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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영국 제78대 총리
리즈 트러스 Liz Tru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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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Mary Elizabeth Truss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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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5년 7월 26일 ([age(1975-07-26)]세) | ||
잉글랜드 옥스퍼드셔 옥스퍼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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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기간 | 제78대 총리 | ||
2022년 9월 6일 ~ 2022년 10월 25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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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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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부모 |
아버지 존 케네스 트러스 어머니 프리실라 메리 트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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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휴 오리어리[1] | ||
자녀 |
장녀 프란시스 오리어리 차녀 리버티 오리어리 |
||
학력 |
라운드헤이 학교 (졸업)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컬리지 ( PPE /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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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개신교 ( 성공회) | ||
소속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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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 사우스 웨스트 노퍽 | ||
의원 선수 | 4 (서민원) | ||
의원 대수 | 55, 56, 57, 5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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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8대 영국 총리.2. 상세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마지막 총리이자 찰스 3세 시대의 첫 총리다. 또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이다.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갖고 있으며, 자유 시장경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브렉시트에 반대하기도 했으나 이후 보리스 존슨 총리의 성향에 맞춰 온건한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는다.보수당 선거를 앞두고 중도 자유주의 성향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스테로이드 맞은 대처(Thatcherism on steroids)", 진보주의 성향 신문 더 가디언지는 "스테로이드 맞은 존슨(Johnson on steroids)"이라는 하마평을 실었다. 전자는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후자는 보리스 존슨 총리보다도 극단적인 행보를 압축해서 한 표현.
테레사 메이 퇴임 이후 보리스 존슨 총리를 거쳐 3년 만에 등장한 영국 역사상 3번째[2] 그리고 40대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총리이다. 또한 첫 1970년대생 영국 총리이기도 하다.[3]
30대 중반부터 12년에 걸쳐 환경 장관, 재무 차관, 교육 장관, 국제 통상 장관, 법무 장관, 외무 장관 등 내각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결국 40대에 총리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의원 내각제가 아닌 국가의 정치인, 관료가 불과 40대에 이런 직위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영국을 포함한 서구권 정치인 중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정치인으로서 트러스 본인의 실무 능력, 보수당의 장기 집권 등의 요인도 이런 출세 가도에 한몫했다.
그러나 취임 17일 후인 9월 23일 처음 내놓은 대규모 감세 정책[4]이 시장에서 역풍을 맞으면서 영국발 재정 위기설이 터져나왔다. 파운드화 환율이 근 40년 만에 1파운드=1달러 환율에 근접할 정도로[5] 약세가 되자 취임 6주 만에 책임을 지고 퇴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감세를 하면 정부에 돈이 없으니 정부의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트러스 내각의 첫 미니 예산안 발표인 감세 정책과 관련해서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기존의 정부 지출 규모를 유지하려면 줄인 세금만큼 국채를 발행하여 나라가 빚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럼 통화량이 늘어나는 수순이 뒤따르기에 고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된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가 당시 2022년 말에 고물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했던 상황이라 금리 인상으로 통화를 긴축함이 대세였었다. 고인플레이션 상태가 지속되면 물가가 오를 테고, 금리가 인상되면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금리도 오르기 마련이니 정부가 감당해야 할 국채의 이자도 늘어난다. 이미 영국 정부가 부담하는 재정 부채 비율은 총GDP의 100%를 육박하는데 #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재정 위기가 닥친다는 예상이 있었다. 감세를 하면서 고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재정 긴축을 해야 하는데, 트러스 내각의 이번 미니 예산안 발표인 감세 정책과 관련해서 파운드 가치가 약세로 폭락하자, 영란은행은 긴축과 정반대인 양적 완화를 선언하여 시장에 혼란을 더 크게 일으켰다.[6]
결국 국민들은 물론 보수당 내 여론까지 악화되면서 2022년 10월 20일 45일 만에 퇴진을 선언하였고, 결국 10월 25일 취임 50일 만에 사임하면서 종전에 조지 캐닝이 기록한 영국 총리 최단임 기록 119일을 경신했다. 게다가 이전에 최단임 총리 타이틀을 보유한 총리들은 재임 중 사망하거나 임시로 맡은 경우가 많았는데, 트러스는 건강상 문제도 전혀 없었을뿐더러 임시가 아니라 공식 당수로서 총리직에 올랐는데 최단임 총리 기록을 압도적으로 갈아치우게 됐다. 다른 나라의 정치사와 비교해 보아도, 2004년 당시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 정지로 62일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총리보다도 재임 기간이 짧으며[7] 태평양 전쟁 패전 직후에 재임한 일본 총리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이 54일간 재임한 기록보다도 더 짧다.[8][9][10] 현대 영연방 주요국과 비교하면 호주의 존 맥윈 전 총리의 22일 재임 기록과 아서 파든 전 총리의 39일 재임 기록에 버금가는 최단명 총리로 남았다.
영국 및 보수당의 난맥상은 뱅상 오리올 프랑스 대통령 치하 당시의 정국 혼란에 준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오리올 대통령 재임기의 프랑스도 지도부 난맥상으로 프랑스 총리[11]직이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까지 통상 1개월~11개월 주기로 계속 교체되었던 사례가 있다.
