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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부라야 프로덕션 円谷プロダクション Tsuburaya Produc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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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명 | <colbgcolor=#fff,#1f2023>정식: 株式会社円谷プロダクション | |||
영어: Tsuburaya Productions Co., Ltd. | ||||
한글: 주식회사 츠부라야 프로덕션 | ||||
국가 | 일본 | |||
설립일 | 1963년 4월 12일 ([age(1963-04-12)]주년) | |||
주소 | 도쿄도 시부야구 난페이다이초 16-17 | |||
창업자 | 츠부라야 에이지 | |||
대표자 |
대표이사 회장 겸 CEO 츠카고 타카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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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사장 겸 COO 나가타케 마사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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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공식 홈페이지[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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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형태 | 주식회사 | ||
상장 여부 | 비상장 기업 | |||
업종명 | 영상 · 조형물 · 음악 제작 · 판매 이벤트 점포의 기획 · 운영 · 라이센스 사업 | |||
자본금 | 310,000,000 엔 | |||
주요 주주 |
필즈 (51.0%) 반다이 (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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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3대 특촬 시리즈 중 하나인 울트라 시리즈로 유명한 제작사. 설립자인 츠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의 이름을 따서 츠부라야 프로덕션이 됐다.2. 역사
2.1. 도호 산하 시대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특촬의 신'이라고 불린 츠부라야 에이지가 1963년에 설립한 제작사이다. 전신은 1948년 도호를 해직한 츠부라야 에이지가 자택에 마련한 사설 연구소였다. 그 후 츠부라야 에이지가 도호에 복직했을 때의 '츠부라야 연구소'는, 도호 촬영소내로 이설되어 1954년까지 도호 작품의 모든 타이틀 부분 촬영, 예고편등의 하청 작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1956년에는 츠부라야 에이지의 자택의 설치되어 촬영 스케줄 속에서 해낼 수 없는 카메라 촬영이나 번거로운 합성 작업을 해냄과 동시에 타사의 특촬 업무를 하청받고 있었다고 여겨진다.1963년 4월 12일, 츠부라야 에이지는 '츠부라야 연구소'를 '주식회사 츠부라야 특기 프로덕션'이라는 명칭으로 바꿔서 정식 특촬 프로덕션을 설립했다.[2] 츠부라야 특기 프로덕션의 설립시에 도호와 계약했던 츠부라야는, 정식적인 회사의 존재를 도호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후 츠부라야 에이지가 독자적인 프로덕션을 설립했다는 것을 알게 된 도호는 츠부라야 특기 프로덕션에 의상 창고를 제공해 1964년 3월 30일에 정식으로 자본과 임원을 투입했다. 창업 초기에는 도호가 최대주주였으며, 도호 수주 TV 영화를 츠부라야 프로덕션이 제작했다.
1966년 츠부라야는 일본 최초의 특촬 TV 시리즈 중 하나인 울트라 Q를 제작했으며,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32.4%라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후속작인 울트라맨이 평균 시청률 36.8%를 기록하는 사회현상을 일으켰고, 1968년 방영한 울트라 세븐 역시 평균 시청률 26.5%를 기록하며 히트에 성공했다. 세 작품을 연달아 성공시킨 츠부라야는 쇼와 시대의 특촬물을 이끄는 인기 특촬 제작사가 됐다. 하지만 이어서 방영한 ' 괴기 대작전' 방영 종료 당시에는 방송국으로부터의 일감이 끊겨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1968년 최대주주인 도호가 60%의 지분을 취득해 츠부라야를 자회사화했다. 사장은 츠부라야 에이지가 취임했고, 도호에서는 7명의 임원이 파견됐다. 츠부라야 에이지의 아들인 츠부야 노보루가 전무, 츠부라야 하지메가 이사에 취임했다.
구조조정에 의한 경영재건책으로 울트라 시리즈의 전설적인 각본가인 킨조 테츠오 등이 소속된 기획문예부를 폐지했고, 약 150명이 있던 사원을 40명까지 압축했다. 빚 변제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이 마련되어 드라마를 제작 할 수 있었으며, 도호의 비호 아래 간신히 경영을 계속했다. 츠부라야 에이지가 살아있던 시절, 츠부라야는 특촬 제작에 일체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았다. 울트라 시리즈 제작비에 관한 에피소드는 '울트라맨이 울고 있다'라는 저서[3]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550만엔이라는 제작비를 방송사로부터 받으면서 그 배에 달하는 경비를 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초대 울트라맨도 40%에 가까운 전설적인 시청률을 냈음에도 촬영 비용 때문에 회사의 돈이 바닥나서 3쿨로 조기종영했다.
