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3 16:50:03

대종상

대한민국 3대 영화상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 개최 순서
대종상영화제
靑大鐘賞 | Dae Jong Film Awards
파일:daejongawards.png
파일:0001-4.jpg
시상식을 알리는 포스터
국가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주최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첫 시상년도 1962년 11월 20일
링크 공식 사이트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역사3. 역대 주최/주관자4. 시상 부문5. 역대 수상
5.1.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5.2. 남우 / 여우 주연상
5.2.1. 기록
5.3. 남우 / 여우 조연상5.4. 신인 남우 / 여우상5.5. 신인감독상
6. 심사위원
6.1. 2017년6.2. 2018년
7. 문제점
7.1. 수상자, 수상작 논란7.2. 운영상 문제7.3. 함량미달의 진행자 선정7.4. 왜 이렇게 논란이 많은가?
8. 관련 문서
8.1. 연도별 논란8.2. 기타 관련 문서

1. 개요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가 주최하는 영화 시상식[1]의 명칭.

2. 역사

3대 영화제 중에서는 역사가 제일 깊다. 1958년에 문교부에서 '우수국산영화 시상제'라는 명칭으로 설립했다. 단, 국산 영화상 시절은 대종상의 수상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고 국산 영화상 시절과 단절을 선언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 이름을 대종상으로 바꾼 것은 1962년. 그런 이유로 2018년 기준 햇수로는 63년이지만 횟수로는 55회다.[2] 국가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넘어간 것은 1992년부터다.

과거에는 한국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이으나, 후술할 여러가지 계속되는 논란과 사건사고로 인해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서서히 몰락하더니 2010년대에 들어서는 그 위상을 청룡영화상에게 내주었고, 2인자 포지션도 백상예술대상에게 넘겨주었다.

사실은 애초부터 공정성과는 담 쌓은 후진국형 이권다툼 행사였다는 것이 90년대 들어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만천하에 들통난 것에 가깝다. 지금은 서서히 도태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제55회 대종상영화제는 2018년 10월 22일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었으며, TV조선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청룡영화상 주최가 스포츠조선인데??

제56회 대종상영화제가 열리는 2019년에 열리지 않고 2020년 초에 열릴 예정이다. 1998년 이후 21년만에 건너 뛰게 되며 그 뒤에는 봄 개최로 변경된다.

3. 역대 주최/주관자

  • 문교부 (1958~1959)
  • 문화공보부 (1961/1971~1978)
  • 한국영화인총연합회 (1967~1968/1986~ )
  • 영화진흥공사 (1979~1986)
  • 삼성그룹 (1992~1993)
  • 삼성문화재단 (1994~1996)
  • 쌍방울 (1997)
  • 서울특별시 (2007)
  • 중앙일보 (2008~2009)
  • SBS (2008~2010)
  • 동아일보 (2010~2012)
  • 한국방송공사 (2011~2012)

4. 시상 부문

2017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 최우수작품상
  • 감독상, 신인 감독상
  • 남녀 주연상, 남녀 조연상, 신인 남녀상
  • 기획상
  • 시나리오상
  • 촬영상, 조명상, 미술상, 의상상
  • 편집상, 음악상
  • 기술상

5. 역대 수상

5.1.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

연도 회차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1962 1 《연산군》 신상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3 2 《열녀문》 유현목 《아낌없이 주련다》
1964 3 《혈맥》 이만희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5 4 《벙어리 삼룡》 신상옥 《벙어리 삼룡》
1966 5 《갯마을》 유현목 《순교자》
1967 6 《귀로》 김수용 《안개》
1968 7 《대원군》 신상옥 《대원군》
1969 8
1970 9
1971 10 《무명의 교사》 유현목 《분례기》
1972 11 《의사 안중근》 신상옥 《평양폭격대》
1973 12 《홍의 장군》 최훈 《수선화》
1974 13 《토지》 김수용 《토지》
1975 14 《불꽃》 이만희 《삼포 가는 길》
1976 15 《어머니》 설태호 《원산공작》
1977 16 《난중일기》 최인현 《집념》
1978 17 《경찰관》 임권택 족보
1979 18 《깃발없는 기수》 정진우 《심봤다》
1980 19 《사람의 아들》 이장호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1 20 《초대받은 사람들》 임권택 《만다라》
1982 21 《낮은데로 임하소서》 이장호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3 22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이두용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4 23 《자녀목》 정진우 《자녀목》
1985 24 《어미》 배창호 《 깊고 푸른 밤
1986 25 《안개기둥》 임권택 《티켓》
1987 26 《연산일기》 임권택 《연산일기》
1989 27 《아제아제 바라아제》 김호선 《서울 무지개》
1990 28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1 29 《젊은날의 초상》 곽지균 《젊은날의 초상》
1992 30 《개벽》 김호선 《사의 찬미》
1993 31 서편제 임권택 서편제
1994 32 《두 여자 이야기》 장선우 《화엄경》
1995 33 《영원한 제국》 박종원 《영원한 제국》
1996 34 애니깽 김호선 《 애니깽
1997 35 접속 정지영 블랙잭
1999 36 《아름다운 시절》 이광모 《아름다운 시절》
2000 37 박하사탕 이창동 박하사탕
2001 38 공동경비구역 JSA 한지승 《 하루
2002 39 집으로... 송해성 파이란
2003 40 살인의 추억 봉준호 살인의 추억
2004 41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박찬욱 올드보이
2005 42 말아톤 송해성 역도산
2006 43 왕의 남자 이준익 왕의 남자
2007 44 가족의 탄생 봉준호 괴물
2008 45 추격자 나홍진 추격자
2009 46 신기전 김용화 국가대표
2010 47 강우석 이끼
2011 48 고지전 강형철 써니
2012 49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광해, 왕이 된 남자
2013 50 관상 한재림 관상
2014 51 명량 김성훈 끝까지 간다
2015 52 국제시장 윤제균 국제시장
2016 53 내부자들 우민호 내부자들
2017 54 택시운전사 이준익 박열
2018 55 버닝 장준환 1987

