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농구 리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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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명칭 | ||
프로 | 1군 | NBA | ||
동부 | 애틀랜틱 / 센트럴 / 사우스이스트 | |||
서부 | 노스웨스트 / 퍼시픽 / 사우스웨스트 | |||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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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 NBA G 리그 | |||
동부 | 애틀랜틱 / 센트럴 / 사우스이스트 | |||
서부 | 미드웨스트 / 사우스웨스트 / 퍼시픽 | |||
서머 리그 |
라스베이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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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올스타전 |
NBA 올스타전 /
NBA G 리그 올스타전 /
NBA G 리그 인터내셔널 챌린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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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
NBA 파이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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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년 기념 | NBA 25주년 팀 / NBA 35주년 팀 / NBA 역사상 위대한 50인 선수 / NBA 75주년 팀 | |||
기타행사 |
NBA 드래프트 /
글로벌 게임 /
아프리카 게임 /
네이스미스 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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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 | WNBA | |||
컨퍼런스 | 동부/ 서부 | |||
올스타전 | WNBA 올스타전 | |||
수상 목록 | WNBA 수상 목록 | |||
결승전 | WNBA 파이널 | |||
3x3 리그 | BIG 3 | |||
독립 리그 | IBA / NBA D리그 / PBL | |||
대학 | NCAA Division I / NCAA Division II / NCAA Division III | |||
고교 | Division I / Division II / Division III | |||
유소년 | 리틀 농구 | |||
폐지 |
ABA (1967~1976) /
BAA (1946~1949) /
NBL (1937~1949) /
JBA (2018) * BAA는 NBL을 1949년에 합병한 오늘날 NBA의 전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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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 |||
미식축구 | 야구 | 농구 | 아이스하키 |
NFL | MLB | NBA | NHL |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전미 농구 협회 |
|
<colbgcolor=#17408C><colcolor=#FFFFFF> 종목 | 농구 |
설립 | 1946년 6월 6일 ([age(1946-06-06)]주년) |
리그 창설 | 1946- 1947 시즌[1] |
참가 국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29개 구단)|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1개 구단) |
사무국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커미셔너 | 아담 실버 (2014~ ) |
하위 리그 | NBA G 리그 |
최근 우승 구단 | 보스턴 셀틱스 ( 2023-2024 시즌) |
최다 우승 구단 | 보스턴 셀틱스 (18회) |
링크 |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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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계 | SPO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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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BA는 미국과 캐나다의 30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 미국 프로 농구 협회이다. 전 세계 최고의 프로 농구 리그이자 모든 농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이다. 타 종목의 프로 리그가 어느 정도 대등하게 대결하고 교류하는 반면 NBA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1강의 농구 프로리그다.[2] 이 협회는 아시아(홍콩 및 필리핀), 아프리카, 중국, 캐나다 등지에 총 7개의 현지 사무국을 두고 있다.2개 컨퍼런스 6개 디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 문단 참조.
2. 특징
2.1. 규칙
NBA의 규칙은 국제농구연맹( FIBA)이 제정한 농구 규칙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3점슛 라인이 50cm 더 멀다. 현재 NBA의 3점슛 라인은 7.239m으로,
FIBA가 3점 슛을 도입한 1984년부터 2010년까지 FIBA의 규정보다 1m나 더 멀었다. 그러나 FIBA가 2010년 여러 룰 개정을 하면서 3점슛 라인을 50cm 늘려 6.75m가 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는 50cm 차이가 난다. 한편 94-95 시즌부터 96-97 시즌, 이 세 시즌 동안 NBA에서 3점슛 라인을 53cm 줄인 6.7m로 유지한 적이 있다. 그래서 당시 뛰었던 선수들 중에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나 3점 슛의 대가
레지 밀러 등은 짧아진 3점 슛 라인의 덕택을 많이 봤다.
-
FIBA 기준 3초 제한구역이[3] 본래 사다리꼴이었으나, 2010년 위의 룰 개정 이후로
NBA처럼 직사각형으로 바뀌었다.
- 게임 시간이 쿼터당 12분이다. 즉, 한 게임에 도합 48분 경기를 한다. 이 때문에 타임아웃도 1개 더 많고, 파울 아웃도 5반칙이 아니라 6반칙이다. 또한 팀 파울 기준도 4개가 아닌 5개다. 정규 시간 내에 승무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에 돌입 하는데 연장 전은 6분이다.
- 벤치에 총 13명의 선수가 앉을 수 있다.[5]
- 공격권을 얻은 선수들은 파울을 얼마나 한들 팀 파울을 쌓을 수 없다. FIBA는 오펜스 파울도 팀 파울이라 한 쿼터에 오펜스 파울만 4개 범해도 팀 파울에 들어가지만[6] NBA는 팀 파울 개수가 0에 머문다.
- 보편적으로 홈 유니폼은 흰색, 어웨이는 어두운 색의 유니폼을 입는다.[7] 흰색 유니폼은 다 비슷비슷하고 밋밋한 반면 원정 유니폼은 팀의 고유 색이라 더 강렬한 디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홈에서 어두운 색을 입게 하자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단적으로 마이클 조던의 경우 붉은 색 원정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기억된다.[8],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이런 홈, 어웨이 유니폼의 구분이 어렵고[9], 팀별로 워낙 다양한 색상의 유니폼이 있다 보니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유니폼 색만으로는 홈, 어웨이를 구분하기 힘든 수준. 가끔은 홈 팀이 어두운 색[10], 원정 팀이 밝은 색을 입을 때도 있다. 특히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홈 팀이 검정색 유니폼을 입는다.
-
2017-18 시즌을 앞두고는
아디다스에서
나이키로 유니폼 스폰서가 바뀌면서 역대 최초로 유니폼 오른쪽 어깨에 스폰서 로고가 새겨지게 되었고 왼쪽 어깨에는 규격 내 범위에서 광고 패치가 부착된다.[11] 또한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기존의 홈 대체)- 아이콘(Icon-기존의 원정 대체) 스테이트먼트(Statement - 기존의 얼트 대체) - 시티(City) 에디션으로 유니폼을 재정의 및 분류해서 기존의 홈, 원정 구분이 아예 사라졌다. 보통 아이콘 에디션이 해당 팀을 대표하는 컬러기 때문에 한국 축구로 치면 주 유니폼(아이콘 에디션), 제 X[12] 보조 유니폼으로 옮기는 게 그나마 정확하다. 홈 팀이 사전에 원하는 유니폼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이후 원정 팀이 입을 유니폼을 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작업은 시즌 전에 모두 이루어지고 시즌 도중에는 바꿀 수 없다. https://lockervision.nba.com/ 에서 경기 별로 지정된 유니폼을 확인할 수 있다.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최소 횟수가 있는데 어소시에이션과 아이콘 에디션을 각각 10회, 스테이트먼트 에디션을 6회, 시티 에디션을 3회 이상 선택해야 하며 그 외에는 자유이다. 다만 가능한 한 유니폼을 많이 노출시켜야 판매가 늘기 때문에 나름대로 팀마다 각 에디션을 균형 있게 배분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기나 판매량은 예전부터 팀 컬러가 베이스인 원정 유니폼이 압도적이었기에 상당수의 팀들이 홈 경기에서 아이콘 에디션을 착용하는 빈도가 높으며, 특히
시카고 불스의 경우 거의 아이콘 에디션을 거의 홈 유니폼처럼 쓰고 있다.
이 외에도 역사가 오래된 팀들을 위한 클래식 에디션이나 전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팀들에만 제공되는 언드(Earned) 에디션이 제공되며, 시티 에디션과 더불어 매년 디자인이 바뀌는 유니폼이라 리그와 나이키의 수익성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
NBA의 인기로 인해 표준 농구 규칙이 NBA 기준으로 바뀐 게 많다. 이전에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1st half, 2nd half로 진행되었으나 4쿼터로 운영되고 매우 익숙한 3점슛 라인도 1979-80 시즌부터 도입하여 활용하던 것을[13] 1984 LA 올림픽부터 FIBA에서 처음 도입했다.
2001년까지는 지역 방어가 금지되어 협력 수비가 일리걸 디펜스로 처리돼 불가능했다. 그랬다가 2001-02시즌 이후로 지역 방어가 허용되면서 일리걸 디펜스 룰도 폐지되고 협력 수비가 가능해지게 되면서 2000년대가 빅맨들의 시대에서 스윙맨의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2.2. 살인적인 일정
NBA는 경기일정이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정규 시즌만 25주간 82경기를 치른다. 같은 디비전 팀 간 4경기(16경기)+같은 컨퍼런스 다른 디비전 팀 간 3~4경기(36경기)+타 컨퍼런스 팀 간 2경기(30경기). KBL은 NBA 정규 리그가 종료할 때쯤 챔피언 결정전까지 거의 모든 일정이 끝난다. KBL도 NBA 다음가는 54경기로(10팀이 6번씩 맞대결) 정규 리그 경기 수가 많은 리그인 걸 감안하면 그만큼 NBA의 일정은 빡세다. 평균적으로 1주일에 3, 4경기꼴로 경기를 치르며 그 넓은 땅에서 백투백(2일 연속 경기) 일정도 빈번한데다 정규 경기 시간도 8분 더 길다.[14] 게다가 크리스마스에도 무조건 경기를 한다.심지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전세/전용기도 없이 일반인들과 같이 수속을 밟고, 신인들 놀리느라 잡일 잠깐 시키는 지금과 달리 트레이너와 신인들이 일손이 부족해 잡일을 해야 했다. 거기에 팀이 많다 보니 백투백 경기로 2일 연속 비행기 타고 이동해서 다른 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게 미국 동-서부를 가르는 장거리라도 얄짤 없다. 거기에 플레이오프가 1라운드부터 7전 4선승 제도로 바뀌고 플레이 인 토너먼트까지 도입되면서 파이널까지 갈 경우 최대 113경기, 최소 98경기를 소화한다.[15]
NHL과 NBA 팀이 같은 도시를 연고지로 쓰는 경우, 거의 대부분 경기장을 같이 쓰기 때문에 시즌 도중에는 매일 마루 조각을 깔았다가 치웠다가를 반복한다. NHL도 똑같이 82경기를 치르긴 하지만 시즌 기간이 2주 정도 더 길기에 조금의 여유가 더 있다. 그리고 스타급 플레이어라고 해도 한 경기에 20분 이상 뛰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유럽의 주요 아이스하키 리그들의 경우 6개월에 56경기를 치르는 일정으로 NHL이 다른 아이스하키 리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경기를 치른다고 보기는 힘들다.
NBA 팀 중 역대 가장 많은 경기 수를 치른 팀은 2008년 보스턴 셀틱스로 플레이오프에서 7차전-7차전-6차전-6차전까지 가는 강행군 끝에 무려 108경기나 치르고 우승했다. 당연하지만 우승팀 중에서도 최다 경기.[16] 반대로 현 16강 플레이오프로 정착한 이후(과거엔 4팀만 가던 때도 있었으니 적절한 비교가 아니다) 가장 적은 경기 수로 우승한 팀은 플레이오프 통틀어 한 경기 패배한 2001년 LA 레이커스. 당시엔 1라운드가 5전 3승제라 15승 1패로 통합 98경기 치르고 우승했다. 1라운드가 7전 4승제로 바뀐 2003 시즌 이후 최소 경기로 우승한 팀은 2017년 워리어스로 플레이오프에 단 1패만 하며 16승 1패, 통합 99경기 치르고 우승했다.
NBA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벌이는 리그 중 하나가 한국의 KBL이다. KBL은 22주 동안 54경기. 10개의 팀이 한 팀당 6전로 진행된다. 평균적으로 1주일에 3경기 정도 소화하는데 정규 리그 경기 수부터 30경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데다가, 한국이 워낙 땅이 좁아 원정 거리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17] 세계 대부분의 농구 리그는 1주에 한 경기씩 해서 30경기 안팎을 치른다. 중국 농구 협회는 20개 팀이 52경기. 유럽 상위 리그의 경우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34경기를 소화한다. 클럽 대항전에 나가는 유럽 상위권 팀은 유로리그와 자국 리그 다 합쳐서 8개월간 60~70경기 정도 소화한다. 경기 시간까지 감안하여 세계 평균이랑 따졌을 경우 NBA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한다.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 단순히 경기 수만 많은 게 아니라 경기 시간 자체도 48분으로 국제 규격이나 다른 리그에 비해 긴 데다가 페이스도 빠르다. 또한 선수들의 체격 조건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거구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데서 오는 체력 소모가 더 크다. 김승현의 경우에 전성기 시절 시카고 서머 캠프에 잠깐 참여했다가 체력이 도저히 안 돼서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다. 실제로 대학 시절 30경기 안팎을 뛰다가 NBA에서 82경기를 처음 치르게 되는 신인 선수들은 초반에 아무리 잘하던 선수들도 중반쯤 되면 체력의 한계를 나타나며 부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걸 NBA에서는 보통 ''Rookie Wall"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NBA에서도 경기 스케줄 조정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그렉 포포비치 같은 몇몇 감독들은 이 지옥 같은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주축 선수에게 휴식 시간을 더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이 설사 NBA 사무국과 NBA 방송사의 심기를 거스르고, 벌금을 먹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이다.
이런 빡빡한 일정이 지켜지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예를 들어 1998-99 시즌은 직장 폐쇄로 50경기로 단축되었다. 2011-12 시즌도 직장 폐쇄로 66경기만 치러졌다.[18][19] 2019-20 시즌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한때 리그가 중단되었으며, 결국 이로 인해 NBA 역사에 또 하나의 시즌 단축 사례가 추가되었다. 이후 잔여시즌과 플레이오프가 격리공간인 NBA버블에서 치러졌으며, 각자 NBA팀들이 서로 다른 수의 정규시즌 경기를 치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지옥의 일정으로 인해 내외부적으로 불만이 제기되자 2017-18 시즌에는 개막을 앞당기고 백투백 경기를 종전보다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현재 언론, 전문가들을 통해 얘기되고 있는 개선책은 크게 두 방향이다.
1. 경기 수 자체를 줄이기
2. 18 시즌에 시범적으로 한 정책을 확대해서 정규 시즌을 연장하고 시범 경기를 줄여서 82경기를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치르기
다만 현실적으로 1은 불가능에 가까운 게 경기 수가 줄어들면 입장료 수익+TV중계료+광고료 등 관련 수익이 줄어든다. 이러면 구단주들이 버는 돈이 줄어듬과 동시에 BRI(Basketball related income: 농구 관련 수익)의 특정 %로 정해진 샐러리 캡이 줄어들고, 샐러리 캡의 일정 %로 정해지는 최대 액수 연봉도 줄어든다. 즉, 관련된 모두가 수익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돈을 벌만큼 번 슈퍼스타들을 제외하곤 이 안에 대해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크리스 웨버 등 은퇴한 선수들도 "82경기는 전통"이기 때문에 경기 수 단축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 또한 이렇게 되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달성된 성과들이 저평가받을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현재의 경우 룰과 트렌드 변경으로 과거보다 덜 피지컬해진 반면, 기술적으로는 큰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2010년대와 90년대를 비교하며 갑론을박이 있다. 그런데 만약 정규 시즌이 70경기로 줄어들면 당연히 컨디션 조절이나 몸 관리 측면에서 엄청나게 유리해지고, 이 상황에서 낸 기록을 과거 82경기/38분씩 뛰면서 내던 마이클 조던 같은 선수의 기록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 것이다. 그리고 시대적 차이로 특정 시대를 폄훼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게 맞지만, 이 경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커진다. 82경기를 뛰는 것보다 70경기를 뛰는 게 훨씬 덜 피곤하고, 덜 피곤하면 플레이오프에서 뛸 때 좋은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기 때문. 실질적으로 계속해서 2번의 방향을 확대하는 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2. 18 시즌에 시범적으로 한 정책을 확대해서 정규 시즌을 연장하고 시범 경기를 줄여서 82경기를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치르기
2.3. 샐러리 캡
자세한 내용은 샐러리 캡/NBA 문서 참고하십시오.2.4. 드래프트
자세한 내용은 NBA 드래프트 문서 참고하십시오.3. 인기
3.1. 미국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농구와 타 프로 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뒤떨어졌으나, 1980년대 리그의 분위기를 양분한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라이벌 구도로 시작해서 1990년대 마이클 조던이라는 아이콘의 등장으로 압도적인 전성기를 누렸다.[20] 그러다 조던의 은퇴 이후 2000년대 초에는 한동안 상대적 암흑기를 거쳤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 코비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인기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2010년대 들어 스몰라인업의 부상과 특히 중후반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의 대결 구도가 이어지면서 2020년대까지 이어지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NBA의 인기는 90년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스포츠 사이트 ESPN이나 사용자가 가장 많은 야후! 스포츠 등에서도 NBA는 NFL 바로 뒤에 위치한다. 특히 MLB 인기가 하락세이기 때문에 더더욱 대비 효과가 크고, MLB 팬덤에서도 자체적으로 'MLB 위기설'을 꺼낼 때 자주 등판시키는 리그가 NBA이다. 2020년대 초반 기준 NBA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미국 4대 스포츠 중 압도적으로 최고이며[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영업이익은 이미 MLB를 뛰어넘은지 오래다. 2022년 기준 MLB, NBA 매출은 MLB가 경기수가 2배 이상 많음에도 108억 달러와 102억 달러로 엇비슷하나, 평균 구단 영업이익은 2150만 달러와 9080만 달러로 큰 차이를 보였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MLB에 밀렸는데 2010년대 이후 NBA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 다만 2024년 현재는 다시 MLB가 성장가도를 띄며 시청률과 매출 면에서 MLB보다 떨어졌다.
2019년 북미 4대 스포츠 사상 최초로 연봉 500억 원 시대를 열었다.[22] 다가올 시즌엔 연봉 500억 원 이상 선수만 5명( 스테판 커리, 러셀 웨스트브룩, 크리스 폴, 제임스 하든, 존 월)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스포츠 스타 중 NBA를 제외한 리그에서 광고 수입과 스폰서십 등 부가 수입을 제외한 순수 연봉이 500억 원을 넘는 선수는 축구의 리오넬 메시 하나뿐임을 고려하면 NBA 선수들의 몸값 상승세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2023년 기준 최고 연봉 선수는 약 632억원을 받는 스테판 커리, 2위는 약 578억원을 받는 르브론 제임스.[23] 평균 연봉이 8년 새 2배 가까이 올랐는데, 이는 NBA의 위상과 인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배경엔 느린 경기 전개로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받는 MLB와[24] 팬 층이 북미로 한정된 NFL에 비해 NBA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북미, 중국 시장은 물론 유럽 상당수 지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중계권, 광고, 브랜드 파트너십, 농구 용품 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NBA 리그의 엄청난 수익 창출은 각 팀이 운용할 수 있는 연봉 상한선을 늘리고 전력을 보강해 리그 인기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기사
스타 플레이어의 파워도 압도적이다. 당장 야구나 축구 같은 경우는 하부 리그나 타국의 군소 리그에서 최상위 리그로 데뷔한 선수가 깜짝 슈퍼스타가 되거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낼 가능성이 있지만, NBA는 이런 실력 격차가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넘사벽 수준이라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말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라는 점이고, NBA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농구선수로서 아득한 신계 포지션이라는 말이 된다. 이렇게 스타 플레이어의 개인 파워가 다른 주요 인기 협동 구기 종목들에 비해 크다보니 SNS 등에서도 인기가 많다. NBA에서 슈퍼스타라 불리는 선수들은 대부분 팔로워가 1000만명이 넘고 그중엔 은퇴선수들도 꽤 있다. 특히 2020년대 기준 가장 슈퍼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는 팔로워가 1억명이 훨씬 넘어 세계 운동선수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25] 미국인이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 30위 안에 농구선수만 절반이 넘게 포진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스타로 농구의 신이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을 비롯,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이 최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 또 2020년대 초반 시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는 마이크 트라웃의 인지도는 Q Scores(Q rating)를 인용한 2018년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이 살짝 넘게 아는 수준인데, 이는 NBA 선수로 치면 스타 선수가 아닌 케니스 페리드와 동급 정도라고 한다.[26]
전국 중계권 계약에서도 NBA는 MLB보다 2배나 더 높은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 ESPN과 TNT 등은 2024~25 시즌까지 TV 중계권을 240억 달러(약 25조 5000억 원)에 구매했다. 이전 계약보다 약 30억 달러 증가한 액수다. 또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했던 2016년 월드 시리즈를 제외한 5년간의 NBA 파이널 시청률이 월드 시리즈의 시청률보다 높았다.
2017-2018 시즌에는 NBA 사상 처음으로 관중 2200만 명을 돌파했다. 2016~17 시즌(2199만 7412명)보다 127,147명 늘었고, 좌석 점유율은 95%를 넘겼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17,987명이며, 가장 많은 평균 관중을 기록한 구단은 시카고 불스로 20,776명이다. 미국 스포츠 매체 스포팅 뉴스가 "NBA는 현재 황금기(golden age)를 보내고 있다"라고 전할 정도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이 활약했던 1980, 90년대에도 NBA는 높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당시 경기당 평균 관중은 12,000명 안팎이었다.
