타일 자체가 출루형 선수라 선두타자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이나, 컨택에까지 집중하는 바람에 장타력은 다소 떨어져버렸다. 만약 장타까지 강했다면 OPS 히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선수이다.
즉 팀의 사정 때문에 장타력이 각성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야마이코 나바로같은 경우는 14시즌 1번에서 31홈런을 때리면서도 2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하며 수위급 1번으로 활약 했지만, 이는 14시즌에 박해민, 이지영, 김상수가 하위 타순에서 밥상을 차려줬기 때문에 나바로가 굳이 출루에 목 맬 필요가 없던 것이 컸다. 그리고 나바로는 그렇게 풀스윙으로 일관하면서도 3할에 가까운 타율과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미친 선구안을 자랑했던 선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사실 진정한 박한이의 최고 장점은 역대 최고 수준의 가을야구에서의 활약과 클러치 능력. 상대적으로 파워와 주루가 떨어지며 압도적으로 잘한 시즌도 없어서 세이버 스탯에 비해 저평가가 심하고 임팩트가 낮다는 평이 있는 박한이가 현재까지도 삼성의 레전드이자 삼성 올드 팬덤에게 강한 임팩트로 회자되는 원인이 바로 이것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클러치 히터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된다.
박한이는 가을야구에서 강한 타자로 유명했으며, 이전까지 가을만 가면 부진하던 팀 컬러를 잠시 바꿔 2002-2014년 13시즌동안 무려 7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특히나 두산과의 가을야구에서마다 매번 미친 활약을 하며 올드 두산 팬덤에게는 가히 악마같은 존재로 남아있으며, 클러치 능력도 출중해 노쇠화 이후에도 거의 매 시즌 WPA 양수를 기록했다. 현역 마지막 타석도 끝내기 안타였다. 그만큼 중요 상황만 되면 이상하게 강해지는 타자.
사실 알려진 바와는 달리 박한이의 통산 포스트시즌 성적은 별로 좋지 않은데, 이는 기억에 남는 몇 번의 활약을 빼면 가을야구의 통상적인 성적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 사례로 이승엽이 꼽히는데 박한이 역시 만만찮다.
대학 때나 아시안게임 대표팀 때 뛰어난 타격 실력을 보여주며 입단 후부터 주전자리를 꿰차고 1번타자로서 활약했다. 발이 느려 1번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제로 수비할 때의 모습을 보면 박한이의 발은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었다. 박한이의 발이 느리다는 평가는 주루에서 나오는데, 주루에서 본헤드 플레이가 자주 나오고 쓸데없는 기습번트라던가, 본인이 호타준족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하는 탓인지 무리한 도루를 하다가 도루사 당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44] 결정적으로 현대야구에서는 그냥 발만 빠른 선수보다 출루를 잘하는 선수가 선두타자에 와야 한다는 이론이 정착되었는데 박한이는 이 면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최고였다.
선술했듯 적극적인 주루로 인해 주루사가 꽤 있는지라 주루 면에서는 선두타자 치고 매우 나쁜 편이었다. 장타력은 선두타자임을 감안하면 평균 정도는 충분히 했다고 평가되나 진짜 문제는 주루인데, 우선 통산 RAA도루는 압도적인 꼴찌에 통산 도루성공률이 59.4%밖에 안된다. 당시부터 이미 주루만 치면 리드오프 중 최악이라는 평이 많았으며 세이버상으로도 통산 주루지표는 역대 최하위권이다. 주루센스 부족은 대학 시절이나 프로 데뷔 후나 여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7회 우승으로 대표되는 어마어마한 클러치 능력과 긴 타격 인터벌, 선구안을 이용한 수싸움 능력, 20년동안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며 기록한 상당한 누적, 코너 외야수로써는 손색이 없는 최상위권의 수비력, 세이버메트릭스의 도입으로 인한 출루율의 재평가로 인해 현재는 명실상부한 삼성의 레전드이자 KBO 리그의 외야 레전드 중 하나로 평가된다. 올드스쿨 관점에서도 높은 클러치 능력으로 인해, 세이버 관점에서도 높은 출루율로 인해 현역 시절의 낮은 임팩트에 비해 현재는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는 케이스이다.
4.2. 수비
수비력은 매우 준수하다. 타구 판단, 포구가 모두 우수했으며 희생플라이 상황에서 3루에서 홈으로 질주하는 정수빈을 정확한 송구로 잡아내는 등 어깨도 강견인 편.[45]5. 타격 준비동작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5030800233_0.jpg타격 시 준비자세가 유난히 긴 선수로 유명하며 모 스포츠신문에 따르면 평균 준비시간이 24초라는(요즘에는 15~20초 정도 걸리는 듯하다)
양 손 장갑 고쳐끼면서 동시에 발 밑 고르기 → 오른쪽 소매로 땀닦기 → 헬멧 벗어서 앞머리 쓸어올리기[46] → 헬멧 다시 고쳐 쓴 다음 왼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오른손으로 든 방망이로 홈플레이트 앞에 밑줄긋기 → 한두번 휘두르기 → 방망이를 어깨 위에 올렸다가 본격적인 준비자세를 잡으며 마무리 → 그리고 타격 |
이 동작을 매 투구마다 행하며 그 때문에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다 하여 버퍼링박, 헬멧을 벗어서 다시 쓰는 동작이 헬멧 냄새 맡는다고 하여 박킁킁이라는 별명도 있다. 셋팅의 달인이었던 박태민을 떠올리게 한다.[47] 게다가 2아웃 상태인데 3아웃인 줄 알고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가거나 공을 못 잡고 자빠지거나 뜬금없이 견제사를 당하는 등 각종 기행이 더해져 예전 김응용 감독이 한 ' 박한이는 정신병자다' 라는 말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하여, '정신병자'란 별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실제로 저 준비 동작을 생략해 본 적이 있으나 단 한번도 안타를 치지 못해서 옛날 동작으로 돌아갔다. 요새는 준비동작으로 옛날처럼 까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사실 애초부터 박한이에게 이런 버릇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부산고 2학년 재학 시절의 영상을 보면 타석에서 이렇다 할 루틴이 없었다. 이런저런 잡다한 루틴이 생겨난 것은 프로 3년차였던 2003시즌 초반부터. 당시 박한이는 타석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죽을 쑤고 있었는데 당시 코치였던 류중일 감독이 베이스에 선도 그려보고 차분하게 하라는 조언을 한 이후부터라고, 근데 정작 류 감독은 그 일을 잊어먹고 있었다고 한다.
2010시즌부터는 그의 버퍼링을 제대로 못 보게 되었다. 프로야구의 룰이 바뀌어서 타자가 준비하는 시간은 이제 12초 리미트가 걸려버렸다. 전지훈련 가서 홈플레이트만 방망이로 긋고 시작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일단 본인 왈 15초까지 줄였다곤 하고 이후로는 6-7초 걸린다고. 2010년 신 버퍼링 풀버전은 다음과 같다.
