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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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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프 샤팍 케난 에브렌 대통령[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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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성
2.1. 인종
3. 튀르키예인을 구성하는 민족들4. 정체성5. 민족관6. 민족기질7. 행동양식8. 전통복장
8.1. 갤러리
9. 종교10. 정치11. 인물
11.1. 왕가 정치인11.2. 군인11.3. 방송 및 예술계11.4. 스포츠계11.5. 성직자
12. 튀르키예인 캐릭터
12.1. 한국 작품12.2. 일본 작품12.3. 미국 작품12.4. 기타 국가 작품
13. 관련 문서

" 튀르키예 땅에 살고, 튀르키예어를 사용하고, 튀르키예를 자신의 조국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는 곧 튀르키예인이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 개요

튀르키예어: Türkler (튀르클레르) - 복수형, 단수는 Türk

튀르키예 공화국 헌법에 의하면 튀르키예어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 사람'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튀르키예내에 거주하면서 튀르키예어를 사용하는 튀르크 계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의 유산으로 아직도 그리스,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조지아, 시리아, 이라크 등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어를 모어로 하는 소수민족들도 수십만 단위로 있는데, 튀르키예에서는 이들 또한 해외 튀르키예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울러 2차 대전 이후 튀르키예인이 많이 건너간 독일에만 해도 튀르키예계 독일인들이 400만 가까이 거주하고 있으며, 여타 유럽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국외 튀르키예인의 수까지 합치면 거의 7,800만에 육박한다고 추정된다.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이후 급격한 언어 변화 및 현지 언어의 영향으로 본토의 언어와 비교적 차이가 있다. 그나마 가까운 불가리아와 그리스에 속하는 서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의 언어는 에디르네 일대에서 통용되는 발칸 방언과 비슷하다.

2. 특성

파일:attachment/Safranbolu_traditional_houses.jpg
튀르키예인의 전통 주택, 한국 관광객들도 꽤 다녀가는 사프란볼루(Safranbolu) 마을의 사진으로 튀르키예 전통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파일:attachment/mehmetbey.jpg
이전까지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하던 튀르크 사회에서 튀르키예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카라만오을루 메흐메트 베이(Karamanoğlu Mehmet Bey)의 동상.[6] 동상에 쓰여진 문구는 "오늘 이후로 궁정에서, 데르갸흐(수피 수도사들의 숙소)에서, 집에서, 의회에서, 그리고 광장에서도 튀르키예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1277년 5월 13일"(Bugünden sonra Divanda, Dergâh da, Bargâh da, Mecliste ve Meydanda türkçeden başka dil kullanılmayacakdır.)라는 당시의 칙령을 적은것이다.

파일:attachment/634px-Karagoz_figures.jpg
튀르키예의 전통 그림자 인형극인 '카라괴즈(Karagöz)'의 두 등장인물인 카라괴즈(오른쪽)와 하지바트(왼쪽)[7]의 모습.

튀르키예인의 대다수는 인종적으로 코카소이드이다. 원래 원시 튀르크 자체가 유적에서 장두형 두개골이 발견되는 투라니드 인종이다. 유럽과 중동의 중앙에 있는 아나톨리아의 특성상 고대부터 여러 민족들의 유입이 많았고 튀르크인의 유입, 3대륙에 걸친 오스만 제국 시기를 거치면서 현 튀르키예 주변 유럽과 중동의 여러 민족들이 튀르키예로 유입되었다. 현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성과 튀르키예 남성간의 국제결혼이 상당히 많다.[8]

트라키아, 에게해 연안 등 서부 지역과 흑해 연안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그리스, 발칸 반도, 조지아등과 가깝기 때문에 유럽 혈통 튀르키예인들도 살고 있으며 가장 최근 유럽에서 대규모로 유입된 인구 집단은 1990년대 유고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이주한 보슈냐크계들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튀르키예에 정착한 이탈리아인 등 남유럽 출신 이주민의 후손들이 현대에도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등 서부 지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서부 도시들은 건축 양식부터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한편 가지안테프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은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아랍의 영량을 많이 받아 튀르키예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아랍풍 분위기가 난다. 해당 지역 주민들 중에서는 아랍인의 후손도 보이는 편. 남동부 지역 등지에서는 아랍풍 복장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특히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두건 모자인 쿠피야를 쓴 주민들도 볼 수 있다. 동부 지역에는 타타르(Tatar)라 불리는 몽골-튀르크계 소수민족들까지 거주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튀르키예인도 극소수 존재한다.

