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16 23:35:27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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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ike 텍스트 로고.svg

파일:나이키 로고.svg

<colbgcolor=#000> 기업명 정식: Nike, Inc.
한글: 나이키 주식회사
국가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다국적 기업)
업종명 의류, 스포츠 장비
설립일 1964년 1월 25일
본사 미국 오리건 주 비버튼
설립자 필 나이트, 빌 바우만
대표자 존 도나호 (사장 겸 CEO)
시가총액 301조 9,364억원 (2021.09.02)
링크 파일:나이키 로고.svg 대한민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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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뉴욕증권거래소 ( 1980년 12월 2일~)
기업분류 대기업
종목코드 NYSE: NKE
이전 기업명 블루 리본 스포츠 (1964~1971)[1]
총매출액 43조 7,771억원 (2018)
영업이익 5조 3,414억원 (2018)
순이익 2조 3,372억원 (2018)
총자산 27조 2,838억원 (2018)
총자본 11조 8,799억원 (2018)
직원 수 73,100명 (2018)
}}}}}}}}}}}}}}} ||

1. 개요2. 로고3. 슬로건4. 역사5. 광고6. 마케팅7. 제품8. 스폰서 목록9. 논란10. 여담

[clearfix]

1. 개요

나이키(Nike)는 미국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대표 상품인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 모자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현재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2]

2. 로고

파일:external/www.graphicsprings.com/nike-logo-orange-just-do-itviewing-gallery-for-orange-nike-logo-wsxefbn0.jpg
파일:나이키 로고(1978~1995).svg
<rowcolor=#ffffff> 1971~1978년[3] 1978~1995년[4][5]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6]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11달러 정도라고.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고가 발탁되고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코르테즈 슈독 팩 출시로 알려진 이야기로는 본래 나이키라는 회사명은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예전 회사명에서 바꾼 이름으로 또 다른 회사명 후보로는 팔콘과 디멘션 식스도 있었다고 한다. 셋 다 로고가 달랐으며 필 나이트는 그 중에서 나이키라는 회사명과 스우시를 택했다.

스우시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난 후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왼쪽으로 눕히면 나이키의 로고가 된다. 이 동상은 나이키의 로고를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있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004273-006A36D800000258-638_634x424.jpg
<rowcolor=#ffffff> 스우시 로고를 만든 캐롤린 데이비슨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년 9월, 나중에 나이키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7] 2000년 은퇴했다.

특히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부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레나 윌리엄스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1988년부터 밀어온 슬로건인 Just Do It과 함께 나이키의 대명사가 되었다.
파일:스우쉬.초기.디자인.jpg
<rowcolor=#ffffff> 나이키 코르테즈 슈독
2019년에는 코르테즈 레트로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스우쉬의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초창기 다음의 스우쉬 디자인이었고, 이를 복각시킨 것이라고 한다. 자수로 박을 정도로 얇쌍하고 조금 안정감이 덜 든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많이 거쳤고, 조금 더 형태에 있어서 안정적이게 되었다.

3. 슬로건

Just Do It.[8]
YOU CAN'T STOP [ruby(US, ruby=SPORT)].[9]
[ruby(우리, ruby=스포츠)]의 힘을 믿어.
Play New.[10]
모두의 운동장, 끝없이 서로의 가능성을 믿다[11]

4. 역사

파일:external/faceslaces.com/SWWWW.jpg
파일:external/s3.amazonaws.com/Bowerman_with_Oregon_track_athlete_circa_1969__original.jpg
<rowcolor=#ffffff> 창립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파일:external/i2.cdn.turner.com/150715115654-02-nike-super-169.jpg
<rowcolor=#ffffff>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
파일:external/s3.amazonaws.com/White_red_Cortez3_original.jpg
<rowcolor=#ffffff> 당시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아무리 봐도 코르테즈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운동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12]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13] 초창기에 자국 은행에 대출상담을 받으러 갔으나 거절당하고 한 담당자가 윗층에 일본 상사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상담해 보라고 하였다. 그곳이 니쇼 이와이(현 소지츠)이다. 니쇼 이와이는 나이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14] 또한 나이키가 당시에 생산거점을 일본에 두고 있었는데 그 위탁생산을 했던 곳이 바로 아사히 슈즈.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든가, 사장 앞에서 경쟁사 신발을 신는 패기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15]와 겹쳐 아디다스 리즈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게 피트니스지 스포츠가 아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16][17]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 했으나... 그래도 미국이 홈 그라운드인지라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함과 동시에 미국 운동화 시장 1위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이때부터 나이키의 독주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18][19] 이때 쯤부터 아디다스는 전세계 시장 지분에서 나이키에게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참고로 에어 조던 시리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스토리텔링으로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실제 나이키는 조던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런칭하여 운영 중이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이후에도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런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된다.

