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2:21:22

타이완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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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양국 승인에 대한 내용은 두 개의 중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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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독립운동
臺灣獨立運動 (臺獨)
台灣獨立運動 (台獨)
파일:Flag_of_World_Taiwanese_Congress.svg
<colbgcolor=#018002> 타이완 독립운동의 상징인 대만기(台灣旗)
영어 Taiwanese Independence Movement
중국어(정체자) 臺灣獨立運動/台灣獨立運動
ㄊㄞˊ ㄨㄢ ㄉㄨˊ ㄌㄧˋ ㄩㄣˋ ㄉㄨㄥˋ( 주음부호)
Tâi-uân to̍k-li̍p ūn-tōng ( 대만어 발음)
Táiwān dúlì yùndòng ( 한어병음)

1. 개요2. 상세3. 역사
3.1. 대만일치시기와 그 이전3.2. 1945년 이후
4. 전개 양상
4.1. 민주화 이전4.2. 리덩후이 양국론4.3. 대만 정명(正名)운동4.4. 여권 스티커 논란4.5. 외성인, 본토인에 대한 시각 차이4.6. 유엔 가입 문제4.7. 절충안4.8. 2024년 강경 독립성향 라이칭더 총통 당선
5. 오해
5.1. 타이완은 중국의 식민지이다5.2. 대만은 중국과는 별개의 완전한 독립 국가이다5.3. 타이완섬은 중국 본토와 별개의 지역이다5.4. 타이완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극우에 호의적이다5.5. 타이완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친중파5.6. 대만은 소수의 중국계가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5.7. 대만 원주민은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5.8. 대만 독립주의자들은 중화민국의 잔재를 청산하기를 원한다5.9. 대만은 장제스가 중국으로부터 건너가서 '새로 세운 나라'이다5.10. 대만인 다수는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5.11. 대만인 다수는 중화민국에 의한 중국 통일을 지지한다5.12. 국민당 등 친중 세력은 중공에 대만을 팔아먹으려는 매국노 집단이다5.13. 대만은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있다
6. 대만 독립 시 국기 도안7. 대내외 반응8. 만약 대만이 새로 건국될 경우
8.1. 국가 상징물8.2. 외교8.3. 정치8.4. 역사8.5. 행정구역8.6. 사회8.7. 교통8.8. 국제정세8.9. 군사
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개요

중화민국이라는 허구의 국명을 탈피하고 새 헌법에서는 중국과 혼동될 수 있는 국명, 국장 등의 요소를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
리덩후이, 2006년
대만과 중국 각각에 하나의 나라가 있다.(台灣中國、一邊一國)[1][2]
타이완 독립운동 진영의 구호.
대만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는 운동이다.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대만'과 '중화민국'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기에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3] 게다가 홍콩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립시키려는 홍콩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립시키려는 운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래에 서술되는 중국 대륙과 대만의 현대사를 알아야 이 운동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대만 독립운동은 두 개의 중국 주장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두 주장 모두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영구 분리를 주장한다는 건 같지만, 두 개의 중국은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타이완(Taiwan)'이 아니라 정식 국호인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으로서 인정받기를 주장하는 것이고, 대만 독립운동은 대만이 '중화민국'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독립국가 대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지지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기술적으로 정의하면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국호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독립주권국가인 대만공화국(臺灣共和國) 또는 대만국(臺灣國)의 건설을 주장하는 일련의 운동을 말한다. 약칭으로 대독(臺獨 또는 台獨)이라고 한다. 즉, 타이완 독립운동은 중국의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중국 정체성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중국'을 '중화민국'으로 본다면 중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이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는다.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분리된 주권 국가임을 주장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대만 독립운동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두 개의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온건한 대만 독립론자 중에는 이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대만 독립운동은 실제 전개 양상도 대단히 복잡하다. 본래 대만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민주진보당[4]대만의 지배자 중화민국의 집권당이 되었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집권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이 소멸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 때문이다. 중국(중화민국)대만이 완전히 단절하지 않으면 중국(중화인민공화국) 하나의 중국 논리를 극복할 수 없기에 대만 독립운동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대만 독립운동 찬성론자들은 대만이 중국에 속해 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국제적 미승인국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이러한 관점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 독립운동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문서는 대만 독립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강경론)에서 서술된 내용이며, 다수 대만 사람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은 본인들의 정체성을 중국인(중화인민공화국 공민)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강경한 대만 독립에 대해 무조건 동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상당수의 대만인들의 생각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이 어떻게든 분리만 되어 있다면 (미승인국 상황을 제외한) 현재의 중화민국 체제에 대해서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고 있다. 즉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성 같은 형태만 아니라면 대만인 중 누구라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대만 독립과 관련된 구호로 일변일국이 있다.

2. 상세

1912년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대륙에 세워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은 건국 초기 지방 군벌들의 분열로 혼란을 겪었으나, 1920년대 후반 장제스를 위시한 중국국민당 북벌을 통해 군벌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북양군벌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베이징 북양정부가 무너짐과 동시에 중화민국의 최고 권력은 난징 국민정부로 옮겨가게 되었다. 북벌 완수 직후 장제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일부 군벌들이 국민당 내 반장(反蔣) 세력[5]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약 1년 만에 모두 진압되었고, 그 사이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마오쩌둥 중국공산당 역시 국민정부의 초공작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로써 1930년대 들어 장제스와 국민정부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져 갔다.

한편 타이완섬은 이미 청나라 시절인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 제국에 할양되어 식민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 대륙의 혼란한 정세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당시 대만공산당은 (오늘날 대만의 친중공 세력들과 달리) 대만인을 중국인, 일본인이 아니라고 정의했으며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대만민족이 주체가 된 대만 공화국 수립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삼민주의와 대만민족주의를 동시에 내세운 대만민중당이 있었는데, 이 정당은 중국인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대만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등 오늘날의 국민당과는 성격이 달랐다. 즉, 대만 독립운동은 단순히 2.28 사건으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니며 일제 시대에도 한국 독립운동과 마찬가지로 중국/일본과 구별되는 대만 주체성을 주장하는 독립운동 세력이 존재했다.

한편 1931년 만주사변으로 만주국이 세워지며 일본의 대륙 침략 야욕이 본격화하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대륙은 또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 역시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의 병참기지가 되어 일본군을 지원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1945년 일본 제국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고, 카이로 선언의 내용에 따라 일본의 지배 하에 있던 타이완 섬 펑후 열도가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대만인들 역시 같은 핏줄인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였으나 1947년 발생한 2.28 사건으로 반정부 시위를 벌인 시민들이 대거 학살되는 참극이 벌어지면서 대륙에 대한 대만인들의 감정이 시작부터 어긋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대륙에서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서 잠시 가라앉아 있던 중국국민당 중국공산당 간의 국공 대립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중일전쟁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은 대일 항전을 위해 손을 잡았으나 한편으로는 여러 잡음이 발생하고 있었다. 일본의 항복 이후 국민정부와 공산당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져 중국의 미래를 위해 뜻을 같이한다는 합의를 이뤄냈으나, 기본적으로 국민정부는 공산당이 국민정부 밑에 복속되어 활동하길 원했기에 독자 행동을 추구했던 공산당과는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부터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혁명군 홍군 사이에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1946년을 기점으로 장제스가 공산당 거점지역에 대한 공세를 명령하면서 내전은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된다. 그러나 내전이 지속되며 국민혁명군은 홍군에 비해 약점을 드러내며 계속해서 남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주요 도시들이 하나둘 공산당에 함락되면서 국민정부의 영향력은 점점 축소되어 갔다. 결국 1949년 4월 23일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이 함락되고, 곧이어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까지 공산당 손에 들어간다. 수도를 잃은 중화민국 정부는 아직 함락되지 않은 광저우로 퇴각했다가, 10월 14일 광저우마저 점령되자 중일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충칭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 달여 만인 11월 30일 충칭까지 점령되면서 또다시 청두로 퇴각했다가 쓰촨성 전체가 점령될 위기에 처하자 최종적으로 12월 7일, 쓰촨성 시창(西昌)에 국민혁명군의 총사령부만을 남겨두고 타이완 섬 타이베이로 정부를 이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국부천대이다. 당초 마오쩌둥 타이완 섬에 군대를 보내 타이완까지 모두 점령할 계획이었지만, 해군이 약했던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의 한계와 미 해군 함대의 반격 우려, 결정적으로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타이완 점령은 후일로 미루게 된다.

한편 장제스는 여전히 대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데, 언젠간 중화민국이 다시 대륙으로 들어가 공산당을 몰아내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거라는 대륙 수복의 의지를 계속해서 드러냈다. 그래서 중화민국의 실질 영토가 타이완이라는 작은 섬과 부속도서로 축소되었음에도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국호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한 것이다. 특히 실질 통치영역이 섬 지역인 진먼현 롄장현(마쭈 열도)으로 축소되어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푸젠성 정부를 포함해[6] 성(省) 정부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도 중화민국이 대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7] 장제스는 죽을 때까지 대륙 수복의 의지를 꺾지 않았고 비록 영역은 축소되었지만 '정통 중국'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시간이 흘러 냉전의 극심한 대립이 완화되고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중화민국(대만)은 1971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빼앗기고[8] 유엔에서 자진 탈퇴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1980년대 들어 대륙에서는 덩샤오핑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 죽의 장막'으로 대표되는 오랜 폐쇄주의를 끝내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 서방 국가들과 교류를 확대하고 있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미국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국가들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상태에서 1980년대 후반에는 대만에게 있어 최후의 대국인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남아공마저 중국과의 관계 개선 및 수교를 단행하여 대만의 외교적 고립이 현실화되고, 이에 반해 대륙(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적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만 내부에서도 점차 '중국'적인 정체성보다는 '대만'을 좀 더 강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재야에서는 아예 '중화민국'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대만'이라는 새 국가로 출범하자는 '대만 독립'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한 민주진보당이 민주화 세력과 결합해 세력을 키워갔다. 비록 중국국민당 출신이지만 리덩후이 전 총통 역시 1990년대에 ' 양국론'을 주장하여 대만의 독자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갔다. 한편 1990년대~200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과 대만의 국력차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지게 되면서, 과거 대륙 수복을 주장하던 중국국민당 쪽에서도 무력을 통한 대륙 수복은 어렵다는 현실론에 입각해 노선을 수정하여 현재는 ' 양안 간 교류 확대'와 '점진적 평화통일' 정도로 후퇴한 상태다.

이 때문에 21세기에 들어선 현재는 대만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굳이 '중국인'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로 줄어들었으며, '중국'적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에도 아예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풀네임 또는 '중화(中華)', '화인(華人)' 등의 표현을 쓰지 '중국'이라고는 하지 않는다.[9] 현재 대만에서는 독립에 대해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상황인데 단순히 독립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대만 독립 문제는 더 복잡한 것이 독립 반대 및 양안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을 비롯해, 현재의 '중화민국'을 유지하면서 대륙(중화인민공화국)과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온건 독립 노선( 화독)[10], 아예 '대만국' 또는 '대만 공화국' 등으로 국호를 바꾸어 중국적인 정체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을 주장하는 급진 독립 노선( 대독) 등이 얽혀있어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뉜 상황이고, 이들 중 어느 한쪽이 여론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는 더더욱 아니라서 독립 문제는 대만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사실 정치적으로 보면 중국국민당 양안통일, 민주진보당은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좀 애매한 것이 양당 모두 암묵적으로 현상유지파가 주류가 된 상태이다. 국민당은 여전히 양안 교류 확대 및 점진적 통일이 주류 의견이긴 하지만 최근 커진 반중, 즉 반 중공 정서 때문에 과거에 비하면 굉장히 소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상태이며, 민진당도 강경 독립파 세력에 대한 반감과 불안감이 당의 확장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있어서 최근에는 온건 독립파라고 할 수 있는 화독(사실상 현상유지)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태이다.

3. 역사

3.1. 대만일치시기와 그 이전

대만청치시기 이전 타이완 섬은 중국 본토와 분리된 지역이였다. 특히 동녕국 이전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기는 했어도 중국인(한족)들과는 완전히 별개로 타이완 원주민들이 살던 지역이였고 따라서 현재 중국공산당의 주장과 달리 대만이 '중화민족의 고유 영토'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많은 대만 본성인들은 17~18세기에 푸젠성 지역에서 이주해 온 한족의 후손들로서 푸젠성과 긴밀한 연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만 본성인들도 1911년 신해혁명에 호응하는 봉기가 발생했을 정도로 대만일치시기 초반에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상당히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식민지 중에서 1945년 패전 때까지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적자 재정[11]이었던 조선총독부와 달리 차·쌀·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당산업의 발달로 일찍부터 흑자 재정을 달성한 대만총독부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유화적인 통치를 한 이유로[12], 1920년대 이후 일본에 상당히 동화된 대만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종전 직후 일본의 철수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즉, 50년의 일제 통치기간은 대만 본성인들에게 중국인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심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대만 본성인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대만이 청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지역이라는 고아의식을 갖고 있었고, 대만일치시기 중화민국을 조국이라 생각했던 인사들조차 중국 본토에 가서 활동하는 동안 중국인들로부터 '일제 앞잡이'나 '미개한 토인' 등으로 취급 받으면서 대만과 중국을 구별하는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직후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당시 대만인들이 우리 대만과 대비되는 너희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 대만인과 구별되는 너희 중국인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다민 일본이 제국주의 세력으로 부상하기 전 청나라 통치 시기에도 청나라의 지배를 거부한 반란이 적지 않았다. #

일본인들 역시 대만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2등 국민 취급하는 것은 역시 다른 식민지 지역과 다를 바 없었으며 전쟁 수행으로 인해 타이완 민중의 삶은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타이완 독립운동은 반중보다 반일에 더 치우쳐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만공산당, 대만민중당이 대만 독립운동 세력의 주된 축이였다. 다만 타이완은 일제 통치 이전에도 네덜란드, 스페인, 청나라 등 다양한 외세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오랬동안 독립적인 국가를 이루어왔던 한반도의 독립운동처럼 격렬하지는 않았다. 대만공산당 등 급진주의자들은 일제로부터 즉각독립 뿐 아니라 중국과의 연관성 자체를 부정한 반면, 온건파들은 점진적 독립을 주장하였으며 중국적 정체성을 어느 정도 긍정하면서도 대만 본토 정체성을 중시하는 방향이였다.

