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1:45:44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4 LA 올림픽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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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아테네
1900
파리
1908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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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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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베를린
1948
런던
1952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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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멜버른
1960
로마
1964
도쿄
1972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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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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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2012
런던
31회 32회 33회 34회 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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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
미정
2040
미정
2044
미정
2048
미정
2052
미정
역대 동계올림픽 / 역대 하계패럴림픽 / 역대 동계패럴림픽
Citius, Altius, Fortius! - Communiter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 - 다 함께
}}}}}}}}}
<colcolor=#fff>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colbgcolor=#ea463b>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
Games of the XXIII Olympiad™ Los Angeles 1984
Jeux de la XXIIIe Olympiade™ Los Angeles 1984
파일: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로고.svg
파일:external/cdn.colorlib.com/1984-Los-Angelos-Summer-Olympic-Games.jpg
대회기간 1984년 7월 28일 ~ 8월 12일
개최지
[[미국|]][[틀:국기|]][[틀:국기|]]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슬로건 Play a Part in History
(역사의 한 장면)
마스코트 샘 (Sam)
주제가 Reach Out
참가국 140개국
참가선수 6,829명[1]
경기종목 21개 종목, 221개 세부 종목
개회선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선수 선서 에드윈 모지스
심판 선서 샤론 헤버
성화 점화 라퍼 존슨
개·폐회식장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시엄

1. 개요2. 마스코트3. 유치4. 개폐막식5. 특징
5.1. 냉전의 영향5.2. 최초의 흑자 올림픽5.3. 참가국별 특징
6. 경기 종목
6.1. 종목별 이야기
7. 메달8. 대한민국 선수단9. 한국측 중계진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올림픽 주제가
같은 기간 히트하여 LA 올림픽의 상징곡처럼 여겨지는 밴 헤일런 Jump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in the U.S.A.
"Celebrating the Twenty-third Olympiad of the modern era, I declare open the Olympic Games of Los Angeles."
나는 제23회 근대 올림픽을 기념하면서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개회 선언문.
1984년 7월 28일부터 8월 12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23회 하계올림픽.

2. 마스코트

파일:external/www.theimport.co.uk/olympic-mascots-sam.jpg
파일:external/images.visitbeijing.com.cn/Img214727908.jpg

대회 마스코트인 (Sam). 흰머리수리 엉클 샘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이글 샘'(イーグルサム, Sam the Olympic Eagle)이라는 애니메이션을 1983년에 TBS 테레비에서 방영한 바 있다.

3. 유치

파일: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유치 엠블럼.svg
1978년 제23회 하계 올림픽 유치전 당시 엠블럼

하계올림픽 대회 유치를 희망한 도시가 로스앤젤레스와 이란 제국 테헤란 둘 뿐이었다. 그마저 테헤란이 정치적 불안과 소요로 중도 사퇴하면서 1978년 5월 18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80차 IOC 총회에서 단독 후보로서 유치에 성공하였다.

4. 개폐막식

개폐회식 장소이자 주경기장은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주경기장인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열렸다. 52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LA 올림픽 주제가를 비롯한 음악들은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맡았으며, 그가 작곡하여 LA 올림픽 개막식에서 초연한 '올림픽 팡파레와 테마'(Olympic Fanfare & Theme)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연주회에 오를 정도의 명곡이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하고 개막식에서 초연한 '올림픽 팡파레와 테마'
개막식
폐막식

특히 폐막식 때에는 다음 개최지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되었으며[2]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오륜기를 LA 시장으로부터 전달받아 염보현 당시 서울특별시장에게 넘겨주었다. 직후 시작된 폐막식 초반에 서울 올림픽 로고 및 마스코트 호돌이가 등장하기도 했다.[3] 올림픽기 이양 후, 차기 개최지 대한민국의 무대로 부채춤을 선보였다. 4년 후, 부채춤은 서울올림픽 폐막식 때 다시 한 번 등장하여 바르셀로나의 플라멩고 무용단과 함께 부채와 치마폭을 펄럭이며 문화를 뛰어넘는 조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때 LA 올림픽 폐막식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비로소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걸 목도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느꼈던 그 벅찬 감정은 2020년대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4년 뒤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면모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한 원동력으로 이어진다.

폐회식때는 독특한 광경이 나오기도 했는데, 바로 폐회식 중 경기장 중앙에 UFO가 착륙해 거기서 외계인이 걸어나오는 연출을 했다. 외계인 역을 맡은 사람은 키가 244cm였던 학생으로 UFO에서 걸어나와 "올림픽이 좋아서 먼 길을 날아왔어요!"라고 외치는 역을 말았다.

5. 특징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공산권의 불참, 다른 하나는 돈잔치.

