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30 10:25:47

안성기

안성기의 관련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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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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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안성기 장동건 설경구 최민식 한석규
6위 7위 8위 9위 10위
송강호 신성일 박중훈 정우성 원빈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최민식 송강호 안성기 김태희 고두심
6위 7위 8위 9위 10위
하정우 전지현 류승룡 장동건 설경구
11위 12위
원빈 정우성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송강호 마동석 안성기 하정우 정우성
6위 7위 8위 9위 10위
이병헌 황정민 유해진 장동건 신성일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김혜수 설경구 최민식 공유 차승원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전지현 조인성 현빈 강동원 이정재
21위 22위
한석규 송중기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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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사저널_화이트.png
200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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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2000 2001 2002 2003 2004
서태지 최불암 이효리 안성기
2005 2006 2007 2008 2009
조용필 안성기 배용준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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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80000,#010101>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보관.jpg
연도 2005년
이름 안성기
분야 배우
보관문화훈장(3등급)

<colbgcolor=#980000,#010101>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은관.jpg
연도 2013년
이름 안성기
분야 배우
은관문화훈장(2등급)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대상
제29회
( 1993년)
제30회
( 1994년)
제31회
( 1995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안성기
( 투캅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17회
( 1981년)
제18회
( 1982년)
제19회
( 1983년)
신영일
(매일 죽는 남자)
안성기
(만다라)
안성기
( 안개마을)
제18회
( 1982년)
제19회
( 1983년)
제20회
( 1984년)
안성기
(만다라)
안성기
( 안개마을)
안성기
(적도의 꽃)
제19회
( 1983년)
제20회
( 1984년)
제21회
( 1985년)
안성기
( 안개마을)
안성기
(적도의 꽃)
안성기
( 깊고 푸른 밤)
제20회
( 1984년)
제21회
( 1985년)
제22회
( 1986년)
안성기
(적도의 꽃)
안성기
( 깊고 푸른 밤)
이영하
(화녀촌)
제24회
( 1988년)
제25회
( 1989년)
제26회
( 1990년)
이덕화
(접시꽃 당신)
안성기
( 성공시대)
박중훈
(우묵배미의 사랑)
제26회
( 1990년)
제27회
( 1991년)
제28회
( 1992년)
박중훈
(우묵배미의 사랑)
안성기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유인촌
( 김의 전쟁)
제29회
( 1993년)
제30회
( 1994년)
제31회
( 1995년)
이경영
( 하얀전쟁)
안성기
( 투캅스)
김갑수
( 태백산맥)
제47회
( 2011년)
제48회
( 2012년)
제49회
( 2013년)
하정우
( 황해)
안성기
( 부러진 화살)
하정우
( 베를린)

{{{#white 역대}}} 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
파일:bluedragonawards3.png
남우주연상
제10회
( 1973년)
제11회
( 1990년)
제12회
( 1991년)
신영균
( 삼일천하)
안성기
( 남부군)
임성민
(사의 찬미)
제26회
( 2005년)
제27회
( 2006년)
제28회
( 2007년)
황정민
( 너는 내 운명)
{{{#934F00 안성기
박중훈
( 라디오 스타)}}}
송강호
( 우아한 세계)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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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20회
( 1981년)
제21회
( 1982년)
제22회
( 1983년)
남궁원
(피막)
안성기
(철인들)
안성기
( 안개마을)
제21회
( 1982년)
제22회
( 1983년)
제23회
( 1984년)
안성기
(철인들)
안성기
( 안개마을)
윤일봉
(가고파)
제23회
( 1984년)
제24회
( 1985년)
제25회
( 1986년)
윤일봉
(가고파)
안성기
( 깊고 푸른 밤)
이영하
( 안개기둥)
제31회
( 1993년)
제32회
( 1994년)
제33회
( 1995년)
이덕화
( 살어리랏다)
안성기, 박중훈
( 투캅스)
김갑수
( 태백산맥)
제43회
( 2006년)
제44회
( 2007년)
제45회
( 2008년)
감우성
( 왕의 남자)
안성기
( 라디오 스타)
김윤석
( 추격자)