총리로서 수행한 일이라고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을 치른 것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극히 짧게 재임했다. 하지만 최단임 총리라는 불명예와는 별개로 70년 넘게 이어졌던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끝과 찰스 3세 시대의 시작을 함께 한 총리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상징적인 총리이기도 하다. 허나 영국 정치와 경제의 난맥상을 제대로 구현시키고,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총리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3. 생애
1975년 7월 26일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의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리즈 대학교 수학과 교수이며, 어머니는 간호사 겸 교사[12]이다. 캐나다에서 잠시 거주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퍼스트 네임 '메리'가 아닌 미들 네임 '엘리자베스'로 불렸다고 한다.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에서 PPE[13] 전공으로 1996년 학사를 받았다. 이 후 로열 더치 쉘과 'Cable & Wireless'라는 통신 회사에서 경영 매니저로 근무하였다.
어릴 적부터 정치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10대엔 부모와 함께 핵무기 폐지 및 반 대처 집회에 참여하고 20대엔 왕정 폐지론자였을 정도로 강력한 진보 성향이었다.
그러나 정계에는 1996년부터 보수당에서 활동하였고 2001년, 2005년 총선에 모두 보수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해당 지역들은 노동당 텃밭이었기 때문에 낙선하였다.
이후 보수당 내에서 경력이 쌓이자, 제55회 영국 총선에서는 보수당 강세 지역인 이스트 오브 잉글랜드의 노퍽에 위치한 노퍽 남서부 지역구에 공천받아 보수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초선 의원으로서 트러스는 도미닉 랍, 프리티 파텔 등과 함께 자유 기업 그룹이라는 대처리즘 우파 성향 초선 의원들의 모임을 주도했다.[14] 이런 행적 때문에 트러스는 우파 자유지상주의 내지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자란 평가를 받는다.
2014년부터 트러스는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환경부 장관을 맡았고, 2016년 브렉시트 국민 투표 직후 캐머런이 물러나 테레사 메이가 총리로 선출되자 법무부 장관(대법관 Lord Chancellor 직 겸임)에 기용되었다. 브렉시트에 대해선 반대론을 외쳤지만 브렉시트가 통과되자 재빠르게 찬성파로 돌아서기도 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재무부 차관으로 좌천되었으나, 메이가 물러나고 보리스 존슨이 총리로 선출되자 다시 국제 통상부와 무역 대표부의 수장으로서 장관직을 맡았다. 이후 앰버 러드 노동 연금 장관 겸 여성 평등 장관이 사임하자 여성 평등 장관직을 겸임하였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사태 당시 조기 귀국하지 않고 그리스 남부의 크레타섬에서 휴가를 보내 논란이 된 도미닉 랍 장관의 후임으로 9월 15일 개각에서 외무·영연방 개발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2월 19일 데이비드 프로스트가 브렉시트 이행·방역 조치 등을 두고 존슨 총리의 정책에 사실상 반기를 들며 사퇴하자, 트러스가 브렉시트 협상 대표로 임명되었다. #
3.1. 2022년 보수당 대표 선거 출마
LIZ FOR LEADER
경선 공식 슬로건
경선 공식 슬로건
2022년 7월에 보리스 존슨이 총리직 사퇴를 발표하자 당수 선거에 출마했다. 리시 수낙 전 재무 장관, 페니 모돈트 국제 무역부 부장관에 이어 경선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낙선이 유력했지만, 결선 진출을 위한 마지막 투표에서 줄곧 2위를 차지하던 페니 모돈트 후보를 8표 차이로 겨우 제치면서 리시 수낙과 함께 결선에 진출했다.
이로써 보수당 차기 당수 결선은 3번째 여성 총리 후보 대 최초의 유색 인종과 최연소 총리 후보의 구도로 치러지게 되었다.
8월 초 기준 보수당 당원 여론 조사에서 리시 수낙과의 양자 대결에서 58% 대 26%로 2배 넘는 차이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영국의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5일 열린 결선 투표에서도 81,326표를 득표해 57.4%를 차지하고 리시 수낙 전 재무 장관을 누르고 승리하면서 보리스 존슨의 뒤를 잇는 새로운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관례에 따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알현한 뒤 9월 6일 제78대 영국 총리가 될 예정이다. #
그녀의 승리 요인은 대처 전 총리와 비슷한 강한 보수주의가 보수당원들의 마음에 들었으며, 리시 수낙 전 재무 장관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게이트-성추행 전력자 발탁이라는 2연타 위기에 가장 먼저 사임을 해서 총리 사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이 꼽힌다. 존슨과 가까운 의원들과 당원들에게 반감을 산 것이다.[15] 존슨 본인도 재무 장관 발탁을 해줬는데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난 차기 총리가 수낙만 아니면 된다', '운전할 때는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봐야 한다(=수낙같이 뒤통수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등 공공연하게 수낙을 저격하고 다녔는데, 이 덕도 컸다.[16]
흥미롭게도 영국 국왕, 총리의 이름이 모두 '엘리자베스'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17] 국왕과 총리의 이름이 같은 경우는 윌리엄 4세 시절 총리직을 수행했던 윌리엄 램 이후로 185년 만이다.[18]
또한 리즈 트러스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 후 맞이하는 무려 열다섯 번째 총리[19]이며, 왕실 사정으로[20] 137년 만에 버킹엄 궁전이 아닌 장소에서 임명되는 연합 왕국 총리가 되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취임 이틀 만에 여왕이 별세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마지막으로 임명한 영국 총리이자 찰스 3세 국왕의 첫 총리[21]로 역사에 기록되었다.[22]
3.2. 총리 재임 시절
자세한 내용은 리즈 트러스 내각 문서 참고하십시오.3.2.1. 최단명 총리가 되다
2022년 10월 20일, 취임 45일 만에 불명예스러운 일로 총리직에서 사퇴를 선언하여 영국 역사상 최단 기간 재임한 총리가 되었다. 이로써 영국은 공교롭게도 최장기 재임 국왕의 임종과 장례를 최단기 재임 총리가 맡고야 말았다.
