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04:40:26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1)
Parrot Cries with its Body
파일: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포스터.jpg
감독 정진우
각본 김강윤, 김성화
기획 한상호, 유영무
촬영 손현채
조명 이민부
편집 김창순, 박덕열
음악 한상기
출연 황해, 정윤희, 최윤석, 김형자
상영극장 피카디리
개봉 일자 1981.10.24
관람 인원 169,381명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파일:external/file.koreafilm.or.kr/DSKT002093_01.jpg
1. 개요2. 등장 인물3. 줄거리4.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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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진우 감독의 영화로 여러 모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 비슷한 배경 구조에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여성이라는 주제도 유사하다. 역시 당대 청소년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2. 등장 인물

  • 최 영감( 황해) : 도로 공사 인부로 일하는 수련과 문영의 아버지. 월남전에 참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수련과 문영을 키우고 있다. 이 둘을 자식으로 키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둘이 남매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반대하고 있다.
  • 최수련( 정윤희) : 최 영감의 전우의 딸로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인이다. 문영과 사랑에 빠지게 되나 아버지의 반대로 갈등을 겪던 도중 의문의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 최문영( 최윤석) : 최 영감의 아들로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 후 낙향하여 아버지와 수련과 함께 살고 있다. 수련과의 금지된 사랑에 빠지던 중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련과의 사랑을 이어 나가고 있다.
  • 숙( 김형자) : 몸을 굴리며 살던 댄서 출신. 낙향하던 문영과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나 문영의 수련을 향한 사랑으로 그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3. 줄거리

홀아비 최 영감은 갓 태어난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를 데려다 기른다. 문영과 수련은 성장하면서 친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어쨌든 남매지간이라고 생각하는 최 영감은 이들을 갈라놓기 위해 문을 서울로 보낸다. 문영이 댄서 출신인 숙이라는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최 영감은 이번엔 수련을 타지로 내보낸다. 수련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가 철교 밑에서 누군가에게 성폭행당한 후 죽는다. 한편 문영은 숙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철교 밑에서 수련의 시체를 안고 우는 최 영감을 보고 수련의 시신을 빼앗아 안았다. 문영은 아버지에게 사실 그가 성불구자[1]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수련과 친남매 사이가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다고 아버지에게 폭로한다. 그리고 그는 계곡 깊이 빠져 수련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4. 이모저모


이 영화는 정윤희에게 두 번째로 상을 안겨준 영화가 되었고 이러한 수상 덕에 정윤희는 어느 정도 연기력이 없다는 뜻의 말뚝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2]

당시의 의암역(폐지)과 신남역이 촬영지로 쓰였다.

전세훈의 출세작 노노보이에 이 작품 제목의 패러디가 나온다. 당시 소년 챔프를 발간하던 대원미디어(현 대원씨아이)의 높으신 분이었던 황민호 이사[3]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장면인데, 더운 날씨로 땀을 줄줄 흘리는[4] 황 대표를 "황민호 온몸으로 울었다"라고 적어놓은 것. 당시 초등학생들이던 1980년대생들은 당연하지만 이게 개그인 줄도 몰랐고(...) 그나마 당시 고등학생~성인이 된 1970년대생들은 에로영화 패러디임을 알았다는 뒷얘기가 있다.

야한 장면은 굉장히 많이 나오나, 직접적인 유두 노출은 없다.


[1] 월남전 참전 중 총알이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기 때문이다. 사실 최영감에게 아내가 있었지만 혈육없는 두 아이를 키우는걸 강하게 반대 하여 결국 결별하였다. [2]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서울 억양을 잘 구사하고 있다. 서울말은 원래 서북 방언이랑 비슷했기 때문에 정윤희의 말이 이북스럽게 들리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3] 현재는 대원씨아이 대표.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사실상 대원동화 출판사업부의 실질적 수장이었다. [4] 당시는 에어컨이 현재만큼 보편화되어있지 않아서, 큰 빌딩에는 공조기나 개별 에어컨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 사무실은 선풍기를 썼다. 에어컨은 주로 극장 같은 대규모 시설 위주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지하철에도 냉난방 공조장치가 없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