}}} ||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안성기
安聖基 | Ahn Sung-ki
파일:안성기_bazaar 화보.jpg
출생 1952년 1월 1일[1] ([age(1952-01-01)]세)
경상북도 대구시 (現 대구광역시)[2]
국적 [[대한민국|]]
신체 175cm, 72kg, 270mm, B형
학력 파일:external/1c58726d775151603ebcc8069a7ccf4c17f002b3377b5bfd3f38e1c9a109d1bb.gif 서울돈암초등학교 ( 졸업)
파일:경동고등학교 로고.png 경동중학교 ( 졸업)
파일:서울동성고등학교 로고.png 동성고등학교 ( 졸업 / 43회)
파일:한국외국어대학교 엠블럼.svg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한국어교육학 / 학사)
형제 형 안인기(1947년생)[3]
배우자 오소영
자녀 장남 안다빈(1988년생)
차남 안필립(1991년생)[4]
병역 대한민국 육군 중위 만기전역[5]
종교 천주교(세례명: 사도 요한)
데뷔 1957년 영화 '황혼열차'
소속사 파일:external/s29.postimg.org/13322049_532369353631009_8423653614838635557_n.jpg
현직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365 명예 발행인
링크 파일:external/s29.postimg.org/13322049_532369353631009_8423653614838635557_n.jp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와 군인2.2. 배우 안성기
3. 기타
3.1. 이름 관련 각종 에피소드들
4. 가족관계5. 주요 출연작
5.1. 영화5.2. 교양5.3. 광고
6. 수상 내역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영화배우.

화려한 커리어 만큼이나 구설수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6] 많은 연예인들의 치부인 병역문제에서도 매우 모범적으로 ROTC 장교로 병역을 마쳤다. 학군 12기로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여 제12보병사단에서 복무, 중위로 만기 전역하였다. 학군 13기 출신으로 안성기보다 한 기수 후배[7]인 국회의원 정몽준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여,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회에서 두 사람이 함께 일하기도 하고, 2013년 안성기가 현대중공업 CF에서 내레이션 형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

상기한 화려한 커리어와 평생 사건사고를 일으킨 적이 없는 단정한 이미지 때문에 중년을 넘어서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도 광고계에서 최고 수준의 페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델의 이미지와 신뢰도를 중요시하는 금융, 식품, 건설업계에서 특히나 선호하는 모델. 목소리 톤과 발성도 탁월하여 목소리만 나오는 광고도 있을 정도.

2000년대 들어 주로 대통령, 특정 집단의 우두머리의 배역을 많이 맡으며 특이하게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범죄자의 배역도 소화해냈다. 사실 워낙 출연작이 많다 보니 안해 본 역할이 없을 정도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중후한 역보다는 건달( 깊고 푸른 밤), 거지( 고래사냥), 소심남( 기쁜 우리 젊은 날), 하인( 어우동) 등의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이 때에도 정반대의 역을 많이 맡았다.

그러나 2020년 10월 20일쯤에 건강이상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초 건강에 문제가 있어 언론 인터뷰나 행사는 진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기 활동을 하며 '국민배우'라는 칭호도 얻고 특히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이미지로 한결같은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왔기에 건강 이상 소식은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2. 생애

2.1. 유년기와 군인

1960년 대종상의 전신인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 수상 영상(대한뉴스 제294호)

안성기는 5살 때 처음으로 연기자가 되었으며[8] 7살에는 김기영 감독의 《 10대의 반항》에서 소매치기 역으로 출연해 그해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과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수상했다.[9] 김기영 감독의 《 하녀》에서는 8살 때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경동중학교 3학년때 선배 배우 이순재와 같은 무대에 섰다고 하며, 경동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낙방하여 동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까지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하여 공부 기초가 없어서 고교 진학 후 수학시험에서 백지를 낼 정도였다고 하며 실어증 증세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 당시 경동중에서 조용필을 만난다.[10]

아버지가 체육교사로 재직했던 동성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때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 베트남으로 진출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로 진학했다.

파일:external/photo-media.hanmail.net/20070129141316.576.1.jpg
육군 소위 안성기

대학에 진학한 안성기는 베트남에 가기 위해 학군장교(12기)를 지원해서 후보생이 되었다. 그러나 안성기가 소위로 임관하기 전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성기는 포병 소위로 임관해서 열심히 군복무를 했다. 사단장배 음어 조립 해독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자서전에 소위로 근무 할 당시 스스로 시나리오도 몇 편 썼다고 한다. 영화화 하기 보다는 연기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2. 배우 안성기