5.2. 남우 / 여우 주연상

연도 회차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1962 1 신영균 《연산군》 최은희 《상록수》
1963 2 신영균 《열녀문》 도금봉 《새댁》
1964 3 김승호 《혈맥》 황정순 《혈맥》
1965 4 신영균 《달기》 최은희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1966 5 김진규 《태양은 다시 뜬다》 최은희 《민며느리》
1967 6 박노식 《고발》 문정숙 《귀로》
1968 7 신성일 《이상의 날개》 문희 《카인의 후예》
1971 10 장동휘 《대전장》 윤정희 《분례기》
1972 11 황해 《평양폭격대》 고은아 《며느리》
1973 12 남궁원 《다정다한》 윤연경 《비련의 벙어리 삼룡》
1974 13 박근형 《이중섭》 김지미 《토지》
1975 14 하명중 《불꽃》 김지미 《육체의 약속》
1976 15 신일룡 《아라비아의 일몽》 최민희 《빗속의 연인들》
1977 16 김진규 《난중일기》 윤미라 《고가》
1978 17 하명중 족보 고은아 《과부》
1979 18 최불암 《달려라 만석아》 유지인 《심봤다》
1980 19 이대근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윤희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1 20 남궁원 《피막》 정윤희 《앵무새 몸으로울었다》
1982 21 안성기 《철인들》 김보연 《꼬방동네 사람들》
1983 22 안성기 《안개마을》 장미희 《적도의 꽃》
1984 23 윤일봉 《가고파》 이미숙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5 24 안성기 깊고 푸른 밤 김지미 《길소뜸》
1986 25 이영하 《안개기둥》 최명길 《안개기둥》
1987 26 이영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강수연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1989 27 이덕화 《추억의 이름으로》 강수연 《아제아제 바라아제》
1990 28 신성일 《코리안 커넥션》 강수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1 29 이영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원미경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1992 30 이덕화 《개벽》 장미희 《사의 찬미》
1993 31 이덕화 살어리랏다 심혜진 결혼 이야기
1994 32 안성기, 박중훈 투캅스 윤정희 《만무방》
1995 33 김갑수 태백산맥 최진실 《마누라 죽이기》
1996 34 최민수 테러리스트 심혜진 은행나무 침대
1997 35 한석규 초록물고기 심혜진 초록물고기
1999 36 최민식 쉬리 심은하 미술관 옆 동물원
2000 37 최민수 유령 전도연 내 마음의 풍금
2001 38 송강호 공동경비구역 JSA 고소영 하루
2002 39 설경구 공공의 적 전지현 엽기적인 그녀
2003 40 송강호 살인의 추억 이미연 중독
2004 41 최민식 올드보이 문소리 바람난 가족
2005 42 조승우 말아톤 김혜수 《얼굴없는 미녀》
2006 43 감우성 왕의 남자 전도연 너는 내 운명
2007 44 안성기 라디오 스타 김아중 미녀는 괴로워
2008 45 김윤석 추격자 김윤진 세븐 데이즈
2009 46 김명민 내사랑 내곁에 수애 님은 먼곳에
2010 47 원빈 아저씨 윤정희
2011 48 박해일 최종병기 활 김하늘 블라인드
2012 49 이병헌 광해, 왕이 된 남자 조민수 피에타
2013 50 류승룡 7번방의 선물 엄정화 몽타주
송강호 관상
2014 51 최민식 명량 손예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015 52 황정민 국제시장 전지현 암살
2016 53 이병헌 내부자들 손예진 덕혜옹주
2017 54 설경구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최희서 박열
2018 55 이성민, 황정민 공작 나문희 아이 캔 스피크