사퇴 사유는 재무 장관 쿼지 콰텡과 함께 발표했던 감세 정책이 불러온 역효과[23]와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부터 이어져 온 보수당 정권의 낮은 지지율로 인한 당내의 압박으로 보인다. 10월 17일 BBC 인터뷰에서 '실수에 대해 사과하지만 다음 총선까지 계속 당을 이끌겠다'고 밝힌 지 사흘만의 일이다. 결국, 재임 기간 동안 정부 수반으로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를 도맡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혹평을 받으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고 말았다.[24]
다우닝가 10번지 현관에서 트러스 총리는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 나는 보수당에 의해 선출된 나의 권한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달았고 그러므로 국왕 폐하께 알리기 위해 보수당 대표직을 사임한다고 말씀드렸다. 오늘 아침 나는 1922 위원회[25] 위원장을 만나 새 지도부 선거는 다음 주 안으로 완료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국토 계획의 이행과 나라의 경제적 안정과 국가 안보를 유지하는 길에 남아있을 것임을 공고히 하였다. 나는 후임자가 선출될 때까지는 총리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3.3. 총리직 이후
2023년 5월에 대만을 방문했다. #2023년 12월에 서훈 추천 권한을 가졌는데, 경제 위기로 내려온 최단명 총리라는 점에서 노동당 등 야당에서 비판이 나왔다. #
총리 재임 당시 취하던 강경 반중 입장과 달리 2023년 8월 본인 지역구의 기업을 위해 비밀리에 중국에 방산 장비를 팔고자 로비를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였다. #
입소스 조사에서 우주인 컨셉 정치인인 깡통 백작보다 호감도가 낮게 나오는 굴욕을 당했다. #
미국 공화당의 열렬한 지지자인 것으로 보인다. 2024년 2월 친 공화당 성향의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하여 ‘좌파에 의해 서방이 너무 오래 좌지우지되었다’ ‘나의 몰락은 딥 스테이트가 꾸민 음모다’ 같은 괴상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24년 7월 총선 낙선 이후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3.4. 2024년 총선 낙선
2024년 7월 4일 치러진 제59회 영국 총선에서 전직 총리라는 체급에도 불구하고 전체 2위를 기록하면서 630표(1.4%p) 차이로 낙선했다. 개표 결과 1위는 노동당의 테리 저미(Terry Jermy).
2위를 기록한 트러스의 득표율과 3위를 기록한 강경 우파 개혁 영국 소속 후보인 토비 맥켄지(Toby McKenzie), 4위 전 노퍽 지역 주 부지사 출신의 보수당 소속이었다가 탈당한 무소속 후보의 득표를 다 합치면 63%인데, 이 표가 철저히 갈렸다. 문제는 보수당에 대한 민심이반에 더해 후보 개인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4위를 기록한 제임스 배그 후보는 " 리즈 트러스를 낙선시키기 위해 출마했다"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다녔다. 그는 2010년, 트러스의 낙선을 위해 활동하던 사우스 웨스트 노퍽 보수당 반란 모임인 "순무 탈리반(Turnip Taliban)"의 멤버였는데, 이들의 결집이 트러스 낙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
사우스 웨스트 노퍽 지역구는 1964년 이래 60년 동안 보수당이 차지했기에 노동당이 압승했던 1997년 영국 총선에서도 넘어가지 않았던 곳이며 이번 총선 범보수 득표율만 봐도 보수세는 굳건했지만, 보수층에서도 이미 개혁 영국이 노동당의 다크나이트 역할을 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고, 이것이 결국은 현실이 되었다. #[26][27]
개표 결과 현장( #)에서 낙선 결과를 받아낸 트러스는 노동당 후보와 악수한 뒤 발표 회장을 나와 주변 인사들과 포옹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실망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 1935년 램지 맥도널드의 낙선 이후 약 89년만의 전직 총리 지역구 낙선 사례다. #
여러모로 트러스의 낙선 순간은 제이콥 리스모그의 낙선과 함께[28] 이번 총선의 ' 포틸로 모먼트'(Portillo moment)[29][30]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4. 논란
4.1. 감세로 인한 시장 위기
이 사건은 정치적 이념이 시장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리즈 트러스 총리는 이 사건으로 기록적인 단명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안그래도 민심이 떠나간 영국 보수당은 제대로 망가져버렸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2022년 9월 23일 450억 파운드, 한국 돈 약 72조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했다. '복지를 덜 하되 세금도 덜 걷는다.'는 그의 대처리즘적 철학이 담긴 수십년이래 최대 규모의 감세안이었다. 문제는 당시 영국의 물가 상황이 2022년 전 세계 물가 폭등의 영향으로 7월 한 달에만 10.1%라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극심한 물가상승과 에너지 가격 상승에 서민층과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년층은 난방과 식사 중 하나만 택해야 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긴축이 필요한 시기에 돈을 푸는 '미친 짓거리'였다. 또 이 감세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70조원에 다다르는 세수 공백을 국채로 해결해야만 했다. 파운드화는 폭락하고 국채 금리는 치솟았다. 영국 금융 전체가 개박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영란은행은 다급히 국채 매입을 해야만 했다.
