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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역대 대표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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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주요 대표팀 | 역대 로스터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역대 유니폼 | 역대 BI | 세대별 대표팀 | 주요 경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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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방콕 아시안 게임 |
1999 아시아 야구 선수권 |
2000 시드니 올림픽 |
2001 야구 월드컵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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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노호 [[주성노호/1998년| 1998 ]]
| [[주성노호/1999년|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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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호 [[김응룡호/2000년|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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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택호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역대 로스터#s-7.11|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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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호 [[김인식호/2002년|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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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
2006 WBC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
2007 아시아 야구 선수권 |
2008 올림픽 최종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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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호 [[김재박호/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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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호 [[김인식호/2006년|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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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호 [[김재박호/2006년|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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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김경문호/2007년| 2007 ]]
| [[김경문호/2008년/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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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 |
2009 WBC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
2013 WBC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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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김경문호/2008년|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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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호 [[김인식호/2009년|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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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호 [[조범현호|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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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호 [[류중일호/2013년| 2013 ]] | [[류중일호/2014년|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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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프리미어 12 |
2017 WBC |
2017 APBC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
2019 프리미어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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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호 [[김인식호/2015년| 2015 ]]
| [[김인식호/2017년|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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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호^^ 전임 ^^[[선동열호/2017년| 2017 ]]
| [[선동열호/2018년|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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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전임 ^^[[김경문호/2019년|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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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 |
2023 WBC |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
2023 APBC |
2024 프리미어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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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전임 ^^[[김경문호/2020년| 2020 ]] | [[김경문호/2021년|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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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호 [[이강철호|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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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호^^ 전임 ^^[[류중일호/2022년| 2022 ]] | [[류중일호/2023년|2023 ]] ( [[류중일호/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AG ]]
| [[류중일호/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
) | [[류중일호/2024년|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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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KBO 리그 소속 선수 선발을 책임지는
KBO가 참여하기 시작한 대표팀이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이기 때문에 이를 시작점으로 한다. ②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APBC)는 24세 이하 대표팀이다. ③ 2001 야구 월드컵은 KBO 리그의 프로 선수가 대거 참가한 대회이기 때문에 특별히 포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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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야구 대표팀 목록 → | |||||
김재박호 TEAM KOREA |
||
감독 | 김재박(KIM jaebak) | |
주장 |
C
이종범(LEE Jongbum)
|
|
키트 스폰서 | 나이키 | |
팀 스폰서 | ||
참가 대회 |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
최종 성적 | 3전 1승 2패 | |
선수 성적 |
|
|
2002년 | 2003년 | 2006년 |
[clearfix]
1. 개요
|
일본전 패배 당시 |
2. 대회 준비
|
당시 멤버였던 조인성과 심수창[1] |
하지만 대한민국의 본선 진출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불과 1년 전에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출전팀이 대한민국, 일본, 중국, 대만 이렇게 단 4개국가 뿐이었다. 당시 대만은 한 수 아래로 평가되었으며, 중국은 정말 세미프로 수준이라 무시할만했고 거의 올라간다는 것은 기정 사실 되었던 분위기였다. 단 2승만 하면 올림픽 본선 진출인 상황. 당시 기사
이처럼 야구계에서는 본선 진출이 용이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수장 자리는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의 주역이었던 김재박 현대 유니콘즈 감독이 선정되었다.
