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오스트리아 관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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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 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
오스트리아 공화국 Republik Österrei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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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관계. 양국은 언어, 문화, 종교에서 매우 가깝고 교류가 많이 있다. 그리고 양국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다.양국은 같은 서 게르만족 계열에 독일어권에 속하며, 민족적으로 보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사실 거의 동질관계다. 오스트리아 사람을 지칭할 때도 오스트리아 민족이라기 보다는 '독일민족'이라고 그냥 부르는 경우도 많다. 언어도 같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어'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하는 독일어는 표준 독일어와 유사하며, 당연히 독일 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이 만나면 통역 없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지역 방언 정도의 차이 등은 있지만 그 정도 격차는 독일 안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바이에른 지역의 방언인 오스트로바이에른어는 표준 독일어보다 오스트리아 방언과 더 비슷하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와 악수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왼쪽에 서있는 사람들은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 빌헬름 황태손,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들은 카를 1세, 오토 폰 합스부르크.
역사적으로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공동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일원으로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도 신성 로마 제국- 독일 연방의 회원국이었으며 심지어 맹주였다. 다만 16세기 이후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동유럽에도 진출하면서 오스트리아는 신성 로마 제국의 일원이면서도 신성 로마 제국에 포함되지 않는 동유럽에도 영토를 보유한 이중적 포지션을 가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알프스산맥과 체코 사이의 좁은 지역을 통해 독일과 이어질 뿐 지리적으로 남동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독일의 다른 지역과는 지리적,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었다. 바이에른과 어느정도 생활문화권을 공유하는 린츠 서쪽 지역은 그나마 독일과 동질감이 조금 더 강한 편이지만, 수도 빈의 경우 오스트리아에서도 동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다른 독일 지역과 지역적, 정서적 거리감이 있어 왔다.
그래도 1918년 전까지는 체코의 전신인 보헤미아 왕국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하에 있었고, 폴란드도 프로이센 왕국과 함께 분할, 차지하였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독일 본토와의 지리적 교류가 오히려 지금보다 원활한 측면이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체코와 동독 등 인근이 죄다 공산화되면서 정작 독일과의 교류가 단절된 측면이 있다.[1]
역사적으로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도하에 독일 통일을 이룩한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북부의 개신교 국가들을 대표하였으며, 오스트리아는 독일 남부의 가톨릭 국가들을 대표하였다. 특히 독일 남부( 바이에른)는 가톨릭을 믿는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와 매우 비슷했고, 오스트리아에서 쓰이는 독일어 방언도 독일 남부에서 쓰이는 독일어 사투리와 매우 비슷한 편이다.
언어가 비슷한 것이지 국가는 다르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독일인인지 물으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다르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바이에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일인보다 바이에른인이면서 독일인이라고 일컫는 것처럼 독일은 통일이 늦은 만큼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지역색이 꽤 강한 편이다.
언어, 문화 등 공통점이 많지만 오스트리아를 내쫓고 소독일주의에 입각한 독일 통일을 주도한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이후 결정적 시점에서 오스트리아와 적대하는 경우가 많았다.[2]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 때문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의해 합병된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온갖 험한 꼴은 다 당한 다음에, 독일과의 통일을 영구히 포기하는 조건 끝에 영세 중립국으로 겨우 해방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한 국가며, 따라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은 결코 진정한 '통일 독일'이라 할 수 없다는 대독일주의 담론은 19세기말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자면, 30년 전쟁으로 독일 지역이 사분오열한 이후 독일어권의 주도권은 남부에서는 신성 로마 황제를 지속적으로 배출한 오스트리아, 더 정확히는 합스부르크 가문 쪽으로 넘어가,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등장하는 초석이 된다. 반면 북부에서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 꾸준히 힘을 키워 프로이센 왕국이 되었고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등장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패하여 독일어권의 주도권이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독일 제국 및 그 후계 국가들로 넘어가버렸다고 할 수 있다.
