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7 02:02:22

민족


1. 개요
1.1. Nation 이란?
2. 내셔널리즘3. 안티내셔널리즘4. 포스트내셔널리즘5. 민족 회의론6. 민족 실재론7. 관련 문서

1. 개요



100% 완벽한 자료나 기준은 아니지만 고전적으로 세분하면 대략 이렇게 구분하고 있다. #

'Nation'을 번역하기 위해 근대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로, 대중이 하나의 언어, 문화, 풍속 따위를 함께 공유한다고 여기는 집단을 일컫는 말. 인종을 구분하는 명칭인 Race와는 다르다. 영단어에서는 Nation이 국가 중심의 민족을 뜻하나 동양에서는 블룬츨리의 이론이 주로 받아들여졌고 여기서의 Nation이 영어의 Ethnic Group에 더 부합하기 때문에 Nation을 민족이라고 받아들였다가, 현재는 영단어 Nation과 혼동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블룬츨리는 Volk와 Nation의 양대 구분으로 민족을 정의했는데 그는 영어로 번역할 때에 Volk를 nation으로 Nation을 people로 번역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정의에서 Nation은 현대의 Ethnic Group의 정의와 비슷하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의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블룬츨리의 이론은 소수 이론이다. 독일어에서는 Volk가 문화적인 민족 또는 인민(People), Nation이 정치적 국민을 일컫는 표현이다.

본래 프랑스에서 등장한 'Nation'이라는 말은 '국민'[1], '국가', '민족'의 뜻을 포괄한다. 이는 '국민'이 스스로 주권을 갖고 특정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식을 갖는데 그 공동체가 '민족'이며, 이러한 '민족'을 단위로 스스로의 '국가'를 건립해야 한다는 이념('nationalism')을 기저에 둔 것이다. 따라서 'nation'은 '국민 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18세기 이래 유럽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본래 유럽 'nation'과 'nationalism'의 의미는 혈통적인 의미가 아니라 '등질한 특성을 가진 국민 집단'에 관련된 의미였으며, 개인의 권한 보장과도 밀접히 관련된 의미였다. 아마도 '국민성' 정도가 이들을 하나로 묶는 특성과 비슷할 것이다. 이것이 성립된 시기는 반론도 있긴 하나,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과 이로 인한 프랑스라는 Nation 성립으로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광신적인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Chauvinism 또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한편 프랑스 혁명기에 Nation과 Nationalism이 형성되자 이에 반하는 Ethnic적인 정체성도 강하게 형성되었다. 이것이 시작된 곳은 바로 독일로, 프랑스라는 한 국가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던 프랑스와는 달리, 신성 로마 제국에 속했던 각 제후국들로 분리된 독일의 상황으로 인해 국가와 여기에 속한 국민 대신, 종족집단을 중심으로 한 게르만 민족주의가 시작된 것이다.[2] 이는 19세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미 유럽은 'ethnic group'의 의미로는 하나의 국가가 하나의 민족에 대응될 수 없어서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이 용어를 번역한 국가가 바로 근대 일본인데,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대체로 안정된 영토 구분에 따라 인적 집단의 구분이 이루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혈통적 의미를 품게 된 '민족'이라는 개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용어의 수입에서 독일의 Bluntschli의 Nation을 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독일어의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한국, 중국 등지에서도 모두 개별적인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근대 민족주의가 확립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이 도입된 결과 기본적으로 '통일적인 국민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nationalism'의 이념 이상으로 '혈통적인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식이 국민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유럽보다도 단일 혈통의 의미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으며, 급속도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진행해야 했던 동아시아의 상황으로 인해 이념의 강도도 매우 높았다.

다른 근대의 이념이 큰 충격을 받았듯, 전체주의 제2차 세계 대전은 '민족' 개념에 대한 큰 충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순혈 아리아인'을 자칭하며 인종적 검열을 마음대로 휘둘러 유럽을 뒤흔든 나치 독일의 게르만 민족주의를 지켜본 사람들이 더 이상 혈통 구분에 의해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내선일체를 내세우거나 고고학을 통해 '일본 민족'의 확장을 꾀한[3] 군국주의 일본에서도 일어난 일이었다. 이는 식민지에 강제로 이념을 갖다붙인 제국주의적인 의미가 오히려 강했기 때문에 군국주의의 붕괴와 함께 이러한 이론은 사장되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중국',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민족주의가 번성했다. 한국과 북한이 산업화의 과정에서 '민족'의 단결성을 강하게 추동했고, 중국은 특히 다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민족' 개념이 강조되었다.

