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30 16:00:21

펀자브인

남아시아인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2px -12px"
인도인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스리랑카인 네팔인
티베트인 파슈툰인 펀자브인 타밀인 벵골인
로힝야 카슈미르인 브라후이족 발루치인 신드인
펀자브인 누리스탄인 자트인 싱할라인 파샤이인
구자르인 구자라트인 라지푸트 마라티인 몰디브인
사라이키인 아삼인 오디아인 인도 흑인 고안 가톨릭
콘칸인 파르시 셰르파 문파족 문다인
베다족 납파족 칼라쉬인 하자라인 아프가니스탄인
부탄인 아프가니스탄계 인도인 인도 유대인 파미르인 와키인
텔루구인 툴루족 부루쇼인 러시아계 아프가니스탄인 아프간 키질바시
※ 현존 민족만을 표기
※ 다른 지역·국가의 민족 둘러보기 }}}}}}}}}

인도아리아인- 이란계 민족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ord-break:keep-all"
민족 | 인도이란인
<colbgcolor=#eef6ef,#323433> 이란계 민족 페르시아인( 파르시 | 라르인 | 타지크 | 아이마크인) | 파미르인( 와키인 | 사리콜리인 | 슈그니인) | 쿠르드족( 자자족 | 야지디족) | 페르시아계 유대인 | 발루치인 | 파슈툰인 | 오세트인 | 부하라 유대인 | 산악 유대인 | 타트인 | 탈리시인 | 하자라인 | 소그드인 † ( 야그노비인) | 루르인 | 길란인 | 마잔다란인 | 셈난인 | 스키타이인 † | 메디아인 † | 파르티아인
누리스탄인
인도아리아인 다르드인( 카슈미르인 | 파샤이인) | 신드인 | 펀자브인( 사라이키인) | 벵골인( 로힝야) | 싱할라인 | 칼라쉬인 | 자트인 | 네팔인 | 구자라트인 | 구자르인 | 몰디브인 | 마라티인 | 라자스탄인( 라지푸트) | 힌두스탄인( 무하지르) | 비하르인 | 아삼인 | 오디아인 | 콘칸인( 고안 가톨릭) | 집시 | 미탄니인
언어 | 인도이란어파 지역
독립국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키스탄 |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방글라데시 | 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스리랑카 |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 파일:몰디브 국기.svg 몰디브 | 파일:모리셔스 국기.svg 모리셔스 |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남오세티야(미승인국)
자치 지역 및 다수 거주지 쿠르디스탄( 파일:로자바 상징기.svg 로자바 | 파일:쿠르드족 깃발.svg 이라크 쿠르디스탄 | 튀르키예령 쿠르디스탄 | 이란령 쿠르디스탄) | 파일:북오세티야 국기.svg 북오세티야-알라니야 공화국 | 파일:1599px-Flag_of_Balochistan.svg.png 발루치스탄( 파키스탄령 발루치스탄 | 시스탄오발루체스탄 | 아프가니스탄령 발루치스탄)
사회문화
언어 인도이란어파
사상 범이란주의 | 범아리아주의 | 힌두트바 | 파일:쿠르드족 깃발.svg 쿠르디스탄 독립운동
신화 페르시아 신화 | 인도 신화 | 오세트 신화 }}}}}}}}}

파일:63100C75-8213-44DE-9923-C6976D72754C.jpg
  • 파키스탄 무슬림 펀자브인


파일:Sikhs1.jpg
파일:sikhs2.jpg
  • 시크교도 펀자브인들[1]

파일:5498E06C-E29A-4A06-8437-A522367539CE.jpg
  • 하르 고빈드 호라나 - 힌두교 펀자브인으로 같은 펀자브인 압두스 살람[2]과 함께 노벨상 수상자이다. 현재까지 펀자브인 노벨상 수상자는 두 명이다.

1. 개요2. 인도와 파키스탄 분할3. 현황4. 종교5. 유명인6. 같이 보기

1. 개요

  • 영어: Punjabis
  • 펀자브어: پنجابی (샤무키 문자), ਪੰਜਾਬੀਆਂ (구르무키 문자)

펀자브인들은 파키스탄 인도에 사는 펀자브 지방 출신으로 펀자브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과거에는 하리아나, 델리 연방관구, 찬디가르, 히마찰프라데시 펀자브에 속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도 많이 산다. 파키스탄에서는 인구의 50% 가까이를 차지하는 주류 민족이기도 하다. 펀자브라는 말은 다섯 개의 강이라는 뜻인데, 인더스 강의 다섯 지류가 있는 지역으로 토질이 비옥하고 수자원이 풍부하다보니 농업 생산력이 높아 인구가 많아진 것. 파키스탄 내 9천 100만여 명이 거주하며, 인도에는 3300만여 명이 거주한다. 펀자브인 인구를 다 합치면 1억 명이 거뜬히 넘는다.

