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1 01:45:26

김종훈(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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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1 이숭용 [[감독#s-1.1|
]] · 72 강병식 · 74 조원우 · 76 이대수
· 77 임재현 · 79 김종훈 · 83 스즈키 · 84 조동화
· 88 송신영 · 91 이승호 · 98 배영수'''
2군
'''70 손시헌 [[감독#s-1.1|
]] · 73 오준혁 · 75 김이슬 · 80 와타나베
· 82 윤요섭 · 85 김동호 · 86 윤재국 · 89 류택현'''
잔류군
78 이윤재 · 81 양지훈 · 87 정진식
컨디셔닝 파트
1군 고윤형 · 곽현희 · 길강남 · 김상용 · 송재환
2군 윤인득 · 이형삼
잔류군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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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헤인즈 · 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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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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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2 2005 200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9번
김력
(1993)
<colcolor=#fff> 김종훈
(1994~1997.6.26.)
박석진
(1997.6.27.~2004.7.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이동수
(1996~1997.6.26.)
<colbgcolor=#228b22> 김종훈
(1997.6.27.~2007)
손지환
(200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7번
조계현
(2006~2009)
김종훈
(2010~2022)
배영섭
(2023~)
SSG 랜더스 등번호 79번
채병용
(2022~2023)
김종훈
(2024~)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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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0e2d><colcolor=#fff> SSG 랜더스 No.79
김종훈
金鍾勳 | Kim Jong-Hun
출생 1972년 1월 29일 ([age(1972-01-29)]세)
대전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가양초 - 한밭중 - 북일고 - 경희대[1]
포지션 2루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2차 2라운드 (전체 12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4~1997)
삼성 라이온즈 (1997~2007)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연수코치 (2008)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야수코치 (2010~2011)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보조코치 (2012~2013)
삼성 라이온즈 3군 타격코치 (2014~2016)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7)[2]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17)[3]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8~2021)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22)[4]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22)[5]
SSG 랜더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24~)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09)
응원가 고래밥 CF[6]
파일:SSG 랜더스 홈페이지 로고.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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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現 SSG 랜더스 소속 코치.

2. 선수 경력

파일:/image/073/2008/10/16/20081017aa004.jpg

1994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 당시에는 나름 펀치력이 있고 대형 내야수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주전들이 대거 방위복무로 빠져 전력이 약해진 팀 사정 탓이 크긴 했지만, 신인임에도 개막전부터 선발 2루수 5번타자로 기용되었을 정도. 그러나 프로의 벽을 실감하며 겨우 35게임에 출장해 .191의 타율과 1홈런 9타점에 그치며 루키 시즌을 마쳤다.

이듬해인 1995년 백업으로 71경기에 출전했고, 1996년부터 준 주전급으로 도약해 89경기에서 .290의 타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7년엔 매우 부진했고 결국 시즌 도중 투수 박동희와 함께 박석진, 이동수를 상대로 유니폼을 바꿔 입으며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다. 그리고 은퇴할 때 까지 삼성에서 13년간 활약하면서 김종훈 하면 삼성 선수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탓에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존재감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롯데 시절 김종훈은 KBO 평균이라는 신문기사로 잠시 주목받기도 했다. 체격조건도 KBO 평균, 나이도 KBO 평균, 개인기록도 KBO 평균, 심지어 연봉도 KBO 평균.

그러나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가을의 사나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정규시즌은 그냥저냥 평범했어도 포스트시즌만 들어가면 미친듯한 활약을 보인 것. 예를 들면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참조)과 2004년 한국시리즈 3차전과 8차전, 2005년 한국시리즈 2차전. 본인도 이 경기들이 매우 기억에 남는 듯. 잠시 연수하던 도중 귀국해 2008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평범했던 선수가 갑자기 가을에 들어서면 미친 듯이 펄펄 날 뛴 듯. 의외로 이상훈에게 강했다.

의외로 큰 경기에 강한 선수이다 보니 포스트시즌 통산 타율이 0.285에 총 34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시리즈 타점의 경우 22타점을 올려 이만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이만수와 함께 2011년까지 한국시리즈 통산 타점 역대 1위였다. 그 당시 현역 중 1위인 박한이가 18타점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깨지기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2013년에 박한이가 25타점으로 한국시리즈 통산 타점 역대 1위에 등극했다.

팀 내에서는 김한수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가을야구 쌍두마차를 이끌기도 했다.(실제로 김한수에 비해 나이가 1살 더 젊지만 빠른 생일이라 사실상 동갑내기다. 얼굴은 통통한 편.)

삼종훈 삼총사 중 막내이기도 하다.( 박종훈은 1959년생, 장종훈은 1968년, 김종훈은 1972년) 또한 데뷔년도도 늦은 편이며 가장 늦게 은퇴했다.(박종훈 - 1983년~1989년, 장종훈 - 1986년(연습생)~2005년, 김종훈 - 1994년~2007년) 삼종훈 삼총사 중 선수 시절에서는 우승 경력이 많다.(3개) 이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있었던 3번의 우승을 경험했기 때문.(사실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 진갑용 등등 동료들의 힘이 컸다... 이건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한때는 강동우, 박한이와 함께 로나쌩 클럽의 타선을 맡기도 했다.

3. 지도자 경력

2007년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년간 코치 연수를 받았고, 연수를 마친 뒤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해 전력분석원 및 잔류군 코치로 활동했다. 2012~2013년 2시즌간 보조 타격코치로 1군에 동행했다가 2014년부터는 잔류군(3군) 타격코치를 맡았다.