원래 츠부라야 에이지는, 영화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비즈니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꿈을 영상화한 예술작품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스타일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제작비를 쏟아부은 쇼와 시대 츠부라야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얻을 정도로 걸작들이 됐다.
초기 울트라 시리즈에서는 전국 방송국의 30분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비가 200만엔 정도, 한 시간 드라마에서도 500만엔을 넘지 않던 시절에
TBS 테레비는 550만엔을 츠부라야 프로덕션에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경비는 편당 1000만엔 가까이 들어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빚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
1970년 창업자 츠부라야 에이지가 사망한 지 불과 3년 후인, 1973년에 41세의 젊은 나이로 취임한 2대 사장 츠부라야 하지메가 사망했다. 후계자를 결정할 새도 없는 급서였으며, 그래서 차남인 츠부라야 노보루가 사장에 취임했다. 이 인물은 울트라맨 팬덤에서 평가가 나쁜 인물이다. 츠부라야 노보루는 독재 경영으로 유명했는데 직원들의 반감을 사는 동시에 도호, TBS 등 출자기업, 협력업체와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자금의 사적 유용 등 스캔들도 발각되어 해외 사업에도 실패했다. 특히 적은 액수의 자금사정 때문에 태국 제작사에 캐릭터 사용권을 양도하게 되어 일본 이외에서의 관련 상품 판매를 할 수 없게 된 것은 큰 타격이었다. #
2.2. 경영난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좋은 것을 만들어라'라고 하는 츠부라야 에이지의 정신을 관철해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어 작품을 제작했다. 울트라맨 TV 시리즈의 제작비는 1회에 약 2,000만~3,000만엔이었는데, 반면 방송국에서 받는 제작비는 회당 몇 백만엔 정도였다. 그래서 연간 억 단위의 적자가 생겼으며, 신작을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가 생기는 형태가 됐다. 매 회 정교한 미니어처를 다수 만들어낸다는 제작 체제상 신시리즈를 발표할 때마다 거액의 적자를 내는 것은 당연했으며, 제작비로 늘어난 적자를 팬들이 사주는 완구, 잡지, DVD 등의 굿즈 판매로 어떻게든 충당하는 경영체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순수 이익액은 매우 낮은 상태였고 여러 차례 경영난에 몰렸다.그러다 보니 번번이 경영위기에 빠졌지만 그때마다 재방송이나 인기 저예산 재편집 프로그램을 방영해 좋은 성적을 거둬 결과적으로 살아나는 치킨게임을 펼쳤다. 1992년 3대 사장 츠부라야 노보루는 경영난을 타파하기 위해 TBS 테레비에 기한부로 양도하고 있던 울트라 시리즈의 판매권이나 창구권이 돌아오자, 이러한 권리를 담보로 얻은 자금으로 츠부라야의 사실상의 개인 회사였던 츠부라야 엔터프라이즈로 도호가 보유한 츠부라야 프로주를 매입해, 도호와의 자본 관계를 해소했다. 3년 후인 1995년에 츠부라야 노보루 사장이 사망했으며, 아들 츠부라야 카즈오가 오너와 사장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이 시기에 헤이세이 울트라 시리즈라고 불리는 울트라맨 티가, 울트라맨 다이나, 울트라맨 가이아를 제작했으며, 세 작품 모두 상당한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이 작품들도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츠부라야 입장에서는 모두 적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4] #
2000년대 이후부터는 갈수록 제작비가 불어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도호 시대부터 뒷받침하던 산와은행(三和銀行)이 해체해 경영기반이 약화됐으며, TBS와의 관계 악화로 누적적자를 해소하지 못해 도산 위기에 빠졌다. 그래서 츠부라야 카즈오 사장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킨 임원들 사이에서 제작부 프로듀서였던 츠부라야 마사히로로 사장 교체 희망이 나와 2003년에 경영 체제를 일신했다. 츠부라야 카즈오는 대표권을 가지는 회장이 됐으며, 츠부라야 마사히로가 사장에 취임했다. 또한 츠부라야 프로덕션을 퇴사하고 있던 츠부야 아키라와 히데아키가 복귀해 일족이 경영에 임하게 됐다.
