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4 00:17:24

장선우

장선우 감독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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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제14회
( 1993년)
제15회
( 1994년)
제16회
( 1995년)
김유진
(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장선우
(너에게 나를 보낸다)
박광수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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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제31회
( 1993년)
제32회
( 1994년)
제33회
( 1995년)
임권택
( 서편제)
장선우
(화엄경)
박종원
(영원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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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의 포스[1]

1. 개요2. 활동
2.1. 감독 데뷔까지2.2. 황금기2.3. 새로운 시도와 논란2.4. 재앙과 몰락2.5. 몰락 이후
3. 평가

1. 개요

대한민국 영화 감독. 2002년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충무로에 "재앙"을 몰고 왔다라고 네이버 지식 백과에 당당하게 쓰여 있는 인물이다. 영화 1편으로 그야말로 충무로에 초대형 핵 테러를 가했다.

그러나 사실, 장선우 감독은 데뷔작인 <서울 예수> 개봉 당시부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개봉 이전까지는 충무로식 질서를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주목받는 신진 영화 감독이었다. 그것도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계에서도 상을 여러번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었고, 예술영화를 제작했음에도 단순히 작품성만 잡은것이 아니었고 성공시대부터 거짓말 제작때까지는 화엄경을 빼면 늘 평타 이상의 흥행성적을 올렸다. 1996년 한국영상자료원의 ( 20세기) 한국 영화 100선에 무려 4개의 영화를 올려 놓을 정도. (2014년에는 3개이다.) 특히 1990년대가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높은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전의 그의 흥행작들 가운데 후기작인 나에게 너를 보낸다와 꽃잎, 나쁜 영화, 거짓말의 경우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노출, 노이즈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컸기 때문에 작품성과는 별개라는 평도 있다.

2. 활동

2.1. 감독 데뷔까지

1952년 3월 20일 서울특별시 태생. 평안도 출신의 피난민 2세이며 본명은 장만철이다.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기도 하다. 대학 시절부터 10년가량 민중문화운동에 종사하다가 '선우[2]'라는 필명으로 영화평론을 쓰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였으며, 창작 시나리오와 MBC- 베스트 극장의 대본을 몇편 쓰고는 선우완 감독과의 공동 연출로 1986년 < 서울 예수>[3]라는 영화를 만들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 이 영화로 일본 동경 아시안 페스티벌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호평을 받는다.

2.2. 황금기

1988년에는 조미료 전쟁을 풍자한 < 성공시대>의 감독, 각본을 맡아서 작품성/흥행 양쪽으로 성공했다. 서울관객 수치 10만 7천명으로 집계되었는데 당시 국내에서 영화로는 꽤 성공한 흥행이었으며 평도 좋았다. 다음해인 1989년에는 대한민국 영화 대박작이던 < 남부군>의 각본을 맡기도 했고, 1990년 박중훈, 최명길 주연으로 도시와 농촌 접경지역의 삶과 사랑을 < 우묵배미의 사랑>[4] 역시 흥행에 성공하며 호평을 받았으며, 1991년 하일지 원작의 포스트모던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이란 영화 각본과 감독을 맡아 서울 관객 18만을 동원하며 상당히 성공했다. 주연(R역) 문성근은 이 영화로 첫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1993년작이자 원미경, 오태경이 출연한 <화엄경>[5][6]은 해외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받으며 1994년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트 바우어상을 수상했다. 사실 이 상은 명예상같은 것이라 본상보단 좀 미흡한 평을 받지만, 예술창안 효과상이라는 또다른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1961년 대한민국 영화 <마부>가 수상한 지 33년만에 2번째로 수상했다. 고은의 소설이 원작이었는데, 내용이 난해해서 흥행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서울관객 8만여명 동원으로 아주 망한 수준이 아닌 어느 정도 평타를 거둔 편이다.이때만 해도 서울관객 10만을 흥행 성공 기준으로 봤기에 좀 부진해도 망한 수준이 아니고 오히려 난해함 정도를 생각하면 선전했다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1994년작이자 엉덩이가 예쁜 여자[7] 정선경이 출연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서울관객 38만이 넘는 엄청난 대박을 거두며 그해 대한민국 흥행영화 2위를 기록했다.(1위는 1993년 강우석 감독의 < 투캅스>였다.) 당시에 이 관객 수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나 도달하는 수치였기에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6년< 꽃잎>은 장선우로서는 일종의 완성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정현의 데뷔작으로 촬영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가 전신을 노출한 신이 충격과 화제가 되었다.[8] 이 영화는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와 방콕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서울관객 21만을 동원하며 흥행도 꽤 성공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이 영화를 두고 당시 태국에선 1992년에 시위대를 사격한 태국 군부 문제를 연계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등은 1990년대 국산 영화들 중에선 흥행과 예술성을 양쪽 모두를 잡은 상당한 비중의 작품들이다. 1988년 감독 데뷔 이후 거의 해마다 하나씩 홈런을 날렸다는 점에서 장선우는 당시 대한민국 영화계에서 대단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2.3. 새로운 시도와 논란

