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21:24:32

독일의 전쟁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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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쟁 범죄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이다.

2. 독일 제국

2.1.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

나미비아(당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서 저질러진 원주민 집단 학살 사건. 제국군이 저지른 식민지 관련 중죄 중 하나이다. 최악의 제노사이드 중 하나였고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독일은 홀로코스트와 달리 2004년까지 공식적인 사과도 하지 않았고, 보상도 2021년에야 했다.[4]

2.2. 제1차 세계 대전

사실 독일 국방군의 선배인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 제국군도 국방군처럼 악질은 아닐 뿐, 전쟁범죄에 관해서 100퍼센트 자유로울 수는 없다. 1914년 8월 4일 당시, 독일 제국 육군은 슐리펜 계획에 의거하여 프랑스를 치기 위해, 중립국인 벨기에를 불법적으로 침략했는데, 독일 육군이 약체 초콜릿 군대라고 얕본 벨기에 육군에 뜻밖의 봉변을 당하여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었다.[5] 여하튼 리에주 요새를 함락한 이후, 독일 육군은 벨기에인에 대한 증오와 짜증을 품었고, 벨기에 빨치산에 의해 독일의 한 육군 병사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무고한 벨기에 민간인들을 죄다 게릴라 세력으로 몰아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여기에는 누가 봐도 파르티잔이라고 볼 수 없는 여자, 아이들이 다수 포함되었으며 심지어 교회 종탑에서 총탄이 날아왔다며 사제를 총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약 400명이었던 벨기에 민간인들이 루뱅에서 죽었다고 알려졌으며 제국 육군이 빨치산 잡는답시고 여기저기 불을 놓는 바람에 불에 타서 없어진 가옥도 수 십채였다. 루뱅 시의 유서깊은 대학인 루뱅대학교과 루뱅도서관도 이 때 제국 육군이 놓은 불로 인해 훼손되었다. "루뱅 독일 병사 사망 사건"으로 잔뜩 예민해진 제국 육군은 벨기에 전역에서 빨치산 토벌에 열을 올리는데 빨치산 토벌 명목으로 민간인들이 가장 많이 죽은 곳이 바로 디낭 시, 무려 674명의 민간인이 무고하게 사살되었으며, 희생자 중에는 아이 아기도 있었다. 이 사건은 영어권에서 'The Rape of Belgium'(벨기에의 강간)이란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독일 육군은 벨기에의 여러 도시들을 불태우고 파괴하고 학살을 저지르고 강간을 서슴치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벨기에의 강간으로 인해 루뱅(Louvain) 시에 살던 사람들 370여 명이 사망했다. 또한 디낭(Dinant)에서는 674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고의적으로 학살당했다. 이로 인해 독일 제국에 대한 대외적인 이미지는 매우 좋지 않았으며, 벨기에와 같은 민족이었던 프랑스는 복수를 천명하였으며, 영국은 이것을 선전 프로파간다로 아주 잘 활용했고, 훗날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황당한 건 당시 제국 육군이 저렇게 해서 진짜 빨치산을 한 명이라고 잡았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과연 루뱅에서 제국 육군 병사를 쏜 사람의 정체가 벨기에 빨치산인지도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사건이 밤에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볼 때, 피아식별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총을 쏜 것이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루뱅에서는 백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또한 제국 육군과 해군 항공대는 세계 최초로 민간인을 상대로 폭격을 가한 군대였다. 파리와 런던에 하루가 멀다하고 폭격을 가했는데 당시 독일 제국 육군 폭격기와 해군 체펠린 비행선의 조종사와 승조원들 가운데 프랑스와 영국 민간인들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인간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독일연방공화국의 국방부 차관이었던 발터 콜보(Walter Kolbow)는 2001년, 디낭 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찾아가 직접 사죄를 표하였다.

