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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NBA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
2. 창설 이전
최초의 프로농구 리그는 1898년에 창설된 NBL이었지만, 몇몇 북동부 지역 유지들의 운영에 의존하며 선수 수급 등 운영상 문제로 1904년에 해체되었다. 1925년에 ABL이 창설되었으나, 근거지가 시카고 등 북동부라 야구의 인기에 밀린 데다 재정난과 흥행요소 부재 등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1931년에 해체되었다.[2]그러나 농구 창시자 네이스미스 박사와 수많은 농구인들의 노력으로 1932년 국제농구연맹(FIBA)이 창설됐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농구 종목이 채택되어 미국 대표팀이 처음 금메달을 딴 걸 계기로 농구의 저변이 넓혀졌다. 1933년에 ABL이 재개된 후 1937년에 NBL이 창설되어 NBA의 탄생을 위한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3. 초창기
1946년에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 총재 모리스 포돌로프의 주도로 피터 A. 타이렐 등 실내경기장 소유주 11명이 모여 아메리카 농구 협회(BAA)를 발족했다. BAA는 초기부터 안정적 재정능력을 확보해 기존의 ABL과 NBL을 점차 밀어냈고, 1949년에 NBL을 흡수합병하면서 현 명칭으로 바뀌었다.1948년에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포트 웨인 졸너 피스톤즈, 로체스터 로열스, 인디애나폴리스 제츠 등 4개팀, 1949년에 시라큐스 내셔널즈,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시보이건 레드스킨스, 데이턴 렌즈(Dayton Rens), 덴버 너기츠(현재의 덴버 너기츠와는 무관), 앤더슨 패커스 등 6개팀이 각각 합류함으로써 17개 팀 체제가 정립되었으나, 합류 팀 대다수가 NBL 때처럼 경영이 부실한 데다 너무 많아서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다음 해에는 11개 팀으로 줄었고, 1954년부터 8개팀 체제로 바뀌었다. 또 NBL 합병 이후 알 세르비와 레드 홀즈먼, 돌프 쉐이즈, 조지 마이칸 등 우수 선수들까지 끌어모았으며 1954년에는 24초 슛클락을 처음 도입했다.
리그 초기에는 조 포크스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워리어스가 강세였으나, 1948 NBL 합병 후 1950년대 초반까지 조지 마이칸이 이끄는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씹어먹다가 1954년 마이칸이 은퇴해 시라큐스 내셔널즈, 보스턴 셀틱스,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등이 각축을 벌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셀틱스의 황금기 등으로 주목을 받왔으나, 1960년대 초중반까지 당시 8개밖에 없던 팀 수와 대도시 중심의 리그 운영은 우수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장애로 적용했고, TV 중계권 확보마저 잘 안 돼 흥행에서도 열세였다.
1963년부터 부임한 J. 월터 케네디 커미셔너는 단호한 태도로 리그 전체의 기강을 확립해 신생리그 ABA의 도전에 맞서 시카고 불스, 볼티모어 불리츠, 샌디에이고 로키츠, 뉴올리언스 재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등 신규팀 수를 점차 늘려 리그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1975년에 정치인 출신 래리 오브라이언이 커미셔너로 취임해 1976년부터 경쟁단체인 ABA를 흡수하면서 4개팀( 인디애나 페이서스, 뉴저지 네츠, 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이 가입했고, 줄리어스 어빙과 아티스 길모어, 조지 거빈, 댄 이젤, 모제스 말론 등 ABA 때 선수들까지 끌어모아 선수 수급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1979/80 시즌부터 3점 슛이 도입했다.
위와 같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NBA보다는 대학 농구가 인기가 많을 뿐더러 결승전마저도 녹화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고, 게다가 여러 번 터지는 선수들의 마약 스캔들 등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다.[3] 심지어는 덴버 너기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유타 재즈를 위시한 3개의 비인기팀들이 합병을 의논하기도 했다.
4. 조던의 등장
그러나 1979년에 대학농구 스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가 데뷔한 후 1984년에 입단한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NBA는 인기가 급상승했고, 그해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1989년부터 드래프트를 2라운드제로 바꾸고 1993년에 플레그런트 파울 규정을 제정하는 등 리그 내부의 질 향상에 주력하는 한편, 해외사무국을 지구촌 곳곳에 설치하고 유럽과 아시아 등지 유망주를 노리거나 미디어 사업과 해외중계권 판매를 강화하는 등 세계화 정책에도 주력했다.미국 내에서는 인기가 미식축구에게 많이 밀리고 야구와 2위 싸움을 하고 있지만 그 대신 세계적인 인기로는 미국 내 구기종목 중에서 최고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하다. 농구의 인기가 높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세계 2위라고 한다.[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이걸 보고 자신들도 중국 진출을 했으나 그다지 성과는 없다. 미국구기종목에서 가장 국제적으로 홍보를 잘한 프로 스포츠로 알아준다. 앙골라나 여러 아프리카 및 많은 나라에 현역선수들이나 농구 유망주들을 보내 친선경기 및 사인회를 꾸준히 하기 때문이다.
2011년 7월부터 단체교섭이 결렬되어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덕분에 시즌아웃이 될 뻔한 상황에서 타팀으로 이적도 막혔기에 선수들이 타국 리그로 건너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단체교섭이 늦게나마 타결되어 2011년 크리스마스에 시즌 개막하기로 합의하고 2011~12시즌을 66경기 시즌으로 진행했다.
2014년까지 총재는 유대인 출신인 전직 변호사 데이비드 스턴(1942년생)으로 1984년부터 총재를 맡고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NBA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것에는 엄청난 기여를 했다. 다만 30년 가까운 장기집권에 대하여 스턴에 대한 반대도 심했다.
스턴이 드림팀 결성에 기여했느냐, 처음에 막으려고 해쓰냐는 얘기가 갈리는데, 이에 대해선 현지 기사에 여러번 언급되었다. 먼저 TIME지 기사 For example, when the Olympics decided to open up its basketball competition to NBA players before the 1992 Games in Barcelona, some owners weren’t totally on board with the idea....(중략) Stern, however, convinced stakeholders that the NBA’s Olympic participation would show his product off to the world (예를 들어 올림픽이 1992년 바르셀로나 게임을 앞두고 최초로 농구 부문을 NBA선수들에게 개방하기로 했을 당시 몇몇 구단주들은 이 생각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턴이 NBA가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그의 제품들(NBA선수들)을 세계에 공개하게 해줄 것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했다.)라는 문구를 통해 스턴이 드림팀에 기여했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 기사에서는 스턴이 드림팀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으며, 미국측이 처음엔 프로들의 올림픽 참여를 반대했고 스턴 본인은 "올림픽 참여에 대해 열광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CBS스포츠 기사에서도 Stern helped build the Dream Team(스턴은 드림팀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나와있다. 위 기사들과는 달리 아마추어 사이트긴 하지만 블리처 리포트에서도 ESPN을 인용하며 Stern was one of the major orchestrators of the 1992 Dream Team (via ESPN). (스턴은 1992년 드림팀을 만드는데 주요 orchestrator 중 하나였다.)고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스턴이 드림팀 결성에 큰 기여를 한 것 자체는 여러 매체에서 언급된 만큼 사실로 추정하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공신력이 높은 뉴욕타임즈에서 스턴이 처음에 반대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근데 사실 이 두 견해는 서로 모순되는 건 아니다. 즉, 스턴이 처음에는 NBA선수들의 올림픽 참여에 대해 반대했으나, 곧 입장을 바꿔서 최선을 다해 지원했고 결국 드림팀이 결성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결국 스턴은 2014년 딱 30년 만에 총재에서 물러나고 부총재인 애덤 실버(역시 유대인)가 5대 총재가 되었다. 현재로서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괜찮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는 편.[5]
2019~20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2020년 3월 11일(미국 시간), 유타 재즈와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간 경기 시작 직전, 유타 재즈의 센터 루디 고베어가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경기가 무기한 연기되었고, 유타의 동부 원정 일정동안 경기를 가졌던 캐벌리어스, 닉스, 셀틱스, 피스톤즈 선수단은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며, 뒤이어 재즈의 가드 도노반 미첼까지 확진판정을 받자 애덤 실버 커미셔너는 결국 3월 11일을 기해 모든 NBA 경기를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6] 그 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크리스찬 우드도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브루클린 네츠에서도 케빈 듀란트를 포함해 4명의 선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후, 6월 4일에 월트 디즈니 월드에 위치해 있는 ESPN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에서 7월 31부터 리그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되었거나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남아있는 팀들[7]이 8개의 경기를 통해 플레이오프 시드를 정하며, 또한 각 콘퍼런스의 8위 팀과 9위 팀의 승차가 4경기 이하일 경우 8위 시드를 확정짓는 "Play-in Tournament"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리그 재개부터 파이널까지는 밀워키의 보이콧(...) 사건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파이널까지 잘 마무리 되었으며, 특히 확진자 0명이라는 기적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긍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2021년 플레이오프는 한 시즌 플레이오프 직관이 불가능했기 때문인지 팬들의 반응이 격해져 수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다. NBA에서 관중의 난입이나 물건 투척으로 인한 중징계는 결코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진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
- 필라델피아 vs 워싱턴 2차전 필리건의 부상으로 퇴장하는 웨스트브룩에게 팝콘 투척 사건. [영구 출입 금지]
- 애틀랜타 vs 뉴욕 2차전 뉴욕팬의 트레이 영에게 침뱉기 사건. [영구 출입 금지]
- 보스턴 vs 브루클린 2차전 보스턴팬의 퇴장하는 카이리 어빙에게 페트병던지기 사건. [영구 출입 금지]
- 유타 vs 멤피스 시리즈 유타팬 3명의 자 모란트에게 패드립 시전 사건. [출입 금지 조치]
- 필라델피아 vs 워싱턴 4차전 관중난입사건. [영구 출입 금지]
5. 서고동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부의 근소 우위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잘나가던 소위 "왕조"가 어느 팀들이었는지 감안하면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의 경우 서부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홀로 군림했지만 동부에는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양대 산맥이 있었고 후반부에는 디트로이트가 치고 올라오면서 동부쪽이 전체적으로는 우위였다고 평가받는다.물론 양대 컨퍼런스 챔피언이 맞붙는 파이널에서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동부팀들을 잘 잡아냈고(5우승 3준우승) 전체적으로 80년대에는 우승 10번을 동서부가 정확히 5번씩 양분했다. 다만 실질적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서부에선 레이커스 단 하나(실제로 이 시기에 우승을 한 서부팀은 레이커스 뿐이다)였던 반면 보스턴과 맞먹는 전력의 필라델피아(전반기), 디트로이트(후반기) 등이 있었던 동부가 더 빡센 것은 사실. 그나마 레이커스의 라이벌이었던 휴스턴의 전력은 끽해야 유독 보스턴을 애먹였던 (실제로 탈락시키기도 했던) 밀워키 벅스 수준이었다.[8]
5.1. 동고서저였던 1980년대
플레이오프에서 성과의 경우 대진운이나 맞붙는 우승후보의 수, 업셋 등[9] 여러 변수가 있으니 일단 전반적인 전력 비교를 위해 1979-80시즌부터 1988-89시즌까지 정규시즌 승수로 동서부의 수준 차이를 따져보자.항목은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승수 총합, 플옵 진출 팀 중 톱시드와 최하위 시드의 승수, 그리고 각 컨퍼런스 최하위 팀의 승수이다.[10]
1)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승수 총합
* 앞의 숫자는 시즌이 종료되는 해이다.