1997년에는 국산 영화 중 사상 최고의 문제작이었던 < 나쁜 영화>를 감독, 각본을 맡아 만들었는데, 말 그대로 길거리 양아치들의 끝없이 비참하고 우울한 삶을 고어하게 그려내고 있어 화제였다. 당시 양아치역 배우들 중 몇몇은 진짜로 길거리에서 실제 양아치들을 데려다 썼으며[9][10], 행려자 에피소드 장면들 중 몇개는 정말 실제 상황이었다. 조연이나 단역들은 전문배우가 맡았는데 확인할 수 있는 배우들은 안내상, 송강호, 이문식, 박준형, 명계남, 오승욱, 문성근, 김태희 등등이다. 폭주족들은 실제 폭주족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크레딧에도 80여명의 폭주족이라고 나온다).

관람한 관객들은 호평 반, 험담 반이지만 서울관객 13만으로 그럭저럭 흥행도 된 편. 송능한 감독의 < 넘버 3>가 대박을 맞은 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해는 그야말로 "양아치" "조폭" 영화의 해였다.

1999년 < 거짓말>이라는,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진 작품을 각본, 감독을 맡아 발표(개봉은 2000년 1월 8일)한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원작자인 작가 장정일의 소설인 <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영화화 한 것. 신인 여배우와 실제로 화가이자 모 대학 강사라 알려진 남주인공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찍은 영화로써 줄거리, 기승전결, 대사도 거의 없다. 그저 여관에서 몰카찍은 듯한 성행위장면의 연속이다. 관객들은 주류감독이 내놓은 작품인지라 왠지 이해를 하는 척해야 뭐가 있어보일 것 같아서 대놓고 돌을 던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해를 하자니 도대체 알맹이는 없고... 이 와중에 이 괴작이 어느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니 더욱 알쏭달쏭했으나 현재 이 작품은 예술영화로 언급되거나 하는 일도 없이 걍 흑역사에 가깝게 묻혀버린 상태이긴 하지만 이런 논란 속에 당시 서울관객 31만이 관람하며 역시 흥행에선 성공했다.[11]

그래도 <거짓말>까지는 봐줄만했다라는 의견이 의외로 많다. 그 이유는 <거짓말> 자체가 60년대 프랑스의 상황주의 영화 기법을 따르고 있었고, 관객에게 지속적인 쇼크를 주면서 중간중간 정치적/사회적 구호를 삽입한다는 그 나름의 기법에 충실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에서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 것이었지만 당시 여러모로 경직되어있던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쇼킹한 영화였고, 그러한 위치가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다는 것. 참고로 유럽 등지에서 상을 받거나 호평을 받은 이유도 상황주의 시대 영화의 한국적 재현이라는 평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하나의 키치로 인식되었던 것.[12]

다시 말하지만, 장선우는 당시까지는 말 그대로 한국의 예술영화를 선도할 젊은 감독, 아주 잘 팔리는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의미의 문제작을 만들 능력을 갖춘 감독이자 어느 정도 흥행에서도 성공하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기본적인 능력도 없는 완전 막장급의 감독이었다면 애초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찍을 돈조차 끌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2001년 영국 영화 평론가이자 감독이던 토니 레인즈가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든 바 있다. 장선우 변주곡 토니 레인즈는 아시아 영화평론의 거장으로 현재도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때만 해도 장선우는 정말 괜찮은 감독이었다. <거짓말>이 호불호가 갈리긴 했어도. 하지만 <거짓말>은 <성소재>의 예고편이었을 뿐이다!