튀르키예에서도 이 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여러 우스개가 많으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걸 많이 언급한다. 한 서구적 복장 차림의 백인 여성과 히잡을 쓴 아랍계 여성이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영어로 서로 대화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해가 저물 무렵에서야 서로 국적을 묻자 서로 똑같이 튀르키예인이라고 말하면서 둘 다 멍을 때렸다는 일이라든지 길거리 농구장에서 유달리 농구를 잘해보이는 아랍계 남성을 보며 백인계 남성이 환호하면서 "아랍에서 온 건가요? 잘하는데요!" 라고 묻자 그 아랍계 남성은 멈추더니 "그런 댁은 북미요? 유럽 다른 곳에서 오셨소? (튀르키예에선 스스로를 유럽으로 여긴다.[9])" 질문하였다. 그리고 둘 다 서로 튀르키예인이라고 답변하고 잠깐 멍때렸다는 일도 오래 전부터 실화라고 전해진다.[10]

원래 이슬람 국가 특징 자체가 인종의 구분보다는 종교적 동질감이 중요하였고 오스만 제국을 튀르크인들만이 건국한 국가라고 볼 수 없는 것이 튀르크가 이슬람화하면서 이슬람 종교 제국 내에서 인종적 구분이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아타튀르크의 경우 서양 열강의 위기로 인해 주위에서 민족주의적인 독립 국가들이 계속 나타나는 상황이였고 튀르크인의 민족적 독립을 추구하면서 건국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국가들이 차례 차례 영국의 지원으로 떨어져 나가는 상황에서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어를 쓰면 튀르크예인으로 단정지었다.
"튀르키예인이란 튀르키예어를 쓰고 튀르키예에서 살아가면 누구나 튀르키예인이다. 인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튀르키예에서 교과서로 쓰는 그의 어록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분리 독립 문제로 튀르키예 정부와 갈등을 겪는 쿠르드족도 오랫동안 정식 명칭은 산악 튀르키예인(Dağ Türkler)이었다.

유목민이 기원인 만큼 접대의 관습에도 충실해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에 방문할 경우 가게 주인은 으레 튀르키예 특유의 달콤한 차이라는 튀르키예식 홍차를 권하곤 한다. 심지어 주인이 식사 중일 때는 음식까지 함께 권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한국인이 여행 도중에 만난 튀르키예인과 친구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매우 외향적이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말을 건낸다.

원래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의 선조라는 튀르크 아나톨리아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민족이었고, 아나톨리아는 어마어마하게 긴 역사속에서 오만 민족들이 각축을 벌이던 땅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다문화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튀르크족이 밀려오던 시절에는 이곳에 이주 그리스인과 그리스화한 아나톨리아인, 페르시아인, 쿠르드족, 아랍인 등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오스만 제국의 통치기를 거쳐서 튀르키예화되거나 혹은 튀르키예인들이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튀르키예인의 문화는 유럽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시아적이다. 괜히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2010년에 이스탄불시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럽 문화의 중심지(Avrupa kültürün başkenti)로 지정되었는데, 그때의 이유는 "동서 문화의 교차점"으로서의 이국적이고도 다채로운 문화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가령 이슬람교는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사회, 문화적 장치라 할 수 있는데 98%의 튀르키예인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나머지 2% 정도는 정교회 가톨릭을 믿는 튀르키예인이며, 이슬람교 내에서도 비록 수니파가 주류기는 하지만, 시아파도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하며, 이슬람 전체에서 봤을땐 시아파보다도 소수인 알레비파를 믿는 무슬림도 1,000여만 명[11]에 달할 만큼 많다.

2.1. 인종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AKR20170624032400108_02_i_20170624114003762.jpg 파일:160524203111_turkishfans_624x351_reuters.jpg
라마단을 마친 튀르키예군의 축제 모습 튀르키예의 축구관중

[12]

레반트, 북아프리카 아랍인, 베르베르인들과 이란인, 중동, 서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처럼 인종학적으로 코카소이드인종, 즉 백인이다. 튀르크 민족이 워낙 동서양으로 넓은 지역에 살고 있었고 몽골 지역까지 세력을 떨쳤기 때문에 몽골로이드 민족으로 분류하거나 인식하는 경우가 있으나, 튀르키예인은 코카소이드인종이다. 원시 튀르크인들은 아파나시에보 문화와 밀접하며 아파나시에보 문화는 코카소이드 계통의 유목 민족이 동쪽 몽골로이드를 병합하며 동서양의 특징이 모두 나타나는 문화이다.