5.2.1. 기록

5.3. 남우 / 여우 조연상

연도 회차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1962 1 이예춘 《현해탄은 알고 있다》 한은진 《연산군》
1963 2 박노식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황정순 《새댁》
1964 3 김희갑 《쌀》 최지희 《김약국집 딸들》
1965 4 박노식 《청일전쟁과 여걸민비》 윤인자 《빨간 마후라》
1966 5 최남현 《추풍령》 황정순 《갯마을》
1967 6 윤일봉 《애하》 주증녀 《만선》
1968 7 박노식 《카인의 후예》 황정순 《엄마의 일기》
1971 10 최무룡 《마지막황태자 영친왕》 사미자 《분례기》
1972 11 김희갑 《작은 꿈이 꽃필 때》 도금봉 《작은 꿈이 꽃필 때》
1973 12 박암 《열궁녀》 최인숙 《비련의 벙어리 삼룡》
1974 13 허장강 《꽃상여》 도금봉 《토지》
1975 14 김진규 《삼포가는 길》 박정자 《육체의 약속》
1976 15 장동휘 《어머니》 태현실 《원산공작》
1977 16 윤일봉 《초분》 선우용여 《산불》
1978 17 최불암 《세종대왕》 문정숙 《경찰관》
1979 18 황해 《심봤다》 정애란 《을화》
1980 19 박암 《땅울림》 김신재 《뻐꾸기도 밤에우는가》
1981 20 전무송 《만다라》 김형자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2 21 김희라 《꼬방동네 사람들》 -
1983 22 김희라 《불의 딸》 고두심 《질투》
1984 23 김무생 《깊고 깊은 그 곳에》 박정자 《자녀목》
1985 24 나기수 《화녀촌》 한은진 《오싱》
1986 25 신성일 《달빛 사냥꾼》 이혜영 《겨울 나그네》
1987 26 이대근 《감자》 김형자 《감자》
1989 27 한지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김지미 《추억의 이름으로》
1990 28 김희라 《수탉》 유혜리 《우묵배미의 사랑》
1991 29 박근형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배종옥 젊은 날의 초상
1992 30 이경영 사의 찬미 이혜영 《명자 아끼꼬 쏘냐》
1993 31 이경영 하얀전쟁 이미연 눈꽃
1994 32 신성일 증발 남수정 《두 여자 이야기》
1995 33 최종원 《영원한 제국》 정경순 태백산맥
1996 34 김일우 학생부군신위 김청 애니깽
1997 35 임창정 비트 정경순
1999 36 정진영 약속 이미연 여고괴담
2000 37 주진모 해피 엔드 김여진 박하사탕
2001 38 정은표 킬리만자로 윤소정 하루
2002 39 나카무라 토오루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방은진 《수취인 불명》
2003 40 백윤식 지구를 지켜라! 송윤아 광복절 특사
2004 41 허준호 실미도 김가연 《홍반장》
2005 42 황정민 달콤한 인생 나문희 주먹이 운다
2006 43 유해진 왕의 남자 강혜정 웰컴 투 동막골
2007 44 김윤석 타짜 심혜진 《국경의 남쪽》
2008 45 유준상 리턴 김해숙 무방비도시
2009 46 진구 마더 김영애 애자
2010 47 김희라 윤여정 하녀
송새벽 방자전
2011 48 조성하 황해 심은경 《로맨틱 헤븐》
2012 49 류승룡 광해, 왕이 된 남자 김해숙 도둑들
2013 50 조정석 관상 장영남 늑대소년
2014 51 유해진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김영애 변호인
2015 52 오달수 국제시장 김해숙 사도
2016 53 엄태구 밀정 라미란 덕혜옹주
2017 54 배성우 더 킹 김소진 더 킹
2018 55 김주혁 독전 진서연 독전

5.4. 신인 남우 / 여우상

연도 회차 신인상[3]
1963 2 전우열 《빼앗긴 일요일》
1964 3 서정민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5 4 김석강 《잉여인간》
1966 5 문희 《흑맥》
1967 6 윤정희 《청춘극장》
1968 7 정진철 《성년한국》
1971 10 윤여정 화녀
1972 11 전영 《불장난》
1973 12 윤미라 《처녀 사공》
1975 14 문숙 《삼포 가는 길》
1976 15 한유정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연도 회차 신인남우상 신인여우상
1977 16 김기만 《고가》 김영란 《처녀의 성》
1978 17 한지일 《경찰관》 김보연 《제갈맹순이》
1979 18 이영주 《누가 이 아픔을》 원미경 《청춘의 덫》
1980 19 안성기 《바람 불어 좋은 날》 금보라 《물보라》
1981 20 전무송 《만다라》 명정옥 《하늘나라 엄마별이》
연도 회차 특별상 신인부문(연기)
1982 21 나영희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1983 22 이보희《일송정 푸른 솔은》
1984 23 조용원 《땡볕》
김지숙 《푸른 하늘 은하수》
1985 24 전혜성 《에미》
최현미 《화녀촌》
연도 회차 신인남우상 신인여우상
1986 25 강석현 《젊은 밤 후회 없다》 전세영 《티켓》
최재성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7 26 김세준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신혜수 《아다다》
천은경 《소금 장수》
1989 27 이동준 《서울 무지개》 강리나 《서울 무지개》
최수지 《상처》
1990 28 안승훈 《물의 나라》 최유라 《수탉》
1991 29 박상민 장군의 아들 김성령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최진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2 30 신현준 장군의 아들 이아로 《 천국의 계단
1993 31 김규철 서편제 오정해 서편제
1994 32 김병세 《장미의 나날》 김정민 휘모리
윤유선 《두 여자 이야기》
1995 33 이정재 《젊은 남자》 정선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진희경 손톱
1996 34 이병헌 《런어웨이》 이지은 《금홍아 금홍아》
이정현 꽃잎
1997 35 송강호 넘버 3 전도연 접속
1999 36 이성재 미술관 옆 동물원 김윤진 쉬리
2000 37 설경구 박하사탕 이재은 노랑머리
하지원 진실게임
2001 38 류승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은주 오! 수정
2002 39 이종수 신라의 달밤 서원 나쁜 남자
2003 40 권상우 동갑내기 과외하기 손예진 클래식
2004 41 김래원 어린 신부 문근영 어린 신부
2005 42 고수 이청아 늑대의 유혹
2006 43 이준기 왕의 남자 추자현 사생결단
2007 44 류덕환 천하장사 마돈나 조이진 《국경의 남쪽》
2008 45 다니엘 헤니 마이 파더 한예슬 《용의주도 미스 신》
2009 46 강지환 7급 공무원 김꽃비 똥파리
2010 47 정우 바람 이민정 시라노;연애 조작단
2011 48 이제훈 파수꾼 문채원 최종병기 활
2012 49 김성균 이웃사람 김고은 은교
2013 50 김수현 은밀하게 위대하게 서은아
2014 51 박유천 해무 임지연 인간중독
2015 52 이민호 강남1970 이유영 《봄》
2016 53 정가람 《4등》 김환희 곡성
2017 54 박서준 청년경찰 최희서 박열
2018 55 이가섭 《폭력의 씨앗》 김다미 마녀