현대 한국에도 이 '민족'이 지닌 뜻은 강하게 작용한다. ' 한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명제는 이미 한국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명제이며, 이와 반대항에 선 것으로 다루어지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사고 전환도 '한민족의 혈통' 하인즈 워드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한국 사회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

이렇게 민족이 강조되는 이유는 공동체의 단결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다른 공동체와의 구별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탈근대'를 지향하는 학자들에게는 많이 까이는 개념. 민족주의 사학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 탈민족주의'라는 말도 화두로서 활발히 제시되고 있으며, 민족 회의론과 민족 실재론이 치고 받고 있다.

1.1. Nation 이란?

개요에서 언급했듯, Nation (민족)은 동질의 언어, 혈통, 풍속, 문화 등 비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구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명쾌한 정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의 정의는 보통 후술할 카테고리 둘 중 하나에 속한다:
  • 정치체제를 초월한 원시적 공동체 (Primordial community): 민족은 확연히 구분이 가능한 혈통, 문화, 언어 등으로 이루어지며, 역사의 흐름은 민족의 흐름과 (어느정도) 일치한다는 이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퍼진 민족의 개념.
  • 근대화와 함께 나타난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y):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화의 산물로, 정치사회적 근대화 (국민교육, 물리적 국경 등)로 인해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는 이해. 서구 정치학계에서 제시하는 민족의 개념. 베너딕트 앤더슨이 대표적이다.
원시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이라는 개념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사장되었고, 현재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개념이 학계 널리 인정되는 추세이다. 이는 원시적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믿어졌던 혈통, 언어, 문화 등의 기준이 기준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주관적이며, 역사적으로 이러한 기준이 고정적으로 이어진 적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예를 들어보면, 프랑스의 국토는 백년전쟁이 끝나서아 기어코 현대와 흡사한 형태로 발전되었고, 당시 오일어 계통의 북부와 오크어 중심의 남부는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하였고, 브르타뉴, 알자스-로렌 등 로망스어 계통이 아닌 지역도 프랑스 국경 안으로 편입된 상황이었다. 언어가 다르니 문화가 같을리가 없고, 국경을 확장하며 완성한 프랑스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프랑스 혈통일리가 없을 뿐더러, '프랑스' 혈통이 존재했는지부터가 의문인 상황. 프랑스 성립 이전의 역사를 본다면, 골, 로마, 게르만 등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또는 중복되어 프랑스에 거주함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프랑스 고유의 혈통이 역사의 여명과 함께 유유히(...) 보존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민족의 형성에 대해 학계는 프랑스 혁명과 근대국가 수립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혁명을 통해 왕을 처형한 혁명정부는 인민을 주권을 근원으로 삼는 근대적인 국가를 탄생시켰고, 근대국가의 설립을 통해 국가의 정통성을 부여할 '국민(Nation)'이란 정체성을 발굴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국경 안에서 생활하는 브르타뉴인, 알사스-로렌인, 노르망디인, 부루군디인 등 다양한 족속을 초월한 프랑스의 국민이라는 정체성, 즉 민족이 나타난 것이다. 이 공동체를 창조, 유지하기 위해 일-드 프랑스 지역의 문화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가 정의, 전파되었고, 프랑스 국경 속 다양하게 존재했던 공동체가 하나로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또한 저지 독일어 지역과 고지 독일어 지역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였으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결과로 독일어 성경이 만들어졌고,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을 중심으로 중립적 언어인 표준 독일어가 만들어지면서 종족적으로 분리되어가던 독일인들을 통합시킬 수 있었다. 저지 독일어를 쓰던 지역인 네덜란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정치적으로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표기법을 쓰게 되었고 결국 종족적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상황에서 Nation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혁명군의 침공을 받고 라인 강 서부의 게르만족 거주지역이 통째로 프랑스에 떨어져나가는 위기를 겪자 독일인들은 프랑스의 민족과 반하는 또 다른 민족의 개념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독일은 프랑스의 Nation에 저항하기 위하여 게르만족이라는 Ethnic Group[4][5]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 정체성을 만들었고, 국가보다는 종족이 중심이 되는 민족과 이로 인한 민족의식을 강화시키게 된다. 그 결과 19세기 내내 독일인들의 통합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결국 독일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즉 독일에서 Ethnic Group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독일인이라는 Ethnic group이 중심이 된 국가인 독일 제국이라는 Nation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볼 수 있듯, 민족의 본질에 대한 정의는 다를 수 있으나, 두 가지의 개념 모두 사람의 손을 타고 확립된 개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독일의 경우 (실재했는지도 불분명한) "독일족"을 다시 끌어와 독일민족을 형성했고,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라는 울타리에서 공동체의 개념을 고안해 프랑스 민족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 학계에서 민족에 관한 논쟁이 예전부터 일어났다. 프랑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 즉 Nation의 개념을 기반으로 민족과 민족주의의 발달 등을 설명했으며, 독일은 Ethnic Group을 중심을 이것을 설명하였다. 이는 양국의 역사적인 경험 등이 기반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맞다고만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알자스-로렌 문제로도 이어진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알자스-로렌은 프랑스라는 Nation에 속하는 지역이었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독일인이라는 Ethnic Group에 속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보불전쟁으로 야기된 것이 아닌, 19세기 전반 프랑스와 독일의 라인강 접경 문제 등에서 이미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창조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정치학계 주류 의견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정의하고 있다.