안성기는 전역을 하고 나서는 회사원이 되려 했으나, 그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바람에 전공인 베트남어가 쓸 데가 없어졌던 터라[11] 《병사와 아가씨들》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다시 연기자가 되었다. 물론 아무리 베트남어가 쓸모없어졌다 해도 그 시대에는 대학 졸업하면 거의 취직이 보장되고, 그 당시 공무원[12]은 행정 고시(현 5급 공채)를 통해 갈 거 아닌 이상 웬만하면 할 수 있던 시절이라 한국외대 나온 장교 출신[13]이 정말 일자리가 없었을 리는 없다. 그보다는 베트남어 전공을 살리지 못해서 마음에 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본인 회고로는 당시에 워낙 고급 인력이 없으니 베트남 다녀온 장교 출신 친구들은 다 취업 잘 되더라고 얘기했다고 한다.[14]

아역 스타 출신은 성인 배우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고정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였으므로 그가 성인 배우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영화 《 바람불어 좋은 날》로 충무로에 복귀한 후 이어진 영화의 성공으로 자리를 잡으며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되었다. 아역으로 나온 이후 계속 배우 생활을 한 게 아니고, 중고등학교-대학교-군 시절엔 쉬었기 때문에 아역 배우 이미지가 탈색된 것도 성인 배우로 성공하게 된 이유중 하나였다. 사실 아역 때에 김정훈 같은 톱스타도 아니었는데, 그것이 성인 배우가 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성인 배우로 안착, 그 시절 화제작들의 주연을 도맡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든 명장 배창호,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에서 주연을 맡아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잡으며 배우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198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은 여배우들 대부분이 안성기의 상대역을 했다.

그와 출연해서 흥행한 작품만 모아 봐도 정도나 된다.

신현준도 그가 출연한 영화 ' 기쁜 우리 젊은 날(1987년)'[15]을 보고 배우가 되었다고 훗날 무릎팍 도사에서 밝혔다. 《 태백산맥》 촬영 당시 안성기와 같은 숙소 같은 방을 썼을 때 신현준은 이 사실을 안성기 본인에게 털어놨는데 그 때 안성기는 눈도 안 마주치며 응~ 그런 애들 많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6] 안성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자신의 수첩에 기록하는 신현준의 행동에 그만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문에서 이야기되듯 아역 시절부터 계속 영화를 찍어온 배우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맡는 배역의 폭들이 넓은 편이기도 했다. 웃기고 어리숙한 캐릭터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지적인 캐릭터, 심지어는 2010년에 히트한 모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보다도 더 오래 전에 까도남같은 역도 했을 정도(《 그대 안의 블루). 이 외에 안성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수없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왕초를 맡아 화제를 받았던 고래사냥의 민우역, 비리 경찰 역할을 맡은 투캅스의 조 형사역, 역대급 정조를 평가받는 영원한 제국의 정조역, 냉혹한 악역 보스 역할을 맡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장성민역, 실미도를 이끄는 대장 역의 최재헌 준위역, 사고뭉치 가수를 케어하는 매니저를 맡은 라디오 스타의 박민수역 등이 있다. 다만 배창호, 이장호 감독의 전성기가 끝난 후로 여러 감독들과 작업했는데, 이미 한국 영화의 간판이던 안성기는 캐스팅 제의를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함량 미달의 작품에도 얼굴을 팔아서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많이 잃었다는 평가가 있다.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흑역사는 없는데 괴작이나 졸작을 거절 못해서 배우로서의 흑역사만 있다.[17]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기억에 남는 게 안성기뿐이다 할 정도로 그 능력이나 지위가 확고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TV 드라마 출연이 극히 드물다. 이름 없던 시절 수사극 드라마에서 범인 역으로 나온 다든지 몇번 TV에 나온 적이 있긴 하다.[18] 이는 안성기가 성인 배우로 다시 복귀하던 시절부터 한국 영화는 컬러 TV 보급 등의 영향으로 방화[19]로 불리며 긴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영화판에서 새로 건진 배우가 있어도 곧 TV 탤런트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영화 최고 스타인 안성기로서는 자신 만은 한국 영화를 위해 TV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겠다고 맘먹고 그에 따른 것이다.[20] 위의 흑역사라고 불리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한국 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연기력 또한 원래 뛰어나지만 시대가 변해도 그에 침체되지 않는 배우다. 90년대의 흥행 배우들 대부분이 2000년대에 넘어오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억양에 침체되는 반면에 그는 안성기라는 개성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어울리는 억양을 쓴다.[21]

