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7 21:24:47

브렉시트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브렉시트/영국 내 영향, 브렉시트/세계 각국의 영향, 브렉시트/탈퇴 과정과 이슈들
1. 개요2. 배경3. 국민투표
3.1. 투표 진영3.2. 해당 선거의 유권자3.3. 투표 전개와 결과
3.3.1. 투표3.3.2. 예측조사3.3.3. 개표 결과
3.4. 영향과 반응
4. 탈퇴 과정과 이슈들5. 유력 인사들의 견해
5.1. 입장 불분명5.2. 잔류 지지5.3. 탈퇴 지지
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blog.jonolan.net/Straight-Outta-Europe.jpg
Straight Outta Europe

영국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한다. 그렉시트가 단어의 원조. 단, 그리스의 경우 유로존을 탈퇴해도 유럽연합 자체를 탈퇴할 방침을 세우진 않았다. 경제,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독일,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 최대-최강 국가들 중의 하나인 영국이 탈퇴함으로써 유럽연합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영국은 20세기 초까지 세계를 지배한 초강대국 대영제국이었고, 2019년 기준 현재로도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임과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이므로 브렉시트는 EU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이슈로 발전했다.

당시 영국 총리이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자신이 EU 잔류파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입지를 위해 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현재까지의 브렉시트 진행 상황을 보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테레사 메이 후임 총리가 2년여를 뒷수습해봤지만 점점 더 꼬여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으로, 애초에 브렉시트란 결정 자체가 무리였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이 EU 단일시장 접근을 포기하는 경제적 손실과 그 파생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북아일랜드 국경이 분단될 상황인데 해결책이 아예 없어서 진퇴양난이기 때문. 경제적인 문제야 감수할 수 있다고 해도 국경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

결국 이 문제는 노동당, 보수당이라는 거대 정당이라는 체제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무소속 그룹, 브렉시트당이라는 신생 정당들이 주목을 받을 정도이다. 설상가상 지금까지 겪지 못한 정치적으로 혼돈 상태에 빠지며 국민들도 정치혐오증에 빠지게 되었다.

또, 영국이 이루어졌던 점진적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아직도 남아 있던 학벌로 연결돼 보수 정계의 요직을 꿰찬 엘리트 정치인들의 타협할 줄 모르는 배타적 문화가 브렉시트 혼란의 한 원인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 그 기원은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

현재 2번 연기한 상태이며, 앞으로도 탈퇴 선언만 하고, 탈퇴 못하고 있는 상태로 갈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다.[1]

1.1. 백스톱

파일:브렉시트 후 4가지 시나리오.jpg
아이리시 백스톱이란?(BBC)
CGP Grey가 제작한 브렉시트 총정리 동영상. 영국- 아일랜드 국경에 관련된 문제를 설명한다.
한국어 자막 있음. 2019년 3월에 제작된 영상임을 유의.
위 사진과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섬 북동부에 위치한 영국령이다. 이 곳에는 영국 잔류를 원하는 연합주의자와 아일랜드와 통합을 원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수십년에 걸쳐서 분쟁을 벌여왔는데, 그 결과 유혈 충돌과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2]