|
2.1. 준비 과정에서의 잡음
1차 예비 엔트리, 2차 예비 엔트리
선수 선발에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국내파 선수들의 경우엔 최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뽑았는데 56홈런을 쏘아올리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던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과 일본 복귀 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기아 타이거즈의 이종범, 현대 유니콘스의 에이스였던 정민태등 초호화 멤버들이 출동했다. 이 중 심수창은 한양대 소속으로 유일하게 아마추어 선수로서 선발됐다. 최종 엔트리
하지만 송진우( 한화 이글스), 이상훈( LG 트윈스), 이승호( SK 와이번스), 심정수( 현대 유니콘스), 김한수( 삼성 라이온즈)는 부상을 이유로 엔트리에서 빼줄 것을 요구하는 등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린 상황이었고, 해외파들도 박찬호( 텍사스 레인저스), 서재응( 뉴욕 메츠), 김병현( 보스턴 레드삭스), 구대성( 오릭스 블루웨이브)등 해외파들이 메이저리그 사무국, 일본야구기구의 규정과 소속팀의 사정 때문에 불참하게 되었다. 2000년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던 구대성의 경우는 오릭스 구단과 협의는 되었으나 부상으로 결국 합류 좌절. 코리안 메이저리거 올림픽출전 무산 게다가 조웅천의 경우엔 대회시작 4일 전에서야 급하게 합류되었는데, 부상을 달고 있었고 2003 시즌 SK 와이번스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활약을 들어 예선전 때 뛴 심수창을 빼버리고 급하게 수혈한 케이스였지만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공을 놓고 쉬던 중이었다.
거기다 포스트시즌 일정 때문에 대표팀에 선정된 선수들끼리도 손발을 맞춘 건 겨우 1주일 밖에 되지 않았던 열악한 조건이었다. # [2]
반면 대만은 일찌감치 대표팀을 확정짓고 일본 전지훈련을 하면서 당해 NPB 우승팀인 다이에와 평가전을 가지면서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일본 또한 처음으로 프로 선수로만 구성된 대표팀을 꾸리고 후쿠오카 돔에서 평가전을 가지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한 코치진 선임에서도 조범현( SK 와이번스 감독), 김성한( KIA 타이거즈 감독), 정진호( 현대 유니콘스 수석코치)가 선임되었는데, 김재박 감독이 비슷한 나이대의 감독들이 코치로 온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 했다는 썰이 돌기도 했다. #
3. 코칭스태프
||<table align=center><table width=800><table bgcolor=#FFFFFF,#191919><table bordercolor=#09539d><rowbgcolor=#FFFFFF><rowcolor=#09539d> 직책 || 등번호 ||<-2> 이름 || 소속 || 비고 ||
<colbgcolor=#09539d><colcolor=#FFFFFF> 감독 | 70 | 김재박 | KIM Jaebak | 현대 유니콘스 감독 | |
타격 코치 | 90 | 김성한 | KIM Sunghan | KIA 타이거즈 감독 | |
투수 · 배터리 코치 | 76 | 조범현 | CHO Bumhyun | SK 와이번스 감독 | |
수비 · 주루 코치 | 75 | 정진호 | JUNG Jinho | 현대 유니콘스 수석코치 |
4. 최종 엔트리
||<table align=center><table width=800><table bgcolor=#FFFFFF,#191919><table bordercolor=#09539d><rowbgcolor=#FFFFFF><rowcolor=#30344f> 등번호 ||<-2> 이름 || 소속 || 투타 || 비고 ||
투수 | |||||
11 | 조규제 | CHO Kyuje | 현대 유니콘스 | 좌투좌타 | [A] |
17 | 조웅천 | CHO Woongcheon | SK 와이번스 | 우언우타 | [A] |
19 | 이강철 | LEE Kangchul | KIA 타이거즈 | 우언우타 | |
20 | 정민태 | JUNG Mintae | 현대 유니콘스 | 우투우타 | |
37 | 임창용 | LIM Changyong | 삼성 라이온즈 | 우사우타 | |
41 | 김진웅 | KIM Jinwoong | 삼성 라이온즈 | 우투우타 | |
47 | 이승호 | LEE Seungho | LG 트윈스 | 좌투좌타 | [A] |
51 | 조용준 | JO Youngjun | 현대 유니콘스 | 우투우타 | |
55 | 김진우 | KIM Jinwoo | KIA 타이거즈 | 우투우타 | |
포수 | |||||