5.5. 신인감독상[4]

연도 회차 신인상
1962 1 김기덕 《5인의 해병》
1974 13 이장호 《별들의 고향》
연도 회차 특별상 신인부문(감독)
1982 21 배창호 《꼬방동네 사람들》
1983 22 하명중 《X》
연도 회차 신인감독상
1985 24 장길수 《밤의 열기 속으로》
1986 25 곽지균 《겨울 나그네》
신승수 《달빛 사냥꾼》
1987 26 이규형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1989 27 박광수 《칠수와 만수》
유영진 《추억의 이름으로》
1990 28 정한우 《죄없는 병사들》
1991 29 방규식 《천국의 땅》
이명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2 30 장현수 걸어서 하늘까지
이만
1993 31 김의석 결혼 이야기
1994 32 이정국 《두 여자 이야기》
1995 33 여균동 《세상 밖으로》
1996 34 강제규 은행나무 침대
이민용 《개같은 날의 오후》
1997 35 장윤현 접속
1999 36 이정향 미술관 옆 동물원
허진호 8월의 크리스마스
2000 37 민병천 유령
2001 38 임상수 《눈물》
2002 39 이시명 2009 로스트 메모리즈
2003 40 장준환 지구를 지켜라!
2004 41 최동훈 범죄의 재구성
2005 42 정윤철 말아톤
2006 43 한재림 연애의 목적
2007 44 권형진 호로비츠를 위하여
2008 45 오점균 《경축! 우리사랑》
2009 46 이호재 작전
2010 47 장철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1 48 윤성현 파수꾼
2012 49 최종태 해로
2013 50 정병길 내가 살인범이다
2014 51 양우석 변호인
2015 52 백종열 뷰티 인사이드
2016 53 조정래 귀향
2017 54 엄태화 가려진 시간
2018 55 전고운 소공녀

6. 심사위원

6.1. 2017년

김홍준(심사위원장, 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강성률(영화평론가, 광운대교수),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영화아카데미 교수), 오동진(영화평론가, 마리끌레르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교수), 윤성은(영화평론가)

6.2. 2018년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교수), 김영(미루픽쳐스 대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김형준(한맥문화 대표, 아시아필름어워드 국제고문), 김홍준(영화감독, 영상원 교수),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영화아카데미 교수), 전진수(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성일(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정수완(영화평론가, 동국대 교수), 채수진(프로듀서, 전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소위원회 위원)

7. 문제점

7.1. 수상자, 수상작 논란

대부분 시상식이 수상자, 수상작에 논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특히, 대종상은 유난히 타 영화상에 비해 훨씬 정도가 지나쳐서 그 논란들로 인해 권위가 바닥인 상태다. 과거에는 유일무이한 영화제로서 권위가 높았지만 그 와중에 비리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예 돈 봉투 건네 주고 상을 '구입'한다는 말도 많았었고 지금은 흐지부지되어 거론되지 않으나, 1960~1970년대 영화계 인사들은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

더불어 정부에서 주도하는 관제행사라서 높으신 분들의 눈치를 보는 어용 영화제로도 악명이 높았다. 사회비판적 영화는 절대 금기였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서 사회계도성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품상, 감독상 다음으로 (체제선전용) 반공영화상이 주요부문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이후로는 반공영화상도 폐지되고 노골적인 체제홍보는 줄었지만, 사회비판 영화는 여전히 금기였다.[5]

더구나 당시에는 막대한 이권이 있었던 해외 영화 수입권을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과 우수 작품상 수상작을 내놓은 영화사에 수여했다. 같은 권리가 그 해 최고의 반공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에도 돌아갔다. 반공영화상이 주요부문이 되고 제작자들에 의해서 반공영화가 미친 듯이 찍혀 나온 이유가 있다. 이 외화수입권은 당시 돈 기준으로 억 단위로 거래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상을 타는 것은 곧 수억을 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영화사들은 대종상 작품상을 타기 위한 영화를 찍었다. 당연히 그 영화들은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아야 했고, 무엇보다 정부의 입맛에 맞아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종상만 노린 영화는 작품상을 타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었지만, 만일 못 타면 그대로 영화사 창고로 직행하는 사례도 흔했다. 이 외화수입 자유화는 1984년에야 이뤄지는데, 반공영화상이 이 때 폐지되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대종상은 본질적으로 최고의 영화제인 동시에 최악의 영화제일 수 밖에 없었다.