5.1. 냉전의 영향

직전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었다. 하나는 모스크바 올림픽 파행에 대한 소련 공산권 국가들의 보복. 사실 참가국 수는 당시까지는 역대 올림픽 최다. 불참국도 적었다.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도 중국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결정과 달리 올림픽에 참가했다. 중국은 당시 소련과 갈등을 빚는 대신 미국과 밀월을 맺는 관계였고,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독재자의 탈 소련 정책에 의해, 유고슬라비아는 비동맹세력의 맹주라는 점에서 소련의 입김을 덜 받는 나라였던지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참가가 가능했다.[4]

문제는 불참국들이 주로 소련, 동독 같은 스포츠 강국이라 올림픽 열기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점이다.[5] 공산권은 의도적으로 LA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과 일정이 겹치도록 프렌드쉽 게임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를 대신 열어서 올림픽의 흥행에 타격을 주었다.

사실 불참 이유는 다들 보복이라는 거 뻔히 알지만 이들 불참 국가의 공식적 명분은 '선수단 안전보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도 소련에 동조, 불참하였는데 이들의 보이콧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년 뒤의 대한민국이 개최한 86 아시안 게임까지 이어졌다.

이 문제는 다음 올림픽인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어느 정도 해소되고, 궁극적으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완전 해소된다.[6]

5.2. 최초의 흑자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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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ime_Inc_white.png
}}}}}}}}} ||

흑자를 본 올림픽이다. 8년 전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이 최악의 적자를 보면서 막을 내린 것과 달리,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중계권료의 폭등과 다양한 마케팅으로 흑자(250만 불)를 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는 올림픽의 지나친 상업화의 시초라는 점에서 오늘날 비판받기도 한다. 특히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피터 위버로스는 지나친 상업화를 추구했다는 이유로 관계자, 언론, 팬들로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올림픽이 끝난 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로 추대된다. 그런데 MLB 커미셔너로서도 역시 똑같은 짓을 했다.

그러나 위버로스의 올림픽 상업화 노선은 냉전 시대의 올림픽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도 많다. 올림픽을 개최할 때만 하더라도 이전 대회였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올림픽이 4대륙 올림픽으로 전락 + 제2의 뮌헨 참사를 막기 위한 보안 경비 투자의 증가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며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없는 살림 쥐어짜면서까지 올림픽을 유치시킬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서울올림픽 유치전 때 많은 국가들이 올림픽 유치를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올림픽의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고, 국가의 위력을 과시하는 쪽으로 변화해가면서 나타난 올림픽의 상업화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참고로 올림픽 후원사 중 하나인 맥도날드는 이 당시 프로모션 행사 과정에서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맥도날드는 '미국이 승리하면 여러분도 승리합니다'라는 캐치프라이즈를 퍼뜨렸다. 맥도날드 상품을 구매 시 카드를 주는데, 이 카드에는 올림픽 종목이 있었고 해당 종목에서 미국이 메달을 획득할 경우 경품으로 빅맥(금메달), 감자튀김(은메달), 콜라(동메달)를 무료로 주는 형태였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당연히 비용도 크게 상승한 것. 이로 인해 맥도날드는 상당히 큰 손실을 보아야 했다.[7]

5.3. 참가국별 특징

  • 대한민국은 다음 대회 개최지로서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전 대회까지 금메달 단 한 개를 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 대회를 통해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전체 10위, 메달수 스웨덴과 공동 10위)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또 이후의 선전을 예고하였다. 주로 양궁, 복싱, 레슬링, 유도에서 거둔 수확이었고,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9](여자 농구 및 여자 핸드볼)이 나온 대회이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호남권 출신 첫 금메달리스트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의 금메달은 전라도[10] 경상도 출신[11]이 모두 가져가고 충청도, 강원도, 수도권 출신은 최고 성적이 은메달이며, 제주도 출신은 메달을 못 땄다.[12]

    대회가 끝난 후 정부는 선수 환영식을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이렇게 성대하게 치른 이유는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있겠지만, 그전에 3S 정책하고도 연관이 있었다. 당시 이 환영식은 1984년 8월 25일에 여의도광장에서 열렸으며 '영웅 돌아오다'란 제목으로 KBS 1TV와 MBC TV를 통해 동시 생중계되었다. 영상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선수들이 전두환 대통령을 찬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마라톤의 영웅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옹이 성화봉송 주자로 발탁되기도 했으며, 코리아타운 앞을 지나가 많은 교포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 다음에 성화를 넘겨 받은 이가 미국 아시아계 최초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새미 리 옹이다.
  • 미국이 금메달 83개를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는데, 사실 홈그라운드의 이점 + 소련 및 동유럽 불참으로 인한 미국 쪽 심판의 편파 판정이 겹친 결과였다. 한국도 복싱에서 많은 피해를 본 편이었다. 플라이급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김광선이 편파판정으로 1회전 탈락한 사례도 있었으니까. 김광선은 다음 대회인 서울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했다. 다음 대회인 서울올림픽에서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가 우세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박시헌에게 패배해 은메달을 딴 것도 올림픽 당시 미국측의 편파 판정에 따른 반작용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6. 경기 종목