1980년: 동부 291승 vs 서부 305승 - 4,5번 시드를 제외한 나머지 시드는 모두 동부가 조금씩 성적이 앞섰으나 4번 시드 피닉스 선즈가 무려 55승이나 거두고 5번 캔자스 시티 킹스가 47승이나 했다.
1981년: 동부 321승 vs 서부 288승 - 전년도와 달리 동부가 무려 33승이나 더 거둔 해이다. 서부엔 단 한 팀도 없던 60승 팀이 동부엔 보스턴, 필라델피아(62승), 밀워키(60승)까지 세 팀이나 있을 정도로 동부의 강세가 두드러진 해. 여담으로 이때 빅3였던 보스턴, 밀워키, 필라델피아는 이때부터 85-86시즌까지 무려 6년동안이나 셋이서 톱3 시드를 나눠먹는다.[11]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6번시드도 동부 6위인 인디애나는 44승, 서부 6위 휴스턴 로키츠는 40승으로 전체적으로 동부의 우위가 두드러진 시즌.
서부의 경우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가 매직 존슨이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빠지면서 54승에 그치고, 2월말에 그가 복귀한 이후부터 건강하게 뛰긴 했지만 당시 3전2승제이던 1라운드에서 휴스턴에게 충격의 업셋을 당한 게 컸다. 로키츠는 당시 6번시드였지만, 레이커스 외엔 강력한 우승후보급 팀이 없어져 서부 플옵에서 다른 팀들을 제끼고 파이널에 오른 것이다. 재밌게도 서부 결승 상대 역시 40승에 그친 5번 시드 캔자스 시티 킹스였다. 킹스에게 업셋당한 당시 서부 1위 피닉스 선즈는 레전드 가드 데니스 존슨, 건실한 파워포워드 "트럭" 로빈슨, 훌륭한 득점원 월터 데이비스란 올스타 3인방이 57승으로 이끌었지만,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가 있는 팀은 아니었다.[12] 즉, 절대강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누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1982년: 동부 305승 vs 서부 295승 - 서부가 하위시드에서 더 강세였음에도 불과하고 상위시드에서 격차를 좁히지 못해 동부가 우위인 해.
1983년: 동부 308승 vs 서부 303승 - 젊은 팀들의 약진과 밀워키가 다소 주춤하면서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50승 이상 팀이 동서부 3팀씩으로 균형이 맞춰지면서 상위권에서도 격차가 줄었다.
1984년: 동부 380승 vs 서부 349승 - 플레이오프가 8팀 체제로 확장된 첫 해. 서부에선 오직 레이커스만이 50승을 넘긴 반면(54승), 동부에선 보스턴, 밀워키, 필라델피아가 나란히 50승을 넘겼다.
1985년: 동부 382승 vs 서부 366승 - 레이커스가 오랜만에 60승을 넘기고, 동부는 지난 2년간 정규시즌 성적이 주춤했던 밀워키가 59승으로 오르면서 빅3체제가 견고해졌다.
1986년: 동부 382승 vs 서부 358승 - 이 시즌은 상위권에선 동부의 우위가, 하위권에선 서부의 우위가 두드러지는 시즌이었다. 1~5위까지를 보면 동부는 보스턴 67승, 밀워키 57승, 필라델피아 54승, 애틀란타 50승[13], 디트로이트 46승으로 이어지지만, 서부는 레이커스 62승, 휴스턴 51승, 덴버 47승, 댈러스 44승, 유타 42승으로 이어졌다. 하위권의 경우 동부는 워싱턴과 뉴져지가 39승씩, 시카고가 30승으로 플옵 막차를 탔고, 서부는 포틀랜드가 40승, 새크라멘토왜 샌안토니오가 37승과 35승을 했다. 사실 7,8,9는 큰 차이가 안나지만 플옵 탈락 팀들의 경우 서부 9위인 피닉스 (32승)부터 꼴찌 워리어스까지 30승을 넘긴게 크다.[14]
1987년: 동부 386승 vs 373승 - 래리 버드 입단 이후 7년 동안 6번이나 60승을 넘긴 보스턴이 부상악령에 시달리면서 60승 고지를 넘는데 실패했다. (59승) 또한 줄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등 주축선수들의 노화에 시달리던 필라델피아가 45승, 동부의 한 축인 밀워키가 50승에 그치면서 6년간 계속된 빅3 체제가 무너졌다. 대신 젊은 강자들인 애틀란타가 2번 시드(57승), 강력한 공격팀에서 수비와 조직력 위주 팀으로 변신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3번 시드(52승)으로 그 자리를 메웠다. 서부에서는 레이커스가 최전성기를 누리는 MVP 매직 존슨 덕분에 무려 65승을 거뒀는데, 매직이 버드보다 팀성적에서 앞선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1988년: 동부 371승 vs 서부 390승 - 밀워키가 아직 서부에 있던 80년 이후 처음으로 서부가 우세한 시즌이다! 동부는 보스턴이 57승으로 톱시드를 차지하며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지만 필라델피아는 플레이오프 탈락, 밀워키는 42승으로 하위시드에 그치며 빅3 체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 반면 피스톤즈와 호크스는 여전히 강력했으며,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을 제치고 MVP를 차지한 무서운 신예 마이클 조던의 불스가 50승이나 거두며 상위시드에 진입했다.
서부에서는 여전한 62승의 레이커스 외에 미친 공격력을 자랑하는 덴버 너기츠(54승), 돈 넬슨이 이끌며 슈퍼에이스는 없지만 공수균형이 좋은 댈러스 매버릭스(53승), 젊은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슈퍼스타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53승)가 두각을 나타냈으며, 칼 말론, 존 스탁턴이란 젊은 듀오가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한 유타 재즈가 세대교체에 완전히 성공하며 47승을 거뒀다.
1989년: 동부 408승 vs 서부 381승 - 자신감을 얻은 피스톤즈가 무려 63승을 거두는 미친 모습을 보이며 1년만에 다시 동부의 우세로 돌아갔다. 이 시즌은 본격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즌이었는데, 80년대 동부를 지배한 보스턴은 버드와 케빈 맥헤일의 부상으로 42승에 그치며 추락했다. 필라델피아는 46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복귀했지만 젊은 찰스 바클리가 독보적인 에이스였다. 85년 드래프트 1순위 패트릭 유잉은 뉴욕 닉스를 52승으로 이끌었으며, 베테랑 래리 낸스가 젊은 피 마크 프라이스, 브래드 도허티와 빅3를 이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무려 57승을 거두었다.