1998년 벨파스트 협정 체결 및 EU 출범으로 인해 양국간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하면서[3] 이런 충돌이 잦아들었는데, 이대로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북아일랜드-아일랜드 사이에 국경 검문이 부활해야만 한다. 물론 영국-아일랜드간 입출국심사는 아일랜드가 솅겐조약에 가입하지 않는 이상 현상유지가 된다 해도, 북아일랜드 국경이 유럽공동시장 외부국경이 됨에 따라 최소한 세관검사는 부활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현재 북아일랜드-아일랜드는 국경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같은 나라인 것처럼 통행이 자유롭다. 두 나라를 구분하는 건 단지 속도제한 표지판이 킬로미터와 마일로 바뀌는 것 이외에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 그런데 이 곳에 최소 1시간에서 최대 3시간까지 걸리는 입출국 수속과 세관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하드 보더(Hard Border)이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백스톱' 조항으로,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영국이 EU에 잔류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영국에서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를 가리지않고 강력 반발하는 것이 바로 이 조항인데, 문제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 선택지가 애초에 없다는 것. 브렉시트를 선언하기 이전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애초에 퇴로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 영-EU 관세동맹
    영국과 EU간 관세동맹을 체결하는 방법이다. 영국과 EU가 따로 영구적 포괄적 관세동맹 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고, 영국이 노르웨이처럼 유럽자유무역연합(EETA)에 가입할 수도 있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다만 이 경우 브렉시트를 한 이유가 없어진다. 영국이 EU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브렉시트를 했는데, 더 나쁜 조건으로 관세동맹에 잔류하면 브렉시트를 안 하느니만도 못한 결과가 되어버린다. 노르웨이 모델은 브렉시트 이전보다 발언권은 줄어드는데, 재화/자본/노동력/서비스 이동의 자유 의무는 그대로 지켜야한다. 이 방법은 EU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이전의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영국의 EU 발언권만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질서있는 퇴장으로 이 방법을 지지하지만, 영국 입장에서는 손해만 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방안이다. 다만 EU가 북아일랜드 국경을 브렉시트 이전처럼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 방법을 강경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영국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 방법으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
  • EU-북아일랜드 관세동맹
    북아일랜드-아일랜드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북아일랜드만 따로 EU 관세동맹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북아일랜드는 EU 기준, 영국은 자국 기준을 적용하게 되므로 북아일랜드-영국 간에 새로운 하드 보더가 생겨나게 된다. 북아일랜드가 영국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분리되는 것을 원치않는 연합주의자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다. 그나마 타협의 여지가 있었던 방법이었지만, 제57회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고 DUP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였고, 이로 인해 DUP의 발언을 무시할 수 없게 되면서 협상 테이블에 올리기 난처한 방법이 되었다.
  • 영-북아일랜드 관세동맹(소프트보더)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을 현 상황으로 유지하고, 북아일랜드-영국 간에 관세동맹 형태를 유지하는 방법. 한마디로 아일랜드-북아일랜드-영국으로 구성되는 3단 구성이 된다. 문제는 이 방법으로 타협하면 북아일랜드는 브리튼 섬의 상품이 EU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우회 교역로가 된다는 것이다. 영국은 이를 이용해서 EU의 규제와 의무는 전부 피하면서 이득만을 챙기는 얌체행위를 벌일 수 있다. 따라서 EU는 이 방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 영-북아일랜드 관세동맹(하드보더)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에만 강한 관세 장벽을 도입하는 방법. 만약 백스톱 조항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탈퇴가 성사될 경우에도(노딜 브렉시트 등) 이 방법이 자연스럽게 채택될 것이다. 특별한 협정이 없다면 국경선에는 검문소와 세관이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는 벨파스트 협정 이전으로 돌아가는 처사이므로 민족주의자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80년대의 유혈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19년 7월 13일 북아일랜드 경찰국장 시몬 번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하드 브렉시트는 북아일랜드의 평화에 굉장히 해로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 북아일랜드-아일랜드의 경제 통합 상황을 고려하면 양국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할 것 또한 명확하다. 아일랜드는 거품을 물고 반대하며, 영국과 EU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기에 노딜 브렉시트로 강제로 달성될 수는 있어도 협상에서 이 방법으로 타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위에 보면 알겠지만, 하나 같이 답이 없다. 즉, 뭘 어떻게 해도 문제가 터져나온다는 것.

사실은 경우의 수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국이 일시적일 줄 알았던 백스톱에 영원히 갇히는 것. EU 측이 백스톱의 적용 기한을 명시하지 않고 있고, 영국은 백스톱을 파기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EU가 이 백스톱을 가지고 협상을 질질 끌면 영국은 협상 과정에 영원히 갇힐 가능성이 있다. 영국 측은 백스톱 협상에 갇히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관계로 오히려 노딜 브렉시트 만료시한을 늘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판이다. 하지만 영국 내에서도 백스톱에 갇히면 영국이 EU에게 끌려다닐 수 있다는 불만이 있었고, 영국 정부는 이후 백스톱 무기한 연장 없이 2019년 10월까지의 연장을 마지막으로 백스톱 상태를 끝낸다고 결정하였다.

2019년 1월 15일, 메이의 타협안이 영국 의회에서 거절됐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영국 정부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노딜 브렉시트로 3월 29일 브렉시트는 마무리 되며, 그러면 WTO 규칙에 따라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는 하드보더가 생길 수밖에 없다. #

2019년 3월 12일, 브렉시트 제2승인투표마저 부결되버렸다. 이번 합의안에 영국이 영구적으로 백스톱에 갇히지 않도록 문서를 통해 보장하고 영국에 일방적 종료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걸 제프리 콕스 영국 법무상이 검토한 결과 EU의 동의 없이 백스톱에서 벗어날수 있는 “국제적으로 합법적인 수단은 없다”고 밝히면서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부결로 기울어진 것. # 간단히 말해서, 백스톱때문에 영국은 두손 두발 다 묶인채로 노딜 브렉시트라는 절벽으로 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2019년 4월 10일, EU는 노딜 브렉시트 시한을 10월 31일로 연기해주었다. 결국 영국은 5월 23일 시작되는 유럽의회 선거에도 참여했다.

2019년 7월 26일 테레사 메이 전 총리의 후임인 보리스 존슨 총리가 취임 후 첫 하원 연설에서 이전에 합의된 백스톱을 폐기하고 새 협정을 체결해야한다고 주장하였으나, EU 집행위에서는 관세동맹 없는 백스톱은 있을 수 없다며 이를 일축하였다. #

2019년 9월, 영국이 보리스 존슨 총리의 주도로 '안전장치'(backstop)의 대안 마련을 위한 문서를 유럽연합(EU)에 공식 전달했다. # 주요 내용은 농식품에 대해서는 EU 규제를 따르는 영-EU간 관세동맹 형태를 따르고, 나머지 상품에 대해서는 북아일랜드-EU 형태의 관세동맹, 즉 북아일랜드와 브리튼 섬 사이에 관세장벽을 두되, 북아일랜드 내에서 취급하는 EU 상품에 대해서 영국 정부가 관세 부과 방안을 마련하면 승인해달라는 의견을 냈다.