6.1. 종목별 이야기

육상 여자 3,000m 경주
  • 이 대회에서 화제가 되었던 경기들 중에는 남아공 출신의 영국 선수 졸라 버드(Zola Budd),[17] 미국의 메리 데커가 대결한 육상 여자 3,000m 경주가 있었다. 그런데 경기 도중에 그만 둘이 충돌해 메리는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하였고, 졸라도 페이스가 떨어져 7위에 머물렀다. 이에 미국 언론이 "버드가 일부러 데커의 발을 걸었다"며 주장하고, 영국 언론은 "메리가 부주의했던 것"이라며 맞섰다. 결국 당대 세계 정상급이었던 두 선수는 이후에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채 은퇴하였고, 올림픽 역사에서 두고두고 비운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다만 졸라 버드는 현재 미국으로 이민 가 어느 고등학교에서 코치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육상 여자 마라톤
  • 이런 저런 편견 때문에 오랫동안 도입되지 않았던 여자 마라톤 부분이 1981년 IOC에서 정식 종목으로 승인하면 본 올림픽에서 첫 시행되며 여자 육상에서는 마라톤이 처음으로 채택된 대회라는 의미를 갖는다. 금메달은 지난해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하기도 했던 미국의 조엔 베노이트가 2시간 24분 24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18] 사실, 종목 역사상 첫 금메달을 차지한 베노이트보다 더 화제가 된 인물이 있었는데, 스위스 국가대표였던 가브리엘라 안데르센-쉬스로, 1945년생이던 그녀는 당시 39세의 나이로 올림픽에 출전, 마지막 400m를 거의 걷다시피 하면서까지 결승선을 통과해서 화제가 됐었는데, 나중에 인터뷰에서 꼭 완주해서 IOC가 여자 마라톤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게 옳은 결정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7. 메달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rowcolor=#ea463b,#ffffff> 순위 국가 메달 합계
1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 미국
83 61 30 174
2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파일: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svg
]] 루마니아
20 16 17 53
3 [[서독|
파일:독일 국기.svg
]] 서독
17 19 23 59
4 [[중국|
파일:중국 국기.svg
]] 중국
15 8 9 32
5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 이탈리아
14 6 12 32
6 [[캐나다|
파일:캐나다 국기.svg
]] 캐나다
10 18 16 44
7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 일본
10 8 14 32
8 [[뉴질랜드|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 뉴질랜드
8 1 2 11
9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 유고슬라비아
7 4 7 18
<rowcolor=#000> 10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 대한민국
6 6 7 19
11 [[영국|
파일:영국 국기.svg
]] 영국
5 11 21 37
12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 프랑스
5 7 16 28
13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 네덜란드
5 2 6 13
14 [[호주|
파일:호주 국기.svg
]] 호주
4 8 12 24
15 [[핀란드|
파일:핀란드 국기.svg
]] 핀란드
4 2 6 12
16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 스웨덴
2 11 6 19
17 [[멕시코|
파일:멕시코 국기.svg
]] 멕시코
2 3 1 7
18 [[모로코|
파일:모로코 국기.svg
]] 모로코
2 0 0 2
19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 브라질
1 5 2 8
20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 스페인
1 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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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벨기에|
파일:벨기에 국기.svg
]] 벨기에
1 1 2 4
22 [[오스트리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 오스트리아
1 1 1 3
23 [[케냐|
파일:케냐 국기.svg
]] 케냐
1 0 2 3
[[포르투갈|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 포르투갈
1 0 2 3
25 [[파키스탄|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 파키스탄
1 0 0 1
26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 스위스
0 4 4 8
27 [[덴마크|
파일:덴마크 국기.svg
]] 덴마크
0 3 3 6
28 [[자메이카|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 자메이카
0 1 2 3
[[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 노르웨이
0 1 2 3
30 [[그리스|
파일:그리스 국기.svg
]] 그리스
0 1 1 2
[[나이지리아|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 나이지리아
0 1 1 2
[[푸에르토리코|
파일:푸에르토리코 기.svg
]] 푸에르토리코
0 1 1 2
33 [[콜롬비아|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 콜롬비아
0 1 0 1
[[이집트|
파일:이집트 국기.svg
]] 이집트
0 1 0 1
[[아일랜드|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 아일랜드
0 1 0 1
[[코트디부아르|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 코트디부아르
0 1 0 1
[[페루|
파일:페루 국기.svg
]] 페루
0 1 0 1
[[시리아|
파일:시리아 국기.svg
]] 시리아
0 1 0 1
[[태국|
파일:태국 국기.svg
]] 태국
0 1 0 1
40 [[튀르키예|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 튀르키예
0 0 3 3
[[베네수엘라|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 베네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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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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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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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카메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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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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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타이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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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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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니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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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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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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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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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공화국, 시리아, 알제리, 잠비아, 중국, 코트디부아르는 이 대회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모로코, 중국, 포르투갈은 첫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했다.