그리고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세계 최초로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폭격을 가한 나라가 독일인데, 독일 제국 해군은 1915년부터 1918년 4월까지 꾸준히 그라프 체펠린 비행선 고타 폭격기 파리 런던을 폭격했다. 그리고 이는 뻔히 민간인이 다치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저지른 전쟁범죄 행위였다. 그리고 무제한 잠수함 작전 때에도 민간 상선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격침했으며, 이는 수많은 나라를 분노케 하였다. 그리고 독일 제국의 이 어리석은 행위는 분노한 미국의 코털을 건드려 자신들의 제국을 파멸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최초로 1915년, 제 2차 이프르 전투 때에 헤이그 협약을 어기고 살상용 가스를 먼저 살포한 것도 독일 육군이었다. 1915년 제2차 이프르 전투에서 독일 제국 육군은 포스겐을 살포하는데, 살상용 가스의 살포는 이미 1899년 헤이그 협약에 의해 엄연히 금지된 사항이었다. 물론 가스 자체로만 보면 1914년 국경 전투 도중 프랑스 육군이 먼저 살포하긴 했는데 그것은 살상용이 아닌 엄연한 최루탄에 지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1914년 프랑스가 살포한 최루탄은 제국 육군의 진격을 늦추는 효과는 있었어도 그로 인한 제국 육군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1915년 이프르 전투에서 제국 육군이 뿌린 포스겐에 의한 연합군 사망자는 무려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5,000명이나 되었다. 그후 연합군도 리벤스 투사기 등으로 독가스를 뿌리긴 했으니 연합군도 잘못을 하였지만 독가스를 먼저 뿌린 독일 제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 외에도 독일 제국군도 1917년 3월 22일, 러시아 제국 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했다. 쾨니히스베르크(現 칼리닌그라드)에 위치한 뮌스터 포로수용소에서 이루어졌는데 이곳은 환경은 매우 열악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제국군들의 구타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제국군들은 인종별로 분명히 목소리 발성하는 방법이 다르며, 당연히 독일인들이 가장 우월한 발성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러시아 포로들에게 인종별로 나누어 노래를 부르게 하였고 그것을 녹음하였다.[6]

이렇게 제국군들은 포로들에게 강제로 노래를 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사랑 상관없이 그들의 얼굴을 강제로 석고로 본을 뜨기까지 했다. 매일 같이 강제 노동을 부과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1차 대전이 끝난 이후, 러시아군 포로들과 고려인들의 행방은 묘연하였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단, 추측되는 바로는 열악한 수용소 생활로 인해 병사하였거나, 제국군의 생체 실험에 이용당해 죽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현재 독일 동부 지역에는 당시 러시아군 포로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데, 상당수가 이름 없는 정확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포로들이다.

게다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동부전선의 독일 제국군이 죄다 서부전선으로 재배치되기 전, 우크라이나 민간인들로부터 온갖 생필품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사람들을 잡아가서 강제 노역을 시켰던 전적도 있다.

3. 나치 독일

3.1. 홀로코스트

3.2. 친위대의 전쟁 범죄

국방군과 공모한 범죄(☆)

3.3. 국방군의 전쟁범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독일 국방군의 전쟁 범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4. 강제 노동

"이 인원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은 최소한의 지출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는 방향이어야 한다" - 프리츠 자우켈, 제국 전권 노동 감독관
자우캘은 이 혐의로 전범재판에서 사형에 처해진다.
"1만명의 러시아 여자들이 대전차호를 파다가 지쳐서 죽는다면,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어찌 됐든 독일에게 대전차호가 생겼다는 것 뿐이다." - 하인리히 힘러
나치는 노동력 착취를 위해 유럽 점령지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강제로 잡아왔다. 해외 노동자들은 계급제로 분류되었는데, 독일 계통 국가나 이탈리아 같은 동맹국은 방문 노동자(Gastarbeitnehmer)라고 불리며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동원된 민간인, 폴란드인 포로 등은 강제 노동자(Zwangsarbeiter)라고 불리며, 더 오래 일해야 하면서도 적은 급료와 배급을 받았다. 또한 대중교통이나 식당, 교회 등의 공공시설 이용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동부 점령지, 특히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에서 끌려온 열등인종 슬라브인들은 동부 노동자(Ostarbeiter), 오스트아르바이터로 불리며 더욱 혹독한 취급을 받았다.