당시에는 팀별로 편차가 심했다. 마이클 조던은 불스 시절 홈에서 610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으며(당연히 은퇴와 함께 끊겼다), 원정에서도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면서 98년 은퇴가 예상될 때 조지아 돔에서 열린 애틀랜타와의 원정 경기서 6만 명이 넘는 관중을 동원, 당시 실내 스포츠 관중 동원 기록을 세웠다.[27] 그러나 인기 없는 팀들은 경기장을 절반도 못 채우는 경우도 경우도 있었다. 당장 시카고만 해도 조던 입단 전에 2만 명 이상 들어가는 시카고 스타디움에 6,7천 명밖에 못 모았으며 조던 입단 이후에도 루키 시즌엔 경기장이 절반 가까이 비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관중 동원력이 150% 이상 는 것 자체가 센세이셔널한 것. 지금을 생각하면 안 된다. 80년대엔 NBA 자체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80 파이널이 녹화 중계되고 현재는 스폰서 받는 드래프트 생중계를 오히려 리그가 방송사에 돈을 주고 모셔오던 시절이다.
80년대 후반에 창단한 팀들 중 농구 인기가 많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 호네츠는 인기가 많았지만, 아이스하키와 야구의 고장인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케빈 가넷 입단 전까지 암울했다. 이런 팀들은 인기 스타들이 올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12,000명은 80년대까지 포함한 수치로 보이는데, 90년대에는 위에 언급한 그리즐리스 정도를 제외하면 경기장이 절반씩 비고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현재는 NBA 자체가 인기가 전체적으로 오르고, 가장 최근에 창단해 역사와 고정 팬 층이 가장 미약한 샬럿 호네츠조차 10년이 넘어가 안정기이며, 팀 가치가 가장 낮은 호네츠조차 10억 달러를 넘길 정도로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흥행이 높다.
특히 다른 종목과 비교해 젊은 시청층 및 관중이 NBA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7월 미국의 스포츠 비지니스 관련 매체인 스트리트 앤드 스미스 스포츠 비즈니스 저널이 24개 스포츠 리그 및 이벤트의 TV 시청자 평균 연령을 조사했다. NBA는 평균 42세로, MLS(40세) 다음으로 젊었다. NHL이 49세, NFL이 50세, MLB는 57세였다.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SNS에서도 NBA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NBA 사무국은 "소셜 미디어 활동량이 8억 800만건, 동영상 뷰는 110억 건을 기록했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도 NFL,MLB,NHL을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수치가 높다. 또 NBA의 유튜브 채널은 전 세계 프로 스포츠 리그 채널 최초로 1000만 구독자를 돌파한 채널이다. 2018-2019 시즌에도 NBA는 또 760경기가 매진되면서 5년 연속으로 총 매출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2년 연속 경기장의 95% 이상이 매진을 달성했다.
2018년 미국 갤럽이 조사해 발표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 순위에서 농구는 11%를 얻어 9%에 그친 야구를 제치고 미식축구(3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20년 4월 포브스 구단 가치에서도 NBA 구단 평균 가치는 21억 2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4%가 오르며 최초로 20억 달러를 돌파했다.[28][29] NBA는 지난 10년간 평균 구단 가치가 6배나 상승했다.[30] 원인이라면 슈퍼스타들이 리그의 인기를 이끌며 그로 인해 유입되는 젊은 팬과 글로벌 팬들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북미 기준 35세 이하 선호도에서는 NBA 41%로 NFL 38%를 넘었으며, 18세 이하에서는 NBA 57%로 NFL 13%, MLB 4%를 압도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NBA는 일부 경제 잡지의 혁신 기업 순위권에 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실제 젊은 층 유입을 노리고 많은 경영 전략을 짜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상기한 이유 등으로 당분간 NBA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옥의 티라면 르브론과 커리 다음 세대의 스타들이 아직 성장 중이거나, 유럽권 선수들이라서 이들의 은퇴 후엔 어느정도 침체기가 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3.2. 해외
북미 프로 스포츠 리그 중 가장 세계화가 잘 된 리그다. MLB의 해외 인기는 야구가 보급된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고[31], NFL은 미국 고유의 종목인 데다 장비까지 많이 필요해 미국 외에서는 거의 수요가 없고, NHL은 계절종목이라는 한계로 인해 체코나 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북방 지역 나라에서 주로 인기를 끌 뿐이다. 세계적으로 농구는 북미에서 만든 구기 종목[32] 중에선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33] 프로농구리그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선 자국리그 못지 않게 NBA도 매니아층이 있는 경우가 많다.NBA는 오랜기간 글로벌화를 위해 선수 발굴부터 마케팅까지 다각도로 힘을 써왔고, 덕분에 글로벌 인재들이 만들어내는 경기와 콘텐츠로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런 전략 덕에 이미 1990년대부터 해외 선수들의 엄청난 활약상이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특히 2007년 주요 시상 부문에서는 독일의 디르크 노비츠키가 MVP, 프랑스의 토니 파커가 파이널 MVP에 선정됐고, 브라질의 레안드로 바르보사가 식스맨상을 수상하면서 주요 시상 부문을 비미국 국적 선수들이 미국 국적 선수들과 거의 절반씩 나뉘어서 수상하였다. 2019년 NBA 시상식에서는 그리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 MVP에 선정됐고, 슬로베니아의 루카 돈치치가 신인상, 프랑스의 루디 고베어가 올해의 수비수상, 카메룬의 파스칼 시아캄이 기량발전상을 수상하여 주요 시상 부문의 수상자들 대부분이 비미국 국적이었다.
2021년 주요 시상 부문에서도 세르비아의 니콜라 요키치가 MVP, 그리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파이널 MVP에 선정됐고, 프랑스의 루디 고베어가 올해의 수비수상, 필리핀의 조던 클락슨이 식스맨상을 수상하면서 주요 시상 부문 과반수 이상을 비미국 국적 선수들이 수상하였고, 2023년 주요 시상 부문에서도 카메룬의 조엘 엠비드가 MVP, 세르비아의 니콜라 요키치가 파이널 MVP에 선정됐고, 핀란드의 라우리 마카넨이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면서 주요 시상 부문을 비미국 국적 선수들이 미국 국적 선수들과 거의 절반씩 나뉘어서 수상하였다.
이미 1990년대를 기점으로 각종 NBA 시상 목록에서 주요 시상 부분인 NBA MVP[34], NBA 파이널 MVP[35], 신인왕[36], 올해의 수비수상[37], 올해의 식스맨상[38], 기량발전상[39] 모두 비미국인 선수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NBA는 아프리카에서도 인기가 많다. 앙골라나 케냐, 탄자니아, 나미비아 같은 경제적으로는 다소 넉넉하다고 볼 수 없는 나라에까지 NBA에서 자주 구단들을 보내 친선경기를 가지는데[40] 현지의 반응은 아주 뜨겁다. 축구 인기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프리카에서도 농구 인기는 좋다. 케냐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농구를 하고 싶었는데, 어찌 림을 구해서 대충 나무로 골대를 만들어 집 근처에 뒀더니만 현지인들이 몰려와 덩크 슛을 시도하기도 하며, 나중에는 그 곳이 농구 경기장이 되어버린 일화가 있다. 즉, 인프라가 부족해 그렇지 공과 골대만 있으면 바로 농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있다는 소리.
이런 인기에 NBA는 2019년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한다고 밝혔다. NBA가 국제농구연맹(FIBA)과 손을 잡고 아프리카 12개국을 대표하는 프로 팀이 참가하는 농구 리그를 만든다고 전했다. 이 리그의 명칭은 바스켓볼 아프리카 리그(BAL)다. BAL 참가가 결정된 나라는 앙골라와 케냐, 모로코, 나이지리아,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르완다, 이집트, 모잠비크, 알제리, 마다가스카르 등 30개 이상 나라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되었다가 2021년 르완다에서 1회 대회가 열려 37개 나라에서 37개 구단이 조별 리그 및 리그 랭킹으로 모두 12개 구단이 본선에 참여했고, 이집트 자말렉 SC가 우승했다. 여담으로 한국 리그에서 뛰면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바 있던 크리스 다니엘스도 나이지리아 구단인 리버스 후퍼스 소속으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
중남미나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도 자주 해외 친선 경기를 가진다. 스페인이나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터키나 러시아와 유라시아권 및 아랍에서도 자주 친선 경기를 하러 갈 정도. 유럽 몇몇 국가에서 농구는 축구 다음가는 넘버 2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남미도 마찬가지이다. 필리핀도 농구 인기가 엄청나서 서민들 기준 보통 월급 1/3는 내야지 볼 수 있는 NBA 친선 경기도 했다 하면 매진이 된다. 필리핀은 미국, 중국과 더불어 공식 NBA 스토어가 있는 세 나라 중 한 나라이다.
인도에서도 인기가 늘어나고 있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는 인도의 잠재적인 거대한 시장을 알아차리고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기사. 또 인도에서 인도의 농구 유망주들을 뽑는 NBA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선발된 24명의 유망주 선수들을 델리 NCR에서 선수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의 농구 스타들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사.
NBA팀이 엄연히 있으니 해외라고 보긴 애매한 점도 있지만, 어쨌든 캐나다에서도 2018-2019 시즌 토론토 랩터스 돌풍 등으로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2019년 6월 11일 열린 2018-19 NBA 파이널 5차전은 캐나다에서만 1,340만 명이 봤다. 특히 5차전 막판 동시 시청자 숫자는 850만 명이었다. 파이널 5차전은 역대 NBA 경기 중 가장 많은 캐나다 사람이 시청한 경기로 기록됐다. 참고로 당시 기준 캐나다의 인구는 약 3,700만 명. 파이널 5차전을 캐나다 사람 3분의 1 이상이 시청한 셈이다.
이런 해외에서의 NBA 인기에 MLB와 NFL도 깜짝 놀랐는지, 자기들도 미국에만 안주하지 말고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특히 해외 인기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인물이 MLB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 허나 맨프레드가 세계화를 외치고 다니면서 WBC 흥행화 등 노력을 보인거 대비 현실은 제자리 걸음 중인데, 이는 NBA와 다르게 MLB, NFL이 가지는 태생적 걸림돌도 제법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장비이다. 농구와 축구같이 전 세계적으로 즐기는 운동은 일단 장비가 공 + 골대면 끝이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축구장이 아닌 골목이나 공터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농구도 역시 공과 접지가 좋은 신발, 골대가 있는 간단한 코트만 있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시중에서 농구용 림을 구하기는 좀 힘들어도 나무로라도 백보드와 공이 들어갈 림 정도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야구는 공만으론 온전히 즐길 수가 없다. 상대적으로 농구공이나 축구공에 비해 고가인 배트, 글러브 등의 장비가 필요하다. 미식축구 역시 각종 장비가 없으면 할 수가 없다.[41]
또한 각 종목간 숙련도, 이해도 차이가 있다. 농구와 축구는 딱히 배우지 않아도 친구들끼리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야구나 미식축구는 이게 힘들다. 야구는 일단 기술적으로 일반인 수준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들 수준까지 실력을 향상하기가 어려운 스포츠고, 미식축구(태클풋볼)은 부상이 너무 흔하고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없으면 경기를 할 수 없다. 이는 프로의 장벽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NBA를 보면 고졸 선수가 드래프트 후 바로 주전으로 활약한 사례들이 제법 있고,[42] 축구 역시 10대 선수들이 프로 선수로 활약한다. 하지만 야구는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몰라도 MLB에서 고졸 선수가 바로 주전으로 활약하는 건 리그 역사에도 거의 없을 정도이다. 대학 출신 선수들도 대부분 마이너 리그에서 1~2년 담금질을 한 후 MLB 무대로 들어온다. NFL은 아예 고졸 선수는 드래프트 대상이 아니다. 즉 MLB나 NFL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야구와 미식축구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장비 지원과 더불어 인적 지원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두번째는 다국적 스타 플레이어의 차이이다. 축구의 경우 유럽 5대 빅리그인 프리미어 리그, 라리가, 세리에 A, 분데스리가, 리그 1에선 이미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활약 중이고, NBA도 2018~19 시즌 기준 외국인 선수 비율이 약 25%로 등록되고 있고 상기되어있듯 각종 시상을 하는 주전급들이 제법 많다. 허나 NFL은 2017년 기준 미국 외 출생 선수 비율이 약 2.5%로 사실상 미국인이 대부분이며, 그나마도 대부분 키커 포지션이며 가장 중요한 쿼터백은 북미 출신의 백인, 그 외의 포지션도 대부분 북미 선수들이 차지한다. MLB는 의외로 외국인 선수가 25~30%로 제법 많긴 하나, 그 외국국가의 종류가 10개를 넘지 않아서 시장성엔 생각보다 큰 도움이 안되며, 무엇보다 NBA와 비교하면 MLB의 외국선수들의 영향력이 크게 차이가 난다.
허나 농구는 선수 한 명 한 명이 경기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에 외국인 선수가 루디 고베어, 야니스 아데토쿤보, 니콜라 요키치, 조엘 엠비드, 파스칼 시아캄, 루카 돈치치, 빅터 웸반야마, 앤드류 위긴스 같은 팀의 에이스가 아니라도 선수 한 명 한 명이 받는 관심이 훨씬 큰 편이다. 그리고 영구 결번도 뉴저지 네츠의 드라젠 페트로비치, 피닉스 선즈의 스티브 내시, 댈러스 매버릭스의 디르크 노비츠키, 새크라멘토 킹스의 블라디 디박, 페자 스토야코비치,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파우 가솔,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마크 가솔, 덴버 너기츠와 애틀랜타 호크스의 디켐베 무톰보, 휴스턴 로키츠의 하킴 올라주원[43], 야오밍 등은 현역 시절 각 팀의 에이스로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며 선정되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영구 결번은 되지 않았어도 토니 쿠코치, 히도 터콜루, 레안드로 바르보사, 릭 스미츠, 데틀레프 슈렘프, 게오르그 뮤레산 등도 NBA 주요 개인상을 최소 한 번 이상 수상하는 활약을 펼쳤다. 이들의 활약은 NBA의 인기를 해외로까지 넓히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3.2.1. 중국
중국에서 농구는 제일의 인기 프로 스포츠이다. 2019년 중국 국가연구조사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마다 편차는 있지만) 중국인이 농구를 관람하는 시청률은 TV 시청과 현장 관람을 포함해 34.9%로 2위인 축구(10.4%)를 압도한다. # 1990년대 조던 시대부터 특히 2000년대 야오밍 열풍 등으로 절정을 달렸으며, 이시기 NBA 최고 선수였던 생전 코비의 중국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아담 실버 NBA 커미셔너 역시 중국은 NBA 제2의 고향이라 한 바 있다.NBA 선수들이 방중하면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도시에서도 몇만 명이 넘치게 몰려들 정도다 보니, 안타 스포츠(Anta)나 리닝(Li Ning) 같은 중국 스포츠 업계들이 거액을 제시하며 NBA 선수들 스폰서로 나서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제시 금액이 나이키 엔도서들의 계약금액을 능가하는 수준이라 실제 몇몇 선수가 계약하기도 했다. 안타와 계약한 클레이 탐슨, 리닝과 계약한 지미 버틀러 등이 예시이다.
또 NBA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와 디지털 방송 권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에 힘입어 2017년 NBA는 중국에서만 2억 명의 모바일 시청 건수를 기록했다. 2018-2019 NBA 시즌에는 무려 4.9억 명의 중국 농구 팬들이 텐센트 플랫폼을 통해 NBA 경기 생방송 및 VOD 서비스를 이용하였고, 2019 NBA 파이널 6차전의 중국 내 시청자는 총 2100만 명 이상으로 NBA 이벤트 중 가장 많은 시청자 수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런 인기 덕분에 텐센트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NBA 중계권 재계약을 맺었다. 총 15억 달러(약 1조 8,217억 원) 규모로 성사되었으며, 지난 계약 금액의 약 3배에 달한다.
2019년 포브스는 약 3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농구를 즐기고 있다는 점과 미국 외의 전 세계 팬층 중 10대 비율이 높다는 점에 주목한 투자자들의 투자로 NBA의 연간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 그러나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의 불똥이 NBA까지 튀는 바람에 이후엔 NBA와 중국 당국간 사이가 한동안 험악해지기도 했다. 휴스턴 단장의 홍콩 시위 지지 발언에서 비롯한 나비 효과가 중국 내 일시적 NBA 중계 취소 등으로 이어져 NBA와 중국농구협회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자세한 건 중국과 NBA 간 갈등 사태 문서 참조.
다만 2020년대에도 중국 선수들의 NBA 도전사는 계속되는걸 보면, 야오밍처럼 성공하는 케이스가 나오면 NBA 붐은 계속 일 것으로 추측되긴 한다. #
4. 소속 구단과 연고지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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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
2개 컨퍼런스 6개 디비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와일드카드 제도가 폐지되면서 야구, 하키와 달리 디비전의 의미가 대폭 줄어들었다.[44] NHL과 달리 캐나다 소속 팀이 토론토 랩터스 하나뿐이다. 이전에 밴쿠버 그리즐리스가 있었으나 흥행 폭망의 문제로 연고지를 멤피스로 옮겨 이제는 오직 토론토뿐. 나머지는 전부 미국 팀이다.
동서부 6개 디비전은 지역에 따라 분류되어 있는데, 이는 각각 Pacific(태평양 해안/퍼시픽), Northwest(북서부/노스웨스트), Southwest(남서부/사우스웨스트), Central(중부/센트럴), Atlantic(대서양해안/애틀랜틱), Southeast(동서부/사우스이스트) 지역으로 나뉜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알다시피 디비전과 실제 위치한 지역이 생판 다른 팀들이 몇 군데 있는데 예를 들어 북서부 디비전의 팀들 중 실제로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팀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단 한 팀, 후하게 봐야 유타와 덴버까지다. 여러 사정이 있는데 일단 첫 번째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원래 북서부 지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창단했으나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새 구단주의 사업 기반이 있고 농구 열기가 높은 오클라호마 시티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팀들이 몰려 있는 텍사스 주 바로 위에 있으며 위치상으로 보면 이 팀들과 같은 디비전 팀인 멤피스 그리즐리스보다 더 가까이 있다.
연고지 이전으로 인한 특수한 경우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중서부 지역은 광활하지만 인구밀도가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미네소타 옆에 위치한 몬태나나 남북 다코타 주들, 주변의 와이오밍 같은 경우 영토는 굉장히 넓지만 인구밀도는 미국 내에서 낮은 편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부에서부터 개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규모 있는 도시들이 동부에 더 많이 몰려 있는 데다가 중서부 지역은 사막과 산맥, 초원 지대가 많아 거주 가능 지역이 적다. 'Mountain(산) state'에 해당하는 주들은 몬태나, 콜로라도, 아이다호, 네바다, 뉴멕시코, 그리고 피닉스 선즈가 있는 애리조나와 유타 재즈가 있는 유타가 있으며, 심지어 이 지역들은 건조하기까지 해서 산 외에 광활한 사막까지 있다.[45] 이 때문에 부유한 캘리포니아나 거대한 텍사스를 제외하면 서부 팀들이 띄엄띄엄 있고, 심지어 서부 팀들이 너무 없어 위치상으로 동부인 밀워키나 시카고, 디트로이트가 70년대까지는 서부 컨퍼런스로 지정되기도 했다.[46]
이 때문에 당시는 현재 센트럴 디비전인 팀들이 한 시즌 간격으로 소속 컨퍼런스를 바꾸곤 했다. 지도에서 보면 센트럴 디비전은 가장 연고지들이 서로와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 당시 NBA의 팀 분포상 밀워키와 시카고, 디트로이트가 서부였고, 클리블랜드는 동부였다. 당시 센트럴 디비전이었던 팀들 중 뉴올리언즈와 휴스턴 역시 지역상으론 중부였으나(즉, 같은 시간대) 엉뚱하게 위치상 동부 연안 쪽인 워싱턴 불리츠 역시 센트럴 디비전이었다. 즉, 같은 디비전 소속인데 시차가 날 정도로 거리가 멀었던 것. 문제는 이 상황에서 76년에 ABA가 망하며 이 중 네 팀이 확장 팀 자격으로 들어온 것. 이들은 인디애나 페이서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뉴욕 네츠(합류와 동시에 뉴저지 네츠가 됨), 그리고 덴버 너기츠였다. 뉴저지는 당연히 동부고 덴버도 서부였으나 문제는 인디애나와 샌안토니오. 이들은 둘다 중부 지역 시간대인데 인디애나가 훨씬 동쪽에 있었으나 인접 팀들이 이미 모두 서부였고 스퍼스는 반대로 인접 로키츠가 동부였다. 이에 따라 스퍼스는 동부로, 페이서스는 서부로 분류된다.
이 상황이 계속되다 78년에 동부의 버펄로 브레이브스가 서부로 이전해 샌디에이고 클리퍼스가 되면서 디트로이트가 동부로 편입(이때 워싱턴이 애틀랜틱 디비전으로 재분류), 79년엔 뉴올리언즈 재즈가 유타로 이동하며 서부로 이동한 데 이어 인디애나가 동부로 편입, 80년에는 인접 팀들이 모두 동부가 된 밀워키와 시카고가 동부로, 반대로 인접한 덴버와 유타에 팀이 생긴 샌안토니오와 휴스턴이 서부로 옮기면서 현재와 비슷한 팀 분포로 80-81 시즌을 치르게 된다. 양 컨퍼런스의 팀 수를 최대한 동일하게 맞춰야 했기 때문에 실제 위치 지역과 안 맞는 컨퍼런스에 팀을 넣어야 했고, 이 때문에 클리블랜드는 같은 디비전인 휴스턴 로키츠와 경기하러 갈 때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했고, 다른 디비전이자 다른 컨퍼런스인 피스톤즈는 바로 옆동네인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
어쨌거나 지도에서 보다시피 각 팀마다 주변 팀들 간의 거리가 천지 차이이다, 애틀랜틱 디비전처럼 대도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서부터 주변의 규모 있는 도시를 가려면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유타의 솔트레이크시티나, 사막을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지나야 도시를 볼 수 있는 피닉스는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선수들이 선호하는 연고지들이 있고, 기피하는 연고지들이 있다. 로스앤젤레스[47],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 마이애미, 올랜도 같은 휴양지[48]는 인기 만점이며,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데다가 몰몬교 신자와 백인 비율이 많아 놀 곳도 없고 흑인 선수들은 더 꺼리는 경향이 있는 유타, 엄청나게 추운 미네소타, 백인 비율이 높고 조용한 동네인 새크라멘토, 도시 자체가 하향세인 데다 치안도 최악인 디트로이트, 환경이 안 좋은 클리블랜드 등은 인기가 없다.
