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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왕국 ព្រះរាជាណាចក្រកម្ពុជា カンボジア王国 Kingdom of Kampuch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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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괴뢰국 | ||
국기 | 국장 | |
ជាតិ សាសនា ព្រះមហាក្សត្រ 국가, 종교,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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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1945년 3월 9일 ~ 1945년 10월 16일 | ||
수립 이전 | 해체 이후 |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
역사 | ||
일본 제국의
비시 프랑스 총독부 타도
1945년
3월 9일 왕국 수립 1945년 3월 13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1945년 8월 15일 프랑스 총독부 복귀 1945년 10월 16일 |
||
수도 | 프놈펜 | |
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 |
국왕 | 노로돔 시아누크 | |
내각총리대신 | 선응옥타인 | |
언어 | 크메르어, 일본어 | |
통화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피에스터 일본 군정청 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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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노로돔 시아누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945년 3월부터 8월까지 캄보디아 지역의 존재했던 일본 제국의 괴뢰국 캄보디아 왕국에 대해 다룬다.2. 배경
186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 보호령으로 식민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왕국으로서 살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캄보디아의 자원이 너무 빈약한 데 크게 실망해 캄보디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고, 교육기관도 제대로 세우지 않아[1] 캄보디아는 국민의 95%가 가난한 농민으로 남은 뒤떨어진 나라로 남고 말았다. 민족주의운동도 상당히 뒤늦어서 1938년에야 첫 크메르어 신문이 나오는 등 프랑스는 1940년까지 큰 저항을 받지 않고 캄보디아를 지배했다.3. 역사
1940년대 들어 캄보디아에도 뒤늦게 지식인계급이 형성되고 민족주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이 배출되는 기관은 주로 불교기관에서 가르치는 사찰학교, 수도 프놈펜에 설립된 전국 유일의 프랑스어 고등학교, 그리고 나가라바트[2]가 중심이 되었다.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1941년 8월 일본은 프랑스[3]와 협정을 맺어 프랑스의 지배권을 인정하였다.[4] 여전히 지배중이던 프랑스는 반프랑스 음모에 가담한 지식인들을 체포하고 나가라바트의 검열을 강화하더니 1942년에서는 아예 폐간까지 시켜버린다. 결국 민족주의운동을 이끌던 지도자 선응옥타인은 일본 망명길에 오르고 캄보디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지고 이와 반대로 일본은 부러움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자 프랑스는 친프랑스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려고 문화적 자주독립이라는 명목 하에 크메르 문자를 로마 알파벳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그러나 크메르 문자는 쯔놈과 달리 표음문자인데다가 참 문자 다음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문자였기 때문에 도리어 캄보디아인들의 반감을 사서 캄보디아의 민족주의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었고, 일본은 어부지리로 캄보디아인들의 지지를 받게된다.
결국 1945년 3월 일본은 끝내 캄보디아를 장악하는데 성공하였고, 프랑스인들을 억류시켰다. 그리고 일본은 캄보디아의 민족주의를 선동하였고[5] 꼭두각시 왕이었던 노로돔 시아누크에게 독립을 종용하였다. 그리하여 당월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주둔한 일본군의 조종을 받는 일본의 속국이나 다를 바 없었기에 괴뢰국가로 본다.[6]
1945년 8월 일본 제국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이들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였던 캄보디아 왕국도 멸망하였다. 이후 캄보디아 지역은 다시 프랑스령으로 복귀한다.
4. 출처
- 가로세로 세계사 2권: 동남아시아, 동방의 천년 문명이 열린다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6. p118~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