작품성이 있으나 사회 부조리를 다룬다든지 높으신 분들을 까는 내용이 있다면 설령 그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더라도 일절 후보에도 못 오르던 것이 흔한 일이었다. 10월 유신시대에는 아예 정부 주도로 수상을 통제했고, 친정부적이고 반공적인 영화에 '우수반공 영화상'을 따로 개설해서 시상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어용 영화제 시상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문제점을 찾아본다면 엄청나게 쏟아진다. 심지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1990년부터 나온 문제점들만 봐도 이렇다. 이러니 그 이전에는 얼마나 많을지...
  • 1990년
    • 당시, 영화계도 예상을 했지만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남부군은 단 1개도 수상하지 못했다. 빨치산을 다뤘다고 논란이 거셌던 이 영화는 당시 흥행 대박과 같이 평도 상당히 좋아서 정작 조선일보가 주최한 청룡영화상[6]에선 감독상(정지영), 남우주연상( 안성기), 남우조연상( 최민수), 신인여배우상( 최진실)을 받았다. 이 때부터 청룡영화제는 대종상에게 을 먹이기 시작한다.
  • 1991년
    • 미군에 의하여 성폭행을 당한 여인이 되려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다가 결국 생계를 위해 양공주로 전락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미군을 깐다고 해서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논란이 컸었다. 겨우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했을 뿐이었고, 이에 대하여 당시 영화지 로드쇼에서 취재하니 대종상 관계자들이 윗사람 눈치가 보이니 할 수 없다는 답변을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가 서울관객 17만을 기록하면서 흥행도 대성공하고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각본상 및 여우주연상( 이혜숙)을 받고 원작인 안정효가 쓴 소설이 미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와 미군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점에 대하여 작은 화제를 낳았던 거와 대조적이다.
  • 1994년
    • 대종상의 권위가 본격적으로 곤두박질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4년부터였다. 당시 흥행스코어에서 참패한 영화 ' 두 여자 이야기'가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도 영화 개봉하기 전(1994년 4월 23일)에 수상(1994년 4월 3일)하여 한동안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막상 개봉한 이후 좋은 영화였다는 평이 많아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밑에서 언급한 '애니깽'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작품 또한 봉건주의 제도 하에서 두 여인의 굴곡진 삶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흥행성과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반드시 국내 영화 시상식 결과에 영향을 줄 필요도 없고, 그러한 전례나 후례는 많은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정국 감독은 데뷔작 '오월의 노래'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세상에 알리지만 그 결과 한동안 영화연출 제의가 끊기기도 했었다고... 한편, 함께 후보에 오른 영화는 안성기, 박중훈 콤비의 연기가 돋보였던 투캅스와 그 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한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등. 그러나 '화엄경'은 감독상을 받는데에 그쳤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빨갱이 영화'라고 까이기만 했다. 투캅스는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당시 서편제에 이어서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라는 엄청난 초대박을 거둬들이고[7] 화엄경은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트 바우어상을 수상하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칸 영화제에 출품되고 서울관객 15만으로 그럭저럭 흥행도 하던 것과 달리 두 여자 이야기는 흥행도 서울관객 2만으로 참패하고 지금은 아주 듣보잡이 되었다. 그나마 감독인 이정국은 나중에 최진실 주연인 영화 편지로 서울관객 72만이라는 대박을 거두긴 했다. 하지만 2년 후, 역대급 병맛 시상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 1996년
    • 최악의 대종상 시상식 1. 1996년 제 34회 시상은 지금까지 진행된 대한민국의 영화 시상식 중에서도 넘사벽급으로 손꼽히며, 2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많은 대중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다른 말로는 영화 제목을 본떠서 애니깽 사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1996 대종상 시상식 논란 문서를 참조하자. 이 해 대종상 예심에서 탈락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본선에서 찬밥대접을 받은 '꽃잎'은 이후의 다른 영화상 시상식에서 주요부분을 수상했다.
  • 2000년
    • 연예계 비리로 몸살을 앓았던 2002년,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대룡엔터테인먼트 장용대 대표가 소속 여배우의 수상을 위해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포착되어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기사 그 여배우는 바로 하지원. 하지만 하지원이 2001년 대룡기획과 소송 끝에 결별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무리 되었다. 하지원이 새로 둥지를 튼 당시 소속사 측에서는 하지원의 실력으로 수상한 거라 주장하며 로비 사실을 부정했고, 하지원 전 소속사 대표도 소환되어 조사했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여 결국 내사 종결처리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 하지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법적인 문제에 얽힐 때마다 대종상 신인상 로비 건도 함께 종종 언급되고는 한다.
  • 2001년
    • 흥행 최고를 기록한 친구가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던 반면에, 관객에게 외면을 당하고 평가도 좋지 않았던 영화 "하루"에 감독상 여우주연상 포함 4개를 줬다. 특히, 여우주연상 고소영은 역대 최악의 수상으로 남아있을 정도다. 하지만, 고소영은 수상 트로피를 가져가지 않고 그대로 반납했다고 한다.
  • 2002년
    • 당해에는 TV로 생중계되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2002년 5월 26일에 개최되었는데, 이날 지상파 3사 모두 2002 월드컵 한국-프랑스 평가전을 생중계했기 때문. MC는 MBC 출발비디오여행의 진행자 아나운서 홍은철이 진행했는데 진행은 훌륭했으나 영화인협회가 단독 주최한 이번 대종상 시상식에선 불참자가 많아 시상식 대부분이 대리수상으로 진행됐다.[8]
  • 2004년