3.2. 1945년 이후

우리 중국 공산당 군대 장제스(蔣介石)와 중국국민당에 대항하는 대만 인민들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고 대만이 원하는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
대만에서 2.28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공산당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에서 직접 밝힌 입장문이다. #[13]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일제 시대에 (중국,일본과 분리된)대만 독립운동이 있었으나 동사에 대만인들 대다수가 한족이였기 때문에, 1943년 발표된 카이로 선언에 따라 종전 직후 대만이 중화민국에 반환되고 국민혁명군(이후 중화민국 국군)이 타이완 섬에 상륙했을 때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같은 민족(한족)의 나리인 중화민국이 자신들을 2등 국민이 아닌 대륙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대만총독부가 해체 직전에 중국의 세력권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전까지 탄압했던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를 후원하는 테세전환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던 이들도 꽤 있었지만 중화민국 편입에 대해서도 딱히 반대하지 않는, 즉 (일본 식민지배만 벋어날 수 있다면)어느쪽이여도 상관없다는 것이 당시 대만 여론이였다.

하지만 타이완 섬을 접수한 중화민국 행정 당국은 일제 통치를 겪은 대만 본성인들을 여전히 '일제 앞잡이', ' 한간'으로 몰아[14] 수탈하고 천대했으며 가장 기본적으로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해 봉기한 대만 본성인들은 대만어 일본어를 쓰면서 중국 외성인들을 솎아냈고, 중화민국 정부가 이런 대만 본성인들을 대거 학살한 2.28 사건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공식적으로 최소 28,000명에서 40,000명에 달하는 본성인[15] 이때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으며 그 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도망쳐 온 뒤에도 외성인이 사회 주도세력으로 활동하여[16] 민주화 이전까지 본성인의 힘이 위축되었다. 국부천대를 전후해서 국민당을 따라 들어온 한줌도 안되는 외성인들이 정치권과 군부,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인구의 절대 다수를 자치하는 본성인들은 쩌리 신세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이에 ' 대만인은 대만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대만 고유의 민족의식이 싹트게 되어 대만 독립운동이 급성장하게 된다.

사실 대만이 일본 통치로부터 벗어난 당시에 타이완 섬을 완전히 중화민국으로 합병할지에 대한 여부가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었는데, 연합국 최고사령관에 의해 총령 1호(General Order No. 1)에 따라 중화민국 육군이 일시적으로 대만을 점령할 것으로 합의한 것이며 # 이후에는 현지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중화민국의 일부로 남을지 따로 대만공화국으로 독립시킬지 결정하려고 했다. 또한,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2.28사건 이전에도 대만 민족주의자들을 주축으로 중국으로의 편입이 아닌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긴 있었다. 의외로 대만공산당, 심지어 마오쩌둥 중국공산당[17]조차도 대만독립을 지지했다. #[18]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과거 자당과 마오쩌둥이 대만독립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양안통일을 외치며 민진당을 공격하고, 대만독립 시도시 전쟁하겠다고 협박하고, 정작 과거에 죽도록 싸웠던 국민당과 통일전선을 만드려고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즉, 국공내전의 결과물로써 국부천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미 2.28사건까지 겪어 중국 본토에 대한 반대가 심했기에 1940년대 말이나 늦어도 1950년대 초에는 타이완 섬은 중국과 무관한 '대만공화국'으로써 진작에 독립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19]

그러니까, 대만 섬은 중화민국 정부가 대륙에 있던 시절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아 중화민국과 관련이 없었고[20], 중화민국으로 반환된 후에는 2.28 사건을 겪고 국민당 정권과 외성인에게 차별받는 등 중화민국과 친할래야 친할 수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져서 도망쳐 온 섬이 자기네들을 그렇게 싫어하는 대만이었더라는 것이다. 즉 현재의 중화민국은 그들이 이전까지 지배하지도 않았었고, 탄압하기까지 했던 지역으로 도망쳐 와 사실상 본토로 쓰게 된, 전세계적으로 통틀어 봐도 정말 독특한 정권인 셈이다.

대만의 중화민국 반환을 선언한 카이로 선언에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대만의 중화민국 귀속을 부정하고 대만의 지위가 국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긴 한데, 이들 중에서도 공식적으로 일본으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크지는 않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대만 영유권을 명시적으로 포기했기 때문. 다만 주의해야할 부분은 '일본이 대만을 포기'한다는 것이 '대만이 영구적으로 중화민국의 영토로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반도 분단이 미국과 소련에 의해 일시적인 조치였던 것처럼, (위에서 언급했듯) 대만의 중화민국 하의 통치도 어디까지나 연합국의 일시적인 조치였을 뿐인데 냉전의 소용돌이로 인해 한반도의 통일과 대만의 독립이 좌절된 것이다.

2020년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반중 정서와 이에 탄력을 받은 차이잉원 정권의 외교적 움직임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만 문제에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NHK 진행자가 중화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완으로 소개했는데 양 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감안하더라도 기존에 상상할 수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2021년 리투아니아에서는 중국의 반발에도 대만과 상호간 대표부 개설을 결정했는데 4년전만 해도 중국의 압박으로 나이지리아에 상주한 대만 대표부가 수도를 떠나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국제 정세에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일단 대만 독립운동 문제에 세계적인 관심이 증가했고 중국의 눈치를 덜 신경쓴다는 것이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만 내부에서도 독립운동에 현실적인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 또한 대만 독립의 형태든 중화민국의 승인이든 어떤 식으로 국제적 승인을 받을 가장 좋은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4. 전개 양상

4.1. 민주화 이전

국공내전 말기 미국이 타이완을 별개의 국가로 독립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검토 단계에서 중단되었고 국민당이 1955년 쑨리런 쿠데타 모의 사건을 구실로 쑨리런[21]을 연금시키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1950년 즈음에 일본, 홍콩, 미국, 캐나다의 본성인 화교들이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지금의 대만 독립운동과 비교할 때 당시 대만 '독립운동가'들의 주장은 상당히 과격했는데, 중화민국 정부를 식민 지배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중화민국 정부를 민중봉기 등으로 전복하고 대만인의 독립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71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중화민국이 쫓겨나기 직전 실제로 대만 공화국이 건국될 뻔하기도 했다. 당시 공산권과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의 지지 속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CHINA) 대표 권한을 인정하는 제2758호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중화민국을 대신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게 되자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과 장제스의 측근들은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탈퇴하는 대신 중화대만공화국(Chinese Republic of Taiwan)이라는 새로운 국호로 재가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22] 그러나 쑹메이링의 강경한 반대와 장제스 본인에게 아직 남아 있던 본토에 대한 미련으로 이 제안은 거부되었고, 결국 대만은 이 때 자진 탈퇴한 이후 아직까지도 UN에 재가입하지 못하고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대만의 민주화 운동은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국민당 독재시기에 민주화나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反국가적인 것으로 가차없이 탄압되었으며, 중국공산당의 스파이나 한간로 몰리기도 했다. 민남어를 비롯, 본성인 문화도 강력히 탄압되었다. 당시 대만에서 얼마나 본성인 문화를 탄압했냐면, 각급학교에서 민남어를 쓰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벌을 받을 정도였다.

4.2. 리덩후이 양국론

민주화 이후 최초의 민선 총통이 된 리덩후이는 예전의 정책에서 변화를 가하여, 중국 대륙 + 홍콩 + 마카오를 대표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완 + 펑후 + 진먼 + 마쭈 등으로 구성된 중화민국 양 국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체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로서는 중공을 아예 부정하던 과거에서 일정 부분 양보한 정책이나, 정작 중공 측에서는 심하게 반발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었기 때문. 허나 정작 대만 내 범람연맹에서는 조용했는데 애초에 리덩후이가 국민당 소속 총통이었던데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국론이 중화민국이라는 주권 국가를 강조하는 차원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4.3. 대만 정명(正名)운동

대만화(台灣化)라고도 한다. 대만본토화운동(Taiwanization)의 일환이다.

'중국-, 중화-'라는 접두어를 정부기관, 공기업 등에서 전부 삭제하고 '대만-'이라는 접두어로 바꾸는 정책을 말하며, 본래 독립을 지지하는 민간 단체에서 주도하던 운동이었지만, 천수이볜 정권 때 공식적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일련의 변화를 보자면.
  •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에 기재된 '中華民國'을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으로, 'Republic of China'를 'Republic of China (Taiwan)'이라고 고쳤다.
  • 국영기업인 중국석유는 대만중유(台灣中油; CPC Corporation, Taiwan)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중화우정(中華郵政, China Post)은 대놓고 대만우정(臺灣郵政, Taiwan Post)으로 고쳤다. 중화민국 정부가 출자하는 중국강철(中國鋼鐵, China Steel)도 비슷하게 개명을 하려 하였으나 이미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고치기가 힘들어 결국 개명하지 못했다.
  • 헌법 개정으로 중화민국을 아예 대만공화국이나 대만국으로 바꾸기 위해 국민 투표를 추진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쟁 위협과 전쟁을 막으려는 미국 등 국제 사회의 압박으로 무산되었다.

국민당의 마잉주가 집권한 뒤에는 이 조치들의 일부를 취소했으며 다시 원래대로 중국-중화란 이름으로 복귀했다.
  • 여권이나 국영 웹사이트 등의 '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은 '中華民國'으로 되돌리되 영어판에서는 'Taiwan'을 삭제하지 않았다. 중국어권에서는 중화민국만 기재해도 중국 대륙과 혼동하지 않으므로 굳이 대만이라고 병기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했지만, 중국어권 밖에서는 혼동하기 때문에 Taiwan의 병기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여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다.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여 이 조치에 반발하는 일부 대만 사람들은 '대만'을 한자와 영어로 표기한 스티커를 여권 앞표지에 붙여 '중화민국'을 가려버리기도 하는데, 싱가포르에서 이 여권을 여권 변조로 보고 입국 금지를 먹여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 대만중유는 중국석유로 되돌리고 있으나 이미 교체 작업이 상당히 진척돼서 지체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만우정은 중화우정으로 원상 복구했다.[23]

다시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집권하자 변화가 나타났다.
  • 대내적으로 '중화민국 대만'이라는 합칭을 사용하여 중화민국의 실체가 중국이 아닌 대만임을 '온건하게' 강조하기 시작하였다.[24]
  • 대외적으로 Republic of China (Taiwan) 병기 표기를 다시 적극적으로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 기관의 영문 명칭이 '명칭 of the Republic of China' 식의 표기에서 '명칭, Republic of China (Taiwan)' 식으로 바뀌었다.[25]
  • 2020년 공개된 새 여권 표지에서 REPUBLIC OF CHINA를 작은 글씨로 국장 테두리에 옮겨 적어 잘 안 보이게 하고 대신 TAIWAN을 크게 쓰도록 바꾸었다.[26] 외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라지만 대만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 정권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범록연맹 일각에서 중화민국의 영문 국호를 음역으로 고쳐 Republic of Chunghwa[27]로 바꾸어 China를 지우자는 주장이 소수 의견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또한 범록 내 몇몇 인사들은 중화민국 = 대만 ≠ 중국이라는 관점에 따라 중화민국이라는 중국어 국호를 그대로 둔 채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Taiwan으로 대놓고 바꾸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4.4. 여권 스티커 논란

파일:IP42IzN.png
독립운동 진영에서 현행 대만 여권의 '中華民國' 및 'REPUBLIC OF CHINA' 문구 위에 '台灣國' 'REPUBLIC OF TAIWAN' 스티커를 붙이고 중화민국 국장 대신 대만 고유의 문화를 상징하는 원형 스티커를 붙이는 운동을 벌였다. # 이는 대만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으나, 정부에서는 여권을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한 상태. 중화민국 외교부는 이러한 행위가 '공문서' 변조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며 이를 금지하는 여권조례시행세칙 수정안을 마련, 2016년부터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운동 초기에 스티커를 붙인 여권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으며, 해당 운동가는 미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대륙 등에서 입국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국경 검문이 강화되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싱가포르 이민국에서 해당 스티커 여권으로 입국심사를 받던 대만인 3명을 입국거절도 모자라 추방명령을 내렸다. 대만의 미국 대사관 격인 미국재대협회(AIT)는 대만 외교부의 스티커 부착 관련 질의에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여권을 변경하는 행위는 여권 훼손에 해당하며 입국 거절의 위험성을 높인다."라고 밝혔으며,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도 스티커 부착 여권을 제시할 경우 2차 검색대에서 '강도높은 심문'을 받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심지어 일본 공항에서도 대만인 여행객 일부가 스티커를 뗄 것을 요청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 추방시키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홍콩, 마카오 등도 마찬가지. 관련 기사 결국 2016년 2월 스티커를 만드는 단체에서 이 스티커 여권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사실 여권에 스티커를 붙이는 행위는 여권의 커버 자체가 국적을 확인하는 기능을 하는 터라 타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여권과 색이 비슷한 베트남 여권에 ' 대한민국' 스티커와 무궁화 국장을 붙일 경우 내지를 보지 않으면 한국 여권인지 베트남 여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러니 여권 커버를 보여주지 않으면 입국금지 처분을 줄 명분이 되는 것이다.