발 모았다 떼는 뜀뛰기 한번 → 타석에 진입 → 홈플레이트 긋기 → 배트 한번 휘두르기 → 허리 양쪽으로 톡톡 튕기기. |
원체 버퍼링으로 유명하다 보니 2015년 스피드업 조항이 신설되었을 때 제일 먼저 팬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사실 박한이는 신설 & 강화되는 규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데, 저 버퍼링이 죄다 타격 박스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 기사에 의하면 배트박스를 벗어나는 것이 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한다. 일단 본인은 규정에 위배되진 않으나 그 취지를 존중하여 스피드를 올리는 연습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의 기사에선 H 구단의 K 선수가 박한이보다 더 긴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댓글은 이 선수가 김태균이란 것을 다 알고 있다.
실제로 2014시즌 각 팀당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선 타자 9명씩 뽑아 총 81명의 투수의 공을 맞이한 뒤 다시금 타격자세를 취하는데 걸리는 시간 평균을 구했을 때 박한이는 놀랍게도 15.7초로 81명중 59위를 차지했다. 앞서 말했듯이 과정은 번거롭지만 타석을 벗어나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아직까지도 스피드업 하면 박한이를 이야기하며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담이지만 그 터무니없는 버퍼링 때문에 성준과 엮여서 개그가 된 적도 있다. # 또한 2013년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이여상이 이를 똑같이 따라해 웃음을 주었다.
걸스데이 유라가 따라한 박한이 타격 준비 동작. 원본은 게임 광고이다. 원본
2018년 5월 9일 경기에서는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중간에 타임요청을 하고 왼쪽허벅지 치는 부분부터 루틴을 다시 했다.[48]
2019년 3월 31일 구단 공식 유튜브에서 직접 바카니 쓰앵님의 루틴교실 동영상을 올렸다.(현재는 삭제되었다.) 그리고 헬멧 냄새를 맡는 게 아니고 눈에 땀이 들어가 경기에 집중이 안 되어서 닦는 거라고.
2023시즌에 메이저리그에 피치 클락이 도입되고 KBO 리그에도 2024시즌 도입 예정이라 현역 선수들은 더 이상 박한이와 같은 긴 루틴을 가지기 힘들어졌다.
6. 응원가
7. FA 잔혹사
박한이는 승리기여도에 비해 특유의 낮은 임팩트와 출루가 저평가되던 시절에 활약한 선수였으며, 현역 시절에는 특유의 클러치 능력으로 먹고산다는 이미지가 적지 않았기에 극악의 노예계약을 맺었다. 상술했듯 구단 수뇌부도 대놓고 박한이를 저평가했을 정도이니. 현재는 세이버메트릭스상의 재평가로 박한이의 FA계약들은 사기당했다고 봐도 될 정도의 심각한 혜자로 회자되며 이는 박한이가 삼성 레전드로 불리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7.1. 2009년 첫 번째 FA
2009 시즌 후 첫 번째 FA 자격을 얻었지만, 당시 감독이던 선동열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박한이를 내칠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 구단과의 협상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시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해 FA 시장은 유난히 차가웠으며, 팀 사정이 어려운 한화 이글스에서 영입을 시도하고자 했지만[49] 당시 한화 감독이자 전 삼성 수석 코치인 한대화가 "박한이는 내가 잘 안다"[50]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김에 따라 시장에서의 협상도 실패했다.결국 FA 미아가 되기 직전에 전 소속팀과의 협상 마지막 날인 1월 10일[51]에 1년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옵션 5,000만 원 총액 6억 5000만원 이라는 FA 치고는 적은 돈으로 삼성에 잔류했다.
7.2. 2013년 두 번째 FA
4년이 지난 2013년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번에는 아예 금액 논의도 하지 않고, 아시안 시리즈에 따라가더니[52] 이후 11월 15일 계약금 10억 원 및 연봉 4억 5천만 원등 4년간 총액 28억 원을 받는 계약으로 삼성에 잔류하였다.[53] 일단 같은 날 계약이 발표된 장원삼이 4년 총액 60억원이었던 지라 장원삼에 비해 비교적 짠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기는 많았다. 하지만 나이와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 장원삼과 박한이를 비교하면 분명 양쪽의 상품가치가 꽤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54], 1979년생, 2014년이면 한국나이로 36세가 되는 노장에게 4년 계약에 옵션 없는 순수 보장금액으로만 28억인 점을 감안하면 마냥 짜게 굴었다고 보기도 뭣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다들 4년 보장에도 성공하고, 금액 면에서도 1차 FA에서의 굴욕을 어느 정도 만회한, 그런대로 괜찮은 FA계약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적어도 원소속구단 우선협상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진짜 그랬다. 그리고 여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분명히 막 계약 할 때만 해도 이랬다. 그런데… |
안타깝게도 2013년 FA 시장은 역대 FA 사상 유례가 없었던 희대의 인플레이션이었고, 그 뒤에 계약한 선수들의 계약 규모는 다음과 같다.
- 이대수: 4년 총액 20억 원(한화 잔류)
- 정근우: 4년 총액 70억 원(SK → 한화)
- 이용규: 4년 총액 67억 원(KIA → 한화)
- 이종욱: 4년 총액 50억 원(두산 → NC)
- 손시헌: 4년 총액 30억 원(두산 → NC)
- 이대형: 4년 총액 24억 원(LG → KIA)
- 최준석: 4년 총액 35억 원(두산 → 롯데)
1주일 정도만 시간을 가지고 지켜봤더라면 최소 15억 정도의 계약금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이 중 정근우와 이용규는 강민호, 장원삼과 함께 2013년 FA Big 4로 꼽히는 상황이었고[55] 나이도 아직 젊은 편인데다가 노리는 팀들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박한이와 어느 정도는 금액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대수나 손시헌은 뭐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대수와 손시헌은 일단 유격수라는 수비 부담이 매우 큰 포지션이고, 계약한 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계약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 두 선수들의 운이 좋은 것이지 박한이가 불운한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거기에, 이대수의 경우 외부 FA로 인한 팀 케미스트리의 손상을 막고 짠돌이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답이 나오지 않는 암흑기에 그나마 좀 사람같이 야구했던 선수 [56] 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으며, 손시헌과 이종욱은 신생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멘토가 될 수 있을 만한 베테랑을[57] 구하는 동시에, 취약 포지션에 대한 보강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
최준석까지만 해도 수긍은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올 정도로 망가진 타선에서 홀로 사람역할을 하던 손아섭의 뒤를 받쳐줄 사람[58]이 필요했던 걸, 그리고 당 시즌 포스트 시즌에서 우즈가 생각 날 정도로 미친 활약을 보여준 걸 감안하면, 부상위험이 좀 크고 페넌트레이스에서 보여준게 그렇게 크지 않을 지라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계약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가격이 비싸지 않나 의문이 들긴 하지만, 최준석의 영입 자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대형까지 오면 이미 시장이 미쳤다는 사실이 보인다.[59] 순수 보장액만 22억. 박한이의 나이를 거론하면서 충분한 계약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당장 이대수가 1981년생, 손시헌이 1980년생이다. 딱히 나이를 따지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최근 3년간의 타율을 보면 오히려 가장 나이 많은 박한이가 제일 양호하다. 박한이는 2011년에 주춤했다가 2012년부터 다시 반등하고 있는데, 나머지 둘은 2011년 이후로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 급기야 이런 기사들까지 나와버리고 말았다.