2.4. 재앙과 몰락

그리고 2002년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찍었고, 희대의 졸작이라는 평을 들으며 다시는 영화감독직을 맡을 수 없게 될 만큼의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인간의 영화 스타일은 사실 자기 입으로도 혼란이 어떻고 카오스가 어떻고 하는 식이다. 아마 자기 자신도 정확히 모를 것이다. 스토리보드나 콘티나 그런건 어디다 쓰는건지도 잘 모르고 닥치는대로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좋은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들 위주로 영화를 이어가는데, 모험이 용인되는 예술영화나 저예산 영화에서라면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개인 예술을 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한다면 딱히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여러 사람의 생계에 책임이 있고, 남의 돈을 투자받아 작품을 만들면서도 이런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만심이 너무 심했다. 그리고 이런 무질서한 성향과 자뻑이 결국 자본을 만나서 거대 쓰레기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씨네21은 이 영화를 어떻게든 옹호하려고 했다가 딴지일보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 웃기는 건 정작 영화 개봉 뒤 실패가 가시화되자, "그냥 100억 원 보시[13][14]했다고 치자. 적어도 금강경은 세상에 알리지 않았느냐?"라는, 그야말로 투자자들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발언을 했다는 것. 할려면 지 돈으로 하던가 그 외에도 당시 영화 쪽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밥벌이를 끊기게 만들었다던가 촬영 당시에도 현장 스탭들과 투자자들에게 말 한 마디 안 하고 몽골로 훌쩍 떠나버려서 일주일 넘게 촬영을 못한 적도 있는 등 아무리 봐도 남의 돈에 대한 기본 존중이 전혀 없었다. 몽골로 훌쩍 떠나버리고 난 이후에 장선우의 후임 감독이 들어와서 작업에 착수하려고 했었는데 장선우 감독이 남겨놓은 콘티나 세부 사항에 대한 촬영 계획 등이 전혀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 후임 감독은 손을 놓아버리고 장선우가 다시 복귀해서 영화를 작업하게 되었다.

이걸로 100억[15]씩이나 꼴깍 날려버린 바람에 제작사 기획시대는 완전 쫄딱 망했고 배급사 튜브 엔터테인먼트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며 2006년에 미디어 코프에게 인수 되어 사명이 스튜디오 2.0으로 바뀌었지만 역시 흥행작이 별로 없다가 총 제작비 23억원 들여서 제작한 장훈 감독 소지섭 주연의 < 영화는 영화다>가 흥행 대박을 기록하면서 다시 살아남나 싶었으나 스튜디오 2.0 대표가 수익금을 모두 챙기고 잠수을 타면서 스튜디오 2.0이 완전히 폐업 돼버렸고 튜브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미디어 코프는 2009년에 폐업 되었고 이후 상장폐지 되었다. 튜브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튜브 픽쳐스는 영화 < 예의없는 것들>을 끝으로 영화사업을 그만두고 자원개발사업으로 변경되어 회사명도 페트로 홀딩스로 변경되었다가 다시 (주)코스모스피엘씨로 변경되었다가 2009년에 상장폐지 되고 역시 튜브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였던 튜브 인베스트먼트는 < 다세포 소녀>를 끝으로 영화 투자사업을 철수하였고 회사명이 HB인베스트먼트로 변경되었다.

장선우 자신은 2004년~2005년 연간 그 도피처 몽골(...)에서 해외 투자를 꽤나 받아 영화 <천개의 고원>을 찍으려 했으나 결국 영화가 엎어지면서[16]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카페를 차리고 살아가는 것만 나중에야 알려지게 된다.[17]

태클 들어온다고 제작에서 손을 놓거나 돈 날려놓고 '보시했다고 치자'는 망언을 하는 등의 기행에서 추리해 보면 아마 그동안 필모그래피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 때문에 극도로 오만해져서 저지른 병크가 아닐까 싶다. 후술하듯이 본인도 오만했었다고 인정했다.

2.5. 몰락 이후

2004년에 < 귀여워>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 그러나 그게 다였다. 게다가 이 <귀여워>의 감독은 장선우의 제자로서, 일부 엑스트라는 나쁜 영화의 주인공들인 가관인 수준. 그리고 이 영화도 흥행은 말아먹었다. 이후 스승(장선우)처럼 영화계에서 버로우를 타지는 않았지만, 제작하는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18]

2011년 씨네21 제797호에서 장선우를 재평가하며(...) 특별 취재했다. 장장 15페이지가 넘는 코너로 유달리 씨네 21의 장선우 사랑이 돋보였는데 아직도 차기작 계획을 하는 그에게 국내 영화계 투자가 어렵다면 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해외 영화계의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라는 기사를 썼다. 그러나 기사에도 나왔듯이 해외에서 장선우에게 제작비를 대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다만 성소재림을 말아먹어서 끼친 악영향이 너무 커서 그렇지 사실 성소재림 이전에는 나름대로 거장 취급할만한 인물이기는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너무 거금을 들인건 그렇다쳐도 그 제작과정에서 보여준 개인적 행동이 확실히 문제가 되지만

한때 박재동과 함께 바리데기 애니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하고[19] 몽골 초원을 배경으로한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다지만 영화판에서 완전히 쫓겨난지라 구상이 현실화되기는 그른듯 하다.[20][21]

결국 2012년, 활동을 중단한 감독들을 다룬 영화 "영화판"시사회에 참가해 자신이 오만했다고 인정했다.