2019년 10월 초, 영국의 제안에 대해 EU와 아일랜드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다. # EU 입장에서 본 영국의 제안은 전형적인 골라먹기식 협상일 뿐더러, 이 제안을 수용하면 EU는 북아일랜드를 통해 오는 EU 규제를 따르지 않는 영국 상품을 사실상 무관세 무통관으로 통과시켜야 하는 반면, 영국으로 수출하는 EU 상품들은 최소한 북아일랜드에서 브리튼 섬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관세를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4] 이로 인해 일부 EU 국가들은 북아일랜드 국경 자체가 밀수 통로가 될 가능성 또한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영국 내 제1야당인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 대표마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백스톱 협상은 난항으로 치닫고있다.

2019년 10월 17일, 영국과 EU 간 새 브렉시트 협상 초안이 합의되었다. #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존슨 총리의 제안에서 영국이 일부 양보한 방안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단 합의 자체는 이루어졌으나 이후 영국에서는 이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해야하고, EU에서는 EU 회원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최종 비준까지는 난항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 의회의 경우 과거 테레사 메이 전 총리의 합의안을 부결시킨 전적이 있고, 이번 합의안에는 노동당뿐만 아니라 연립정부 구성원인 DUP까지 반대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에 의회 통과까지는 매우 험난한 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2.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배경

브렉시트 이유(영어)
브렉시트 이유(프랑스어)[5][6]

유럽공동체(EC)는 80년대부터 경제적 화합을 넘어서 정치적 화합으로 발전할 움직임을 보였고, 이로 인해 1988년부터 기존의 EC 찬성파였던 마가렛 대처를 비롯한 보수당의 소수세력을 중심으로 유럽공동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7] 그러나 영국은 마가렛 대처 내각 주도 아래에 단일유럽의정서(1986)를 체결했고, 존 메이저 내각 아래에 마스트리흐트 조약(1991)이 체결됐다. 결국, 1993년에 조약이 발효되면서 완전경제통합 단계인 유럽연합이 탄생한다. 이로 인해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반대해왔던 알랜 스케드는 훗날 Vote Leave(EU 탈퇴파)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게 되는 UKIP을 창설한다. 이후 동유럽 이민 문제, 유로통화 문제, 영미법과 상반되는 대륙법에 기반한 광범위한 행정규제 등으로 유럽공동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게 된다. 이들을 유로스켑틱(eurosceptic, 유럽회의주의자)이라고 한다.

이후 유로존 위기와 시리아 난민사태가 터지면서 사태가 악화되었다. 2013년 당시 선거를 치르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몇 년 안에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난민문제가 브렉시트의 불을 당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시리아 내전이 터지기도 전부터 EU탈퇴를 위한 국민투표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시리아 난민 사태를 겪으면서 보수당 일부와 UKIP을 중심으로 유럽 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불거져 나왔다. 캐머런 총리는 국민여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영국 내 이민 억제에 나서면서 EU가 "빈곤국→선진국" 인구 유입을 적당히 조절해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즉 인구 이동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거나, 영국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라는 뜻이다. 캐머런 총리는 EU 존속을 주장하였지만, EU가 '단일시장(single market)'을 '상품과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운 공동체'라고 정의한 이상 영국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것은 곧 EU 자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한 EU 지도부는 "영국의 탈퇴를 감수할지언정 EU 내 이동의 자유 제한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는 입장을 보여 사실상 협상은 평행선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형성함에 따라 캐머런 총리의 공약이던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2017년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었고, 2016년 6월 23일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3.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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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2016) 브렉시트 주요인물 말말말

2016년 2월 19일, 유럽 각국은 영국의 EU 탈퇴를 막기 위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주된 골자는 외국인 이주민 정책 분야에 '본국에 자녀를 두고 온 이주민에 대해 양육수당 삭감, 7년간 복지혜택 중단', 영국의 독자적인 통화·금융정책 보장 약속이다. # 전체적으로 영국의 입장을 배려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 반응은 엇갈린 상태였다. 캐머런 총리가 잔류파로 돌아서면서 국민들을 설득하였지만, 탈퇴파들 사이에선 국민투표에서 탈퇴가 압도적으로 나올 경우 EU 잔류를 원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이 합의안을 바탕으로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를 2016년 6월 23일 실시하기로 하였다.[8] 영국 정부는 기본적으론 경제적 불안을 우려해 영국이 EU에 남는 것을 권고하는 입장이었으나, 각 장관들은 개인적으로 탈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은 찬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며,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조차 며칠을 주기로 뒤바뀌기도 하였다. 계층별로는 영국 내 청년층과 중장년층 중 진보층의 경우 EU 잔류 쪽이 압도적이고, 반대로 노년층이나, 청년층 중 보수층은 브렉시트 찬성이 우세하였다. 또한 금융 자산이 많은 계층일수록 찬성이 우세하였다. 그리고 당시 배팅업체나 도박사들은 대체로 잔류 가능성을 70%로 봤다. 이것도 원래 78%였다가 찬성 우세여론이 나오자 조금 낮춰 수정한 것. # 이는 부동층의 영향과, 큰 변화에 대해서 일단 경계를 갖는 인간의 본성을 고려해서 나온 분석이라 한다.