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살던 아나톨리아인들이 세운 나라로는 고대 히타이트, 리디아 등이 있으며, 그들의 언어도 역시 인도유럽어족의 언어였으며, 역시 고대 그리스어와 근연 관계에 있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지배에 이르기까지 아나톨리아는 이처럼 인도유럽어족 백인들의 땅이었으나, 중세 시대에 이르러 페르시아의 동쪽에서 권력 공백지역으로 튀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 반도 동쪽까지 들어왔고, 로마와 벌인 만지케르트 전투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아나톨리아에 상주하기 시작했다.[13] 이후 이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이 건국되고 이슬람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튀르크인들이 기존에 살던 원주민들을 모두 내쫓은 것이 아닌, 이들을 부리며 언어와 종교를 바꾸게 한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인으로 천 년 이상을 살았던 아나톨리아의 선주민들은 오스만의 통치를 받으며 점차 튀르크인들의 종교와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혈통적으로 점차 섞이게 되었다.[14] 튀르크인들 자체도 중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이슬람화하면서 인종보다는 비이슬람, 이슬람에 대한 구분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튀르크인들의 침략으로 튀르크인과 이란계 민족인 아나톨리아인이 섞였다고 하지만 튀르크인들의 비중은 불과 1/20~1/10에 불과했다. 현대 유전자 연구로도 튀르키예인들은 혈통적으로 거의 이란계 백인이며 순수 튀르크인의 DNA는 10%에도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도 이슬람 제국에 편입되었지만, 그럼에도 아랍인들에게 투르크맨이라고 불리는 등 이슬람 세계에서도 아랍인들과 확실한 구별이 있었다. 하지만 1차세계대전 패전 이후 유럽과 전세계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각 아랍인들이 독립을 시도하였고 아타튀르크는 튀르크 민족이 건국한 국가라는 개념아래 튀르키예가 건국되었다.

또 투르크 자체가 안드로노보 문화의 영향을 받은 민족이고 안드로노보 문화 자체가 동서양이 겹치는 부분이라서 몽골계통과 코카소이드 계열이 모두 존재한 곳이다. 현재 아시아 지역의 투르크인들은 생김세는 몽골계통으로 보이지만 원시 튀르크인들은 안드로노보 문화의 영향을 받아 몽골계통과 코카소이드 두 형질을 모두 보였다. 이것을 학설적으로 투라니드 인종(Turanid race) 라고 부른다.[15]


오스만 제국의 최대 강역은 전성기 때 수단 및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의 뿔로부터 도나우 강 유역, 크림 반도, 우크라이나 남부, 아라비아 반도, 튀르크메니스탄까지 이른 말 그대로 동서양을 통합한 제국이었다.
파일:신디1.jpg 파일:튈린1.jpg
오른쪽은 신디 크로퍼드가 아니다.[16]

따라서 튀르키예 사람들중에는 유럽 백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는건 당연하다.[17]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나 뒤를 이은 이스메트 이뇌뉘, 아드난 멘데레스 케난 에브렌 등의 사진을 보면 대체적으로 백인계에 가깝다. 7대 대통령 케난 에브렌은 알바니아계 튀르키예인이다. 뿐만 아니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 등 근래의 정치가들이나, 소설가 오르한 파묵, 배우 시넴 코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방한한 튀르키예 국대 선수들을 봐도 하산 사슈, 알파이 외잘란, 일한 만시즈 같은 선수들에게선 아랍계의 인상을 받기 힘들다. 워터 디바이너에서 우크라이나계인 올가 쿠릴렌코가 튀르키예인 여성역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18]

튀르키예인과 이란인은 다른 역사와 언어 계통에 속해서 아랍인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랍인과는 민족이 당연히 다르다. 그래서 당연히 튀르키예인보고 아랍인 이런 말 하다간 영국인보고 독일인, 스웨덴인이라고 하는 격과 같아서 튀르키예인, 아랍인 모두 굉장히 화낸다. 튀르키예내에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들은 튀르키예 바로 근처인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건너온 레반트 출신이 대부분이다. 참고로 레반트 지역의 아랍인들은 지중해 계열 백인들(Mediterranid)과 외형적으로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있으며 따라서 튀르키예 내의 아랍인 후손들도 여느 유럽계 백인들처럼 남유럽 백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튀르키예인은 아랍인이 아니다. 참고로 튀르키예인과 아랍인은 역사적으로 사이는 썩 좋지는 않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고관대작[19] 자리를 꿰어찬 유럽인들[20] 페르시아인들에 비해 대접을 못받았으며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반란을 일으킨 역사가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이 참전을 하려고 하자 미국 정부도 난색을 표했고 이라크 반군들도 사담 후세인보다 튀크키예가 더 싫다며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며 반대하였다.[21]

이슬람이 대다수라고 튀르키예를 보통 아랍계로 여기는 게 많아서, 90년대 중순 대한항공 여객기 기내지에서 튀르키예 관련 정보로 아랍 사막과 아랍인 차림 유목민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여기가 튀르키예라는 짓을 벌였다가 튀르키예 대사관 항의로 전면 수정했던 일도 있다.[22] 당연히 튀르키예인들은 이런 경향을 매우 싫어한다.