이전의 FA와 비교했을 때 참고할 만한 선례로는 LG의 박용택, 이진영, 정성훈의 직전 FA 계약이 있을 것이다. 나이도 비슷한 이 셋이 모두 4년 34억이라는 금액에 LG와 사인한 전력이 있는데, 통산 성적이 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박한이가 4년 계약에 순수 보장금액 28억이면 충분히 좋은 계약이 맞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거품이 잔뜩 낀 FA 시장에 박한이가 동참을 하지 않은 것일 뿐. 그러니까 계약 자체만 따졌을 때는, 이전까지의 선례와 비교해봤을 때 적정한 보장금액에 4년 계약까지 합의한, 이전 FA에서 홀대받았던 프랜차이즈를 예우해준 계약이 맞는데, 단지 며칠 뒤에 KBO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역대급 거품시장이 열린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건 그냥 FA에 있어서만큼은 박한이가 운이 너무도 지독하게 없었고 영원히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14년 FA 시장에서 팀 동료 조동찬이 박한이와 동일한 금액인 4년 28억에 잔류함에 따라 일격을 날렸고, 동갑내기인 좌타 외야수 박용택이[60] 4년 50억[61]을 받으며 또 한번 결정타를 맞았다(...) 급기야 심수창의 뒤를 이어 하니 지수라는 말까지 나왔을 지경. 그리고 지난 2년간 방어율 7점대를 찍으며 완전히 폭망한 송은범도 4년 34억을 받으며 쐐기를 박았다. 다만 나주환이 1+1년 5억5천만으로 자신의 09년도 FA와 비슷한 계약을 하게 되면서 위안으로 삼게 됐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 해, 자신이 2차 FA 계약을 맺을 때와 같은 나이인 동국대 3년 후배 유한준이 kt wiz와 60억 계약을 맺으면서 박한이는 다시 애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유한준은 크레이지 모드였던 직전 2년을 제외하면 박한이와 클래스 차이가 있는 선수였고, 통산으로 따져도 박한이보다 급이 높다고는 볼 수 없는 선수임에도[62] 불구하고 무려 박한이의 2배 이상의 계약을 맺은 것. 심지어 백업으로 뛰던 이원석도 삼성으로 와서 27억에 계약했다. 보상선수+보상금을 생각하면 박한이보다 돈을 더 썻다!
물론, FA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엄연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다. 1차 때도 나갔다가 미아 되기 직전에 원 소속팀과 계약했고, 2차 역시 어느 팀에서도 원한다는 기사 한줄 없던 상황에서 박한이가 미리 겁을 먹고 계약을 한것이다.
2017 시즌이 끝나면 또 한번 FA 자격을 얻지만 FA 인플레이션 효과는 받기 힘들 것이다. 이미 구단은 내외적으로 상황이 매우 암담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리빌딩 아닌 리빌딩을 해야하는 구단은 2015 시즌 후에는 박석민을, 2016 시즌 후에는 최형우를 전혀 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내보냈다. 영구결번까지도 확실한 30대 초반[63]의 그 둘을 안 잡은 구단이 불혹의 박한이를 잡는 데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일 확률은 매우 낮다. 물론 박한이가 자기 의지로 어떻게든 디스카운트를 하며 남을 확률이 높고 또 아예 FA 신청을 하지 않을수도 있으며, 그럼 당연하게도 박한이는 마지막 FA도 대박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64]
그리고 이종욱과 박석민이 NC에서 먹튀로 전락하는 동시에 이용규가 2019년 트레이드 거부+참가활동정지 크리를 받으며 2019년 회춘과 함께 박한이의 4년 28억 FA는 날이 갈수록 재평가되고 있다. 그 이후 삼성과 FA 계약을 맺은 선수들 중 박한이의 가격 대비 sWAR을 뛰어넘은 선수는 이원석 단 한 명밖에 없다.
7.3. 2018년 세 번째 FA, 하지만 본인의 포기
위 문단의 예상과는 다르게 2017 시즌 출전이 너무 적은 탓에 FA 자격을 얻지 못했고, 그 다음 해인 2018년에서야 3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팀 내 같은 FA로는 손주인, 김상수, 윤성환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미 한국 나이로 마흔이 다 된 나이 때문인지 FA를 신청해도 전년도 최준석처럼 미아가 될 위험도 있어 대부분의 팬들도 FA에 회의적이었다.그러나 결국 박한이는 다른 팀에 가지 않고 삼성에서 마지막까지 뛰겠다며 직접 FA를 포기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이 확실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FA 시장에서 노장들에게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아서 시장에 나가봤자 결과는 뻔하니 명분을 챙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팬들도 어차피 알면서도 딱히 불만일 이유도 없고 하니까. 실제로 삼성도 박한이가 FA 신청을 하지 않고 삼성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연봉을 삭감하지 않고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억 5000만원에 동결시켜주며 베테랑 예우를 해줬다.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박한이 부부 협박 사건
2015년 6월 25일 새벽에 삼성라이온즈 공식 팬페이지에 한 글이 올라왔다.[65]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박한이에게 룸살롱을 1억원어치 쏠만큼 가까웠던 글쓴이가 잠시 깜빵에 갔다온 사이 박한이의 부인 조명진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훔치는 절도죄를 저질렀다는 것. 절도죄 부분은 법원의 판결문까지 첨부해서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이어서 야갤에 연달아 2차, 3차 글이 올라왔었고, 현재는 삭제되었다.. 글쓴이는 대구북부경찰서로부터 공갈 협박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다.박한이 측 주장에 의하면 부인 조명진이 허락을 받고 한씨의 동거녀의 물품을 가져간 것을 한씨가 돈 내놓으라고 협박해서 법원까지 끌고 간 것이라고 한다.[66] 한씨는 이전에도 사기죄로 수감된 경력이 있어 돈을 노리고 올린 글이라는 여론이 힘을 싣는 중. 무엇보다도, 경찰의 조사 결과 박한이가 룸을 간다는 이야기가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명진이 물품을 훔쳐간 걸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박한이가 룸을 간다는 게시글의 내용은 완전한 허구라는 것. 관련 기사[67]
결국 2015년 8월 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가 끝난 후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의 회원 게시판에서 협박범의 사과문이 올라옴으로써, 박한이 부부는 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것으로 완전한 결론이 났다.[68]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회원 게시판에서 두번째 사과문이 올라왔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절대로 선처하지말라는 여론이다.
더불어 이것 관련으로 박한이를 비방하는 삼성 안티팬들에게도 고소 중에 있다.
결론은 박한이 부부는 이 범인의 자작극에 완전히 농락당한 셈이다.