2016년 6월 런닝맨을 통해 처음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3. 기타

  • 장교로 복무할 당시 선배 장교들의 조언을 받아 처음 저녁 점호 때 무작위로 병사들의 총기 하나 잡고 살짝 녹슨 자국을 트집잡아 내무반 분위기를 박살내 군기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분 성격이 어디 안가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안성기의 유한 성격을 눈치채고 구슬려 온갖 꿀을 빨았다고 한다.
  • 아역 시절에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는데, 이게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영화제 연기자 수상 기록이다.
  • MBC 《인간시대》에서 단란한 가정을 보여주었고[22] 안성기는 그 다큐 최초로 나온 연예인이었다. 이후 무명에서 막 뜨기 시작한 최진실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유명인이 자신이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평. 이후에도 큰 스캔들이 없어서 그때의 인상이 남아있었고 다른 배우들과 달리 TV 출연이나[23] 다작 CF도 없어서 상대적으로 성실함과 신비감을 유지했다.[24]
  • 대한민국 가요계의 제왕 조용필과 경동중학교 동창이다. 실제 학생시절부터 알고 지냈다고 한다. 한 명은 영화계를 평정한 국민배우, 한 명은 가요계를 평정한 국민가수.[25]
  • 그리고 영화배우로 있는 동안 박중훈 콤비를 이뤘는데 첫 콤비는 《칠수와 만수》로 시작하여 《 투캅스》 시리즈,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라디오 스타》 등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콤비를 이루었다. 이제 안성기에게 박중훈은 사실상의 절친이며 박중훈은 데뷔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항상 안성기를 꼽는다. 특히 그의 인격적으로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완성된 인격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과 실생활의 차이가 없고, 실제로 볼 때 카리스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잘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후배들에 대한 배려도 잘 하기 때문에 실제로 안성기와 함께 촬영을 해본 다른 후배들이 단순히 선배 배우로가 아니라 인격자로서 존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성기가 출연하던 영화에서 그와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으나 나이가 조금 있던 무명 단역 배우가 촬영장에서 짧은 연기를 하다 자꾸 실수를 했을때 화가 난 감독이 그 쉬운것도 못하냐며 욕을 섞어가며 심각하게 모욕적인 말을 하자 안성기가 직접 나서서 그 상황을 무마시키고, 그 단역 배우를 잠시 따로 데려가서 "신경쓰지 마라. 당신은 틀림없이 할 수 있다는 걸 믿어라."라며 위로하고 촬영을 잘 마치게 하여 그 배우가 크게 감동받아 후에 영화관계자들에게 당시 안성기에게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를 하여 영화계 미담이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 연기폭이 다양한 반면 베드신은 못 찍는다고 한다. 일설에는 천주교인이라거나 혹은 아내나 아들 보기 민망해서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오인돼서 안성기는 영화에서 벗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로 발전했었다. 사실 안성기는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영화에서 벗는다. 80년대 출연한 영화에서 베드신이 등장하는 영화가 꽤 있었으며, 이후 출연작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모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의하면 이런 저런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연기 인생이 오래 돼도 베드신은 감정 이입이 안 되어서 찍지 않는다고. 그래서 《 깊고 푸른 밤》 등에서 나온 장면은 많은 부분 대역을 썼다고 한다. 또 외모의 영향도 있다고 밝힌적 있다. [26] 무엇보다 애처가인 영향이 크다. 아내를 위하는 마음이 엄청나서, 영화 《꿈》에서 황신혜[27]를 겁탈하는 씬이 있었는데 아내에게 너무 미안해서 한동안 아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박중훈이 과거에 한 인터뷰에 의하면, 안성기는 꿈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유혹하자 꿈에서라도 아내를 배신할 수 없어서 억지로 잠에서 깼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엄청난 충실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박중훈이 아는 사람중에 유일하게 혼외정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안성기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28]
  • 1996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안성기에 대해 여론조사를 했었는데, 그를 싫어한다는 이유들 중 하나가 아내에게 너무 잘해줘서라고 한다.
  • 2001년 영화 '무사'로 제22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생애 첫 남우조연상 수상인데, 그 동안 주연급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주연상만 독식해오다가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포지션까지 양보하면서 영화를 위해 많이 고생한 노고가 인정되었다. 그의 수상호명과 함께 그 영화제에 참석한 모든 배우, 제작자들이 객석에서 기립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청룡상 영화제의 몇 안되는 명 장면이기도..당시 이 영화 촬영 때 참여하던 이가 나중에 다른 사업을 하여 대박을 거둬 책도 냈는데 무사 촬영 에피소드에 대한 회고를 한 바 있다. 중국 사막에서 촬영당시, 배우들이 시원한 찬 음료를 요구하는데 사막이다보니 찬 음료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미지근한 음료를 주자 다들 화내고 짜증냈다고 한다. 반면에 안성기만은 미지근한 물에 차를 타서 아무렇지 않게 마시며 "왜 그래? 미지근해도 목마르지 않으면 되잖아. 오히려 이런 사막에서 마시는 것 부족할 거 없이 준비한 게 잘한거지." 라며 당시 스텝들에게 이렇게라도 준비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해서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 팝음악을 좋아하고 엠넷에 출연해서 좋아하는 팝음악을 소개한 적 있다, 샤데이를 소개할 정도로 팝음악에 조예가 있다.
  • 얼굴 자체는 미남이 맞는데 이목구비가 은근히 요상하다. 분장에 따라서는 진짜 이상한 얼굴로 만들 수도 있다.
    파일:안선기해괴한분장.png
    예를 들면 위의 사진을 꼽을 수 있다. 안성기가 맡은 성공시대의 주인공 김판촉이 마지막에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자신이 성공하는 망상을 하는 장면[29] 중의 하나이다.
  • 홍콩 영화배우 양조위와 닮았다. 특히 웃는 모습이 가장 닮았다. # 안성기 본인도 묵공 촬영 당시, 유덕화에게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 키가 크다. 고령에도 불구, 175cm의 훤칠한 비율과 카리스마 있는 외모로 미노년 테크를 타고 있다.
  • 2021년 6월 28일 키즈유튜브인 ODG에 출연해서 초등학생들과 같이 본인의 역대 연기 장면들을 보며, 자신의 연기인생을 초등학생들과 같이 리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술했듯이 건강이상설이 돌고 있었고 근황이 뜸하다가, 오랜만에 모습을 비췄던 것인데, 그런 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목소리에 많이 힘이 빠져 있고, 그의 인상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많이 지났음을 보여주었다. 영상 댓글의 대부분이 반갑지만, 어릴적 그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목소리가 많이 죽은 듯한 모습에 세월의 무상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는 댓글들이 많았다. 해당 영상