이 같은 사태에 국제통화기금(IMF)까지 나서 "영국 정부가 감세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
결국 2022년 영국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각종 시위가 발생했으며, 경제성장률은 그 러시아보다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경제가 이 모양이 되면서, 보수당은 2024년 총선에서 역사에 남을 정도의 패배를 기록했다.
4.2. 의용군 참여 독려 논란
외무장관을 역임 중이던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가기로 한 영국인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자원자들이 트러스 장관의 말에 고무돼 참전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문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강대국인 러시아가 교전 상대국이라서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때문에 같은 내각 장관인 벤 월러스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를 도울 방법은 참전 말고도 있을 것"[31]이라고 리즈 트러스의 의용군 지지 주장을 비판했다. #
결국 일부 영국인들이 의용군( 우크라이나 국제군단)으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히면서 논란이 되었다.
4.3. 브렉시트 관련 오락가락 행보 논란
2016년 국민투표 실시 전에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다가 정작 투표 결과 찬성률이 더 높게 나오자 잽싸게 브렉시트 지지론으로 입장을 바꿨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리즈 트러스의 행보를 ‘ 철의 풍향계(Weathercock)’ (이미지)라고 조롱했다. #영국 가디언은 “변신에 능한 사람(shapeshifter)”이라고 평했으며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시소를 타듯 이랬다저랬다 하는 트러스의 정치적 성향은 그의 믿음이 진실한지, 아니면 매번 편리함을 따른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
4.4. 불륜
휴 오리어리(Hugh O'Leary)[32]라는 남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동료 남성 국회의원과 불륜을 저지른 전적이 있다. 상대는 2001년부터 2019년까지 시티즈 오브 런던&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의원을 지낸 1964년생 마크 필드.필드 의원은 트러스보다 9년 일찍 2001년에 의회에 입성했고, 당시 원외인사였던 트러스의 정치 멘토 역할을 당에서 맡겼던 상황이었다. 두 사람 다 각자의 배우자가 있었으며, 트러스는 어찌저찌 이혼을 피했지만 필드는 2006년에 아내와 이혼한 뒤 선을 봐서 2007년에 재혼했다.[33]
실제로 보수당 당수 경선 당시에도 이 부분이 언론으로부터 재조명되어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찰스 3세가 즉위함에 따라 군주와 총리가 모두 기혼자인 상태에서 또 다른 기혼자와 불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기록을 채웠다. 어린 시절부터 필립 공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했던 동명의 엘리자베스 2세와 대비되는 부분.[34]
5. 여담
- 아버지 존 트러스(John Truss)는 수학기초론 연구에 매진한 수학자이다. 수리논리학 관련 교과서에서 간혹 이름이 나온다.
- 원래 이름은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중간 이름인 엘리자베스를 줄인 리즈를 이름으로 써왔다.
- 총리 선거에서 승리한 비결은 부유층 감세, 에너지 가격 동결,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을 내세워 보수당 당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
- 트러스 내각이 들어서면서 보수당 정권임에도 4대 고위관리직(총리, 외무장관, 재무장관, 내무장관)이 모두 백인 남성이 아닌 사람로 구성되었다.[35] 그러나 쿼지 콰텡 재무장관이 40일도 못 채운 채 경질되고 백인 남성인 제러미 헌트가 신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 기록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36] 그리고 트러스 본인마저도 취임 50일 만에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다.
- 어린 시절 리즈 지역의 요크셔에서 살다가 노퍽 지역으로 이사를 간 이후 노리치 시티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 총리에 취임 후 다음 날 엘리자베스 2세를 만났지만 이틀 뒤 여왕이 사망함에 따라 여왕 치세의 마지막 총리가 되었고 새 국왕 시대의 첫 총리가 되었다.
-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보리스 존슨 전임 총리에 비교해서 리즈 트러스는 연설에 그다지 능하지 않고 다소 경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다만 총리 취임 전후로 어색한 제스쳐는 어느 정도 개선이 됐다 #... 지만 45일만에 쫓겨나게 되어서 더이상 그녀의 개선된 모습은 보기 힘들듯하다.
- 영국 여성 총리 중에 최초로 성을 바꾸지 않은 총리이다. 마거릿 대처의 원래 성은 로버츠, 테레사 메이의 원래 성은 브레이저.
- 외무장관 시절 러시아 요원들에게 개인 휴대전화가 해킹을 당했다. #
5.1. 사임 관련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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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스타의 유튜브 생방송 | 다우닝 가 10번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영국 시민의 모습[37] |
이 때문에 원래부터 오래 재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여론이 드물었다. 기존부터 영국의 경제는 좋지 않았던지라 임기 시작 무렵부터 보수당의 중진 데이비드 데이비스(David Michael Davis, 1948~) 의원은 트러스에게 "1979년 대처 총리에 이어 전후 총리 중 두 번째로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에 영국의 타블로이드 매체인 데일리 스타가 2022년 10월 14일부터 유통기한 10일짜리 양상추가 트러스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캐삭빵을 시전했고, 이 양상추 생중계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해당 내기는 트러스 총리 본인에게도 알려졌으며 데일리 스타와 '자신이 양상추보다 오래 재임할 것'이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내기는 결국 불과 7일차만에 현실이 되었다. 데일리 스타는 리즈 트러스의 총리 사임 소식이 알려지자 유니언 잭을 양상추 뒤에 꽂아놓고 미러볼을 켠 뒤 God Save the King의 반주를 틀었고, 그 후 트러스의 초상화 액자를 뒤집어 엎어 놓은 채 댄스 곡 메들리를 틀어놓는 모습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송출하며 신나게 풍자했다. NYT[41]
재임기간 초에 터진 추모 정국이 지나간 후로 해외 여론조사 기관인 모닝 컨설트에서 진행하는 국가 수반 지지율을 조사할 때마다 꼴찌 자리를 장식해왔다. 종전에는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42]와 함께 셋업맨 경쟁을 펼쳤으나, 문제의 감세정책 발표 이후 트러스가 마무리를 꿰차며 독보적인 꼴찌로 자리잡았다. 물론 영국 내 조사에서 임기 2개월도 못 채운 완전히 신참 총리였던 리즈 트러스의 말년 평가는 긍정평가 10% 미만, 부정평가 80% 초반.(...)