서구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와 이란을 종교적으로 동일한 이슬람권이라 아랍권으로 여기는건 마찬가지라 튀르키예인을 아랍인과 동일하게 여기는 편견이 없는 건 아니다. 이런 편견 때문에 서유럽인들 역시 전형적인 유럽 백인처럼 생긴 튀르키예인, 특히 금발을 가진 튀르키예 여성을 만나면 그 튀르키예인이 자신의 국적을 밝히기 전에는 튀르키예인이라는 걸 눈치 못채는 경우가 제법 많다. 튀르키예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서유럽인들 역시 놀라워 하는 편.[23]

서구권과 북미 지역 등을 포함한 비중동권 지역이 백인을 '유럽의 기독교 믿는 국가 나라의 원주민'으로 한정해 다른 수단계 아랍인을 제외한 아랍인, 페르시아인, 파슈툰족 등 구미권 국가가 아닌 코카소이드들을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더불어 아랍과 종교적으로 유사하다 보니 막연하게 튀르키예=아랍일 거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근데 사실 튀르키예 연예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서양풍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선호한다.[24] 특히 금발 여성들의 인기가 높다. 그래서 혼혈 연예인들도 많이 보인다.[25] 가령 오스만 제국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튀르키예 사극등에서 등장하는 유럽인 배역들은 죄다 튀르키예인 배우들이 유럽 복식을 입고 출연하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을 지경.[26]

튀르키예인하면 마치 몽골인을 생각하게 되는데 튀르키예와 몽골은 문화적 언어적으로 상호 영향으로 비슷해도 같은 민족이 아니며 튀르키예인들은 무작정 동양인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흉노나 에프탈, 사카 등 튀르키예인들은 원래 서양과 동양 청동기, 철기 문화와 인종이 같이 사는 중앙아시아와 동서양의 넓은 유라시아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튀르키예인을 동양인으로 단정하고 유럽가서 유럽인처럼 되었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고대 에파나시에보 문화만 보더라도 유골에서 코카서스 유골 10구, 몽골로이드 유골 6구 등 동양인 서양인이 서로 존재한 유목 문화로 보이며 미이라를 봐도 서양인과 동양인이 같이 거주한 지역이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더 이상 "한 제국의 신민"이라는 정체성이 적용되지 않게 되자 튀르키예인들 본인부터 새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나서면서 단순히 튀르크라는 분류에서 벗어난 튀르키예인만의 정체성이 생겼다.

현대 공화국 튀르키예로 들어와서 민족 국가 튀르키예의 민족적 정체성을 새로 재창조하고 의도적으로 오스만 문화의 다국적인 색채를 빼느라 이제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기나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동로마 제국과 튀르크족의 아나톨리아 대 이주 이후 동로마~오스만 제국으로 내려오는 동일하고 서로 공유하는 문명에서 나왔다. 오히려 그만큼 서로 유사하고, 많은 역사를 같이 했음에도 차이점 또한 명확하고, 19세기 민족주의의 광풍과 20세기 제국 해체와 전체주의의 시절을 겪으며 단절 또한 과격했기에 아직까지도 악감정이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서로 그만큼 치고박고 싸워도 대중적 차원에서는 튀르키예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나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뻔히 아티나( 아테네), 이즈미르(스미르나), 셀라니크(테살로니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 트라브존(트레비존드) 같은 양국의 대도시의 구시가지들을 걸으면 양식도 서로 유사한[27] 동로마의 교회와 오스만 조의 모스크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만 봐도 서로 공유한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도 튀르키예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나 서로 싸우는 만큼 그 중에서도 그리 과격하게 국수주의적이지 않거나 생각이 좀 개방적인 사람들은 그리스 안에 있는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튀르키예 안에 있는 동로마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협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 튀르키예가 있는 소아시아 지역은 튀르크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무주공산인 곳이 아니었다. 일찍이 히타이트가 있었고 그리스의 도시들이 있던곳이 소아시아이다. 소아시아는 헬레니즘 시대 이래로 가장 그리스화가 잘 된, 그리스인들의 홈그라운드였다. 지금처럼 발칸 반도 남쪽 끄트머리에서만 사는 게 아니었다. 상당수의 튀르키예인은 그리스화된 아나톨리아인이 다시 튀르크화된 경우이다. 그리스인들 중에도 그 반대로 그리스화된 튀르크인들이 있다.[28] 즉 튀르키예인이 백인이 아니라는 소리는 튀르키예인과 외형상 비슷한 점이 있는 그리스인도 백인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29]

튀르키예에도 유럽 국가들보다는 비율이 낮지만 당연히 금발 벽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둘 다 가진 금발벽안도 당연히 있다. 그 예시로 튀르키예 작가 엘리프 샤팍[30] 배우 시넴 코발등이 금발이다. 아니 애초에 국부인 아타튀르크부터가 금발벽안이다. 그리고 이스탄불 등 서부 지역에 살거나 동유럽 출신 이주민 후손, 서구식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튀르키예 여성들은 염색을 많이 하는데 화장과 머리카락 염색, 히잡 착용유무 만으로도 전형적 중동풍 외모와 금발의 서유럽풍 외모를 오고 가는 게 가능하다.