12 | 진갑용 | JIN Kabyong | 삼성 라이온즈 | 우투우타 | |
44 | 조인성 | CHO Insung | LG 트윈스 | 우투우타 | |
내야수 | |||||
1 | 장성호 | CHANG Sungho | KIA 타이거즈 | 좌투좌타 | |
3 | 박진만 | PARK Jinman | 현대 유니콘스 | 우투우타 | |
5 | 정성훈 | JEONG Seonghoon | 현대 유니콘스 | 우투우타 | [A] |
14 | 김민재 | KIM Minjae | SK 와이번스 | 우투우타 | [7] |
16 | 김종국 | KIM Jongkook | KIA 타이거즈 | 우투우타 | |
18 | 김동주 | KIM Dongjoo | 두산 베어스 | 우투우타 | |
27 | 이승엽 | LEE Seungyuop | 삼성 라이온즈 | 좌투좌타 | |
외야수 | |||||
7 | 이종범 | LEE Jongbeom | KIA 타이거즈 | 우투우타 | |
33 | 박한이 | PARK Hanyi | 삼성 라이온즈 | 좌투좌타 | |
35 | 이진영 | LEE Jinyoung | SK 와이번스 | 좌투좌타 | |
62 | 박재홍 | PARK Jaehong | KIA 타이거즈 | 우투우타 |
- 팀별 차출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팀 | 이름 | 합계 |
현대 | 조규제 정민태 조용준 박진만 정성훈 박재홍 | 6 |
SK | 조웅천 김민재 이진영 | 3 |
KIA | 이강철 김진우 장성호 김종국 이종범 | 5 |
삼성 | 임창용 김진웅 진갑용 이승엽 박한이 | 5 |
한화 | - | 0 |
LG | 이승호 조인성 | 2 |
두산 | 김동주 | 1 |
롯데 | - | 0 |
합계 | - | 22 |
5. 경기 결과
5.1. 대한민국 vs 대만 - 4:5 (패배)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Games of the XXVIII Olympiad ━━━━━━━━━━━━━━━━━━━━━━━━━━━━ 예선 1차전, 2003.11.5 12:00, 삿포로 돔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R | H | E | B |
대한민국 | 정민태 | 2 | 0 | 0 | 0 | 1 | 0 | 0 | 0 | 1 | 0 | 4 | 0 | 0 | 0 |
중화 타이페이 | 왕젠민 | 0 | 0 | 1 | 1 | 0 | 0 | 0 | 0 | 2 | 1X | 5 | 0 | 0 | 0 |
자세한 내용은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결선 리그 1경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5.2. 중국 vs 대한민국 - 1:6 (승리)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Games of the XXVIII Olympiad ━━━━━━━━━━━━━━━━━━━━━━━━━━━━ 예선 2차전, 2003.11.6 12:00, 삿포로 돔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중국 | 리웨이양 | 0 | 0 | 0 | 1 | 0 | 0 | 0 | 0 | 0 | 1 | 0 | 0 | 0 |
대한민국 | 김진웅 | 2 | 1 | 0 | 0 | 0 | 0 | 3 | 0 | X | 6 | 0 | 0 | 0 |
한국의 선발투수 김진웅과 중국의 선발투수 리웨이양의 맞대결. 김진웅은 7⅓이닝동안 박재홍의 수비실책으로 내준 1점을 제외하면 중국 타선을 꽁꽁 막아냈고, 한국 타선은 답답한 공격을 이어갔지만 6점을 쥐어짜내는데 성공하며 대승을 거두게 된다. ## 문제는 이 경기에서 톱타자 이종범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다음 경기인 일본전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단 1승 1패를 거두었지만, 올라가기 위해선 무조건 2승 1패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다음 경기가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본 대표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5.3. 일본 vs 대한민국 - 2:0 (패배)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Games of the XXVIII Olympiad ━━━━━━━━━━━━━━━━━━━━━━━━━━━━ 예선 3차전, 2003.11.7 18:30, 삿포로 돔 |
||||||||||||||
<rowcolor=#000>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일본 | 와다 츠요시 | 0 | 0 | 1 | 0 | 0 | 1 | 0 | 0 | 0 | <colbgcolor=#dcdcdc><colcolor=#000> 2 | 0 | 0 | 0 |