태고적인 민족이란 개념이 사장된 대신, 상상의 공동체가 어느 시점에 발생했는지 (즉, 근대적 산물로서의 민족이라는 이해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편이다. 베너딕트 앤더슨 등 근대화의 산물로서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미는 학자들은 민족의 탄생을 보통 프랑스 혁명 즈음으로 잡는 반면, 민족의 공동체적인 요소, 그리고 역사 속 민족(또는 동질한 족속)을 언급한 예시를 중요시 여기는 학자들은 민족이란 개념의 근원을 훨씬 이르게 잡는 편. 후자의 경우 "동일한 문화적 유산(Cultural heritage)를 계승했다고 믿는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개념을 제시한 버나드 야크가 대표적이다.[6]

덧붙여 민족의 성격에 대한 논의도 아직까지 뜨겁게 진행되는 편. 20세기를 맹렬하게 불태운 민족주의의 여파를 고려했을때,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현대의 자유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20세리를 끝으로 종언을 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인류의 어두운 면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마지막으로, 위에 서술한 비교적 자세한 민족 개념의 태동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란 놈이 실재하는 공동체인지, 사회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공동체 개념인지에 대한 논의가 맹렬하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의 예시를 들며 민족주의의 위력을 근거로 민족의 정치성을 피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유고 내전 등의 민족 간 폭력이 과연 민족과 민족주의가 주 원인이 되어 일어난 현상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논의는 민족을 형성한다고 생각되는 여러 기준점들이 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논의라 볼 수 있겠다. 인류역사에 큰 기여를 한 석학인 홉스봄마저도 "민족은 한 공동체가 민족을 이뤘다고 여길때 형성된다" 고 지극히 두리뭉실하게 정의하고 두손을 들 정도로(...) 그 정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며, 인류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와 성질에 대한 정의가 미우 미약한 개념.

2. 내셔널리즘

하나의 민족이 그 민족의 미래를 온전히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념. 해당 문서 참조.

3. 안티내셔널리즘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류를 분열시키고 서로 죽이게 만드는 패악스러운 허상일 뿐이라며 반대하는 사상. 해당 문서 참조.

4. 포스트내셔널리즘

민족 국가로서의 일체성을 버리고 타자를 포용하며 국가나 국민 정체성보다 국제적, 초국가적인 실체를 더 중요시하자는 사상 혹은 움직임.

5. 민족 회의론

사실 학계에선 논의를 할 때에 위에서 서술한 대로 'nation'이라는 개념과 'ethnic group'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두 개념이 엄격히 분화되지는 않았으나 후자는 구분을 기하고자 '종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종족은 앞서 언급한 '혈통 상의 민족'으로서 의미가 강한 것으로, 생물학적 인종에 민족의 역사성을 결합해 소위 '근대 국가'의 토대로서의 '민족'과 '생물학적 인종'으로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 별개념의 사회적 집단을 가리킨다. 맥락상 오히려 'nation'이나 인종보다 더 많이 쓰이는 어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ethnic group'적인 의미의 민족은 중첩적인 사고가 필요한 개념이므로, 사실 근대에 만들어진 의미가 강하다. 우선 아직 세계의 그 어떤 민족도 기원을 인정받은 예가 없다. 가령 성경에는 유대인이 포함되는 셈족이 전부 노아의 아들의 자손이라 주장하나 사실 입증이 불가능한 성경 속 얘기일 뿐, 분파들이 비교적 친연관계에 있다는 것밖에 밝혀낼 수가 없다.