3.1. 이름 관련 각종 에피소드들

아무래도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각종 개드립 섹드립의 대상이 되곤 한다. [30] 참고로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이 문서에서 이름과 관련된 드립을 아예 작성금지시켜버렸던 적이 있다.
  • 가끔 '영화배우 A 성기 사진 (공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놓고 안(Ahn)성기 사진을 올려놓는 낚시를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신문 유머란에는 이름이 섹드립으로도 유용되는 등 여러모로 굴욕을 겪었다. ' 한국 영화는 성기를 보여줘야 히트한다'는 식으로. 안습. 사실 이미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90년대에도 개그맨 김형곤이 진행하던 '김형곤 쇼'에 나와서 굴욕의 인증을 한 바 있다. 김형곤이 질문을 하면 "네/아니오"로만 대답을 해야 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 본명이 안성기씨 맞죠?"라고 하면서 "어릴때 성기라는 이름으로 놀림받은 적이 있죠?"라고 하자 안성기가 머쓱한 웃음으로 "네"라고 스스로 말했었다.
  • 이름 관련으로 또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모 토크쇼에서도 이름 관련으로 질문을 받았는데 본인 曰 : "제 성씨가 안씨라서 참 다행이에요. 강씨였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 김사랑, 인사도 사랑스럽게라는 오센 기사에 어느 네이트 이용자가 김사랑이 인사도 사랑스럽게 하면 안성기는 인사도 X같이 하냐?라는 댓글을 올렸다. # 네이트 뉴스에서 댓글을 다른 순서로 정렬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주목도 순에서 최고점을 달리기도 했다.

4. 가족관계

  • 아버지들, 형제들, 사촌에 조카들까지 집안 대대로 이 매우 귀한 아들부잣집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4남 1녀 중 둘째고 큰집은 아들만 5명, 본인 형제는 아들만 3명, 작은집들도 아들 여럿에 딸이 하나씩이라고 한다. 형제들 중에서도 큰형 안인기 PD만 2남 1녀를 뒀고 작은형과 본인은 모두 아들만 있다고 한다. 본인도 이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하고 아들만 둘 두었다. 스스로도 결혼 후에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nimg.nate.com/2012062302035431_1_rstarjun.jpg
  • 부인 오소영 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조소과 출신 조각가/교수이다. 참고로 안성기는 직접 부인의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나르기도 할 정도로 자상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위의 부인은 상당한 미인으로, 미남인 아들들 외모는 상당 부분 엄마 덕인 듯. 참고로 위의 《인간시대》에 출연했을때가 장남인 안다빈을 임신했을 때였다.
  • 여담으로 40대 이상의 많은 사람들은 안성기씨와 커피광고에서 오랫동안 부부역할로 같이 출연했던 이현미씨를 실제 부인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도 그럴것이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직 커피광고에서만 부부로 출연하면서 워낙 케미가 좋기도 했지만 이현미씨는 직업모델이 아니라 일반인이어서 커피광고 외에는 전혀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많이 생겨난 듯 싶다. 유튜브나 인터넷 동영상에서 검색해보면 당시 CF 몇 개를 볼 수 있는데 이현미씨 미모 자체가 대단하기도 하고 특유의 단아하고 선한 인상이 안성기씨와 아주 잘 어울려서 부부라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백문이 불여일견. 광고를 한 번 보자.