파일:taiwanpassport.jpg
이런 물건도 있다. 대만 여권 커버인데 그냥 기존 중화민국 여권 위에다가 씌우기만 하면 된다. 이쪽은 스티커와 달리 외국 공항·항구의 출입국 심사 때 문제가 생길 경우 즉각 대처할 수 있다. 그냥 벗기기만 하면 원래의 중화민국 여권 표지가 보이기 때문. 아무래도 위의 스티커 파동 때문에 앞으로는 독립론자들 사이에 이런 대만 여권 커버가 더 애용될 것으로 보인다.[28] 참고로 대만 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이나 국호 변경 운동이 벌어지는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물건들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29] 한편 2020년대 들어서 기존 중화민국 국호를 유지하되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Chunghwa로 고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한 네티즌이 여기에 맞춰 또 다른 가상의 대만 여권 표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해당 이미지는 이 문서의 절충안 단락에 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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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외성인, 본토인에 대한 시각 차이

현재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중국본토인들을 이웃나라 사람으로 여기며, 극단적인 대만 독립파는 외성인을 포함한 본토 출신을 아예 같은 민족으로조차 보지 않는다. 당, 송, 명, 청 같은 나라들도 자기 나라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30] 이들에 의하면 대만은 중국이 아니기에, 1949년 이전에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들은 같은 국가 내 타 지방으로 이주해 온 외지인이 아니라, '이웃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이민온 이민자[31] 내지는 침입자, 정복자[32]라고 본다.[33] 이는 양안교류가 활발해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으로서 현재 대만에 거주 혹은 체류중인 본토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국부천대에 대한 시각도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는 '천도', '피난', '망명', (지금은 의미가 거의 없어졌지만, 대륙 수복을 전제한)'임시정부'이고, 독립운동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침략' 혹은 ' 이주'이다. 다만 국공내전 직후 들어온 외성인에 한해서는 이웃나라 중국의 공산정권을 피해 대만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이민자[34]나 대만을 정복한 새로운 정복자로서 바라보며[35],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단어를 내포하는 '외성인'보다 새로운 이주자라는 뜻에서 신주민(新住民, Newcomers)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이는 독립운동의 상징가인 대만취청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4.6. 유엔 가입 문제

1971年中華人民共和國進入聯合國,取代中華民國,台灣成為國際孤兒。為強烈表達台灣人民的意志,提升台灣的國際地位及參與,您是否同意政府以「台灣」名義加入聯合國?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유엔에 가입했으며, 이에 대만의 대표권이 상실되었습니다. 이제 대만의 적극적인 국제사회 참여를 위해, 여러분은 정부의 대만 명의 유엔 가입 신청에 동의하십니까?
대만의 유엔 신규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 질문 ( 천수이볜 발의)
您是否同意我國申請重返聯合國及加入其它組織,名稱採務實、有彈性的策略,亦即贊成以中華民國名義、或以台灣名義、或以其他有助於成功並兼顧尊嚴的名稱,申請重返聯合國及加入其他國際組織 ?

여러분은 '중화민국' 혹은 '대만' 명의로 유엔 및 산하 기관에 되돌아가는(重返) 것에 동의하십니까?
대만의 유엔 재가입을 묻는 국민투표 질문 ( 샤오완창 발의)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에게 유엔 가입은 1971년 이후 상실한 회원국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게는 '대만' 국호로 유엔에 새로이 가입하는 것이다. 용어 사용을 봐도 전자는 "Taiwan should RETURN to the UN"이고 후자는 "Taiwan should ENTER the UN"이다. 다만 일반인들은 이런 용어를 엄밀히 따지지 않기 때문에 별 구별없이 쓰기도 한다.

4.7. 절충안

대만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독립국가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중화민국'은 중국 대륙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이 관점은 대만 독립이 가져올 혼란이나 양안 통일이 대만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거부감 사이에서 타협점으로 나온 방안으로 많은 상당수 대만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양안통일이 아니면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므로 이 역시 반대한다. 그러나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하는 강경한 대만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현상유지로 묵인하고 있다. 2015년부터 이런 노선에 대해 '중화민국 독립'[36]을 줄인 화독(華獨) 또는 국독(國獨)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대독(대만 독립)과 비슷하지만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한다는 점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37] 단 화독이라는 이름은 최근에 붙었어도 그 논법은 더 오래 전부터 쓰여 왔다.
파일:huadu-taidu.jpg
화독과 대독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한 이미지.

또, 이와 별개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더 부여한 표현으로 '대륙 독립'을 줄인 육독(陸獨)이라는 논법도 있다. 독립은 대만이 아니라 대륙이 했다는 말로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중(화민)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했다는 말이다. 이 논법에서 국공내전은 '중공 독립 전쟁'이 된다. 화독과 육독의 차이점은, 전자는 어쨌든 대만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 것이라면 육독은 중화민국이 정통 중국임을 강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대만인 다수가 중화민국이라는 국가 체제를 수용한 데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까지 겹쳐[38] 사실상 현 상태를 바꿀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해 범록연맹이 기존 입장인 대독(대만은 독립국이며 중화민국이든 뭐든 '중국'이 아니다)을 수정한 게 화독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존한다는 현실을 반영해 범람연맹이 기존의 입장(하나의 중국=중화민국)을 수정한 것이 육독이다. 즉 화독과 육독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얼핏 비슷해 보여도 각각 범록과 범람이라는 정반대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2016년 출범한 차이잉원 정부는 중화민국 대만(中華民國臺灣 또는 中華民國台灣)이라는 대내 명칭과 Republic of China (Taiwan)라는 대외 명칭을 채택해 독립운동 세력이 주장해 온 '대만국', '대만공화국'보다 온건적인 자립 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 대부분의 대만인이 통일도, 독립 시도도 하지 않는 양안 간 현상 유지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대만인들로부터의 일정한 지지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 대만의 독립추진단체 포르모사(Formosa, 喜樂島) 연맹은 이날 타이베이 민진당 청사 앞에서 대만 독립을 국민투표로 가릴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는 민주화된 이후로 처음이라고 한다. #

두 개의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콩고 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의 사례[39]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베이징(China-Beijing), 중화민국을 중국-타이완(China-Taiwan) 혹은 중국-타이베이(China-Taipei)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현재 주요 국제기구와 올림픽 같은 국제스포츠대회에서는 차이니즈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복잡한 외교적 공방전을 통해 애매하게 묵시적으로 합의된 어정쩡한 명칭이지만, 마땅히 대안이 없어서 계속 쓰이고 있다. 중화민국 내부에서 국호를 중화대만공화국, 중화대만민주국, 중화대만민국 등 '중화'와 '대만'을 모두 넣은 명칭으로 변경하자는 논의도 있어 왔다. 자세한 내용은 하나의 중국 문서 참고.

한편 범록연맹 내에서는 중국 정체성을 지우고자 하지만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폐기하긴 어려우므로 영문 표기에서 China 대신 음역(音譯)으로 고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기존 국호를 유지하면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다른 나라임을 강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2011년 민진당 소속 지방 정치인인 양창전( 楊長鎮)은 《자유시보(自由時報)》에 중화민국을 Republic of China에서 Republic of Chunghwa[40]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기고문을 쓴 적이 있다. 이후 2020년 민진당 소속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인 린이진( 林宜瑾)은 쑤전창 행정원 원장(한국의 국무총리에 해당)에게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Chunghwa로 바꾸자는 제안을 다시 꺼내기도 했다. 한편 2016년 역시 민진당 소속 입법위원인 왕딩위( 王定宇)는 당시 외교부 부장(장관에 해당)이었던 리다웨이( 李大維)에게 중화 타이베이니 타이완·펑후·진먼·마쭈 개별관세영역이니 하는 대체 표기들을 일률적으로 중화민국을 음역한 Chung Hwa Min Kuo로 변경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41] 이미 일상 속 길거리에서 중화우정이나 중화전신의 간판 영문 표기로 Chunghwa를 자주 보기에 생소하지도 않고 크게 거부감이 없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현실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파일:Chunghwa passport.jpg

참고로 위 이미지는 한 네티즌이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Chunghwa나 Chunghwa Republic으로 변경한다는 가정 하에 가상의 대만 여권 표지 이미지를 디자인해 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화민국이 곧 대만이라는 화독의 관점에 따라 중화민국이라는 중국어 국호를 그대로 둔 채 영문 국호를 Republic of Taiwan으로 대놓고 바꾸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기존의 Republic of China는 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되고 Republic of Chunghwa는 생소하다는 게 Republic of Taiwan을 영문 국호로 지지하는 이유이다. 물론 여기까지 가면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대만 당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 자국의 반분열국가법에 따라 대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에 중화민국 정부가 쉽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한편 2020년 대만기진의 천보웨이(陳柏維) 당시 입법위원( 국회의원)[42]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에게 국호를 대화민국(台華民國) 정도로 바꾸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질의를 해서 # 대만 내부와 중국 대륙 모두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2020년 9월 민진당이 집권한 중화민국 정부에서 2021년부터 발행할 새 여권 표지를 공개해서 찬반 진영간 격론이 오가고 있다. 새 여권 표지는 기존과 달리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가 잘 안 보이게 국장 둘레의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옮겨지게 되고, TAIWAN(대만)이 매우 큰 글씨로 적히게 된다. 물론 한자 정체자로 대문짝만 하게 "中華民國"이라고 써 두긴 했지만, 한자 문화권이 아닌 다음에야 해외에서 한자를 알아보긴 힘들기에 TAIWAN을 내세우려는 의도는 변치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중화민국은 곧 대만이고 중국이 아니라는 화독의 관점을 투영하고 있다. 해외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한다는 게 변경 이유인데, 당연히 중화민국을 대륙이 아닌 대만 섬과 그 부속 도서가 실체인 국가로 만들려는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역시 중국 국민당 등 범람진영에서는 국가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파일:중화민국(대만) 여권 표지 2008년판.jpg
중화민국 기존 여권 표지(2008년 제정)
파일:중화민국(대만) 여권 표지 2020년판.png
중화민국 새 여권 표지(2020년 제정)

4.8. 2024년 강경 독립성향 라이칭더 총통 당선

2024년 제16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를 통해 대만 총통에 당선된 라이칭더(뇌청덕)는 강경 대만 독립 성향이다. 이미 라이칭더는 2008년 이후로 중국 대륙 전체에 입국 금지가 걸려 있으며,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홍콩 마카오 정부에서도 라이칭더를 입국 금지시켰을 정도로 초강경 대만 독립 성향이다. 시진핑과 라이칭더의 관계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 오해

5.1. 타이완은 중국의 식민지이다

'독립운동'의 어감 때문에 타이완이 중국(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식민지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은 단 한 번도 타이완을 실효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로 사실상 중국본토와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식민지라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중국 정부 또한 타이완을 식민지라고 인식하지 않고 자국의 한 개의 행정구역으로 인식할 뿐이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말처럼 중국공산당 중국국민당(대만)은 대만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중국국민당은 중국(중화민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의 집권 세력으로 중국 국민당을 선호하며[43], 중화민국의 실체를 부인하면서도 당 대 당의 자격으로 국민당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한다. 반면에 대만 독립운동 세력이 뿌리인 민주진보당 집권 시기에는 양안관계가 악화되며 양안 집권 세력간에 모든 공식/비공식 채널이 단절된다.

다만 극단적인 독립파들은 타이완을 중국(중화민국)의 식민지로 보고 있으며, 그래서 독립을 주장한다. 가령 친팔레스타인 성향의 소위 '대독좌파' 활동가들은 중화민국 헌정체제 그 자체를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과 다를 바 없는 정착민 식민주의라고 평가한다.[44] 물론 민진당 주류 등은 친이스라엘 성향이 있고 양안전쟁을 피하기 위해 중화민국 헌정체재 유지를 선호한다.