서부는 레이커스의 독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계속 성장하는 유타가 2번 시드를 차지했으나, 승수 상으로 2위였던 피닉스 선즈는 2년차 시즌을 맞으며 무려 20.4점 12.2어시스트란 괴물같은 성적을 낸 젊은 가드 케빈 존슨과 톰 체임버스, 특급 식스맨 에디 존슨 등 활약에 힘입어 55승을 거두며 강팀으로 복귀했다.
이처럼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승수로 따져본 1980년대는 1979-80시즌은 서부의 우세로 시작했으나, 강팀 중 하나인 밀워키가 동부로 옮기면서부터 동부의 확연한 우세가 계속되었다. 10년동안 동부가 더 우세한 시즌은 8번, 서부는 2번에 불과했으며 총 승수로 따져보면 동부가 10년간 126승, 평균 12.6승을 더 거두었다. 이를 보면 평균적으로 동부의 플레이오프 팀들의 전력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부가 우세했던 1980시즌과 1988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8시즌의 경우 상위권에서 동부의 확연한 우세가 돋보인다.
2) 플레이오프에서 각 컨퍼런스 톱시드 팀
*. 앞의 팀이 동부, 뒤의 팀이 서부이다.
1980년: 보스턴 셀틱스 61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0승 - 1승 차이로 사실상 큰 의미는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파이널 진출은 59승을 한 필라델피아가 했다. 총 승수와 마찬가지로 동부가 우세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해.
1981년: 보스턴 셀틱스 62승 vs 피닉스 선즈 57승 -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에서 매직 존슨이 무릎 부상으로 시즌 절반 이상을 날려먹은 해였다. 심지어 1라운드 업셋을 당하며 서부 플레이오프는 사실상 확실한 강자가 없는 상황, 반면 동부는 보스턴이 타이브레이커에서 이겨 톱시드를 얻었을 뿐 필라델피아도 62승, 밀워키도 60승이었다.
1982년: 보스턴 셀틱스 63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7승
1983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65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8승 - 에이스 모제스 말론이 플레이오프 전승을 장담할 정도로 강력했던 해이다.
1984년: 보스턴 셀틱스 62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4승
1985년: 보스턴 셀틱스 63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2승
1986년: 보스턴 셀틱스 67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2승
1987년: 보스턴 셀틱스 59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5승
1988년: 보스터 셀틱스 57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2승
1989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63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7승
버드와 매직 입단 이후 레이커스가 처음으로 승수에서 셀틱스를 앞선 1987, 1988년을 제외하면 전부 동부의 우세이다. 또한 그 중 보스턴과 로스앤젤레스가 동시에 동서부 톱시드를 나란히 차지한 적이 무려 7번으로, 80년대 NBA는 두 팀이 다 해먹었다는 걸 알 수 있다. 10년간 동부 톱시드의 평균 성적은 62.2승, 서부 톱시드의 평균 성적은 59.4승으로 동부의 우세다.
3) 각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진출팀들 중 최하위 시드 팀
* 앞이 동부, 뒤가 서부
1980년: 워싱턴 불리츠 39승 vs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8승
1981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44승 vs 휴스턴 로키츠 40승
1982년: 애틀란타 호크스 42승 vs 휴스턴 로키츠 46승
1983년: 애틀란타 호크스 43승 vs 덴버 너기츠 45승
1984년: 워싱턴 불리츠 35승 vs 캔자스시티 킹스 38승
1985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36승 vs 피닉스 선즈 36승
1986년: 시카고 불스 30승 vs 샌안토니오 스퍼스 35승
1987년: 시카고 불스 40승 vs 덴버 너기츠 37승
1988년: 뉴욕 닉스 38승 vs 샌안토니오 스퍼스 31승
1989년: 보스턴 셀틱스 42승 vs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9승
상위시드와 달리 격차가 적은 편이어서 5번은 동부의 우위, 4번은 서부의 우위, 한번은 동률이다. 평균을 내보면 최하위시드 팀들은 동부는 평균적으로 38.9승, 서부는 38.5승으로 동부의 매우 근소한 우위. 0.4승 차이이니 이 정도면 사실 우열을 따질 것 없이 최하위 시드팀의 수준은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4) 컨퍼런스 최하위 시드 팀
1980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6승 vs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4승
1981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1승 vs 댈러스 매버릭스 15승
1982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5승 vs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17승
1983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20승 vs 휴스턴 로키츠 14승
1984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26승 vs 휴스턴 로키츠 29승
1985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22승 vs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2승
1986년: 뉴욕 닉스 23승 vs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30승
1987년: 뉴욕 닉스 24승 vs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2승
1988년: 뉴져지 네츠 19승 vs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7승
1989년: 샬럿 호네츠 20승 vs 마이애미 히트 15승[15]
동부가 우위였던 시즌은 5번, 서부가 우위였던 적은 4번, 동률은 한번이다. 동부 최하위는 평균적으로 20.6승을, 서부 최하위는 평균적으로 19.5승을 거두었다. 위와 마찬가지로 동부의 매우 근소한 우위인데, 플옵 최하위 시드와 달리 그래도 1승 차이는 난다.
5) 기타
간단하게 각 시즌별로 고승률(50승 이상) 거둔 팀들의 수도 살펴보자
* 50승 이상
1980년: 동부 3 vs 서부 3
1981년: 동부 4 vs 서부 3
1982년: 동부 3 vs 서부 2
1983년: 동부 3 vs 서부 3
1984년: 동부 4 vs 서부 1
1985년: 동부 3 vs 서부 2
1986년: 동부 4 vs 서부 2
1987년: 동부 4 vs 서부 2
1988년: 동부 4 vs 서부 4
1989년: 동부 4 vs 서부 3
동부 36번, 서부 25번
* 55승 이상
1980년: 동부 2 vs 서부 3
1981년: 동부 3 vs 서부 1
1982년: 동부 3 vs 서부 1
1983년: 동부 2 vs 서부 1
1984년: 동부 1 vs 서부 0
1985년: 동부 3 vs 서부 1
1986년: 동부 2 vs 서부 1
1987년: 동부 2 vs 서부 2
1988년: 동부 1 vs 서부 1
1989년: 동부 2 vs 서부 2
동부 21번, 서부 13번
* 60승 이상
횟수가 적기 때문에 총 횟수로 대신한다. 동부 10번, 서부 5번
* 65승 이상
1983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65승), 86년 보스턴 셀틱스 (67승), 87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5승)
뭘 기준으로 봐도 상위권 팀들은 동부가 훨씬 더 강력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일단 50승 이상 팀 자체도 동부가 확연히 앞서며, 보통 우승후보로 분류되는 팀들은 55승 이상인데, 동부는 84년, 88년을 제외하면 매 시즌 최소 두 세팀은 55승 이상을 했다. 반면 서부는 레이커스가 아닌 팀이 55승을 넘긴 적은 10년을 통틀어 5번 뿐이다.[16]
60승 이상 팀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80년대에 서부에서 60승을 넘긴 팀은 단 하나, 레이커스 뿐이었다. 반면 동부는 셀틱스가 6번, 필라델피아가 두번, 밀워키가 한번, 디트로이트가 한번 넘겼다.
65승 이상이야 역대급이니 어차피 몇 번 안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동부가 2회, 서부 1회이다.
6) 플레이오프 실패팀들의 평균 승수
마지막으로 각 해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팀들의 평균 승수를 보자. 총 승수가 아닌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79-80시즌을 제외하곤 매년 서부가 한 팀씩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 동부 32.6 vs 서부 28.6
1981년: 동부 28.6 vs 서부 31.6
1982년: 동부 31.2 vs 서부 31.16
1983년: 동부 30 vs 서부 30.3
1984년: 동부 27 vs 서부 33.2
1985년: 동부 26.6 vs 서부 28.7
1986년: 동부 26 vs 서부 31.2
1987년: 동부 26.3 vs 서부 26.25
1988년: 동부 31 vs 서부 22.25
1989년: 동부 28.5 vs 서부 24.4
전반적으로 서부가 앞선 해들이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동부가 소수 둘째자리 차이로 앞선 82년, 87년은 사실상 동률이라고 볼 때 동부가 우세한 해는 80, 88, 89년이고, 서부가 우세한 해는 81, 83, 84, 85, 86년이다. 하위권에선 84년, 86년에서 서부가 크게 앞섰지만, 88, 89년엔 반대로 동부가 크게 앞섰다. 동서부 간의 평균 승수 격차를 합쳐보면 서부가 10년간 평균 0.9승을 더했는데, 사실상 크게 의미는 없는 수준이다.[17]
이보다는 사실상 각 연도별로 비교하는 것이 더 적합할 텐데 동부가 우세한 3년 중 80년은 동서부 균형이 비교적 맞은 해, 88년은 서부가 플옵 진출 팀 총 승수와 톱시드면에선 앞섰지만 플옵최하위 시드는 동부가 앞선 해, 89년은 플옵 진출팀들 중 총승수, 톱시드, 최하위 시드, 컨퍼런스 최하위 팀까지 전부 동부가 확연히 앞선 해였다.