대략적인 튀르키예인들의 외양을 알고 싶다면 이스탄불 시민들의 거리 패션을 참조해보자. 혹은 뮤직뱅크 이스탄불 당시 관객들을 유심히 살펴봐도 좋다.음악 감상도 같이 하면서

금발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튀르키예에서는 금발벽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원래 금발이 아닌데 금발로 염색한 사람들도 보인다.[31] 금발 역시 이즈미르 같은 서쪽 도시나 흑해쪽으로 갈수록 많이 보이고 동남쪽에서는 드문 경향이 있다.

동부 지역으로 가면 전술한 것처럼 몽골-튀르크계 혈통을 가진 타타르인이나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카자흐, 키르기즈 등 전형적인 북방 황인종에 속하는 중앙아시아계 튀르키예인이 있다.

튀르키예인들의 백인우월주의, 유럽 선망, 유럽 중심주의는 튀르키예 내외에서도 자주 논란이 되는 떡밥이다. 튀르키예인들 내부에서도 그런 사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상기했듯 금발 벽안이 아주 드물지는 않지만 아주 흔하지도 않고 약간 적은 정도인데, 금발로 염색을 하는 여성이 무척 많은데다가 연예계 활동을 하는 인물 중 매우 많은 수가 금발벽안이거나 금발로 염색을 한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출처

튀르키예계 미국인 역시 미국에서는 미국 백인에 포함되는 등 백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출처 출처2 러시아계 미국인 독일계 러시아인 혈통이 포함되는 것처럼 엘리아 카잔처럼 선대가 그리스 혈통인 사람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지리적으로는 아시아로 분류된다고 하나, 인종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모두 유럽적 정체성이 강한 튀르키예가 아시아적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간주되는 가장 큰 원인은 종교 이슬람교라서, 둘째로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국명이 튀르키예, 즉 대놓고 튀르크라서 생기는 일이다. 튀르키예 공화국 사람들은 유전적, 그리고 일부 문화적으로도 과거 동로마 제국에 가까운 면이 크지만 국명 자체가 마치 모든 튀르크 제족을 대표하는 것처럼 대놓고 '튀르키예'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3. 튀르키예인을 구성하는 민족들