5.2. 대만은 중국과는 별개의 완전한 독립 국가이다

이부분은 참 애매하다. 일단 타이완은 사실상 실질적으론 독립한 주권 국가지만 국제적으론 UN에서도 사실상강퇴 쫓겨난[45] 미승인국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타이완이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타이완보고 독립된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대만 자신과[46]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혐중들이지 현재 대만과 정식 수교하는 국가들외에 대만과 단교한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당장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독립된 주권 국가로 인정했다가는 여러 분리주의 세력들이 세운 국가들도 죄다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괜히 미국이 중국을 증오하면서도 대만에 대해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못하는게 아니다. 자기들이 편한대로 대만 하나만 인정받고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절대 아니기 때문.

그리고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한다면 모르겠지만 타이완에도 중국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이들이 생각하는 중국은 중화민국이다.
역설적으로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있는 귀중한 유물이야말로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삼아야 한다는 당위성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국민당 군인과 이주민 1세대가 세상을 떠났어도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중국식 건축과 대륙에서 건너온 수십만 점 고궁박물원 문화재가 대만의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대만에서 중요시 여기는 국립고궁박물원의 존재만 봐도 대만을 중국과 별개의 국가로 분리시키려고 하는 타이완 독립운동세력측의 비논리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당연하지만 민진당 정권에서도 대만하고는 관련없는 중국 유물을 계속 모으고 있다.

본토에서 국공내전을 벌이던 시점에 대만, 당시 중화민국은 수십만점의 문화재들을 타이완섬으로 옮겨왔었다. 대만 독립운동측이 주장하는대로 대만이 중국과 별개의 완전히 독립된 국가라면 대만이 과거 중국 본토에서 가져오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수십만점의 문화재들은 대만이 타국에서 타국 문화재들을 일방적으로 약탈해서 훔쳐온 것들이 되어 버린다.

당연히 중국 본토에서 수십만점의 문화재들을 타이완섬으로 옮겨온 중화민국, 현재의 대만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타국의 문화재들을 획득의 대상으로 여기고 일방적으로 강탈해온게 절대 아니었다. 중국 문화재들에 대해 당시 중화민국은 자신들 또한 중국으로서 이 문화재들에 대해 합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으며 그렇기에 타이완 섬으로 옮겨온 것이다.

5.3. 타이완섬은 중국 본토와 별개의 지역이다

현재 타이완 독립운동측이 적극적으로 들고나오고 친대만 측에서도 함께 주장하는 논리이다. 타이완은 중국 본토의 통제 밖에 존재했으며, 타이완의 중국 통치 기간은 매우 논쟁적이라며 때문에 타이완섬은 중국 본토와 전혀 무관한 지역이라는 것. 대만 민족주의자들은 청나라 이전에 대만은 중국 본토와 전혀 별개의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47] 이에 따라 대만독립파의 관점에서는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은 (더 넓게는 청나라까지) 대만을 무단 점령하거나 점령하려고 시도하는 제국주의자라고 보는 셈.

5.4. 타이완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극우에 호의적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아래에 후술하겠지만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은 일본 우익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또 그 중 일부는 우익사관에 동조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가 되고는 있지만 모든 타이완 독립 지지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이완 독립운동이 친일 성향이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 독립운동 진영의 거두인 정치인 라이칭더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좌익에 가깝지만 아베 신조 등 일본의 우익 정치인과도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대 대만 민족주의, 대독 운동의 반중적 스탠스 때문에 반대급부로 친일적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대만 민족주의 자체가 대만일치시기에 탈식민 운동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대만 독립의 근원은 중국, 일본 같은 외세의 지배에 벋어나 반제국주의/ 자결권 원칙에 따라 대만인들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배 자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수준의 강경 친일이 대독 운동의 절대다수라고 볼 수 없다.[48] 그럼에도 웃기게도 일부 일본 우익세력들도 대만 민족주의자들이 맹목적 친일인 것처럼만 여기고 있으며 대만을 방문하는 도중 항일운동 사적지를 보고 멘붕에 빠지거나 중국국민당의 역사왜곡이라고 욕하거나 돌아서기도 한다. 물론 아베 신조 같이 기회주의적으로 한국 독립운동은 전혀 인정안하면서 일제시대 대만 독립운동 유적에 참배하는 등 대만 독립운동만 좋게 보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과거 대만의 항일-독립운동의 유산이 오히려 1945년 이후엔 항중-독립운동으로 이어져 현재는 반일보다 반중 정치와 더 관련있기 때문이다.

5.5. 타이완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친중파

역시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허나 중화인민공화국 위주의 통일 지지자들도 있지만[49] 범람연맹이 연대감을 갖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며 타이완 독립운동자들과는 달리 중국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중화민국의 현상유지를 하자는 것이 원칙이다. 화독 친중화민국 참고.[50] 따라서 타이완 독립운동을 반대할 경우 '친중'은 맞으나 그것이 '친중공(pro-Beijing)'은 아닐 수 있다.

5.6. 대만은 소수의 중국계가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대표적 오해. 98%의 중국계(정확히는 한족)가 2%의 원주민을 지배중이다. 현 대만의 주류 민족인 본성인들도 중국 본토(정확하게는 푸젠성 일대)에서 유래한 한족이고, 대만 원주민들은 따로 있다. 대만 원주민은 대만 국민들 중에서도 극히 소수에 불과한데, 이미 불법이주[51]가 판쳐서 대만섬에 한족이 원주민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5.7. 대만 원주민은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

바로 위의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함께 착각하는 내용이다. 양안 통일과 대만 독립론 사이에 갈등을 빚는 주도 민족은 둘 다 한족이다. 대만 독립론자 대다수는 한족의 일파인 본성인인데 이들은 수백 년에 걸쳐 대만으로 이주하면서 원주민들과 갈등을 빚어 왔다. 그래서 대만 원주민들 상당수는 본성인들이 자신들이 대만의 주인인 양 행세를 하며 주장하는 대만 독립론을 매우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들이 본성인들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을 불쾌해하는 심리는 있을 수 있어도 사실 한족 위주인 중국과의 양안통일을 지지할만한 이유는 별로 없기 때문에 양안통일 지지파라고 보기도 어렵다. 차이잉원 정부 이후로는 범록연맹 지지율도 높아지고 있다.

5.8. 대만 독립주의자들은 중화민국의 잔재를 청산하기를 원한다

중화민국의 잔재를 청산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독립주의자들도 있지만 대만 본토화 운동(台灣本土化運動)이라고 한족 문화를 대만 문화의 일부로 유지하자는 온건 독립 세력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따지면 대만을 지배했었고 지금도 잘만 유지하고 있는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의 잔재도 청산해야하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고[52] 그 전에 동녕 왕국에서 보듯 과거 중국 정권인 명나라와 청나라의 영향도 크게 받아 대만 문화의 일부로 정착한지가 수세기가 넘었는데 이제와서 중국의 잔재를 없앤다는게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애초에 대만 주민의 절대 다수가 한족이다.

5.9. 대만은 장제스가 중국으로부터 건너가서 '새로 세운 나라'이다

장제스는 새로운 나라를 세운 적이 없다. 대만은 일본 식민지였다가 1945년에 중화민국에 반환되었고, 2.28 사건 역시 중화민국 중앙정부가 타이베이가 아닌 난징에 있었을 때 벌어진 일이다. 대만은 국민당이 제2차 국공내전 패전으로 인해 국부천대를 하면서 중화민국의 실질적인 영토가 매우 축소된 것일 뿐이다.

5.10. 대만인 다수는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

외국인들의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이다.

대만인들 대다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본인들을 동급으로 보는 것은 매우 싫어하나, 그것이 곧 대다수가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양안 통일 또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 중 그 어느 하나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세력은 없다. 대만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순간 중국의 무력 침공은 기정 사실이라 중국과의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당 내에서도 친중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중성향이 강해진 국민당이 현재도 대만의 양대 정당으로 있다는 것만 봐도 대만 독립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세력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직선제로 전환된 1996년 총통 선거 이래로 통일 지향의 국민당과 독립 지향의 민진당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고 있으며, 입법원(국회)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도 어느 한 쪽이 독식하는 형태가 아니다.

대만대, 동오대, 중앙연구원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는 양안간의 긴장상태에 따라 대만독립, 현상유지, 양안통일 이 3가지 안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출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2006년 이래로 대만독립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긴 한데, 친중성향의 마잉주 정권의 삽질로 퇴임 직전인 2016년에는 51.2%까지 치솟았던 독립 지지 여론이 2018년에는 35.1%까지 줄었다가 세계적으로 반중정서가 심해진 2020년에는 다시 54.0%까지 솟았다. 중국과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심지어 양안통일이 현상유지보다 높게 나오는 때도 있을 정도로 그 때 그 때 이슈에 따라 여론이 크게 변하는 편이다.

또한 여기서 눈 여겨 봐야할 것은 양안관계가 최악 수준으로 악화된 2020년대 초반에도 대만 독립에 대한 여론 지지가 아무리 높아야 54%라는 것이고 양안 통일에 대한 지지 또한 아무리 못해도 10% 이상은 꾸준히 나온다는 점이다. 현상유지 여론도 20% 내외를 왔다 갔다 한다. 즉, '매국노가 아닌 이상 모두가 대만 독립을 지지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대만인과 대화를 시도했다가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 다수는 대만 독립의 개념부터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만 독립론은 현재 대만의 국체인 중화민국을 무너뜨리고(또는 중화민국을 푸젠성 소속인 진먼과 마쭈로 축소시키고) 대만공화국(또는 대만국)이라는 이름의 새 나라를 세우자는 급진적인 주장임을 명심하자.

민주진보당과 극렬한 민진당 지지자들이 대만인들에게 중국과 완전 별개로 독립된 대만이라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려고 대만어(민남어) 구사로 사상 검증을 시도하는 경우가 늘어 대만인들이 국민당만큼이나 민진당에 대해서 학을 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결국 국민당만큼이나 민진당도 꼴보기 싫다고 친중도 혐중도 아닌 3의 선택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3당인 대만민중당 커원저 후보의 지지율이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와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의 지지율을 넘는 일이 잠시 일어나기도 했다. # 물론 대선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커 후보가 다시 3위로 내려갔지만.

5.11. 대만인 다수는 중화민국에 의한 중국 통일을 지지한다

이것도 많은 외국인들이 오해하는 대목이다. 바로 앞의 대만인 다수가 대만 독립을 지지한다는 오해와 정확히 180도 모순되는 착각인데, 대만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사람들은 막연하게 이 두 가지 착각을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대만인들이 중화민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생각하더라도 자국이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많이 줄어 들었다. 그래서 중화민국에 의한 통일이든,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한 통일이든(물론 후자를 전자보다 훨씬 더 싫어한다), 통일 자체를 원치 않고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젊을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더 나아가 아예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통일론에 매우 적대적이다.

5.12. 국민당 등 친중 세력은 중공에 대만을 팔아먹으려는 매국노 집단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오해가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국민당 등 범람 연맹은 자기 나라가 중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중이라고 표현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크다. 국민당의 풀네임 부터가 '중국' 국민당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국 공산당 정권에 경제 등에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지언정 자신들의 조국이 중화민국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 대만에서는 자국이 중화민국이지만 그 실체는 대만이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일 뿐이지 대만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당 등 범람 연맹의 노선이 외면 받고 중공 스파이라고 공격 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는 있다. 민주진보당 등 범록 연맹에서 의도적으로 국민당을 상대로 색깔론을 펴는 것이다. 사실 색깔론은 국민당 독재 시기에 현재의 범록 연맹 인사들에게 뒤집어 씌우던 건데(실제 이 시기에는 중공이 오히려 대만의 국민당 반대 세력에 우호적이기도 했고), 시대가 바뀌면서 거꾸로 범람 연맹이 그런 공격을 당하면서 색깔론을 펴지 말라고 항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당 등 극우에 가까운 친중파 정당들이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202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밝혀지고 있고, 2021년에는 중국국민당 고위관계자들이 행정원 대륙위원회[53]의 허가나 위원회와 상의 없이 중국 공산당 고위 관료들과 만나고 와서 한바탕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또, 중국공산당은 지속적으로 한궈위 등 국민당의 강경파 세력을 지원하고 우마오당 세력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하는 등의 추태를 보여, 이런 오해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면이 있다.

5.13. 대만은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오해와 달리 '대만'은 하나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거기다 대륙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과 대만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중화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92공식에 의거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중화민국 정부나 범람 연맹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을 의미한다. 범람 정당인 국민당 출신 총통이었던 마잉주도 수 차례 하나의 중국은 중화민국이라는 발언을 했다.

다만 이 입장은 대만이 중국이 아니라는 관점을 가진 범록 연맹은 동의하지 않으며 범록 정당인 민진당 집권기에는 총통 등 정부 관계자들이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민진당 정권이 중화민국 정부로 하여금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은 채[54] 어정쩡하게 무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55]

6. 대만 독립 시 국기 도안

알다시피 대만의 정식명칭인 중화민국의 국기는 대륙 시기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청천백일만지홍기다. 즉 현 대만의 국기도 중국(중화민국)을 상징하는 깃발이기 때문에 독립주의자들은 새로운 국기들을 고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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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공화국 임시 정부의 깃발. 명칭은 일월기(日月旗)로 1956년에 가장 먼저 도안된 깃발이다.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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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제안된 대만 공화국의 국기. 명칭은 대만동심기(台灣同心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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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깃발에서 대만 섬으로 바꿔 넣은걸로 현재 세계 각지의 대만인들을 위한 협회인 세계 대만인 대회의 깃발로 사용 중이다. 현재 대만 독립론자들이 거의 이 깃발을 '대만 국기'로 사용한다.