    • 영화·연극·방송을 포함해 1년 이내 경력자'가 후보자격이 되는 신인 배우상을 출연작이 무려 19편이나 되는 공형진과 6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김래원 등이 올라 논란을 일으켰으며 김래원의 수상으로 더욱 논란이 되었다. 이로써 김래원은 2000년에 청룡영화상에서 《청춘》으로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이후로 무려 4년의 텀을 두고 대한민국 3대 영화 시상식에서 이례적으로 또 신인상을 수상하게 됐다.
  • 2007년
    • 《태풍태양》으로 이미 전년도에 신인여우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조이진이 《국경의 남쪽》으로 또 한번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고 결국 수상에 성공했다. 결국 신인상도 재수가 되나?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 타기 쉬운 대종상
  • 2009년
    • 내사랑 내곁에 하지원이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개봉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하늘과 바다>의 장나라가 여우주연상에 오르며 논란이 되었다. 기사에서는 미개봉작이라고 하고 있지만 하늘과 바다가 대종상 시작하기 전에 개봉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출품된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종상 1주일전에 개봉하였으며 제한적 개봉이라서 미개봉작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하지만, 더 빨리 개봉했다하더라도 작품성 때문에 역시 논란은 피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같은 해에 시작된 청룡영화상이를 지켜보고 있기라도 했던 것 마냥 하지원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대종상에게 빅엿을 선사했다.[9]
  • 2011년
    • 써니 심은경이 사정상 불참의사를 전하자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키면서 논란이 됐다.[10] 그 대신 영화 로맨틱 헤븐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린 후 상을 줬는데, 심은경은 '상을 받아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담담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거기다가 심은경을 대신해서 여우조연상을 받고 수상소감까지 말해야 했던 사람은 써니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천우희. 다시 말해, 경쟁자 배우가 대리수상을 한 것이였으며, 정작 천우희는 수상작인 《로맨틱 헤븐》에 출연한 것도 아니었기에 《써니》 인연만으로 어거지로 말도 안되게 대신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은 셈이다.
  • 2012년
    • 자칭 '광해' 영화제. 2012년엔 광해 한 작품에 15개를 몰아주는 바람에, 수상하는 사람들이 미안해 하는 시상식[11]을 벌이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에 빛나는 피에타의 감독 김기덕이 빡쳐서 영화제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면서 안 그래도 박살난 권위가 가루가 됐다. 그리고, 청룡영화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작품상에 피에타를 선정하고, 여우주연상에 내 아내의 모든것의 임수정, 남우주연상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최민식을 선정하며, 또 대종상을 엿먹였다.
  • 2014년
    • 국내외영화제에서 극찬을 받던 ‘ 한공주’의 천우희, 아역시절부터 쌓아온 연기력으로 흥행까지 성공한 ‘ 수상한 그녀’의 ‘ 심은경’이 여우주연상 유력 수상자로 지목되었으나, 결과는 후보[13] 중 가장 낮은 가능성을 보였던 ‘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손예진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후보 중 가장 흥행한 영화에 출연하여 과거 대종상에서 흥행빨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욕을 먹었던 ‘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과 비교되며 ‘대종상다운 시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두 배우는 원톱으로 극을 이끌어가기라도 했다. ‘해적’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여럿인 영화인데다가 극 중 손예진의 어색한 사극, 액션, 코미디 연기가 방해가 되었다는 평이 많았다.
    • 독립영화를 비롯한 저예산 영화를 아예 빈 손으로 내보내면서 비난을 받았다. 청룡영화상은 이때다 싶어 한공주에는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도희야에게는 신인여우상을 안겨줬다.
  • 2016년
    • '출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후보군에서 제외시켰다'는 내용의 서술이 있었으나, 출품되지도 않은 작품을 후보군에 올리는 것은 시상식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다. 역으로 시상식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수상 의사가 없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동주, 아가씨 등 다수의 작품이 출품하지 않았다.
    • 수상결과는 예전에 비해 많이 공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비상식적인 수상결과를 발표해서 대충상이란 비아냥을 받던 것을 의식했던 것인지, 최초로 내부 심사위원보다 영입 심사위원의 숫자를 많게 하고 일반심사와 본선심사로 나누어서 심사제도를 개선하는 등 노력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던 ' 밀정'의 엄태구와 ' 곡성'의 김환희, '4등'의 정가람의 수상에 축하를 보냈다. 다만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동주 아가씨가 후보작에서 빠진 것으로 인한 결과라는 반론도 있다.
  • 2017년
    • 박열 최희서가 대종상 역사상 최초로 신인여우상과 여우주연상을 함께 수상하였다. 신인상 후보가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있었지만 수상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전과 달리 주최측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전혀 무관한 영화계 인물들로 심사단을 구성했고, 심사위원들의 투표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였기에 가능한 시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심사위원 명단은 물론 심사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여우주연상 후보 중 최희서만 참석해 참석상이 아니냐는 논란이 다시 지펴지고 있으나, 다른 부문 수상자중 불참자는 사전에 촬영해둔 수상소감 영상을 방송하였으므로 불참했다고 주최측이 심사위원단의 결과를 번복하여 수상자를 바꿨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 불참한 후보들은 보이콧일 수도 있고, 수상소감 영상이 사전에 촬영된 것을 보았을 때 수상 결과가 알려져 불참했을 가능성도 있다.
    • 신인상 부문의 후보선정 기준을 두고 꾸준한 논란이 있는데 시상 전 단 한번의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하던 MC들의 멘트와 달리 바로 전년도에 후보에 올랐던 배우들이 또 후보에 오르고 그 중 한명인 박서준이 수상까지 했다. 생애 한번뿐인 신인상 타기 쉬운 대종상 2