현지 시간으로 6월 16일, EU 잔류를 주장하던 노동당 소속 좌파 하원 의원인 조 콕스(Jo Cox) 의원이 주민과의 간담회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가 도서관 앞에서 50대 남성에게 총을 맞고 흉기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했다. 테러범은 공격을 하면서 "Britain first!(영국이 먼저다!)"라고 외쳤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영문 이름이 같은 영국의 극우 정당인 영국 제일당(Britain First)은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사건이 잔류 측에 호재가 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상했으나 잔류파와 탈퇴파간의 의견차가 크고, 무엇보다 선동과 비방이 난무했던 선거 전 상황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투표일 하루 전까지도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오차 범위 이내의 결과가 나오는 초박빙 양상을 보였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투표함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했다. 오늘 브렉시트 국민투표... 영국·EU '운명의 날'.

투표에서 제외된 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 맨 섬 채널 제도가 EU의 지역에 속하지 않아서 제외되었으며, 북아일랜드의 경우 전 지역 통합으로 개표 결과를 추산하는데, 18개 선거구에서 각자 개표 결과를 발표하기 때문에 BBC 등의 언론사에선 선거구 단위로 개표 결과를 알렸으나, 공식 발표는 모든 선거구의 개표 결과가 나온 뒤 확정되었다. 그리고 지브롤터도 투표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지브롤터는 영국의 속령들 중 유일하게 EU 관할하에 들어가 유럽의회 총선도 치르기 때문이다.

3.1. 투표 진영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잔류파 대표 진영으로 'Britain Stronger in Europe(유럽과 하나되어 강력한 영국)'이 있다.

공식적인 탈퇴파 진영으로는 영국 독립당 당수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Leave.EU와 전직 런던 시장인 보수당 당원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Vote Leave가 있는데, 이 중 Vote Leave가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았다. 영국 독립당 당원 몇몇이 Vote Leave에 끼었지만, 패라지의 Leave.EU는 이후로도 독자적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이외에도 영국 노동당 내 정통 사민주의 계열 당원들과 의원들이 중심이 된 별도의 탈퇴 지지 캠페인 또한 진행되었다. 때문에 위의 잔류파 진영에 속한 노동당 내 잔류파들과의 갈등이 노동당 내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9]

3.2. 해당 선거의 유권자

  1. 영국 선거법상 의회 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
  2. 그레이트브리튼 섬과 부속 도서들, 지브롤터, 북아일랜드 거주자
  3.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영국 국적자
  4.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아일랜드 국적자
  5. 1.과 2.의 조건을 충족하는 호주, 캐나다, 인도, 말레이시아, 자메이카 영연방 소속국 국적자
이 때문에 영국에 거주하는 아일랜드 몰타를 제외한 EU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그리고 타 EU 국가나 외국에 거주하다 영국에 온 영국 시민들은 영국에 15년간 거주한 적이 있어야만 투표권이 있었다. 또한 지브롤터를 제외한 포클랜드 버뮤다 등 해외 속령 주민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 대신 영국에 거주하는 영연방인들이 대거 선거인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3.3. 투표 전개와 결과

3.3.1. 투표

구분 대한민국 시간 기준
(GMT+9)
영국 시간 기준
(GMT+1)
투표 시작 시간 2016-06-23 15:00 2016-06-23 07:00
투표 마감 시간 2016-06-24 06:00 2016-06-23 22:00

3.3.2. 예측조사

이번 국민투표에는 방송사가 주관하는 출구조사가 없다. 인디펜던트 기사. 그 대신 리서치 회사들의 예측조사가 투표 끝나고 곧바로 현지 시각으로 오후 10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6시에 발표되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총 표본 4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2%는 잔류, 48%는 탈퇴를 선택. 다른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모리의 조사에서는 표본 약 5000명에 잔류 54%, 탈퇴 46%. 한편,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독립당이 1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탈퇴가 52%로 나왔다. 이 조사들은 어디까지나 예측조사일 뿐 정식 출구조사는 아니었지만, 한 때나마 세계의 브렉시트 우려는 완화되었고 금융 시장 역시 안정된 양상을 보다.

그리고 예측조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판은 엎어진다.

