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 (제주) |
1. 개요
飛揚島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법정리)/비양리(행정리)에 위치한 화산섬. 면적은 0.5km²이며 인구는 약 63가구, 200여 명이다. 인근 한림항이나 협재해수욕장, 금능해수욕장 등지에서 아주 잘 보인다.[1]
2. 소개
고려 시대인 1002년 화산 분출로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산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 네 개의 구멍이 뚫려 붉은 물이 솟다가 닷새만에 그치고, 그 물이 엉키어 모두 기왓돌이 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지질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와 같은 시기에 형성되었다고한다.중국에서 떠내려(혹은 날아)오던 중에 물질을 하던 해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멈췄다는 전설이 존재한다. 그래서 날 비 飛 / 날릴 양 揚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섬은 동그랗게 생긴 모양으로, 남쪽에 마을이 하나 위치하고 있다. 섬의 가운데에는 비양봉이 있는데, 등산로가 잘 갖춰져 있으며 꼭대기에 올라가면 등대가 있다. 섬 해안을 따라 도는 산책로가 있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여유롭게 경치 구경하고 사진 찍고 하면서 돌면 넉넉잡고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도로에 그늘이 될 만한 나무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양산이나 모자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섬의 동쪽에는 펄랑못이라고 하는 습지가 있는데 규모가 꽤 되며, 바닷물이 지하로 드나들기 때문에 물은 짠물이라고 한다. 펄랑못을 따라서 나무로 만들어놓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남쪽 마을에서 섬 북쪽 끄트머리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바닷물과 통한 수로가 너무 좁아 물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바다파래와 이끼가 썩어 냄새가 나면서 정화사업이 필요해 보인다.
한림항 도선 대합실(비양도 도항선 승강장)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으며, 여객선은 기본적으로는 하루에 세 번 다니지만 시간이 미묘하게 변동이 있을 때가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한림항이 아니라 한림항으로부터 북쪽으로 1.1km 정도 떨어진 곳에 한림항 도선 대합실이라고 따로 있고, 그곳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배를 탈 수 있다. 제주도민은 요금이 할인된다. 시간은 약 10분 정도로 금방 간다.
버스로 한림항 도선 대합실을 찾아가려면 한수리 정류장 또는 한림주유소 정류장, 한림천주교회 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걸어가면 된다.
비양나무라는 섬 특유의 나무가 자생한다.
3. 관광지
- 비양도 해안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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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봉
비양도 중앙에 있는 오름. 정상으로 가는 길에 대나무로 된 터널이 있고 정상부에는 하얀색 등대가 있다.
- 코끼리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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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랑못
비양도 동부에 있는 해수못. 바닷물이 지하를 통과하면서 생성되었다고 한다.
- 혼이토(애기 업은 돌)
4. 기타
- 일제가 패망할 무렵 어수선한 시국에 공직에 있던 김모 씨가 비양도 전체를 자신의 땅으로 등기해 뒀다가[2] 이후 비양도 주민들에게 지대를 요구했는데, 비양도 주민들이 비양도에 들어간 김모 씨를 억류해 극진히 대접하면서도 일절 섬 밖으로 나갈 배편을 없애서 결국 비양도 주민들이 김모 씨로부터 비양도 토지를 돌려받았다.
- 이 섬과는 제주도 정반대편에 있는 우도에도 이 섬과 같은 이름을 가진 부속도서가 있다. 크기는 이쪽이 훨씬 작으며 이 섬에는 작은 펜션 하나와 카페 하나, 공중화장실 하나만 달랑 있지만 그나마 우도와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어 반드시 배로 들어가야 하는 한림읍의 비양도보다는 접근성 면에서 어떻게 보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비양도 섬 주민은 배편이 무료이다.
-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는 비양도를 보려면 협재해수욕장 주변에서 찍은 부분을 봐야 하며 섬 내부는 지원하지 않는다. 카카오맵의 로드뷰, 네이버 지도의 거리뷰 역시 지원하지 않으며 네이버 지도의 항공뷰만 지원한다.
- 민요 서우젯소리 가사에 비양도가 언급된다.
-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초반 명장면이 모두 이 섬에서 나왔다. 드라마 OST중에 비양도의 하루라는 곡이 있는데 연주곡이지만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곡으로 볼 정도로 자주 흘러나왔다.
5. 관련 문서
[1]
이 비양도 덕분에
협재해수욕장과
금능해수욕장이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 중 하나가 되었다.
[2]
사실 옛날 땅부자들 중에는 그런 식으로 국공유지라든지 소유권이 분명하게 등기되지 않은 토지들을 공직에 있으면서 개인 명의로 등기해서 차지해버리는 일들이 잦았다. 지금처럼 전산으로 행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서행정과 기록이 수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