1848년 혁명 이후 대두된 독일 통일 운동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제외한 통일인 소독일주의가 있으며,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모든 독일 국가의 통일인 대독일주의가 있다. 나치 독일 시기에 이르러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한 국가가 되는 안슐루스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 결과가 끔찍한 파멸이었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언급이 매우 금기시된다.
히틀러 집권시절 초반 독일에 합류한 오스트리아는 다시 떼어냈고 이후 나치의 만행 때문에 독일 민족주의나 대독일주의가 그것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정치적 품성을 의심받게 만들 수 있는 철저한 금기로 여겨져서 지금과 같은 오스트리아인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2.2. 현대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서는 독일과 함께 역대급의 악질적인 승부조작을 벌여서 양 국가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이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도 마찬가지. 자세한 내용은 히혼의 수치 참고.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는 아예 독일인 선수와 오스트리아인 심판이 작정하고 한국인 선수를 1초 오심으로 탈락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펜싱 참고.
2018년 6월 18일에 독일이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국제 기구, 기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
오스트리아 사람들 중 일부는 "이제는 독일과 다시 통합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는 대독일주의 같은 것과는 조금 다른 접근인데, 오스트리아가 유럽의 주요 강대국에서 소국으로 굴러떨어진 것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 유럽에서 독일의 위치는 인구수나 국력 모든 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인 반면, 오스트리아는 '말 그대로 서유럽의 작은 나라'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예 과감하게 독일과 다시 통합하여 선진국 이권을 얻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이런 독일과의 통합 주장은 오스트리아 내에서도 극히 소수파이고, 주류 사회나 정계에서는 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심지어는 오스트리아의 국가 설립 이념에 역행한다고 논의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는 오스트리아가 독일과는 영구히 다른 국가로 남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여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에서 연합군이 철수해서 해방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 그래도 독일의 존재감이 위협적인데 여기에 오스트리아까지 합치면 더욱 세력이 강대해질 것[3]이므로, 주요 이웃 국가들이자 독일, 오스트리아와 교류가 활발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모두 이런 종류의 주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며, 영국 또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합에 매우 부정적이다. 게다가 오스트리아의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권을 포기해가며 독일 정도의 강대국과 국가를 합병하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또한 독일 국민들이나 정치인들도 오스트리아에 대해 같은 문화권에 속한다는 사실이나 괴상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웃의 친척 국가 정도로만 관심이 있지, 굳이 국제적으로 시끄러워질 이 문제는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일차적으로 현대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이름 아돌프부터 박멸하는 등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금기시 하고 있어 히틀러의 주요 정책인 오스트리아 합병 문제를 매우 꺼린다. 독일인들의 편집증적 반히틀러 정서를 제외하고도 동독과의 독일 재통일 역시 독일이 몇 가지 조건을 걸고서야 겨우 이뤄졌는데, 그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 병합의 효력을 원천 무효화하고 독일이 오스트리아와 영구히 다른 나라로 남는 것이었다.[4]
이 때문에 독일 쪽에서도 주변국들이나 영국, 미국, 러시아를 과거사 문제로 자극할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자체를 피한다. 즉 오스트리아와 독일 양국 모두에서 독–오 통합 떡밥 자체가 내부적으로 음지에서 돌기는 하나, 비주류 의견에 멈춰있다. 애초에 같은 유럽연합 국가에 유로존이기도 하고 솅겐 협정도 같이 적용되는 바, 현재의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 입장에서 통행이나 거주, 취직, 이동의 제약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세월이 가면서 양국에서 대독일권 혹은 범독일권이라는 의식이 희미해지고 개별 국가의 시민으로서 오스트리아인과 독일인이라는 의식이 성장해가고 있는 와중에, 오스트리아와 독일 양국의 정치적/외교적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양국이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외교적으로는 이웃 국가 간의 관계가 좋기가 힘들다는 점이 위의 문제들과 겹쳐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편이다.