파일:320px-Proposed_flag_of_Taiwan_the_Formosa.png
대자취청기(台字翠青旗). 그러나 대만일치시기의 台[56] 자의 형태를 바탕으로 만든 문장이 그려져 있어 약간의 논란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일제강점기 휘장을 바탕으로 만든 깃발을 대한민국 국기 도안이랍시고 내놓은 수준이다. 위에서 설명한 여권 스티커 운동을 벌였던 천즈하오(陳致豪)가 고안했다.

이것들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제안들이 있다.

7. 대내외 반응

7.1.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대만)

7.1.1. 정치권

민주진보당 대만단결연맹 범록연맹에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한때 민진당은 국기, 국가(國歌), 국호, 헌법까지 전부 바꾸자는 '대만독립강령'을 제창한 바 있으나 범람연맹 등 보수파의 반발로 일단은 유보한 상태이다. 강경 독립파가 아닌 이상 범록연맹이라 하더라도 중화민국의 현행 정치체제 자체는 존중하는 편이다. 민진당 출신 전 총통 차이잉원도 "대만은 이미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의 독립국"이라고 발언하는 등 다소 온건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중.
파일:zhonghuaminguohetaiwan.png
대만은 중화민국이 아니다 ( 범록연맹의 주장)
왜냐하면 사실은...대만은 중화민국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범람연맹의 주장)[57]

한편 중국 통일과 대만 독립 진영 간 논쟁을 "통독논쟁(統獨論爭)"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건 양안관계, 하나의 중국 항목을 참조할 것.

7.1.2. 대만 원주민

16~17세기에 대륙에서 본성인들이 이주해오기 이전부터 대만 섬에 거주하고 있었던 대만 원주민들은 오히려 중국국민당 범람연맹 소속 정당들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한족계 본성인들과 오랜 세월에 걸쳐 갈등을 겪었던 데다가 본성인들이 대만의 주인 행세를 하며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을 영 좋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 상세한 내용은 '대만 원주민' 항목의 '정치 성향' 단락을 참고할 것. 다만 본성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범람연맹을 지지할 뿐 양안통일 자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볼 슈는 없다. 차이잉원 정부 이후로는 범록연맹 지지율도 높아지고 있다.

7.2.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7.2.1. 파일:중국 국기.svg 본토

중국공산당 이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1949년 양안분단 이래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수복하지 못한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만에 피난한 중화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국가나 정치체제와의 수교를 철저히 거부한다. 또한 '대만의 독립' 그 자체를 국가분열행위로 간주하며, 대만이 독립 시도를 보일 경우 전쟁도 일으킬 수 있도록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해두었으며, 2008년에 중화민국의 국가체제를 대만으로 전환하는 헌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베이징 올림픽을 포기할지언정 타이완 독립을 묵과하지는 않는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보내 국민투표에서 백지화(2008년 대만 총통 선거 전날 국민투표가 시행됐는데, 투표율이 50%에 미달해서 무산됐다.[58])시킨 적도 있다. 그나마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일단 '중국'의 일부라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고 92공식으로 서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기로 합의했으므로 무력행위를 쓰지 않고 대만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로 놔두는 것이다.

2016년 대만 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이 정권을 잡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우리의 대만정책은 명확하고 일관적이다. 대만 정국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형태의 이른바 대만독립 분열 행동도 결단코 굴복시키겠다"라고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기사

뿐만 아니라 대놓고 오성홍기를 앞세운 본토인들이 대만에 들어가 독립 시위대 앞에서 맞불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대만 경찰은 그저 양측이 진짜로 충돌하지 않도록 막을 뿐이다. 그리고 그만큼 중화민국이 민주화되었다는 것도 의미한다.

대만 침공시 전범으로 처리하겠다는 발언까지 할 정도이다. #

2020년 5월 29일 리잔수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 국회의장)은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의 의미를 설명하는 인터뷰에서, 반분열국가법과 홍콩 국가보안법 등의 영향으로 타이완 독립운동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등의 반분열국가법 위반 행위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리잔수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차이잉원 중화민국 총통에 대해 "대만 독립을 주장하며, 정세를 오판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발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사 2021년. 중국 공산당이 대만 독립운동 세력의 진압을 위해 해외 동포의 역량을 결집해야한다는 지침을 새로 마련했다. #
7.2.1.1. 중국 민주화 세력
같은 민주 세력이라 당연히 지지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이들 역시 타이완 독립에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중국 공산당 1당 체제를 완화, 해소, 혹은 타도하고 '민주화를 통한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위해 노력하는 쪽'이지, 대만의 독립에 긍정적인 입장은 절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나 민주화 세력이나 대만독립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이므로 만일 이들이 집권한 상태에서 대만이 독립을 강행한다면 중국 전체 국민투표를 거쳐 대만 병합을 결정한 뒤 이를 기반으로 군사력을 동원해 독립을 저지하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대만에 민주적 절차를 통한 통일을 제안할 수도 있다.

사실 반공/반체제 인사들 중, 민족주의에서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워낙 많다. 이에 따라 대만에 홍콩, 마카오와 같은 특별행정구 지위를 부여하는 일국양제 정책에는 현 중국공산당과 동일하게 긍정적이다.

범람연맹 입장에서는 중공의 1당독재체제가 사라지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될 경우, 통일을 거부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사라진 셈으로(중국 대륙의 민주화) 점진적으로 대륙과의 통일을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범록연맹 측에서는 독재정권이 사라진 이상 우리는 이제 남남이라는 식으로 분리독립을 고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자유중국대륙-자유대만으로 체제만 바뀐 채 양안관계가 이어지는 셈이이다.

7.2.2.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홍콩

7.2.2.1. 홍콩 독립운동
최근들어 홍콩과 대만 양 측의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 동포로서 중국공산당의 압제에 같이 맞서는 게 아니라, '이웃나라'를 도와 공동의 적에 맞서는 것이다. 대만 독립운동 지지자들에겐 홍콩인 역시 중국본토인과 똑같이 외국인이다. 다만 본토인보다 홍콩인에 좀 더 호의적인 것 뿐이다.

7.3. 제3국

7.3.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과 실질협력 지속 증진"

북한과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양안관계의 악화로 동북아 정세가 긴장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지만 대만과도 사실상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식으로 사실상 현상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양안 문제에 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기에 대만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도 미미한 편이다.

사실 굳이 대만 독립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중국과 대만을 다른 나라로 분리해서 보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사실 실질적인 현 상황과는 거리가 있지만 대만 독립주의에 입각해 현 중국국민당을 외세라고 볼 경우) 외세의 지배에 대한 반감도 있고, 이후 점차 높아지는 추세에 있는 반중 감정이나 쯔위 사건 등이 겹치면서 타이완 독립에 대해 동정적인 반응을 표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특이한 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반중 성향이면서도 대만독립을 지지하기보다는 중화민국 주도의 양안통일을 지지하는 중화민국빠, 친중화민국 성향인 경우도 많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들에서 한국 관련 내용을 참조.

7.3.2.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미국은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대만과의 경제, 문화교류 등의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는 건 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미국은 믿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대만 관련 문서 #
본 문건에서 “국가” 또는 “국가들”에 대한 모든 언급과 관련하여 1979년판 타이완 관계법, Pub. L. No. 96-8, 4(b)(1) 조항에서 “미국법이 외국의 국가, 나라, 주, 정부 또는 그와 유사한 단체를 언급하거나 이와 관련되어 있을 때는 항상 이러한 용어가 대만을 포함하고 대만과 관련하여 적용한다”고 적시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22 U.S.C. § 3303(b)(1) 조항. 따라서 이민-국적법 217조, 8 U.S.C. 1187의 법률 조항에 근거한 Visa Waiver Program에서 “국가” 또는 “국가들”에 대한 모든 언급은 대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는 1979년 이래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왔던 미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일치합니다.
미국 국무부 국토안보부 사증 면제 프로그램 및 ESTA 발급 관련 설명

미국 미중관계에 있어 중화인민공화국을 합법정부로 승인하고 있다. CIA 팩트북의 세계 국가정보를 보면 대만은 국가도 속령도 아닌 Others에 속해 있다. 그러나 대만관계법을 통해 중화민국 정부와 비공식적인 관계는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방어용 한정이지만 무기도 판매한다.

미국 입장에서 대만은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 대륙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여 중국과 정면충돌하는 것도 되도록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현상유지'를 우선시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대륙과는 분리된 중화민국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주는 경향을 보인다. 2015년 미국 전승절 기념 행사에서 타이완 대표를 '중화민국'으로 호칭하여 주미 중국 대사가 항의의 뜻으로 퇴장했는데, 이때도 '중화민국'이라고 언급했지 '대만'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대만을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 적용 대상국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중국 대륙 주민은 물론 홍콩 주민들도 미국에 갈 때 비자가 필요한 것을 보면 미국 정부가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간주한다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민주진보당의 인사가 방미할 때보다 중국국민당의 인사가 방미할 때 더 환대를 받는 걸 보면 미국의 입장을 대충 실감할 수 있다. 다만 민주진보당의 차이잉원이 총통에 당선된 직후 국무부가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59]

부시 행정부 시절 공화당에서 대만과 재수교 떡밥을 던진 바 있으나 외교에 무지하다는 욕만 먹고 닥버로우했다. 최근 민진당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미국 국방부는 다시 대만 독립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입장은 그렇다 치고 민간에서는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단체가 몇 있다. 대만공화국의 건국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주도로, 미국에 체재하는 소수의 대만 본성인들과 소수의 일본인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60]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는 중국의 견제를 위해 대만을 유엔에 재가입(reintroduce)시키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라는 연구결과를 내기도 했다. 재가입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봐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지는 불분명하다. 미국에는 중화민국 국적자가 두 부류로 나뉘는데 1945년 이전에 본토에서 건너간 중국(본토)인 + 1949년 이후 건너간 외성인 출신 대만인이 한 부류고, 또 다른 부류는 대만 본성인이다. 전자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며 대만독립에는 원론적으로 반대하고, 후자는 독립국가로서의 대만의 주권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대중 강경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 하나의 중국 존중 정책을 폐기할 수 있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향후 일들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미국 대사관 역할하고 있는 미국 재대만협회(AIT)가 대만독립 국민투표 실시 방안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7.3.3.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1972년 중일공동성명 이래로 일본 정부는 대만과의 비정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 #

일본 역시 공식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하나의 중국의 주체로서 존중하고 있어 중국과 수교하고 있고, 중화민국과는 비공식적 교류 관계만 있을 뿐 중화민국을 국가로서 승인하지는 않는다. 대만 독립 운동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지지하지 않고 있으나 일본 여론상 호의가 높기는 하다. 일본 정계에서는 대체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진보당의 집권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국력 및 중국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는 않는다.

민간 일본인의 경우 같은 섬나라로서, 혹은 예전 일본 제국시절 첫 식민지였던 점으로 인해, 대만 독립운동 지지유무에 상관없이 경제문화적인 이유로 대만에 친근감을 느끼며, 일본인 특유의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중국문화 체험을 위해 대륙 대신 대만을 찾는 일본인들도 많다. 대만의 외국계 문화에서 한류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일본 문화( 전직 총통 일본인 코스프레를 하는 수준이니). 정치적 의견과 별개로 "중국이 대만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만의 국제사회 참여 문제에 어느정도 공감하며 필요하다면 유엔에도 (재)가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한국을 싫어한다, 혹은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대만을 싫어한다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사실 둘 다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둘 다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일본인의 경우, 좌익 일본인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제국주의국가, 중화민국을 구 독재세력의 잔재로 바라보며 반제전선으로서의 대만독립을 지지하기도 한다. 우익 일본인의 경우 그 이유가 상당히 골때리는 편인데, 아래 문단에 후술한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 대만=중화민국 이렇게 두개의 중국론으로 양안관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도 있다.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郎)의 두개의 중국론에 대한 논평(일본어).
7.3.3.1. 일본의 우익 세력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나 우익 민간 인사들 몇몇은 대만 독립진영의 정치인과 개인 자격으로서 교류하고 있으며, 일본 정치인들은 대놓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거나 지원하지는 않지만 민간 우익 인사들 중에서는 중국 견제에 대한 일환으로 대만 독립을 주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있다.