나이키는 많은 회사들을 인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콜한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바우어 하키(나이키 바우어)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헐리를 인수했다. 2004년에는 스타터, 2008년 엄브로를 인수했다. 하지만 너무 여기저기 손대는 것 같은지(...) 자신들의 중심 사업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스타터, 바우어 하키, 엄브로, 콜한 순으로 처분되고 현재는 컨버스 헐리만 남아있다.

이 블루 리본 스포츠, BRS는 나이키에서 다시 디자인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새로운 BRS의 로고를 디자인 한다던지..

5. 광고

<rowcolor=#ffffff> 2004년 월드 시리즈 이후 나온 광고.[20] 1인칭 시점인 광고[21]
<rowcolor=#ffffff> Just Do It: 너를 외쳐봐 Just Do It: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 된다.[22]

나이키의 필 나이트는 광고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는 상품을 광고에 직접 보이거나 선수들에게 협찬을 해주면서 광고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Nike is a marketing-oriented company, and the product is our most important marketing tool.
나이키는 마케팅에 기반한 회사이다. 그리고 상품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다.

이들의 마케팅에는 광고대행사 와이든+케네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나이키의 마케팅을 전담해 왔고 나이키와의 작업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 광고대행사로 성장했다. 창립자 댄 와이든은 나이키의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f86bc5973071a9e835101c0ea0fd5f28.jpg
<rowcolor=#ffffff> 최초의 에어 조던 광고[23]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나이키 CF를 거쳐갔다. 마이클 조던[24]부터 시작해서 타이거 우즈까지.
<rowcolor=#ffffff> Из чего же сделаны наши девчонки?[25]
2017년, 나이키 러시아에서 만든 나이키우먼 광고 역시 호평을 받았다. 2022년 기준 조회수 1천만 뷰를 돌파했다.

2018년 9월 나이키는 "Just Do It" 30주년 광고 캠페인에 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의 얼굴과 함께 의미심장한 문구를 써서 화제에 올랐다. 광고 영상. 몇몇 구매자들이 이에 나이키에 항의하는 의미로 자신들이 산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영상을 올렸으나 #, 애초에 Kaepernick을 지지할 만한 사람들(진보, 다인종, 도시)이 나이키나 다른 소위 힙한 브랜드들이 노리는 주요 고객층[26]이고, 기대했던 대로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고[27] 기존 타겟층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진 게 확연하기 때문에 나이키 측에서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은 광고 공개 이후 폭락했다가 다시 회복하고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나이키 주식을 살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광고 후 나이키 온라인 매출이 31% 상승했다.

다만 나이키가 자신들의 신발을 만들고 있는 주로 동남아 지역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인권침해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면서 미국에서만 이런 광고를 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있긴 하다. 이에 대해 나이키는 초기만 해도 "우리 회사가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까지 우리가 신경쓸 여력은 없다", "우리 회사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빈곤을 탈출할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으나, 1996년 한 잡지의 표지에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리면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하청업체 관리와 노동통제의 관행을 바꾸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게 된다.
<rowcolor=#ffffff>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2019년, Just Do It. 슬로건을 기반으로 제작된 마지막 광고영상. 보아의 나레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엠버 리우, 박나래, 청하 등이 출연한다. 2022년 기준 조회수 1천만뷰를 넘기며 나이키 코리아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 중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2020년 7월 30일에 업데이트 된 새로운 광고. 여기서 지난 40년간 나이키의 상징과도 같았던 "Just Do It"을 탈피하며 "You can't stop us"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처음 공개했다. 이 광고는 세계 여러나라의 스포츠 영상들을 한데 어울려 훌륭한 퀄리티로 엮어낸 데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그에 담는 메세지도 비록 세계가 코로나로 침체되었지만 우리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라는 시대에 대한 저항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 많은 호평을 받아내었다. 이후로도 나이키는 다른 집단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광고나 행보를 하며 "You can't stop us"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기존의 "Just Do It" 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사람들에게 슬로건을 각인시키고 있다.
<rowcolor=#ffffff> 새로운 미래 A New Day | Play New Play New
2021년에는 "You can't stop us"에 이어 "Play New"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공개했다. 작년의 호평을 이어나가 승리와 성공에만 집착하는 스포츠의 관습을 깨부수고 즐길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자는 메세지를 전달해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국내에서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집단 가혹행위 사건이나 2021년 학교폭력 폭로 사건과 스포츠에서의 가혹행위와 같은 사건이 터지면서 이러한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늘어났는데 이를 깨부수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강렬하게 보여줘 엄청난 화제와 호평을 받았다.
<rowcolor=#ffffff> 모두의 운동장
2022년 새롭게 발표한 슬로건에 맞춰서 김민경의 나레이션으로 영상을 제작했다.