3.3.3. 개표 결과

BBC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방송.
Sky TV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표방송.
파일:external/ichef.bbci.co.uk/4103a77f-a878-4967-9c26-e45dd8c15946.jpg 파일:external/ichef.bbci.co.uk/b3b49ae4-7c84-402a-84d3-ce0623ea4d23.jpg
(개표 전, 여론 조사에서 잔류 측의 승리가 예상되자)
영국은 미쳤다
(개표 후, 탈퇴 측의 승리가 확실시 되자)
나중에 EU!/[10]
황색언론인 《 더 선》 紙의 브렉시트 관련 반응
UK votes to LEAVE the EU
영국의 선택, "EU 탈퇴"
BBC 국민투표 페이지
파일:denfiej9rj48jifjgimfg.png
EU 탈퇴 EU 잔류 투표율
17,410,742표(51.9%) 16,141,241표(48.1%) 72.2%
탈퇴파의 승리

탈퇴 매직 넘버가 소멸되었고, 영국은 유럽 연합을 떠나게 된다.

유럽 연합 탈퇴 표가 51.9%로 개표 종료되었고, 주요 방송사의 투표 결과로는 탈퇴로 결정되었다. 원래는 잉글랜드에서 찬반 비율이 접전으로 나오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예측되었지만, 잉글랜드에서 예상보다 표차가 크게 나면서 결과가 뒤엎어진 것.

영국 선거위원회 위원장 역시 한국 시간 16:00(현지 시간 07:00)에 탈퇴 51.9%로 통과되었다고 선포하였다.
지역별 개표 결과 투표율 EU 탈퇴 EU 잔류
런던 69.7% 1,513,232표(40.0%) 2,263,519표(60.0%)
잉글랜드[11] 73.6% 13,674,351표(55.5%) 10,984,155표(44.5%)
웨일스 71.7% 854,572표(52.5%) 772,347표(47.5%)
스코틀랜드 67.2% 1,018,322표(38.0%) 1,661,191표(62.0%)
북아일랜드 62.7% 349,442표(44.2%) 440,707표(55.8%)
지브롤터 83.5% 823표(4.1%) 19,322표(95.9%)
지역별 결과는 위의 표와 같다.

연령별 개표 결과. 젊은 층으로 갈수록 잔류에 표를, 노년층으로 갈수록 탈퇴에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한 시각화(출처: 가디언). 가디언지의 최종 투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번 투표는 다분히 계급/계층적 요소가 강하였다. 교육 수준, 공인 자격증의 수, 임금, 사회계층 등이 낮은 지역일수록 탈퇴를 선택한 비율이 더 높은 경향이 있었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결국 종합적으로 봤을 때 브렉시트 투표는 연령별 투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동시에 보수당의 전통적 지지층들[12]은 노동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던 잔류에,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층[13]들은 많은 수의 보수당이 공식적으로 추진하던 탈퇴에 투표하며, 기존 지지정당의 공식 입장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영국 민주주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14]

한편, 국민투표로 인해 브렉시트가 법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회를 위한 "참고 자료"라 할 수 있다. 영국 총리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여 유럽 연합 탈퇴를 선언해야 확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 국가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의사 표현을 정치인 개인적 판단으로 무시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 그러므로 사실상의 구속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확정되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이 그저 틀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는 EU탈퇴전 재투표가 법률적 하자가 없음에도 추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성문 헌법이 없는 영국에서는 정치적 관례 역시 중요한 헌법적 요소이다. 이론적으로 영국 여왕이 총리 임명권 등 중요한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총선 후 의회의 협상 결과에 따르지 않고 다른 인물을 임명하는 것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봐도 그렇다.

3.4. 영향과 반응

3.4.1. 영국 내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브렉시트/영국 내 영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4.2.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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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탈퇴 과정과 이슈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브렉시트/탈퇴 과정과 이슈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유력 인사들의 견해

주의: 특정 유명인의 잔/탈 의사를 서술할 때 단순히 찬/반으로 서술하면 해석에 혼란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탈퇴 찬성, 탈퇴 반대 혹은 잔류 의사, 탈퇴 의사로 명확히 기술하여 주십시오.