대만에서도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 세력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대만을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옹호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강대국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61] 일본 우익진영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 독립진영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리덩후이 친일적인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으며, 일부 대만 독립진영의 인사가 일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거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여 논란을 빚기도 한다. 일단 그들의 명목은 대개 '전쟁에서 희생된 대만 사람들에 대한 추도'이며, 대표적으로 쑤진창(蘇進强) 전 대만단결연맹 주석이 있다. 리덩후이는 자기 형이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 리덩후이가 야스쿠니를 가는 표면상 목적이 "내 형이 합사되어있는 사당에 참배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 물론 이 신사에 합사된 대만인 전몰자들을 빼달라는 대만인들의 항의에 대해서는 이들도 침묵으로 일관한다.[62]

7.4. 해외 화교

해외의 화교들 중 외성인 중화민국 정통론자들이나 파룬궁 신도 등은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보기 때문에 대만 독립에 반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너질 시 중화민국이 본토를 차지하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조하는 중화권 해외 언론으로 보쉰이나 대기원시보 등이 있다. 오 사다하루의 경우 아버지가 저장성 출신으로 본인은 중화민국 국적이지만 자신을 대만인이 아니라 중국인으로 여긴다. 그는 기자들이 자신을 대만인이라고 지칭할 때마다 정색을 하고 강력히 부정하며 본인은 중국인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본성인 출신 화교들은 독자적인 대만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만 독립에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미국 등에서 대만의 UN 가입 시위를 벌이는 쪽은 대부분 이 사람들이다. 특히 대만계 미국인이나 일본인의 경우, 대륙 출신 구 화교나 중국 본토인, 홍콩/마카오 출신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구별하는 경향이 강하다.

8. 만약 대만이 새로 건국될 경우

현실적으론 반분열국가법을 내세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것이므로, 대만과 중국과의 전면전쟁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남중국해 동중국해 분쟁 등으로 인해 미국, 일본 등과의 군사적 충돌이 끝내 이루어지고, 제3차 세계 대전의 위험이 폭발할 수 있다. 중국이 그 충돌에서 밀릴 경우, 아편 전쟁이나 시모노세키 조약 때 처럼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대만을 강력히 엄호하는 미국, 일본의 주도로 하나의 중국 정책 포기 및 대만의 독립국 지위 보장을 압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잠재적인 적성국가와의 정면 충돌을 의도적으로 피해왔고, 일본 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되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쪽을 선호하며 또 일반 일본인들도 전쟁에 대해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타이완의 독립 보장이 성공할 가능성 또한 거의 없다는 예측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상술했듯이 도널드 트럼프 정권 하에서 미국 대만을 승인했으므로[63], 더 이상 중국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게 되고 있다.'

이 문단에서는, 중화민국 정부가, 혹은 분리주의 세력의 혁명, 쿠데타 등으로 중화민국 정부가 전복된 뒤, 대만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할 경우를 가정한다. 타이완 섬 펑후 제도가 독립국이 된다고 가정할 때, 가장 유력한 국명은 타이완 공화국(台灣共和國, Republic of Taiwan)이므로, 본 항목에서는 독립국 국명을 타이완 공화국(혹은 대만 공화국)으로 설정하고 서술한다.

8.1. 국가 상징물

  • 대만섬에서는 새로운 국기를 제정하거나, 혹은 이라크[64]나 이집트, 스페인[65], 에티오피아[66], 냉전시대 때 공산주의 국가들[67]과 같이 종래의 국기를 수정하여 채택할 수 있다.
  • 국가(國歌)의 경우 유력한 국가 후보가 대만취청이 될 가능성이 높다.

8.2. 외교

  • 전세계에서 대만을 의미할 때 중화민국(中華民國)나 Republic of China에서 대만(台灣) 또는 Republic of Taiwan으로 교체될 것이다.
  • 일부 국가가 대만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그대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대륙)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승인국 취급할 수도 있다.
  • 대한민국의 경우 수교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에 대한 불승인을 요구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과의 외교적 공조의 결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해체와 같은 중대사항이 발생한 경우라면, 대만과의 수교가 재개될 수도 있다.
  • 당연하게도 중화인민공화국에 수교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68] 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 중국과의 외교를 대륙위원회가 아닌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외교부에서 담당하게 된다. 다만 대만과 가장 가까운데다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강대국이기까지한만큼, 좋든 싫든 계속해서 대만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 인식될 것이다.
  • 유엔에 '대만'(Republic of Taiwan)으로 가입을 시도할 것이다.[69][70]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이 아닌 신규 가입국 대만 공화국으로 불리울 것이다. 다만 중국이 상임이사국으로써 전국력을 총동원해서 막을 가능성이 크고, 홍콩과 관련하여 중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영국[71]과 미국등 서방권은 물론이고 같은 반서방 진영 국가인 중국과도 영 좋지 못한 관계에 놓여있는 러시아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입장 표명을 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독일, 세르비아[72], 불가리아[73] 같은 다른 서방.유럽권 나라들 역시 중국과 대만의 대립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19세기 말 처럼 중국이 아예 힘을 잃어 다른 나라에 휘둘리는 상황이 아닌 이상 대만 혼자서 지지를 얻기는 무리일 것이 있다.
  •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조어도), 대만명 댜오위타이(조어대))의 영유권 분쟁이 치열해지게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댜오위타이는 독립국가 대만의 부속도서이므로 대만과 관계가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대만 정부의 영유권 주장이 약화될 수 있다. 이 경우 무주지라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도 대만이 아니라 푸젠성 부속도서라고 주장하면 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없음" 논리가 무너지게 된다. 1860년대에 대만은 푸젠성의 일부였으므로 어느 정도 근거는 있다. 1885년에 타이완 성이 독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입장에서 영유권 주장을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만 국내에서도 "댜오위타이는 대만 영토"라는 인식이 강하며 일본에 더 호의적인 범록연맹일지라도 주권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
  • 중국측이 남중국해에 설정해놓은 이른바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은 사실 중화민국 정부가 설정한 11단선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재 남중국해 분쟁 판결에 양안이 모두 비판성명을 내놓는 등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하여 양안은 연대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대만정부 또한 명목상으로는 이를 이어받을 것이지만, 신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현 실효지배지역을 제외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대신 필리핀이나 베트남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갈수 있다.

8.3. 정치

  • 헌법이 새로 제정되거나 개정된다. 정부기관이나 정책, 제도 등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의 모든 것을 해소하고 새로운 제도,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고 정부기관도 해체 후 재설립 수순을 밟을 수 있다.
    • 혹은 중화민국이 사용하던 예전의 제도들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도 있다. 다만 중화민국, 중국, 중화 등의 명칭은 바뀔 것이다. 중화민국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은 대만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aiwan)으로 바뀐다던지. 조직이 대체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행정원 대륙위원회, 몽장위원회 등은 사라지고, 대 중국 관련 업무는 외교부로 이관된다. 그리고 타이완 고등법원은 타이베이 고등법원으로 바뀌고 그 분원도 독립할 것이다.[74]
  •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중국국민당은 대만공화국에서 당명에서 '중국'이라는 명칭을 삭제하고 국민당 또는 대만국민당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해체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또한 중국과의 통일을 추구하는 범람연맹은 수년간 지지율을 올리기 힘들겠지만, 대만 본연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경제, 사회 등에서 우파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보수정당 연맹으로 전환할 경우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8.4. 역사

  • 독립 이전 중화민국 지배 하의 대만"대만중치시기" 또는 "중국령 대만"이라고 표기 될 것이다.[75] 통치기관은 "중화민국 천대정부" 또는 "중화민국 대만정부"라고 표기 될 것이다. 대만은 중국(중화민국)의 통치를 받은 것이지 "국가"가 된 것은 아님으로 이 시기를 국가로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화독적 관점으로 국부천대 이후의 대만을 "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립국"이라고 평가한다면 "R.O.C. 대만" 또는 " 화독대만"이라고 쓰여질 것이다.
  • 이전까지는 동녕국은 중국인들이 대만을 개척했고, 대만이 오래전부터 중국의 일부임을 방증한다는 역사적 증거로서 이용되었지만, 만약 독립을 하게 된다면 동녕국은 "대만에서 세워진 최초의 대만국"이라고 정의되고, '대만으로 온 이민자들이 세운 이민자들의 나라'라고 정의되어 독립국으로서의 대만의 정체성은 오래되었음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정성공은 대만판 콜럼버스가 될 것이다.
  • 대만 민주국은 중국인들의 항일투쟁이 아닌 대만인들의 독립투쟁으로 평가 될 것이다.
  • 대만을 지배한 청나라 중화민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방증하는 역사적 사료가 아닌 외세 침략자로서 평가될 것이고, 특히 장제스 중국국민당 2.28사건 대만 계엄령 등 대만을 침략하고, 수많은 대만인들을 죽이고, 대만의 독립을 탄압한 무자비한 침략자이자 독재자로 평가될 것이다.
  • 범록연맹 민주진보당은 대만독립의 상징이 될 것이다.
  • 나폴레옹의 포르투갈 침공 이후 포르투갈 왕실 전체가 브라질로 망명오고 몇 십년 후 브라질이 독립한 것과 같이 국부천대라는 사건은 그저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이라는 외지로 망명을 와 지배한 것으로 평가 될 것이다.
  • 대만의 민주화 운동은 독립투쟁으로 평가 될 것이다. 2.28 사건은 대만독립의 시발점으로 평가되어 중요히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 대만이 독립한다면 분명히 전쟁이 있을 것이다. 양안전쟁 대독전쟁(대만독립전쟁)이라고 불려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지 워싱턴 처럼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시 그 시점의 총통이 대만의 국부로 추앙 받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에는 친영파가 많았다는 것도 매우 유사한데, 범람연맹 중국국민당 지지자들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의 친영파 처럼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8.5. 행정구역

  • 현재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하는 성(省) 행정단위 자체는 완전히 폐지될 것이다. 즉, 타이완 성과 푸젠 성은 폐지된다.
    •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의 대륙부 미수복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을것이다.
  • 직할시와 현(縣)이 최상위 행정구역 역할을 할 것이다. 성할시는 직할시로 승격되거나 인근 현에 통합될 수 있다. 현재 성할시인 지룽, 신주, 자의 모두 인구 50만명이 채 되지 않고 면적도 작다. 기존 직할시와 같은 위상으로 취급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기에 인근 현에 통합될 수도 있다.
  • 반대로 일부 직할시가 폐지 또는 해체되고 직할시와 성할시를 하나의 행정단위로 일원화한 뒤 현과 함께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현재 대만의 직할시들은 타이완 성을 완전히 폐지할 수 없어서 기존의 현을 승격시킨 일종의 임시조치에 가깝다. 특히 하나의 도시라고 보기 어려운 신베이나 타오위안같은 직할시들은 폐지되고 다시 현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 타이난같은 중심도시가 있는 직할시조차도 성할시였던 시역의 인구가 80만명이 채 되지 않고 면적이 지나치게 과대하기 때문에, 현으로 격하되거나 원래 성할시였던 시역과 그에 연담된 지역만 따로 직할시로 남기고, 남은 지역은 다시 현으로 변경할 가능성도 있다.
  • 푸젠 성의 도서부, 즉 진먼과 마쭈는 계속 대만 공화국에 남아있겠지만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대만과 상관없는 중국 땅이었는데 중국에 돌려주자!"라는 주장과 "대만의 국가안보를 위해 계속 대만이 영유하고 있는 것이 옳다"라는 주장이 대립할 수 있다. 하지만 멀쩡히 실효지배중인 땅을 중국에 넘겨버리면 해당 지역 거주민의 인권도 문제이고 진먼, 마쭈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이므로 자발적으로 이를 버릴 가능성은 낮다. 다만 중국이 해당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매우 강력하게 제기할 것이다. 즉, 새로운 영토 분쟁 지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8.6. 사회