튀르크(Türkler)라고 대표되는 튀르키예인의 혈통은 단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다. 튀르키예 내에는 수십여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크게 10여 계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각 민족에 따라 구분해서 인구조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튀르키예 법으로 인해 정확한 숫자파악도 불가능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민족들을 몇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그리스계 튀르키예인: 오스만 제국 이전부터 아나톨리아 발칸반도에 거주했던 민족들로, 그 중 오스만 제국 시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정교회 신앙을 간직하되 이스탄불에 거주함으로서 1923년 인구 교환에서 제외된 그리스계를 의미한다. 크레타 섬에 거주하다가 1896년 크레타 전쟁으로 인해 섬에서 추방당한 그리스인 무슬림들은 크레타인(Giritli)이라고 부르며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그리스계 튀르키예인과 별개민족으로 보고 있다. 수백년의 세월에 걸쳐 튀르키예인에 동화되어 본인이 그리스계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계 튀르키예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 라즈계 튀르키예인: 조지아계 민족으로 현재는 트라브존 리제를 중심으로 약 5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대다수는 무슬림이며, 라즈어라는 고유 언어가 있지만 1990년대 들어 화자가 극도로 줄어 일상언어로서는 사실상 사어화 되었다. 리제 지방의 라즈인들은 라즈어가 아니라 조지아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 참고로 가 크기로 유명한데, 코가 클 수록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는 튀르키예인들은 유별나게 고집 센 사람에게 '라즈인의 코(Laz burunu)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 보슈냐크계 튀르키예인: 보슈냐크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는 남슬라브계 무슬림 민족이다. 발칸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온 보슈냐크인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피난온 보슈냐크인 두 부류로 나뉘며, 주로 튀르키예 서부지방에 정착해 거주하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 당시 피난온 보슈냐크인 10만여 명은 이제 겨우 1, 2세대이기 때문에 여전히 보슈냐크인으로서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불가리아계 튀르키예인보다 수가 적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튀르키예에서 보슈냐크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이주자들을 포함해 200만명에 달한다고 보기도 한다.
  • 불가리아계 튀르키예인 : 튀르크-러시아 전쟁과 발칸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온 불가리아 무슬림들의 후손으로 이스탄불 에디르네,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방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일부는 불가리아 남부에 거주하는 튀르크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불가리아와 튀르키예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다. 참고로 튀르키예 서부지방에 거주하는 슬라브계 튀르키예인들 가운데 가장 수가 많다. 원래 불가리아계 튀르키예인들은 발칸 방언을 모국어로 사용했으나 현재 발칸 방언은 튀르키예 바깥에 일부 남아있는 정도이다.
  • 세파르드계 튀르키예인: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후손으로 이들은 당시 오스만 제국에 정착해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과 더불어 장사로 번영했다.[32] 이후로도 계속해서 튀르키예에 거주하고 있으며, 종교는 유대교를 간직하고 있으나 일상 언어로 라디노어(중세 스페인어에서 바탕한 세파르딤의 언어)를 사용하는 세파르딤의 수는 줄고있다.
  • 시리아계 튀르키예인: 원래는 마르딘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아랍계 시리아 정교회인(Hıristiyan Süryaniler)을 의미했으며, 이들은 오늘날에도 마르딘을 중심으로 정체성은 튀르크화되었지만 고유의 신앙과 고유의 언어를 지키며 거주하고 있다. 한 편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시리아인 난민들의 튀르키예 유입이 대거 증가한 것을 계기로, 시리아계 튀르키예인을 지칭하는 범위 및 지칭범위도 크게 변하였다.
  • 아르메니아계 튀르키예인: 이스탄불 카이세리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민족으로 아나톨리아 동북부의 헴신인들의 경우 대부분은 이슬람를 믿고 있지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아르메니아 교회일 정도로. 다만 아르메니아어는 예배언어로서만 사용하며 일상생활에서는 튀르키예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경우 아르메니아 병원, 아르메니아 학교도 있으며, 시슐리(Şişli) 지역에 모여살며 비이슬람식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의사업에 종사하기도 하므로, 이스탄불에서 비 무슬림들이 이용할 수도 있다.
  • 아랍계 튀르키예인: 샨르우르파, 하타이를 비롯한 튀르키예 남동부 지방에 주로 거주하며, 오늘날에는 튀르크화되어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은커녕 아랍어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상술한 것처럼 시리아 내전이후 튀르키예로 유입되어 튀르키예 국적을 따고 아예 눌러 앉는 시리아인, 이라크인이 증가하면서 아랍계 튀르키예인의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들과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쭉 튀르키예 땅에서 거주해오던 아랍계 튀르키예인들은 따로 분류하며 사람들 인식도 그렇다.
  • 알바니아계 튀르키예인: 그리스 독립 전쟁 알바니아 독립 전쟁 당시 오늘날의 튀르키예로 건너온 알바니아인의 후손들이다.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기 불과 10년 전인 1912년에야 독립을 쟁취한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당시 군대에서 주로 활약했다. 하지만 공화국 시대 이후 튀르크화되어 알바니아계에 대한 정체성은 튀르키예 내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희박하다.
  • 우비흐계 튀르키예인: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의해 거의 대부분 오스만 제국으로 추방되면서 튀르키예인들에 동화되었다. 우비흐인들은 튀르키예인으로 동화되었지만, 튀르키예 내 우비흐인들을 중심으로 우비흐어를 부활시킬려는 움직임이 있다.
  • 자자계 튀르키예인: 쿠르드계 소수민족인 자자족으로 툰젤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자자어라는 쿠르드어와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종교적으로 다수의 자자인들이 알레비파를 믿는다는 점도 특이한 일이다. 현재 튀르키예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의 총재, 케말 클르치다르오을루(Kemal Kılıçdaroğlu)가 자자계이며 알레비파를 믿는다.
  • 체르케스계 튀르키예인: 체르케스인 캅카스 지방의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후기에 러시아 제국의 침략으로 아나톨리아로 들어와 정착했다. 전통적으로 불가리아계 튀르키예인과 더불어 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민족으로 가수 하디세가 체르케스계 튀르키예인이다.
  • 투르코만 : 과거 튀르크멘은 튀르크계 민족중에서도 유목을 하는 부족들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튀르키예 남동부, 시리아, 이라크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들을 의미한다. 가지안테프의 경우 특히 튀르크멘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튀르크멘어라는 튀르키예어와 비슷하지만 고유의 문법과 어휘를 가진 별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튀르크멘들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방면보다는 시리아, 이라크 일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류이다. 그렇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이 실업률이 높다보니 튀르키예로 일자리 얻으러 온 경우도 상당하기는 하다.
  • 쿠르만지계 튀르키예인: 쿠르드족 중에서도 쿠르만지어(Kurmancî, 튀르키예어 표현은 Kurmançça 혹은 Kuzey Kürtçe)를 사용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오스만 제국 이전부터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한 튀르키예 남동부 지방에 주로 거주해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상당수가 모어로 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다.
  • 크림 타타르계 튀르키예인: 크림 칸국 붕괴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들어온 타타르인들의 후손으로, 현재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원래 크림 타타르어 튀르키예어와 매우 유사한 언어이며 종교도 튀르키예와 같아서 그런지 고유의 정체성은 남아있지 않으며 단지 혈통으로만 전해온다.
  • 아프리카계 튀르키예인: 오스만 제국 시절 노예 무역을 통해 들여 온 흑인 노예들의 후손은 생각보다 드물고 대부분은 오늘날에 난민으로 유입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들이다. 오스만 제국으로 들어온 흑인 노예들은 주로 궁정의 환관이나 군인으로 일했으며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 같은 대도시에는 이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까지 존재했다. 현재 이들의 후손들인 아프리카계 튀르키예인들은 주로 이즈미르, 아이든, 무을라 등 에게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 구소련계 튀르키예인: 소련 붕괴 이후 튀르키예로 넘어온 모국이 구소련 공화국들인 사람들을 퉁쳐서 이렇게 말한다. 민족적으로는 튀르크계인 타타르, 바시키르인, 카라차이인 등이 있기도 하고, 동슬라브계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도 있고 아무튼 다양하다. 소련 붕괴 직후 경제난으로 돈벌러 왔다가 튀르키예인과 결혼해서 정착한 경우와 국제결혼으로 튀르키예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 여성)로 나뉠 수 있는데, 예시로 튀르키예 가수 알레이나 틸키는 아버지쪽이 러시아계라고 한다. 이들이 많이 사는 이스탄불 악사라이 지역이나 안탈리아, 페티예 같은 곳에선 러시아어도 일상어로 쓰이고 있으며 관광지인 안탈리아, 펫히예에서는 특히 현지에서 거주하는 구소련계 튀르키예인들이 여행온 러시아어권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숫자도 만만치 않아서 정확한 파악은 어려우나 구소련 공화국 국적과 튀르키예 국적을 모두 보유한 이중국적자 숫자가 수십만에 이른다.
  • 위구르계 튀르키예인: 중국의 인권 탄압을 피해서 망명한 위구르인들로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이사 위쉬프 알프테킨부터 시작해서 상당수의 위구르인들이 튀르키예로 망명, 정착한 역사가 있다. 튀르키예에 체류하는 위구르인 인구는 10만여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튀르키예의 관민 모두 (세속주의나 이슬람주의 성향 차이를 떠나서) 이들을 중국계가 아닌 위구르계로 분류한다.
  • 집시계 튀르키예인: 약 50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 외에도 아르메니아계 무슬림인 헴신인, 라즈인 이외의 조지아계 무슬림인 이메르헤브인과 치베네부리인, 아제르바이잔인[33], 페르시아인, 아시리아인, 오세트인, 체첸인, 폴란드계 튀르키예인[34] 소련 해체 이후 건너온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카자흐인 등이 있다.

