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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어: Hohenzollernsche Lande
1. 개요
호엔촐레른 지방 지도독일 남부 슈바벤에 있던 지방으로 현재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속한다. 1939년 당시 면적은 1,142㎢, 인구는 73,844명이었다.
독일을 통일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발상지로 유명하며, 이 가문의 발상지는 슈바벤 알프스의 855m 산 위에 세워진 호엔촐레른 성(Burg Hohenzollern)으로 지금도 호엔촐레른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다.
2. 역사
본래 신성 로마 제국의 촐레른 백작령(Grafen von Zollern)으로 1061년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며, 시조는 촐레른 백작 부르크하르트 1세(1025?~1061)였다. 프리드리히 3세 백작(1139~1200)은 하인리히 사자공에 맞선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황제와 동맹하는 한편, 1185년 뉘른베르크 성주의 딸인 조피와의 결혼으로 1192년에 하인리히 6세로부터 뉘른베르크 성주 작위를 인정받았다. 프리드리히는 장남 콘라트에게 뉘른베르크 성주를, 차남 프리드리히 4세에게 촐레른 백작령을 물려주었는데[1] 콘라트의 후손은 프랑켄 계통으로 불리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거쳐 프로이센 왕실이 되었고, 프리드리히 4세의 후손은 호엔촐레른 지방을 다스린 슈바벤 계통이 되었다. 이 때의 분할과 함께 촐레른 백작령은 1218년 호엔촐레른 백작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이후 슈바벤 계통은 계속 호엔촐레른 백작령을 다스리다가 카를 1세(Karl I. von Hohenzollern, 1516~1576)의 사후 호엔촐레른헤힝겐과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으로 분할 상속되었으며, 두 계통 모두 1623년에 공작(Fürst)으로 승격되었다. 1850년 두 후국은 같은 집안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이 지역의 통치권을 넘겼고, 1869년 호엔촐레른헤힝겐 계통은 단절되었다.[2] 호엔촐레른 지방은 이후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주(Hohenzollernsche Lande:주도 지크마링겐)로 편성되어 1946년까지 이어지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 합병되었다.
3. 호엔촐레른의 노래
호엔촐레른 지방의 애향가(愛鄕歌) 'Hohenzollernlied'. 노래는 " 뷔르템베르크와 바덴, 바이에른과 아름다운 스위스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 산 하나 높이 솟아 있으니, 그 이름 호엔촐레른이라 하네..."[3] 로 시작한다.
[1]
본래 프리드리히 4세가 뉘른베르크 성주와 촐레른 백작령을 둘 다 물려받았다가 1218년에 조정하였다.
[2]
아들이 둘 있었지만, 헤힝겐가의 마지막 수장인 콘스탄틴이 귀천상혼으로 낳은 탓에, 이들은 헤힝겐가의 수장을 칭할 수 없었고, 로텐부르크 백작(Graf von Rothenburg)만 칭할 수 있었다.
[3]
Nicht weit von Württemberg und Baden, von Bayern und der schönen Schweiz, da ragt ein Berg so hoch erhaben, den man den Hohenzollern heiß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