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13:09:35

윈드러시 스캔들

1. 개요2. 윈드러시 세대3. 내무부의 '적대적 환경' 정책4. 전개5. 후일담


Windrush Scandal

1. 개요

2018년, 영국 내무부가 영국 내 수십년간 살아온 윈드러시 세대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에 압박과 추방 위협, 그리고 실제 추방을 행한 것이 폭로된 스캔들이다.

2. 윈드러시 세대

영국은 1948년 국적법 조정으로 당시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들에서 출생하였거나 당대 영국 식민지의 국적을 지닌 이들이라면 영국 본토에서의 거주권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카리브해 식민지들에서 1948-1970년간 약 50만 명이 이민왔고 이는 영국 정부에서 장려한 것이었다. 영국은 당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갓 헤어나온 상황으로 심각한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 이렇게 당시 영국으로 이민온 이들을 '윈드러시 세대'라 부르는데, 윈드러시 세대 이민자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러한 윈드러시 세대들은 영국 본토에 거주권이 있었기에 이민올 때 다른 외국인들과 다르게 입국 관련 서류들이 필요 없었고 소지하지도 않았다. 영국의 관련 법은 1973년 다시 조정되어 구 식민지인들이 입국 관련 서류 없이 입국할 수 없게 되었으나, 윈드러시 이민으로 영국에 정착한 반백만명은 영국에서 계속 살아갔다.

3. 내무부의 '적대적 환경' 정책

2012년 영국은 한창 유럽 난민 위기 브렉시트 여론과 반이민 분위기가 거세지던 때였다. 이 때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내무부 장관으로 있었던 테레사 메이 주도 하의 정부 정책으로 영국 내 불법 이민자들을 찾고 불이익을 주어 영국으로부터 쫓아내려 하는[1] 정책을 제정,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영국의 반이민 정책 기조로 각종 활동(대출, 집 구매 등)에 본인의 신분 증빙 서류를 요청하게 되자 자신을 증명할 서류가 미비했전 윈드러시 세대가 그 유탄을 맞게 되었다. 분명 그들이 고향을 떠날 때는 고향이 영국의 일부였고 영국 정부의 사실상의 초청으로 본토에 합법적으로 이주하였지만 출신지가 더이상 영국이 아니게 되고 1973년의 법 조정으로 필요 서류 없이 영국에 거류하는 외국 출생자, 즉 영락없는 불법이민자가 되어 불이익 및 추방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

이 적대적 환경 정책의 영향으로 무려 50년씩이나 영국에서 살아가던 윈드러시 1세대들과 영국에서 일생을 살아온 윈드러시 2, 3세대들은 영국의 까다로운 신분 증명 요청에 영국에서의 거주기록, 학교를 다닌 기록, 세금 납부 증명서 등 온갖걸 제출해도 하루아침에 일반 활동의 제약을 받는 상황을 처하게 되었다. 일부는 평생 가본 적도 없는 "조국"으로 강제추방당했다.

4. 전개

징조는 2013년 즈음부터 있어왔다. 영연방 회의에서 영국 내 카리브해 지역 출신자들의 처지에 대한 의제가 제안되기도 했었고 간간히 영국 내에서도 알음알음 말은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국 의회 내무위원회에서 윈드러시 스캔들의 의혹이 제기되고 윈드러시 세대 추방 위협 및 추방 사례가 실제로 확인되자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영국과 카리브해 국가들간 외교 분쟁으로 이어졌다.

2018년 엠버 러드 내무장관이 사임, 영국 정부의 사죄 및 배상 약속으로 일단락된다. 후임 내무장관에는 파키스탄 사지드 자비드가 임명되었다.

5. 후일담

윈드러시 세대의 처지 및 사건의 후속 대처와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윈드러시 스캔들의 기점으로 영국 내 유색 인종에 대한 암암리한 차별 또한 수면으로 올라온 한편 윈드러시 스캔들의 피해자 다수가 아직 약속된 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등 문제들이 남아 있다.


[1] 즉 '적대적 환경'을 조성하여 이민자들을 추방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