서부가 앞선 5년을 보면 81년은 주요 4개 항목 모두에서 동부가 앞선 해, 83년은 톱시드와 플옵진출팀 총 승수, 컨퍼런스 최하위팀은 동부가 앞서고, 플옵 최하위시드 팀은 서부가 앞선 해, 84, 86은 톱시드팀과 플옵진출팀 총 승수는 동부가, 플옵최하위시드팀과 컨퍼런스 최하위시드는 서부가 앞선 해, 85년은 톱시드팀과 플옵진출팀 총 승수는 동부가, 플옵최하위시드팀은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시드는 동률인 해였다.
재밌게도 상위권에서 동부가 크게 앞선 84년과 86년에서는 중~하위권에서 서부가 앞섰고, 반대로 상위권에서 서부가 앞선 88년에는 중~하위권에서 동부가 앞섰다. 85년도 어느 정도 비슷한 해였고, 81년의 경우는 동부가 상위~중위권(플레이오프 막차)까지 모두 앞서지만 하위권에서 서부가 약간 우세였던 해였다. 83년의 경우 동부가 상위권에서 확연히 앞서고, 서부가 중위권에서 근소하게, 그리고 하위권에서 서부가 우위긴 하지만 평균 승수 0.3정도라 사실상 동부의 근소우위라고 봐야한다.
80년은 하위권은 동부가 약간, 상위권은 서부가 약간 앞서고 중위권은 비슷해서 균형이 가장 잘 맞는 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89년은 플레이오프 진출팀의 총 승수, 톱시드, 최하위시드, 컨퍼런스 최하위, 하위권팀들의 평균 승률 모두 동부가 확연하게 앞서는 해로 80년대에서 가장 동고서저가 심했던 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지속되었는데, 이 해에 동부 챔피언 피스톤즈는 레이커스를 결승에서 스윕해버렸다.[18][19]
7) 결론
일단 동서부 최강이었던 레이커스와 보스턴은 80년대를 통틀어 보면 백중세의 기량이다. 80년대 중반에 보스턴이 확연히 더 강했고, 80년대 후반엔 레이커스가 확연히 더 강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60승을 넘긴 횟수도 보스턴 6회, 레이커스 5회, 55승 넘긴 횟수는 보스턴 9회 레이커스 8회, 50승을 넘긴 횟수는 보스턴은 9회, 레이커스는 10회다. 이 기간동안 보스턴은 59.2승, 레이커스는 59.1승으로 사실상 완전히 대등하다.[20]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80년대 동부가 확연한 우위라고 볼 수 있다. 보스턴이 하락세를 그리고 레이커스의 황금기였던 87,88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매 시즌 동부 플레이오프 팀들이 서부 플레이오프 팀들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뒀으며, 전체 1위도 동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건 상위권에서 특히나 동부의 우위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플레이오프 막차 팀들이나 컨퍼런스 최하위팀들의 경우 위에서 살펴봤듯이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상위권 팀들 사이에서 동서부 격차로 인해 저런 차이가 난 것이다. 어떻게 봐도 동급인 레이커스와 보스턴을 빼고 나머지 동서부 상위권 팀들을 보면 이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필라델피아는 79-80시즌부터 84-85시즌동안 평균 59승을 거둔 초강팀이었다. 이 6년동안 레이커스는 5번 파이널 진출, 보스턴은 세번, 필라델피아도 세번 파이널에 올랐다. 만약 필라델피아가 동부가 아닌 서부팀이었다면 보스턴과 로스앤젤레스의 파이널 진출 횟수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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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동부 톱인 보스턴이 우승 횟수가 3회, 레이커스가 5회라고 해서 섵불리 서부가 강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80년대 통틀어(89시즌까지) 우승 횟수를 따지면 5대5로 대등하지만, 그 기간에 레이커스는 한번도 서부에서 60승 이상 거둔 팀과 싸운 적이 없었다.
저 중 전력이 강한 축에 드는 팀들은 데니스 존슨, 거스 윌리엄스, 잭 시크마 등이 주축이 된 80년 시애틀 슈퍼소닉스(56승)나 같은 존슨이 이적해 뛰었고, 트럭 로빈슨, 월터 데이비스(마이클 조던의 대학 선배) 등이 있던 81년 선즈(57승), 찰스 바클리 합류 전에 톰 체임버스, 케빈 존슨, 제프 호너섹 등이 달리는 농구를 했던 89년 피닉스(55승) 정도인데, 저 중 리그를 뒤흔드는 수준의 슈퍼스타를 보유하거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은 없었다. 특히 87년 플레이오프가 굉장히 대조적인데, 동부에서 보스턴은 일단 1라운드는 가볍게 40승 불스를 스윕하며 시작했지만, 2라운드에서부터 50승팀인 밀워키를 7차전만에 꺾고, 동부 결승에서 52승팀이지만 굉장히 피지컬하고 더티한 피스톤즈와 7차전까지 갔다. 그러나 레이커스는 1라운드에서 덴버(37승)를 스윕하고 2라운드에서 42승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3승1패로 가볍게 꺾고, 서부 결승에서 39승팀인 시애틀과 붙어 스윕하는 등 순항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냐면 86-87시즌 당시 서부는 1위 레이커스가 독주하며 65승, 2위 댈러스 매버릭스가 55승을 거두고, 그 다음은 포틀랜드가 49승, 유타가 44승, 휴스턴과 골든스테이트가 42승에 시애틀이 39승, 덴버가 37승으로 이어질 정도로 전체적인 승률이 떨어졌다. (동부는 1위인 59승 셀틱스부터 57승, 52승, 50승, 45승, 42승, 41승, 40승으로, 한 눈에 봐도 전반적인 수준 차이가 있다) 그런데 딕 모타 감독이 이끌던 댈러스 매버릭스는 에이스 마크 어과이어를 필두로 강력한 공격력과 평범한 수비력을 보이던 팀이었는데 마찬가지로 공격 위주 팀인 시애틀과 1라운드에서 붙어버린 것이다. 1차전에서부터 151대 129란 스코어를 낸 두 팀은 시리즈 평균 시애틀 120.5점 댈러스 116.5점이란 난타전 끝에 시애틀이 3승1패로 이겨버린다. 이후 시애틀인 2라운드에서 42승팀인 휴스턴을 꺾고 결승에 안착한다. 한마디로 레이커스 빼고 고만고만한 팀들 밖에 없어 누가 레이커스 상대가 되든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즉 강력한 동부팀들이 서로 물고뜯고하느라 기진맥진하면서 결승에 오르는 동안 레이커스는 수월하게 결승에 올랐던 것.[21]
필라델피아는 80년대 통틀어 53.5승을, 밀워키 벅스는 52.2승을 올렸다. 그러나 서부에서 레이커스 다음으로 80년대에 높은 평균 승수를 올린 팀은 포틀랜드인데 44.2승에 불과하다. 레이커스 외에 55승을 넘긴 적이 가장 많은 (3회) 피닉스 선즈의 경우 43.9승이다.
앞서 79-80시즌부터 84-85시즌까지 필라델피아가 평균 59승을 거뒀다고 했는데, 이 기간동안 레이커스 다음으로 평균 승수가 높았던 선즈는 평균 48승을 했다. 같은 기간 벅스는 평균 54승이었다. 이처럼 서부가 동부와 비슷하기라도 한 것은 중위권~하위권 한정이었으며, 그나마도 특정 시즌 (85-86시즌이라든지)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체를 보면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서부가 확실하게 우위인 것은 플레이오프 실패팀들의 평균승률 항목 단 하나인데, 이 마저도 큰 차이는 아니다.[22]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상위권의 절대적인 우위로 인해 80년대는 확실한 동고서저라고 할 수 있다.
5.2. 1990년대
* 동서부 균형이 맞았던 시대19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단독으로 왕조로 군림했지만 조던의 1차 은퇴 시기였던 94년, 95년에는 서부팀 휴스턴 로키츠가 우승을 가져갔고 올라주원이 전성기에서 내려오고 조던이 2차 은퇴 직후인 99년 역시 서부팀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기를 상세히 보면 조던 은퇴 시기에도 휴스턴과 뉴욕은 사실상 대등한 전력이었고, 95년 동부 파이널리스트 올랜도는 오히려 객관적인 전력이 휴스턴보다 위였다. 즉, 이때 우승팀이 휴스턴이긴 해도 서고동저는 결코 아니었다. (2008년에 동부에서 우승팀이 나왔다고 플옵커트라인이 50승이었던 서부가 더 약한 게 아닌것처럼)
전체적으로 90년대는 동서부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 수준이었지만, 굳이 따지면 최강팀 불스가 있는 동부가 더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조던이 사라져서 불스가 2라운드 탈락한 94시즌에, 전 시즌보다 전력이 소폭 하락한 닉스가 결승에 진출하고 휴스턴과 백지장 하나 차이 승부를 펼친 걸 보면 알 수 있다. 즉, 리그 최강자였던 조던이 없이도 동서부 균형이 어느 정도 맞을 정도였다는 것.