대한민국 | 이승호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6. 결과
|
6.1. 원인 및 후폭풍
사실 결과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이었다. 처음으로 프로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이 허용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첫경기 때 대만을 16:5라는 스코어로 콜드게임을 만든 기억이 너무 커서 그렇지, 사실 1999년에 치러진 2000 시드니 올림픽 지역예선과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결승전은 모두 한국홈에서 치러졌음에도 대만을 상대로 1점차 신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특히 시드니 지역예선 때는 무려 연장 11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박재홍의 끝내기 안타로 겨우 이길만큼 고전해서, 당시 해설이었던 허구연이 클로징멘트 때 이를 반성해야 한다는 조의 언급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한 암시를 날린 바 있다. 그리고 비록 프로 1진이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2001년 야구 월드컵과 2002년 대륙간컵 때 모두 대만한테 패했던 점도 불안의 요소이자 씨앗이었다.특히 2001년 11월 대만에서 열렸던 야구 월드컵에서 더 큰 교훈을 얻지 못한 점이 크다. 당시 한국은 프로 올스타가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타선에는 이병규, 정수근, 마해영, 심정수, 김태균, 이영우 등의 프로주축선수들이 포진했음에도 당시 대만육군 소속의 장즈지아[8]한테 완투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9] 당시 대만야구계는 1999년 한국에서 열렸던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 지역예선 당시, 한국의 편파판정 때문에 대만이 탈락했다는 오해와 원망으로 완전히 독이 올라있는 상태였고 급기야는 한한구천[10]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한다.[11] 한한구천 구호와 함께 경기내내 한국팀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등 당시 대만 야구장 분위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12]
물론 이듬해 한국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야구에 정예팀을 구성하긴 했지만, 이건 직전해 야구월드컵의 충격여파가 아닌, 그해 한일 월드컵에 따른 야구인기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책의 일환이었다.[13]
무엇보다 한국야구계 자체가
여러모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결승전은 이런저런 운도 많이 따라주었지만, 결국 한국야구계는 이런 점들을 그냥 가볍게 넘겨버렸다. 김재박을 대회 불과 3개월 전에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 그 증거. 그 결과 대한민국은 대만에게 일격을 당했고, 결국 올림픽 본선에 가보지도 못하는 참사를 겪게 된 것. 물론 중국전과 일본전은 할만큼 했다는 말도 있지만[14]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하는 것이고 안일한 태도로 대만을 상대하다가 패해 예선 탈락으로 직결된 만큼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기에 올림픽 예선 탈락은 또 하나의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데, 올림픽 메달을 통한 병역 특례를 노리던 몇몇 선수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 면탈을 시도하다 적발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나중의 2006년의 도하 참사나 2013년의 타이중 참사, 2023년의 도쿄돔 참사는 대표팀에 대한 비판과 불분명한 하향평준화 논란 등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그쳤지만, 삿포로 참사는 프로야구의 생명 자체를 결딴낼뻔했다.
결과적으로 삿포로 참사는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영광을 뒤로 하고 한국 야구계에 경종을 울린 경기로 남았다. 하지만 한국 야구는 기꺼이 이 실책을 또 반복하고야 말았다.