6. 마케팅

1위의 스포츠용품 브랜드답게 마케팅 능력도 매우 좋다. 사실상 마케팅의 힘이야말로 나이키가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게 해준 원동력이라 할 만한데, 나이키를 떡상시킨 에어 조던에 대한 마케팅 역시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당시 NBA의 규정상 색깔을 맞춰야 했고, 조던은 벌금을 내면서까지 에어 조던 1 농구화를 신었다는 설이 전설처럼 떠돌고 있으며, 나이키는 광고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이것이 조던1이 기성세대와 권력에 저항한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 되어 전설적인 스니커즈로 남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나이키 측에서 마케팅을 위해 사실을 교묘하게 섞은 거짓말을 지어내서 써먹은 것이다. 조던이 유니폼 규정을 위반했을 때에는 마이클 조던에게 에어 조던이 지급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조던의 앞코를 만들 때 실수로 색깔을 잘못 조립했는데 그게 예뻐서 일명 블랙 토 모델이 되었다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며, 이도 나이키의 마케팅일 가능성이 높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특유의 마케팅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인데, 셀럽이나 럭셔리 브랜드, 유명 스트릿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도 스포츠 브랜드 중 가장 공격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며, 신발 리셀 시장과 스니커헤드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조용한 제품을 갑자기 각광받게 하는 전략을 매우 잘 활용한다. 가령 2020년도에 갑자기 떡상한 나이키 덩크의 경우, 원래도 인기가 있는 신발이었지만 불과 2010년대만 해도 색 조합이 시원찮을경우 아울렛에 갈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오프화이트와의 협업, 스케이트 보드의 올림픽 채택, 덩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등. 대중들에게 덩크를 신어야 할 갖가지 이유를 들먹이면서 물량을 한정으로 풀어버렸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20년도를 덩크의 해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나이키는 특정 실루엣이나 색깔의 제품에 담긴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끼워맞추고, 제품을 구입해야 할 이유를 강제로 만들어서 콜라보나 한정적인 발매를 통해 대중들의 에너지를 집중시킨 뒤, 시장이 포화될 때 쯤, 갑자기 물량을 풀어버리고 곧바로 다른 실루엣의 제품으로 눈을 돌려서 다시 앞선 사이클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아디다스나 뉴발란스 같은 경쟁사들이 이런 마케팅 능력에 있어서 나이키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신발 리셀 시장의 경우 나이키가 매우 높은 비중을 지니고 있다.

7.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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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폰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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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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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담