역대 영국 총리 중 최단기 재임이라는 타이틀을 195년 만에 갱신하게 되었다. 직전 타이틀 보유자는 1827년 4월에서 8월까지 재임한 조지 캐닝 전 총리로, 119일간 재임하다 사망하며 최단기 기록을 보유했다. 그나마 조지 캐닝은 병으로 사망한 거라 비웃음거리는 전혀 아니지만, 리즈 트러스는 엄청난 실책을 저지르고 역대 최단명 총리 기록을 갱신한거라 더더욱 조롱거리가 되었다. 또 1924년[43] 이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총리는 알렉 더글러스흄도 있긴 하나 흄은 364일이나(?) 재임하며 아슬아슬하게 1년을 넘기지 못한 수준에 그쳤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리즈 트러스의 사임을 두고 트위터로 양배추가 이겼다며 조롱했으나, 일론 머스크가 러시아군은 바흐무트는 언제 점령하냐는 식으로 조롱했다.
리즈 트러스 역시 어찌됐든 총리직을 거쳤으니 다른 퇴임 총리와 마찬가지로 공공 직무 비용 수당을 받는다. 다만 그녀의 능력이나 임기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굳이 11만 5천 파운드(약 2억원)의 연금을 주는 것이 말이 되냐는 불만이 영국 전역에서 제기되었다. 이 수당은 마가렛 대처가 퇴임한 전 총리들이 공적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용을 보태기 위해 만든 것인데, 리즈 트러스의 공적 가치라고 해봤자 거의 100년만의 장례식, 그것도 여왕만을 따지면 수백년 만에 실행된 장례식을 실행한 총리였다는 점을 빼면 사실상 반면교사 밖에 안 될 사람이라 '흑역사 총리'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재임 기간이라도 길었으면 그동안 수고했으니 답례로 주는 연금 개념으로라도 여길 수 있겠는데 리즈 트러스의 재임 기간은 고작 45일 밖에 안된다.
사임과 동시에 전후 영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총리로 앤서니 이든, 테레사 메이와 함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44] 그나마 이든은 1차 대전 참전용사인 동시에 체임벌린 내각과 처칠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크게 활약한 바 있고[45] 최악이라고 평가받던 메이도 3년은 했지만[46][47] 트러스는 45일간 있으면서 수행한 공무라고는 엘리자베스 2세 장례식이 전부이다.
엘리자베스 2세가 별세 2일 전 임명했던 터라 엘리자베스 2세와 비교당하며 나노 단위로 까였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70년 동안 왕위 계승추정 신분이던 1947년 남아프리카에서 영연방 국민들에게 맹세한 평생을 당신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를 성실히 지켰기 때문에 정말 강경한 공화주의자 영국인들 정도를 제외하고는[49]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여왕이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임명한 총리가 딸랑 여왕의 장례식만 겨우 치르고 엉망진창으로 정책을 펼치다 경제도 말아먹고 45일만에 사임했으니, 비교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을 것이다.
사임 연설에서까지 본인의 실책에 대한 일말의 사과 없이 정신승리만 일삼다가 떠나는 추태를 보였다. 게다가 사임 발표 연설도 1분 30초, 사용 단어도 201개로 성의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저 연설도 대처를 오마주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처는 30초짜리 연설로 사임했는데, 이때는 오히려 눈물을 흘린 청중까지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
사임 이후로는 의회에서도 별다른 돌출발언 없이 있는듯 없는듯 잠행만 반복하다 2023년 2월 The Spectator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여전히 총리 재임기간의 행보에 대해 후회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YouTube) 이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희생자 추모 분위기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깜짝 방영 및 의회 연설을 앞두고 평소답지 않게[50] 분위기가 엄숙하고 진지하고 다정다감(?)하던 8일 PMQs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 스티븐 플린 원내대표에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깜짝 부관참시를 당했다. 대략 "전직 총리님께서 인터뷰를 하셨다길래 봤더니 총리 시절을 후회하지 않는다네요? 혹시 현직 총리님께서는 전임 총리의 임기를 후회하지 않으실까요?" 하는 질문이었는데, 이 질문을 듣고 여야가 하나되어 의장까지 한목소리로 폭소를 터뜨렸다.
2024년 8월 이 사건과 관련해 트러스가 또다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있었다. 자신의 회고록을 홍보하는 행사에서 대담을 나누던 중 무대 위쪽에서 '내가 경제를 망쳤다'라는 문구와 눈알 달린 양상추 사진이 붙은 스크린이 내려온 것. 트러스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가다 진행자가 올라와서야 스크린을 발견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 장난은 Led By Donkeys라는 반 브렉시트 정치단체에서 벌인 일로 알려졌다.