8.2. 숙취운전으로 인한 불명예 은퇴
2019년 5월 27일 오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서 딸의 등교를 도와주고 귀가 하던 도중 접촉사고가 났다. 경찰이 현장에서 음주 측정을 한 결과 0.065%의 면허 정지 수준으로 나타났다. 박한이는 이에 앞서 2019년 5월 2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9차전[69]을 마친 뒤 자녀 아이스하키 운동 참관 후 지인들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고 밝혔다. 아직 전날의 숙취가 남아있던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 아침에 일어나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무심코 운전대를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음주운전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은퇴하기로 했다. 징계, 봉사활동 등 어떠한 벌도 성실히 이행하겠다. 팬분들과 구단에 죄송하다."
박한이는 사고 직후 이를 구단에 바로 알렸다. 그리고 고심 끝에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고, 구단은 이를 수용했다. 김한수 감독은 "나도 당일 오전에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본인이 (은퇴) 결정까지 내렸는데 내가 계속 거론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유튜브 채널인 라이온즈TV에 올라와 있던 2019년 5월 26일 끝내기 안타 영상은 삭제되었고, 구단 홈페이지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박한이의 은퇴 선언과는 별개로 KBO 상벌위가 개최될 전망이다. 규정 상 음주 접촉 사고는 출장정지 90경기, 제재금 500만원, 봉사활동 180시간 가량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한 번의 음주운전 사건으로 인해 박한이는 많은 것을 잃었다. 박한이는 19년간 오로지 삼성 한 팀에서만 뛰어온 원 클럽 플레이어로 삼성만 생각해왔으며, 삼성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많은 돈을 벌 기회를 사양하면서까지 삼성에 남고 싶어했다. 뛰어난 성적에 힘입어 화려한 은퇴식은 물론, 영구결번도 가능할 정도에[70] 향후 삼성의 코치, 감독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레전드 수순을 밟는 선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능력에 비해선 적은 돈을 받았고, 은퇴식과 명예도 챙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뒤 야구계에 복귀해서 결국 코치직은 챙겼지만.
물론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응원해왔던 선수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삼성 팬들일 것이다. 구단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 삼성도 멘붕 “영구결번→지도자, 준비했던 박한이 시나리오 물거품”[71]
그 후 2019년 5월 31일, KBO가 31일 KBO 회의실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음주운전에 적발된 박한이에 대해 심의했는데,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에 의거해 90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0만원, 봉사활동 180시간의 제재를 부과했다. 이미 은퇴를 선언한 이상 출장 정지 징계는 사실상 의미가 없단 의견도 있었지만, 코칭스탭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나마 검찰로부터 숙취운전이라는 것이 인정되었고 반성하는 태도 덕분이었는지, 비교적 관대한 처분인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되었다. #[72]
이후 목격담에 의하면 외출할 때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어두운 인상으로 다닌다고 한다. 운동은 자주 하는 편. 사회봉사활동 징계를 수성구 소재의 복지관에서 이수했는데, 해당 복지관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 그를 보거나 사인을 받기 위해 기웃거리거나 찾아와서는 박한이 선수 어딨냐고 묻는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박한이는 은퇴했지만 징계를 성실하게 수행해서 180시간 봉사활동을 완료했다. # 그리고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어도 여전히 서류상으로는 등록선수 명단에 올라 있다가 시즌 후 임의탈퇴로 은퇴처리됐기 때문에 출장정지 징계는 사실상 채웠다고 한다.[73]
이후 약 1년 반정도 자숙 기간을 갖다가, 2020년 11월 23일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복귀하게 되었다.
9. 여담
- 일각에서는 저평가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임팩트 있는 몬스터 시즌이 없는 점과 팀 역사는 물론이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배들과 동시대에 뛰었기에 주간판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는 점, 그리고 프로 입단 이후로는 국가대표 활약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저평가를 받고 있다.[74][75]
- 번번히 큰 경기에서 무너졌던 80~90년대 삼성의 선배들과 달리 가을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기록적인 면을 보면 뛰어나다고 할 순 없지만, 중요한 승부처에서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이며 단기전의 흐름을 가져오는 역할을 해냈는데, 굵직한 것들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8회 말 역전 쓰리런 (투수:
정재훈)
2013년 한국시리즈 5차전 8회 초 2타점 역전 적시타 (투수: 정재훈)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 7회 말 쐐기 쓰리런 (투수: 더스틴 니퍼트[76])
2014년 한국시리즈 3차전 9회 초 역전 투런 (투수: 한현희)[77]
2013년 한국시리즈 5차전 8회 초 2타점 역전 적시타 (투수: 정재훈)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 7회 말 쐐기 쓰리런 (투수: 더스틴 니퍼트[76])
2014년 한국시리즈 3차전 9회 초 역전 투런 (투수: 한현희)[77]
- 동국대학교 시절에는 팀의 4번타자였다. 인조잔디 공사 전의 펜스 상단에 야구공 여러 개가 꽂혀 있었는데, 박한이가 프리배팅으로 꽂았다는 전설이 있었다. 참고로 동국대 운동장의 펜스는 우측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좌타자인 박한이의 뛰어난 타격능력을 보여준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알루미늄 배트를 썼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 양준혁 은퇴 등 삼성 프랜차이즈 박대하기로 유명한 선동열이 유난히 미워하고 홀대한 선수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선동열이 지금 내가 마운드에 서도 너(박한이) 정도는 삼진 잡는다며 모욕을 주었고, 박한이를 내치기 위해 최형우와 강봉규를 대놓고 편애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한이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이자 마지못해 쓰긴 했다. 물론 최형우야 4번타자라는 중책에 세대교체 측면도 있다지만, 나이도 있고 박한이의 통산 성적에 미치지 못하는 강봉규를 밀어준 것은 선동열의 부족한 야수 안목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 이 때문인지 몰라도 은퇴후 인터뷰에서 프로시절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옛 스승을 뽑아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응용과 류중일만 뽑았다.
- 2005년 일행과 함께 서부정류장 인근 막걸리집을 방문해 전 하나 막걸리 하나 총 7,000원어치를 먹던 중, 막걸리집 사장이 자신을 알아보자 서비스를 요구했는데 막걸리집 사장은 "뭐 먹은 게 있어야 주지" 라고 하면서 면박을 들었다고 한다.