5.1. 입장 불분명

  • 밴드 오아시스의 전 멤버인 가수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도 화제가 되었다. 민중들을 대신해 정치를 이끌어 나가야할 정치인들의 무능력함과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질타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 번역본. 노엘 갤러거의 경우 브렉시트 국민 투표 기간 동안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아예 언급 자체를 피하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에 앞서 오아시스의 또다른 전 멤버 앤디 벨도 트위터로 데이비드 캐머런에 대한 짧은 비판의 트윗을 했다. 영국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의 비판이 인상적. #
  • 2016년 3월 9일 더 선이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1면에 기사를 냈는데, 버킹엄 궁전 측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63년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국이 유럽의 일부여야만 하는 이유 3가지를 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두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이에 언론 규제 단체인 IPSO는 더 선의 기사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misleading)고 발표했지만, 더 선은 두 명의 소식통을 통해서 여왕이 당시 부총리였던 닉 클레그한테 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 ## 이에 닉 클레그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고브가 더 선에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한 소식통 중 한 명이라고 지적했으나, 마이클 고브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또한 닉 클레그는 여왕이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일개 부총리한테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 논평을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더 선의 주장을 보증해주기를 사실상 거절했다.
    • 영국의 대표 보수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 데일리 메일의 왕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며, 윌리엄은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데일리 메일은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7년 6월 21일 국왕의 칙유 발표를 위해서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모자에 관심이 집중됐다. # 이유는 모자가 유럽 연합기와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간접적으로 유럽 연합을 지지한다는 뜻을 비추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 지난 몇 년 간 본 행사에 흰색 드레스를 고수해 왔기에 이러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 2015년 6월 24일 독일을 정식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의 연설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이 참석한 회담에서 여왕은 "유럽의 분열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했으며, "우리 영국은 유럽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핵심층"이라며 영국과 독일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매우 가까운 외교 관계를 유지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 2019년 5월 19일, 기밀이 해제된 독일 외교부 문서에 따르면, 여왕은 유럽연합의 전신 EEC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영국의 미래는 유럽에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 2019년 1월 25일, 노딜 브렉시트가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엘리자베스 2세는 "모두 모여서 합의점을 찾읍시다"라고 의원들에게 부탁했다. # 현재까지 여왕이 정치와 관련된 일로 목소리를 낸 적은 별로 없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총리인 테레사 메이가 아니라 의원들에게 직접 말한 것은 여왕이 총리와 내각을 더 이상 신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5.2. 잔류 지지

다음은 EU 잔류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유명인들의 일부.

5.3. 탈퇴 지지

  • 다이슨 사의 창립자이자 CEO인 제임스 다이슨은 영국 재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탈퇴 지지파였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의 온전한 독립과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동시에 영국이 영연방 각국과 다시 한 번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영국 재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연방과의 단결을 주장하는 인물이 바로 다이슨 이기도 하다.[15] 그런데 EU탈퇴를 찬성하던 양반이 정작 2019년 1월 22일, 하드 브렉시트가 점점 현실화되자 회사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 이에 다이슨은 브렉시트와는 상관없으며 단순히 미래를 위해서 옮기는 것뿐이라고 답변했으나 공장을 이동시키는 건 이해하지만 회사 본사까지 이동시키는 건 더 투명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찬성-반대 양쪽 진영 모두에게 극딜 당하고 있다. # # 참고로 2018년 10월 싱가포르는 유럽연합과 정치, 무역, 투자 부분에 대한 국제 협약을 체결했다. # 즉, 노딜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연합과 어떠한 합의안 없이 탈퇴해도 다이슨은 법적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유럽연합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2월 16일, 다이슨은 약 100개의 일자리를 영국에서 인도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
  •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마이클 케인은 영국 연예계에서 얼마 안 되는 탈퇴 지지자 중 하나였다. # 그는 자신의 탈퇴 지지 이유에 대해 "그것은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이민이 아니라." 라고 밝히며, 자신의 선택이 유럽 연합의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국을 위한 것이었음과, 이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음을 밝혔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영국 경제가 나빠지자 마이클 케인은 "유럽연합 안에서 부자로 사는 것보다, 유럽연합 밖에서 빈곤하게 사는 게 낫다"라며 본인의 심정을 고백했다.
  • 엘돈 보험회사의 소유주인 아론 뱅스(Arron Banks)는 브렉시트를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선언했으며, 리처드 타이스와 함께 Vote Leave를 창립하여 브렉시트 찬성파 진영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2018년 기준으로 Vote Leave 진영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으며, 아론 뱅스 본인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에 러시아 공사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러시아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은 것이 밝혀졌다. # ## 2018년 11월 1일, 영국 정부는 아론 뱅스가 약 8백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막대한 외국 자금을 이용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유세 기간 동안 불법적으로 Vote Leave 진영을 도왔다는 판단 아래에, 이번 일을 형사 사건으로 간주하고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 이에 아론 뱅스는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본인 심정을 고백했으며, "좌파 세력에 거액의 기금을 제공하는 조지 소로스는 이와 같은 조사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라며 본인이 마치 정치적 공격의 피해자인 듯이 말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와는 별개로 조지 소로스가 오랜 기간동안 전세계의 진보 좌파 정당들, 특히 미국 민주당에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그는 아론 뱅스와 달리 불법적으로 외국 세력의 돈을 세탁하여 선거에 개입했다는 수사를 받은 적은 없다.[16] 실제로 조사 결과, 조지 소로스는 70만 파운드 이하의 자금을, 유세 기간이 끝난 뒤에 기부한 것으로 밝혀져서 뱅스의 말이 더 자신의 화를 불러오는 꼴이 되고 있다.
    • 2019년 2월 1일, 정보위원회(Information Commissioner's Office)는 Vote Leave에서 아론 뱅스의 회사 앨돈 보험회사의 정보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총 12만 파운드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 당초 아론 뱅스는 Vote Leave는 앨돈 보험회사와 분리된 독립된 단체라고 설명했으나, 정보위원회의 조사 결과 아론 뱅스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으며, 보험 정보를 통해 30만 개의 정치적 메시지와 100만 개의 캠페인 이메일을 유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보위원회는 두 단체가 어떻게 연계되어 보험 정보를 불법적으로 활용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 회계 감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브렉시트 협상이 영국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제2차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영국 국민들의 수가 늘자, 블라디미르 푸틴은 테레사 메이에게 "국민들은 이미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국민의 뜻을 지켜라"라고 충고했다. # 다만 푸틴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으로 탈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 EU와 결별함으로서 EU와 영국의 파워가 약해지는 틈을 타 국제사회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상기한대로 Vote Leave 진영의 자금줄 아론 뱅스가 지속적으로 러시아 관료들을 만났다는 정황이 나오면서 배후에서 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6. 기타