최근에는 이전의 사이비 과학이 아닌 유전학적인 의미에서 하플로그룹 연구가 대두되어, 혈통적인 민족 개념의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되던 구획을 뜯어보니 잡탕 그 자체일 뿐더러, 흔히 등질적인 단일 집단을 상정하던 근거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 히틀러의 망상과 현실을 대조해보자. 사실 그것보다는 단순히 기준에 따라서 민족이 변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민족 개념에서 나온 것들이 현실적으로 무의미해서 그렇다. 실제로 개와 늑대는 유전적으로 거의 일치하지만 서로 많이 다르며 이러한 기준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데 사실 혈연을 가지고 특정 집단으로 묶으려면 뭔가 공통된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유의미한 능력인 키, 근력, 지능 혹은 특정 환경에 대한 적응력 등을 기준으로 하자면 완전히 개판이 된다. 솔직히 너무 많이 나뉘어 지기 때문이다. 명문가에서 주로 자기들끼리만 결혼하는 이유가 있는셈이다.[7] 물론 특정 민족 내에서 많이 공유하고 있는 능력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다른 민족들에게도 많이 있을 수 있으며 아무래도 다 같은 인간이다 보니 여간해서는 죄다 가지고 있는 공통된 능력들도 있어서 역시 답이 없다.

또한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는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다. 투르크만 보더라도 과거 돌궐로 불리던 시절과 지금의 터키인은 유전자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현저하게 다르다. 역사적으로는 같은 범주로 묶일 수 있다지만, 그럼 무굴 제국 몽골에서 발원했음을 표방한다 해서 그들이 인도(혹은 서아시아)가 아닌 몽골계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민족이 국가의 핵심이라는 생각 또한 근대적인 것이며, 민족이 국가 성립의 절대 요소가 아니라는 것은 고구려인과 말갈인이 섞여 지내던 발해, 몽골인과의 통혼이 잦았던 고려, 여진인을 자국민으로 적극 끌어들인 조선 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위만조선쯤 되면 아예 지배층부터가 중국( 연나라)에서 넘어왔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19세기 말에서야 수용된 만큼 그 이전의 귀화 이민족들은 우리 민족을 구성하는 한 갈래로 봐야 한다는 관점도 자주 제시되지만, 이 경우 혈통에 의거한 민족 개념이 타당한가에 대한 반론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에 단결력을 필요로 한 집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의도적으로 강조된 성격이 강하다. 이를 통해 볼 때 과연 '민족' 담론을 통한 구획의 순수성을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개별적인 공동체의 형성은 당연히 타자와의 구분을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배제된 중간 지역이나 혼합적인 내용들을 계속해서 배제된 소수자로 놓아 두어야 되겠냐는 것.

'민족'의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평가받는 것들은 실제로는 매우 주관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어떤 '민족'이 학계에서 정의되었다고 해서 그 실체가 후세에도 꾸준히 동질성을 갖고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어떤 민족이든 마찬가지다. 한 민족에서 두 민족이 갈라져나올 수도 있고, 다른 민족에 동화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구성원이 절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정 민족으로서의 '관념'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만 봐도 민족은 다분히 모호하며 관념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절대적인 실체를 갖지는 않는 것이다.

같은 민족 내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이 벌어진 경우는 충분히 많고, 사상의 차이로 서로를 죽이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국가간, 자신이 속한 집단간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죽였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민족이 실재하고, 만약 실재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민족이라는 것은 없고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생활양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동질감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이라는 것이 굳이 있다고 가정해도 그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다 끊고 유럽으로 이민간 한국인이 있다면 그의 손자, 아니 자녀대만 가서도 소위 말하는 '한민족의 특징'이라는 것은 피부색 정도를 제외하면 다 사라져버리고 해당 국가의 국민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민족의 개념으로 흔히 제시되는 많은 것들은 그냥 오랫동안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생활양식으로 살아왔기에 자연스레 닮게 된 요소일 뿐이며 이런 요소들은 사는 장소만 바꾸면 한 세대 내에도 끊어질 수 있는 요소인 것이다. 'nation'으로서건 'ethnic group'으로서건 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만 있을 뿐이다.