  • 장남인 안다빈 씨는 프랫 인스티튜트 출신으로 회화를 전공했다. 여담으로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난 이정재 정우성을 개인전에 초대해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다며 찍은 사진이 있다. 참고로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S09011900011.jpg

    바로 이 사진

    작풍은 에곤쉴레나 클림트가 생각나는 그런 그림. 2010년대 초반에는 규현과 서로 쌍둥이인가 싶을 정도로 닮아서 한때 화제가 됐었다. # 심지어 나이도 둘 다 빠른 88.

5. 주요 출연작

5.1. 영화

5.2. 교양

5.3. 광고

6. 수상 내역


한국 3대 영화상인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34],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한 배우이며, 심지어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은 역대 주연상 최다 수상 배우이다. (백상 8회, 대종상 5회)
또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4년 연속(82~85) 수상했으며,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82, 83년도에 2년 연속 수상, 이후 85년도에 한 번 더 수상하며 4년 동안 남우주연상을 총 7회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1994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에서는 대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그의 최전성기였던 80년대에는 청룡영화상이 폐지되어 있었던 터라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90년도 청룡영화제가 부활한 첫 해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에 성공했다.

뿐만아니라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주연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로, 그의 첫 남우주연상과 그의 마지막 남우주연상은 각각 1982년 2012년으로 무려 30년의 시간 차가 있다.