6. 선거 이력
<rowcolor=#ffc224> 연도 | 선거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락 | 비고 |
2001 | 제53회 영국 총선 | 헴스워스 |
|
7,400 (21.01%) | 낙선 (2위) | |
2005 | 제54회 영국 총선 | 칼더 밸리 | 17,059 (35.71%) | |||
2010 | 제55회 영국 총선 | 사우스 웨스트 노퍽 | 23,753 (48.33%) | 당선 (1위) | 초선 | |
2015 | 제56회 영국 총선 | 25,515 (50.92%) | 재선 | |||
2017 | 제57회 영국 총선 | 32,894 (62.76%) | 3선 | |||
2019 | 제58회 영국 총선 | 35,507 (68.99%) | 4선 | |||
2024 | 제59회 영국 총선 | 11,217 (25.30%) | 낙선 (2위) | [51] |
7. 소속 정당
<rowcolor=#ffc224> 소속 | 기간 | 비고 |
|
? - 1996 | 정계 입문 |
|
1996 - 현재 | 입당 |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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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당의 서민원 의원 수는 300명을 넘어가므로, 가독성을 위하여 나무위키 내 문서가 존재하는 의원만 작성한다. | ||||
총리 | |||||
리치먼드 리시 수낙 |
|||||
서민원 원내대표 | |||||
포츠머스 노스 페니 모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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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민원 의원 | |||||
사우스 스태포드셔 개빈 윌리엄슨 |
에셔 월튼 도미닉 랍 |
사우스 스윈든 로버트 벅랜드 |
노퍽 사우스 웨스트 리즈 트러스 |
억스브릿지&사우스 라이슬립 보리스 존슨 |
|
서리 히스 마이클 고브 |
와이어&프레스턴 노스 벤 월러스 |
브롬스그로브 사지드 자비드 |
롬포드 앤드루 로신델 |
칭포드&우드포드 그린 이언 덩컨 스미스 |
|
메이든헤드 테레사 메이 |
위섬 프리티 파텔 |
노스 이스트 서머싯 제이콥 리스모그 |
사우스웨스트 서리 제러미 헌트 |
스펠손 쿼지 콰텡 |
|
서퍽 코스털 테리즈 코피 |
브레인트리 제임스 클레벌리 |
페어햄 수엘라 브레이버먼 |
|||
보수당 ·
노동당 ·
자유민주당 ·
스코틀랜드 국민당 ·
민주연합당 플라이드 컴리 · 사회민주노동당 · 동맹당 · 녹색당 · 신 페인 · 무소속 |
[1]
1974년생. 2000년 결혼.
[2]
각각 마거릿 대처, 테레사 메이, 리즈 트러스
[3]
그런데 차대 총리가 된
리시 수낙은 80년생이라서 최초의 70년대생 직후 최초의 80년대생 영국 총리가 배출되며 세대가 낮아졌다. 또한 전임자이던 보리스 존슨은 60년대생 총리. 즉, 보리스 존슨(60년대생)-리즈 트러스(70년대생)-리시 수낙(80년대생) 순으로 연령대가 연이어 낮아진 것이다.
[4]
최고 소득세율 인하와 법인세 인상 철회를 포함했다.
[5]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파운드가 달러보다 낮게 평가받기도 했다.
#
[6]
가디언은 지나치게 우파 이념에 매몰된 행보를 보였다가 역풍을 맞았다며 민주주의 진영에선 부유한 이들이 더 자유롭게 재능을 발휘하고 더욱 부유해지는 저세금·저규제 사회라는 이상이 우파의 동력이 돼 왔는데, 트러스 총리는 이런 '꿈'의 진실성을 '아마도 영원히' 실추시켜 버렸다는 평을 내렸다.
#
가디언지 원문
[7]
제6공화국의
국무총리가 국가원수를 대행한 역사는 과거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정지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44대 총리의 사례도 있는데 황교안 대행의 재임 기간은 5개월로서 리즈 트러스 총리의 재임보다 훨씬 길다. 황교안 총리는 한국 헌정사에 있어 가장 길게 국가원수를 대행했던 인물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실각한 상황에서 탄핵이 확정되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기까지 국정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8]
심지어 이쪽은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와 사이가 안 좋아서 총리직을 때려친 케이스다.
[9]
참고로 세계 최단명 총리는 1945년 4월 30일부터 5월 1일까지 고작 2일간 재임한
파울 요제프 괴벨스이다. 그러나 괴벨스는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재임 중이었음을, 그리고 이마저도 재임 도중 자살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리즈 트러스는 어떤 대외적 문제도 없이 순수하게 내치를 못 해서 퇴진당한 최단임 총리라는, 세계 정치사에 길이 남을 흑역사를 기록하였다.
[10]
누룰 아민 전
파키스탄
총리의 경우 재위 기간이 불과 13일로서 리즈 트러스보다도 훨씬 짧다. 총리로 국한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역사상 최단명 정부 지도자는
페드로 라스쿠라인 전
멕시코 대통령으로서 약 45분간 재임했다. 아민의 경우
동파키스탄 독립이라는 정치적 혼란 상황이었고, 라스쿠라인 역시 군사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 승계 서열 앞 순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사망한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재임한 것이다.