또한 이동 거리로 인한 스케줄 차이가 조금씩 있다. NBA 팀들은 같은 디비전의 팀들과 경기를 더 많이 치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팀들이 밀집되어 있는 데다 대륙 중간에 있는 센트럴 디비전이 조금 더 유리한 경향이 있다. 물론 그냥 스케줄을 잡으면 위에 언급했다시피 서부 지역의 팀들이나, 도시 밀집 지역에 있어도 대륙 끝과 끝에 있는 보스턴이나 골든스테이트 같은 팀들의 이동 거리가 헬이 되므로 매 시즌 개막을 앞두고 NBA 사무국은 이동 거리를 감안해 최대한 공정하게 스케줄을 짜려고 하는 편.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전 팀들과 원정을 치르려면 다른 디비전 팀과 경기하는 것보다도 더욱 멀리 이동해야 하는 포틀랜드는 한 번 원정 갔을 때 여러 경기를 치르고 온다든지 하는 식이다. 여기에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매년 열리는 로데오 이벤트를 위해 경기장을 장기간 비워줘야 하며, 시카고 불스는 몇 년 전까지 서커스를 위해 자리 비워주느라 11월에 장기 원정을 떠나야 했으므로[49] 매년 NBA 관계자들은 박 터지는 고민을 하게 된다.
참고로 2017-18 시즌 기준 팀들 간의 연간 이동 거리는 다음과 같다(기준은 마일/mile). 보다시피 팀들이 몰려 있는 센트럴 디비전과 애틀랜틱 디비전의 팀들이 비교적 짧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센트럴은 가장 짧은 이동 거리 Top 5 안에 5팀이 전부 있다. 그중에서도 남쪽 지방 팀들과도 가까운 인디애나가 가장 짧으며, 센트럴 팀들과 애틀랜틱 팀들과 거리가 모두 가까운 토론토가 2위이다. 반면 애틀랜틱 팀들과는 가깝지만 동부 끝이라 다른 팀들과는 멀 수밖에 없는 보스턴은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야 하며, 1, 2위는 중서부 지역의 포틀랜드, 미네소타. 이 시즌에는 7위로 비교적 양호하지만 가장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골든스테이트도 이동 거리 하면 1, 2위를 다투는 팀이다.
- 인디애나 37,624(센트럴)
- 토론토 37,818(애틀랜틱)
- 클리블랜드 39,219(센트럴)
- 디트로이트 38,525(센트럴)
- 애틀랜타 40,292(사우스이스트)
- 브루클린 40,999(애틀랜틱)
- 샬럿 41,196(사우스이스트)
- 워싱턴 41,319(사우스이스트)
- 시카고 41,550(센트럴)
- 밀워키 43,041(센트럴)
- 멤피스 44,070(사우스웨스트)
- 뉴욕 44,446(애틀랜틱)
- 오클라호마시티 44,887(노스웨스트)
- 덴버 44,984(노스웨스트)
- 샌안토니오 45,489(사우스웨스트)
- 올랜도 47,630(사우스이스트)
- 댈러스 47,738(사우스웨스트)
- 필라델피아 47,839(애틀랜틱)
- 유타 48,051(노스웨스트)
- 휴스턴 48,126(사우스웨스트)
- 마이애미 48,472(사우스이스트)
- 새크라멘토 49,211(퍼시픽)
- 피닉스 49,855(퍼시픽)
- 뉴올리언즈 50,223(사우스웨스트)
- 클리퍼스 50,410(퍼시픽)
- 골든스테이트 50,515(퍼시픽)
- 레이커스 53,104(퍼시픽)
- 보스턴 54,022(애틀랜틱)
- 미네소타 55,139(노스웨스트)
- 포틀랜드 55,298(노스웨스트)
게다가 저건 위에 언급했다시피 최대한 공정하게 스케줄을 잡으려고 한 정규 시즌 얘기고, 같은 팀과 최대 7경기까지 치러야 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무늬만 같은 디비전인 포틀랜드와 오클라호마시티가 붙는다면 무려 1,484.59 마일, 비행 시간으로만 3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왔다갔다해야 하며, 포틀랜드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비행 시간은 4시간이 넘는다. 반대로 뉴욕의 경우 옆동네인 브루클린은 말할 것도 없고 필라델피아까지는 95마일 정도라 차로도 두 시간이면 간다.[50]
코로나19가 터지고 20-21 시즌부터 같은 컨퍼런스이면서도 거리가 먼 팀끼리 붙게 될 경우,[51] 2연전 일정을 잡는 일이 흔해졌다. 역시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4.1. 동부 컨퍼런스
자세한 내용은 NBA/동부 컨퍼런스 문서 참고하십시오.4.1.1. 애틀랜틱 디비전
자세한 내용은 NBA/애틀랜틱 디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구단 | 약칭 | 연고지 | 홈구장 | 창단 | 가입 | NBA 파이널 우승 |
보스턴 셀틱스 |
BOS
|
매사추세츠 보스턴 | TD 가든 | 1946 | ★☆☆☆☆☆☆☆☆ | |
브루클린 네츠 |
BKN
|
뉴욕주 브루클린 | 바클리스 센터 | 1967 | 1976 | |
뉴욕 닉스 |
NYK
|
뉴욕주 뉴욕 | 매디슨 스퀘어 가든 | 1946 | ☆☆ |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PHI
|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 웰스 파고 센터 | 1946 | 1949 | ☆☆☆ |
토론토 랩터스 |
TOR
|
온타리오주 토론토 | 스코샤뱅크 아레나 | 1995 | ☆ |
4.1.2. 센트럴 디비전
자세한 내용은 NBA/센트럴 디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구단 | 약칭 | 연고지 | 홈구장 | 창단 | 가입 | NBA 파이널 우승 |
시카고 불스 |
CHI
|
일리노이주 시카고 | 유나이티드 센터 | 1966 | ☆☆☆☆☆☆ |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CLE
|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 로킷 모기지 필드하우스 | 1970 | ☆ |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
DET
|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 리틀 시저스 아레나 | 1941 | 1948 | ☆☆☆ |
인디애나 페이서스 |
IND
|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 | 1967 | 1976 | |
밀워키 벅스 |
MIL
|
위스콘신주 밀워키 | 파이서브 포럼 | 1968 | ☆☆ |
4.1.3.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자세한 내용은 NBA/사우스이스트 디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구단 | 약칭 | 연고지 | 홈구장 | 창단 | 가입 | NBA 파이널 우승 |
애틀랜타 호크스 |
ATL
|
조지아주 애틀랜타 | 스테이트팜 아레나 | 1946 | 1949 | ☆ |
샬럿 호네츠 |
CHA
|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 스펙트럼 센터 | 1988 | ||
마이애미 히트 |
MIA
|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아레나 | 1988 | ☆☆☆ | |
올랜도 매직 |
ORL
|
플로리다주 올랜도 | 기아 센터 | 1989 | ||
워싱턴 위저즈 |
WAS
|
워싱턴 D.C. | 캐피털 원 아레나 | 1961 | ☆ |
4.2. 서부 컨퍼런스
자세한 내용은 NBA/서부 컨퍼런스 문서 참고하십시오.4.2.1.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자세한 내용은 NBA/사우스웨스트 디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구단 | 약칭 | 연고지 | 홈구장 | 창단 | 가입 | NBA 파이널 우승 |
댈러스 매버릭스 |
DAL
|
텍사스주 댈러스 |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 1980 | ☆ | |
휴스턴 로키츠 |
HOU
|
텍사스주 휴스턴 | 토요타 센터 | 1967 | ☆☆ | |
멤피스 그리즐리스 |
MEM
|
테네시주 멤피스 | 페덱스 포럼 | 1995 | ||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
NOP
|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 스무디킹 센터 | 2002 | ||
샌안토니오 스퍼스 |
SAS
|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 AT&T 센터 | 1967 | 1976 | ☆☆☆☆☆ |
4.2.2. 노스웨스트 디비전
자세한 내용은 NBA/노스웨스트 디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구단 | 약칭 | 연고지 | 홈구장 | 창단 | 가입 | NBA 파이널 우승 |
덴버 너기츠 |
DEN
|
콜로라도주 덴버 | 볼 아레나 | 1967 | 1976 | ☆ |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
MIN
|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 타깃 센터 | 1989 | ||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
OKC
|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 | 체서피크 에너지 아레나 | 2008 |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POR
|
오리건주 포틀랜드 | 모다 센터 | 1970 | ☆ | |
유타 재즈 |
UTA
|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 | 델타 센터 | 1974 |
4.2.3. 퍼시픽 디비전
자세한 내용은 NBA/퍼시픽 디비전 문서 참고하십시오.구단 | 약칭 | 연고지 | 홈구장 | 창단 | 가입 | NBA 파이널 우승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GSW
|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체이스 센터 | 1946 | ☆☆☆☆☆☆☆ |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
LAC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크립토닷컴 아레나 | 1970 |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LAL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크립토닷컴 아레나 | 1946 | 1948 | ★☆☆☆☆☆☆☆ |
피닉스 선즈 |
PHX
|
애리조나주 피닉스 | 풋프린트 센터 | 1968 | ||
새크라멘토 킹스 |
SAC
|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 골든 1 센터 | 1923 | 1948 | ☆ |
5. 역사
자세한 내용은 NBA/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5.1. 역대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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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9 | 2019-20 | 2020-21 | 2021-22 | 2022-23 | 2023-24 | |
2024-25 |
6. 정규 시즌
NBA의 각 팀은 정규 시즌 동안 82 경기를 치르게 되며, 이는 16 경기(같은 디비전에 속해 있는 나머지 4 팀과 각 4 경기) + 36 경기(같은 컨퍼런스이지만, 다른 디비전에 속해 있는 6 팀과는 각 4경기, 나머지 4 팀과는 각 3 경기하여 총 10 팀과 36 경기) + 30 경기(다른 컨퍼런스의 15 팀과 2 경기)로 구성된다.6.1. NBA 컵
2023-24 시즌에 신설된 정규 시즌 중 진행되는 컵 대회. 프리시즌 기간동안 그룹 추첨을 하며 각 컨퍼런스마다 5팀 3개조로 편성된다. 조별 라운드는 각 팀이 홈 2경기, 원정 2경기로 총 4경기를 진행하며 각 조의 1위팀과 각 컨퍼런스 차상위 1팀이 녹아웃 8강으로 가게된다. 동률시 차상위 1팀 선정은 상대 전적 - 득실 차를 보며 모두 동률일 경우 타이브레이커 경기를 진행한다.첫 출범인 2023-24 시즌에는 인-시즌 토너먼트란 이름을 사용했으나 이듬해 2024-25 시즌부터 에미레이츠의 스폰으로 에미레이츠 NBA 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녹아웃 라운드는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되며 결승전은 중립 구장에서 치르게 된다. 정규 시즌에 포함 되는 경기는 준결승까지로 결승에 오른 두 팀은 83경기를 치르지만 나머지 팀은 그대로 82경기를 치른다.
결승을 제외하면 모두 정규시즌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각종 기록이 모두 반영되며, 조별 라운드 탈락팀은 토너먼트 종료 후 2경기, 8강 탈락팀은 1경기를 배정받는다.
NBA컵 트로피들.
6.1.1. 역대 결승전 전적 및 MVP
<rowcolor=#bf965c> 연도 | 우승팀 | 준우승팀 | MVP | ||
2023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123 | 109 | 인디애나 페이서스 | 르브론 제임스 |
7. 플레이오프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Larry O'Brien Trophy) |
2024년 진행중인 NBA 플레이오프에 대한 내용은 2024년 NBA 플레이오프 문서 참고하십시오.
컨퍼런스별로 1위 vs 8위, 2위 vs 7위 식으로 16강(동부 8팀+서부 8팀)-8강(1,8위전 승리 팀 vs 4,5위전 승리 팀/2,7위전 승리 팀 vs 3,6위전 승리 팀)-준결승(컨퍼런스 파이널) 토너먼트를 치른 후, 6월쯤 동-서부 컨퍼런스 챔피언 팀끼리 챔피언 결정전인 NBA 파이널을 치른다.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팀은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받는다. 과거 동서부 디비전부터 시작된 NBA는 리그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17개로 팀이 늘어난 1970-71 시즌부터 네 개 디비전, 즉 1. 서부 해안의 퍼시픽, 중서부의 미드웨스트, 중부의 센트럴, 동부 해안 쪽의 애틀랜틱 디비전으로 개편되어 8강 플레이오프에서 10강, 12강에 이어 1984년에 부전승 제도가 사라지면서 현 16강 플레이오프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후 2004-05 시즌부터 샬럿 밥캐츠(현 샬럿 호네츠)가 창단되며 34년간 지속된 4대 디비전 체제는 사라지고, 6개 디비전 체제로 개편되게 된다.
2005-06 시즌까지는 승률보다 디비전 내 성적을 우선시해서 플옵 시드와 실제 승률 간의 괴리가 있었다. 즉, 각 디비전 1위 팀 간 승률에 따라 1, 2, 3번 시드를 먹고 2위 팀 중 가장 성적 좋은 팀이 4번 시드를 먹는 방식이었다. 이렇다 보니 2005-06 시즌 덴버 너기츠는 44승 38패로 승률은 서부 공동 7위였는데 당시 노스웨스트 디비전이 죄다 막장이었던 관계로 그 성적으로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면서 3번 시드를 가져갔다. 그리고 1라운드 대진에서 만난 6번 시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가 47승 35패로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물론 시드 상으로만 덴버가 상위 시드였기에 홈 코트 어드밴티지는 그대로 클리퍼스의 것이었고 플옵 결과도 1승 4패로 덴버의 광탈.[52]
또한 2005-06 시즌의 경우 서부 1, 2위의 승률을 거둔 스퍼스와 매버릭스가 같은 디비전이라 메인 이벤트여야 될 이들의 대결이 2라운드에 벌써 이뤄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2006-07 시즌부터는 포맷이 바뀌었는데 기존처럼 디비전 1위 팀 세 팀과 이들을 제외하고 가장 성적이 좋은 팀 하나를 묶어서 이들 네 팀들을 성적 순으로 세우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전에서 서부 1, 2, 3위 팀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2005-06 시즌까지는 서부 1위 팀만 1번 시드를 받고 나머지 팀들은 4, 5번 시드가 되어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된다. 그러나 바뀐 방식으로는 위의 예시에서 1위 팀은 1번 시드, 2위 팀은 2번 시드를 받고 나머지 디비전의 1위 팀들이 각각 3, 4번 시드를 받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도 서부 3위 팀이 5번 시드를 받아 좀 억울한 감이 있지만 기존 방식보다는 훨씬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웬만해선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디비전 우승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기존 방식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강한 디비전에 속한 팀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 상당히 균형 잡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2015-16 시즌부터 각 컨퍼런스에서 승률이 높은 8팀이 디비전 성적과 관계없이 실제 승률 순으로 플옵 시드를 배정받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디비전 1위가 가지는 이점들도 사라졌다. 기존 룰에서는 승률이 조금 낮아도 디비전 1위만 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론, 최소 4번 시드까지 보장됐지만 변경된 제도에서는 극단적인 경우[53] 아예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승률 순으로 시드를 배정하므로 이제는 상위 시드 팀이 무조건 홈 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타이브레이커 룰도 변경되었다. 승률이 같은 두 팀이 발생할 경우 플레이오프 시드 배정과 홈 코트 어드밴티지 모두 맞대결 성적이 제일 우선순위가 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룰에서 승률이 같은 두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경우 한 쪽이 디비전 우승팀이면 그 팀이 홈 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갔지만 2015-16 시즌부터는 먼저 맞대결 성적으로 타이브레이커 룰을 따진다. 디비전 우승을 못한 팀이 디비전 우승팀을 만나더라도 맞대결 성적에서 우위에 있는 경우 홈 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 올 수 있게 된 것. 출처
종합적으로 봤을 때 2018-19 시즌 현재, 디비전의 효과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같은 디비전의 팀들과 좀 더 많은 수의 정규 시즌 경기를 치르게 된다"라는 것과 별 큰 의미는 없는 '디비전 챔피언'이라는 것, 그리고 타이브레이커에서 약간 이득을 보는 것 외에는 거의 없어졌다. 특수한 상황(정규 시즌 최다 승 등 기록 수립)이 아니면 NBA는 정규 시즌 1위에 별다른 수상이나 혜택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규 시즌 성적으로 "챔피언"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디비전 챔피언뿐이다. 다만 디비전 챔피언에는 트로피가 수여되지 않는다. 팀에 트로피가 공식적으로 수여되는 것은 NBA 챔피언과 각 컨퍼런스 챔피언인데, 둘 다 플레이오프 결과로 결정이 된다. 예를 들어 99 시즌의 경우, 뉴욕 닉스는 동부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으나 결승에 올라 동부 컨퍼런스로 기록되고 트로피도 받았다. 반면 동부 1위인 마이애미 히트는 디비전 챔피언으로만 기록됐다. 즉, 정규 시즌 성적이 아무리 좋아봤자 플레이오프에서 죽을 쑤면 트로피는 받을 수 없다.
2020-21 시즌 코로나19로 인해 경기 수가 72경기로 단축되면서 대신 플레이 인 토너먼트(Play In Tournament)를 진행한다. MLB의 와일드카드 시리즈와 동일한 컨셉의 단판 승부로, 컨퍼런스 승률 7~10위가 전 경기 단판으로 이 토너먼트를 치르며 먼저 7위와 8위의 경기에서 승자가 7번 시드로 확정, 패자는 8번 시드 결정전으로 떨어지며 9위와 10위의 경기에서 승자는 8번 시드 결정전으로, 패자는 그대로 플레이오프 탈락이다. 그리고 8번 시드 결정전에서 승자가 8번 시드를 가져가게 된다. 이러면서 과거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닌한 거의 접대성 시리즈였던 NBA 플옵 1라운드 진출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고[54] 1번, 2번 시드 팀들은 체력적인 우위에서 확실함을 점할 수 있게 되었으며, 9위 팀과 10위 팀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55] 코로나19로 인해 시행되는 제도라 2022년 NBA 플레이오프 이후에도 볼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으나,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건지 다시 예전처럼 82경기 체제로 환원된 2021-22 시즌부터도 이 제도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56]
2021-22시즌에는 컨퍼런스 파이널 MVP 어워드 신설과 컨퍼런스 우승 트로피를 리뉴얼했다. 컨퍼런스 파이널 MVP 트로피의 이름은 NBA 동서부의 대표적인 라이벌 래리 버드(동부)와 매직 존슨(서부)을 가져왔고, 리뉴얼된 컨퍼런스 우승 트로피의 이름은 NBA 선수 협회 회장을 역임했었던 두 레전드, 밥 쿠지(동부)와 오스카 로버트슨(서부)의 이름을 가져왔다.
8. NBA 파이널
자세한 내용은 NBA 파이널 문서 참고하십시오.9. NBA 올스타전
자세한 내용은 NBA 올스타전 문서 참고하십시오.최초의 NBA 올스타전(NBA All-Star Game)은 1951년 3월 2일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 보스턴 가든에서 개최되었다.