인도의 펀자브족들은 대부분 시크교 신자들이다.(3300만여 명 중 2400만여 명) 하지만 힌두교 신도나 무슬림도 적지 않은 수가 존재한다.

2. 인도와 파키스탄 분할

펀자브 지역은 해안가와 접하지는 않았으나 다섯 개의 강 지류가 만나는 일조량이 풍부한 옥토로 인구 부양력이 높고 부유한 지방이었다. 인도 아대륙 서북부에 위치한 펀자브 지역은 육로를 통해 북부의 아프가니스탄과 접하며 동시에 인도 서부의 해양 무역 중심지 구자라트, 신드 지방과도 멀지 않다. 이러한 연유로 펀자브인의 문화는 페르시아 문화와 인도 문화와 절충된 형태였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절충한 형태의 시크교가 창시되어 펀자브인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오늘날의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일대에 해당하던 지역을 다스리던 무굴 제국은 영국에 의해 차례차례 속국을 잃고 결국 식민지가 되었다. 인도 남부의 여러 무슬림 왕조들도 차례로 영국의 보호령이나 속국이 되었다. 무굴 제국이 무너지고 영국령 인도 제국이 세워진 이후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영국 식민 당국에 요청하여 힌두교인들의 공직 편의를 증진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여기에 위협을 느낀 영국령 인도 제국의 무슬림 지식인들은 무슬림 인구가 밀집된 영국령 인도 제국 북서부를 따로 독립시키는 계획을 세웠다.[3] 무슬림과 힌두교도들이 화합하여 통일된 인도로 독립하자는 의견도 대두되었지만 결국 인도의 힌두교도들과 시크교도, 무슬림들은 서로간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할 독립한다. 이 과정에서 펀자브 지방은 동서로 분단되었고, 펀자브인들도 종교에 따라서 무슬림들은 서쪽으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들은 동쪽으로 반강제로 이주하였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분할될 당시 펀자브의 동서 분할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었다. 현장 실사는 없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인력은 부족했다. 표본으로 삼은 것은 1941년의 인구 통계였다. 이슬람교도 비중이 70%인 서펀자브는 파키스탄으로, 이슬람교도 비율이 30~50%를 차지했던 동펀자브는 인도라고 했다. 자연 지리와 인문 지리가 크게 뒤틀렸다.

펀자브 세계의 고유성과 복합성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불안해진 것은 시크교도들이었다. 1947년 당시 600만 시크 가운데 400만이 펀자브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펀자브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쪼개진 펀자브에서 시크교가 어떤 처지로 몰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무굴제국 때도 대영제국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난국이 닥친 것이다.

특히 두 번의 세계 대전 동안 대영제국을 위해 전장에서 싸웠던 시크교 군인들은 격분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희생했던 대가가 고향의 분할이란 말인가. 시크교의 창시자인 나낙 데브(Nanak Dev)의 탄생지(Nankana Sahib)가 서펀자브, 즉 파키스탄으로 귀속된다는 소식에 동펀자브의 시크교도들은 더더욱 격노했다. 성지 순례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차라리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펀자브국'을 만들자고 했다. '시키스탄(Sikhistan)'으로 분리 독립하자는 이도 있었다.

결국,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시작했다. 마을마다 자경단을 만들었다. 시크교도들은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전투민족으로 분류했던 이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이탈리아를 무찌르고,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 일본군을 격퇴했던 실전 경험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제의 역전의 용사들이 펀자브 내전에 가담하게 된 것이다.