'민족'이라는 것에 실체가 없다는 것에 대한 예를 또 들자면, 가령 한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 3세와 한국으로 막 건너온 조선족 중에 어느 쪽에 더욱 동질감을 느끼겠는가?"
한국인 중 십중팔구 이상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지만 화교 3세와 막 건너온 조선족중 어느 쪽이 한민족이냐고 하면 여기선 또 조선족을 택할 것이다. 이것만 봐도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회의론과 관련해서는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를 읽어보자. 민족과 국가(Nation)라는 개념이 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명저로, 역사학, 사회학계 전공자들에게 필독서 중 하나이다.

사실 학문이 발달하면서 과거의 생각과 다른 증거와 과학적 사실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민족과 관련된 개념[8][9]들은 학계에서 사장되면서 민족 개념이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추세다. 유럽의 영국 등도 과거에는 아서왕의 전설 같은 것들이 앵글로색슨족과 불분명하게 혼재되어 있었다가 분리되기도 했으며 동아시아의 일본인 등도 어족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엮이기[10]도 했으나 차차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이다.


그것보다는 근본적으로 원래 생물학과 비교하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와 같은 짐승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짐승들은 고작 피부색 같은 것들만으로는 딱히 구별을 두지 않지만 인간은 민족에 있어 대체로 그런 생물학적 기준을 따르지 않았던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서 유전적 조합에 따라 흑인이라도 흑인에 가까운 백인보다 오히려 백인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백인 민족들은 대체로 후자는 몰라도 전자를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실재론은 과거인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가지고 회의론을 비판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실제로 존재했느냐'를 혼동하고 있다. 고대인들도 근대적인 개념은 아니나, ethnic group을 어느정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맞다. 특히 동아시아 세계는 정치 지형이 현대에 와서도 거의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가 상기하면, '인식의 실재'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서 실제로 민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중세 서유럽인은 프레스터 존 왕국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프레스터 존 왕국이 실재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즉, 관념이 실재한다고 해서 존재의 증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관념의 실재를 부정하고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회의론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고, 사람들은 민족을 인식해왔으며, 그것이 역사에 영향을 미쳤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회의론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관념과 실제의 모습을 구분하고, 인식과 실재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6. 민족 실재론

(동)아시아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공동의 언어·혈통·문화공동체라는 객관적 요소에 동포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더해져 공고해진 실체이다. 즉 양 요소가 서로 맞물리면서 민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동포의식이라는 결정적 요소의 완성은 상대적으로 그 시기가 늦다고 볼 수 있으나[11] 공동적인 언어·혈통·문화공동체라는 요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럽의 근대 민족주의의 발흥 이전부터 상당히 진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이것이 근대에 민족의식과 함께 (동)아시아의 근대적 민족주의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족이라는 것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 요소들 중 일부만 비판하고 그 일부를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혈통과 민족의식의 문제인데, 민족회의론자들은 흔히 생물학적-인종학적 혈통이 아시아권의 민족의 정의에서 생각보다 중요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민족의식은 여타 요소와 맞물려 나타났다. 언어의 경우에는 분명 근대의 활판인쇄술과 표준어의 보급으로 소통이 되지 않던 방언들이 일체화하는 경향을 나타내었으나, 그것이 즉슨 민족이 없었으며 완전히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중간다리를 생략하고 단정한 것다.

여기에 기존에 가졌던 언어·혈통공동체적인 요소도 분명 나타난다. 위의 회의론에서 언급한 하플로그룹을 얼핏 보면 민족과 혈통이 별 관계가 없다고 보이지만 하플로그룹을 오해한 측면도 있다. 하플로그룹의 각 하플로들은 대다수가 구석기시대에 분화된 것이고, 아무리 민족에서 혈연을 강조한다 한들 대다수의 환빠들 조차도 그 기원을 구석기시대까지 올리지 않는다.[12] 한국의 경우를 들면, 중국에는 만주족을 제외하고 사실상 전무한 O2b가 3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일본에는 20~40%를 차지하는 D2가 5%정도에 불과하는 등 혈통적으로 차이를 분명 보이고 있다. 다만 그 경향이 지역에 따라서 다를 뿐이다. 유럽의 경우는 경우마다 다르지만 국가보다는 지역적 차이가 큰 편이고, 동북아는 국가와 민족별로 매우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다. 즉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 민족에 혈통적인 요소는 존재한다. 대신 그것을 입증하더라도 과거 우생학 파시즘 시대의 광기에 찬 선동과는 거리가 매우 클 뿐이다.