참가자는 현재 두 가지 방법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팬 투표를 통해 최고의 투표를 받은 각 위치에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둘째는 각 보유 선수의 특정 회의 감독의 투표에 의해 선정을 하게 된다. 단, 코치 자신의 선수 투표는 허용되지 않는다 . 만약 선수 부상에 참여할 수 없으면 커미셔너 교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10. 서머 리그
해마다 오프 시즌이 되면 NBA는 서머리그를 열어 유망주들의 기량을 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과 NBA 진출을 노리는 해외 유망주들, 하위 리그에서는 꿈의 무대 입성을 노리는 이들을 초대해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커리, 듀란트, 조지,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 등 대학 무대를 평정했던 이들이 서머리그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팬들에게 선보이며 각 구단 스카우터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현재의 NBA 서머리그는 라스베이거스, 유타 주와 캘리포니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올랜도는 2017년 대회를 끝으로 해체되었다.NBA 서머 리그 | ||||||
리그 명 | 창설년도 | 해체년도 | 참가 팀 | 경기장 | 위치 | 수용 인원 |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 | 2004년 | 32개 팀 | 콕스 파빌리온 | 네바다주 패러다이스 | 2,500명 | |
토머스 & 맥 센터 | 18,776명 | |||||
올랜도 프로 서머리그 | 2013년 | 2018년 | 9개 팀 | 암웨이 센터 | 플로리다주 올랜도 | 18,846명 |
유타 재즈 서머리그 | 2015년 | 4개 팀 | 비빈트 스마트홈 아레나 |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
19,911명 | |
존 M. 헌츠맨 센터 | 15,000명 | |||||
캘리포니아 클래식 서머리그 | 2018년 | 4개 팀 | 골든 1 센터 |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 17,608명 |
11. 아시아의 NBA 도전사[57]
순서 | 이름 | 국적 | 드래프트 순위 | 클럽 | 기간 |
1 | 로니 세이컬리 | 레바논 | 1라운드 9순위 |
마이애미 히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올랜도 매직 뉴저지 네츠 |
(1988년~1994년) (1994년~1996년) (1996년~1998년) (1998년~1999년) |
2 | 왕즈즈 | 중국 | 2라운드 36순위 |
댈러스 매버릭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마이애미 히트 |
(2001년~2002년) (2002년~2003년) (2003년~2005년) |
3 | 야오밍 | 1라운드 1순위 | 휴스턴 로키츠 | (2002년~2011년) | |
4 | 멍크 바터 | 미지명 |
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토론토 랩터스 |
(2002년) (2002년~2003년) (2003년~2004년) |
|
5 | 하승진 | 대한민국 | 2라운드 46순위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2004년~2006년) |
6 | 타부세 유타 | 일본 | 미지명 | 피닉스 선즈 | (2004년) |
7 | 이젠롄 | 중국 | 1라운드 6순위 |
밀워키 벅스 뉴저지 네츠 워싱턴 위저즈 |
(2007년~2008년) (2008년~2010년) (2010년~2011년) |
8 | 쑨웨 | 2라운드 40순위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2008년~2009년) | |
9 | 하메드 하다디 | 이란 | 미지명 |
멤피스 그리즐리스 피닉스 선즈 |
(2008년~2013년) (2013년) |
10 | 저우치 | 중국 | 2라운드 46순위 | 휴스턴 로키츠 | (2017년~2018년) |
11 | 딩옌위항 | 미지명 | 댈러스 매버릭스 | (2018년) | |
12 | 와타나베 유타 | 일본 | 미지명 |
멤피스 그리즐리스 토론토 랩터스 브루클린 네츠 멤피스 그리즐리스 |
(2018년~2020년) (2020년~2022년) (2022년~2024년) (2024년) |
13 | 하치무라 루이 | 1라운드 9순위 |
워싱턴 위저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2019년~2023년) (2023년~) |
최초로 NBA에서 활약한 아시아계 선수는 1947년에 뉴욕 닉스에서 뛰었던 와타루 미사카인데, 일본계 미국인으로[58] 최초의 아시아인 선수는 물론이고 NBA 최초의 유색인종 선수이다. 그의 상황은 MLB의 재키 로빈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실제 경기는 딱 3경기만 뛰었다.[59]
이후 1988년에 마이애미 히트에서 데뷔해 NBA에서 10여 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던 로니 세이컬리( 레바논 태생)이 있었지만 동아시아인/동아시아계 선수는 반세기 동안 NBA에 전무한 상황이었다가[60] 2001년에 중국의 왕즈즈(王治郅)가 댈러스 매버릭스에 들어오면서 NBA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해 2002년에 야오밍과 멍크 바터가 진출, 2004년에 한국의 하승진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통해 진출했고, 같은 해에 일본의 타부세 유타가 진출하는 등 아시아 출신 NBA 리거들이 늘어났지만, 어느 정도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은 야오밍, 이젠롄, 퍼칸 코크마즈, 알파렌 센군[61] 정도이고 이 중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선수는 야오밍뿐이다.[62]
아시아인들이 유럽인, 남미인, 아프리카인들에 비해 NBA에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선천적인 운동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NBA에서 몇 년 동안 살아남았던 선수들인 야오밍, 이젠롄, 제레미 린은 NBA에서 비슷한 체격을 가진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 능력을 지닌 선수들이었다. 예로 이젠롄은 케빈 가넷에 비교될 정도로 NBA 기준으로도 사기적인 운동 능력을 지녔으며, 야오밍은 절대적으로 보면 운동 능력이 낮은 편이지만 소위 '거인 센터'의 기준인 224cm를 훨씬 넘기고도 체격에 비하면 운동 능력이 있는 선수였다.[63] 농구는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자주 부딪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힘과 높이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특히 NBA는 선수들의 기동성 및 경기 페이스가 무지막지하게 빠른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피드와 체력에 대한 요구치가 높다. 아시아에서도 NBA급 체격이나 NBA급 운동 능력을 갖춘 선수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 둘을 겸비한 경우는 쉬이 찾기 어렵다.
NBA에서 운동 능력이 쳐지기로 유명한 191cm가드 스티브 내시의 점프력이 79cm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운동 능력이 좋기로 유명한 183cm 가드 이상민의 전성기 맥스 버티컬이 85cm정도이다. 물론 10년대 중반~20년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국내 가드들의 체격 조건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고[64], KBL 드래프트 컴바인 등을 보더라도 맥스 버티컬 80cm쯤 뛰는 선수들은 매년마다 여럿 나오기에 상기한 이상민이 딱히 KBL 기준 S급 신체라고 보긴 어렵다. 요지는 NBA 기준 저질 운동 능력도 한국 기준으로는 평균 이상이라는 것.
좀 더 와닿게 최근 선수로 비교하자면 2023년 KBL드래프트 콤바인 결과 맥스 버티컬 점프 1위를 차지한 선수는 91.2cm를 기록한 조준희였다. 반면 같은 해 NBA 드래프트 콤바인 결과를 보면 1위 줄리언 필립스는 109.2cm로 자릿수가 다르다. 게다가 NBA 최상위권 유망주들은 드래프트 컴바인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하더라도 점프력 측정은 하지 않아 빠지는 경우가 많다.[65] 사실 이상민 정도 점프력은 현재 기준으로 봐도 최상위권은 아니라도 충분히 상위권에는 드는 수준이다. 어쨌건 과거에 비해 격차가 많이 줄었더라도 충분히 엄청난 차이가 나는게 사실이며, 187cm의 조준희의 점프력은 KBL에서 최상위권이지만 NBA기준으론 딱 포인트가드 평균인 36.1인치이며, 슈팅가드 평균인 37.8인치, 파워포워드 평균인 36.3인치에 모자란다.
제레미 린 역시 191cm에 경기 중 덩크를 성공시킬 정도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사기급의 운동 능력이지만, NBA 가드 기준으로는 평균을 약간 뛰어넘는 수준이다.[66] 제레미 린은 점프력은 몰라도 민첩성은 NBA 가드들 중에서도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제레미 린의 운동 능력은 NBA에서 특출나진 않아도 평균 이상 수준은 되고, 위에 언급된 야오밍, 이젠롄, 왕즈즈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체격을 지닌 NBA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의 운동 능력을 지닌 선수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 아시아 선수들처럼 운동 능력의 한계에 부딪힐 정도는 아니란 얘기.[67]
최진수의 경우 NBA 포워드급의 신장을 지녔지만 NBA도 아니고 NCAA에서조차 뒤처졌는데, 점프력이나 스피드는 기준에 어느 정도 됐지만 파워가 지나치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와 운동 능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NBA진출이 기대되었던 유망주였지만, 대학 수업 문제도 있어서 결국 NCAA에서 국내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의 경우, 지나치게 팀 플레이를 우선시하는 농구와 학원 스포츠 문화도 걸림돌로 꼽힌다. 제레미 린이 린새니티 열풍을 일으킬 당시,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학원 스포츠 문화에서는 제레미 린 같은 선수가 탄생할 수 없다"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68] 실제로 국내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학생 선수들은 감독의 불호령과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그 결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국내 선수들은 프로 레벨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또한 본인의 의향에 상관없이 키가 크면 무조건 농구를 시키는 풍토 역시 학생들의 재능을 꽃피우는 데 제약을 준다. 케빈 가넷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센터급의 신장이었고 공식 포지션도 센터였지만, 포인트 가드를 포함해 5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다. 이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마찬가지였으며, 미국 학원 스포츠에서는 보통 선수 본인이 실력이 되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의 거의 비정상적인 승부욕과 노력, 최고의 재능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농구를 사랑했다는 점도 크다. 일례로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NBA 팀들은 선수들과 계약할 때 스키나 오토바이, 스카이다이빙 등 부상 위험이 큰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었는데, 이 중에 농구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연습도 못하는 건 아니고, 자선 경기나 야외 경기 역시 팀이 합의해주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던은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든지 농구를 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넣었고, 이런 조항을 넣은 선수는 조던이 최초였다. 이는 일명 '농구에 대한 사랑(for the love of the game)' 조항으로 불린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항이 상당히 흔해졌다고 한다. 조던은 "농구를 가르치려면 먼저 농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 기술은 그 다음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뭐든 간에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뭔가 특출난 걸 해낼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던 허재 같은 선수는 그야말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야오밍 역시 다른 중국 선수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NBA 스타일을 배우려고 했던 점에서 '전형적인 아시아 선수의 스타일'이 NBA에서 살아남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만 찍어내는 천편일률식의 양성 문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69]
물론 위의 서술은 팀 플레이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지나치게 팀 플레이만을 우선시하느라 창의적인 플레이를 아예 등한시하는 문화가 창의적인 플레이어를 배출하는 데 해가 된다는 얘기다. 당연히 농구에서 팀 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아주 어린 나이부터 팀 플레이를 가르친다. 그러나 팀 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것과 팀 플레이만 하라고 강요하는 건 천지 차이다. 즉, 위의 서술은 개인 플레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팀 플레이만하라고 강요하는 강압적인 학원 스포츠가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걸 막는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중고등학생이 크로스오버를 경기 중에 하면 감독이 구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덩크를 해도 맞는다. 팀 플레이가 중요하단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정해진 플레이에서 벗어나는 플레이를 하면 구타와 욕설이 날아오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창의적인 플레이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팀 플레이 중시가 문제되는 게 아니고 억압적인 환경이 문제라는 것.
NBA는 미국의 4대 스포츠 리그 중 유일하게 한국인, 한국계 선수가 우승 및 파이널에 진출해보지 못한 리그로 남아 있다. MLB는 순수 한국인인 김병현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데인 더닝이 2023년 텍사스 레인저스, 토미 에드먼이 202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으며, 박찬호가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류현진이 2018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최지만이 2020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준우승을 한 경력이 있다. NHL은 한국계 캐나다인인 백지선(짐 팩)이 1991년과 1992년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2번 스탠리 컵을 들어올렸으며, NFL은 미국-한국 혼혈인 하인스 워드가 2006년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슈퍼볼 우승 및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다. 감독/코치까지 포함할 경우 이만수가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배터리 코치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 적이 있다.
물론 파이널은 고사하고 플레이오프 진출도 없다. 여기엔 어느 정도 운발도 있다. 유일한 NBA 선수인 하승진이 입단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하필 당시 리빌딩하던 시점이라 플레이오프 근처에도 못 갔던 것. 실제로 중국인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인 멍크 바터와 쑨웨는 NBA 기준으로 하승진(두 시즌 통산 평균 6.9분 1.5점 1.5리바운드)과 별 차이도 없는 선수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아시아인으로 유일한 NBA 슈퍼스타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 야오밍은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멍크 바터는 덴버에서 첫 시즌 동안 15분 뛰며 5.1점 3.6리바운드란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시즌 동안 각각 3.8분 0.8점 0.8리바운드, 5.7분 1.1점 1.1리바운드란 성적을 남겼다. 더욱 심한 건 6피트 9인치 콤보가드로 기대를 받았던 쑨웨로 09 시즌 딱 1년 뛰면서 2.8분, 0.6점 0.2어시스트 0리바운드 0.1스틸 0.1블록이란 기록을 냈다. 구체적으로 슛 11개 던져 3개 넣어 6점, 어시스트 2개, 0리바운드 1스틸과 1블록을 했다. 10경기 동안. 하승진 커리어에서 유일한 하이라이트였던 2004-05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가 24분 뛰면서 기록한 13점 5리바운드 1스틸보다도 쑨웨가 NBA 커리어 내내 쌓은 기록이 더 적다. 한마디로 쑨웨나 바터나 NBA 기준으로는 하승진과 별 차이도 없는 선수들이었던 것. 그런데 이들은 운 좋게 강팀에 합류해 우승 반지를 하나 챙겼다. 덴버에서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바터는 제쳐두고라도 쑨웨는 강팀 레이커스가 아니라 그 어떤 팀에서라도 출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턱도 없는 돌파하다가 어이없이 공 흘리기, 쉬운 슛 놓치기, 수비에서 정신 놓기 등. 오죽하면 36분 환산 기록이 평균 7.7점 2.6어시스트다. PER은 마이너스에 트루 슈팅 퍼센트가 2할대라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차라리 골밑에 거대한 덩치 하나 박아놓는 효과가 있는 하승진이 그나마 나을 정도다.
12. 한국 중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NBA 방송 기록은 1970년 10월 24일에 MBC에서 방영된 뉴욕 닉스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간의 NBA 파이널 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1990년대에 마이클 조던과 드림팀을 앞세운 NBA의 세계화 전략을 통해 한국에도 NBA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1990년대 초중반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 그리고 농구대잔치의 붐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NBA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당시 초등학생들까지도 NBA를 챙겨보고 선수들의 카드를 모았을 정도. 적어도 TV에서 NBA를 보기는 지금보다 편했을 정도다. AFKN이나 위성 NHK, 스타스포츠 등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었고, 지상파 방송으로는 SBS가 한창도 위원[70]의 해설과 함께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매주마다 한 경기씩 녹화 중계를 했다. 이후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경인방송- MBC ESPN- SBS 스포츠- 슈퍼액션 등에서 생중계로 방영하였다.2004년에 데뷔한 하승진을 빼고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나름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 1990년대 NBA 세계화의 주역들이 은퇴하고 농구 붐이 사그라들면서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다소 매니악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여전히 1980~90년대 슈퍼스타들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기에 잠재적인 국내에서의 인기는 실제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며, 대한민국 한정으로 2010년대 겨울철 킬러 컨텐츠에서 대표 스포츠 컨텐츠로 성장한 V-리그에 한참 밀려버린 KBL에 비교하면 시청률이나 관심도는 언제나 넘사벽이다.[71]
국내 TV중계권은 2014년부터 SPOTV에서 갖고 있다.[72] 2015 시즌부터 꾸준한 중계를 통해 팬덤의 저변이 확대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스테판 커리라는 슈퍼스타의 스텝업과 그가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73승 신기록 레이스와 함께 또 다른 대스타인 르브론 제임스와의 라이벌리 형성을 통해 국내 NBA 팬덤이 점점 확대되었다.[73] 자연스레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비교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과거 1990년대 NBA에 빠졌다가 관심을 접은 사람들이 다시 NBA를 보기 시작했다. 중계 방송의 확대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국내의 언론들도 NBA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내의 NBA 열기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현재, NBA 중계는 SPOTV와 NBA 공식 홈페이지, 두 곳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SPOTV는 BIG 6팀[74] 위주로 편성해 중계 중이다. 기본적으로 유료 중계이지만 무료 중계도 1주에 몇 번씩 하는 중인데 NBA의 세계화를 위해 NBA 측이 일부러 무료 중계 조항이 삽입된 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다. NBA 리그패스는 NBA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한글화도 되어 있고 원화 결제도 지원한다.
현재 SPOTV의 NBA 중계진은 김명정, 변효성, 이승현, 조주영 캐스터와 조현일, 박세운, 이민재 해설위원이 담당하고 있는데, 좋은 중계로 호평을 받고 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다음 날 오전에 NBA 경기를 볼 수 있다. 동부 시간 기준 14시간[75]을 더하는 방식으로 계산하면 한국 중계 시간이 된다. 즉, 현지에서 발표된 시간에[76] 2시간[77]을 더하고 오후를 오전으로 바꾸면 한국 중계 시간인 셈.
13. 기타
- NBA는 한국에서는 전미 농구 협회라고 번역되지만 직역하면 국가 농구 협회란 뜻이다. USA나 American을 따로 안 붙인 게 의아해 보일 수 있는데, 당시 NBA, 그 이전의 NBL와 BAA는 세계 최초의 프로 농구 리그였고 창설 당시 기준 농구는 1881년에 생긴 비교적 신생 스포츠였다. NBA 창설로부터 10년 전에야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당시 프로급으로 농구를 하던 국가는 세계에서 미국밖에 없었고 애초에 미국에서 만든 스포츠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국 중심적인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는 다른 스포츠에도 볼 수 있는데, MLB의 결승인 World Series나, 자국 챔피언을 World Champion이라고 부르는 것 등. 다만 한국에서도 '국내'라는 말을 쓰지 '한국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처럼 이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78]
- NBA 경기 하이라이트와 선수들 이야기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NBA 엔터테인먼트' 사가 제작하는데, 원래는 NBA 산하 영화부였다가 1982년 설립 이래 한동안 CBS/ FOX와 연계해 VHS 비디오테이프를 냈고, 1999년에 워너 홈 엔터테인먼트와 손잡아 DVD, 블루레이 등을 내고 있다.
- 2011년경 촬영된 <Ultimate All-star Fantasy Draft>에서 찰스 바클리, 케빈 맥헤일,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스티브 커, 케니 스미스 등 NBA 출신 해설자들이 모여서 역대 NBA 선수들을 놓고 가상 드래프트를 펼쳤다. NBA 전현직 농구인들이 대충 선수들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 참고로 바클리는 올스타전인줄 알고 앨런 아이버슨을 1픽으로 골라버렸으며 케빈 맥헤일은 셀틱스 출신답게 셀틱스 레전드 래리 버드를 2위로 뽑았다. 그는 여기서 로스터 전원을 셀틱스에서 뛴 적이 있는 선수 위주로만 구성했다. 역대 최고 명문인 셀틱스는 출신 선수들과 골수 팬들이 Celtic nation이라고 부를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데, 역대 최고의 선수를 자진해서 걸렀다는 점에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나며 마이클 조던을 픽하려는 레지 밀러에게 주변에서 '샘 보위'를 픽하라고 놀리고 있다. #
- 아디다스가 유니폼 독점 계약을 맺어왔으나 2017-18 시즌부터 8년간 나이키가 유니폼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KBL과 유럽 각국 농구리그처럼 유니폼에 광고 부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미국 프로 스포츠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유니폼 광고 부착에 대해 상당히 꺼리는 분위기이다. 돈이 되는 명명권 판매조차 빅 클럽들은 꺼리는 곳이 미 프로 스포츠. 2005년 데이비드 스턴 총재 때도 이와 유사한 계획을 하려다 무산되었다.
- 흔히 관심 없는 사람들은 흑인 선수들만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경우도 있는데, 2015년 기준으로 NBA 선수의 인종 비율은 흑인 74.4%, 백인 23.3%, 기타( 히스패닉+ 동양인)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NBA 역사상 흑인 비율이 80%를 넘은 적은 거의 없으며 1995년과 2011년이 약 80%로 가장 높았다.
-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NBA는 백인 위주였다. 영화 Glory Road에 보면 60년대 대학 농구에서는 흑인들이 운동 능력은 뛰어나도 머리가 더 우수한 백인 선수들을 이길 수 없다는, 지금 보면 웃기지도 않는 편견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각 팀마다 흑인들이 면피용으로 한두 명 있는 정도였다. 60년대에 이미 NBA에 빌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이란 양대 산맥이 있었지만, 이들도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윌트의 실력 자체는 누구도 부인을 못 했지만 너무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농구한다는 편견이 있었으며, 보스턴은 러셀 입단 당시 이미 MVP 수상 이력이 있던 명포인트가드 밥 쿠지나 팀 시스템 자체에 공을 돌리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러셀은 (비록 올림픽 출전 때문에 24경기 결장하긴 했지만) 실력이나 기록 면에서 상대가 안 되는 타미 하인슨에게 신인왕을 뺏기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이들이 60년대 투 톱으로 인정받지만, 이들은 당시에 극심한 폄훼에 시달렸다. 물론 이와 별개로 체임벌린과 러셀은 유일하게 당시 10만 달러 연봉을 넘기고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의 인기 스타들이었지만, 농구계 ' 높으신 분들'의 편견은 깊었다.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켄터키 대학의 명장 아돌프 럽 감독은 수십 년 동안 단 한 명의 흑인 선수도 데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1966년에 사상 최초로 흑인으로만 이뤄진 팀[79]인 텍사스 웨스턴 대학교가 켄터키 대학교를 꺾고 우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흑인의 스포츠 재능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해에 준우승한 켄터키 대학의 주전으로는 훗날 NBA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명예의 전당급 감독이 되는 팻 라일리가 있었다. 50년대부터 70년대를 거치면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엘진 베일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카림 압둘자바 등 우수한 흑인 선수들이 나오면서 70년대쯤 되면 "백인선수의 우수성"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였는지 철저히 까발려진다. 그러면서 70년대에는 운영자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흑인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는데, 이러한 위기감은 닉스가 최초로 전원이 흑인인 팀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달한다. 물론 60년대와 비교해 높았다는 얘기지 현재보다는 훨씬 낮았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흑백 분리 정책이 철폐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흑인들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NBA의 고객층은 압도적으로 백인이 더 많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브 코웬스나 존 하블리첵 등 훌륭한 백인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그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리그를 주름잡는 카림이나 줄리어스 어빙 등은 모두 흑인이었다. 이로 인해 NBA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데, 1980년도 결승 6차전은 우승이 결정된 경기임에도 녹화 중계될 정도. 이 상황을 뒤집은 것이 1979년에 데뷔한 "백인" 래리 버드였다. 신인임에도 리그 최고 선수들과 대등한 수준의 엄청난 실력을 자랑했던 버드의 활약은 이미 박살난 백인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기에 충분했고, 그는 'White hope(백인들의 희망)'라고 널리 알려졌다.[80]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매직 존슨과의 대학 시절부터 계속된 라이벌 관계로 인해 NBA는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NBA 고객들 중에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고, 흑인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백인 팬들의 거부감도 점점 줄어들면서 더 이상 흑인이 많다는 이유로 NBA 인기가 타격을 입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게 마이클 조던이었는데, 이미지 관리의 달인이었던 그는 최고의 실력과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흑인 마이클 조던'이 아닌 '유명 인사 마이클 조던'으로 알려지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한 이슈나 인종 논란이 생길 법한 이슈에는 조심스럽게 코멘트를 하거나 노 코멘트로 일관했는데, 이와같은 그의 행보는 비록 일부 흑인 팬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백인이 대다수인 주류 미국 사회의 사랑을 받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 그의 위상에 대해 한 방송인은 "마이클 조던 이전까지는 14세 백인 소녀가 흑인 남자 운동선수의 포스터를 방에 걸어놓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96년에 데뷔한 신인 앨런 아이버슨이 "나는 마이클을 상대할 수 있다"라고 당돌하게 말을 하자, 미국의 Sports Center는 이 말에 대해 "(이 멘트로 인해) 마이클은 기분이 상했죠(offended). 그리고 마이클이 기분이 상하면, 미국이 기분이 상하는 겁니다(And when Michael is offended, America is offended)."라고 말하기도 했다.