펀자브에서 자행된 힌두, 이슬람교도, 시크 간 삼파전은 유난히 치열하고 격렬했다. 8월과 9월, 60일 사이에 60만 명이 죽었다. 결국, 10월 14일, 양국 정부는 동/서 펀자브의 '소수자'들을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건국 이전보다 이후에 더 많은 인구 이동이 발생했다. 펀자브에서만 약 1000만 명이 이동했다. 동펀자브에서 서펀자브로 이주한 인구는 435만, 서펀자브에서 동펀자브로 이주한 인구는 429만을 헤아린다. 인도/파키스탄 전체로는 1500만 명이 이동했다. 20세기를 통틀어 최단 기간 내 최다 인구의 교환이었을 것이다. 1951년 통계로 파키스탄 인구의 10%가 난민이었고, 델리 인구의 3분의 1이 난민이었다. 인도는 한때 수도 이전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펀자브와 가까운 델리가 안보상 취약한 지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결국 이슬라마바드라는 별도의 행정 수도를 지었다.
- 이병한 / 1947 지옥 열차

비교하자면 파키스탄 신드 지방 주민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피해가 없거나 적었던 것과 다르게 펀자브 주민들은 카슈미르 무슬림들과 마찬가지로 분할 과정에 뒤이은 민족 대이동과 종교 갈등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인도 파키스탄 분할 당시 펀자브인들이 입었던 트라우마는 이후 시크교의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 및 50~70년대 당시 파키스탄이 이슬람 근본주의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3. 현황

현재 파키스탄의 다수 유명인들은 펀자브인이다. 제2도시 라호르 시민 대다수가 펀자브인이이며 수도 이슬라마바드 시민도 대다수가 펀자브계이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차별의 역사가 존재하는 민족 중 하나이다. 인디라 간디 총리 당시 인도 정부와 시크교도들의 갈등이 폭발하여 인도군이 시크교도들의 성지 황금사원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사건도 있었고 이 때문에 총리가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했을 때 인도 전역에서 펀자브인들에 대한 린치와 살해가 일어난 적도 있었다. 다만 펀자브인들은 체격이 좋고 근면하다는 평가가 있어서 인도 공화국 내 군대, 그리고 영연방 지역 곳곳에서 군인 혹은 경비원으로서 우대를 받고 있다. 영국령 인도 제국 시절부터 시크 군단 및 자트족 연대는 구르카 다음 가는 정예 병력으로 평가받았으며,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진다.

이 외에도 펀자브 지방이 전통적으로 비옥하고 부유한 지방으로 식문화가 발달한 데다가 힌두교도들은 시크교도를 크샤트리아로 취급하는 이유로 인도 각지에서 요리사로 활약하고 있다.[4] 인도 요리 중 가장 유명한 메뉴 중 하나인 탄두리 치킨과 치킨 마크니(버터 치킨), 팔락 파니르도 펀자브 요리이다.[5]

파일:download0716.jpg
  • 해외 펀자브인 커뮤니티

이 외에도 영국에는 최소 70만여 명 이상이 거주하며 캐나다에도 70만여 명 정도가 거주한다. 캐나다에 있는 펀자브인들은 대부분 시크교도(50만여 명)이고 영국에 거주하는 펀자브인들은 과반수가 무슬림이다. 캐나다와 영국의 시크교도들은 해당 국가에서도 칼사 계율대로 터번을 고수한다. 미국에서는 시크교 펀자브인들이 50만여 명 이상 거주하지만 미국인들이 터번 두른 시크교도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차별하는 이유로 영국, 캐나다와 다르게 터번을 두르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말레이시아에도 영국 식민 시절 시크교도 군인들과 가족들의 이주로 인해 시크교도 펀자브인이 12만여 명 정도 거주한다.

4. 종교

파키스탄 내에 있는 펀자브인들이 무슬림이자 대부분이 수니파를 믿는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시크교가 다수를 이루며 무히얄 같은 힌두교 공동체도 있다.

5. 유명인

6. 같이 보기


[1] 시크교식 터번을 쓰고 있다. [2] 아흐마디야 무슬림이다. [3] 자세한 내용은 우르두어 문서와 무함마드 이크발 문서 참조 [4] 인도에서는 요식업을 주로 상층 카스트들이 담당한다. 물론 힌두교도인 펀자브인들도 요식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5] 광동 요리 푸젠 요리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영어권이나 서유럽에서 중화요리를 대표한다면, 펀자브 요리, 뉴델리 요리나 카슈미르 요리와 같은 북인도 쪽 요리가 인도 요리를 대변한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피지, 트리니다드 토바고, 자메이카, 싱가포르와 같은 영어권에서 펀자브 요리, 뉴델리 요리나 카슈미르 요리가 큰 인기를 끈다. [6] 전에는 크리켓 국가대표 선수였다. [7] 선대가 파슈툰족이기도 하다. [8] 아버지가 펀자브인이고, 어머니가 벵골인인 혼혈인이다. [9] 캐나다 시민권자이다. [10] 파키스탄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