8. 대한민국 선수단

  • ▶대한민국 참가 성적 :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 획득. 종합순위 10위.
  • 금메달 : 레슬링(자유형 68kg) 유인탁
  • 금메달 : 레슬링(그레코로만형 62kg) 김원기
  • 금메달 : 복싱(미들급) 신준섭
  • 금메달 : 여자 양궁(개인) 서향순
  • 금메달 : 유도(71kg) 안병근
  • 금메달 : 유도(95kg) 하형주
  • 은메달 : 여자 농구
  • 은메달 : 레슬링(자유형 52kg) 김종규
  • 은메달 : 복싱(웰터급) 안영수
  • 은메달 : 유도(60kg) 김재엽
  • 은메달 : 유도(65kg) 황정오
  • 은메달 : 여자 핸드볼
  • 동메달 : 레슬링(자유형 57kg) 김의곤
  • 동메달 : 레슬링(그레코로만형 52kg) 방대두
  • 동메달 : 레슬링(자유형 48kg) 손갑도
  • 동메달 : 레슬링(자유형 62kg) 이정근
  • 동메달 : 복싱(라이트급) 전칠성
  • 동메달 : 여자 양궁(개인) 김진호
  • 동메달 : 유도(95kg) 조용철

9. 한국측 중계진

10. 관련 문서



[1] 남자: 5,263명 / 여자: 1,566명 [2] 그리스, 미국 국가 다음으로 마지막에 연주되었다. 그리스는 올림픽의 창시국가이자 첫 개최국 자격으로, 미국은 당시 개최국 자격으로, 대한민국은 차기 개최국 자격으로. [3] 그런데 잘보면 호돌이의 등장이 살짝 모양 빠진다. 무대에 오르면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이때문인지는 몰라도 머리에 있던 상모가 떨어져나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4] 그 덕에 이 대회의 금메달 순위에서 루마니아는 2위, 중국은 4위, 유고슬라비아는 9위를 각각 차지했다. 참고로 대한민국도 이러한 상황에 큰 이익을 봤고, 이 대회를 기점으로 금메달 수가 많아졌다. 루마니아의 경우 아무리 타국의 불참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도 이런 순위는 전무후무하다. [5] 비유하자면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등의 유럽 국가들이 대거 빠지고 그 다음 개최지인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콜롬비아, 칠레, 멕시코 등 중남미의 강호들이 빠진 상황을 생각해보면 된다. 아니면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중국, 일본 가운데 최소 하나가 참가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6] 서울 올림픽은 냉전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나 대한민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북한과, 북한에 동조했던 쿠바, 에티오피아(당시 국명은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 등이 불참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IOC에서 제명되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었다. [7] 이걸 심슨 가족에서 크러스티가 했다가 큰 손해를 보는 것으로 패러디했다. [8] 동계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가 처음. 역시 미국이 개최국였다. 이 때 대만은 선수단이 미국까지 갔으나 이런 국호 문제에 불복하고 불참했다. [9]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의 여자배구 동메달이다. [10] 유인탁 (전북 김제), 서향순 (광주), 신준섭 (전북 남원), 김원기 (전남 함평). [11] 안병근 (대구), 하형주 (경남 진주). [12] 충청도와 수도권 출신(서울·경기는 여자 핸드볼에서 각각 2명), 인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강원도 출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제주도 출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가져갔다. 개인 종목에서 첫 제주도 출신 금메달리스트는 2024 파리 올림픽 사격종목에서 10m 공기권총으로 금메달을 딴 오예진이다. [A] 첫 정식 종목 채택 [시범] 시범 경기 종목 [A] [시범] [17] 올림픽 직전에 열린 5,000m 결승에서 메리 데커의 기록을 깨고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해 화제가 된 선수로, 당시 남아공 정부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기에 할아버지의 모국인 영국으로 귀화해야 했다. [18] 2위와 1분 26초나 차이나는 아주 압도적인 기록이었으며, 15km 이후론 줄곧 선두였다. [19]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유격수 바비 위트 주니어의 아버지. [20] 출처 국제스포츠정보센터 [21] 개막식에서 한국 대표팀 기수를 맡았다. [22] 출처: <1985 KBS 연지>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