여기에 민족회의론을 주장하는 경우에는 광신적인 민족주의의 선동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표어들을 일반적인 민족의 정의인 양 왜곡하는 경우가 상당히 심하다. 혈통은 민족을 정의하는 데에 쓰이는 요소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3대만 지나가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단지 정치적인 선동에서 매우 효과적이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도 자신이 유대인 혈통을 지녔음을 인지하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속출하였고, 나치는 유대인을 걸러내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서 심사했다. 그러나 그것도 조부모까지 심사고, 그 중에서 심사지 무조건적인 유대인 낙인이 아니었다. 이것은 비단 나치와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닌 상당히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민족의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보다는 집단적인 정체성이고, 이는 문화와 언어 등의 요소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혈통이 민족의 구분에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혈통에 대한 비난을 한들, 당장 혈통을 그리 따지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보자. 부모님의 혈통이 다르다면야 신경을 쓰기 쉽지만 그것이 조부, 조모 이상으로 올라가고 외형상이나 문화적이나 스스로의 인식이나 여타 사람들과 차이가 없으면 한국에서마저도 거의 무관심하다. 아니 당사자라도 4대조 이상의 혈통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다시 강조하지만 혈통은 민족의 구분에서 마이너 팩터이지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집단적인 정체성이고, 그것이 국가 중심이면 Nation, 종족 중심이면 Ethnic Group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혈통이 중심되는 민족도 있지만, 그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그 추적도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민족회의론에서는 혈통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또한 한국인의 사례를 볼 때에 그 혈통에서도 민족회의론에 반박이 가능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배층의 교체에 관해서도 비판이 나오는데, 근대 민족주의의 시작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중 영국에서 지배층은 외국인인 경우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것이 근대 민족의 생성과 민족주의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는 그 상황을 감안하여 독자적인 민족 담론을 만들어 나갔고, 문화적으로 피지배층과 달리 놀던 지배층들도 이에 맞춰 해당 시기에 영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발달시켜 나갔다. 위에서 설명한 nation의 문제로, 영국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연합왕국의 구성국 전체와 외부에서 온 지배층, 이주민을 포괄하는 민족의 정의를 필요로 했다. 그로 인해 영미권의 nation의 정의에서 혈통의 영향은 더욱 낮게 나타난다. 설명하자면 복잡한 문제지만 영미권과 프랑스의 민족담론은 또 다르다.

또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고 하기에는 한국사의 의병이나 스페인의 게릴라 항쟁, 프로이센의 자유군단 등의 사건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본질적으로 외세에 대한 거부감, 혹은 외적들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음이 그 시대에도 생각보다 상당히 강하게 나타났다. 지배계층의 선동이 있기는 했지만, 민중들의 민족의식이 약한 지역에서의 경우 오히려 그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나타나기까지 하였다. 19세기 중반 폴란드에서는 합스부르크에 반하는 봉기가 시도되자 폴란드 농민들이 그들을 잡아서 합스부르크에 넘겨줬는데, 동유럽은 당시에도 민족의식이 약한 지역이었다. 그중에서도 민족의식이 유달리 약한 벨라루스의 상황은 동양인에게는 이해 불가의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에 일명 배신자나 반역자의 존재를 반례로 들기도 하는데, 당장 목숨과 이득이 걸린 일에 외세에 협조하는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민족주의가 매우 강했던 20세기 전반기 유럽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수두룩하게 나타났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레지스탕스로 유명한 프랑스만 해도 레지스탕스 이상의 대독협력자가 발생했다. 또한 프랑스인 독일군 지원병은 수만명에 달했었다. 즉 민족의식의 반례로 들기에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배신자의 존재'가 아닌, '배신이라는 의식의 전무'의 영역까지는 가야한다.

