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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eaac7><colcolor=#972412> 감독 | 장일호 |
원작 | 이재현 |
각본 | 나한봉 |
기획 | 송영식 |
제작 | 한갑진 |
주연 | 김진규 |
촬영 | 서정민 |
조명 | 손영철 |
편집 | 이경자 |
음악 | 정민섭 |
미술 | 조경환 |
제작사 | 한진흥업 |
개봉일 | 1978년 1월 21일 |
개봉관 | 국제극장 |
관람인원 | 35,277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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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무공 이순신의 일대기를 그린 장일호 감독의 1978년 개봉 영화.당시 제작비 1억 7천만원이 들어갔고 연인원 10만명에 달하는 출연 인원[1], 1년 6개월에 걸친 촬영 기간 등 한국 영화사상 유례 없는 대작이었다. 극중 거북선 진수식에는 1,300여명의 엑스트라가 출연하기도 했으며 트럭 2대를 동원해 여천을 비롯 전국의 유적지를 촬영지로 누비고 다녔고, 군사·역사 전문가의 고증을 바탕으로 실물 크기의 거북선 1척 제작에 7백여만원, 크고 작은 군함 수 백척 제작에 1,500여만원이 투입됐다. 영화진흥공사와 해군본부가 후원하고 3,000여명의 갑옷을 전부 제작했다. 의정부 세트장에 거대한 풀을 만들어 일본 기술자를 초청해 미니어처로 해전을 촬영했다.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김진규는 본인이 직접 제작 및 주연한 《 성웅 이순신》(1971)을 완성하느라 집도 팔고 부인과도 헤어지면서 20년간 영화 출연으로 모은 전재산 1억4천만원을 쏟아부었으나 흥행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때 한진흥업의 대표인 제작자 한갑진이 재기의 길을 열어줘 다시 이순신 역에 도전했으나 이 작품의 흥행 성적은 더 좋지 않았고 투자도 겸한 김진규는 경제적 곤란을 겪어야 했다. 이 두 시리즈의 실패로 《 명량》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 영화에서 이순신을 다루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는 뒷얘기도 있다.[2]
2. 등장인물
- 김진규 - 이순신 역
- 장동휘 (우정출연) - 진린 역
- 황해 (우정출연) - 고니시 유키나가 역
- 정애란 - 변씨 역
- 태현실 - 방씨 역
- 김흥량[3] - 이회 역
- 하명중 - 이완 역
- 이낙훈 - 선조 역
- 박암
- 강계식
- 최남현
- 이대엽 - 이억기 역
- 정민 - 권율 역
- 독고성 - 가토 기요마사 역
- 김왕국 - 시마즈 요시히로 역
- 최준 - 요시라 역
- 최성호 - 원균 역
-
장혁 -
등자룡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