  • 공식적인 읽는 방법은 "나이키"지만 의외로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대체로 유럽에서 나이크로 읽는 경향이 있고 특히 영국은 영어의 종주국 이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오히려 이에 의문을 표하면 Bike도 바이키라고 읽을 거냐고 묻는 식으로 반박한다고...
  • 미국 공홈에도 온라인 스토어가 있으며, 델타 항공 스카이마일스 쇼핑이나 아메리칸 항공의 어드밴티지 e-쇼핑 사이트를 경유하여 마일리지도 적립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라인 스토어가 한국 카드를 거의 안 받아 준다는 것이다. 대개 나이키 공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하려면 카드를 직접 이용하기 어려워서 페이팔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아니면 피니시라인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28] 한국 온라인스토어는 결제가 잘만 되므로 한국 위키러들은 걱정 안해도 된다.
  • 한국의 나이키는1981년 (주)화승그룹 계열사인 (주)풍영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기사 1986년 화승과 결별하고 (주) 삼양통상과 50대 50의 자본제휴로 한국나이키를 설립한다. 기사 1989년 삼나스포츠로 사명을 변경한다. 1994년 전체 지분을 나이키가 인수하고 나이키스포츠 코리아로 재출범한다.
  • 여느 글로벌 신발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은 OEM 업체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는데 한국의 태광실업이 전체 물량의 10%를 책임지며 나이키 내 OEM 3위 안에 든다고 한다.
  • 시그니처 제품들은 스포츠 스타와 손을 잡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비스포츠 스타와도 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에미넴과 콜라보하였고, 2010년대 초반에는 칸예 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콜라보 스니커의 레전드 AIR YEEZY를 남겼다. AIR YEEZY는 그동안 나이키에서 해온 방식[29]과는 다르게 칸예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라는 점이다.[30] 이는 당연히 성공할 수 밖에 없었고, 신발의 가치마저 바꿔놓았다. AIR YEEZY의 성공 이후 칸예 웨스트는 마이클 조던처럼 지분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이키에서 거절당했고, 이후 경쟁사 아디다스와 2조가 넘는 금액에 손을 잡았다. 그가 떠나고 여러 스타들과 협업 했으나 칸예 만큼의 파급력이 없었는데... 마침내 2018년 래퍼 트래비스 스캇과 내놓은 신발들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스니커 시장을 다시 한 번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그의 레이블인 CACTUS JACK의 이름으로 스니커를 출시하고 있다.
  • 2015년 아디다스가 전세계 6개 도시(뉴욕, LA, 런던, 파리, 상하이, 도쿄) 공략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2017년 나이키는 상기된 6개 도시에 추가로 6개 도시(서울, 베이징, 베를린, 바르셀로나, 밀라노, 멕시코시티)를 더해 도합 12개 도시를 중점 판매 거점 도시로 선정하기도 했다.
  • 한국의 래퍼 Beenzino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Nike Shoes>를 만들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이며, 평소 빈지노는 나이키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빈지노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나이키의 협찬을 받고 있는 듯하다.[31]
  • 애플 CEO 팀 쿡이 나이키의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는데 이 영향인지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다. 아이팟 없이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고 한다. 아이팟이 시들해진 지금은 애플 워치 시리즈에 나이키 에디션을 추가해 판매 중이다.
  •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 연관이 꽤 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32]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컨셉트카를 수록.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일하게 컨셉트카 발표 예정.[33]
  • 2019년 2월 20일에 미국 농구선수 자이언 윌리엄슨의 PG 시리즈 농구화 [34]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찢어지는 바람에 넘어져서 경미한 무릎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해당 선수가 속한 팀이 라이벌전에 져서 나이키는 전방위적으로 욕을 엄청 먹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이언 윌리엄슨 본인이 같은 신발을 오래, 자주 착용하여 생겨서 일어났다고 밝혀졌다. 이후 자이언은 카이리 어빙 시그니처 농구화를 신었고, NBA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입성 후, 에어 조던과의 신인 역대 최대 계약을 맺었다. 정리글 영상
  • Nike Run Club이라는 러닝 보조 어플리케이션[35]과 Nike Training이라는 운동 보조 어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나이키라는 명칭과 나이키 로고를 붙인 것만으로 광고 효과가 충분하다 판단했는지 무료 앱임에도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오는 신상품 안내를 제외하면 추가 광고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과거 한국 TV 방송에서 출연자가 '나이키'를 외치는 것은 해당 장면을 편집해달라는 은어였다. 방송법 상 직접적인 상표를 노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음이 짧고 편한 상표명인 나이키를 주로 외쳐서 해당 장면이 일부러 편집되도록 만들었다. #.
  • 한때 랜스 암스트롱이 현역일때만 해도 사이클 분야에 진출해있었으나 지금은 철수했다.
  • 나이키 '조던 브랜드' 회장이 10대 시절 살인죄로 복역했던 어두운 과거를 공개했다. 링크
  • 나이키의 신발들은 발볼이 넓은 한국인의 족형과 대체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신발들이 마이클 조던을 위시한 흑인 스포츠 선수들의 족형을 많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볼이 타이트하고 발등이 낮은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아디다스나 아식스 같은 다른 브랜드의 신발들에 비해 5~10mm는 크게 신는 사람들이 많다.
  • QC가 나쁘기로 악명높아서 나이키 신발들의 경우 제품 퀄리티 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일부 라인은 다른 브랜드들의 비슷한 가격대 신발들과 비교해보면 마감이나 재질 면에서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고, 아예 퀄리티가 나쁜 제품이 정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균적인 제품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사실상 브랜드의 감성으로 구입하는 신발로 봐야 할 지경.
  • 인기가 많은 브랜드인 만큼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신발만큼이나 가품이 매우 많다. 한정 응모로 발매되는 제품은 물론, 물량이 부족한 제품들은 귀신같이 가품이 쏟아지며,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서 인기 모델인데 사이즈가 꽉 차있는 경우, 정가보다 약간 가격이 저렴한 경우에는 무조건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정품임을 증명하는 소위 나코탭이라고 불리는 주황색 나이키 코리아 태그 역시 가품 제작자들이 쉽게 만들어서 붙이기 때문에 완전한 구분 수단은 아니다.