더 나아가 생기는 문제는, 민족회의론자들이 민족이 없었다는 근거로 드는 지역들은 역사적으로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약했던 지역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 민족회의론을 외치는 임지현이 전공으로 한 동유럽이나[13] 상상의 공동체를 쓴 베네딕트 앤더슨이 주로 연구한 동남아시아[14] 동시기 타 지역과 비교해 유달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약하게 나타난 곳이었다. 그런 지역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여타 지역의 사건 일부와 결합시켜 민족이 없었다고 주장하면 무리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지역을 서유럽이나 동아시아에 곧바로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면 민족에 대한 정의와 각 지역의 상황이 맞지 않기 때문에 민족이 상상일 뿐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민족에 대한 정의는 서구에서도 국가와 학파별로 다며, 이것은 각 국가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영미권과 프랑스에서는 그들의 전통에 맞춰 국가 중심에 시민권 및 계몽사상이 강하게 들어간 nation을, 독일에서는 수많은 국가들로 나뉘었던 자신들의 경험에 맞추어 종족을 중심으로 한 Nation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다. 물론 기준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정의가 서구의 상황에 맞더라도 거기에 맞춰 타 지역을 관찰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각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인문학이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유의하여서 관찰하고 담론을 이끌 필요가 있다.

한편 Nation과 Ethnic Group은 심지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수백여 개의 폴리스로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과 바르바로이를 구분하였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그리스인의 학살 및 노예화가 일어나자 큰 충격을 받기까지 하였다. 즉 Ethnic Group이 어느정도는 형성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대두된 것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인데, 현재의 세계시민적인 의미와는 달리 독일 근대 민족주의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15] 코스모폴리타니즘은 폴리스 간의 다툼을 멈추고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원정으로 군사적인 허약함이 드러난 페르시아를 폴리스들이 뭉쳐서 공격하여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그리스인들의 새로운 영토로 개척하자는 사상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이 너무 대박을 쳤고, 이 원정이 반은 바르바로이로 보던 마케도니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헬레니즘 시대에 현재의 세계시민주의와 비슷한 의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로마의 4두정치 때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본인을 '로마인'이 아닌 '다키아인'으로 여겼으며, 스스로가 로마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내었다. 200년 전 트라야누스가 다키아 전쟁을 통해 "다키아를 속주로 삼은 일을 너희들도 느껴보라"는 양 로마 시민들을 가혹하게 취급한 것도 모자라, 제국의 이름마저 '로마 제국'에서 '다키아 제국'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제안까지 했을 정도였다. Galerius#Anti-Roman accusations

물론 그래도 근대적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편이기는 했다. 근대적 민족주의였으면 다키아인이 로마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1908년 림노스(렘노스) 섬 출생의 미국 비잔티움 학자 피터 차라니스(Peter Charanis)의 증언에 따르면,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때 섬을 점령한 그리스 해군 병사들을 보러 나온 아이들은 그 병사들을 마치 자신들과는 별개의 족속을 부르는 것처럼 '그리스인(Hellenes)'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흡사 외국인을 대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내심 황당해한 그리스 병사들은 아이들에게 "네들은 그리스인이 아니니?"라고 물었고, 이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네, 우린 로마인(Romans)이에요"[16] 당장 당시에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때 그리스인들은 테베처럼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편을 바꾸어 가면서 싸웠다. 오히려 여러 민족이 공존한 페르시아 제국인들이 하나로 뭉쳐서 민족주의적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

한편 로마는 기원후 200여 년이 되면 가장 반항적이었던 유대인조차도 종족은 유태인이지만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스인들은 아랍인들이나 투르크인들이 룸인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로마와 비잔티움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각 종족집단은 로마제국 말기 대 위기 때에 이민족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저항했고, 비록 실패하였으나 오랜 기간 로마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즉 로마 제국이라는 Nation하에 다양한 Ethnic Group이 산재하는 국가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19세기의 계몽주의-시민의식과 연결되는 민족주의와 일치한다고 볼 수 없으나, 민족이 근대적 산물인가,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반론이 된다고는 볼 수 있다. 근대의 민족은 시민의식 등이 들어간 국민으로써의 정의도 강하게 들어간다는 차이가 있으나, 이것도 각 국가들별로 정의가 다른 경우가 다반사다. 위의 나오는 Nation과 Ethnic Group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민족주의는 분명히 단점이라는게 존재하고 그 때문에 일으키는 문제점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런 비판이 지나치게 나가서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많다. 민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그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7. 관련 문서