그러나 ULTRA N 프로젝트나 울트라맨 맥스같은 신 시리즈들이 히트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매출액이 수십억 엔에 달했는데도 순이익은 수천만 엔 정도에 그치는 등 심각한 경영상태에 빠지게 됐다. 또한 라이벌 회사들에 비해 마케팅면에서 상당히 고전했기 때문에( #) 점차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고, 여기에 츠부라야 가문의 방만한 경영이 겹쳐 다시한번 도산의 위기에 빠졌다. 그래서 도호 부동산의 이사였던 오오야마 시게키를 사장으로 초빙했지만, 2007년 6월의 이사회에서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주장한 오오야마를 츠부라야 카즈오가 해임했다. 그리고 츠부라야 카즈오가 다시 사장에 취임해 단기간에 사장이 교체되는 이상 사태가 발생했다.
2007년 이 사태를 목격한 금융 기관들은 수십억 엔에 달하는 대출의 전액 상환을 츠부라야에게 예고도 없이 요구했다. 경영 위기에 처한 츠부라야 프로덕션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30억엔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안고 자금줄이 막힌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CM 영상 컨텐츠 제작 등을 다루는 광고 회사 TYO로부터 수천만 엔의 융자를 받았다. 그러나 TYO에 대한 상환이 밀린 것을 이유로 담보가 되어 있던 츠부라야 프로덕션 주식의 과반수가 TYO로 넘어가 츠부라야는 TYO의 산하에 들어가게 됐다. 인수 이후 TYO가 내건 조건은 츠부라야 카즈오를 비롯한 이사 전원의 퇴임이었으며, 츠부라야 가문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기업의 재건을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80명 이상 있던 사원을 약 절반까지 삭감했으며, 분산되어 있던 스튜디오나 창고, 오피스등을 집약해 연 4,000만엔이 넘는 제작비 삭감을 단행했다. 그 결과 인수 당시 적자였던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불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팬들로부터 울트라맨을 모른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5], 대규모 구조조정과 사내 개혁에 대해서도 일부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무더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
이후 TYO에 의한 조직 개혁과 병행해 반다이 남코 홀딩스가 자본에 참가했으며, 2008년 TYO는 지분 중 33.4%를 반다이 남코 홀딩스의 자회사인 반다이에 양도 매각했다. 2009년 7월에는 한층 더 주식 양도가 행해져서, 츠부라야 카즈오는 이사회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임명됐다. 그 명예직도 2009년에 퇴임됐으며, 이것으로 츠부라야 가문은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경영에서 일절 배제됐다.
2.3. 필즈 산하 시대
2010년 4월 2일, TYO는 보유한 51%의 주식 모두를 파칭코 개발 판매 회사인 필즈에 매각했으며[6],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필즈의 자회사가 됐다. 불과 2년도 안 돼서 매각한 이유는 TYO의 실적 악화로 알려져 있다. 핵심인 CM 영상 제작이나 웹 사업 등 광고 관련 사업에 경영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7] 필즈가 인수한 이후 츠부라야의 직원들은 유지되고 있으나[8] 경영은 반다이 쪽에서 보낸 CEO가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울트라맨 뫼비우스를 마지막으로 1년 동안 방영하는 완전한 형태의 TV판이 나오지 않고 있다.2011년 7월 6일, 츠부라야는 테레비 도쿄에서 울트라맨 열전을 방송 개시했다. 이 작품으로 과거작에 대한 주목도와 재평가가 높아졌으며, 필즈의 경영진 교체에 의해서 상업 전략이 바뀌어 반다이와의 제휴를 강화했다. 또한 울트라맨 페스를 비롯한 각종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개최해서 적자 체질은 일단 해소되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2015년 7월 14일부터는 10여 년 만에 쿨분할 없는 신시리즈 울트라맨 X가 방영했으며, 평가와 상업 실적 모두 잡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2016년 7월 9일부터는 울트라맨 방송 50주년 기념작인 울트라맨 오브가 방영됐으며, 2017년 이후에도 독립 프로그램으로 울트라맨 지드, 울트라맨 R/B, 울트라맨 타이가, 울트라맨 Z 등이 계속 방송되고 있으며, 처음으로 5년 이상 연속 TV 시리즈가 방영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2021년에 전용 스트리밍 사이트를 개설했다. 해외 전용 사이트도 있다.( 해당 사이트를 소개하는 포스트, #)
2022년 10월 3일에는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했다. "츠부라야 필즈 홀딩스"로 명칭이 바뀌었고 산하에 츠부라야 및 기타 필즈 그룹 회사들이 들어가는 형태이다. 새로운 사명 앞에 '츠부라야'를 두는 등 콘텐츠 사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필즈가 향후, 츠부라야를 내세워 컨텐츠, 디지털 분야에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
2010년대 중반부터 많은 작품을 히트시키면서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다시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2023년엔 중국의 라이센스 판매 증가, 신 울트라맨과 그리드맨 유니버스 등 신작의 히트, 과거 작품 재조명, 자체 스트리밍 사이트의 가입자 증가, 파칭코 고지라 VS 울트라맨의 역대급 히트 등으로 전년 대비 200% 이상의 수익을 올렸으며 전성기의 실적을 되찾았다고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트라 시리즈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1년 동안 방영하는 완전한 형태의 TV판이 더는 나오지 않고 있다.