    심지어는 상술했듯이 나이키의 QC가 좋은 편이 아닌데다 가품 제조에 상당한 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품보다 오히려 퀄리티가 좋은 경우도 있어서 일반인이 정-가품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애초에 공식 홈페이지나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인터넷 쇼핑몰 역시 떴다방 같은 곳이 아닌, 영업한지 오래된 사이트나 전문 멀티샵, 백화점 등의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제품들도 정품으로 볼 수 있다. 다만, 21년도에는 백화점몰에서 가품이 유통되는 사건( #)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게 되기도 했다.
  • 배트맨 실사영화 시리즈 중 모던 에이지 시리즈에서도 나이키가 PPL을 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배트맨(1989) 배트맨 리턴즈에 협찬을 한 것인데, 영화에서 발견하기 어렵기 하지만, 사실 배트맨이 신고 다니는 장화의 정체가 바로 나이키에서 생산한 운동화이다. 배트맨(1989)에서는 나이키 에어 트레이너 III이고, 배트맨 리턴즈에서는 에어 조던 VI인데, 이 운동화를 검게 칠하고, 윗부분에 장화 목을 접착해서 만든 것이다. 나이키에서 PPL을 넣으려고 했는데, 1940년대 풍인 어두컴컴한 분위기인 영화에 나이키 운동화가 어울릴 만한 곳을 못 찾다가 끝내 검게 칠해서 배트맨에게 신기기로 했다고. 덕분에 마이클 키튼은 촬영 내내 발이 편해서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워낙 시커먼 색이라서 잘 안 보일 뿐, 소품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제품 디자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6]