  • 바로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진짜로 대통령에 당선되어버리면서 브렉시트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따져보면 둘 다 어느 선택을 하든 별로 마뜩찮은 상황에서 설마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일반적으로 더 안 좋을 것이라 생각되던 선택을 해버리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개표 전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는 것까지 유사하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따지면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은 핵심 계층이 영국 북부 쇠락한 공업지대 계층으로, 트럼프 반란의 핵심인 러스트 벨트와 통하는 바가 많다고 한다. 두 사건이 모두 굉장히 경제적인 이슈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 및 자유무역 문제와 깊게 맞닿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로이터 통신의 서울 지국에 근무하는 제임스 피어슨이라는 영국인 기자가 트위터에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라고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트윗을 주고받은 대상은 비정상회담 호주의 패널 블레어 윌리엄스.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 있다.
  • 한국에서는 영국이 정치적 힘을 강화하고,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자의 지지 의견을 근거로 미영동맹을 강화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 교황 프란치스코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한 결정은 국민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이제 영국과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유로 2016 16강에서 탈락하자 댓글창에는 브렉시트 드립이 넘쳐났다. 잉글랜드 EUro 2016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식. 웨일스도 결국 4강에서 떨어졌다.
  • 서구권에는 "지난 1992년에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던 지역들은 2016년 현재 브렉시트에 찬성한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괴담이 퍼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서구 웹상에 떠도는 짤은 그냥 똑같은 분포도를 한쪽은 컬러, 한쪽은 흑백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라고.
  • 한편 미국의 보수언론 폭스 뉴스는 브렉시트 보도에서 영국이 UN을 탈퇴한다고 자막을 잘못 내보내 네티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중국과의 외교 싸움에서 밀려 반강제적으로 탈퇴한 대만이나,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학살 문제로 유엔 회원국 자격을 박탈당하고 강제적으로 추방당했다가 전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실각한 후 다시 재가입한 세르비아,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관계 악화로 자발적으로 UN을 탈퇴했다 다시 복귀했던 인도네시아 등을 제외하면 UN 창설 이래 UN에서 나간 국가는 전무하다.[17]
  • 투표 두 달 전만 해도 이 문서의 길이는 그렉시트 문서보다 훨씬 짧고, 토막글보다 약간 길었다(...). 정작 '브렉시트'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그렉시트는 2016년 6월에 와서는 어디서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 오바마 대통령은 브렉시트와 관련해 갑자기 달아오르고 있는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면서, 호들갑과는 달리 영국이나 유럽 연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 브렉시트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 언론들이 너무 영미위주의 보도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영미편향적이며 유럽 대륙주의자들의 주장을 너무 간과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브렉시트 = EU의 해체를 기정사실로 놓는다는 점이 영미 편향의 증거이며, 오히려 대륙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아니꼽던 상대가 나갔으니 오히려 더 EU가 결속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영국 내의 반유럽주의자들 못지않게 유럽 대륙 내의 반영주의자들 또한 많은 편인데, 반유럽주의자들의 동향은 자세히 보도되면서 반영주의자들의 동향은 그러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국제 정세를 영어권 언론에게 거의 의존하다시피 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 위의 지적과는 별개로 영연방과 브렉시트의 관계나 브렉시트에 대한 영연방과 유럽 각국들의 반응도 몇몇 신문사의 기사를 제외하면 한국 언론에 소개되지 않거나,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됐다. 당장 BBC가 국제란에서 주요 기사로 뽑아내는 기사 내용도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의 소양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제작사인 SCS 소프트웨어는 게임 명이 "'유럽 연합' 트럭 시뮬레이터 2"가 아니므로 영국은 삭제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리고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페인트칠 값을 52% 할인해서 판매했다(...) 이는 맵에서 브리튼 섬만 구현했고 아일랜드 섬은 구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과 유럽 간 국경선이 생겨도 영향이 적은 편이며, 도버 해협을 통과하는 것으로 국경 검문을 대신할 수 있기에 현실 반영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 한국 경제가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영국 가디언 지에 게재되었다( 국내 인용 보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롤모델로 주로 언급된 국가가 캐나다, 노르웨이, 스위스 등 구미권 국가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특이한 주장이다. 이후 영연방과 미국 시장을 등에 업고 싱가포르 ASEAN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롤 모델로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독일의 저명한 경제 학자가 다음 유로 탈퇴국으로 이탈리아를 지목했다. 즉, 이 예상대로라면 브렉시트 다음은 이탈렉시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셈인데 기사(영어) 하지만 브렉시트 과정을 보고 오히려 악영향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대부분 포퓰리즘, 극단주의 정당들은 유럽연합 탈퇴 내거는 것은 거의 없다.
  •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게임개발사 유비소프트가 브렉시트 이후의 디스토피아적인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을 2020년 3월에 발매할 예정이다. 제목은 와치독: 리전.