- 2011년부터는 유럽 선수들의 NBA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백인 비율 더 높아지는 추세이다. 물론 미국의 4대 인기 스포츠 중에서는 흑인 비율이 가장 높다. 다만 구단주들은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인 샬럿 호네츠 빼고 백인들이 다수이다.
- 백인 스타 선수들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긴 하지만 미국 출신 백인 선수의 경우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프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소년 시스템이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어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팀 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많고 미국의 흑인 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학원 스포츠 문화로 창의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운동 능력이 장점이라면, 이도저도 아닌 미국의 백인 선수들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디르크 노비츠키(독일), 가솔 형제(스페인), 스티브 내시(캐나다)와 같은 과거의 스타들뿐만 아니라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라트비아),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든 최근 몇 년간 두각을 나타난 백인선수들은 거의 유럽이나 비미국 출신이며, 미국 백인 슈퍼스타는 케빈 러브 정도뿐이다. 올스타까지 포함하면 고든 헤이워드 정도. 외형상 백인으로 보이는 클레이 탐슨이나 블레이크 그리핀 등은 흑백 혼혈이라서 그런지 흑인으로 분류된다.[81] 미국 백인 농구선수들은 대체적으로 팀의 식스맨 내지 벤치 요원 등으로 뛰고 있는데 이를테면 카일 코버, J.J. 레딕, 팻 코너튼, 그레이슨 앨런, 알렉스 카루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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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가 존재한다. NBA의 게임, 인터뷰, 자선행사등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힙합,
갱스타일의 복장[82]을 착용할 수 없다. 코치는 정장 혹은 재킷을 착용해야 한다.[83] 이러한 드레스 코드는 2005-06 시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2004-05 시즌 인디애나-디트로이트의 경기 중 벌어진 초유의 관중 폭행 사태[84]로 인한 리그의 이미지 하락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드레스 코드는 NBA 패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대부분의 NBA 선수들은 여러 스타일의 복장으로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위에 언급된 아이버슨이 대표적이지만 라쉬드 월러스는 큰 덩치에도 더 통이 큰 옷을 즐겨 입으며 져지, 후드티 등 특유의 자유로운 성격을 나타냈고, 케빈 가넷은 기나긴 기럭지를 부각시키는 깔끔한 세미 정장을 즐겨 입었다. 마이클 조던은 현역 시절 항상 정장을 입었는데 이는 "완벽한 젠틀맨" 이미지를 밀었던 그가 고집한 패션이었다. 데니스 로드맨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패션을 보였다. 그러나 드레스 코드로 인해 선택의 폭은 크게 좁아졌다. 그러나 개성 강한 선수들이 NBA에서 바라던 대로 "깔끔한" 모습만을 할 리는 없었다. NBA 선수들은 드레스 코드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는 꽃무늬 난방, 총천연색의 자켓과 셔츠, 특이한 모양의 안경, 마피아를 연상케 하는 털코트, 체크무늬 바지, 멜빵, 책가방[85], 모자와 안경의 특이한 조합 등 기상천외한 패션 코드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기존과 달리 캐주얼~정장 범위만 가능해지자, 그 범위 내에서 더욱 특이한 패션을 뽐내기 시작한 것. 그중 멜빵, 안경, 책가방 등 특이한 아이템들을 이용한 온갖 조합을 선보이는 러셀 웨스트브룩은 그 평가가 현지에서 패션 리더에서 패션 테러리스트까지 극단적으로 갈린다. GQ에서 그의 패션을 호평하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의 코드와는 굉장히 떨어져 있는 만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86]
- 여타 다른 북미 스포츠처럼 NBA League Pass라는 이름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북미 스포츠들과 달리 해외에서도 NBA의 인기가 높은 덕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어지간한 나라에 모두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구독비는 18-19 시즌 전 경기 기준 192,800원이다. MLB.tv와 달리 동시 시청이 불가능[87]하기 때문에 공구 등의 편법이 불가능해 체감 가격은 더더욱 비싸게 느껴지는 편이다. 하지만 VPN으로 저렴한 국가로 우회하여 결제하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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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도 언젠가 32팀 체제로 확장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2020년까지
키 아레나를 NBA와
NHL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리노베이션할 예정이고, 동시에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부활을 꿈꾸는
시애틀이 확장 팀 1순위로 예상되고 있다.[88] 그리고, 2018년 5월에 NBA 간부가
스프린트 센터가 있는
캔자스시티가 언젠가 NBA 팀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 캔자스시티도 상당히 유력해졌다. 참고로 캔자스시티의 경우 1972년부터 1985년까지
캔자스시티 킹스가 있었다.
2022년 9월 6일 소식에 따르면 시애틀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프리시즌 경기에서 해당 연고지를 확장 팀으로 발표하길 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당 소식이 맞을 경우 시애틀은 14년 만에 다시 NBA 팀이 들어오게 되며 라스베이거스는 처음으로 NBA 팀을 들이게 된다.
- NBA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로는 1984년, 1996년, 2003년 드래프트가 손꼽힌다.
-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어머니나 할머니의 말을 듣고 NFL에서 NBA로 진로를 바꾼 경우가 많다. 미식축구가 워낙 부상후유증이 높은 위험한 스포츠이기때문인 듯.
- 민주당의 영원한 우방 중 하나다.[89] 다른 스포츠 리그들과 다르게 선수들은 흑인 비율이 높고 임원은 유대인, IT 사업가들 비율이 높아서 스포츠 리그들 중에서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편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툭하면 NBA를 비난하는 말을 많이 한다. 한편, 칼 말론, 고든 헤이워드, 로이스 화이트 등 공화당 지지 성향을 드러낸 적이 있는 NBA 출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NBA는 1947년 이후 크리스마스 당일에 경기를 반드시 편성한다. 한국에서는 시차 때문에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이들 경기를 볼 수 있다.
- 30개 팀 중에서 20팀이 마스코트를 운영하고 있다.
- 베니(시카고), 휴고(샬럿), 록키(덴버), 해리(애틀랜타), 슬램슨(새크라멘토), 코요테(샌안토니오), 재즈 베어(유타), 크런치(미네소타), 뱅고(밀워키), 럼블(오클라호마시티), 버니(마이애미), 스터프(올랜도), 후퍼(디트로이트), 피에르(펠리컨스), C.C.경(클리블랜드), 클러치(휴스턴), 럭키(보스턴), 부머(인디애나), 프랭클린(필라델피아), 블레이즈(포틀랜드)
13.1. 콜업과 10일 계약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거나, 실력 부족으로 퇴출당한 선수들은 보통 다른 나라의 프로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동하거나, NBA의 공식 하위 리그인 NBA G 리그[90]에서 다시 NBA 진출을 노리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아시아나 유럽의 프로 리그로 갈 경우, G 리그에서 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보통 NBA 지명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아시아나 유럽에서 팀의 주력 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당연히 거액의 연봉과 상당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 G 리그에서는 연봉 수준이 A급과 B급[91]으로 나뉘며, A급은 우리 돈으로 약 2,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으며, B급은 그 이하를 받는데, 가정이 있는 선수들의 경우, 이것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NBA에 미련을 버리고 해외 시장을 노린다. 아무리 타지 생활이라고 해도 수입만 놓고 보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외국인 선수에 대해 샐러리 캡이 존재하는 한국프로농구에서도 팀당 2명의 외국인 선수 도합 상한선이 70만 달러라서 기본적으로 억대 연봉은 보장받고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해외 진출이 좋아 보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농구선수들은 그래도 G 리그에 발을 들인다. 그렇다면 왜 선수들이 박봉에 대우도 좋지 않은 G 리그에 목매느냐? 바로 NBA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NBA G 리그 팀들은 모두 NBA 구단들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로 선수 수급이 필요한 구단이 언제든지 콜업(call-up)을 할 수 있다.[92] 션 킬패트릭의 경우, 2014-15 시즌에 G 리그 팀 델라웨어 에이티세브너스의 팀 단체 사진을 찍던 도중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부름을 받았다. 미네소타는 NBA 팀이 경기를 치르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 선수 수인 8명을 채우지 못해 급히 그를 부른 것이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합류한 팀 프레이저의 경우, 식서스가 경기를 치를 장소인 보스턴과 가까운 메인 주 포틀랜드[93] 연고의 G 리그 팀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로 부름을 받았다. 반면 해외리그에서 뛸 경우 시즌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NBA 팀에 합류할 수 없고,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기도 힘들다. NBA 도전기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 기사화되어 잠깐 인기를 끈 무명 선수 자비안 도우델의 경우, 유럽에서 75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G 리그의 털사에서 1만 3천 달러 받는 계약을 선택했다고 한다. #
콜업도 선수들의 편의가 아닌 팀의 편의에 따라 부르기 때문에 별의 별 해프닝이 다 있다. 앞서 언급된 션 킬패트릭의 경우 델라웨어에서 사진 찍다가 불과 경기 세 시간 전에 콜업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75분 만에 숙소에서 가방 챙겨 나와서 134마일을 자기 차로 미친 듯이 달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도착해 차를 길거리에 세워두고, 준비를 마친 후 겨우 경기 시작 전 팀 연습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94]
NBA G리그는 NBA에 비해 훨씬 연봉 수준이 낮은데, 세계 최고의 리그와 같은 지역에 있는만큼 관중동원 능력이 떨어져 수익성이 적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되는 미국의 프로 농구 리그 중 돈을 버는 것은 NBA뿐이며, WNBA조차 매년 적자에 시달려서 NBA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간신히 운영하고 있다.[95] 프로 스포츠는 관중 입장 수익 외에 중계권 판매, 광고 수익, 머천다이징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리그가 자국에 있는데 그보다 모든 권에서 하위 호환인 리그가 장사가 될 리가 없다. 과거 CBA를 제외한 다른 소규모 리그들이 자금난에 시달리거나 몇 년 만에 문을 닫은 것도 돈을 못 벌었기 때문이다.[96] 소규모 스폰서십과 얼마 안되는 입장 수익으로 푼돈이나 버는 리그이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큰 돈을 주기가 힘든 것이다.[97]
역시 앞서 언급한 프레이저는 자기 운동 장비를 챙기러 G 리그 팀의 건물에 갔지만 직원들이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예전에 보스턴 셀틱스의 트레이닝 캠프에서 뛸 때 셀틱스의 가드 에이버리 브래들리가 자기와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었다는 걸 기억하곤, 상대 팀 셀틱스 선수인 브래들리의 농구화를 빌려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
이렇게 콜업된 선수들은 NBA 팀과 10일 계약을 하게 된다. 이 10일 계약은 말 그대로 NBA 팀에 10일 동안 합류하게 되는 계약으로, 보통 NBA 팀은 이 기간에 3경기, 많으면 4경기 정도 치른다. 이때 10일 계약 선수들은 팀이 잡아준 숙소에 머물며, 전세기/전용기, 연습장, 체력 단련실, 마시지 룸, NBA 팀들이 지급하는 원정 경기 경비 등 팀의 모든 혜택을 다 누릴 수 있다. 이들은 NBA 최소 연봉의 10일치를 받게 되는데, 최소 연봉이라 해도 NBA라 연봉이 수십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이 돈만 해도 무시할 만한 수치가 못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G 리그에선 아무리 받아봤자 3만 불이 안되는데 킬패트릭의 경우 15 시즌에 10일 뛴 대가로 4만 9천 709달러를 받았다. # 즉, NBA에서 10일 일한 것이 G 리그에서 시즌 내내 일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다. 이들은 NBA 선수들과 완전히 동등한 신분이긴 하지만[98], 고작 10일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한 해에 수천만 달러에서 1억 달러를 연봉으로 쓰는 NBA 팀 입장에서 5만 불짜리 선수는 얼마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나 다름없고[99], 실제로 나태한 모습을 보이거나 팀에 도움이 안 되는 선수는 하루 만에 방출되기도 한다.
자신이 10일계약 선수 출신이기도 한 에이버리 존슨은 10일 계약 선수 생활에 대해 "잠도 거의 못 자고, 항상 폰을 보고 있다. 누구도 당신의 집에 리무진을 보내거나 당신 부인을 위해 장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영수증을 제출하는 생활이다"[100]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10일 계약 출신이었지만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존슨은 16년간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영구결번까지 되었으며, 커트 램비스는 건실한 롤 플레이어로 14년간 NBA에서 뛰며 4차례 우승을 했고, 앤소니 메이슨은 올스타에까지 올랐다.
13.2. 키와 관련된 여담
80년대에 이미 평균 신장이 2m에 육박했으며, 20년대 NBA 선수들의 평균 체격은 맨발 기준 198cm(6'6")에 체중은 99kg(218lbs) 정도이다. 미국 4대 스포츠 중 신장은 가장 크고 체중은 NFL 다음으로 무겁다. 물론 각 포지션별 차이는 있으며, 일반적으로 센터가 가장 크고 포인트 가드가 가장 작다.그런데 NBA를 보다 보면 기록된 신장보다 조금 작은 선수들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물론 키 180cm인 일반인이 2미터를 넘는 거인들을 보고 211인지 216인지 구분해내는 건 무리지만, 스티브 내시(191cm)같은 선수들이 실제로 191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봤더니 185밖에 안되더라, 커봐야 188이다" 등등의 목격담이 자주 올라오곤 한다. 이는 NBA가 기본적으로 농구화를 신고 키를 재며, 신장 기입을 선수들의 자율에 맡겼기 때문에 그나마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101] 물론 선수들의 자율에 맡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드래프트 전 신체 검사 제도가 있고, 팀들이 딱 보면 어느 정도 키인지 알기 때문에 6피트 2인치가 7피트 2인치로 쓰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장이 제멋대로인 이유에는 최소 1인치(2.5cm) 이상인 농구화의 "굽," 그리고 피트와 인치로 표기하는 특성상 몇 cm 정도 차이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먼저 농구화를 신으면 키가 최소 1인치는 커진다. 여기서 맨발로 키를 재는 KBL 등과 차이가 난다. 또한 인치가 2.5cm 단위로 끊기기 때문에 키가 정확하게 표기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189cm인 선수A와 191.5cm인 선수 B가 있다고 치자. 1인치는 농구선수에게 무시할 차이가 아니다.[102] 그런데 A 선수는 농구화를 신으면 192cm라서 6피트 4인치(193cm)로 표기하고 B 선수는 조금 굽이 낮은 농구화를 신고 194.5cm이지만 193cm로 표기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키 차이가 나는 선수들이지만 똑같은 키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후자의 케이스에 가까운 게 신발 신고 194cm가 조금 넘지만 193cm로 표기되는 드웨인 웨이드이다. 이 때문에 웨이드는 6-4급 선수들 중에 상당히 큰 편이다.
더 심한 케이스는 시카고 불스에 각각 2003년과 2004년에 드래프트 된 커크 하인릭과 벤 고든. 2004-05 시즌 당시 두 선수는 동일하게 6피트 3인치(191cm)로 표기되었지만 누가 봐도 키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실제로 하인릭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하인릭의 키는 6피트 2.75인치, 고든은 정확히 6피트 1인치로 두 선수 사이에서는 1.75인치(4.5cm)로 거의 2인치에 달하는 키 차이가 있었다. 이는 포지션 평균 사이즈와 언더사이즈를 가르는 키 차이이다. 보통은 이렇게 소수점이 남는 경우 반올림하는데,[103] 하인릭은 6-3만 해도 포인트 가드로서는 큰 키였기에 굳이 표기 키를 더 올릴 필요가 없어서 착화신장 6피트 3.75인치에서 그냥 버림해버리고, 고든은 6-4도 작다는 소리를 듣는 슈팅 가드라 착화신장 6피트 2.25인치를 굳이 올림해서 둘이 같은 신장으로 기재된 것이다.[104]
이처럼 단신 선수들은 키를 될 수 있는대로 키우는 성향이 있어 오류가 나기 십상이다. 8, 90년대에는 신체 검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았기에 추정에 가깝지만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맨발 키가 188cm 정도에 불과했지만 한때 6피트 5인치(195cm)까지 스스로 뻥튀기했던 존 스탁스가 있다.[105] KBL에 오는 외국인 선수들이 KBL신장과 NBA 진출 시도할 때 신장이 다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KBL 특유의 목 집어넣기와 무릎 빼기도 큰 요인이지만, 이들 대부분이 미국 기준으로 언더사이즈들이라 미국에선 최대한 커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발 굽 1인치, NBA에서 키 부풀리기 0.5~1인치, KBL에서 키 줄이기까지 해서 NBA식 키와 KBL 키 사이에 3인치 이상 차이도 나곤 한다. 가장 심한 케이스는 KBL에서 201.7cm로 측정됐지만 미국에선 211cm(6피트 11인치)로 표기된 나이젤 딕슨인데, KBL에서의 키가 진짜 키였을 경우 농구화가 아니라 하이힐이라도 신지 않는 이상 6피트 11인치가 나올 수가 없다.[106]
예외로 포지션 대비 지나치게 작거나 커서 뭘 해도 소용없는 경우는 그냥 맨발 키를 적어넣는 케이스도 있다. 아이제아 토마스는 맨발 키가 5피트 8.75인치고 신발 신으면 5피트 10인치가 넘으니 NBA식이면 5피트 10인치로 표기되어야 맞지만, 5-9나 5-10이나 굳이 부풀리는 의미가 없는 단신이었기 때문에 그냥 맨발 키로 쓴 것. 반대로 마누트 볼, 숀 브래들리 같은 초장신 센터들도 맨발 키를 그대로 표기한다. KBL에서 맨발 키가 221cm 넘게 나왔던 하승진도 NBA에서 221cm로 표기됐고, 야오밍의 경우 드래프트 당시 맨발 7-5/신발 신고 7-6이어서 7피트 5인치로 표기했었다가 루키 시즌 도중 휴스턴 로키츠의 자체적인 신장 측정 결과 맨발 7피트 5인치 반/신발 신고 7피트 6인치 반으로 나온 이후 7피트 6인치로 표기되고 있다.
그 외에 7피트로 표기되는 선수들보다 곧잘 커보이기도 했던 케빈 가넷 역시 6피트 11인치 표기를 데뷔부터 은퇴까지 고집했다. 하도 키에 대해 질문이 많자 장난스럽게 "난 6피트 13인치에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피트-인치법은 12인치가 끝. 더 특이한 케이스는 빌 월튼인데, 70년대에 황금기를 보낸 백인 센터였던 그는 6피트 11인치로 표기됐지만 당시 당연한 듯 7피트 1인치 내지는 7피트 2인치로 받아들여졌다. 위에서 언급된 시대적 한계 때문에 정확한 그의 키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7-2였던 카림 압둘자바와의 매치업 영상을 보면 키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보인다. # 실제로 3인치나 작다면 엄청난 차이가 나야 함에도. 또한 86년 파이널에서 월튼의 보스턴 셀틱스가 휴스턴 로키츠와 붙었을 때 213cm으로 표기되던 하킴 올라주원보다 월튼이 훨씬 큰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하킴은 훗날 자신의 맨발 키가 208cm에 가깝다고 인정했지만. 월튼이 실제로 7피트 2인치라면 정말 키를 엄청나게 깎은 셈이다.[107]
사실 상술한 가넷같은 경우 실제 맨발키가 정식 신장보다 확실하게 컸다기보단, 프로필상 동일 신장인 선수들이 실제로는 211cm가 안되는 경우가 태반인데 본인은 맨발 기준으로 211cm라 유독 더 커보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누가봐도 센터들 중 평균 이상의 키였고 프로필상 216cm로 표기된 공룡센터 샤킬 오닐이 맨발기준 212cm에 그쳤으며, 20년대를 보더라도 흔히 말하는 '리얼 7푸터(213cm)'인 조엘 엠비드보다 키 큰 센터는 의외로 많이 드물다.