때문에 최근에 독일 내에서는 독일이 주도하는 중동 난민 문제 등에 반기를 드는 오스트리아를 특히 오스트리아 내 우파 정당들을 들먹이며 나치 청산이 제대로 안 되어 네오나치가 판을 치고 나치 전범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까지 해먹은 정신나간 국가라고 비판[5]하고, 오스트리아는 이에 반발하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덴마크 등과 연대하여 독일에 대응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오스트리아로서는 해안선을 맞댄 독일을 배척할 경우 독일과 네덜란드 쪽 항구에 접근하는 데 애로사항이 생기게 되고, 이 경우 오스트리아와 복잡한 관계에 있는 이탈리아[6]와 폴란드[7]에 대한 의존도가 급격히 늘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독일과 갈등이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 산업 쪽은 독일로 편입되는 경우가 많다. 오스트리아 자체 문화 산업은 대체로 영세에 못 벗어나고 언어도 방언 수준 차이라 독일 입김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 영화 감독이 실상은 독일 영화 감독인 경우도 부지기수.
3. 관련 문서
- 독일/외교
- 오스트리아/외교
- 유럽연합
- 독일어[8]
- 독일/역사
- 오스트리아/역사
- 독일어권
- 프랑크 왕국 / 동프랑크 왕국 / 독일 왕국 / 신성 로마 제국 /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나치 독일
- 독일/경제
- 오스트리아/경제
- 독일/문화
- 오스트리아/문화
- 독일인 / 오스트리아인 / 독일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1]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도 오스트리아처럼, 같은
독일어권 국가이지만 스위스는 1495년 이후 반독립적 정치 체제였고, 리히텐슈타인은 애초에 공가인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빈에 기반을 둔 오스트리아의 귀족 가문이었다.
[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7년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실제로
호엔촐레른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은 협력한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당장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대
독일왕
루돌프 1세의 선출을 도운 인물이 호엔촐레른 가문의 직계 조상인
뉘른베르크 성주 프리드리히 3세였고 18세기까지 호엔촐레른 가문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서 황제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북독일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충견(...)을 자처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공동의 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물리치기 위해 협력했으며
신성 로마 제국 해체 이후 수립된
독일 연방에서도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에 이은 2인자 역할에 만족했다.
[3]
2022년 기준 두 나라가 합쳐지면 인구는 무려 9300만명에 이르게 된다.
[4]
이 외에도 중요한 조건들로는, 단순 지명으로도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
뮌헨 협정으로 얻은 영토를 전부 불법 취득 영토로 간주해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 전후 폴란드와 소련(현재의 러시아) 영토로 귀속된 동방 영토를 영구히 포기할 것이 있다.
[5]
물론 오스트리아인들도 독일 역시 네오나치들이 득세한다며 반론을 가하거나
쿠르트 키징어 전 서독 총리 같이 제2차 대전 이후에 독일도 나치 출신 정치인들이 국가 수반을 역임했다며 반격을 한다.
[6]
쥐트티롤 영토 문제와 이탈리아 북부의 오스트리아계 주민, 오스트리아 남서부의 이탈리아계 주민 문제가 있다.
[7]
현대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의 관계는 대체로 우호적이고, 오스트리아 동부는 범
비셰그라드 그룹 경제권으로 묶이며 폴란드와의 경제적 교류 또한 크게 늘고 있으나, 여전히 역사 문제가 앙금으로 다소 남아있다. 또한 중도 우파 성향이 강한 오스트리아와 강경 우파 성향이 강한 폴란드 사이에서 경제/사회/안보 문제 등에서 갈등이 불거질 때도 있다. 또한 폴란드에서 러시아가 지척이다 보니 유사시를 생각하면
그단스크 등 폴란드 쪽 항구에 100% 의존하기는 어렵다.
[8]
양국은 독일어가 공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