- 2007년 4월 초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2가 홈플러스 대구점[78] 앞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차를 몰아서 범칙금을 문 적이 있다. 그런데 스티커 끊은 의경은 그가 박한이인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2007 올스타전에서 열린 인사이드 파크 호텔의 조연이기도 하다. 이택근이 친 타구가 당시 우익수였던 박한이 쪽으로 갔었는데 시야에 라이트(조명)이 들어왔는지 박한이는 그 공을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해버린 사이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후 2013년 9월 21일 인사이드 파크 모텔로 복수하는 데 성공했다. 넥센이 5-4로 앞선 6회초 2사 1·2루에서 이택근이 박한이가 날린 중전안타 타구를 앞으로 달려오면서 잡으려다 그만 공을 뒤로 흘린 것, 전진 수비 시프트라 좌익수와 우익수는 인플레이와 동시에 내야 쪽으로 대시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택근이 알을 깐 순간 수습하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타자 주자 박한이까지 홈으로 들어오면서 삼성은 순식간에 3점을 추가했고 이날 경기의 흐름은 인사이드 파크 모텔 랜드마크가 세워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 놀랄 만한 기록으로, KBO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출장, 타석, 타수, 안타, 최다 타점, 최다 득점, 최다 루타, 최다 사사구, 볼넷 , 피삼진[79]의 기록 보유자이다.[80] 홈런도 이승엽, 타이론 우즈에 이어 3위. 덤으로 포스트시즌 통틀어서도 최다 득점, 최다 사사구, 최다 볼넷[81]이라는 기록을 보유중이다. 한국시리즈를 10회나 밟고도 2013년에야 처음으로 MVP를 받은 한편 온갖 누적 기록을 죄다 휩쓰는 것이 꼭 팀 선배인 양준혁을 닮았다.[82]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을 관람 중인 아내와 딸[83] |
- 동갑내기[84] 부인 조명진 씨는 탤런트로 대단한 미인이다. 시대극 제5공화국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시민의 아내로 분했다. 사극 주몽에서는 무덕이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어 팬들 사이에선 무덕여신으로 불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미실 고현정의 편에 서서 음모를 꾸미는 무녀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양준혁이 소개시켜 줬다고 한다. 연애 중이던 시절 야구도 잘하는데 여자친구도 예쁘다면서 야갤러들의 질투를 받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조명진씨가 야구장을 찾을 때마다 박한이는 떡실신을 당하는 새로운 징크스가 생기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징크스가 깨진 듯 싶으며 2013년 한국시리즈 6~7차전 때 부인 조명진과 딸 박수영 양이 직관을 와 열심히 응원했고 박한이는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대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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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진과 연애하던 초반 두 달간 매일 통화하면서 전화통화로 딱 세 마디만 했다고 한다.
(조)"여보세요? → (박)"어데고?" → (조)"집" → (박)"밥은?" → (조)"먹었는데?" → (박)"알았다 쉬고 내일 얘기하자…" → 통화 끝
하도 짜증나서 이후론 조명진이 전화 받자마자,
(조)"집인데 밥은 먹었고 이제는 쉬려고" → (박)"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 아이고" → (조)"그럼 뭔데?" → (박)"뭐 먹었는데?" → (조)"김치찌개" → (박)"알았다. 그만 쉬고 내일 통화하자." → 통화 끝
그야말로 전형적이며 편견 속의 경상도 남자의 표본 그대로다.
- 2011년 4월 17일에 득녀. 딸 이름은 박수영이다. 갓 태어났을 때는 누가 봐도 딱 박한이의 딸인 걸 알 수 있었으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미인인 엄마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난 이후 3년 연속 삼성이 페넌트레이스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3살 난 수영이 응원팀 우승횟수 >> 21살[85] 롯데 자이언츠 팬 응원팀 우승횟수라는 드립도 나왔다. 베댓 2위 참조. 1위는 한화가 우승하면 배당이 높아서(…), 3위는 초등학교 때 마지막 우승 봤는데 지금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단다(…).. 그리고 2014년, 삼성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면서 4살 난 수영이 응원팀 우승횟수 > 33살[86] LG 트윈스 팬이 지켜 본 우승 횟수가 되고 말았다. 참고로, 원년부터 지금까지 존속중인 LG 트윈스( MBC 청룡 포함) + 롯데 자이언츠 두 팀의 우승 횟수가 박수영 양이 태어나서 지켜 본 우승 횟수와 똑같다.
- 2013년 양준혁 자선경기 때도 가족이 경기장에 왔었다. 그런데 유희관이 장난삼아 수영 양이 아끼는 삼성 어린이 회원용 배트를 타석에 들고 나가 휘둘렀다가 부러져버렸다.(…)[87]. 이 후 해설과의 인터뷰에서 해설자들이 수영 양의 방망이는 어쩔꺼냐고 묻자 "두산걸로 새로 사주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농담삼아 한 소리고 애초에 수영 양의 방망이를 들고 간 것도 박한이에게 허락을 맡은 부분이다.[88]
- 지금은 은퇴한 프로농구선수 김승현과 동국대 동기이며[89] 김승현이 출연하는 아프리카TV KBL 개인 해설방송에서 대학 시절 박한이가 자신들이 놀고 있는 노래방에 조용히 찾아와 말없이 술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데 음치 중에서도 음치였다고..
- 탈모 증세가 있는 듯하다. #
- 부산광역시 태생이고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나왔지만[90]삼성의 팬들 중에서는 박한이가 대구광역시 순수혈통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일부 올드 팬들에게 니 경고 아가? 상고 아가?이런 질문을 가끔 듣는다고 한다. 사실 김한수나[91] 김상수도[92] 혈통문제로 대구아재들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 2017년 3월부터 대구 동구, 으뜸병원과 함께 저소득층 노인 무릎 수술 지원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박한이가 안타 10개를 칠때마다 지역 내 저소득 노인 한 명이 무릎 수술을 받을 수 있고, 동구가 수술이 필요한 노인을 찾아서 주선해주면, 무릎 수술비는 박한이가, 재활 치료비는 으뜸병원이 지원한다고 한다.
- 2019년 어느 날 선수단에게 피자를 돌렸는데, 콜라를 같이 안 시키는 바람에 우규민이 우유와 같이 먹었다고 박한이 데이 기념 영상에서 폭로했다.[93] 그 이후에 선수단에 피자를 돌린 저스틴 헤일리는 콜라를 잊지 않고 같이 돌렸는데 기자가 기사에 (콜라포함) 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해서 폭소를 자아내었다. 이후 피자를 쏘는 야구기사에는 콜라 포함인지를 따지는 드립이 흥하고 있다.
- 배우 전일범과 닮았다고 하는데, 더 닮은 사람이 있는데 사극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인 김관기와 도플갱어 수준으로 닮았다. 2020년 10월에 유튜브에서 태조 왕건 무료 스트리밍을 해주면서 김관기가 맡은 박수경이 나올 때마다 박한이ㅋㅋㅋ 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또한 11월에는 무인시대 무료 스트리밍도 해 주면서 운주 도령으로 김관기가 또 나오면서 이의민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 나오자 비겁한 박한이라는 개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안위역으로 등장하며 다시 드립이 성행하였다. 2021년에도 대조영(드라마)에 출연하였는데 역대 김관기가 등장하는 사극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마파라는 캐릭터여서, 군관을 죽이면 홈런, 병졸을 죽이면 안타, 포로로 잡히면 2군강등, 합을 주고받으면 삼진 등의 개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KBS에서 무료 스트리밍이 자주 있을 예정이고, 해당 배우인 김관기가 사극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여서 유튜브에서 박한이가 자주 소환될 듯 하다.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수상에 아쉽게 순위권에 들지 못한 10명 중 1명이다. 순위는 50위였다.