3. 특징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특징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괴수'의 출현이 잦은 영상물이 많다는 것과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점을 들 수 있다.괴수의 공격에 맞서는 주인공이라는 컨셉은 다른 특촬물에서도 자주 쓰이는 클리셰지만 등장하는 적 대다수가 괴수인 경우는 츠부라야의 특촬물을 제외하면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이 괴수들은 대다수가 공룡이나 신수 등의 모습을 하고 나름대로 배경설정을 가진 생명체들로서 전형적인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침략자들의 전투 메카들과는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단순히 1회만에 무찌르는 적이란 개념에서 점점 성장해서 강해지는 적, 다른 괴수와는 달리 생명을 구하려는 괴수 등 다양한 개성과 스토리를 집어넣어 괴수의 캐릭터성을 높였으며 그 결과 발탄 성인이나 젯톤 등 다양한 괴수들이 팬들의 인기를 사고 있다.
도호의 고지라 시리즈를 만들던 츠부라야가 독립한 회사이기 때문에 도호와 관계가 상당히 좋아서 고지라의 슈트를 빌려쓰거나[9] 괴수 목소리[10], 심지어는 고지라에 나오는 장면을 울트라 Q에서 사용하긴 했는데 저작권 문제는 특별히 없었다. 오히려 도호는 지금도 특수촬영이 필요할 때는 츠부라야 프로덕션에 하청을 넣는다. 울트라맨을 제작하지 않을 때는 라이센스 수익과 이런 하청으로 이득을 냈다.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영상 촬영에 상당히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츠부라야 에이지부터가 사업가라기 보단 예술을 지향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방송사와 스폰서가 주는 돈 외에도 자신의 회사의 자본이나 사비까지 털어서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영상들 대부분이 기대를 버리지 않으며, 몇년전 작품을 봐도 괜찮다고 여길만큼 좋은 영상을 보여준다. 츠부라야 특촬들은 60, 70년대에 만든 작품을 수십년이 지난 뒤까지 재방송을 했지만 오히려 팬이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졌다. 예산을 너무 쓰는 바람에 경영이 파산 직전까지 가서 작품 제작을 못 하는 동안 재방송만으로 팬이 늘어나고, 그 팬들로 인해 다시 시리즈가 제작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은 상황이 오랜 시간 반복되었다. 극장판의 경우 동시기에 나온 타 특촬물의 극장판과 비교하면 우위를 점한다고 표현해도 무방한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하고 촬영에 쓰이는 미니어처들은 여타 회사보다 압도적인 정교한 퀄리티를 자랑한다.[11]
울트라맨 갤러리에서는 미친 회사라고 불린다. 어린이 드라마 제작비 충당에 가장 큰 요소가 되는 제품인 캐릭터 완구(소프비 인형, 변신 아이템 등)가 잘 팔리거나 말거나[12] 예산을 물처럼 쓰면서 자기네가 만들고 싶은 정교한 미니어처를 맘껏 만들고 또 그렇게 만든 미니어처를 클로즈업으로 잡으면서( 파괴의 미학, 정신나간 디테일) 맘껏 때려부수고( 돈 없어도 부수고) 심지어 CG로 촬영할 때도 미니어처를 박살내고 그걸 CG와 합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촬영을 경영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허가를 내주니 여러모로 미친 회사 소리를 들을만 했다. 토에이 같은 대규모 제작사와 비교해도 영상 수준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아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츠부라야는 엄연히 중소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어처와 영상미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오죽 했으면 '돈을 벌기 위해 영상 찍는다'가 아닌 '영상 찍으려고 돈을 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그래서 적자를 수시로 반복했다.[13][14]
4. 주요 작품
- 울트라 시리즈
- 부스카 시리즈
- 치비라군
- 공포 드라마
- 성인 SF 드라마[15]
- 츠부라야 거대 3대 히어로