7. 관련 문서


[1] 노딜은 안된다라고 못은 박았지만 어떻게 나갈 건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려 합의가 안 된 상황이다. [2] 영국의 국교는 개신교인 성공회이고 아일랜드는 가톨릭이므로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북아일랜드 정체성 논쟁이지 종교 논쟁이 아니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3] 사실 영국-아일랜드 간에는 독립 직후부터 공동여행지역(CTA)협정으로 출입국 심사가 없었고, 1973년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 동시 가입으로 세관 검사도 없어지게 되었다. 다만 북아일랜드 국경에는 영국군 검문 초소가 있는 지정된 통과 지점으로만 월경이 가능해 아일랜드 연합파, 특히 무장투쟁을 벌인 신페인, IRA 등과 충돌이 빚어졌다. [4] EU를 창설한 목적이 EU 회원국 간 사람과 상품의 장벽을 없애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EU 탈퇴국인 영국을 위해 EU가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유럽 대륙 사이에 장벽을 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5] 해당 영상의 대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구글번역(영어)를 사용하면 꽤 괜찮은 번역이 나온다. [6] 이 영상에서는 난민문제 보다는 대륙(프랑스, 독일 등), 섬(영국) 간의 차이와 영미관계가 배경인 것으로 보고있다. 왜 영국은 유럽을 떠나려 하는가?(프랑스어) 브렉시트란?(프랑스어)에서도 같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난민문제는 도화선일 뿐이고 이전부터 있어온 잡음이 원인이라는 이야기이다. [7] 그런데 영국은 이미 1975년, 경제공동체 가입 2년만에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단행한 바 있다(영국 국회 자료). 당시는 잔류 67.2% 대 탈퇴 32.8% 이때의 청년층 중 다수가 40년 후에 유럽연합에 작별을 고하는 투표를... [8] 영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국민투표는 이번이 세번째다. 1975년에 EEC (유럽 경제 공동체) 지속 여부에 대해, 2011년에 즉석결선투표제에 대해 국민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9] 사실 유럽 공동체 가입을 주도한 것은 영국 보수당이었고, 영국 노동당 정통파들은 노동자 권익 보호와 영국 정부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 유럽 공동체 탈퇴를 숙원 사업으로 삼았다. 마거릿 대처와 토니 블레어 이후 영국 정치와 사상판이 심각하게 왜곡되며 현재와 같은 기묘한 판도가 나타나게 되었다. [10] 'SEE YOU LATER'의 말장난으로 'SEE EU LATER'라고 써 놓았다. 자매품인 'ADIEU' 도 존재한다. [11] 득표, 투표율 모두 런던, 지브롤터 제외. [12] 고학력자, 고소득자, 화이트 컬러, 신자유주의자. [13] 저학력자, 저소득자, 워킹 클래스, 사민주의자, 영연방인. [14] 사실 브렉시트 투표 당시의 이런 현상은 대처리즘과 블레어리즘 이후 영국 노동당과 보수당의 유럽 연합에 대한 정치적 스탠스가 상당히 뒤엉킨 것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15] 다이슨의 개인적 성향과 더불어 현재 연구 기지와 본사는 영국에, 생산 기지는 말레이시아에 만들어 놓은데다, 주력 시장은 아시아 각국과 호주, 북미인 다이슨 사 입장에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각국과의 양자-다자 FTA나 경제 공동체 형성은 유럽 연합 잔류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이 되는 상황이다. [16] 참고로 조지 소로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 재벌들 중 한 명으로, 공산주의를 동유럽에서 몰아낸 1989년의 동유럽 혁명, 1992년 영국 증시 대폭락,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에 영향을 준 인물이다. [17] 여담으로 만약 이 시나리오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UN에서 나가게 되는 만큼 국제 정세는 정말로 개판이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세계적으로 UN무용론이 대두되어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UN을 탈퇴해 UN이 해체되고 전후 질서가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