전제 군주까지 포함하면 프랑스의 명목상 국왕인
루이 19세가 약 20분간 재위한 사례가 있기는 한데, 그것도
7월 혁명이라는 정치 격변으로 인해 생긴 과도기에 임시로 즉위한 거라서 평시에 정상적으로 집권했다가 최단임으로 끝난 트러스와 1:1로 비교하기 어렵다.
[11]
당시는 프랑스도 의원 내각제였다.
[12]
보건 교사로 추정
[13]
PPE는 정치, 경제, 철학을 모두 공부하는 융합 학과인데, 수학과, 물리학과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 중 하나이며 특히 정치 엘리트들이 많이 전공한다. 영국 정가에선 최고 명문 학벌로 꼽히는데, 후임 총리인
리시 수낙도 옥스퍼드 PPE 전공 출신이다.
[14]
이들 중 트러스를 포함한 5명은
영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촉구하는
브리타니아 언체인드라는 저서를 저술한 바 있다.
[15]
영국 재무 장관은 총리 다음으로 영향력 있고 위상이 높은데 사퇴를 하니 존슨의 거취에 큰 압박이 되었다.
[16]
아무리 존슨이 불명예 퇴진을 했다고 하지만 보수당 내에서는 아직도 존슨의 인기가 높으며 심지어 절반에 가까운 보수당원들이 존슨이 당수 선거에 나온다면 존슨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여론 조사도 있어서 존슨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수낙이 경선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
[17]
'리즈'는 엘리자베스의 줄임말 및 애칭이며, 트러스 총리의 법적 이름(legal name)은 ‘메리 엘리자베스 트러스’가 맞다. 실제로 싸인도 'Elizabeth Truss'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풀 네임이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였던 고로, 이름이 둘이나 겹친다.
[18]
그러나 해당 기록은 리즈 트러스 총리가 취임한 지 고작 만 이틀 만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숨을 거두면서 최단명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
최고 기록은 20번의 총리를 맞이한
빅토리아 여왕이 가지고 있지만 같은 인물이 선거 결과에 따라 대를 건너 뛰어 취임한 경우가 많아 사람 수로는 10명에 불과, 이 부분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가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 머무르는 중에 여당의 신임 대표로 당선되었기 때문. 여왕이 96세의 고령임을 감안해 여왕이
런던에 행차하는 것이 아닌, 트러스 총리가 밸모럴에 찾아가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결국 여왕은 밸모럴성을 떠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21]
선대왕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별세 전 여왕의 권한으로 트러스에 대해 총리로 이미 임명을 해둔 상태이기 때문에 후임 국왕인 찰스 3세에게 또다시 임명받을 필요는 없다.
[22]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최단임 총리인 트러스와 달리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최장수 왕이다.
[23]
파운드화 대폭락과 금융 시장의 전반적인 하락으로 인해 국가의 신용도가 대폭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영국을 향한 투자 철회가 이뤄졌다. 이로 인해 쿼지 쿼탱이 해임되고 후임
제레미 헌트가 전임자가 진행하던 대부분의 정책을 철회했다.
[24]
다만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태도로 인해 책임감이 있다는 긍정적인 평도 종종 있다.
[25]
18명으로 구성된 1922 위원회의 집행위원회는 당 대표 선출이나 대표 신임 투표 진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위원회 재적 의원의 15%가 당 대표(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면 실제 투표도 가능해진다.
[26]
비례대표제가 없는 영국 총선 특성상 650개 지역구 중 609곳에 독자 후보를 공천한다.
[27]
이번 영국 총선이 대체로 이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개혁 UK가 상승세에 힘입어 제2당을 노리고 있었다가 오히려 표를 까고 보니 보수당과 비등한 득표율이 속출하면서 최종 4석만 얻게 됐는데, 이같은 표 분산으로 인해 양쪽 모두 손실만 입고 안 그래도 강세였던 노동당에게 더 큰 압승을 거머쥐게 했다.
[28]
이쪽은 아예
Sky News
선거방송 진행자가 '안녕히 가십시오 리스모그 씨', '이번 총선 마지막 포틸로 모먼트네요'라고
확인사살까지 했다. 하지만 리스모그의 낙선 이후 무려 전직 총리였던 트러스의 낙선까지 추가로 발표되면서 보수당은 더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
[29]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명백한 차기 당권주자였던 마이클 포틸로 방위장관이 본인의 지역구 엔필드 사우스게이트에서 노동당의 무명 신예 스티븐 트위그에게 충격적으로 패해 낙선하면서 생긴 용어로, 해당 총선 노동당의 압승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이때 이후로 영국에서는 유력 거물 정치인이 본인의 지역구 선거에 패배해 낙선하는 것을 포틸로 모먼트라고 부르게 됐다.
[30]
한편
2024년 영국 총선에서 명백한 차기 당권주자이자 국방장관 경험자인
페니 모돈트도
본인 지역구에서 낙선하고야 말았다. 참고로 이 용어의 유래가 된 마이클 포틸로 본인은 이후 1999년
켄징턴&첼시 선거구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서민원에 복귀했고
2001년 영국 총선에서도 당선됐으나
2005년 영국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정계를 떠났고 현재는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31]
러시아는 외국인의 우크라이나편 참전과 국제 의용군 출신등에 대해 전쟁 포로로 인정하지 않고 전부 용병으로 취급할 것이라고 했었다. (
제네바 협약의 제 1의정서 47조에서는 용병은 전투원 또는 전쟁포로가 될 권리를 가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용병은 정당한 교전권을 가진 전투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포로로써의 처우등에 대한 인도주의적 원칙의 적용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가려는 자국인들을 막았다. 대한민국 또한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해 버렸다.