결국 19-20 시즌을 앞두고 버디 힐드의 프로필 오류[108]와 같은 사태를 막고자 모든 구단에 소속 선수의 나이, 맨발 신장[109], 체중을 정확히 조사해서 제출하게끔 했다. 프리시즌이 진행되면서 수정된 프로필들이 속속 제출되고 있는 상황.
13.3. 선수들의 혜택
NBA 선수들은 2018-19 시즌 기준으로 최소 연봉이 신인 기준 83만 8천 달러가 조금 넘는다.[110] 게다가 NBA에서 초고액 연봉자들의 경우 한화로 340억 원이 넘어가며, 광고 수익까지 합하면 그 두 배에 가깝게 벌 수 있다. 마이클 조던의 경우 1998년 물가로 연봉만 3천 3백만 불, 광고 수익이 4천만 달러가 넘었을 정도다.[111]NBA 선수로서 혜택은 이 정도 엄청난 수익, 팬들의 사랑과 인기도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NBA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만 해도 팀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들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일단 NBA 팀들은 엄청난 돈벌이 수단인 선수들을 말 그대로 모시고 다닌다. 한국에서처럼 자기 유니폼이나 신발, 짐을 챙기고 이럴 필요가 전혀 없이 그냥 라커룸에 경기 장비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다. NBA에서 잡일이란 걸 조금이라도 하는 선수들은 오직 신인뿐이고, 이조차도 호텔방으로 선배들 가방을 옮기거나 연습때 도넛 등 간식거리를 챙겨오는 정도다. 물론 이것도 전통에 가까운 것이라 실제로 힘든 일을 하진 않으며 그나마도 잠깐 부려먹고 만다.
농구화의 경우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와 계약하는 슈퍼스타들만 유명하지만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LA 기어, 리닝, 안타, 피크 등 덜 알려진 브랜드와 계약하고, 그 아래급의 브랜드와 계약하는 이들은 더 많다. 개인 자격으로 브랜드와 계약하지 못한 선수들은 팀 차원에서 후원받고 있는 브랜드의 용품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112]
농구 용품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과 연습장과 딸린 부대 시설까지 이용이 가능한데 기본적으로 연습 코트뿐 아니라 헬스장, 통증 완화를 위한 핫텁, 마사지대와 마사지사, 식당, 경기 분석을 위한 비디오 시청실 등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동 시에는 당연히 최고급 호텔만을 이용하며 심지어 농구 잡지 루키의 2007년 기사에 따르면 2007년 올스타 주간에 선수들과 가족들을 위해 특급 호텔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호텔에서 경기장, 경기장에서 공항 등으로 이동할 땐 당연히 최고급 버스이며, 이 버스는 NBA 최장신 선수도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대형 버스이다. KBL의 경우 한동안 리그 최장신이었던 서장훈도 뒷자리에 겨우 앉는 수준이었다가 그보다도 14cm가 더 큰 하승진이 입단하고 나서야 KCC가 그가 앉을 수 있는 버스를 마련했다. 그런데 NBA에서 쓰는 버스는 하승진보다도 큰 숀 브래들리도 여유 있게 앉는다. 웬만한 선수들은 서서 이동할 때 머리 숙일 필요도 없을 정도.
이동 수단의 최고봉은 단연 비행기인데, 당연히 공항에서 수속을 밟거나 하는 일 없이 버스가 활주로로 직행해 바로 선수들이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게 한다. 현재 NBA 팀들은 팀 상황에 따라 전용기를 이용하거나 전세기를 이용한다.
이 전세기/전용기들은 거의 날아다니는 호텔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1996년 당시 시카고 불스의 생활을 찍은 영상에서 5분 40초부터 이들이 타고 다닌 전세기가 나온다.
보다시피 일단 전 좌석이 최소 비지니스 클래스~퍼스트 클래스이며 바와 뷔페식 식당이 있어 언제든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또한 거구인 선수들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도 널찍하고 몇 자리를 혼자 차지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 외에 칸막이가 있는 객실형 좌석에서 코치진이 비행기에 설치된 TV를 보면서 전략을 짜거나, 마이클 조던이 론 하퍼 등 친한 동료들과 함께 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 영상은 1996년이기 때문에 현재 전세기는 시대에 맞춰서 시설이 좋아졌을 것이다. 96년 당시엔 저 정도 좌석이 퍼스트클래스 좌석이었고, TV도 저런 볼록한 TV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보면 정말 최고급의 시설뿐이란 걸 알 수 있다.
여담으로 같은 시카고 불스의 1987-88 시즌 당시 원정 생활 영상을 보면 얼마나 형편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데, 전세기가 아닌 일반 비행기(물론 1등석이긴 하다)를 타고 다니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공항에서 수속을 밟으며, 호텔도 특급 호텔까진 아니고 심지어 유니폼도 일일이 트레이너가 직접 세탁해서 선수들에게 나눠준 다음에 선수들이 챙겨간다. 위에 언급된 신인들이 잡일을 하는 전통도 여기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당시는 이게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실제로 잡역부들이 부족해서 트레이너가 직접 잡일을 할 정도였다. 당연히 당시 NBA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는데, 단적인 예로 샐러리캡이 팀당 612만 달러로 현재 9천 9백만 달러의 16분의 1 수준이었다.[113] 현재는 라커에 그냥 들어가면 깨끗한 유니폼과 각종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이 중 르브론 같은 유명 선수들은 후원받은 농구화들이 몇 개씩 쌓여 있기도 하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선수들은 농구화를 그냥 라커룸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 본인의 시그니처 신발이 있는 스타들의 경우엔 경기 끝나고 어린이 팬들에게 신발을 그냥 줘버리는 팬 서비스도 자주 한다.
또 하나 주요한 혜택은 바로 원정 경기 시 팀에서 배급되는 식비. 이를 per diem(일일 경비)라고 부르는데 2017-18 시즌 기준으로 NBA per diem은 원정에 나설 때마다 하루당 129달러(한화 14만 5천 원)에 달하며 이는 미국 4대 스포츠 중 최고 액수이다.
보통 원정 시작 전에 각 팀에서 원정 경기 소요 날짜에 따라 계산된 식비를 봉투에 담아서 배급한다. 이를 쓰는 방식은 NBA 선수들마다 각각 다른데, 연봉이 적은 편이었던 네이트 로빈슨 같은 경우 젊은 시절 돈 많은 팀 동료들한테 빈대 붙고 자기 per diem은 그냥 부가 수입으로 챙기거나, 마찬가지로 연봉이 적었던 카일 코버의 경우 필라델피아 76ers시절 아예 per diem을 생활비로 쓰고 연봉은 아껴놨다고 한다. NBA 팀들은 6개월 시즌 중 절반을 원정 경기로 보내기 때문에 보통 누적된 경비가 1만 달러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어 무시할 액수가 못 된다.[114]
지금은 어엿한 베테랑이 된 J.R. 스미스는 신인 시절에 용돈 정도밖에 안되는 per diem을 제대로 쓰지 않고 과자 같은 걸로 끼니를 때우고 나머지는 삥땅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15]
베테랑들은 그들 입장에서 얼마 안되는 per diem을 굳이 챙기기보단 그냥 쿨하게 돈 없는 후배나 직원들에게 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해외 리그를 떠돌고 긴 무명 생활 끝에 올스타까지 성장한 안토니오 데이비스는 고액 연봉자가 된 말년에는 팀이 고용하고 있는 트레이너나 경호원들에게 나눠줬고 마커스 캠비 같은 경우 어린 선수들이나 연봉이 적은 선수들에게 인심을 쓰곤 했다.
13.4. 직관
NBA 경기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실제 저 경기장의 분위기와 선수들이 뛰는 것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직관을 가고 싶어하는 국내의 NBA 팬들도 꽤 된다. NBA 매니아나 NBA 갤러리 등지에는 매 시즌마다 직관 후기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직관에 관한 질문을 하는 유저들도 자주 보인다.하지만 직관을 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과 무엇보다 비용 문제가 크다. 미국행 비행기 왕복 티켓과 숙박비, 식비 그리고 경기장 입장료까지 최소 200만 원은 잡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선 NBA 시장의 규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선수 개개인의 연봉과 복지만 봐도 얼마나 큰 시장인지 알 수 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정규 시즌 경기라 하더라도 세금 포함 최소 100달러(약 11~12만 원)의 지출은 각오해야 한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며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은 아래 참고. 플레이오프의 경우는 최소 300달러(약 33~36만 원)의 가격이 형성되고, 올스타전은 기본 네 자릿수에서 시작한다. 플레이오프와 올스타전은 경제적 여건이 되더라도 표를 구하기가 힘들다.
국내, 현지 모두에서 빅마켓이자 인기 팀으로 분류되는 팀은 기본적으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뉴욕 닉스, 보스턴 셀틱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4팀을 꼽을 수 있으며 만약 이 팀에 슈퍼스타가 있다면 당연히 초 인기 팀이 된다. 나머지 팀들은 도시의 규모와 슈퍼스타의 유무에 입각하며, 시기에 따라 인기도가 달라진다. 쉽게 설명하자면 마이클 조던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시카고 불스를 생각해보자.[116] 특히 위에 언급된 팀들 중 레이커스와 닉스/셀틱스와 워리어스는 좀 위상이 다르다. 워리어스는 커리나 톰슨 같은 인기 스타들이 오랫동안 뛰고 있거나 오랫동안 상위권에서 놀아 인기 팀이 된 이후에 티켓 가격이 높아지고 인기가 많아진 경우고, 명문인 셀틱스도 보스턴이 빅마켓이라고 해도 뉴욕/LA와는 규모 차이가 현저한지라 성적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초대형 마켓 팀인 레이커스와 닉스는 팀 성적과 상관없이 항상 티켓 가격이 높았다(물론 실적이 좋을 때는 더 올라간다). 일례로 90년대에 암흑기를 보낼 당시 셀틱스의 경기 티켓은 별 인기가 없었다. 불스도 이와 마찬가지로 빅마켓이지만 경기 성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닉스는 문서에 나와 있다시피 뉴욕 맨해튼+MSG+오랜 역사 프리미엄을 제대로 받아 못할 때도 항상 티켓 값이 비쌌다.
일단 위 4팀들의 경기를 보러 가려면 최소 티켓 값 200달러 이상을 생각하고 가는 게 속 편하다. 자리 위치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 보통 인기 4팀 기준 3층이나 측면의 보통 자리는 200~300달러, 1층과 정면 뷰 등 좋은 자리는 500~1000달러 이상에서 티켓 가격이 형성된다. 인기 팀끼리 붙는다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직관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비싸서 겁이 날 수도 있겠지만, 잘 준비해서 갈 경우 최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너무 겁먹지 말자. 적당한 인기 팀(플레이오프 컨덴더 정도)을 상대로 하는 경기를 보러 가는 경우는 비용도 어느 정도 절약하면서 본인의 만족도도 충족하는 일석이조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컨덴더 팀을 좋아해서 무조건 컨텐더 팀과의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 한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117]
티켓 예약은 보통 시즌 일정이 나오는 대로 시작되며, NBA 공식 홈페이지나 스텁헙(Stubhub)이라는 사이트에서 예약 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은 좌석별 가격도 다 나오고 절차도 상대적으로 간단한 스텁헙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이외에도 Seetgeak 등에서도 표를 구할 수 있다.
미국의 치안이 도시마다 천차만별이므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숙소에 귀가할 때는 주변 치안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보통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 밤 늦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트로이트.[118] 제일 좋은 방법은 차를 렌트하는 것이다. 주차장이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경우 2만 명 정도가 이동하는지라 경찰들이 경기장 주변의 교통을 통제하는 목적에서 배치되는 지라 안전하게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주차장은 공간도 넉넉하고 치안도 괜찮기 때문에 운전하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다. 물론 운전하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건, 2만여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려면 엄청 걸리기 때문에 승부가 일찌감치 기운 경기라면 3쿼터 종료나 4쿼터 몇 분 지나서 빠져나가는 것도 방법. 실제로 이 때문에 접전 경기가 아니라면 4쿼터쯤 되면 관중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고, 종료 직전쯤 되면 절반 가까이 비어 있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그 유명한 티맥 타임 당시 관중석을 보면 빈자리가 많고, 출입구 근처에서 서서 보는 팬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장에 가봤으면 경험했겠지만, 여기는 경기장 규모가 더 크고, 그나마 뉴욕 같은 곳을 빼면 대중교통 이용자보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차 빼는데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스테이플스 센터의 경우 하루 최대 주차비가 정해져 있기도 하므로, 그냥 포기하고 경기 다 보고 경기장 주변에서 저녁 먹고[119] 느긋하게 가는 것도 방법.
만약 주차비나 밤길 운전이 걱정된다면[120] 차선책은 우버를 부르는 것이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거의 대부분은 좋은 기사들이고, 숙소까지 논스톱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다. LA 같이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는 한인 택시도 이용할 수 있다.
14. 관련 문헌
- 실전 NBA - 새벽소리 기획팀 편. 새벽소리. 1994.
- NBA 농구기술을 훔쳐라 - 유우키 쇼지 저/김혜원 역. 하늘출판사. 1994.
- NBA 길라잡이 - 루키 NBA취재팀 편. 하늘출판사. 1995.
- 뚱딴지 NBA 탐방 - 덩크슛 편집부 저/김우영 그림. 대교출판. 1997.
- I LOVE NBA - 손대범 저/김민석 그림. 루키. 2004.
- TIME OUT: 최인선, 손대범의 LET'S TALK NBA - 최인선/손대범 저. 인21. 2006.
- I Love Basketball - 손대범 저. 지식프레임. 2008.
15. 관련 커뮤니티
- 디시인사이드 미국농구 마이너갤러리: 2022년 2월 28일을 기점으로 개념글 주작을 일삼는 이건형과 크범 등 일부 악질 유저들로 인해 옮겨졌다.
- NBA 갤러리: 2022년 2월 28일부로 미국농구 마이너 갤러리로 이전.
- NBA 매니아
- I Love NBA: 다음 카페이며 1999년에 개설된 커뮤니티로, 한국 NBA 커뮤니티 중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 네이버 카페 “Welcome to NBA”: 2019년에 개설된 커뮤니티로, 알럽느바의 영향을 받아 만든 신설 커뮤니티. “We Love NBA” 였다가 공모전 이후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16. 관련 문서
- 농구
- NBA 관련 인물
- 제리 웨스트: NBA 로고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 NBA G 리그
- NBA 플레이오프
- 2014년 NBA 플레이오프
- 2015년 NBA 플레이오프
- 2016년 NBA 플레이오프
- 2017년 NBA 플레이오프
- 2018년 NBA 플레이오프
- 2019년 NBA 플레이오프
- 2020년 NBA 플레이오프
- 2021년 NBA 플레이오프
- 2022년 NBA 플레이오프
- 2023년 NBA 플레이오프
- 2024년 NBA 플레이오프
- ABA
- BAA
- 드림팀
-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 시애틀 슈퍼소닉스
- 식스 맨
- NBA 드래프트/역대 1순위
-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 샥틴 어 풀
- 슈퍼팀
- NBA MVP
- All NBA Team
- All NBA Team/1980년대
- All NBA Team/1990년대
- All NBA Team/2000년대
- All NBA Team/2010년대
- All NBA Team/2020년대
- NBA All Defensive Team
- NBA All Defensive Team/2000년대
- NBA All Defensive Team/2010년대
- NBA All Defensive Team/2020년대
- 기타 NBA 관련 비디오 게임은 스포츠 게임 문서 참조.
[1]
BAA로 시작함.
[2]
원래 NBA라고 하면 이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 단체가 주관하는 프로 농구 리그를 의미하는 말로도 합쳐진 상황. NBL과
BAA가 합쳐지면서 둘의 이름을 합치다 보니 어쩌다가 리그가 아니라 협회가 되어버렸다. 이름은 전미 농구 협회이지만 국가대표 운영과는 관련이 없다.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USA Basketball'이라는 단체에서 관리한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데, 대부분 프로 선수이지만 국가대표로는 별개의 단체인
대한민국농구협회(KBA) 소속으로 출전한다. 어쩌다 보니 이름과 실체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리그임에도 협회라고 불리고, 미국과 캐나다 2개국이 참가하는 리그임에도 전국(national)란 이름이 붙어 있다. 물론 출범 당시엔 순수 미국 리그이긴 했지만.역사상으로 NBA의 전신인 BAA(Basketball Association of America)가 출범할 당시 American Basketball League와 National Basketball League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리그가 아닌 협회란 이름으로 출범했고, 이후 NBL과 합병하면서 현재 이름이 된 것이다.
[3]
페인트존
[4]
정확히는 공을 갖고 있는 선수와 감독만 부를 수 있다. 이 때문에 극적인 플레이가 나오기도 하는데, 볼 경합 중 볼을 잡을 순 있지만 잡는 동시에 라인 밖으로 나가는 경우 대부분 선수들은 볼을 잡지 않고 (몸은 밖으로 나가면서) 라인 안쪽으로 볼을 쳐낸다. 그런데 이게 공중에 떠 있는 짧은 순간 동안 쳐내는 것이다 보니 잘못하면 동료가 아닌 상대 팀에 주는 경우도 있고, 최악의 경우 상대 팀이 역습으로 손쉬운 득점을 하게 어시스트하는 꼴이 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단 한 번의 공격권이 매우 중요한 경기 후반의 경우 센스 있는 선수들은 공을 잡고 공중에 떠 있거나 밸런스를 잃은 상태에서 (아웃되기 직전) 심판에게 재빨리 타임아웃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경기 초반에 공격권 하나 얻자고 귀중한 타임아웃을 써버리는 것은 영리한 플레이가 아니다.
[5]
원래 12명이었으나 2011-12 시즌부터 일정의 빡빡함 때문에 예외적으로 CBA에서 조건부로 확대했었는데, 그 이후 시즌에도 적용되었다.
[6]
팀 파울 4개째 이후의 오펜스 파울은 팀 파울에 들어가지 않으며, 상대팀에게 자유투도 주지 않는다.
[7]
FIBA는 아예 명문화된 규정으로 정해 뒀으며, 지금도 유효하다. KBL은 초창기는 NBA와 같았으나, 현재는 정반대. 이 전통은 미국에서 처음 프로 리그를 출범시킨 야구에서 원정 경기가 계속될 때 유니폼이 점점 더러워지는 게 티가 덜 나게 하기 위해 어두운 색을 입으면서 시작되었다.
[8]
특이한 케이스로 LA 레이커스는 흰색이 아닌 노란색 저지를 홈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과거 푸른 색 저지 시절 이후 상징색이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바뀌면서(공식적으론 purple&gold라고 부른다) 리그에서 흰색 유니폼을 아예 안 입는 유일한 팀이었으며, 일단 노란색도 밝은 색이긴 하니 규정에도 어긋나지 않아 노란색 홈 유니폼이 팀을 상징하는 유니폼이 되었다. 그러나 99-00 시즌부터 얼터니티브 홈 져지로 흰색 바탕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는 당시 제리 버스 구단주의 딸이자 현 구단주인 지니 버스가 디자인한 것으로, 일요일 홈 경기에만 입는지라 Sunday Jersey라고도 불렸다. 여담으로 코비가 81점을 퍼부을 당시 유니폼도 이 흰색 유니폼. 지금은 협회 유니폼이 되어 자주 입는다.
[9]
정확히 말하면 홈 팀이 원하는 색(어두운or 밝은)을 고르고 원정 팀이 그 나머지 색을 택하는데, 대부분 팀들은 인기 있는 색이 고유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어두운 색이라 홈에서 어두운 유니폼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색이 밝은 색(노란색)인 레이커스 팬들이 불만을 갖기도 했는데, 홈에서 인기가 비교적 적은 보라색을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원정을 갈 때 노란색 유니폼을 많이 입다 보니 홈에서까지 입으면 거의 1년 내내 노란색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10]
가끔은 얼트를 입을 때도 있다.
[11]
이전에는 서머 리그나 올스타전 유니폼에만 스폰서 로고 및 광고 패치가 부착되었으며, 정규 리그 메인 유니폼에 부착된 것은 최초이다.
[12]
1이 어소시에이션 에디션, 2가 스테이트먼트 이런 식.
[13]
1961년에 ABL이 프로 농구 리그로서 처음 도입한 후, 1963년 EBA(훗날의 CBA), 1967년 ABA가 각각 도입했다.
[14]
CBA나
PBA를 제외한 일반적인 리그의 경우 정규 경기 시간은 쿼터당 10분씩 총 40분이고 연장은 5분이다. 즉 통상적인 리그들의 연장전을 포함한 경기 시간보다도 3분 더 길다는 얘기다.
[15]
여담으로
NHL도 정규 시즌이 대략 27주간 82경기로 NBA와 비슷한데, 정규 시즌이 10월 초부터 4월 초까지 농구 시즌과 거의 겹친다. 대신 여기는
포스트시즌이 NBA보다 2주 더 길다.
