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0:04:50

연산군(1962)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최우수작품상
제1회 한국최우수영화상[1]
( 1961년)
제1회
( 1962년)
제2회
( 1963년)
로맨스 빠빠 연산군 열녀문
1962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1961년
성춘향
1962년
연산군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
연산군 (1962)
燕山君 | Prince Yeonsan
파일:연산군 장한사모편 포스터.jpg
다른 포스터 ▼
파일:연산군 장한사모편 포스터(1).jpg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제작 신상옥
원작 박종화
각본 임희재
제작사 신필림
기획 황남
촬영 배성학, 정해준
조명 이계창
편집 양성란, 김영희
음악 정윤주
미술 정우택
주연 신영균
개봉일 1962년 1월 1일
개봉관 명보극장
상영시간 133분
관람인원 159,987명
상영등급 파일:영등위_18세이상_초기.svg 청소년 관람불가
1. 개요2. 출연진3. 줄거리4. 수상5. 기타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박종화 원작 소설 '금삼의 피'를 영화화한 신상옥 감독의 1962년 작품이다. 2부작으로 동시에 촬영·제작되어 1부 '연산군'은 새해 첫날에, 2부 폭군 연산은 설날에 개봉했다. 1부는 '장한사모편(長恨思母篇)', 2부는 '복수·쾌거편(復讐·快擧篇)'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2. 출연진

3. 줄거리

성종( 김동원 扮)의 아들 연산군( 신영균 扮)은 어느 날 자신이 폐비 윤씨( 주증녀 扮)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임금으로 즉위한 후 그는 폐비 윤씨의 신원을 복원하고자 하나 인수대비( 전옥 扮)를 비롯한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성격이 급격하게 비뚤어진다. 그는 더 없이 거칠어지고 술과 여자에 빠져 끔찍한 행패를 부린다. 꿈에서 억울하게 죽은 생모 윤씨의 모습을 본 그의 마음은 더욱 혼란으로 가득 찬다. 그러던 중 외조모( 한은진 扮)를 통해 윤씨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윤씨의 피가 묻은 적삼을 받은 연산군은 당시 폐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피의 복수를 한다.

4. 수상

5. 기타

당대에 보기 힘든 해석으로 유명하다. 포인트는 연산군이 모든 잘못을 깨닫고 정치를 원상태로 돌리려고 하는데 다음 날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신상옥 본인은 《연산군》과 《 폭군 연산》을 흑역사로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연산군》은 신정 프로에 맞춰서 서둘러 제작하느라 제작 기간이 불과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고 《폭군 연산》 역시 흥행업자들의 독촉으로 서둘러 만드느라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북한에 있을 때 신상옥 감독은 서울에 있던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 《연산군》과 《폭군 연산》의 오리지널 네가를 소각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는 오리지널 네가를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신상옥 감독은 귀국한 후에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는 《연산군》과 《폭군 연산》의 오리지널 네가를 반출해 가서는 각각 14분, 54분씩 삭제 재편집을 해서 가져다 놓았다. 심지어 《폭군 연산》은 반출해 간 네가가 유일본이었던지라 《폭군 연산》의 사라진 54분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 시리즈에 나온 배우들중 생존하고 있는 사람은 신영균 단 한 명뿐이다.

6. 둘러보기

역대 연산군 영화
<rowcolor=#fff> 신상옥의 연산군 2부작 이혁수 임권택
연산군 (장한사모편)
(1962)
폭군 연산 (복수·쾌거편)
(1962)
연산군
(1987)
연산일기
(1988)



[1] 대종상의 전신 [2] 황윤헌( 남궁원 분)의 첩으로 미모가 아름다워 연산군이 빼앗아 가 총애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237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237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