3. 평가

요약하자면 데뷔 이래로 흥행과 작품성 양쪽에서 호평을 받고 잘나간 예술영화 감독이었으나, 제작비 엄청 들어간 망작인 SF영화 찍어서 경력이 작살나버린 감독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애초에 그렇게 만들지 말았어야지.

작가주의 감독에 속하기도 했는데 정성일 평론가가 당시에 썼던 평론에 따르면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 셋을 높게 쳐주었다. 근데 이중에서 그나마 제일 최근 활동했다는 사람이 2007년에 영화 M을 내놓은 이명세...[22] 박광수 감독도 2006년 박신양, 예지원 주연의 눈부신 날에를 찍고 영화활동을 쉬고 있다. 다만 이분은 또 평가가 안좋았다던가 하는 문제를 떠나 영화 자체를 자주 안 만드시는 분이라, 다시 나올수 있을 수도.

정성일 평론가 본인도 김기덕, 임권택, 홍상수로 갈아타서 장선우 감독은 완전히 잊혀졌다. 물론 정성일도 이 영화를 여러번 비판했다. 요지는 '실상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영화인데 금강경이 갑자기 튀어나오니 이해못하는 티는 못내겠어서 뭐라도 본냥 무게잡지 말라'는 소리였다. 이 정도면 거의 맹비난에 가깝다. 장 감독은 화엄경 다음에는 금강경 알렸으니 되지 않았냐라고 했었다지

그래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전에 찍었던 영화들은 당대기준으로 괜찮거나 참신한 시도를 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하나만으로 흑역사로 치부하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23] 쉽게 얘기하면 '충무로의 백인천'이다.