7.2. 운영상 문제

  • 1998년 - 스폰서 부재로 인한 일시폐지
    1962년 출범된 대종상은 그동안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총연합회, 영화진흥공사, 映協 등으로 주관단체가 바뀌어 오다가 1992년부터 정부 지원이 중단되었다. 이후 삼성문화재단의 협찬으로 운영이 되어 왔는데 상기에 서술한 1996년 애니깽 사태로 인하여 삼성문화재단이 협찬을 취소해 버리게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쌍방울이 후원에 나서면서 1997년 제35회 시상식은 쌍방울 계열사인 무주리조트에서 열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로 쌍방울이 부도가 나면서 대종상은 다시 후원사를 잃었고, 결국 다른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1998년 시상식은 무산되었다.
  • 2013년 - 야구에 밀린 50주년 기념 대종상
    50주년 대종상 시상식은 2013년 한국시리즈 7차전 중계 때문에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으로 방영되었고 그 영향으로 1부가 7.0%, 2부가 6.2% 평균 시청률은 6.6%을 기록하여 49회 시상식 평균 시청률 7.3% 보다 0.6% 감소했다. 관련기사 KBO 리그 포스트시즌은 KBS2, MBC, SBS 등 지상파에서 한 경기씩을 번갈아 가며 중계하는데,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시 7차전을 KBS 2TV에서 중계하는 것으로 확정이 된 상황이라 그 중계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KBS 측에서는 대종상 주최측에 "행사일 변경이 가능하다"는 사전 고지를 했는데 대종상 측에서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갈 줄 몰랐다"고 변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7차전까지 진행되는 (적어도 주최 측 기준에서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해두고 날짜 변경을 고려했어야지, 한심하다
  • 2015년
    2015년에는 아예 인기상 투표에서 투표권을 유료로 팔기까지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창조경제 투표법 인기투표에는 투표 한 표당 200포인트가 차감되는데 포인트를 얻으려면 강제로 각종 어플을 깔던지, 돈으로 포인트를 사야 한다.
시상식을 2주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개최를 선언했는데, 시작전부터 여러모로 삐걱댔다. 장소대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추락한 대종상의 권위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시상식의 진행은 김병찬, 공서영, 이태임이 맡았다. 강행한 생중계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현장을 찾은 팬들의 개인적인 대화가 방송에 계속 노출되는가 하면, 카메라는 잡을 곳을 못찾아 우왕좌왕하다 풀샷으로 넘어가기 일쑤였고, 행사장 내부 역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엇보다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후보자 참석 문제도 고스란히 답습되었다. 당연히 2주도 남지않은 일정에 초대해도 안 가겠지만 제대로 참석할 수 있는 영화배우도 없는 듯. # 시상식 하루전에는 아직 결정 하지 않은 이병헌 손예진을 제외한 나머지 주연 후보자들이 불참하기로 결정했고 # 결국 당일에 손예진도 불참하기로 결정하면서 최종적으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 곡성'의 김환희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제외한 신인남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신인여우상의 모든 수상자가 불참하게 되었다. 그밖의 대부분의 기술상 수상자들도 불참하여 시상식은 대리수상자들의 향연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 스타급 배우인 이병헌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뼈 있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아마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참석한듯 싶다
대종상을 처음 받았던 게 아마도 20년 전 신인상이 아니었나 싶다.[16]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그 무대 위에 서고 싶을 정도로 명예로운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참여했었다. 오늘 시상식에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상을 받는다는 기쁜 마음보다 무거운 심정이었다. 대종상은 그동안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다.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느낌이 있는 건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53년이란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전처럼 명예를 되찾는 건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을 거라 본다. 하지만 53년이란 긴 시간 명맥을 유지하고 명예로웠던 시상식이 불명예스럽게 이대로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떤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변화라는 건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다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이 돼서 조금씩 고민하고 노력하는 순간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언젠가 후배들이 내가 20년 전 이 시상식에 오면서 설레고 영광스러웠던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나도 그땐 태어나지 않아서 모르지만 50~60년 전 대선배들이 큰 뜻을 갖고 대종상영화제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배들이 더 고민하고 노력해서 지켜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2017년
    행사 도중 참석자인 최희서와 이준익을 비하하는 발언이 섞여서 녹음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희서의 시상 장면 때 "그만 좀 해라, 돌겠다."라는 발언이, 이준인 감독을 비춘 장면에선 "저 빡빡이 아니냐?" 라는 발언이 나왔다. 중계 방송사인 TV 조선에서는 유투브의 대종상 시상식 영상을 삭제한 상태라서 검증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해당부분만 편집된 영상이 일반 유저에 의해 업로드되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직접 확인해보자. 이에 대해 대종상측의 공식 입장은 방청석의 소음이다.이 말을 누가 믿을지 어떤 방청객이 원커트라는 편집용어를 쓸까 10월 26일 TV조선는 방송사고는 아니고 유튜브 클립영상은 수정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외에도 촬영 중 스태프가 넘어지거나 가수 선미의 축하 무대 중 "커트"라는 말이 들려오는 등 개판 그 자체.
  • 2018년 - 영화와 관계없는 제3자의 대리수상 연발
    올해도 역시 대리수상의 향연이 벌어졌다. 영화사 또는 동료 배우의 대리수상이 아닌 조직위 측이 임의적으로 지정한 제3자가 대리수상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음악상이다. 남한산성 사카모토 류이치가 수상하게 되었는데, 사카모토 류이치의 불참으로 남한산성 스탭 중의 한명이 대리수상을 위해 나오던 찰나 가수 한사랑씨가 먼저 무대에 올라 당황하며 돌아서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대종상 조직위원회 측은 한사랑씨가 공식 대리수상자였다고 해명했다. 한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상은 돌려줬다고 하며 "대종상을 주최한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한 간부가 어느날 전화가 오더니 ‘대종상 시상식이 있는데, 대리수상을 해줄 수 있느냐’고 하길래, 갑작스러웠지만 ‘알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대리 수상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영화 관계자 측에 대리수상자 관련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지 못하여 대리 수상자 두 명이 무대에 올라오도록 한 운영 상의 미흡은 덮을 길이 없으며, 또한 공식 대리수상자 선정 면에서도 영화와 상관없는 제3자가 상을 받도록 했다는 점 역시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조명상을 수상한 남한산성의 조규영 감독 역시 한 남성이 대리수상을 했는데 시상식 이후 트로피가 사라져 행방을 찾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뒤 조명상을 대리 수상한 사람은 정성면 조명협회 수석 부이사장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 부이사장은 "사라진 게 아니라 조명협회에 보관 중이며 대리 수상을 영화인연합회에서 요청이 와서 했다. 트로피는 조명협회에 갖다 놨으니 본인이 찾아가면 된다"고 제작사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라졌다는 기사가 나와서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진짜 가지가지 한다