* 절대강자의 퇴장, 짦은 춘추전국시대
99시즌은 단축시즌으로 여러 이변이 있었는데, 짧은 시즌이다보니 여러 팀이 동률이 되어 시딩이 복잡했다. 동부에선 무려 세팀이 33승으로 동률, 서부에선 두 팀이 37승으로 동률을 이룬데다가 뉴욕같은 강팀이 8번 시드에 그쳤다. [23] 또한 하필 동부 최강인 마이애미가 천적 뉴욕을 만나서 1라운드 탈락하고, 뉴욕이 센터 패트릭 유잉 없이 파이널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확실한 우승권팀인 스퍼스가 있는 서부가 근소하게 더 강하긴 했다.
99시즌은 유독 절대강자가 없던 시즌이었는데 유타가 주축선수들의 노화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고, 그 유타를 떨어뜨린 포틀랜드도 구심점이 되는 에이스가 없어서 애매한 팀이었다. 그나마 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라쉬드 월러스는 기복이 심했다.(그리고 이 고투가이 부재 문제는 2000시즌에도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레이커스는 당시 코비 브라이언트는 20점도 못 넣던 애송이였고 샤킬 오닐, 에디 존스(시즌 중반에 글렌 라이스 등과 트래이드), 닉 반 엑셀 등 선수들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전략이나 지도력이 부족했다.[24] 동부의 히트는 알론조 모닝이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에이스 센터치곤 득점옵션이 다소 부족했고, 팀 하더웨이는 빠르게 기량을 잃어가고 있었다. 닉스는 시즌 내내 조직력 문제로 삐걱거리다가 플옵에 와서야 극적으로 팀이 완성되어 돌풍을 일으켰지만 정작 파이널에선 주전 센터 패트릭 유잉을 잃었다. 실질적인 동부 최강에 가까웠던 페이서스는 안토니오 데이비스를 잃고 골밑의 세기가 조금 약해진데다가 역시 노장팀이라 단축시즌 빡센 스케쥴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가장 전력이 강했던 스퍼스도 흔히 스퍼스하면 떠오르는 극강의 팀플레이와 호흡이 완성되기 전이라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팀 던컨- 데이비드 로빈슨이란 최강골밑의 개인기량에 의존하는 성향이 높았다.[25] 서부 컨파가 진짜 파이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던 2000년대 및 그 이후와 비교해보면 훨씬 더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5.3. 2000년대 이후
양대 컨퍼런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밸런스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서고동저는 기존의 강호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동부의 신흥강호들이 상승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게 컸다. 인디애나, 뉴욕 등 강호들이 주축선수들의 노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무너졌고, 90년대 후반부터 떠올랐던 마이애미 히트는 알론조 모닝이 난데없이 신장병으로 아웃되면서 동기 샤킬 오닐이 최강으로 군림하는 동안 약체로 전락했다. 아이버슨이 두각을 나타냈던 필라델피아는 잦은 부상과 계속해서 바뀌는 팀구성으로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으며 가드-가드-포워드 빅3에 의존했던 밀워키는 골밑이 약해서 한계가 있었고, 올랜도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원맨팀이었다. 이 중 유일하게 강호로 자리잡은 게 뉴져지 네츠였는데, 네츠 역시 센터가 전무하고 골밑을 어린 파워포워드 케년 마틴 한명에만 의지해야했다. 이러는 동안 서부엔 포틀랜드가 스카티 피펜을 데려오고, 90년대에 MVP까지 차지했던 센터 데이비드 로빈슨을 중심으로 한 강팀이었던 스퍼스는 또다른 최강의 빅맨 팀 던컨을 중심으로 2000년대 최강 팀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케빈 가넷, 디르크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등이 던컨을 위협하는 최강의 파워포워드 라인을 구성해 각자 팀을 이끌었고, 새크라멘토 킹스가 오랜 약체의 역사를 뒤로 하고 강팀으로 떠올랐고, 레이커스는 드디어 넘치는 재능을 활용할 필 잭슨이란 지도자를 만나 2000년대 초반에 3연패를 달리며 왕조로 떠올랐다. 한 마디로 동부팀들은 하나도 안 풀리는 동안 서부팀들이 줄줄 풀리면서 확 기울어진 것.파이널에서는 서부팀의 확연한 우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8년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2024년까지 총 26번의 파이널에서 서부팀이 17회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동부팀은 9회 우승에 그쳤다.
NBA 팬들 중에서도 동부 컨퍼런스는 가짜리그, 서부 컨퍼런스의 하위리그라며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악의적인 폄하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게, 실제로 동부팀과 서부팀의 전력차는 존재하며 이게 극단적으로 심했던 시기엔 동부 1위팀이 서부 2~3위팀보다도 전력이 훨씬 떨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의 경우 컨퍼런스 개편을 해 서부 일부 팀을 동부 쪽으로 소속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실제로 아담 실버 총재가 플레이오프 방식을 일부 바꾸는 것을 논의했다가 현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오랫동안 동부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던 르브론 제임스가 LA로 떠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몰락하면서 '동부는 이제 정말로 유의미한 우승도전권 팀이 없는것 아니냐'라는 걱정까지 나왔고, 실제로 정규시즌 동서부 간의 상대전적이 지난해보다 벌어지면서 현실이 되는듯 했지만.. 그 해에 쓰리핏을 도전하던 서부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깨부수고, 동부의 토론토 랩터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지막의 웃는 건 동부였다.
그리고 18-19 및 19-20 시즌에 들어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서고동저가 완화되고 양대리그에서 우승권 팀들이 다양화 되는 조짐이 보이긴 했다. 과거에 동부에서는 르브론의 소속팀을 제외하곤 진지하게 우승에 도전해볼만한 팀이 없던 지금까지의 동부와는 달리, 여러 컨텐더 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해당 시즌은 상위 1~6위 선에서는 동서부의 전력이 얼추 비등했던 것. 단, 그 아래로 내려가면 승률의 격차가 꽤 남아있는 편이라 기존의 서vs동 승률 자체는 그닥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7~8위 경쟁은 서부가 동부보다 훨씬 힘들었을 정도로 중위권 아래에서는 여전히 극심한 서고동저가 남아있었다.
20-21 시즌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는데, 양 컨퍼런스의 상대전적이 처참하게 차이가 난다. 02월 20일 기준 서부 8위에 불과한 워리어스가 동부 기준으로는 상위시드인 4위에 해당될 정도. 물론 아직 시즌 초이긴 하나 극초반이 아닌 5분의 2 이상이 지난 시점임을 고려하면 빈말로도 균형이 맞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시즌이 계속 진행되면서 동부가 서부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차이가 제법 줄어 보통의 서고동저 시즌의 승률 차이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동안 플레이오프를 경험하지 못하면서 빅마켓이지만 승리자판기 역할이었던 뉴욕 닉스의 선전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22-23 시즌에는 동서부의 균형을 넘어 정말 오랜만에 정규시즌 성적에서 동부가 서부를 압도하는 결과가 나왔다. 2010년대를 이끌었던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크리스 폴 등스타 플레이어들의 노쇠화로 인해 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기존의 서부 강팀들이 난항을 겪었으며, 그 외에도 유타, 댈러스, 멤피스 등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호성적을 거두어 왔던 서부의 중견팀들이 리빌딩, 에이스의 결장과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성적이 크게 떨어지는 등 악재가 겹쳤다. 반면 동부는 최근 5년간 정규시즌 MVP를 독점한 유러피안 빅3[26] 중 2명이 상위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만큼 젊은 강팀들이 예년에 못지 않은 호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전체 1~3위를 모두 동부 팀이 가져갈 정도로 동부의 강세가 명백하게 드러난 시즌이 되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서부 1위이자 전체 4위였던 덴버 너기츠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동부는 명백히 앞서나간 정규시즌 성적이 무색하게도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서부에 빼앗기고 말았다.
5.4. 개별 사례
- 1998-99 시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 2003-04 시즌
- 2008-09 시즌
- 2013-14 시즌
- 2014-15 시즌
- 2015-16 시즌
- 2016-17 시즌
- 2017-18 시즌
- 2018-19 시즌
- 2019-20 시즌
* 2020-21 시즌
시즌 도중
제임스 하든이 브루클린 넷츠로 이적하며 동부로 또 한명의 스타가 이동하였고 전년도 우승팀 레이커스는 데이비스와 르브론의 부상으로 7위에 그치는등 부진했지만 이번시즌 역시도 서부의 1,2등
유타 재즈,
피닉스 선즈가 전체 1,2등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우승트로피는 양 컨퍼런스 1,2번 시드가 아닌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각성한 동부 3등 밀워키가 차지하였다.