[1] 이 드립이 왜 나왔는가 하면 장선우 감독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개봉한 이후에 이 영화를 보고 기쁘면 지존, 슬프면 고수, 못알아듣고 게임이나 하면 중수, 안보면 하수라고 희대의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2] 후술할 선우완 감독의 성을 빌려와 필명을 지었다. [3] 참고로 본 작품은 대한민국 영화사 최초의 독립 단편영화다! 이전에는 영화 도제 시스템식의 영화사에서 제작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정작 개봉할 땐 < 서울 황제>란 제목으로 개봉해야 했는데 개신교계에서 반대시위를 벌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목을 바꾸고 잠깐 개봉하여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영화의 주연은 김명곤 배우로 이전에 그의 대표커리어였던 < 바보선언>(이철용 원작/이장호 감독)에서도 주연이었으며, <바보선언> 역시 비교적 사회파적인 영화라는 점과 주인공이 정신질환자나 동네 바보같은 마이너리티라는 점, 감독들이 주화입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명곤은 이후 < 서편제> 출연으로 리즈시절을 누리다 영화계 일선에서 물러난후, 참여정부 시절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바가 있다. [4] 은하해방전선 윤성호 감독이 이 영화를 보자마자 자기의 추천작을 바꿨을 정도였다. [5] 이 영화가 원미경이 가장 최근에 찍은 영화다. 2002년 이후 미국에 거주 중. [6] 신인시절 신현준이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배역은 장돌뱅이 [7] 실제 당시 영화 홍보 문구. [8] 이것은 춘향뎐의 여주인공 이효정의 노출과 더불어 미성년자 노출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예술적인 표현으로 유야무야 넘어갔고 당시 이효정도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3년 후 가수로 확 떠버린 이정현과 달리 이효정은 묻혔다.... [9] 때문에 대부분 잘해봐야 2000년대 극초반에서 필모그래피가 뚝 끊겨있다(...) [10] 에피소드 몇개는 이 배우들이 실제로 겪은 일들을 각색한 것. [11] 언론에서 논란을 부추겨 득을 본 점도 있다. 당시 KBS 뉴스 9에서 상영관 앞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12] 이러쿵 저러쿵 여러 말로 치장한들 결국 서양에서 아시아를 보는 시선은 오리엔탈 판타지, 즉 자신들에겐 없는 무언가를 찾는 것에 좁혀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어느정도 그런 면이 크지만 이 당시엔 특히나 더 했는데 이런 점은 서양권에서도 크게 알아줬던 일본영화만 봐도 알수 있는게, 일본 전통극으로 영화를 자주 만들었던 구로사와에 비해 현대극에 치중했던 오즈 야스지로가 늦게서야 주목을 받고, 심지어 지금도 구로사와에 대한 지지에 비해 오즈에 대한 지지는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이 때문. 결국 서양권의 평가라고 그렇게 순수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13] 布施. 불교에서 자비심으로 타인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푸는 것을 뜻한다. [14] 게다가 이 100억원은 2002년 기준으로 100억원이다. 현재에도 영화로 100억원을 날리면 재기불능이 되는 마당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20년전의 100억이면....이하생략. [15] 참고로 해외 리뷰에서는 이 100억 든 작품을 저예산 영화라고 부른다.(...)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비에 비교하면 저예산으로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 저 동네니까 말이 그렇지 이 영화 제작하기 5년전에 대한민국은 초유의 IMF 사태로 경제위기를 겪었던 것을 생각하자. 지금도 100억은 큰돈인데 근 20년전인 당시 물가나 시세로 100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16] 신인 여배우에게 '어린아이 울리면 행복할 수 없다.'는 욕까지 들었다고 한다. [17] 이 카페는 그럭저럭 명물화 되었는지 관광 잡지등에 가끔씩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영화판에서 쫓겨나 차린 카페가 명물이 되는게 좋은 일인지는…. 안습 구글로 찾아보면 관련 글들이 있다. 다만 호불호가 심히 갈리는 분위기, 공통적으로 주변 경관은 매우 훌륭하고, 카페도 일반가옥을 개조해서 분위기 있다는 게 공통적인 평이지만, 사장 내외가 불친절하다는 평이 많은 편. [18] 이 본문을 보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첨언하자면 귀여워는 저질 영화가 아니다.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2004년 한국영화계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찬사까지 한 바 있고,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까지 받았다. 단, 대중들의 취향과는 심히 어긋난 작품이었으며, 덕분에 네이버 평점 4점대를 찍었다. 평론가의 시각과 대중의 시각이 어긋난 예 중 하나로 들 수 있을듯. (참고로 이후 감독한 영화 <창피해>, <우리손자베스트> 또한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 뉴타입 한글판에서 소개된바 있다. 박재동 화백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스케치 여행을 가기도 했다고. [20] 짬밥으로 보면, 임권택 등 일부를 제외하고 현재는 좋은 취급을 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2000년대 이전의 감독들과 박찬욱, 봉준호 등으로 대표되는 21세기 신예들의 세대 사이에 끼어서 더 위치가 엉성한 측면도 있다. 게다가 영화 하나를 완전히 말아먹었으니... [21] 비슷한 케이스가 바로 < 넘버 3>의 송능한 감독인데(...) 이분도 < 세기말>이란 영화로 소포모어 징크스의 한 사례를 남기며 영화계에서 은퇴해야 했다. 9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감독들이 2000년대를 전후해 날라간 것은 (홍상수, 이명세 정도를 제외하면) < 타이타닉>과 < 쉬리> 이후 한국 영화 관객이 대폭 늘었던 탓도 있다. 영화 산업 자체가 변하고 있던 과도기였던 것. [22] 그나마 이명세 감독은 드라마 쪽 연출은 좀 맡았다. [23] 이재용 감독도 비슷한 경우다. < 정사>, <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들로 흥행과 비평 모두 크게 성공했다가 < 다세포 소녀>로 아주 작살나버렸기에. 근데 <다세포 소녀>는 평론가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딴지일보에서도 호평을 날렸다. 물론 극장에서 보고온 관객들은 약이 제대로 올라 악플이 홍수를 이뤘다. 역시 평론가는 재미있어 그 뒤 평하기에 따라 < 여배우들>이란 영화로 이재용이 되살아났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되려 흥행에선 <다세포 소녀>보다 더 최악이였다. 2013년 < 뒷담화>라는 영화를 찍었다. 왠지 영화판 이야기만 연속인것 같은데 상관없어 다시 본론으로 궤도를 돌려놓자면 <성소재림>은 평론가 평가조차 좋지 못했으니 그나마도 이재용의 <다세포 소녀>에도 비할 바 못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