  • 대만어가 국어, 공용어로 지정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법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945년 중화민국의 대만 수복 이래 70년 이상 쓰인 언어인 만큼 표준 중국어 객가어의 지위도 역시 공용어로 지정될 것이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그냥 표준중국어를 계속 국어로 사용할 수도 있다. 원주민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계속되거나, 중화민국(진먼과 마쭈만 남은 상태) 정부의 정책보다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다. 한족계 대만 본성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한답시고 원주민어가 더 무시당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이 경우 원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 외성인들은 대만 공화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주하게 되고 중립파들은 대만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미 반백년이 넘게 외성인들이 거주하여 동화랑 혼혈이 진행된 상황에서 외성인 강제 이주는 엄청난 대혼란과 중국의 개입을 낳기만 할뿐 불가능하다. 외성인의 경우 이미 국부천대 이래 반세기 동안 대만인으로 살아온만큼 극렬 중화주의자 이외에는 계속 대만인으로 살게될 것이다. 다만 대만 공화국 국적으로 남을 것인지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것인지 선택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완전한 대만 공화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만일 중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76] 화교처럼 대만공화국의 영주권자로서 영주할 권리를 부여할 수도 있다. 구 중화민국과 대만공화국 내의 외성인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이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법적으로 외성인에 대한 차별은 엄격히 금지할 수 있다. 다만 외성인의 인구가 대만 인구 전체의 1/10에 불과한 만큼 예전 만큼의 기득권을 누리기에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 장제스의 묘를 중국으로 이장하라는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이장 요청을 중국 국민당이 받아들일 경우 중국으로 이장될 가능성이 높다. 장제스는 자신의 유해를 타이완에 묻지말고 중화민국이 본토를 되찾는 때 자신의 고향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이후 천수이볜 집권 당시 장제스의 묘를 고향인 저장성 닝보로 이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때 현지 관료들도 내심 바라는 분위기였으나 마잉주 집권 이후 무산되었다. 하지만 한때 폴란드에 속해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로 넘어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묘가 있는 폴란드의 국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사례로 볼때 대만 땅에 그대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대만을 장기간 철권독재로 통치한 만큼 장제스의 기념물들은 대부분 철거, 중국으로 이전 될 가능성이 높지만, 쑨원까지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대만 민족이 중국과의 연결성을 완전히 부정할지, 아니면 연결되었다가 나중에 분리되어 지금 독립을 추진하기로 한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싱가포르에서도 쑨원 기념관이 있는 걸 참고하면 된다.[77] 다만 쑨원에 대한 취급이 국부(國父)가 아닌 '중국( 중화권) 혹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지도자' 정도로 격하(?)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국'인이 '대만'공화국의 국부가 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 우창 봉기 신해혁명의 기념일이자 중화민국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이 건국기념일이 아닌 외국의 사건 기념일 정도로 격하될 것이다. 신해혁명은 더 이상 대만 공화국과 관계없는 중화민국과 현행 중국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인 사건이 될것이다. 당연히 평일이 된다. 대신 대만공화국의 건국기념일이 새로이 제정되어 정부에 의해 기념되어질 것이다.
  • 평화기념일(2.28)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것이며 현재 대만에서 민주열사로 추앙받는 사건 당시 관련자들은 오늘날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 역사 교육에서도 중국의 역사는 세계사의 일부로서는 몰라도 국사로서는 전혀 배우지 않고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청치시기의 경우도 잔존 다두 왕국의 역사 위주로 교육을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대만 원주민 역사의 경우 기록이 거의 남아있는게 없는데다가 대만청치시기의 역사도 엄연한 대만의 역사이므로 그대로 교육할 것이다.(한국에서 일제강점기를 치욕스럽게 여긴다 해도 한국의 역사로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78] 또한 중국사는 세계사 과목의 일부로서 완전히 외국의 역사로 교육하게 되며 비중도 줄어들 것이다.
  • 대만 지리 교과서에는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큰 섬이 하이난(海南)으로 서술될 것이다. 천수이볜 정권 시절에는 대만에서도 중국 지리 교과에 저렇게 기술했다. 마잉주 정권 시절에는 다시 대만이 가장 큰 섬으로 기술되었다가, 차이잉원 정권 출범 이후 천수이볜 정권기의 교육과정으로 복귀했다.
  • 중화인민공화국을 대놓고 '중국'이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지금도 대만 사람들 중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고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도 사석에서는 그렇게 하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해도 안 된다. 반드시 뒤에 '대륙'을 붙여야 한다.

8.7. 교통

  • 타이베이 시내의 수많은 길 이름이 바뀔 수 있는데 왜냐 하면 대만에는 중국대륙과 몽골 지명에서 따온 길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유명 지명이야 많이 알겠지만 중국 대륙 지리에 밝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곳도 많다. 편의를 감안해 랜드마크를 제외한 상당수는 남을 수도 있다.
  • 모든 현과 직할시에 있는 중산로(中山路), 중정로(中正路), 삼민주의에서 온 민주로(民族路), 민취안로(民權路) 민성로(民生路), 중화민국에서 온 중화로(中華路)까지 바뀔 가능성이 높다.
  • 열차 등급 중 하나인 쥐광하오(莒光號)의 이름이 바뀐다. 본토 수복의 의지를 담은 이름인데 자세한 설명은 타이완 철로관리국 문서 참고. 쯔창하오(自強號)라는 이름도 1970년부터 사용한 "莊敬自強 處變不驚(장경지강 처변불경)[79]"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

8.8. 국제정세

  • 동아시아의 서방 진영은 새로운 동맹국이 될 수 있는 국가가 생기므로,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견제하기가 더 용이해진다. 반면, 현재는 동쪽의 한국이나 남서쪽의 베트남 정도로만 신경쓰면 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들과 가깝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한가운데에 있는 지점에 잠재적인 위협이 하나 더 생기며, 특히 미국이 미군이라도 주둔시키는 경우에는 그 위협이 더 커진다.
  • 중국이 이에 대한 견제책으로 북한을 더욱 엄호할 수도 있다.
  • 명목상 '자국 영토'인 대만을 지키지 못한 중국공산당에 대한 인민의 지지율이 낮아질 수 있으며, 특히 "외세랑 분리주의에 굴복해 영토를 팔아먹은 집단"이라는 선전이라도 나올 수 있다.