[16]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1994년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는 우승을 못 했다. 1라운드 3승 1패 이후 7차전만 세 번 연속 치렀으나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키츠에 패배. 즉, 당시 기준으로 NBA 역사상 가장 빡센 시즌을 보내고서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17]
하지만 KBL도 리그 선수층에 비해 일정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장 사용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
[18]
두 차례 모두 파업(strike)이 아니라 직장 폐쇄(lockout)였는데 국내 팬들은 이 차이를 인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다고 나서는 것이고 직장 폐쇄는 회사 측에서 일자리를 주길 거부하는 것이다. NBA의 경우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새로운 연봉 체계에 대한 선수 노조와 구단주(일반 노사 갈등에 대입하면 사측의 입장에 해당한다) 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NBA 선수들의 고용주는 NBA가 아닌 각 팀이고, 각 팀은 독립된 기업의 형태로 노동자인 선수들을 고용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노사 협상은 선수노조측과 구단주 측 사이에서 이뤄진다. 일부 팬들은 NBA사무국이 사측이라고 착각하는데, 사무국은 리그를 치르는 독립적인 사업체들인 팀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측인 구단주들과 노동자측인 선수들 사이를 중립적인 위치에서 중재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NBA 사무국의 힘은 의외로 크지 않다. 팀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리그를 운영하는 것이 이들의 존재의의이다. LA 클리퍼스의 전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의
인종차별 망언 당시 그를 쫓아낼 수 있었던 것도 구단주들이 일제히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크리스 폴 트레이드 비토 역시 총재의 권한으로 비토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구단이 매각 진행 중이라 구단주가 없어 구단주를 대행하던 자격으로 한 것. 계약이나 트레이드 절차 자체가 하자가 있지 않는 이상 합법적인 트레이드를 비토할 수 있는 권한은 총재에게 없다. 비유하자면 총재는 대통령이 아니라
UN 사무총장에 가까운 위치다. 실제로 NBA 운영비 역시 구단주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
[19]
여담으로 99시즌 당시 경기 수가 줄었지만, 경기가 적어졌다고 더 수월해진게 아니라 오히려 일정은 더 빡세졌다. 시즌 자체는 3개월로 절반이 되었는데, 정작 경기 수는 82경기의 61%다 보니까 중간 휴식시간이 적어져서 이틀 연속 경기를 뛰어넘는 3일 연속 경기가 나오는 등, 안 그래도 빡센 일정이 더욱 빡세졌다. 그래서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노장들이 많은 팀들 중 몇몇은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리그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정규 시즌 성적을 거뒀음에도 2라운드에 포틀랜드에 탈락한 전 시즌 준우승팀 유타 재즈.
[20]
그 외에도 90년대 No.2 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하킴 올라주원, 전성기 때에는 조던 다음으로 아이코닉한 플레이어였던
찰스 바클리, 80년대 후반부터 당대 최강의 스윙맨으로 평가받았던
클라이드 드렉슬러, 당대 최고의 엘리트 센터로 불린
패트릭 유잉, 조던과 파이널에서 두 번이나 부딪힌
칼 말론 &
존 스탁턴 콤비, 조던의 복귀 이후 첫 파이널 상대로 맞부딪힌 것으로 잘 알려진
게리 페이튼&
숀 켐프 콤비, 신흥 강자
샤킬 오닐과 한 때 리그의 인기를 선도할 슈퍼스타로 주목받은
페니 하더웨이 등 지명도가 높은 스타들이 많았다.
[21]
물론 NBA가 구단별 선수 숫자가 다른 인기 종목 대비 적기 때문에 선수당 연봉이 높은 것도 있지만, NBA는 세계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 평균 연봉 순위에서도 단연 1등이다.
[22]
사실 NBA는 90년대부터 항상 북미스포츠에서 가장 연봉 수준이 높은 리그였다. 풋볼보단 항상 인기가 떨어지고 야구와는 비슷한 수준에 하키보다는 확연히 높은데, 저 중에서 선수단 규모가 가장 작으니 당연하기도 하다.(특히 NFL의 로스터는 53명에 달한다) 최초의 연봉 백만 달러 선수는 NHL보다 2년 늦은 79-80시즌에 나왔지만(
모제스 말론), 최초의 천만 달러, 2천만 달러 이상 및 3천만 달러(동시), 4천만 달러 이상 연봉 모두 NBA에서 나왔다. 특히 전 세계 프로선수들 중 누구도 순수연봉으로 2천만을 못 넘던 96년 당시에
마이클 조던은 곧바로 3천만 달러 연봉에 사인하기도 했다. 4천 만달러의 벽을 깬 것도
스테판 커리였는데, NHL은 2023-24시즌까지 2천만 달러를 넘긴 선수조차 없는 상황. 다만 5천만달러 연봉의 경우
오타니 쇼헤이가 2023년에 편법계약을 맺어서 비교하기가 애매하다.
[23]
다만 2020년대 사우디 축구 리그가 미쳐버리면서(?) 이쪽은 논외가 되긴 했다. 보통 유럽축구나 MLB의 스타 선수들이 300, 400억 정도의 연봉을 받는데, 2022년 사우디로 간
호날두의 경우 비공식이긴 하지만 연봉이 무려 약 2700억원(...)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2010년대 거품이 심하던 중국 슈퍼리그처럼 사우디도 이 연봉을 언제까지 감당할 순 없어보이기에 기간 한정 특이 케이스로 봐야 할듯.
[24]
이러다보니 MLB도 2020년대 들어
피치 클락 도입 등 경기 템포를 빠르게 하기 위한 여러 규정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5]
2020년대
인스타 기준 더 위로는 축구의
호날두,
메시,
네이마르, 크리켓의
비라트 콜리 뿐이다.
[26]
# 한편 유고브를 인용한 2019년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서는 미국인의 43퍼센트가 트라웃의 이름을 들어봤다고 한다.
#
[27]
현재 풋볼 경기장인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년 올스타전이 10만 명 넘게 동원하며 깨졌다.
[28]
NFL은 28억 달러, MLB는 18억 달러.
[29]
전체 구단 가치 1위는 NFL 댈라스 카우보이스, 2위는 MLB 뉴욕 양키스, 3위는 뉴욕 닉스, 4위 LA 레이커스, 5위 골든스테이츠 워리어스 순이다. 다른 해도 농구의 경우 뉴욕 닉스, LA 레이커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이 3팀이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30]
2010년 마이클 조던이 샬럿 호네츠를 2억 7500만 달러에 인수했는데, 2020년 성적도 인기도 바닥인 이 구단의 가치는 무려 15억 달러이다. 2010년 구단 가치 1위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18억 달러였고 2020년 맨체스터의 가치는 38억 달러인 걸 생각하면 NBA의 성장을 알 수 있다. 참고로 2010 닉스는 NBA 1위였지만 전체 50위로 순위 표에서 턱걸이였고 구단 가치는 5800만 달러였다.
[31]
야구라는 스포츠가 북중미-카리브해 국가들과
한국이나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몇몇 국가 등 소수의 국가에서만 국한하여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게다가, 야구가 가진 고민 중 하나가 동아시아 3개국을 뺀, 야구가 좀 인기있는 나머지 나라 상당수가 시장성이 작은 나라들이라 중계권이라든지 기타 수익을 그리 기대하기 어렵다. MLB권을 빼면 일본, 한국, 대만, 멕시코 리그 정도가 사실상 프로 선수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는 리그의 마지노선이다.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글로벌 야구 스타라는건 존재하기 어렵고,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MLB 평균 관중연령이 2020년대 초반 기준 58세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젊은 층에선 야구선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
일본인들이 충격 먹은 오타니 쇼헤이의 미국 인지도.
[32]
배구도 있긴 하지만, 배구는 농구에 비해 세계 골고루 인기가 있다고 보긴 어려우며 프로스포츠로 가면 더욱 마이너해진다. 애초에 세계적으로 농구의 인기를 뛰어넘는 단체구기종목은
축구밖에 없다.
[33]
더구나 농구나 축구는 앞서 언급된 다른 구기 종목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바로 면적과 인원수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1 대 1, 2 대 2 같은 소규모의 인원으로도 경기가 가능한 데다
풋살이나 하프코트 경기와 같이 제한된 면적에서도 대결이 가능하다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특징까지 지녔다. 여기에 옥외에서나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전천후성까지 가지고 있어 생활 스포츠로도 손색이 없다.
[34]
1993-94 시즌
나이지리아의
하킴 올라주원, 2004-05, 2005-06 시즌
캐나다의
스티브 내시, 2006-07 시즌
독일의
디르크 노비츠키, 2018-19, 2019-20 시즌
그리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 2020-21, 2021-22, 2023-24 시즌
세르비아의
니콜라 요키치, 2022-23 시즌
카메룬의
조엘 엠비드가 해당된다. 다만 올라주원 같은 경우 후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를 위해 1993년에 이미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이후 미국으로 귀화를 해서 순수 비미국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편이고, 마찬가지로 엠비드도 후에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를 위해 2022년 9월에 미국 시민권을 획즉하고 이후 미국으로 귀화를 해서 순수 비미국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편이다.
[35]
1994년
나이지리아의
하킴 올라주원, 2007년
프랑스의
토니 파커, 2011년
독일의
디르크 노비츠키, 2021년
그리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 2023년
세르비아의
니콜라 요키치가 해당된다. 다만 올라주원 같은 경우 후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를 위해 1993년에 이미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이후 미국으로 귀화를 해서 순수 비미국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편이다.
[36]
2001-02 시즌
스페인의
파우 가솔, 2014-15 시즌
캐나다의
앤드류 위긴스, 2015-16 시즌
도미니카 공화국의
칼앤서니 타운스, 2017-18 시즌
호주의
벤 시몬스, 2018-19 시즌
슬로베니아의
루카 돈치치, 2023-24 시즌
프랑스의
빅터 웸반야마가 해당된다.
[37]
1992-93, 1993-94 시즌
나이지리아의
하킴 올라주원, 1994-95, 1996-97, 1997-98, 2000-01 시즌
자이르 -
콩고민주공화국의
디켐베 무톰보, 2012-13 시즌
스페인의
마크 가솔, 2013-14 시즌
프랑스의
조아킴 노아, 2017-18, 2018-19, 2020-21, 2023-24 시즌
프랑스의
루디 고베어, 2019-20 시즌
그리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해당된다. 다만 올라주원 같은 경우 후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를 위해 1993년에 이미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이후 미국으로 귀화를 해서 순수 비미국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편이다.
[38]
1990-91, 1991-92 시즌
독일의
데틀레프 슈렘프, 1995-96 시즌
크로아티아의
토니 쿠코치, 2006-07 시즌
브라질의
레안드로 바르보사, 2007-08 시즌
아르헨티나의
마누 지노빌리, 2020-21 시즌
필리핀의
조던 클락슨이 해당된다.
[39]
1995-96 시즌
루마니아의
게오르그 뮤레산, 2005-06 시즌
프랑스의
보리스 디아우, 2007-08 시즌
튀르키예의
히도 터콜루, 2013-14 시즌
슬로베니아의
고란 드라기치, 2016-17 시즌
그리스의
야니스 아데토쿤보, 2018-19 시즌
카메룬의
파스칼 시아캄, 2022-23 시즌
핀란드의
라우리 마카넨이 해당된다.
[40]
다만, 상기 국가들 중 앙골라는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도 강팀 중 하나이고, 저들 나라는 빈부격차가 클지언정 최상위층의 구매능력은 다른 나라들 중상위층 못지 않다.
[41]
그래서인지 NFL은 부상의 위험이 적은 비접촉 경기인 (축구로 치면 풋살격인)
플래그 풋볼을 보급하는데 힘쓰고 있다. 나름 국제대회가 열리기도 해 생활스포츠로 알음알음 소개되고 있는데, 아예 미국은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개최국이 선정한 종목으로 플래그 풋볼을 포함시켰다.
[42]
다만 2006년부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년 이상이 지나고, 드래프트가 진행되는 해에 만 19세 이상이 되어야 드래프트 자격이 생긴다. 설령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유럽 등에서 19세보다 어린 나이에 프로생활을 시작한 해외 선수라고 해도 나이 조건은 만족해야 한다.
[43]
다만 올라주원 같은 경우 후에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를 위해 1993년에 이미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이후 미국으로 귀화를 해서 순수 비미국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편이다.
[44]
현재 디비전은 전략상 의미보다는 미국이 워낙 땅덩이가 넓기 때문에 같은 디비전(=가까이 있는) 팀들끼리 조금 더 경기를 많이 하고 지역이 먼 팀들은 적게 하는 의미가 크다. 동서부 해안 끝과 끝에 위치한 보스턴이나 골든스테이트 같은 팀들은 현재도 이동 거리가 긴 편인데, 만약 디비전이 없이 그냥 모든 팀과 같은 수의 경기를 하려면 죽어난다.
[45]
몬태나 주는 한반도 면적에 두 배에 가까운 거대한 주인데 인구가 110만 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저 광활한 영토에 퍼져 있기 때문에 주도 헬라나의 인구는 3만 명이 안되며, 가장 큰 도시인 빌링스의 인구는 주변 지역까지 전부 합쳐봐야(
서울로 따지면
경기도 지역까지) 18만 명 조금 넘는 수준. 이런 지역에 메이저 스포츠 팀이 살아남을 리가 만무하고, 실제로
마이너리그 팀이 몇 개 있을 뿐이다.
[46]
그나마 현재 NBA는 ABA에서 너기츠, 스퍼스 같은 팀들이 합류하고 텍사스에 매버릭스가 생기고, 시애틀과 샌디에이고에 있던 팀들이 중부지방으로 옮겨가서 저 정도이다.. 예를 들어
빌 러셀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68-69시즌을 보면 지역상 서부에 위치한 팀들 중 애리조나의
피닉스 선즈를 제외하면
시애틀 슈퍼소닉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샌디에이고 로키츠까지 전부 서부해안에 몰려있었다. 지역상 서부에 있는 팀이 5팀으로 동부에 있는 9팀보다 적었기에 이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누가봐도 동부에 위치한
애틀랜타 호크스와 중부팀이자 동부 디비전에 속하는
밀워키 벅스와 지척에 있는 중부지역팀
시카고 불스를 서부팀으로 분류해야 했다. 현재 팀 분포도를 봐도 중서부의 북부지방이 텅 비어있는데, 저때는 피닉스 동쪽부터 위스콘신 서쪽에 해당하는 광활한 중부 및 조지아를 제외한 남부 지역이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47]
르브론 제임스는 레이커스에 오기 전부터 LA에 집이 있었으며 매 여름 휴가를 여기서 보냈다. 그리고 이건 드문 경우도 아니다.
[48]
미국은 주마다 내는 세율이 다른데, 플로리다는 주 세율이 낮기 때문에 고액 연봉자인 NBA 선수들에겐 이 점도 굉장히 크다. 반대 경우가 세금이 높은 캐나다에 위치한
토론토 랩터스. 물론 여긴 외국인 데다 농구 인기가 비교적 적다는 점도 한몫한다.
[49]
이게 바로 NBA 팬들 사이에선 유명했던 Circus Trip이었다. 2016-17 시즌 이전까지 매년 11월에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통의 Ringling Bros와 Barnum & Baily 서커스를 위해 유나이티드 센터를 2주 간 비워져야 했었고, 이 기간 동안 장기 원정을 떠나는 불스는 의도치 않게 slow starter(초반 성적이 안 좋은 팀)의 오명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 과거 불스의 스케줄을 살펴보면, 매년 11월에 매 시즌 원정 7연전이란 가혹한 스케줄을 치러야 했다. 실제로 불스는 왕조가 끝난 이후 99-00 시즌부터(99 시즌은 1월 개막이라 서커스 트립이 없었다) 03-04 시즌까지 5시즌 연속 서커스 트립 기간 전패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04-05 시즌에도 11월 원정 7연전 동안 1승 6패에 그쳤다.
[50]
실제로
윌트 체임벌린은 필라델피아에서 뛰던 시절 뉴욕에서 살면서 필라델피아로 출퇴근을 했었다. 물론 NBA 선수들은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가는 짧은 거리도 비행기를 타고 간다. 그러나 뉴욕 원정 후 브루클린 원정으로 갈 때는 당연히 차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보통 NBA 선수들은 뉴욕 원정 시
맨해튼의 The Ritz, The Conrad 등 맨해튼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에 묵는데 여기서 바클레이 센터까지는 10km 정도 거리여서 뉴욕에 있는 세 공항 중 어디보다도 훨씬 가깝기 때문에 굳이 비행기를 타는 게 바보짓이기 때문.
[51]
위에서 언급한 포틀랜드-뉴올리언스처럼 같은 서부임에도 거리가 어마어마한 경우.
[52]
당시 시리즈 결과 클리퍼스 홈에서 열린 1차전은 2점 차 접전, 덴버 홈에서의 3차전만 너기츠가 승리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선 클리퍼스가 그리 어렵지 않게 승리했다. 시리즈 전체 득실점 차도 +7.6점.
[53]
나머지 두 디비전에서 승률 상위 8팀이 나온 경우
[54]
사실 이전까지 매년 7~8번 시드 팀의 동기부여가 쉽지 않았다. NBA는 워낙 상하위간 전력격차가 한번 나면 시즌내내 고착화되기 쉬운 리그다보니, 구단주나 팬들이 다른 종목들처럼 막차라도 플옵에 가면 계급장 뗴고 붙으니까 모른다, 우승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거의 갖지 않는다. 그래서 심할 경우는 8번 시드보다는 9번으로 탈락하는게 내년 드래프트에서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로터리 노리는게 낫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NBA에서 정규시즌 7~8위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저평가 되었다. 그것이 플인의 도입을 통해 이것도 잘못하면 날아갈 수 있다라는 긴장감을 주어 하위 팀들간에도 경쟁이 생기고, 단두대매치를 전국방송으로 가질수 있게 되어 7~8번 시드의 가치평가 재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55]
그리고 실제로 서부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는데, 9위와 10위 경기에서 승리하고 올라온 9위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7위와 8위 경기에서 패한 8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꺾고 8번 시드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56]
실제로 해당 시즌 서부에서는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가 당시 정규리그에서 9위 및 36승에 그쳤으나, 플레이 인 토너먼트에서 정규리그 8위
LA 클리퍼스를 제압하고 1라운드에 올라갔으며, 이후 1라운드에서
피닉스 선즈와 무려 28게임차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6차전 까지 갔다.
[57]
제레미 린,
조던 클락슨,
하치무라 루이 등 순수 아시아 대륙 태생이 아닌 선수들은 제외한다.
[58]
부모님은 일본 출신이었으나 와타루 미사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제2차 세계 대전에도
미군으로 참전했을 정도.
[59]
<바스켓볼 다이제스트> 2002년 2월호에 의하면 그가 뛸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의식이 팽배했으며, 감독은 그에게 한 마디 건네지 않은 데다 구단으로부터 강제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농구에서 뺄 수 없는 흑인 선수조차도 NBA에서 뛸 수 없었던 시절이었고 당시 시기는 일본과의 2차 대전이 종료된 지 겨우 2년 뒤였다.
[60]
1995년 오프시즌에
유타 대학교로 유학을 다닌 중국인 선수 마젠(马健)이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트레이닝 캠프에 초청받았으나 당시만 해도 아시아인들의 기량이 검증되지 않았던 데다가 신장과 포지션에서의 역할이 매치 되지 않는 트위너로 전락하면서 입단이 무산되었고, 후웨이동 역시 1998년과 2000년에
댈러스 매버릭스와
올랜도 매직에서도 각각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상으로 무산되었다. 북한의 유명 농구선수
리명훈 역시 1999년에 캐나다로 가서 NBA 진출을 위해 맹훈련했으나 결국 NBA 문턱에는 못 갔다.
[61]
하치무라 루이 역시 포함되지만 혼혈이라 제외.
[62]
성공은 아니지만
왕즈즈나
이젠롄도 기대치나 명성에 비해 못했을 뿐 롤 플레이어로 충분히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63]
야오밍은
게오르그 뮤레산이나 현 세대의
보반 마르야노비치와 비교해도 기동력과 체력이 월등했다.
숀 브래들리와 비교하면 파워가 압도적이었다. 평균적인 NBA 빅맨들에 비하면 다 느리고 체력이 약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풀타임 주전이 될 수 있고없고를 가리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만약 야오밍이 보반이나 뮤레산만큼 느리고 체력이 떨어졌다만 당시 평균득점이 110점이 넘던 피닉스 선즈같은 팀과 경기에서 풀타임으로 뛸 순 없었을 것이다.
[64]
이상민이 뛴 90~00년대만 하더라도 그의 신장 183cm는 국내 기준 '장신 1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치였지만, 지금은 KBL에서 6피트 가량의 포가들이 딱히 체격 좋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
[65]
2023년에는
빅터 웸반야마가 불참했고
르브론 제임스같은 경우도 공식 점프력 수치가 없다. 이 정도 특급 유망주면 콤바인에 참여해봤자 올라갈 주가도 없기 때문. 웸반야마의 경우 223cm 키에 점프력이 32인치(81.3cm)로 알려져있다.
[66]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같은 선수들은 스피드는 빠르지만 점프력은 NBA 가드 기준으로 평범한 편에 속하고 키가 178cm에 불과한데도 경기 도중에 덩크를 성공시킨 적이 있다. 즉, NBA 기준에서 178인 선수가 덩크 능력이 있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것.
[67]
린의 운동 능력이 NBA가드 중 톱급이란 오해가 있는데, 린의 민첩성은 NBA 가드치고도 빠른 편이다. 그러나 린의 운동 능력은 평균 이상 정도이지 톱급은 절대 아니다. 그는 점프력과 힘, 체력은 평범, 스피드만 뛰어나기 때문에 평균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드래프트 당시 린의 운동 능력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평가되었다. 린이 그간 아시아 가드들에 대한 편견을 벗어난 스타일인 것 맞지만 그건 플레이 스타일 얘기고 여기서 말하는 운동 능력 측면에선 NBA 가드치고 평균 이상인 게 맞다. 일단 운동 능력이 되어야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든 말든 할게 아닌가? 즉, 린은
야오밍과
이젠롄,
왕즈즈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체격의 NBA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 능력을 지닌 아시아계 선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느나, 운동 능력으로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란 소리, 다시 말해 평균 이상이란 소리다.