[32]
# 정치인을 꿈꿨으나 실패했고 런던에서 크게 성공한 회계사로 활동 중이다.
[33]
필드의 경우 애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불륜 대상자들이 결국 해피 앤딩으로 끝난 사례.
[34]
여왕은 소녀 시절 필립 공에게 첫눈에 반한 것으로 전해지며, 필립 공의 바람기를 어느 정도 용인해주기도 하면서 70년 가까이 해로했다.
[35]
트러스가 보수당 내에서도 강경파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영국 중도우파 보수주의자들의 소수자 친화적인 성향을 알 수 있다.
[36]
쿼지 콰텡 전 장관의 기록은
에드워드 히스 총리 시절이던 1970년 아인 매클레우드 전 장관의 30일 기록에 이은 최단명 재무장관 2위 기록이다. 다만 매클레우드 전 장관은 퇴진한 게 아니라 멀쩡히 근무하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최단기 불명예 퇴진으로 보면 콰텡 전 장관이 1위인 셈이다.
[37]
'Lettuce in'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직역하면 '양상추 안에'란 뜻이 되지만, 다른 뜻으로는 Let us in을
의미한다. 즉
당신 관저에 쳐들어가겠다” 또는 “
당신 얼굴 좀 보자”라는 뜻.
[38]
순지지율(긍정평가-부정평가)로 봐도
마거릿 대처 이래 순지지율이 임기 초반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한 사람은
테레사 메이가 최초고, 그 다음이 리즈 트러스다. 그나마 테레사 메이는 3년간 버티며 아주 잠깐 순지지율이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트러스는 이를 역전시킬 기회도 없었다.(...)
리시 수낙(
#) 역시 임기 거의 전 기간 동안 순지지율이 마이너스였던 것은 메이, 트러스와 비슷했지만 그래도 취임 직후만큼은 순지지율이 플러스였고 임기 중초반에는 지지율이 30%를 넘게 만들었던 데다가 지지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2년 가까이 총리직을 역임했다.
역대 영국 총리들의 순지지율
[39]
하다못해 그 메이조차 임기 말인 2019년에야 잠깐 20%를 밑돌고 얼마 후 20%대를 회복했다.
[40]
감세 정책 실시 무렵부터 부정평가가 수직상승하고 긍정평가가 수직하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1]
국내에서도 이는 유명해져 리즈 트러스를
구글에 치면 연관검색어로 '리즈 트러스 양배추'가 뜰 정도다.
[42]
13년의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과 전기 난방료 급등 및 네덜란드 경제 악화, 수차례 반복되는 스캔들로 부정평가가 급증한 상태이다.
[43]
1922~1924년에는 2년 동안 5명의 총리가 재임해 중간의 3명은 1년을 채우지 못했다.
[44]
여기에
네빌 체임벌린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래도 체임벌린은 재무장관 시절
대공황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냈다는 공로라도 있기에 셋보다는 나은 평가를 받고 있다.
[45]
다만 그렇게 따지면 트러스도 50세가 되기 전 5개의 장관직(심지어 외무장관도 역임했다!)을 역임할 정도로 관료로서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46]
캐머런의 내무장관으로서는 상당한 강단을 보여주었지만, 경찰 인원을 지나치게 감축하여 여러 치안불안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 역시 받는다. 나아가
윈드러시 세대의 국외추방을 책임진 내무장관이기도 한 탓에 이 건으로도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
[47]
게다가 그녀도 트러스처럼 임기 시작부터 레임덕이었는데도 임기 말에 아주 잠깐이나마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를 앞서게 만들고 3년을 버텼다. 그리고 긍정평가도 임기 절반 가까이 30%대였던 데다가 심지어는 임기 초반과 중순 아주 잠깐 동안 4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48]
관점에 따라서는 공산당으로부터 고국을 민주화시켰지만 무능한 통치 끝에 그 공산당의 후예에게 정권을 넘겨준
레흐 바웬사와
살리 베리샤가 트러스 이상의 정치적 무능을 보여줬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적어도 이들은 현
폴란드/
알바니아의
국부라는 긍정적인 업적도 크다는 점에서 트러스의 평가는 더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웬사는 대통령제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임기 종료를 1년 앞두고 지지율이 5%(...)까지 찍은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남은 임기를 다 채우는 데에 성공했고 베리샤는
나라를 내전으로 몰아넣고도 대통령 퇴임 직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2연속 당선된 것을 넘어(다만 이는 그의 지역구가 알바니아에서 민주화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었던 것의 영향도 크긴 하다) 총리 2연임에 성공할 정도로 기본적인 정치력은 탁월했지만, 트러스는 보수당 텃밭에서 전직 총리 직함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다만 베리샤는
알바니아 사회당 문자 그대로
북한과 동급의 학정을 펼친
엔베르 호자가 속해 있던
알바니아 노동당의 후신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내전으로 몰고 가며 그 호자의 후예에게 정권을 넘겨줬다는 것만 놓고 보면 그 트러스보다도 더하긴 하다.(...)
[49]
심지어 이쪽도 군주제는 반대하지만 여왕의 헌신 자체에는 존경을 표했다.
[50]
영국 하원의 PMQ의 경우 야당에서 총리를 살발하게 영국식 블랙유머로 비아냥 거리면서 까는 (...)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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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문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