10.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1 | 삼성 | 130 | 420 | .279 | 117 | 25 | 3 | 13 | 61 | 77 | 17 | 72 | .445 | .384 |
2002 |
133 (1위) |
504 (4위) |
.272 | 137 | 24 | 2 | 10 | 47 | 89 | 13 | 66 | .387 | .355 | |
2003 |
133 (1위) |
528 (1위) |
.322 |
170 (1위) |
34 (4위) |
1 | 12 | 59 |
113 (2위) |
17 | 71 | .458 | .399 | |
2004 | 132 |
503 (2위) |
.310 |
156 (4위) |
26 | 2 | 16 | 63 | 81 | 13 | 74 | .465 | .397 | |
2005 | 123 |
471 (3위) |
.295 |
139 (3위) |
21 | 0 | 9 | 59 | 62 | 12 | 64 | .397 | .377 | |
2006 |
126 (1위) |
471 (4위) |
.285 | 134 | 21 | 2 | 6 | 43 |
89 (1위) |
15 |
86 (공동 2위) |
.376 | .393 | |
2007 | 123 |
479 (공동 1위) |
.267 | 128 | 12 | 1 | 2 | 27 | 68 | 10 | 71 | .309 | .359 | |
2008 | 104 | 370 | .316 | 117 | 17 | 2 | 4 | 41 | 57 | 5 | 64 | .405 |
.414 (5위) |
|
2009 | 110 | 334 | .311 | 104 | 29 | 2 | 2 | 36 | 48 | 7 | 51 | .428 | .399 | |
2010 | 128 | 379 | .301 | 114 | 21 | 2 | 11 | 63 | 64 | 5 | 76 | .454 | .413 | |
2011 | 121 | 429 | .256 | 110 | 19 | 2 | 4 | 30 | 77 | 8 | 65 | .338 | .353 | |
2012 | 111 | 388 | .304 | 118 | 19 |
4 (4위) |
1 | 51 | 61 | 4 | 59 | .381 | .393 | |
2013 | 112 | 394 | .284 | 112 | 12 | 3 | 6 | 55 | 56 | 4 | 52 | .376 | .366 | |
2014 | 125 | 472 | .331 | 156 | 22 | 2 | 9 | 80 | 83 | 7 | 66 | .443 | .409 | |
2015 | 94 | 367 | .300 | 110 | 17 | 4 | 11 | 52 | 62 | 6 | 54 | .458 | .389 | |
2016 | 110 | 349 | .301 | 105 | 21 | 0 | 14 | 69 | 57 | 1 | 42 | .481 | .372 | |
2017 | 68 | 118 | .263 | 31 | 9 | 0 | 4 | 14 | 14 | 0 | 13 | .441 | .333 | |
2018 | 114 | 342 | .284 | 97 | 16 | 0 | 10 | 43 | 47 | 5 | 43 | .418 | .363 | |
2019 | 30 | 74 | .257 | 19 | 3 | 0 | 2 | 13 | 6 | 0 | 9 | .378 | .3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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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통산 (19시즌) |
2127 | 7392 | .294 | 2174 | 368 | 32 | 146 | 906 | 1211 | 149 | 1098 | .412 | .383 |
11. 관련 문서
[1]
양준혁과 타이 기록
[2]
흔히 알고 있는 체중인 91kg은 2000년(입단)~2002년(2년 차) 쯤인 신인 시절 당시 체중이며 은퇴한 현재는 100kg 이상으로 추정
[3]
입단 첫 해에 주전 우익수로 출전했고 이듬해부턴 붙박이
중견수로 나오다가 07시즌에
김창희와 중견수, 우익수 자리를 나눠 갖게 되며 우익수로도 많이 출전 했고 08시즌엔 다시 거의 중견수로만 출전, 09시즌엔
이영욱의 등장으로 우익수로 옮겼다가
강봉규의 활약과
이영욱의 부진으로 중견수로 복귀했다. 이후 10시즌부턴 16시즌까지 주전 우익수로 출전했고 17시즌엔
러프의 영입으로
구자욱이 우익수로 옮겨오면서 주로 대타로 나오며
배영섭,
김헌곤과 함께 좌익수로도 출장했다. 18시즌엔 주전 지명타자로 활약했고 구자욱의 허리 부상으로 우익수로도 가끔 출장했다. 19시즌엔 은퇴 전까지 주로 대타나 지명타자, 이따금씩은 코너 외야수로 나왔었다.
[4]
01, 07, 09~16시즌
[5]
02~09시즌
[6]
각 1000경기 언저리로 출전했던 우익수, 중견수에 비해 통산 49경기만 출전하였다.
[7]
2003년 1경기 출전한 적이 있으며, 2018년 서머리그에서 처음으로 선발 1루수로 출전한 경험이 있다.
[8]
지명 이후 대학진학, 데뷔는 2001년
[9]
~8월 29일
[10]
2022년 8월 30일~2023년 6월 8일
[11]
6월 9일~
[12]
~7월 4일
[13]
7월 5일~
[14]
Radio Radio (박한이!) Radio Radio (박한이!) 오예! 오예! 오예! 오예! (최!강!삼!성! 박!한!이!) x2
[]
[16]
K리그에서도 사용하는 응원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구 삼성에서는 저작인격권 사태로 폐기되었지만, 축구에서는 아직 현역.
[17]
구 버전
[18]
삼성 박한이 (헤이 헤이!) 최강삼성 박한이~ (헤이 헤이!) 안타안타 박한이 (헤이!) 안타 박한이 워 워우워어~ (박!한!이!) 삼성 박한이 (헤이 헤이!) 최강삼성 박한이~ 꾸준함의 대명사 박한이 워 워우워어~(박!한!이!)
[19]
박한이 안타안타안타 박한이 안타안타안타 박한이 안타 박한이 안타 박한이 안타 날려버려라~ 안!타! 박!한!이! 안!타! 박!한!이!
[20]
이 응원가는
대구 오리온스의 팀 응원가로도 사용했었다.
[21]
삼성의 박한이 워어어어~ 박~한~이~ 날!려!버!려! ×2
[22]
참조
[23]
삼성 라이온즈는 8번 우승했는데, 그 중 박한이의 현역 시기에 7번 우승했다. 첫 우승인
1985년 통합 우승은 한국시리즈를 거치지 않은 전-후기리그 통합 우승이기에 박한이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의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하였다.
[24]
박한이 이전 삼성의 순수신인 계보는 이만수-장효조-류중일-강기웅-동봉철-양준혁-김한수-이승엽-강동우가 있었고 본인 이후의 풀타임 신인은 2024년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중고신인으로서는 박석민, 최형우, 구자욱, 박해민이 있으며 현재 삼성에는 구자욱만 남은 상황. 중간에 계보가 끊겼으나 이재현과 김지찬도 데뷔 시즌 준 주전급으로 나왔는데 이들은 데뷔 시즌 성적이 시원찮아서 잘 언급되지는 않는다.
[25]
1985년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규정상 전후기 통합우승을 달성하였으므로 개최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한 사례이다.