4. 정체성

"Biz Türkler
Asyalı mıyız, Avrupalı mı?
Şaman mı, Müslüman mı, laik mi?
Yerleşik köylü müyüz, göçebe Türkmen mi?
Fatih'in torunları mı, Ata'nın çocukları mı?
İslam'ın kılıcı mı, Hıristiyanlığın cezası mı?
Osmanlı yetimi mi, TC vatandaşı mı?
Fatih miyiz, fethedilmişlerden mi?
Savaşçı asker miyiz, barışçı siviller mi?
Ordu muyuz, millet miyiz, ulus mu?
Batılı mıyız, Batı'nın koruyucusu mu?
Çağdaş toplum mu, tarihi bir köprü mü?
Doğulu mu, Anadolulu mu, Batılı mı?
Kimiz biz?"

우리는 아시아인인가, 유럽인인가?
샤머니스트인가, 무슬림인가, 세속주의자인가?
우리는 정주민인가, 유목하는 튀르크멘인가?
정복자의 자손들인가, 아타튀르크의 아이들인가?
이슬람의 칼인가, 그리스도교의 벌인가?
오스만의 고아인가, 튀르키예공화국의 시민인가?
정복자인가, 정복당한 이들인가?
전사인가, 평화로운 시민들인가?
우리는 군단인가, 민족인가, 국가인가?
우리는 서양인인가, 서양의 지킴이인가?
현대의 총체인가, 역사의 한 교두보인가?
동양인인가, 아나톨리아인인가, 서양인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튀르키예 정체성

튀르키예의 사회학자 보즈쿠르트 귀벤치(Bozkurt Güvenç) 교수는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을 때문에 3차원으로 나눠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차원들을 설정했다.