5.5.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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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팀과 서부팀의 프런트 차이
미국의 대도시는 서부보다 동부에 더 많고, 따라서 빅마켓 역시 동부쪽이 조금 더 많다.[28] 역설적으로 그렇게 유리한 조건 때문에 동부를 대표하는 뉴욕 닉스, 시카고 불스 같은 팀들의 프런트는 우승을 위한 운영이 아닌, 적당한 인기 유지와 관중 동원을 통한 수익 올리기 운영만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계약 등으로 스스로 암흑기에 빠지는 등 운영 쪽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 반면, 서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댈러스 매버릭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을 필두로 프런트가 운영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상위픽으로 뽑은 선수들이 기대치만큼 크는 경우가 서부 쪽에 좀 더 많았고, 심지어 하위픽에서 대박 터지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서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도 단순히 빅마켓에 의한 편견일 뿐이다. 동부에도 토론토 랩터스,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같은 경우, 나름 빅마켓이면서 팀 운영을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덜어낸 반면 서부에도 피닉스 선즈,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경우는 잘못된 계약들로 고생을 하는 등 운영을 못하는 팀들도 있다. 결국 잘하고 못하고는 그냥 반반인데 특히 프런트의 차이에서 마치 뉴욕과 시카고만 동부인 것 마냥 대표해서 나오는 얘기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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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의 8연속 NBA 파이널 진출
르브론 제임스는 데뷔 이후 2018년까지 동부팀인 클리블랜드와 마이애미에서만 커리어를 보냈던 선수로서 현재 8년 연속 NBA 파이널 진출 및 10번의 NBA 파이널 진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르브론의 8년 연속 파이널 진출 기록이 동부 컨퍼런스라서 가능했었다는 주장과 더불어 르브론의 파이널 연속 진출 기록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들이 자주 드는 근거가 바로 이 서고동저 현상이다. 아직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실질적인 결승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르브론이 우승을 하면 '경쟁이 치열한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지친 상태인 팀을 상대로 거저 얻는다'는 식이며, 준우승을 하면 '결국 서부가 압도하는구나' 식으로 서고동저가 다시 한 번 확인이 되는 셈이 되는 식의 주장이 계속해서 반복이 된다. 2000년대 초반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실질적인 결승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2018년 파이널이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르브론의 파이널 전적은 3우승 6준우승에 개별 경기로 따지면 18승 31패로 승률이 3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파이널 진출 시즌 동부 PO 전적은 108승 31패, 승률 77%로 파이널만 가면 승률이 반토막이 나버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8년 연속 NBA 파이널 진출은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서고동저 외에도 8번 중 절반 이상인 4번이 한창때의 동부팀 에 이 스들이 빅3로 한 팀에 모여서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도 참작의 여지가 있다.
5.6. 비판
서고동저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다. 기준은 각각이다. 플레이오프를 배제한 동서부 전체 승률, 상위 플레이오프 8팀의 동서부 상대 승률, 상위시드팀들의 상대 승률, NBA 파이널 우승 횟수 등등 다양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때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29]그 예로 08-09 시즌의 경우 승률로는 동부가 더 우세한 시즌임에도 상위팀들의 승률로만 계산하면 서부팀들이 압도적이기에 서고동저라는 것이고, 그 전 시즌인 07-08 시즌의 경우 전체 1-2위가 동부팀에서 나왔지만 이럴때는 서고동저에서 동부 1-2위팀이 배제하면서 나머지가 압도적이라는 이유로[30], 17-18 시즌의 경우 상위권팀들은 서부팀들이 많이 우세하지만 하위권팀들은 동부팀들의 승수가 더 많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드래프트에서 상위픽을 많이 가질 확률은 서부팀이 좀 더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면 성적 역순으로 상위픽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도 탱킹마저도 서고동저라는 얘기들을 진지하게 한다. 동부 하위팀들이 일방적으로 밀린 시즌의 경우는 탱킹이라도 동고서저다라는 얘기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항목에도 그렇듯이 르브론 제임스가 우승한 시즌(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5-16 시즌)에서도 서고동저라는 인식이 나오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서부팀이 우승했던 시즌에선 서고동저가 심하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것에 비해 동부팀이 우승한 시즌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에는 일관성의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결국 2021년 기준으로는 이런 이야기가 의미가 없어졌는데 르브론이 서부에서도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31]
단 완전히 없어졌다고도 하기 그런게 르브론이 LA에서 플레이하는 5년 동안 르브론이 파이널에 오른건 딱 한번 뿐이며, 나머지 4번 중 두번은 아예 플옵 진출 좌절, 1라운드 탈락이다. 2023년에는 회춘한 경기력으로 3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로 복귀했으나 그를 맞이한 것은 2020년의 복수와 커리어 3번째 스윕패.[32] 물론 이것만 가지고 르브론을 탓할 수는 없지만[33] 현재 르브론의 서부의 성적만 놓고보자면 2020년 한번으로 서고동저가 없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 애초에 서고동저의 논리는 르브론이 서부에서 파이널을 갈 수 있는가? 가 아니라 르브론이 서부에 있었다면 8년 연속 파이널을 진출할 수 있었는가?"에 더 가깝다. 르브론이 "서부에서는 파이널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말은 당연히 틀린것이긴 하지만 르브론이 서부에서만 뛰었다면 매년 파이널에 갔을것인가? 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존재하며 실제 르브론은 서부에서 여러번 물먹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완전히 증명된 건 아니라는 말.[34][35]
2024년에도 이 성향이 계속되는데 당장 르브론이 속한 레이커스는 47승으로 8위로 시전을 마무리했는데 이 성적이면 동부에서는 5위까지 내다볼 수 있는 성적이다. 49승을 거둔 펠리컨스는 7위로 마무리했는데 동부에서는 3위의 성적이다.
6. 로고에 대해
최초로 리그 로고가 쓰인 것은 1950/51 시즌부터인데, 농구공을 형상화한 원 안에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리그 단체 같다고 혹평을 받자, 1969/70 시즌부터 현재의 빨강/파랑 바탕 네모에 드리블하는 선수를 형상화한 로고를 새로 제정했다. 1980년대부터 유니폼, 농구 코트, 트로피 등에 확대돼 '상표'로서 완전히 정착되었고, 데이비드 스턴 총재 때에 들어서 마케팅사업부를 만들어 라이센스 수익을 거두기 시작했다. 2017/18 시즌부터 'NBA' 부분을 더 키웠다.
농구 팬들 사이에선 로고 속 드리블하는 사람이 제리 웨스트라는 소문도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특정 선수를 지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목에 상세히 나와있듯이 로얄티 문제로 인정하지 않을 뿐 로고를 디자인한 사람부터 웨스트를 참고한 게 맞다고 하고 있고, 공식 NBA 페이지에서도 웨스트 페이지에 "Mr. Logo"라고 해놓고 있는 등 정설에 가깝다.
코비 사망 이후 코비를 로고 모델로 쓰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저스틴 비버, 스눕 독 등 농구를 사랑하는 많은 셀럽들과 현직 선수들까지 거들며 200만명이 넘게 청원할 정도로 큰 반응을 이끌어 냈다.
청원이 올라온 1월 말에 NBA는 이미 이 제안을 "로고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일축한 상태다. 그 이유는 "수많은 NBA선수들이 농구란 경기가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냥 전형적인(generic) 이미지가 더 낫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 적혔다시피 NBA는 디자이너 본인부터가 웨스트가 맞다고 인정한 현재 로고조차 웨스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코비 브라이언트의 업적과 선수들에게 끼친 영향력, 스포츠사에서 손 꼽을만큼의 아이콘적인 위상을 고려해봤을때 그의 형상을 로고의 모습으로 대체하기에 근거는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특정 선수 모습을 그린 새 로고를 도입하기는 부담이 크고 어렵다는것이다.
따지고 보면 코비 브라이언트 이전에 새로운 로고 모델로 논의되어 온 선수가 있는데, 바로 수십년 동안 NBA의 얼굴이었던 마이클 조던이다. 조던이 90년대 내내 확고부동한 NBA의 얼굴이었고 현역 시절이던 97, 98년부터 그는 이미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20년 이상 NBA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그의 모습을 로고에 박아야 한다는 여론은 현지 팬들 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위에 언급된 코비 로고 청원 당시 스티븐 A. 스미스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난 항상 로고가 조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할 정도.
무엇보다 현 로고 모델인 제리 웨스트 본인조차 조던의 모습이 로고에 박혀야 한다고 2015년에 발언한 바 있다. 웨스트는 인터뷰에서 "레이커가 아닌게 매우 아쉽긴 하지만 (로고의 주인공은) 마이클 조던이어야 해요. 그는 제가 본 최고의 선수입니다. 전 선수의 재능을 평가할 때 기준이 높은 편인데 좋은 공격수일 뿐 아니라 좋은 수비수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 생각엔 그의 현역 시절 당시 그는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는 최고의 공격수이기도 했죠. 그리고 그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요"라면서 조던이 "로고에 넣기엔 굉장히 적합한 사람(would be a wonderful person to have there)"이라고 말했다.[36]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설령 조던보다도 더 위대한 선수가 나오더라도 한 선수 개인의 이미지를 공식적으로 써서 새 로고를 만들리는 만무하다. 애초에 웨스트도 그 모습을 따온 것 뿐이고, 그가 로고의 모델이라는 것도 우연에 가깝게 유출된 것이고 NBA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웨스트 본인도 "이러한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유출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할 정도. 즉, 설령 NBA가 새로운 로고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MLB처럼 어떤 선수라고 특정할 수 없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 NBA 역시 모델이 알려져서 그렇지, 그냥 전형적인 농구선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37]
7. 역대 총재
- 초대: 모리스 포돌로프 (1946~1963) : 참고로 NBA 정규시즌 MVP 수상자에게 주는 모리스 포돌로프 트로피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현재 MVP 트로피는 마이클 조던 트로피로 이름이 바뀌었고, 모리스 포돌로프 트로피는 2022-23시즌부터 수여되는 '정규시즌 전체 1위 팀' 트로피에게 붙었다.[38]
- 2대: J. 월터 케네디 (1963~1975) : 훗날 그를 기리기 위해 'J. 월터 케네디 시티즌십 어워드'가 만들어졌다.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초대 커미셔너였다.