[26]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시리즈 MVP까지 차지하였다.
[27]
데뷔 이래 16년 연속 100+안타는 KBO 최고 기록으로 팀 선배였던
양준혁과 동률이며, 중간에 해태와 LG를 거쳤던 양준혁과는 달리 박한이는 오직 삼성이라는 한 팀에서만 기록을 작성했다. 2017년 부상과 노쇠화로 출장 기회가 적어지면서 17년 연속 100+안타를 기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28]
달려라 하니의 그 하니 맞다.
이우의 야구수첩에서 하니로 나온다. 2008년 응원단장
김용일이 경기 응원 중
달려라 하니의 주제가로 응원가를 만든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응원가에 대한 박한이의 반응은 "그거 하지 마소."라며 싫어했다고.
[29]
큰 엉덩이 때문에
류중일 감독이 붙여준 별명(...).
[30]
차고령자인
박용택은 1979년 4월 21일 생으로 박한이보다 생일이 3달 늦다.
[31]
자숙 기간을 갖다가 2021 시즌을 앞두고 코치로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하면서 구단 재량으로 은퇴 관련 행사를 치러 줄 가능성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전망도 나왔으나 현재까지 삼성 구단은 이에 대해 전혀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32]
이는 박한이가 초보 코치인 것도 있고, 90경기 출장정지 징계 중 남은 1경기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1군이 아닌 육성군으로 배치한 걸로 추정된다.
[33]
참고로 박한이가 현역 시절 내내 달았던 33번은 2023년 현재까지도 아무도 달지 않고 사실상 결번 처리되어 있다. 구단 인스타그램에서 개막 D-33일 때 박한이 게시물을 올린 것을 보면 사실상 영구결번으로 관리 중인 것으로 보인다.
[34]
키움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된
이원석 역시 키움에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폭망했다. 다만 이원석은 30대 후반의 노장 선수인데다, 급작스럽게 팀을 옮겨서 정신적으로 충격이 클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35]
박한이 타격코치, 배영섭 보조코치 + 타치바나. 이후 수석코치인 이병규까지 선수들의 타격 지도에 가세했다.
[36]
김현준은 성적 차이는 매우 크지만 박한이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
[37]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커리어 초창기 박한이의 리드오프 출장은 현대적인 안목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38]
KBO 통산 공동 1위. 참고로 다른 1위는
양준혁(16년), 3위는
이승엽(14년), 4위는
김태균(12년). 양준혁은 팀을 옮긴 적이 있고, 이승엽과 김태균은 중간에 일본 진출을 했기 때문에 원 클럽 맨으로 16년 연속 100안타를 달성한 선수는 박한이가 유일하다.
[39]
참고로 시즌 최다 홈런은 2004년 기록한 16개로 99년
김한수의 18개보다 적고 통산 홈런개수는 146개로
김한수(149개)보다도 적다.
[40]
2014년
고효준 상대로 기록한 16구 승부가 개인 최고 기록이다.
[41]
물론 박한이의 최고 장점이 클러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오히려 기량에 비해 팀에 승리를 많이 가져다준 선수로 보는 것이 옳다.
[42]
포스트시즌 타격 성적 삼성 역대 1위, .257 53안타 7홈런 33타점으로 누적도 상위권이다.
[43]
사실 박한이 이전에 삼성 테이블세터진을 맡은 외야수들은 꽤 수준급이었다.
최익성,
신동주,
강동우 등인데 셋 다 두자릿수 도루와 홈런이 가능했던
호타준족들이었다. 이들만 봐도 리빌딩 직후 삼성은 외야수 복을 제대로 받은 셈이다. 그러나 강동우는 부상으로 전만큼 실력을 보이지 못했고 최익성, 신동주는 감독과 구단과의 마찰로 트레이드되면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 선수 자원이 넘쳐나도 적재적소에 쓰지 못한 잘못된 사례라 할 수 있다.
[44]
사실 박한이는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번트안타로 출루했다. 상대 투수는
송진우. 송진우는 투구 후 수비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45]
심지어 그 경기는 플레이오프 경기였기에 더더욱 의미있으며 8회초
정재훈의 3구에 쓰리런을 터트려 정재훈을 무너트렸다.
[46]
속칭 냄새 맡는다라고 표현하는, 킁킁이라는 별명의 원천이 되는 그 동작.
[47]
이것은 후에 난데없이
MSL 데스크 에서 까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48]
그리고는 귀신같이 안타...
[49]
당시 한화는 은퇴해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던 선수도 현역을 복귀시켜서 기용할 정도였다.
[50]
한마디로 "삼성을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
[51]
이 날을 넘어갈 경우 당해 1년간
임의탈퇴 처리되는 규정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 규정은
이도형이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2012 시즌부터 없어졌다.
[52]
보통 시즌 후 FA가 되는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구단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서 개인 훈련을 한다. 참고로 같은 해 FA 자격을 얻은
장원삼은 아시안 시리즈에 따라가지 않았다.
[53]
이 중간에 OSEN의 삼성 출입 기자인 손찬익 기자의 계약 오보 사건이 있었다.
[54]
박한이와 장원삼은 나이도 네 살 차이로 꽤 차이가 있고, 또한 박한이는 두 번째 FA, 장원삼은 첫 번째 FA라는 차이 역시 존재한다. 포지션으로 봐도 박한이는 코너 외야수지만 장원삼은 리그에 얼마 없는 검증된 선발, 그것도 좌완투수이다.
[55]
여기에 간혹 이종욱을 껴서 Big 5로 부르기도 했다.
[56]
한화에서 있었던 4시즌 동안 이대수는 연평균 128경기, 377타수 정도를 소화하면서 0.267의 타율과 5.75개 정도의
뜬금포를(경기수와 타수는 소수 첫자리, 타율은 소수 넷째자리에서 반올림) 쳐줬는데, 이 정도면 최소한 타격에서는 충분히 한 사람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
[57]
이들은
한 명은 처음부터
신고선수로 시작해서,
다른 한 명은 지명은 받았지만 군 복무중에 방출을 겪고 나서 신고선수로 다시 시작해 국대까지 승선했던 KBO의 대표적인
근성가이들이다.
[58]
용병타자로 충분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확실한 클린업 트리오를 꾸린다는 것과 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무게가 많이 차이 나는지라... 강민호로 채우자는 생각도 있지만, 당 시즌 강민호가 4번에서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그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실제로 강민호는 부상 후유증과 그간의 피로누적으로 2013, 2014 두 시즌을 연속으로 부진한 채 보냈다.
[59]
이대형의 계약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대형/선수 경력/FA문서 참조.
[60]
1979년생 동갑이지만 박한이가 1월생이라 학교를 빨리 가는 바람에 1년 선후배 관계다. 2013년 골든글러브 수상소감에서 박용택은 박한이를 언급할 때 "한이 형"이라고 호칭했었다.
[61]
이나마도 스스로 LG에 남기를 원해서 이정도인 거지,
이적했다면 70억까지 수령할 수 있었다!