[1]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이며, '주체성을 가진 개인'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중요한 기점이기도 하다. [2] 아이러니하게도, 고대 시절부터 세력을 이루며 살아가던 게르만 부족들이라고 해서 항상 유전적으로 동질성이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3] 베이징 원인을 확보하거나 칭기즈 칸 무덤을 발굴하려 했던 시도가 대표적. [4] 독일어로는 Volk와 Nation이다. 형태와는 달리 독일어의 Nation은 영국, 프랑스의 nation과 의미가 다르다. [5] Ethnic Group은 한국에서 말하는 민족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문화 혹은 언어적 부족 중심의 민족을 의미한다. Ethnic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은 논란은 있으나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어느정도는 나타났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에게 침공당한 독일은 수백개의 제후국으로 나뉜 상태였고, 형식적이나마 그들을 묶어 주던 신성 로마 제국도 붕괴되었기 때문에 게르만족의 통일된 Nation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6] 버나드 야크의 경우 상술한 민족의 정의로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의 이해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래 민족 회의론, 실재론 등의 논의는 이미 30년 전에 논의가 마무리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7] 이는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주로 순수 혈통을 고집하면 장점을 강하게 할 수 있지만 단점 역시 강하게 하여 좋지 않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과학 발달 이후로는 순수 혈통만을 고집하는 명문가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서로 다른 우월한 혈통들끼리의 결합이라면 단점은 제거 및 보완하면서 장점만 강화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지능이 높고 힘도 세지만 적응력이 낮은 A라는 혈통이 A끼리만 결합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만 지능이 높고 힘이 약하지만 적응력이 강한 B라는 혈통과 결합하다 보면 지능도 높고 힘도 세고 적응력도 강한 C혈통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지능도 높고 힘도 세고 적응력까지 높은 장점만 가진 혈통 D,E 역시 다른 혈통과의 결합을 통하여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서 장점을 더 강화시킬 수도 있다. [8] 그리고 솔직히 과거의 민족 개념들은 그 개념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목적에 맞추어 적당히 주장한 것들이 많아서 세계의 창시 혹은 머나먼 고대로부터 말도 안 되는 신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거나 막상 나치 고위층에 자신들이 주장한 순수한 게르만족이 없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9] 사실 민족 개념을 제대로 출범시킨 유럽에서도 초기에는 이것저것 갖다 붙인 것들도 은근 많았으며 동아시아에서도 신채호처럼 민족 개념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들마저도 자신의 주장을 크게 고치는 등 민족에 관한 개념들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이었다. 실제로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문화사’에 비해 후기에 쓰여진 ‘조선상고사’는 큰 변화가 있었으며, 조선사연구초 등에서는 위대한 상고사를 담았다고 하는 ‘천부경’ ‘삼일신고’ 등 대종교 계열 서적들을 위서(僞書)라 비판하기도 했다. [10] 의외로 서구 학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에서도 민족 역사를 최대 일만 년 정도로 아주 길게 잡는 사람들도 있다. 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실제로 일본인은 1만 2000년 동안 이어진 단일민족이라 믿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11] 한민족의 경우 개화기~일제시대. [12] 대부분의 하플로들은 3~6만년전 분화했다. [13] 지역별로 달리 나타나나, 벨라루스의 경우는 민족이든 뭐든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볼 수 있고, 대폴란드지역은 계층별로 다르지만 민족의식이 상당히 강했으며 우크라이나는 제국의 소속보다 코작으로, 갈리치아는 합스부르크의 통치가 슐라흐타의 통치보다 낫다고 생각, 리투아니아 폴란드와의 연합왕국의 영향으로 폴란드적 정체성과 리투아니아적 전통이 19세기에 충돌을 하고 있었다. [14] 태국이나 미얀마는 중앙정부에 각 제후들이 복속한 봉건왕국 수준이었고,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어를 쓰는 각 종족간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그래도 태국인들이 캄보디아인들의 크메르 제국에 용병으로 쓰이다가 민족 감정으로 대항해 독립하기도 하고, 캄보디아인들 역시 다른 민족들과 경쟁에서 민족 감정을 이용하기도 하는 등 없다고는 볼 수 없다. [15] 대표적인 인물로 이소크라테스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오게네스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헬레니즘 이후 시기나, 근대 아나키즘과 더 연관이 깊다. 그러나 그 단어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소크라테스의 주장을 판헬레니즘으로 분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16] 앤서니 칼델리스(Anthony Kaldellis), 『비잔티움의 헬레니즘(Hellenism in Byzantium)』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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