오스트아르바이터들은 대기업 소유나 사설 경비가 지키는 캠프에 갇혀 지냈으며 동쪽을 뜻하는 독일어 형용사 "OST"라고 새겨진 배지를 달고 다녀야 했다. 평균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일했고, 독일인 노동자의 30% 가량의 임금이 지급됐지만 이는 간신히 의식주를 해결해 굶어 죽지 않을 수준이었다. 게다가 진짜 돈이 아니라 캠프 내에서 제한된 물품만을 구매할 수 있는 표 형식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 과로, 폭격(오스트아르바이터는 방공호에 들여보내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학대, 처형으로 죽었다. 특히 "열등 인종"으로 분류된 슬라브인들은 작은 규정 위반으로도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오스트아르바이터의 절반이 여성이었지만, "열등 인자"를 남길 수 있는 허가되지 않은 성행위나 임신은 무자비하게 처벌되었으며 아이는 낙태되거나 출산 후 바로 처분되었다.

1944년 여름, 노동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닥치는 대로 잡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입 오스트아르바이터는 16세 이하로 매우 어렸다. 30% 가량이 12~14세에 불과했으며, 1943년 10살로 낮아진 연령 제한 때문에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일정 이상 나이를 먹었다면 독일 국방군에서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차출되었다. 당시 나치 독일의 기록에 의하면 집계 가능한 외국인 노동자와 포로가 760만 명이었다. 확인 가능한 최소한의 수치인데도 강제 노동자들이 독일 노동력의 1/4를 차지한다는 것에서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그 중 강제 노동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소련인의 수는 무려 216만 명에 달한다.

3.5. 전범기업

3.6. 왜곡: 국방군 무오설

항목 참고.


[1] 사진 속 맨 앞의 소년은 '츠비 누스바움(Tsvi Nussbaum)'(당시 7세)으로 알려져있으며, 부모는 살해되었으나 본인은 살아남아 뉴욕에서 의사로 살다가 2012년 사망했다. 그러나 그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으며 본인 역시 확실치 않다고 증언했다. [2] 이들을 연행하는 부대는 바로 나중에 36 SS 디를레방어 사단으로 승격하는 디를레방어 SS 특수연대.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이 부대는 동부전선에서 너나 할것 없이 학살, 강간을 묵인, 조장하던 국방군과 SS들마저도 경멸했을 정도로 나치 독일 상층부에서 찍힐 정도의 미친 범죄자 집단 그 자체인 부대이다. 그 SS가 '일원'이 아니라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회부적응자들을 밑에 두었을 뿐'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애초에 사단장부터가 2차 대전 한참 전부터 아동 성폭행 및 강간 미수 전과로 수용소를 들락날락 거리고, 나치당에서도 여러 번 제명되었다가 유일한 친구인 고틀로프 베르거의 도움으로 여러차례 구제된 전과가 있다. 그리고 국방군은 좀 더 무거운 형벌로 형벌부대가 있었으며, 형을 유예하는 대신 형벌부대로 보냈다가 전공을 세우면 다시 원 부대로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는데, 이 형벌부대에서조차 구제불능인 미치광이 범법자들에게 무기를 쥐어줘 싸우다 죽으라고 만든 사단이 바로 이 36 SS 디를레방어사단이다. [3] 소년 옆에 총을 든 자는 요제프 블뢰체(Josef Blösche) 출처라는 자로, 아인자츠그루펜에도 참여했다. 전후 소련의 포로가 되었다 동독으로 보내졌고, 이후 사고를 당해 얼굴이 심각하게 변형되었다. 그 와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고 살다가, 1961년 함부르크에서 전직 SS 동료가 그의 범죄행각을 재판에서 폭로했고, 동독 경찰에 의해 신분이 발각되어 1967년 체포되었다. 1969년 동독 에르푸르트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라이프치히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4] 독일 출신 방송인인 다니엘 린데만 역시 이 점에 대해 크게 비판한 바 있다. [5] 자세한 내용은 벨기에 침공 문서의 리에주 요새에 대한 자료 참고. [6] 참고로 당시 러시아군 포로들 가운데에는 일본 제국의 압박을 피해 제정 러시아로 망명하여 러시아군에 입대한 고려인들도 있었다. 때문에 당시 고려인들이 한국말로 부른 아리랑이나 민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그레고리 김이 부른 아리랑이다. [7] 정확히는 게슈타포의 포로 학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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