[1] 프로필 상으로는 1952년 1월 1일생인데 1950년 생인 조용필과 동창이라는 사실에 2년이나 차이나는 사람들이 동창이 될수있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으나 안성기는 57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대학교는 참고로 70학번). 조용필과는 중학교 동창 같은 반 친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절친으로 지내는 것이다. 다만 안성기 본인이 실제로는 50-51년 생일 가능성도 있다. 행정 마비 내지 유아 조기 사망, 도로교통 미개발 등으로 출생 신고시 오류가 생기거나 늦게 등록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생 당시가 6.25 전쟁 중이 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생년월일 호적이 다를 가능성이 있지만 그 당시에 학교를 일찍내지는 늦게 나오는게 특별한게 아니었다. 반대로 더 이전 시기에는 만 7, 8세에 들어가는경우가 더 흔했다. 일단 안성기가 초등학생일 당시에는 4월 입학시기라 입학기준도 달랐을뿐더러 행정체계도 잡혀있지않던상태라 일찍이던 늦게던 보내기 쉬운편이었다. (1940년대 후반 - 50년도까지는 미군정 하의 교육개편으로 입학이 9월이던시기라 미국이나 중국처럼 8 - 9월생까진 세는나이 7살에 입학했다.) 60년대생인 조국이나 우병우만 보아도 각각 세는나이 6살에 (조국은 만 4살, 우병우는 만 5살) 들어갔다. [2] 6.25 전쟁 중 출생만 대구광역시에서 하고 학창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한 살 어린 배우 김영철과 똑같은 케이스. 그래서인지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는 출생지가 아예 서울특별시로 나온다. [3] 전 KBS PD. 현 예원예대 교수. 형 역시 베트남전 참전 경력이 있다. 당시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송해한테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을 것을 직접 권유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4] 차남의 이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이자 미국의 최초 한국계 유명 배우였던 안필립 선생의 이름에서 땄다고 한다. [5] 학군사관으로 복무했다. [6] 도덕이나 행실이 아닌 커리어로서의 흑역사는 좀 있다.《 퇴마록》이라든가 《 한반도》라든가 7광구 등. 하지만 본인이 망한 영화에 대해 흑역사로 생각하지 않으며, 최근에도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거저나 다름 없는 개런티로 흥행성 없는 영화에 출연 중이다. 개념 충만한 다작 배우. 게다가 시나리오 자체가 개판이라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영화에서조차도 자기 역할만큼은 충실하게 소화해 낸다. 《 퇴마록》의 박신부 역이 좋은 예. [7] 안성기가 52년생, 정몽준은 51년생이라서 나이는더 어리지만 안성기가 67년도에 입학했다. 그래서 50년생인 조용필과 중학교 동창이고 51년생인 정몽준보다 1년 선배인 것이다. [8] 안성기의 아버지 안화영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이후 동성고 체육교사로 재직하였는데, 허리가 안 좋아 교사직을 그만둔 후 친구였던 김기영 감독의 권유에 따라 영화제작자로 전직하였다. 이후 김기영 감독은 영화 <황혼열차>를 만들때 마땅한 아역배우가 없자 친구의 아들인 안성기를 캐스팅 하였고, 그렇게 안성기는 연기자가 된것이다. 참고로 <황혼열차>는 배우 김지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9] 아쉽게도 '10대의 반항'은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연기 장면은 볼 수 없고 위 대한뉴스 영상에서 시상식 수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0] 조용필 경동고등학교(25회)에 진학했으나 기타를 접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미군부대에 들어가 연주자 생활을 시작했었다. 경동고 총동문회에서는 조용필을 25회 명예졸업생으로 간주하고 있다. [11] 지금이야 국내 각 대학교에 관련 언어학과도 생기고 회화책들도 발행될 정도로 배우거나 단어를 외워도 별 지장은 없지만 냉전 시절이던 1970, 80년대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서는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러시아어, 라오어, 폴란드어, 체코어, 불가리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알바니아어, 몽골어 같은 당시 공산주의 진영 국가들의 언어를 허락 없이 배우거나 단어를 대놓고 읇는 것은 구속까지 당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범죄나 다름없었다. 다만, 중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의 경우 대만 싱가포르, 쿠바,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제외한 모든 스페인어권, 포르투갈어권 국가들과의 수교가 체결되어 있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배우거나 접했다. [12] 지금은 상상 불가이지만 이 당시엔 대학 나와서 공무원 한다 그러면 집안에서 "내가 니 공무원 시키려고 대학 보냈냐?"식의 말을 들었을 지경이었다. 괜히 지금도 어르신들이 술자리에서 우리 땐( 70년대. 아무리 길게 잡아도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저 호황 시기) 공무원 취급도 안 했다는 래퍼토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그랬다는 것이고 일제 시대나 해방 전후만 해도 면 서기나 주사만 지내도 나름 대접 받고 동네서 인정받았던 시대도 있었고, 최민식이 나온 범죄와의 전쟁을 보다시피 공무원이 지역이나 인맥과 밀착해 몰래 한몫 챙기려면 챙길 방법은 얼마든지 많아 할 사람은 다 했다. 즉 우선 순위는 대학 나와서 반듯한 직장에 정장 입고 다니는 것이지만, 그만큼 공무원이 쭉 차별받은 것은 아니며 그 당시 공무원이라도 못해 현재 빌빌거리는 장노년층의 불평과 푸념 섞인 발언이 더 맞다. 당시 인구 대비 대학 진학률과 문맹률을 생각하면 공무원도 그리 나쁘고 푸대접 받는 직종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들이 대거 양산되자 불황에도 잘릴 일 없는 공무원의 장점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인식이 아예 바뀐다. [13]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이다. 판검사를 빼면 군인보다 힘이 센 직종이 없을 때다. 