류중일 감독이 물러나고 김한수 감독 체제로 바뀜과 동시에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면서 2017년부터는 2군 타격코치를 맡았다가 팀 타선 부진으로 4월 28일부로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바뀌었다. 2018년 다시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바뀌었다.

대부분의 삼성 타자들로부터 추앙받는 인물이다. 오히려 1군 타격코치보다 더 타격폼 수정에 도움이 된다고.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다가 타격자세를 수정한 뒤 1군에 돌아온 선수들이 타격감을 되찾는 경우 대부분 김종훈 코치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삼성 타격에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7]

2022년부터 1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팬들은 김용달보단 나을 거라며 어느 정도 기대하는 중이다.

그러나 5월 둘째주부터 타선이 집단 침체에 빠지면서 김종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생기고 있다.[8] 특히 그는 빠르고 과감한 승부를 하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스노우볼로 빠른 아웃카운트로 이어져 상대 팀 투수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즉, 육성 우선인 2군 타격코치로는 최적이지만, 실전이 중요한 1군 타격코치로는 글쎄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팀 타선이 터질 때는 확실히 터지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계륵이라는 평이다.

결국 8월 30일에 박한이와 보직을 맞바꿔 2군 타격코치로 내려갔고, 2022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삼성과 결별했다.

이후 2023년 한 해는 야인으로 보내다가, 2024년부터는 SSG 랜더스의 1군 타격보조코치로 영입됐다. 마침 SSG에는 경희대학교 90학번[9] 동기인 이숭용 감독이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롯데 35 89 .191 17 5 1 1 9 9 6 9 .303 .257
1995 71 160 .238 38 6 2 4 23 26 13 10 .375 .281
1996 89 238 .290 69 8 5 4 25 42 15 25 .416 .355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7 롯데 / 삼성 88 209 .215 45 7 4 1 15 27 14 25 .301 .297
1998 삼성 101 274 .277 76 11 3 4 26 49 10 28 .383 .341
1999 106 252 .230 58 12 1 2 17 36 5 21 .310 .288
2000 127 444 .245 109 24 2 11 40 73 7 52 .383 .323
2001 93 245 .290 71 7 1 5 21 43 2 29 .388 .365
2002 105 193 .280 54 10 1 3 22 29 3 29 .389 .372
2003 88 84 .226 19 4 1 1 13 12 0 4 .333 .261
2004 127 341 .264 90 14 2 5 36 40 5 40 .361 .340
2005 70 146 .288 42 4 1 2 18 19 3 15 .370 .348
2006 96 163 .202 33 7 0 0 6 18 0 14 .245 .266
2007 63 68 .206 14 0 0 0 5 2 0 2 .206 .225
<rowcolor=#373a3c> KBO 통산
(14시즌)
1258 2906 .253 735 119 24 43 276 425 82 303 .355 .322

5. 여담

  • 여러모로 3번과의 인연이 많다. 특히 3(삼)성에서의 등번호 3번, 롯데에서의 3년, 해당 팀이 3번의 한국시리즈 도전 끝에 우승,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3년 뒤에 우승, 3번 우승, 3번 준우승(롯데 시절 포함) 기록. 등등 3(삼)종훈 3(삼)총사의 경우 위에 서술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롯데 시절에 달던 39번은 3의 13배다.(트레이드된 후 박석진이 이어받았다.) 흠좀무.
  • 본의는 아니지만 트레이드되어 특정 해당 선수의 인생을 망가뜨린 적이 있는데 저니맨이 된 중고 신인왕인 내야수 이동수가 예.[10] 이는 나중에 외야수 김창희가 기믹을 물려받았다.[11]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전력분석원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김창희는 그의 후임이다.
  • 한 치매 노인을 위해 베푼 선행이 뒤늦게 알려졌다. # 때는 2014년 10월, 밤늦게 차를 몰고 경산 압량읍 인근을 지나다가 한 할머니가 길을 헤메고 있는 걸 보고 인근 파출소에 모셔다 드린 뒤 가족들에게 인계해드렸는데, 할머니의 가족들이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하며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이후 2017년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온 뒤 할머니 가족들이 우연히 TV중계를 통해 김종훈 코치를 보게 되자 다시 한 번 삼성 구단에 감사 의사를 전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본인은 "누구나 그 상황이었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을 낮췄다.
  •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선수인데다 평상시에는 큰 존재감이 없던 선수였지만 포스트시즌에 되면 존재감을 과시한데다 장태수 이래 삼성 외야진의 소금 같은 존재로 남을 만한 선수였다.
  • 선수 시절 바가지안타를 잘 때려냈다.
  • 롯데 자이언츠의 정훈과 외모가 닮았으며 클러칭 능력도 빼다박았다.

6. 관련 문서



[1] 1990학번. [2] ~4월 27일 [3] 4월 28일~ [4] ~8월 29일 [5] 8월 30일~ [6] 날려라 날려라 김종훈 날려라 날려라 김종훈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김종훈 [7] 스톡킹 박해민이 출연하여 설명한 내용이다. [8] 이 기간동안 선발진들이 5연속 QS, 즉 전경기 QS 이상을 기록했는데, 결과는 1패 4ND다. [9] 김종훈이 빠른 1972년생이라서 1971년생과 학교를 같이 다녔다. [10] 다만 트레이드 과정에서 외야수가 필요한 삼성과 투수가 필요했던 롯데와의 트레이드가 잘 맞아서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롯데도 박석진을 받아와서 몇 년간 전천후 투수로 잘 써먹었기 때문. [11] 해당 항목 1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