[62]
누적은 타석이 2배 이상 차이나므로 당연히 박한이가 우위이며, 비율스탯으로 따져도 박한이 .295 .386 .408 OPS .794 / 유한준 .291 .364 .431 OPS .795로 비슷하다. 타석 대비로 따져봐도 안타수는 비슷하고 홈런은 유한준이 1.4배 정도, 사사구는 박한이가 1.4배 정도 많아서 딱 비율스탯대로 나온다.
[63]
박석민은 FA 당시 만 30세, 최형우는 FA 당시 만 32세였다.
[64]
하지만 따지고 본다면 미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을이 되었는데 FA 대박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모름지기 FA는 선수와 구단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을 맺으라고 있는 제도다.
[65]
현재 공식 홈페이지의 원글은 삭제된 상태이다.
[66]
유명인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효과적인 수법이다. 즉 친한 척해서 물건을 선물한다거나 빌려줘놓고 절도피해 신고한 다음 고소하는 방식으로 누명을 씌우는 것. 무죄증명이 쉽지 않고 경범죄니까... 하는 식으로 넘어가면 그 때부터 협박을 시작.
[67]
어떻게 보면 박한이가 가정적으로 산것에 도움을 받은 셈이다. 만약 박한이가 진짜 룸살롱이나 다니는 사람이었으면 자기 룸 간게 찔려서라도 이렇게 단호하게 나올 수는 없었을 것. 반대로 사기꾼 입장에서 하필 룸사롱을 든 것은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가고, 반면 들키면 이미지와 가정이 망가지는" 요소라서 들먹인 것으로 보인다.
[68]
협박범과 글쓴이의 이름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과문에 나와있듯이 한씨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중이라, 지인을 통해 사과문을 올린것으로 보인다.
[69]
이 경기에서 9회말 2아웃 대타로 나와서 초구를 공략하여 끝내기 안타를 쳤었던 경기였다.
[70]
한때는 이만수(22), 양준혁(10), 이승엽(36)에 이어 박한이의 33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 않겠냐는
하마평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71]
지도자 자리 혹은 해설자 자리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들어설 확률이 높다. 전현직 지도자와 해설자 중에 음주운전 경력자들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2020년에 박한이 역시 코치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72]
현재는 숙취운전에 0.03이라고 해도 꿈도 못 꾸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절대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될 것이다.
[73]
출장정지 징계를 채우기 위해 일부러 시즌이 끝날 때까지 등록선수 명단에 올려놓은 걸로 보인다. 실제 출장정지 징계 소화는 선수 등록 시점에서나 유효하지, 방출되어 무소속이거나 임의탈퇴 신분일 경우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74]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승엽,
양준혁 등이 굳건했고 2010년대 왕조시절에는
최형우,
박석민 등의 후배들이나 일본에서 복귀한 이승엽이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했다.
[75]
심지어 어떤
기사에서는 이호준, 이진영보다 급이 낮은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박한이의 영구결번은 "모호하다"고 해놓고선, 정작 성적만 놓고 보면 충분히 영구결번을 받을 후보로
이호준,
정성훈,
이진영,
정근우를 거론하고 있다. 마치 이들이 팀을 중간에 옮기는 바람에 영구결번이 되지 못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소속팀을 전제로 놓지 않아도 박한이의 성적은 이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통산 WAR로 비교하면 52.53의 정성훈과 50.50의 정근우가 박한이보다 높긴 하지만 큰 차이는 아니며, 39.60의 이호준과 41.90의 이진영은 앞선 둘보다 더 큰 차이로 뒤쳐져 있다. 심지어 커리어하이 시즌을 비교해도 09 정근우(6.86) > 12 정성훈(5.50) > 04 박한이(5.49) > 03 이진영(5.33) > 03 이호준(5.15)로 박한이가 임팩트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기자의 좁은 시야를 증명한다. 심지어 기사에서 근거로 나온 수상경력조차 정근우가 골든글러브 3회와 득점왕을 차지해봤을 뿐 이진영은 박한이와 비슷하고 이호준과 정성훈은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본 적이 없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대충 느낌만으로 쓴 기사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76]
삼성은 니퍼트에게 최고로 약한 팀중 하나이기에 더욱 유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홈런이었다.
[77]
가을 야구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터트리는 홈런이 어찌나 인상 깊었는지, 이 홈런이 터지고 한명재 캐스터는 "박한이가, 또! 해냅니다!"라는 콜로 그의 커리어를 요약했다.
[78]
홈플러스 역사상 첫 1호점이며 2018년 창고형 매장인 홈플러스 스페셜로 전환됐지만 매출 부진으로 인해 2021년 12월 폐점했고, 현재는 철거됐다.
[79]
피삼진은 안좋은 기록이라고 반박할 수 있지만, 최다 피삼진을 기록하려면 그 만큼 경기를 많이 출장했다는 증거로 재반박이 가능하다. 또한 그렇게 많은 삼진을 당하고도 안타나 홈런을 때린것보면 박한이가 가을에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80]
63경기, 289타석, 229타수, 57안타, 28타점, 38득점, 79루타, 41사사구, 36볼넷, 46삼진
[81]
양준혁과 타이기록
[82]
타이틀 복 없는 것도 그렇고 연속 100안타 기록도 그렇고
양준혁과 굉장히 유사한 커리어를 걷고 있다.
[83]
이날 박한이는 니퍼트를 상대로 쐐기 쓰리런 홈런을 쳤다.
[84]
다만 박한이는 빠른 1979년 생인지라 1978년 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조명진씨는 79년 3월 생.
[85]
2013년을 기준으로
1993년생을 뜻한다. 참고로 롯데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우승이 1992년이다.
[86]
2014년을 기준으로
1982년생을 뜻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가 1982년이니 거의 출범하자마자 야구를 본 나이인 것이다.
[87]
애초에 어린이용 장난감 수준이라 실제 경기용 공보다 강도가 약해서 부러질 확률은 높았다. 프로선수용 배트도 부러지는 판인데….
[88]
법인상 개인사업자라지만 암묵적으로는 선수도 소속 직원이니 그 소속에 속하지 않은 일반인도 아니고 혜택으로 구단 굿즈기도 한 선수의 자녀의 배트만큼은 다시 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수영 양의 과실도 아니고 행사 중에 부러진 것이니 다시 받을 확률은 높았을 것이다.
[89]
김승현의 소속팀이었던
고양 오리온스가
대구광역시가 연고지였던 시절 박한이와 함께 같은 대구 지역 연고 프로 스포츠팀에서 뛴 적도 있다.
[90]
고3때 삼성의 지명을 받고 서울
동국대학교로 진학했으며,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단했다. 현재 동국대 야구장은 일산캠퍼스에 있다.
[91]
서울 태생으로, 지금은 해체된 광영고 야구부 출신이다.
[92]
이쪽은 서울 태생이지만 어릴 때 구미로 이사해서 다시 대구로 이주해서 자랐고,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상수는 경고.
[93]
물론 피자와 우유는 조합이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