물론 관직이든 민간 기업이든 고위직에는 아직 군 출신이 많이 없을 때라 80년대처럼 군 출신이 우대받지는 못했지만, 일단 입사 시험에서부터 군 가산점을 받고 들어가고, 거기에 외대 출신이라면 서류 전형은 프리패스에 가까웠다. [14] 6.25 끝난지도 오래 안 되고, 직전 월남전도 있었기에 군인, 특히 엘리트라는 인식이 있는 장교 출신을 우대해 주는 풍조가 당연했다. [15] 차승원도 고교 시절 이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장면 안성기의 모습에서 (엄마가 일찍 죽어 없는) 딸에게 슬픔을 티 내지 않으려 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비애의 모습이 묻어 나오는 아빠를 연기하는 안성기를 보며 '저게 진짜다'를 느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차승원도 무릎팍 도사에서 말했다. [16] 사실 태백산맥을 촬영하던 90년대 초반 안성기의 입지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다작을 하던 배우라 웬만한 젊은 남자 배우들은 안성기 보고 배우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 다만 안성기 성격을 생각하면 진짜 저렇게 차갑게 얘기했다고 하기보단, 자신에 대한 찬사를 듣고 쑥스러워하며 얘기한 걸 가지고 신현준이 양념을 섞어서 얘기했을 확률이 높다. [17] 물론 농담으로 안성기 본인이 해당 영화 출연 사실을 흑역사화 한 적은 없다. [18] 지금은 사라진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 나와 하던 인터뷰에서 자신도 기억도 안 나던 드라마에 1회 나온 적이 있다고. [19]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邦畵)을 그대로 쓴 표현. 2000년대 이후엔 거의 쓰지 않는다. [20] 게다가 감정선 잡을 겨를없이 몇일만에 드라마 한편을 뚝딱 만드는걸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21] 이와 극명히 대비되는 배우가 박중훈이다. 안성기에 비해 훨씬 (14살) 젊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전성기를 누렸던 90년대 당시 연기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해 자연스러운 연기가 요구되는 2000년대에 과장된 연기를 하다 발 연기로 욕을 먹은 적도 많다. 박중훈이 태어나기 전부터 연기를 해왔음에도 아직도 매우 자연스럽고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 안성기가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2] 80년대 일반인들의 삶을 다룬 한시간짜리 리얼 다큐로, 매주 월요일 8시 MBC에서 방영했다. 현재 KBS에서 방영되는 《 인간극장》과 비슷한 콘셉트가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인간극장보다는 훨씬 정통 다큐멘터리에 가깝다.(인간극장은 방송제작 관련 수업에서는 '잘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절대 저렇게 내레이션 치면 안 된다, 너희들은 이금희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귀따갑게 듣는다.) [23] 유신시대에는 실화극장류의 반공물에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반강제로 출연했었다. 신성일이나 김승호도 TV 출연경력이 있는 게 이런 이유. 다만 안성기의 전성기때는 그때만큼 반공 드라마가 빡센 편이 아니라서 강제출연은 없었다. [24] 나이가 들어서 전자제품 CF를 찍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는 모 커피 CF가 유일했다. [25] 조용필 왈, "그 친구 키가 중학교 때 키 그대로다." [26] 안성기 말로는 본인이 최민수나 정보석처럼 잘생기지 못하고 굼뜨고 느릿느릿하게 생겼다고 묘사했다. 저 위에 장교 시절 사진 보면 이게 뭔소린가 싶다. [27] 이 영화 전에 다른 영화에서는 부부역할을 했었다. [28] 이건 말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실제로 저런 식으로 말한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안성기만큼은 안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다른 지인이 전부 다 혼외정사를 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극히 일부의 지인들이 혼외정사를 했다는걸 그들이 사석에서 밝히건 이혼 등의 문제로 주변에 퍼지건 해서 본인이 알게 되었을 수는 있으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박중훈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수많은 지인들 중 일부도 아닌 대부분이 수십년 살면서 각각 했는지 안했는지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는가. 실제로 했고 안했고 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문제이다. 다른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인에 대해서 알 수는 없는 것이고, 안성기만큼은 (장기간의 사적인 친분을 통해) 안 했다고 확신한다는 뜻이다. 박중훈 같은 톱스타 영화배우가 세상과 동떨어져 극도로 좁은 인간관계로 살았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세상에 사회생활하면서 자신이 아는 지인들 모두가 혼외정사를 했는지 안했는지 다 확인해본 사람도 없고, 그걸 떠나더라도 했다 안했다 자체를 모든 지인에 대해 다 확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확신할 수 있는 안성기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29] 김판촉(을 분한 안성기)이 알라딘, 손오공 등으로 나와 온갖 요술/도술을 부리는 꽤나 웃긴 장면이 나온다. [30] 유사 인물로는 前 NC 다이노스 투수 민성기 [31] 사실 이유는 안성기가 공군교육사령부 천주교 성당과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기부금도 상당히 냈었다고 한다. 거기다 공군은 자대를 훈련성적과 훈련병 당시에 공부한 시험 성적으로 지망 가능한 시스템인데 공교사는 수도권과 멀고 지긋지긋한 훈련 생활을 보냈다는 이유로 장병들이 많이 기피하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유류특기나 탄약특기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비행단과 비행단이 아닌 곳의 업무 강도가 천지차이다.)하고는 공교사를 지망하면 무난하게 자대로 배치받을 수 있다. [32] 총무과정 조교라는 말도 있었다. 물론 직접 교육에 들어가지는 않고 인기가요를 틀어주거나 재미나는 이야기를 했다는 풍문이 있다. [33] 원제 라스트 나이츠 [34] 백상예술대상의 경우 영화부문 대상/최우수 연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