- 3대: 래리 오브라이언 (1975~1984) : NBA 파이널 트로피의 주인공. 이분은 과거 민주당 소속 중역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한 바 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로도 알려진 바 있다. 그는 NBA에서 9년간 일하면서 1976년에 ABA를 합병시켰고, 1975년에는 CBS와 중계권 계약을 맺은 뒤에 1980년대 초반부터 중계권료를 최고액으로 올렸으며, 1983년에는 샐러리 캡 제도를 도입했다.
- 4대: 데이비드 스턴 (1984~2014) : 현재의 NBA를 만들어 낸 장본인.
- 5대: 아담 실버 (2014~ )
[1]
창설부터 현재까지의 NBA 소속 구단 로고 변천사. 유일하게
시카고 불스만 로고 변화가 한 번도 없다.
[2]
현재 NBA 팀 보스턴 셀틱스가 ABL 팀인 '오리지널 셀틱스'에서 따온 것이다.
[3]
이것 때문인지 1984년에 총재로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마약 퇴치 정책이다.
[4]
월간
루키 2012년 10월호 참고.
코비 브라이언트 및 NBA 중국 수익관련기사
[5]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前구단주 스털링 사건에 관해 신속하게 처리해 많은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6]
98-99시즌 당시 선수노조와 구단주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직장폐쇄가 일어나 98년분과 1월까지의 정규시즌 일정이 통째로 날아가 50경기 단축시즌이 열린 바가 있으나, 정규시즌이 짧아지고 올스타 위켄드가 없어졌을 뿐 정규시즌 수상과 플레이오프는 그대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선수들이 최소한 수상실적에서 손해는 없었다. (굳이 따지면 올스타 선정횟수에서 손해봤지만, 이보다 권위있는 올NBA팀을 포함한 모든 상은 그대로 선정) 그러나 만약 시즌이 재개되지 못한다면 사상 초유로 시즌 MVP를 포함한 모든 상과 동서부 챔피언과 최종우승자 등 모든 영예가 날아가게 된다. NBA 최초로 포스트시즌이 없어지는 것으로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가 되는 것. 여담이지만 권위는 없지만 투표진 중 70여명을 두고 MVP투표를 한 결과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7]
서부 13팀, 동부 9팀
[8]
사실 이렇게 보기도 어렵다. 휴스턴의 81년 파이널 진출은 매직이 시즌 절반을 결장하면서 전 시즌보다 약간 삐끗한 레이커스를 3전2승제에서 기습적으로 업셋한 뒤, 절대강자가 없어진 서부에서 업셋이 난무하면서 5번시드 캔자스 시티와 6번시드 휴스턴이 서부 결승을 치르면서 가능했다. 즉, 이때 40승에 그친 휴스턴이 우승후보급 전력이라고 보기가 애매하다. (휴스턴은 동부에 가면 플레이오프 탈락할 성적이었고, 이 시즌 밀워키는 60승이나 거뒀다) 86시즌에도 정규시즌 성적은 벅스가 57승, 휴스턴은 51승이었다. 결국 당시엔 동부가 서부에 비해 상위권이 훨씬 빡셌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실적이 휴스턴이 좋을 뿐, 실질적인 전력은 벅스보다 아래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실제로 80년대를 통틀어 휴스턴의 성적이 더 좋았던 적은 단 한번, 87-88시즌 뿐이며, 그나마도 46승대 42승으로 둘 다 중위권 정도 팀이었다. 반면 벅스는 79-80시즌부터 중간에 87-888년을 제외한 9년동안 각각 휴스턴보다 8승, 20승, 9승, 37승(!!) 21승, 11승, 6승, 8승, 4승씩을 더 거뒀다.
[9]
1981년 플레이오프에서 54승 레이커스가 40승 로키츠에게 업셋당했다고 이 때 레이커스가 로키츠보다 전력이 약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또한 83년에 셀틱스는 부상에 시달리던 버드가 평상시보다 부진하고 한 경기를 결장하는 등 고전하다가 한 수 아래 전력인 벅스에게 스윕당했다. 1990년대를 지배한
마이클 조던이 단 한번의 업셋도 허용하지 않아 간과되지만, 그 어떤 레전드 선수라도 업셋을 당할 순 있으며, 업셋을 당한 적이 있다.
[10]
각 컨퍼런스의 승수 총합의 경우 1979-80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서부컨퍼런스가 한 팀씩 많았기 때문에 공정한 비교가 될 수 없다.
[11]
사실 80시즌에 비해 81시즌에 갑자기 동부가 더 빡세진 것도 밀워키 때문이다. 80시즌 당시는 아직 밀워키가 서부에 있었고 서부 2번 시드를 받았다. 근데 그 밀워키가 동부로 와버린 것이다.
[12]
존슨은 이 시즌에 전성기를 보내며 생애 유일한 퍼스트팀에 올랐지만, 폭발적인 득점이나 어시스트로 팀공격을 주도하기보다는 두 항목 모두 준수한 수준에 특급 수비력으로 서포팅해주는 특급 조력자에 더 어울리는 선수였다.
[13]
젊은 에이스
도미니크 윌킨스가 이끄는
애틀란타 호크스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50승을 거둔 첫 시즌이다.
[14]
여담으로 이때문에 당시 동부를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당시 동부 8위는 서부 가면 꼴찌였다."고 주장하지만, 위에서 보이다시피 어차피 우승을 노리는 팀들은 상위시드에서는 동부가 훨씬 빡셌다. 우승을 노리는 입장에선 동부가 훨씬 더 힘들었던게 맞다.
[15]
오기가 아니다. 1988-89시즌에 리그에 합류한
마이애미 히트는 실제로 첫 시즌을 서부 컨퍼런스, 미드웨스트 디비전 소속으로 치렀다. 이는 당시 NBA팀들의 구성 때문인데, 1980-81시즌부터 NBA는 계속해서 서부가 한 팀 많았다. NBA는 가급적 양대 컨퍼런스 팀의 수를 맞추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시즌에 합류한 두 팀
샬럿 호네츠와 마이애미는 둘 다 명백하게 동부였다. 둘 다 동부로 넣으면 동부 컨퍼런스에 승수를 추가하기 쉬운 확장팀 두개가 생기는 셈이라 동부가 너무 유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엉뚱하게 남동부 해안 끝에 있는 팀인 마이애미를 서부로 넣은 것. 문제는 다음해에 올랜도 매직과 미네소타 팀버울브즈가 합류한 것. 신생팀은 약할 수밖에 없고 신생팀이 같은 팀에 있으면 승수쌓기가 유리해지기 때문에 NBA는 가급적 두 시즌에 걸쳐 생긴 신생팀 넷을 네개 디비전에 고르게 배포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부에 한 팀, 동부 해안의 세 팀인데 퍼시픽 디비전에 배치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었고 북중부 지역에 홀로 있는 미네소타를 동부로 배치하기도 애매한 상황, 궁여지책으로 전시즌에 미드웨스트에 하나, 애틀랜틱에 하나였으니, 이번시즌엔 센트럴 디비전에 하나(올랜도), 그리고 미네소타는 미드웨스트에 그대로 두고 엉뚱하게 샬럿을 미드웨스트로 옮긴다.
[16]
동부는 셀틱스 외에 55승을 다른 팀이 넘긴 적이 12번이다. 89시즌은 보스턴 자신이 우승후보가 아니라서 제낀다고 쳐도 그전까지 10번이다. 즉, 보스턴이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보다 훨씬 힘들었다는 소리이다.
[17]
위에 나온 수치를 전부 더 한 수치가 서부가 동부보다 0.9 높게 나왔다는 소리다. 연간 수치를 구하려면 여기서 10으로 나눠야 하니 10년 평균으로 나누면 사실상 의미가 없다.
[18]
물론 매직 존슨이 부상 때문에 한 경기 결장하긴 했지만, 그가 뛴 경기에서도 명확히 전력이 한 수 아래였다.