- 공룡 시리즈 3부작
- GRIDMAN UNIVERSE
- 원숭이 군단[16]
- 스타울프[17]
- 슈퍼휴먼 사무라이 사이버스쿼드[18]
- 레드맨
- 프로레슬링 스타 아즈텍카이저[19]
- 트리플 파이터
- 우리들은 야구탐정단
- 신세기 히로인 시리즈[20]
- 생물혜성 WoO
- TAROMAN
- 괴수대분전 다이고로 대 골리앗(怪獣大奮戦 ダイゴロウ対ゴリアス)(츠부라야 프로덕션의 괴수물 영화)
- 괴수 디코드
5. 기타
- 2022년 4월에는 울트라맨 타로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는데, 무려 한글 자막이 달려있어서 한국의 울트라맨 팬들이 감동하였다. 한국에서 울트라맨 타로와 더★울트라맨이 가장 인기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것을 츠부라야도 알고 있는 데다가 츠부라야 유튜브 채널에 한국인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츠부라야 측에서도 한국 팬들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특유의 로고는 이런 식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1]
홈페이지 주소는 울트라 종족의 모성이 있는 M78.
[2]
현재의 '주식회사 츠부라야 프로덕션'으로 사명을 변경한 것은, 1968년 12월의 일이다.
[3]
츠부라야 프로덕션 6대 사장 츠부라야 마루아키가 펴낸 저서
[4]
헤이세이 3부작의 평균 제작 예산은 1회 약 4000만엔 이상이었다.
[5]
하지만 츠부라야 가문의 막장 경영의 전말이 드러난 지금은 TYO를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6]
당시 울트라맨 팬들은 필즈의 인수 이후 앞으로 울트라맨 신작은 빠칭코만 나올거라는 절망에 빠졌었다.
[7]
TYO의 도산 위기를 구한 것도 필즈였다.
[8]
다른 회사 같았으면 구조조정이니 뭐니해서 직원들도 다 잘렸겠지만 다행히도 소수의 특수 기술자로 운영되는 회사이다보니 직원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고 한다.
[9]
예를 들어
고지라의 슈트를 개조한
고대괴수 고메스,
바라곤의 슈트를 개조한
지저괴수 파고스가 있다.
[10]
예를 들어
화성괴수 나메곤과
투명괴수 네론가의 울음소리는
바란의 울음소리를,
자력괴수 앤트라의 울음소리는
라돈의 울음소리를 빨리 감기를 하여 이용했다.
[11]
가령 미니어처로 만든 분수는 정말 물을 뿜어내면서 작동하고 착륙해 있는 전투기는 캐노피를 열고 닫을 수 있다. 심지어 건물 내부의 사무실도 미니어처로 구현했고 파괴하면 서류가 흩날린다.
[12]
가면라이더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음성, 작동 기믹을 넣은 아이템들을 추가해 완구로 팔아먹은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울트라맨 가이아의 변신기 에스플렌더는 90년대 말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가동 기믹이 전무하고 빛이랑 소리 좀 나는 게 다인 물건인 수준. 그나마 최근에야 울트라맨도 다양한 기믹의 완구를 고안하고 있지만...
[13]
특히 울트라맨 프랜차이즈를 소생시켰다는 TDG 시절엔 그당시 물가로 다른 드라마가 한편당 1000만엔 들었을 때 이들은 한편에 4000만엔을 쏟아부었고, 특히 가이아 때는 1억엔이 넘었다.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14]
물론 현재는 건물을 부술 뿐만 아니라 울트라맨 관련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오마주나 팬서비스도 많이 하고 있으니 다른 의미로 미친 회사라 할 수 있다.
[15]
성인용 SF 특촬 드라마로 히어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각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조직이 주인공으로 등장.
[16]
미국의
혹성탈출의 영향을 받은 작품.
[17]
미국의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
[18]
전광초인 그리드맨의
북미 리메이크작이다.
[19]
프로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히어로물로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모두 썼다.
[20]
각각 1998년과 1999년작으로 TV 도쿄와 아사히 TV에서 방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