6.2. 여담
2015년 11월 8일 프리미어 12 야구 대표 팀이 일본 대표 팀에게 0:5 완봉패를 당하면서 이 문서에 야구판 삿포로 참사 2탄이 작성될 뻔했지만, 4강에서 한국 대표팀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써 내면서 이 일은 잊혀졌다. 거기에다 일본의 꼼수까지 생각한다면 위의 두 참사보다는 정상참작을 할 만한 사항이 있다. 실제로 완봉패를 당한 이후 나무위키에서는 삿포로 참사에 해당 내용을 추가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결론은 '끝날 때까지 지켜보자'였고, 결국 역대급 드라마를 쓰면서 묻혔다.다만 우리에게도 행운이 따랐던 것이 지난 2017 WBC 당시 일본에서 제기되었던 것처럼 일본 대표팀 선수들이 선수/소속 구단 그리고 일본 대표팀 관계자 간에 이닝수, 출전 횟수 등 세부적인 조항에 관한 비공식 계약을 체결했다는 의혹이 있다. 실제로 2017 WBC에 참가할 것 같았던 오타니 쇼헤이가 갑작스런 발목 부상으로 출전이 좌절되었는데, 이후 구단 연습경기에서 발목 부상이 무색할 만큼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러한 의혹이 짙어졌으며, 실제로 WBC 이후 고쿠보 감독을 포함한 관계자들이 이같은 의혹에 대해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도쿄 대첩의 운명의 8회전때 오타니가 마운드에서 내려온 이후 우리나라의 타선이 폭발하고 일본 불펜이 무너졌는데, 오타니가 끝까지 던졌으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당시에도 이러한 비공식 계약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 다만 이는 말그대로 추측의 영역이며, 당시 오타니가 내려간 것도 리그에서보다 더 힘을 오버해서 사용한 측면도 있기에 관리를 위해서 내려갔다는 식으로 볼 필요도 없다.[15] 또한 이후 올라온 투수들도 일본에서 내로라하던 투수들이었던 것 만큼 단순히 "운빨로 이겼다."라는 식으로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
이렇게 아테네 올림픽에 진출한 일본은 미국과 한국 둘 다 나가지 못한 그 대회에서 최종 성적 동메달이란 시원치 않은 전과를 올리고 귀국했다. 두 강적들이 오르지 못한 대회에서 호주에게 일격을 당해 동메달을 땄던 것이다.[16] 그리고 이는 2020 도쿄 올림픽 이전까지 일본이 올림픽 야구에서 올린 최고의 성적이 되었다.
[1]
한양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국가대표팀에 발탁, 지역예선에서 뛰었지만 최종 예선에선
조웅천과 교체돼 빠졌다.
[2]
해외파는 핑계인게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먹튀행각의 절정을 보여주던 중이었고 김병현은 2003년 4월 부러진 배트에 맞아 부상당한 이후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구대성도 이해 방어율 4.99를 찍으며 부진했다. 해외파 중에 제몫하고 있던 건 서재응 정도였다.
[A]
성인대표팀 첫 발탁
[A]
[A]
[A]
[7]
홍세완의 대체 선수로 발탁
[8]
이듬해인 2002년에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해서 데뷔 첫해 10승을 기록한다. 이미 위에 한국vs대만 항목에서도 소개된 것처럼 2003년 삿포로대회 한국전에서는 연장 10회에 등판해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되기도 한다. 그 후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예선 한국전, 본선 한국전(
강민호에게 결승타 허용)에도 모두 구원등판하는 등 한국과는 질긴 인연.
[9]
투수진도 선발
이용훈(야구)이 1회부터 대만 4번타자
천진펑에게 홈런을 허용하는 등 고전 끝에 1대5 패배.
[10]
한국은 한을 품고 지옥으로 떨어져라!
[11]
네이버 지식 등에서는 '한한구천' 용어가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때 처음 등장했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001년 당시부터 대만 현지에서 사용되었던 용어였다.
[12]
게다가 이 대회에서 한국의 몇몇선수들은 무성의한 플레이와 태업, 심지어는 항명까지 있었고 이는 대회내내 대만언론의 집요한 먹이거리가 되기도 한다.
[13]
원래 한국야구계는, 2001년 야구월드컵을 시작으로 해서, 야구월드컵 출신 포함 유망주들 중심으로 부산 아시안게임까지 멤버들을 이끌어가기로, 2001년부터 이미 계획을 잡았었다. 결국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지만...
[14]
약팀인 중국을 확실히 잡았고, 강팀인 일본을 상대로 2점차라는 적은 점수차 패배라 이상할 건 없다. --대만만 잡았어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ㅇ-
[15]
당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던
이대호가 경기중 "오타니가 원래 저렇게 던지냐?"는
오재원의 질문에 "저렇게 처음부터 강하게 던지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고 답한 것도 오타니가 처음부터 몸을 끌어 올린거 아니냐는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16]
이것도 한국과 미국이 없는 대회에서 당연히 쿠바와 결승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4강에서 호주에게 지는 바람에 우승이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수혜를 가장 크게 받은 선수가 선발투수였던
크리스 옥스프링과 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제프 윌리엄스. 옥스프링은 이후 돌고돌아 KBO 리그에 연착하는 데에 성공하고, 제프 윌리엄스는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해
JFK의 일원으로 활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