[68]
‘
엘리트주의’ 학원 스포츠에서 ‘린새니티’는 없다
[69]
야오밍의 루키 시즌을 다룬 다큐 Year of Yao에 보면 야오가 너무 소극적이고 얌전하다고 감독
루디 톰자노비치와 선배 쿠티노 모블리가 상의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야오밍은 원래 테크니컬 파울 하나 받지 않을 정도로 얌전했으나 루키 시즌에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테오 라틀리프에게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작렬하고 포효하다 테크니컬을 받자 동료들이 일제히 신나한다. NBA에선 얌전히 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심판에게 가끔 불평도 하고 말싸움도 하고 해야 기죽지 않으므로
야오밍은 NBA 기준으론 얌전한 편이지만 적극적으로 판정에 어필도 하고
트래시 토크도 하는 등 아시아 기준으론 전혀 얌전한 선수가 아니다.
[70]
당시 본업은
이화여자대학교 농구부 감독이었다.
[71]
사실 이건 KBL이 비정상적으로 인기몰이에 실패한 것이 크다.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스타들이 건재했고 이들 뒤를 잇는
김승현,
김주성도 큰 인기를 얻었지만 그 이상 전국구 스타를 키우는데 대단히 큰 실패를 했다. 연고지 이전도 구단 멋대로 하는 등 팬들에 대한 존중도 없고, 결정적으로 2009년
엑스포츠와의 단독계약으로 기존의 지상파 방송국 산하 스포츠채널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등 국농팬들이 애정을 붙힐 여지마저 없애버렸다. 그래서 한국과 관계가 1도 없어도 경기력이 넘사벽인 NBA를 보는 것이다. 2006년 WBC 당시 한국 대 미국 간의 경기에서 미국 대표팀이 더 큰 환호를 받은 이유가, 그나마 NBA팬들은 소수나마 있지만 한국 대표팀의 팬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농구 자체는 꽤 인기 있지만 (한국 팬에게 딱히 어필할 요소가 없는) NBA는 마이너한 축에 속하며, 자국 리그인 KBL이 훨씬 처참한 것.
[72]
2015-16 시즌에는
skySports도 중계권을 구입하여 skySports에서도 SPOTV가 제작하는 중계 방송이 송출되었다. 그러나 현재 2023년은 중계하지 않는다.
[73]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우는 전 세계적 위상과 인기에 비해 이상하리 만큼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는 편이다. 사실 이건 코비가 이상한게 아니라, 국내에서 NBA인기가 절정이었던 90년대와 이후 NBA 인기가 부활한 2010년대 이전까지 2000년대에 전성기를 달린 선수들 모두 그렇다. 2000년대 당시 소수 있던 NBA카페들에서 코비팬덤의 규모는 원톱이었다. 르브론이 데뷔한 이후 마이애미로 이적했다가 클리블랜드로 다시 떠나는 시기까지는 한국에서 NBA 인기가 굉장히 침체되어 있었다(2003~2015). 이때는
KBO 리그의 황금기이기도 해서 야구에 밀리기도 했다.
[7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휴스턴 로키츠,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토론토 랩터스
[75]
서머타임 적용 시 13시간
[76]
대부분 특히 플레이오프는 동부 시간대로 발표해준다.
[77]
서머타임 적용 시 1시간
[78]
참고로 미국은 자국의 4대 메이저 스포츠 리그 이름에 국가명을 따로 붙히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뿌리를 따지면 유럽 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키는 National Hockey League, 미국에서 만들어진 풋볼은 National Football League, 야구는 Major League Baseball이다. 잘 찾아보면 미국에서 만들어지 지지 않은 스포츠 관련 조직명에도 국가명을 따로 안 붙이는 경향이 있긴 하다. 이런 경향은 국가명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정식 국가명은 United States of America(U.S.A./미합중국)이지만 미국인들끼리는 United States(U.S./합중국)라고 부른다.
[79]
물론 백인 선수들도 있었지만 이 경기에서 뛰지 않았다. 텍사스 웨스턴 대학은 당시 결승상대팀인 켄터키대(오랜 명문이자 당시 전원 백인으로 구성)를 포함해 백인이 주축인 대부분 상위권 대학과 달리 흑인들이 주축인 팀이었는데, 흑백차별에 반발하는 의미로 돈 해스킨스 감독의 결정과 백인선수들의 동의하에 결승전엔 흑인 선수 7명만 출전시켰고, 우승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언급하면 물론 당시에도 대학 무대에 흑인 스타들이 있긴 했고 텍사스 웨스턴이 토너먼트에서 꺾은 캔자스 대학에도 조조 화이트란 흑인 스타가 있었다.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루 알신더 모두 전 세대에 대학무대를 씹어먹은 선수들이었다. 다만 캔자스 대학은 한 세대 전
윌트 체임벌린이 활약할 대학으로 당시 기준으론 비교적 흑인 선수들에 오픈된 대학이었고, 켄터키 대의 아돌프 럽 감독처럼 당시까지 단 한명의 흑인선수도 리크루팅하지 않을 정도로 강경한 백인 위주 대학들이 많았다.
[80]
정작 이 발언의 대상인 버드는 자신을 '백인들의 희망'이라고 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첫 입단 시에는 팀의 동료들이 고깝지 않게 봤음에도 그랬다. 버드는 다큐멘터리에서 백인이고 흑인이고는 중요치 않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고 자신이 농구를 하게 된 것도 주변의 흑인들이 농구할 때 같이 끼어서 한 것이었다면서 인종차별과는 상당히 먼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아이제아 토마스와
데니스 로드맨이 한 인종차별 발언도 크게 개의치 않으며 경기가 더 중요하다고 할 정도로 대인배적인 면을 많이 보인 인물.
[81]
이와는 정반대로,
MLB에서는 미국 흑인 선수, 특히 투수나 포수 포지션의 선수들이 희소하거나 씨가 마른 지 오래이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여전히 미국 백인 투수가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한다든지, 두뇌 플레이에 능해야 하는 포수는 상대적으로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진 미국 백인이나 히스패닉과 소통이 원활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이 많은 게 현재 상황이다. 미국 흑인 포수는 찰스 존슨(前
플로리다 말린스)이 마지막 미국 흑인 포수로 이미 약 20년 전에 그 명맥이 끊겼을 정도.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미국 흑인 계층에서는 고된 마이너리그를 거쳐야 데뷔가 가능한 야구 대신 단시간에 프로 데뷔가 가능한 미식축구나 농구로 몰리는 게 현실이다. 다만, 뛰어난 운동 능력을 요하는 외야수의 경우에는 미국 흑인 외야수들이 꽤 있는 편.
[82]
저지, 모자, 두건, 티셔츠, 큰 장신구, 스니커스 등.
[83]
이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했던 두 선수가
앨런 아이버슨과
팀 던컨이다. 아이버슨은 평소에 개성 넘치고 화려한 힙합 패션 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
[84]
자세한 사항은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 참조.
[85]
의외로 책가방을 메고 기자회견에 나타나는 선수들이 많다.
러셀 웨스트브룩과
케빈 듀란트 등. 한동안 유행하던 패션 아이템이었다.
[86]
비유하자면 예전의
노홍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노홍철의 특이한 패션과 실험 정신을 호평하는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패션이었다.
[87]
리그 패스를 시청 중인 상태에서 다른 기기로 접속하면 시청 중이던 기기의 접속이 끊기며 로그아웃되어 버린다. 심지어 태블릿으로 경기 보며 박스 스코어 확인하려고 폰으로 모바일 앱을 켰을 뿐인데도 태블릿이 동시 접속으로 끊기며 로그아웃되는 경우가 있다.
[88]
2021년 현재는 NHL 신생 팀인
시애틀 크라켄이 2021-22 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할 예정으로 시애틀로서는 절반의 성공을 달성했다.
[89]
미국 스포츠계 자체가 친민주당적 성향이 대체로 강한 편이지만
야구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도 꽤나 많은 편이고 대표적인 모터스포츠인
나스카의 경우 공화당 성향이 좀 더 강한 편.
[90]
원래 2001년까지 NBA에는 '공식' 하위 리그가 없었다. 2009년 없어지기 전까지 6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CBA나 외에도 ABA, USBL 등 여러 소규모 리그가 존재하긴 했지만, 이들은 NBA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리그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NBA 구단 눈에 띈다고 바로 콜업되지는 못했다. 또한 어디까지나 다른 리그이기 때문에 스카우트 눈에 띄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2001-02 시즌에 출범한 NBA G 리그의 존재 덕분에 NBA의 경계선에 있는 선수들이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된 것. 추가적으로 NBA가 공식 운영하는 리그라 자금난으로 없어졌다 생겨났다 하는 다른 리그들과 달리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G 리그 출신으로 최초로 NBA에 콜업된 선수는 바로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이었다.
[91]
원래 C급까지 있었으나 2017 시즌부터 폐지.
[92]
미국 내 하부 리그 선수들은 시즌 내내 오디션을 보는 것에 가깝다. 해외로 가는 선수들은 곧 NBA를 포기하는 것. 비열하게 이중계약에 야반도주했던
버나드 블런트가 계약했던 리그는 문서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두 시즌 만에 망한 소규모 허접한 리그였다. 돈도 별로 안 주는 이런 리그들에서 뛰는 유일한 이유는 NBA 스카우터들에게 근접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NBA 스카우터들도 싸게 써먹을 수 있는 선수들을 찾기 위해(아래 나오지만 보통 10일 단위로 최소 연봉 계약) 이런 리그들을 샅샅이 뒤진다. NBA 팀과 연계도 되지 않았고 돈도 엄청 적게 주는(KBL에서보다 훨씬 적었다) 이런 리그조차도 스카우터들에 대한 노출도 때문에 선택하니, G 리그는 그만큼 선수들에게 훨씬 메리트가 큰 것이다.
[93]
훨씬 유명한 도시이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연고지인 오리건주 포틀랜드와 다른 곳이다.
[94]
15 시즌에 고작 4경기, 그 다음 시즌엔 31경기밖에 못 뛰는 등 입지가 불안했던 킬패트릭은 16년에
브루클린 네츠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95]
물론 WNBA는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여자농구리그이지만, 원래 경기 수준 문제로 인해 대부분의 여자스포츠리그는 남자스포츠리그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 이는 성별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경기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NBA올스타 주간에 열리는 Celebrity Game에서는 WNBA 현역 선수들이 남자연예인, 은퇴한 NBA선수들과 어울려서 뛴다. 한국의 프로스포츠 리그처럼 경기력 수준이 높지 않은데도 많은 돈 (WKBL의 연봉수준이 WNBA보다 훨씬 높다)을 주는 리그는 자체 수입만으론 절대 운영이 되지 않아 팀 이름 자체에 기업 이름을 넣는 식으로 스폰서를 받아야 한다.
[96]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리그가 아닌 단일 팀으로 운영되는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는 NBA보다 실력은 떨어지지만 NBA 경기에서 보기 힘든 묘기 위주의 농구로 지금껏 살아남았고, 위에 언급된 CBA는 NBA 팀이 없는 중소 도시만을 공략하며 2009년까지 살아남았다. CBA 팀 중 NBA 팀과 같은 도시에 동시에 존재했던 팀은 94년부터 96년까지 시카고에 있던 시카고 로커스뿐이었고, 그나마도 두 시즌뿐이었다. 이것도 90년대는 시카고에 농구 붐이 절정이었던 때였고, 빅마켓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그럼에도 인터넷 중계를 통해 어디서든 NBA를 보는 게 가능해진 2000년대에 더 이상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97]
이 때문에 2001년 당시 NBA의 첫 공식 하부 리그였던
NBA G 리그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었다. 그 전까지 ABA(70년대 그 ABA와 다르다), CBA, USBL 등 여러 프로 리그가 있었지만 이들은 하부 리그가 아니라 NBA와 별개로 운영되는 프로 리그였다. 이 때문에 CBA를 제외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리그를 접어야 했고, NBA에서 아깝게 탈락한 선수들은 CBA에서 뛰거나 해외로 가야 했다(
존 스탁스가 CBA 출신이고, CBA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필 잭슨의 경우도 있다). 그러나 G 리그는 NBA의 하부 기관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NBA 팀과 연계를 통해 시즌 중에라도
바이아웃 없이 언제든 NBA로 콜업될 수 있으며, NBA의 후원하에 진행되는 G 리그 올스타전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노출도가 더욱 높다. 물론 이런 리그가 생겨버리니 G 리그와 비교해 급여 차이도 크지 않은데 노출도나 안정성은 훨씬 떨어지는 CBA는 선수들 입장에선 거의 메리트가 없어진 셈. 사망 선고가 내려진 거나 다름없어 몇 년 후 리그가 없어지게 된다.
[98]
물론 동등하다는 건 공식적인 NBA 선수란 얘기일 뿐이지, 팀 내 입지는 당연히 최하위이다. 여기에 신인이라면 그 위상이 더욱 추락한다.
[99]
물론 NBA 팀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5만 불이 진짜 껌값처럼 버려도 되는 돈은 아니다. 다만 쓸모없는 선수를 로스터에 두고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다른 선수를 놓치는 게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손해를 무릅쓰고 선수들을 방출하는 것이다.
[100]
NBA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워낙 알아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택시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사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이 중 특이한 경우는
코비 브라이언트인데, LA의 악명 높은 교통혼잡을 버틸 수 없어서 경기장까지 자가용 헬리콥터로 출근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헬기는 코비의 개인 소유는 아니고 렌트한 것인데, 팀 동료 스티브 블레이크가 급하게 치료 받아야 할 때, 빌려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헬기를 타고 다녔지만 그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101]
이같은 케이스가 데뷔 후 표기 신장이 198cm에서 201cm, 다시 198cm로 바뀐
코비 브라이언트, 데뷔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 7피트(213cm)로 바꿨다가 다시 6-11로 낮춘
팀 던컨 등이 있다. 또한
스카티 피펜은 선수 생활 내내 6피트 7인치(201cm)로 표기되다가 선수 생활 말기인 30대 후반에 갑자기 6피트 8인치로 바꿨다.
[102]
206cm인 파워포워드는 조금 작은 감이 있지만, 208cm는 파워포워드 평균 신장이다.
[103]
2003년 드래프트 신체검사 결과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발 신은 키/반올림하는 걸 볼 수 있다.
[104]
이 정도 키의 슈팅가드들은 2004 덩크 챔피언 프레드 존스같이 롤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다. 183cm인
앨런 아이버슨은 워낙 예외적인 존재고, 그조차도 슈팅가드 수비를 191cm에 달하는 장신 PG 에릭 소노우가 대신 해줬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전성기 몇 년만 슈팅가드로 뛰었을 뿐 데뷔도 포인트가드로 했고, 커리어 대부분을 포인트가드에서 출전했다. 그는 슈팅가드 수비를 거의 할 수 없는 선수였기 때문.
[105]
말년에 6피트 2인치로 슬그머니 바꿨다.
[106]
물론 딕슨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위에 언급된 요소가 전부 다 적용된 케이스라고 보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목 집어놓고 무릎빼기로 키를 줄였던 맨발키 205~206 언저리의 선수가, 미국에선 굽 높은 농구화를 신고 신장을 약간 올려서 6피트 11인치까지 키웠다고 보면 말이 된다.
[107]
월튼은 극심한 부상으로 인한 오랜 투병으로 신체가 많이 굽어 현재 현역 시절에 비해 키가 많이 줄은 상태라 현재 월튼의 키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108]
원래 92년생인데 93년생으로 표기된 프로필이 돌아다녔다. 본인이 나이를 속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109]
정확히는 양말을 신은 상태에서 잰 신장. 여담으로 과거
제이슨 테리 같은 선수는 양말을 여러 겹 신고 신장을 잰 적도 있다고 한다.
[110]
NBA는 철저히 연차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기 때문에 연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소/최대 연봉이 달라진다. 10년차 이상 베테랑이라면 NBA와 풀타임 계약을 한 것만으로 1년에 293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 물론 NBA 입성이 아슬아슬한 선수의 경우 처음부터 1년 계약을 맺기보단 단기 계약을 맺는 게 보통. 또한 베테랑 선수들이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걸 막기 위해 3년 이상 뛴(연차로 따지면 4년차) 베테랑 선수들을 계약하는 팀에겐 NBA 차원에서 보상을 해줘서 2년 경험을 가진 선수(3년차)의 미니멈 연봉만 지불할 수 있게 해주고 차액을 NBA에서 보상해준다. 예를 들어 13년차 선수를 계약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팀은 원칙적으로 293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해당 규정으로 인해 3년차 선수의 연봉인 151만 2천 달러 정도만 지불해도 된다. 물론 해당 선수는 연봉을 다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그 차액인 142만 달러 정도는 NBA 사무국에서 지불해준다는 얘기.
#
[111]
물론 조던은 80년대 후반에 장기 계약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커리어 대부분 기간 동안 헐값에 뛰었다. NBA가 새로운 TV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장기 계약을 했는데, 그동안 치솟은 NBA의 인기 덕분에 그 계약 액수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계약 당시만 해도 NBA에서 1, 2위를 다투던 계약이 순위권에도 못 드는 헐값으로 전락한 것. 비슷한 예가
스카티 피펜 예를 들어 1995-96 시즌의 경우 조던의 연봉은 385만 달러로
토니 쿠코치보다 고작 29만 달러 많았으며 피펜은 심지어 쿠코치보다 50만 달러 넘게 적었다. 해당 시즌 연봉 1위는
패트릭 유잉의 1천 8백만 달러, 2위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981만 달러였으며, 당시 리그 평균 연봉이 415만 달러였으니 조던과 피펜이 얼마나 헐값에 뛰었는지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조던이 계약 기간이 끝난 97년, 98년에 초고액을 받을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지만, 무려 통합 6천 3백만 달러를 받은 것(선수 생활 받은 연봉 총액의 2/3)은
시카고 불스의 삽질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112]
물론 이런 선수들은 조던처럼 매 경기 농구화를 갈아 신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다.
[113]
여담이지만 영상을 보면 당시 감독 덕 칼린스가
필 잭슨 코치를 칭친하며 "저 친구는 곧 감독이 될 거에요"라고 하는데, 머지않아 본인의 자리에 잭슨이 앉게 된다.
[114]
다만 이건 그가 2라운드 출신 최소 연봉자였던 식서스 시절 얘기이다. 당시 그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지만 현재 그는 16년차 베테랑에 누적 연봉도 7천만 달러가 넘는 부자이니 지금은 다를 확률이 높다.
[115]
NBA Rookies 2005년 판에 나온 장면인데 당시 JR은 19세 신인이라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자기 돈으로 산 집이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아직 애였다.
[116]
르브론 제임스가 없는
클리블랜드와
스테판 커리가 없는
골든스테이트를 상상해봐도 좋다.
[117]
탱킹팀을 보러 가면 위층 구석 자리는 20~30달러로도 가능하다. 2024년 4월 모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홈경기 표를 경기 당일 구할 때 최저 28달러였다.
[118]
디트로이트의 경우 구장 바로 앞에 경전철이 있는데 다른 경기장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정말 안 탄다. 애초에 다운타운 한가운데 숙소를 잡은 게 아니면 경전철만으로 귀가하는 것도 힘들다.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은 경우 경전철을 타고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갈 순 있다. 경전철 정류장에서 한 3-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 단 막차가 9시 30분이라 공항버스를 타려면 9시 5~10분 쯤에는 나가야 한다. 4쿼터 중간에 나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119]
주변에 상가가 있어 밤 치안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120]
대한민국 대도시 운전자라면 뉴욕 정도를 제외한 미국 도시들에서 운전은 쉽게 느껴질 확률이 높다. LA를 기준으로 보면 일단 미국은 길이 굉장히 넓다. 기본적으로 큰 차가 많기 때문에 길이나 주차 공간을 크게크게 만들어놓으며, 고속도로건 일반 도로건 곡선 도로가 거의 없이 쭉쭉 뻗어 있기 때문에 길과 영어 표지판에만 익숙해진다면 오히려 한국의 서울이나 부산보다 훨씬 운전하기 수월할 것이다. LA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땅덩이에 400만 명이 안되는 인구가 분산되어 있는 곳이고, 다운타운과 주변의 베드타운에서 일제히 이 다운타운으로 몰려드는 출퇴근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교통 상황이 상당히 널널하다. 그리고 405번 고속도로가 혼잡하다곤 하나 퇴근 시간대의 내부 순환로나 올림픽대로 수준은 아니며, 쭉 뻗은 LA의 도로를 운전하는 건 매번 진행 방향을 확인해야 하는 기묘한 형태의 오거리가 난립하고 좁은 골목길들을 통과해야 하는 부산과 비할 바가 못 된다. 운전자들의 성향도 한국에 비해 훨씬 널럴하다. 답답한 대중교통망을 이용하느니 약간의 도로법 차이와 관행 차이 (특히 사람이나 차가 없어도 무조건 멈춰야 하는 Stop 표지판 등)에만 익숙해지면 웬만해선 운전하는 것이 더 낫다. 물론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뉴욕은 예외.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진짜 운전하기 최악인 곳은
보스턴이다. 여기는 운전자들의 성향이 난폭해서 진짜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