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3

조폭에 지나지 않는 송강호가 라면먹고 성공한 임춘애[21]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의 성공신화를 언급함으로써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거짓된 위선을 적나라하게 비꼰다. 그런데 어쩐지 송강호는 임춘애를 현정화로 잘못 말함으로써 이러한 신화를 강조하는 무리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잘못을 지적하는 부하를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면서 자신의 억지주장을 강제로 주입시킨다. 회사 회의 중에 사장의 잘못을 지적했다가는 동일한 취급을 받을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이다

현지: 오빠, 나 사랑해?

태주: 아니, 야 너 사랑이 뭔 줄 알아? 사랑이라는 거는 누군가를 90프로 이상 믿는다는 거야. 까놓고 말해서 난 너 그만큼 못 믿어.

현지: 그럼 몇 프로나 믿는데?

태주: 51프로.

현지: 겨우?

태주: 마 50프로는 넘잖아. 야, 너 내가 어떤 새끼건 49프로 이상 믿을 거 같애? 안 믿어 어떤 새끼든.

조필: 생활비 얼마 남았나?

얼큰: 14만원쯤 남았습니다. 저희가 막노동이라도 뛰겠습니다 형님.

조필: 건달을 불한당이라고도 한다. 불한당. 아닐 불, 땀 한. 땀을 안 흘린다는 뜻이야. 조금만 더 버텨보자. 조만간 일거리가 들어오겠지. 자 결산하자.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헝그리 정신에 관해서야. 헝그리.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헝그리. 에이치, 유, 엔... 뭐 니들 일주일째 짱깨, 컵라면만으로 이렇게 때운거 잘 알어. 물론 흰 쌀밥에 고깃국 먹고 싶겠지. 응? 그걸 참는 것도 일종의 훈련이야, 훈련. 응? 니들 왜 한국 복싱이 잘나가다 요즘 빌빌대는지 아나? 다 이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야. 헝그리 정신. 옛날엔 말이야. 다 라면만 먹고도 진짜 라면만 먹고도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 홍수환. 어, 엄마 참피언 먹었다. 다 라면. 복싱 뿐만이 아니야. 응? 그 누구야 현정화. 현정화 걔도 라면만 먹고, 라면만 먹고도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버렸어.

말복: 임춘애입니다 형님.

조필: 나가 있어. (얼큰과 초복이 우당탕 자리를 피하고 말복은 조필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들어와! (얼큰과 초복이 다시 들어온다.) 내 말, 내...내...내 말 잘 들어, 내...내가 하늘 색깔, 하늘 색깔이 빨간색. 그럼 그때부터 무조건 빨간색이야. 응? (달걀을 가리킨다.)요...요...요 노리끼리한 색이지만 이걸 빨간색! 이러면 이것도 빨간색이야. 어? 어 이 씹새끼야. 응?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내 말 토,토,토,토,토다는 새끼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 직사 시켜버리겠어 직사. 아, 암튼 아, 그, 그, (말복을 발로 때린다.) 이 씹새끼야 너 때문에 까먹었잖아 씨발새끼야. (말복을 한번더 구타한다.) 어 이 씹새끼야.

얼큰: 헝그리 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조필: 그래 헝그리 정신, 이 헝그리 정신이 우리 건달에게는 필요해. 어? 니, 니들 조만간 저, 저, 정말 잘 나갈거야. 정말. 벤츠 타구, 벤츠 타구우, 룸싸롱, 룸싸롱? 룸싸롱 아, 안방 드나들듯, 안방 드나들듯 드나들게 될거야 정말이야. 어? 그때도 지금 짱깨 먹던 시절? 커, 컵라면 먹던 시절? 우리 산에서 뱀 잡아먹고 깨구리 잡아먹고 그런 시절? 절대 잊어선, 저 절대 잊어선 안돼. 어? 그, 저, 절대 잊어선 안돼. 내, 내가 뭐, 뭐든 걸 정말 열심히 진지하게 해야 돼. 내, 내가 늘 강조하지만 잠 자는 개한테는 결코 햇빛은 비추지 않아, 햇빛!

현지: 우리, 아이 하나 가지면 안될까?

태주: 나 꿰멨다고 그랬잖아.

현지: 실밥 풀면 되잖아. 한 이백 주면 풀 수 있대.

태주: 나도 너만큼 내 새끼 면회하고 싶은 놈이야. 보채지 좀 마.

현지: 그러니까 빨리 면회 하자고.

태주: 아 시끄러! 대가리 복잡해 죽겠는데 씨...

현지: 왜 이렇게 신경질이야!

태주: 칼 한 자루 들고 이 바닥 헤멘게 십오 년이야. 넘버 원 한번은 해봐야 될 거 아니야.

현지: 깡패두목 되는게 그렇게 중요해?

태주: 뭐 깡패? 야 내가 나 혼자 잘 살려고 이러는 거냐?

현지: 지금 이게 잘 사는 거야? 내가 매일 밤 오빠 기다리면서 얼마나 조마조마 한지 알기나 해?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또 칼 맞을까봐. 그런거 알기나 하냐고. 마음대로 해. 나도 이런식으론 더 이상 못 살아.

태주: (일어나서 현지의 팔을 붙잡으며) 뭐? 못 살어? 야, 술 따르는 년 이만큼 살게 해줬더니 뭐? 못 살아? (현지에게 뺨을 맞는다)

현지: 그러면 너는, 너는 깡패새끼밖에 더 되니?

태주: 뭐? (현지의 뺨을 때린다.) 씨... 야. 난 뭐 안 무서운 줄 알어? 응? 나도 다 때려치고 싶어! 다 때려치고 어디 바닷가 같은 데서 남들처럼 애새끼 낳고 그렇게 살고 싶어. 근데 그렇게 안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야! 야, 너, 너 깡패 영화에 왜 애새끼 안 나오는줄 알어? 응? 애새끼 생기면 마음 약해져. 마음 약해지면 건달 끝이야!

현지: 깡패 영화에 왜 아이들이 안 나오는지 알어? 오빠같은 깡패한텐 희망도 미래도 없기 때문이야 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