8.9. 군사

  • 중화민국 국군에서 대만공화국 국군이나 기타 유사한 명칭으로 변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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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ㄊㄞˊㄨㄢㄓㄨㄥㄍㄨㄛˊ、ㄧˋㄅㄧㄢㄧˋㄍㄨㄛˊ(중화민국 국어)/ tâi-uân tiong-kok、tsi't-pinn tsi't-kok( 대만어) [2] 이 구호를 주제로 하는 동명의 노래도 있다. 제목은 대만중국 일변일국. [3] 반대로 중국과 대만을 별개로 생각한 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혼동하는 사람도 있다.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란 말을 들었을 때 대만이 아닌 중국 본토를 생각하는 것. 한국에서도 '민주'라는 단어에 낚여서 독일민주공화국 서독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꽤 됐다. 외국인이 남한과 북한을 헷갈리는 사례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민주라는 단어에 낚여서 헷갈리는 것은 아니지만. [4] 항목에서 언급되듯이 1995년 이후로 대만독립과 관련된 당의 노선에 변화를 주었다. [5] 말 그대로 장제스에 반대하는 세력 [6] 여기는 원래 대만이 아니므로 '대만은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으로도 중화민국의 일부일 뿐'임을 뒷받침해 준다. [7] 특히 타이완성 정부의 경우 국부천대 이후 사실상 타이완이 중화민국 그 자체가 되어버려 성 정부가 중앙정부와 2중 정부가 되어버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었지만, 중화민국 행정체계의 상징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성 정부를 폐지하지 않고 유지했다. 훗날 1994년 지방선거에서 타이완성 성장(省長)을 민선으로 선출하게 되면서 이 문제가 현실화됐는데, 총통과 타이완성장의 당적이 다르면 둘의 권위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민선 타이완성장은 초대 성장 쑹추위 한 사람으로 그치고 1998년부터는 성 정부를 명목상으로만 남기고 행정원(중앙정부) 산하로 이관시켰다. [8] 정확히 말하면 유엔에서 '중국(China)'을 대표하는 정부를 중화민국(ROC)에서 중화인민공화국(PRC)으로 변경한 것이다. [9] 요즘 시대에 '중국'이라고 하면 대부분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칭하니 오해의 여지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고, '중국(中國)'이 '국가'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라면 '중화(中華)'나 '화인(華人)'은 민족 정체성, 문화 쪽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므로 상대적으로 사용하는 데 부담이 덜하기도 하다. [10] 리덩후이 전 총통이 재임 당시 주장한 양국론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정작 리덩후이는 퇴임 이후 대독파로 갈아탔다. [11] 일본 정부에서 교부금을 지원받아서 재정을 운영했다는 이야기다. [12] 대만은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세워본 적이 거의 없고 계속해서 외래 세력의 통치를 받아 왔기 때문에 결국 같은 외래 세력인 일본의 통치에도 쉽게 적응했으므로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항이 덜하기도 했고, 대만은 일본이 얻은 첫 식민지(대만이 1895년, 관동주 남사할린이 1905년, 조선이 1910년, 남양 군도가 1921년)인 관계로 다른 유럽 열강에게 '우리 일본도 식민지 지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 케이스였기 때문에 식민지 치고는 상당히 대우를 잘 해줬다. 일본의 대만 통치는 가장 성공적인 제국주의 식민지배 중 하나로 평가된다. [13] 이 때문에 오늘날 대만 민족주의자들은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대만독립을 반대하며 독립 시도시 전쟁하겠다고 협박하는거 자체가 자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14] 사실 중화민국뿐만 아니라 영토를 탈환한 나라에서는 탈환한 지역 주민을 과거 점령국의 앞잡이로 모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6.25 전쟁 때 남북한도 그랬다. [15] 외성인도 600~700명 사망했다. [16] 관리, 교사 임용 할당을 국부천대 이전의 비율인 전 지역의 인구 비율에 따라 할당해놓았는데 1980년대 이전까지 국민당에게 타이완은 본토로 돌아가기 위한 전진기지에 불과했고 중국 전체를 영토로 인식했기 때문에 임시조치로 사용한 것이었겠지만 본성인에게는 또 하나의 차별대우라는 각인을 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기능했다. 이 탓에 1980년대 이전까지는 외성인, 본성인 갈등이 굉장히 심각했었다. 지금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과거에는 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외국 기독교 선교단체의 통계에 따르면 외성인은 85%, 본성인은 97%가 가장 친한 존재가 외, 본성인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17] Hsiao, Frank S. T.; Sullivan, Lawrence R. (1979).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the Status of Taiwan, 1928-1943". [18] 한국으로 치면 백기완 같은 포지션의 인물인 스밍(史明)도 일제시대부터 공산주의 독립운동을 지지했고 1949년까지 중국공산당원이였고 이후 대만으로 돌아와 장제스 독재에 맞서 지하에서 사회주의적 대만독립운동을 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당적은 없으나 천수이볜, 차이잉원 등 민주진보당을 지지하며 중국공산당의 (과거엔 대만독립을 지지했음에도 이제는 하나의 중국타령하며 국민당과 손잡고 대만독립을 반대하는) '배신'을 비난했다. 2019년 사망. [19] 오히려 정반대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 타이완섬의 점령에 성공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질 영토가 되었을 것이고,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더욱 확고히 가졌을 수도 있다. 설사 공산당이 과거에 대만의 독립을 주장했다 한들, 티베트를 쳤듯 대만에 안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이 시기 미국은 대만공화국 수립을 위한 프로젝트가 있었으므로 미국이 대만을 보호했을 가능성이 있다. [20]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건국된 것이 1912년인데,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이 일본에 할양된 것이 그보다 17년 앞선 1895년이다. [21] 친미주의자로 본토 수복을 포기하고 타이완의 방어를 견고히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모의 자체는 누명에 불과하였고, 2000년대에야 명예가 회복되었다. [22] 일부 대만 독립파들은 유엔의 중화민국의 축출 결정을 오히려 환영했다. 이것은 자신들의 '점령자'인 장제스 정권의 타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만 국내에서는 대놓고 환영했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갈 수 있으니 속으로만 환영했다. 어찌 보면 일제 때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이 2차 대전 때 일본의 패배를 바랐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23] 원래 중화우정에서 발행하는 우표에는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라고 찍혀 있었다. 대만우정이 되면서 臺灣 TAIWAN이라 바뀌게 되었다. 중화우정으로 되돌아가면서 中華民國郵票 REPUBLIC OF CHINA (TAIWAN)이 되었다. [24] 아예 중화민국이라는 국체를 대만공화국이나 대만국으로 바꾸려던 천수이볜과 달리 차이잉원은 중화민국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훨씬 '온건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5] 예: 중화민국 입법원 Legislative Yuan of the Republic of China → Legislative Yuan, Republic of China (Taiwan). [26] 여권 표지 이미지는 이 문서의 절충안 단락 참고. [27]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수정 표기. [28] 그런데 가게에서 이런 유형의 여권 커버를 발견한 한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제조연월일'에는 민국기년에 따라 '105년 모월 모일'이라고 찍혀 있다고 한다.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준'으로 2016년이 105번째 해라는 뜻이기 때문. 근데 이것을 제조한 측에서는 대만 독립을 전제로 한 물건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모순적이지만 이 연도로 기재했는데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민국기년은 이미 깊이 뿌리잡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공문서가 아니고서는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민국기년이 워낙 널리 쓰이고 있다. [29]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에서는 영국 여권에 씌울 수 있는 스코틀랜드 여권 커버가 생산·판매되고 있다(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Scottish passport cover 등으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다). 또 과거 홍콩에서도 1997년 중국 반환을 전후로 하여 여권에 비슷한 표시를 하는 캠페인이 벌어진 바 있었다. 참고 문서. [30] 다만 명나라 이전의 왕조가 현재 대만 영토 전역을 지배한 적이 없으므로 지리적으로는 당, 송, 명은 대만의 역사가 아닌게 맞긴 하다. [31] 온건파 [32] 강경파 [33] 다만 이렇게 보는 경우, 진먼, 마쭈 등 원래 전통적으로 '대만'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현재는 편의상(?) 대만으로 부르는 지역의 중화민국 영토가 꼬이게 된다. '진먼, 마쭈는 대만에 속한다.', '대만은 중국이 아닌 별개 국가다.' 우스꽝스럽지만 이 두 명제를 모두 참으로 받아들이면 '진먼과 마쭈는 대만이 중국에서 빼앗아 온 땅'이란 논리가 도출된다.(...) 그 논리대로라면 대만이 가해자고 중국이 피해자가 된다. 대만 독립의 관점에서 국립고궁박물원의 유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유물은 중국 것을 약탈해 온 것이 된다.(...) [34] 다만 이 경우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대륙 전체가 민주화 될 경우 이러한 용어는 사용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35] 다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얘기는 100% 옳지 않은 게 외성인에 의한 본성인 탄압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36] 물론 중화민국이 명목상 중국 대륙과 대만을 모두 지배하는 하나의 중국이자 정통 중국이라는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들도 중화민국이 독립국이라는 전제를 당연히 깔고는 있다. 하지만 중화권에서 '독립' 운운하는 건 기존에 하나의 중국으로 간주되던 지역에서 일부 영역을 떼어내어 여기에 독자적인 국체를 세우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미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측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이런 맥락 때문에 '중화민국 독립'이라는 용어는 '중국 대륙과 대만을 모두 지배하는 하나의 중국인 중화민국은 독립국'이라는 관점을 주장하는 표현이 아니라,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쓰는 대만 지역이 중국이라고 부르던 영역에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37] 화독이라는 용어는 군소정당인 자유독립당을 창당한 차이딩구이(蔡丁貴) 국립타이완대학 교수가 만들었다. 민진당 등 범록연맹 주류가 사실상 중화민국을 대만의 국호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자 이를 대독 대신 화독이라고 지칭한 것. 이에 반해 그가 창당한 자유독립당은 확실한 대독의 입장이다. [38]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하진 않아도 대만이 내부적으로 중화민국 국호를 사용하는 한 '하나의 중국'을 부정한 건 아닌 것으로 간주해 묵인한다.('중화민국'도 어쨌거나 '중국'이다.) 그러나 대만인들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독을 선언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39] 두 콩고를 구분할 때 수도 이름을 따서 콩고 공화국을 콩고-브라자빌(Congo-Brazzaville), 콩고민주공화국을 콩고-킨샤사(Congo-Kinshasa)라고 하기도 한다. [40] '中華(중화)'를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에 따라 적은 Chung¹-hua²를 우정식 병음 등에 보이는 관행적 표기(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보조 부호를 생략하고 개음(介音)으로 쓰인 u를 w로 고침)로 살짝 수정한 철자로, 중화우정 중화전신 등에서 영문 표기에 이미 사용하고 있다. 대만인들에게 기존에 익숙한 표기를 이용해 China를 삭제하되 중화민국의 영문 약호인 ROC를 유지하자는 아이디어라고 보면 된다. [41] 물론 왕딩위의 제안대로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또는 대만(Taiwan)의 대체 표기를 중화민국을 음역한 Chung Hwa Min Kuo로 고치려고 할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용인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중화민국을 가리키는 어떠한 표기도 수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42] 중국국민당이 주도한 주민 소환 투표가 가결돼 의원직 상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만기진 문서 참고. [43] 사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였기에 국민당 독재 시절 중공은 대만의 재야세력(후에 민진당의 뿌리가 되는)을 지지했다. 반국민당 세력을 지지하는 부분이 컸지만 대만일치시기부터 존재하던 대만공산당의 잔존 세력이 2.28운동에 적극 가담하였고, 대만의 토착 공산당 세력이 중국으로 넘어와 타이완 민주자치동맹으로 중공의 우당이 되었기에 한 때는 2.28을 중공이 기념하기도 했다. [44] 생전 민주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정난룽도 이러한 입장을 보였다. [45] 엄격하게 말하면 중화민국 외교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가입이 확실시 되자 총회 표결직전에 자진탈퇴를 선언했다. [46] '공식적으로는' 대만 자신도 아니다. '대만과 대륙 모두 중화민국의 일부'가 공식 입장이므로. [47] 여기서 더 나아가 청나라는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만주족의 민족국가였기 때문에 대만은 일본과 만주의 지배를 받았을 뿐 (한족)중국에 의해 지배받은적이 없기에 중국 영토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48] 가령 대독이나 화독을 떠나서 적지 않은 대만 민족주의자들은 조어도가 (중화민국이 아니더라도) 지리적 위치상 대만의 영토라고 생각한다. 이는 일본 우파 민족주의와 절대적으로 충돌하는 견해이다. 대만 민족주의자들이 친일 성향을 보이는건 어디까지나 일제 식민지 역사는 1945년에 끝났으나 현재 대만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는 세력은 '중국'(중공과 중화민국 모두 포함)이며, 따라서 그들 기준 새로운 대만에 대한 식민지배 세력인 중화제국주의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과 손잡은 것 뿐이다. 리덩후이 같은 초강경 친일은 대만 내에서도 독특한 케이스로 여겨진다. [49] 일부는 대륙에서 자금지원을 받고 있기에 중화민국 정부 감시대상이기도 하다. 이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절인 10월 1일에 오성홍기를 들고 나와서 집회 및 시위를 하기도 하는데 만일 그 때가 추석연휴와 겹친다면 대만 여행을 하다가 이런 쇼킹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되기도 한다. [50] 극단적인 친중화민국이라면 대만을 기반으로 반공대륙을 이룩하자는 개드립을 치기도 하지만 현재는 암만 봐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 [51] 대만청치시기 참고 [52] 그러나 차이는 있다. 현재 타이완섬은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땅이 아니지만, 즉 과거지사지만 중화민국 땅은 바로 현재의 일이다. [53] 굳이 따지자면 한국의 통일부와 유사한 기관이나 이 곳에서는 홍콩, 마카오 관련 실질 업무까지 관장하고 있다. 홍콩 주재 영사관 격이라 볼 수 있는 홍콩경제문화판사처가 대륙위원회 소속이다. 그리고 대만이 정말 중국과 무관하다면 외교부 놔두고 이런 기관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54] 이런 일이 일어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자국의 반분열국가법에 따라 대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민진당도 속내야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못하고 현상 유지만 한다. [55] 이는 대만 독립론이나 중화민국 주도의 중국 통일론이나 비현실적인 부분이 커서 민진당이든 국민당이든 어정쩡하게 구는 것이다. [56] 당시 중국어에서나 일본어에서나 '대만'의 '대'는 臺가 정식이었지만 약식으로 台로 쓰는 것은 당대에도 일반적인 관행이었기에 이런 문양을 만들었다. [57] 범록 쪽에서 만든 짤에 범람 측이 밑부분을 덧붙여 재창조한 짤방이다. 의도했는지는 불명이지만, 이미지의 지도 자체가 대만 섬 이외의 중화민국령 섬들까지 포함한 탓에 지도를 확대한 것만으로도 '대만은 명목상 통치구역이 아닌 실질적 통치구역으로 봐도 전체 중화민국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듯한 효과가 난다. [58] 외국인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기 십상인데 대만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59] 물론 차이잉원이 '중화민국'으로서의 독립을 주장하는 등 급진적인 대만 독립운동 세력과는 거리가 있는 점도 있다. [60] 단체 내부에 대만공화국의 (가칭)깃발과 일장기(히노마루),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다. [61] 천수이볜 전 총통은 조금 미묘한데,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했을 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침략전쟁을 거론하며 비판했으나, 2005년 이후부터 중국의 반분열국가법 등으로 양안관계가 경색되고, 일본이 2004년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참가(옵저버 자격)를 지지하며 이듬해에는 대만인 관광객 대상 비자 면제 등 친대만 정책을 취한 탓인지 " 중일관계의 악화는 중국이 대만을 고립시키는 것처럼 일본에 대해서도 고립화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 "고이즈미 총리는 이념을 견지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고 있다."며 2006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은근히 옹호하기도 했다. [62]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은 나치 독일과 연대한 적도 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찬드라 보스 일본 제국과의 연대를 통해 독립을 시도한 바 있다.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아니하고를 떠나서, 다른 국가의 세력과 손을 잡는 것 그 자체는 여러번 있어왔다. 그러나 당장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대부가 친나치, 반유대 발언을 했던 사실이 두고두고 까이고 있고, " 나치를 위해 싸운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면 욕을 먹는 것같이 제국주의의 만행을 찬양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63] ' 대만 공화국'으로서 승인한건지, 중화민국으로서 승인한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 타이완 섬을 실효지배하는 민주주의 정부'를 공식적으로 국가로 승인했다는 점에서 대만이 어떤 식으로든 독립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64] 1963년에 가로 적,백,흑 삼색기에 흰색 중앙에 별 3개가 든 국기를 썼으나 이후 아랍 문자가 들어가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별이 빠지고 지금의 아랍 문자만 남은 국기가 되었다. [65] 프랑코 정권 시기 독수리가 그려진 국기를 사용했으나 1970년대 말 왕정 복고되고 나서 수년뒤인 1981년에 기존 국기에 들어있는 독수리를 빼고 새 국장이 들어있는 형태의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66]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쪽도 기존 국기를 개정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67]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공산정권 시대 국장이 그려진 국기들을 사용했으나 1980년대 이후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국기에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과 문장을 삭제, 수정하였다. [68] 의외라면 의외일 수 있겠지만 대만 독립 지지자들의 목표 중 하나가 중국과의 일반 수교관계 회복이다. 대만의 독립국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중국을 싫어하고 대립한다고 해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수교하고 있듯이 대립/갈등하는 나라와도 수교는 하는게 일반적이다. [69] 타이완 섬과 멀리 떨어진 진먼, 마쭈 열도도 별 다른 이유가 없으면 그대로 신 공화국에게 승계될 것이다.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땅인데 굳이 내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 [70] 중화민국의 권리는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이 향유하고 있다. 국가승계의 논리며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의석이 내전 이후의 리비아 신정부에게 인계되었다. 다만 대만과는 이야기가 전혀 다른데, 리비아 신정부의 의석 인계는 국가 내의 정권교체일 뿐이다. 기존 정부가 정당성을 잃은 상황에서 내전을 통해 승리를 거두면 합법정부로 인정된다. '중국'의 의석이 대만에서 중국대륙 소유로 교체된 것도 비슷한 절차를 따랐지만 대만과 중국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임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가입을 위해 총회 차원에서 허점을 이용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71] 2047년까지 홍콩의 자치권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걸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홍콩 기본법은 효력을 정해놓은 적이 없고, 중영공동선언에서는 홍콩의 영국령 당시 시스템을 50년 간 불변으로만 적어놓았다. 이 50년이 2047년까지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애초 서방 언론이 50년의 기산점을 영국의 주장대로 1997년으로 보았을 뿐이며 중국은 최초 반환요구 시점인 1967년, 혹은 중영공동선언이 성립된 1985년으로 보고 있어서 2047이라는 숫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홍콩 특별행정구는 성급 행정단위로 이미 성립한지 오래이고, 중국 스스로 일국양제보다 좋은 건 없고 영구히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 오히려 중국 기준에서 식민지 때 시스템을 보장한 50년은 지났을 수 있다. 물론 중영공동선언 상 영국이 합법적으로 홍콩에 개입할 권리가 있다.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당시에도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 빼고 다른 나라는 별관심 없었지만 영국은 개입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영국과 관련된 권리는 경제적 이권 뿐이며 주권은 하나의 중국 원칙 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72] 심지어 이 나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면서 더 극단적으로 대만 여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대만인의 자국 입국을 법적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세르비아의 경우 이러한 문제랑 다른 문제로 인해 서방 국가들과 관계가 영 좋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친러만 고수하기도 곤란하기 때문에 친중 성향을 띠는 면이 크고, 설상가상으로 앞문장에서 언급된 문제에서 대만이 세르비아의 반대편 당사자를 편드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친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73] 아예 대만 여권도 인정하지 않고 대만 국적자의 입국,방문을 원천 금지해버린 이웃 국가인 세르비아와 달리 대만 여권을 인정하고 대만인의 입국,방문을 허용해주고 있지만 대만 일반여권만 인정하고 있고 대만 외교관,관용 여권은 불허하며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대만인의 자국 입국,방문은 금지,차단하고 있다. [74] 중화민국의 일부인 타이완 섬과 부속 도서를 관할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한국에 서울 고등법원은 있어도 한국 고등법원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진먼 현과 롄장 현은 푸젠 고등법원 진먼 분원의 관할구역이며 타이완 고등법원이나 그 분원의 관할구역이 아니다. [75] 대만일치시기 이후 국부천대 이전 중화민국의 대만통치 (1945~1949), 국부천대 이후부터 대만 계엄령 해제 이전까지의 중화민국의 대만통치(1949~1987), 대만 계엄령 이후의 대만부터 독립시기까지(1987~독립시기). 이렇게 3개로 시대를 나눌 것으로 예상된다. [76] 그러나 중국 여권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수도 적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꽃필것이다. 그래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는데 중국본토의 부자들이 취하는 방식이다. [77] 다만 싱가포르의 한족들은 말레이시아 시절이나 독립한 현재와는 달리 영국령 시절에는 '중국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78] 게다가 다두 왕국은 1732년에 완전히 멸망하므로 결국 1732년부터 1895년까지는 청나라의 통치 위주로 대만사를 배울 수 밖에 없다. [79] 스스로 노력하는 자는 환경의 변함에 놀라지 않는다는 뜻. [80] 민주화 세력과 대독파가 겹치는 경우가 많으며 주요 사건 역시 대독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