[19]
마이클 조던의 1988-89 시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불스는 이때 아직도 조던 원맨팀에 가까웠다. 전 시즌에 든든한 조력자인
찰스 오클리가 이적하는 대가로 받아온
빌 카트라이트는 전성기가 지난 롤플레이어로 12.4점 6.7리바운드에 그쳤고, 2년차였던
호레이스 그랜트는 주전으로 올라온 첫 시즌이었으며, 동기
스카티 피펜은 트위너 브래드 셀러스에게 밀려 후보였다가 셀러스가 주전으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서야 주전으로 올라섰다. 로스터를 통틀어 평균 15점을 넘는 선수가 한명도 없었으며, 포인트가드 포지션은 그야말로 가관으로 샘 빈센트와 존 팩슨으로 실험하다가 결국 막판엔 조던을 PG로 올릴 정도. 이 시즌에 막판 트리플더블 행진 등으로 팀을 그야말로 멱살잡고 47승으로 캐리한 조던은 1라운드에서 평균 39.8점 8.2어시스트 5.8리바운드 3스틸, 2라운드에서 35.7점 9.5리바운드 8.3어시스트, 2.5스틸을 거뒀고, 불스는 57승팀과 52승팀을 연이어 업셋한 다음 63승을 기록한 최강 피스톤즈를 상대로 2승을 따내며 이 해에 플레이오프에서 유일하게 피스톤즈를 상대로 승을 따낸 팀이 되었다. 피스톤즈를 상대로는 평균 29.7점 6.5어시스트 5.5리바운드 2스틸에 필드골성공률도 처음으로 5할 밑으로(46%) 떨어지는 등 부진(?)했지만 3차전에서 61.5% 성공률로 46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5스틸을 거두는 등 맹활약했다. 이때 피스톤즈를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40점을 넘긴 선수는 조던과
제임스 워디(40점) 뿐이었다. 한마디로 동고서저의 최절정에서 원맨팀을 이끌며 플레이오프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한 것.
[20]
88시즌까지는 보스턴이 9시즌간 평균 61.1승을 해서 확실히 더 성적이 좋았지만 89시즌에 42승으로 추락해서 확 깎아먹으며 저렇게 된 것. 실제 전력도 이와 유사하다. 셀틱스는 훌륭한 9번의 시즌과 한번의 말아먹은 시즌(버드와 맥헤일이 아웃된 해)이 있는 반면, 레이커스는 말아먹은 적은 없지만 전력이 아주 살짝 떨어졌을 때가 몇 번 있어 평균으로 치면 유사해진 것.
[21]
에이스들의 출장시간을 보면 확실히 대조된다. 매직과 버드는 세 살 차이에 드래프트 동기라 80년대엔 신체적 제약으로 출전시간을 관리받을 시기가 아니었다.(당시는 관리해주는 시기도 아니었고) 당시는 에이스들이 정규시즌에 30분대 후반, 플레이오프에선 40분대를 뛰는 게 흔한 시기였는데, 매직의 경우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41분을 넘긴게 루키 시즌 41.1분, 2년차 42.3분, 그리고 4년차 때 42.9분 뿐이었고 84년부터 89년까진 6년간 5번의 플레이오프동안 30분대를 뛰며 80년대 통합 평균 39.3분을 뛰었다. 특히 수월하게 올라왔던 87시즌엔 37분을 뛰는, 당시로선 호사를 누렸고 레이커스를 제외하면 단 한팀만이 50승을 넘긴(52승) 85년에는 36.2분까지 떨어졌다. 반면 버드는 80년대에만 6번 41분 이상을 뛰었으며, 그 중 세 번이나 44분을 넘겼고, 80년대 통합 42.3분으로 매직보다 3분이 더 많다. 88시즌엔 평균 44.9분을 뛰었으며, 혹사가 절정에 달했던 87년에는 NBA에서 가장 많은 23경기를 뛰면서 무려 평균 44.1분을 뛰었다.(결승에서 붙은 매직보다 5경기나 더 치렀고 평균 7분이나 더 뛴 것이다) 케빈 맥헤일은 같은 플레이오프에 부러진 발을 아직 치료 못한 상태에서 평균 39.4분을 뛰었다. 물론 매직이 관리받았단 의미가 아니라 둘 다 굉장히 빡세게 뛰었지만 그 중에서도 버드가 더 빡셌다는 것.
[22]
사실 10년 중 9년동안 서부에 한 팀이 더 있었다는 것도 서부에게 유리한 부분이다. 양 컨퍼런스의 플레이오프 진출팀 수는 같기 때문에, 한 팀이 더 있다는 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약팀이 하나 더 있다는 건데, 더 많은 경기를 치르는 같은 컨퍼런스 내에 약팀이 하나 더 있으면 당연히 승수 쌓기에 더 유리하다. 88-89시즌에 팀에 합류한 신생팀 둘은 지역과 별개로 하나는 서부에, 하나는 동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한쪽에만 유리하게 적용하지 않았다.
[23]
기적의 8번 시드로 불리지만 사실 뉴욕은 플옵에 턱걸이할 전력 자체가 아니었다. 뉴욕은 00시즌에 50승, 01시즌에 48승했으며, 98시즌에 43승에 그친 것도 전성기를 이끈 여러 멤버가 팀을 떠나서 새 멤버들이 들어오며 팀이 재정비하는 시기인데다 패트릭 유잉이 부상으로 26경기 출장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때는 팀이 변화를 겪느라 초반에 부진해서 그렇지 82경기 풀시즌을 치렀다면 후반에 승률을 끌어올려 최소 4,5번 시드는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에이스 페니 하더웨이가 더 이상 슈퍼스타급 기량이라고 하기 힘들고 팀 뎁쓰가 비교적 얕은 올랜도가 팀워크와 젊은 에너지에 힘입어 33승을 거뒀는데, 풀시즌이었다면 톱시드는 아무래도 힘들었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혼돈스러웠던 시즌.
[24]
필 잭슨 부임 전이었다.
[25]
페이스가 29개팀 중 19위/경기당 득점은 13위이나 수비 레이팅 1위
[26]
야니스 아데토쿤보,
조엘 엠비드,
니콜라 요키치.
[27]
이때에 비하면 2017-18 시즌은 서고동저가 많이 완화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7-18 시즌은 상위권에서 서부팀들이 동부팀들을 상대로 앞설뿐, 하위권 즉 탱킹 레벨에 있는 팀들끼리는 승수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쳐져 있다. 하지만 이 시즌은 전체 승률 뒤에서 1~3위도 모두 동부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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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로 뉴욕 같은 경우, 2000년대 초반에 그 삽질을 하면서도 왕조를 구축하고, LA라는 매력적인 빅마켓에 위치한 레이커스와 구단 가치 1,2위를 다투었다. 넘사벽인 뉴욕이란 거대 시장, 그리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가치 덕분이었다. 시카고 불스도 뉴욕까진 아니어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심지어 당시 서부엔 유독 가난한 구단주들이 많았다. 스퍼스 구단주 피터 홀트는 현재 자산 규모가 2억달러에 불과하고, 피닉스 선즈 구단주 로버트 사버는 4억달러다. 심지어 당시 워리어즈 구단주였던 크리스토퍼 코한도 2억 5천만 달러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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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에서 살펴봤다시피 80년대처럼 어떤 기준으로 봐도 한 컨퍼런스가 확연한 우세를 점하는 시대가 있다. 서고동저란 얘기가 나오는 시대 역시 여러 기준에 따라 객관적인 수치가 어떻게 되는지 본다면 해당 기준에 더 힘이 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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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시즌은 반대로 서부 전체 1-2위팀의 예를 상세히 나열하면서 역대급 팀들이 서부에 두 팀이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고동저라고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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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2020년 우승 직후, 많은 르브론 팬들은 르브론이 4우승 4파엠을 차지하게 되어 역대 2위 자리를 확고히 한 것보다 서부 증명 논란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했다. 하도 서부 증명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바람에 팬들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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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 패배로 르브론 제임스는 커리어 동안 서부팀에게만 스윕패를 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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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르브론의 입장에서는 30대 후반에 주축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르고 팀을 하드캐리하는 점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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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렇다고 해서 르브론의 위대함이 깎인다거나 하는 것 역시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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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애초에 르브론이 동부 시절때 뛰었던 클리블랜드와 마이애미가 서부로 옮겨지는 게 아니므로 결국 아무도 이 난제에 대한 답을 알수 없고 다들 추측을 할 뿐이다. 특히나 레이커스 시절은 전성기에 비해 부상도 잦은 편이고 경기력 편차도 있는 편이라 이러한 추측은 더욱더 미궁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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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마이클 조던의 실루엣이 로고로 쓰이진 않겠지만, NBA 져지에 박혔으면 좋겠다는 많은 이들의 바람은 2020-21시즌에 실제로 이뤄질 전망이다. 나이키는 지난 7월, 차기 시즌에는 NBA Statement Edition 져지 오른쪽 가슴에 박히는 나이키 로고 대신
조던 브랜드의 "점프맨" 로고가 박히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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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의 깔끔한 헤어스타일은 아무리 봐도 백인선수로 보이는데, 로고가 만들어지던 당시 NBA는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던 리그였다. 물론 실루엣처럼 머리를 깔끔히 빗어넘기던 헤어스타일로 유명하던 선수는 웨스트가 대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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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는 정규시즌 기록을 기준으로 팀에게 수여되는 트로피는 현행 모리스 포돌로프 트로피가 최초이다. 그 전까지 정규시즌에서 각 디비젼 1위를 기록하는 팀은 디비전 챔피언으로 기록되지만 그외에 챔피언 칭호나 트로피를 받진 못했다. 현재도 정규시즌 1위는 트로피를 수여받지만 '동부/서부 챔피언'과 NBA챔피언 칭호는 플레이오프 성과를 기준으로만 수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