7.3. 함량미달의 진행자 선정

사실 매번 배우들의 시상식 불참과 수상결과 문제가 커서 묻힌 것 뿐이지, 진행을 맡은 신현준의 진행 방식도 항상 많은 비난을 받았다. 어수선하고 웃기려는데에만 치중하다 보니 후보자의 이름이나 작품 이름을 헷갈리는 등의 사전 지식 습득도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한다는 평이다. 이해가 안되는 분들은 청룡영화제를 진행하는 김혜수와 비교해보면 안다. 김혜수는 수상여부와 관계없이 후보작품 및 제작진, 배우들에 대한 정보를 스케쥴이 많아도 따로 챙긴다. 반면 그 흔한 연기도 안하는 신현준은? 그 절정은 2015년에 열린 52회 시상식에서... 그가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마치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하는 모습이었다는 힐난이 쏟아졌다.

2016년에 진행자가 바뀌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그 해 신현준의 행보[17]를 볼 때 그 영향으로 교체된 것이 아닐까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나마 전문 진행자가 진행을 맡아 시상식이 다소 안정되어 보인다는 평도 있으나 메인 진행자인 김병찬의 진행 방식이 올드하다는 평 또한 있었다. 그래도 진행자가 다른 사람으로 자주 바뀌는가..했더니...역시나 신현준이 2017년 진행자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헛소리 시전과 시상자 이름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 비난을 산건 기본이고, 시상식 참석을 거부하는 상당수 영화인들에게 그런 내막도 모른채 꼰대기질을 선보였다. 안 그래도 이미 영화계에서 퇴출된 전직 연기자가[18] 보수세력에 빌붙는 행보만 보여주다보니 영화계에서 그에 대한 인식이 바닥에 떨어졌다.

2018년에는 배우들이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이 불참했는데, 이에 대해 그가 어떤 말을 할지...우습게도 그동안 그가 진행하는 기간에 방송되었던 KBS TV조선에서 그가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각각 있다. 형편없는 진행 실력에도 여전히 신현준에게 대종상 시상식을 맡기는 이유... 그건 뻔하지 않은가? KBS나 TV조선 방송국 성향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 훤히 답이 보인다. 현재 신현준은 보수 성향이 강한 한국영화배우 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7.4. 왜 이렇게 논란이 많은가?

아래 링크된 기사들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대종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개판으로 전락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결론적으론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단물만 빨다가 민주화가 되고 세상이 바뀌면서 그에 적응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의 향수에만 매달려온 보수 영화인들이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이권을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다투고 싸우다가 수도 없이 많은 추태를 매년마다 저지르는 바람에 몰락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업자득인 셈.

8. 관련 문서

8.1. 연도별 논란

8.2. 기타 관련 문서



[1] 영화제가 아닌 영화 시상식이 맞지만 법인 측에서 굳이 '대종상 영화제'라는 명칭을 고집한다. 시상식의 전야제 개념으로 후보작과 역대 수상작들을 상영하는 영화제를 열기도 하지만 인지도가 현저히 낮고 꾸준히 열리지도 않는다. [2] 1969년, 1970년(이 두 해는 대한민국예술상에 흡수), 1988년, 1998,2019년 총 다섯번 개최를 안 했기 때문이다. [3] 신인연기상과 신인감독상 통합. 1962년(1회)와 1974년(13회)는 신인감독이 수상함. [4] 1962년(1회)~1976년(15회)까지는 신인배우상과 통합하여 시상하였고, 1982년(21회) 및 1983년(22회)는 '특별상 신인부문(감독)'으로 시상되었다. [5] 당시 민주화운동가들은 한국영화를 독재정권의 3S정책의 도구라고 비판하였다. [6] 1973년까지 시행되다가 1974년에 영화계의 질적 하락을 이유로 잠정 폐지된 후 이때 부활했다. [7] 다만 투캅스의 경우는 해당 항목에도 있지만 표절 시비가 꽤 강하게 일었었다는 것은 고려하자. [8] 전년도 파동의 여파도 있고, TV로 생중계도 안 되는 상황이니 굳이 참석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9] 하지만 이것도 청룡영화상에서 논란이 되었는데 2009년 청룡영화상에서 하지원이랑 같이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 마더 김혜자 박쥐 김옥빈이었다. 두 배우들 모두 각자의 영화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었고 적지 않은 영화 팬들이 당시에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김혜자나 김옥빈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하지원의 수상도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물론 하지원도 영화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논란은 덜한 편. [10]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학업에 전념하려고 불참했다. [11] 당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류승룡은 "광해로 상을 받았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수상 소감을 말하겠다."라면서 연출가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서 함께 출연한 배우 임수정과 이선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원래 해당 작품으로 수상소감을 말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얼마나 미안하게 생각했으면 이런 관례를 깨고 수상소감을 말했을까? # [12] 후보가 미발표되었다는것은 본선 진출작이 전부 후보인 셈이다. [13] 심은경, 천우희, 전도연, 엄지원, 손예진. [14] 90년대까지만 해도 MBC와 SBS에서도 생중계를 해줬다. [15] 청룡영화상은 SBS에서, 백상예술대상은 JTBC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종상의 위상 추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실. [16] 실제로 이병헌은 1996년 제34회 대종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 중, 닥터봉 한석규와 함께 수상이 유력했었다. [17] 이 문단의 하단 참조. [18] 사실 신현준이 배우이지만 연기를 안한지 오래되었고 연기에 대한 미련은 없어보이는지라 전직 연기자라는 표현을 쓰는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