[1] 1971년 5월 30일 나이키로 기업명 변경. [2] 단순히 스포츠 용품 브랜드 중 1위가 아니라 전세계 어페럴 브랜드 1위의 가치를 지녔다. 2019년 브랜드 파이낸스가 조사한 어패럴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출처.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기업 가치 순위에도 패션 브랜드 중 루이비통과 함께 20위 안에 들었다. 출처. [3] 드물긴 하나, 이 로고와 특유의 필기체 글꼴도 아주 가끔씩 빈티지 나이키 슈즈에 각인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4] 현재는 주로 NIKE 로고가 안 달린 버전으로 쓰지만 이 버전도 간간히 쓰인다. 스포츠, 전문 기능성 제품은 스우시 로고만 있고, 캐주얼 제품들은 사진처럼 나이키와 스우시 로고가 같이 들어가 있다. 축구 유니폼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5] 물론 요즘은 파리 생제르망 FC와 같이 에어 조던과 콜라보해 스우시 대신 조던 로고를 넣는다거나, 레트로한 느낌을 내기 위해 'NIKE' 문구가 들어간 스우시를 넣는 경우도 있다. [6] 심지어 처음부터 그래픽 디자인을 지망한 게 아니라 저널리즘 공부 도중 학점 채우기용으로 디자인 수업을 듣다가 전과했다고 한다. [7] 회사가 작았을땐 전담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7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가 외주를 주면서 데이비슨 역시 나이키 일 말고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8] 2019년까지 나이키에서 쓰이던 슬로건. 한국어로는 "그냥 해." 로 해석된다. [9] 2020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전 세계가 스포츠로 다른 사람들간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 2021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기존의 승리와 성공에만 집착하는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스포츠의 관습을 부수고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11] 2022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어느 누구 스포츠에서 뒤떨어지는 일 없이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를 찾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12] '나이키' 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 에 등장하는 승리의 여신에서 따온 것이다. [13] 오니츠카 타이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발이 바로 코르테즈이다. 자동차 업계로 본다면 아식스는 미쓰비시, 나이키는 현대자동차 쯤 되겠다. [14] 이후 나이키와 니쇼 이와이의 합작인 나이키재팬이 설립된다. [15]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 [16]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모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화승산업에서 리복의 운동화를 생산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한국이였다. 산업발전시절 가발과 신발은 전세계 공급의 60%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세계인들이 쓴 신발이나 가발의 절반은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이었던것 물론 그 단가를 맞추려고 엄청난 노동착취가 있긴했다. [17] 화승은 1970~1980년대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고 국내에도 나이키 브랜드를 들여왔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로 르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 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 [18] 나이키는 아디다스를 역전했지만 80년대 중후반부에 리복에게 역전당했으며, 1989년 당시 리복의 매출은 18.2억 달러, 나이키는 17.1억 달러로 앞서고 있었다고 한다. https://www.retaildive.com/news/reebok-was-meant-to-be-a-nike-killer-how-the-brand-lost-its-no-1-spot-adidas-sale-of-reebok/603733/ 또한 80년대만 해도 나이키와 리복, 아디다스와 컨버스가 경쟁을 하던 구도였으며, 컨버스는 당시 NBA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최고 인기선수였던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를 동시에 계약하기도 했다.(1984년에 두 선수가 같이 함께 컨버스 광고를 찍다 친해졌다는 건 유명한 얘기. 유튜브에도 영상이 남아있다) 80년 당시 나이키가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켰다는 건 과장이다. 90년대 초중반까지 나이키와 리복은 팽팽했으나, 90년대가 꺾이고 나이키가 독주, 아디다스가 열심히 따라가는 사이 리복은 지지부진하며 완전히 둘에 비해 뒤쳐지게 된다. [19] 나이키는 79년에 미국 런닝화 시장 지분의 절반을 차지했다. 기존 서술은 이 점 때문에 혼동한 듯. 7,80년대 당시 나이키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하며 아디다스, 컨버스처럼 기존의 강자들을 앞서나가던 시기였지, 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절대강자가 아니었다. [20] 별다른 문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광고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고계에서 엄청난 주목도를 받았다. [2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페르시, 보얀 키르키치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센 벵거등 당대 최정상 축구스타와 감독들이 참여하였다. [22] BIGBANG 태양, 2NE1 산다라 박, 축구선수 박지성, 테니스 선수 정현이 카메오 출연. [23] 후에 에어 조던 29에 프린트되어 나왔다. [24]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의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됐다. 또 19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25] 번역하면 '우리 딸들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26] 즉, 나이키는 돈 안되는 보수주의자나 시골 공화당원, 트럼프 지지자는 필요없다는 것. 또한 사회적 이슈로 광고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펩시 스타벅스와 달리 예전부터 나이키는 '반항아'적인 광고를 해왔으며, 이러한 광고가 나이키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27] 실제로 4천 3백만 달러 가치의 SNS 버즈량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28] 그러나 피니시라인은 서로 치수가 안 맞는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막장 라인"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물건을 직구로 구매하고 받아놓고선 못 받았다고 카드 결제를 취소해버리고 물건도 보내지 않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안 받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풋 계열은 잘 받는 중이고 변팔만 잘되면 미국 공홈에서 충분히 한국카드 사용 가능하다. [29] 나이키의 베스트셀러 제품을 여러 컬러웨이나 소재를 바꿔 재창조 [30] 실제로 칸예웨스트는 패션계 입문 전부터 펜디의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디자인을 배웠다. [31] 나이키와 콜라보로 제작된 <The Fearless Ones>에도 참여했다. 또한 빈지노의 의류기업인 IAB STUDIO가 나이키와 종종 협업하고 있다 [32]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33] 사실 에어 조던 역시 예정하고 있지만 나이키 산하의 조직이다. [34] 폴 조지 시그니처 [35] 상술한 애플 워치 나이키 에디션에 나이키 페이스와 기본적으로 설치된다. [36] 심지어 배트맨 리턴즈의 에어 조던같은 경우에는 발바닥에 조던 마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른바 걸을 때마다 땅에 마이클 조던 발자국을 남기는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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