위의 글과 같이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은 무언가 하나로 딱 찝어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튀르키예의 사회학자 보즈쿠르트 귀벤치(Bozkurt Güvenç) 교수는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을 때문에 3차원으로 나눠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차원들을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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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 민족(문화)적, 혹은 언어적 정체성 (튀르크, 쿠르드, 아르메니아, 라즈, 그리스, 튀르크멘, 불가리아계 튀르크 등등)
2차원. 종교적 정체성 (순니, 알레비, 세속주의자 등등)
3차원. 준거집단적 정체성 (유럽 지향, 중동 지향[35])

모든 튀르키예인들은 이 3차원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정하거나, 그가 속해있는 집단의 정체성을 영향을 받고 자라나기 때문에 튀르키예인의 정체성은 딱 잘라서 말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때문에 종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쿠르드인(+언어)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사람과 세속주의자 집안에서 아타튀르크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 사람의 정체성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특히나 튀르키예의 경우 워낙 많은 민족들이 거주하다보니 지방마다 문화와 풍습이 상당히 다른데, 이를테면 이스탄불, 에게 해 서부지방은 그리스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부 지방은 쿠르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남부 지방은 아랍, 아르메니아인의 영향을 받아 저마다 색다른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한국과 튀르키예를 자주 형제의 국가라고 말하는데 현대 한국에서는 이 이야기를 언급할 때 자주 6.25 전쟁 때 튀르키예가 한국에 파병된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튀르키예의 민족 국가 돌궐의 귈테긴 비석에서 돌궐과 고구려의 형제 동맹을 맺은 기록이 쓰여져 있기 때문에 튀르키예 역사 과정을 거친 이스탄불의 튀르키예 학생들도 이것을 자주 언급한다.[36]

5. 민족관

위의 터키인의 정체성과도 관련있는 부분이다. 상당히 많은 터키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특히 공화국 성립 이후 눈부신 서구화와 터키 독립전쟁에서 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고 국가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과거에는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였지만, 여전히 종교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아랍인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 터키어로 흔히 'Pis araplar'(더러운 아랍인들)이라는 관용구를 쓰는데, 다르게 말하면 한국인들이 중국인에 대해 갖는 감정인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문명하지 못해."와 비슷한 느낌이다. 근대화를 겪으면서 과거의 행태에 젖어있는 다른 민족들을 야만적으로 여기는 풍조는 역사를 통틀어 상당히 흔한 현상이긴 하다.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이슬람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자신들이 포용해야 할 민족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다스리는 지역의 형제들이었고, 현재도 같은 종교를 믿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아랍인들의 배신'으로 여겨서 아랍인들에게 적대적인 이슬람주의자들도 있긴 하다.

주변의 민족들과 사이가 나쁜 편인데, 우선 불구대천의 원수인 러시아인 - 소련 붕괴 이후에는 불법체류하는 구소련 출신 러시아인들도 많아져서 갈등이 더 심해졌다. 아르메니아인, 잘난 척 하는 이란인 등과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의외로 그리스인이나 불가리아인에 대해선 이 정도까지 비하 발언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체급 자체가 게임이 안 되는 그리스, 불가리아 등은 오스만의 피지배 민족으로 살아 왔지만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깊숙이 진출한 16세기 이후 동유럽-유라시아 스텦-흑해-동지중해-카프카스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두고 피 말리는 혈전을 벌여왔던 경쟁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망한 이후 역시 같은 선상에서 비교 하기 힘든 약소국 신세로 전락 했지만, 아직도 크림 반도의 타타르족 문제, 카프카스 국가들 사이의 알력 다툼 등을 두고 갈등이 있고, 러시아는 러시아 나름대로 냉전 시절 문화적, 사회적으로는 서방도 아니면서 나토가 소련의 턱 밑에 박아 둔 단검 역할을 했던 튀르키예를 아니꼽게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시리아 내전이후 몰려온 시리아인들이 노상에서 벌이는 구걸행위, 소매치기, 강도, 집단 패싸움 등을 이유로 시리아인과 사이가 나빠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 튀르키예 정부는 국경을 열어 시리아 피난민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튀르키예-시리아 국경선의 길이도 길이거니와 대부분의 경계는 그저 황무지나 밭 한복판에 철책 놓고 뜨문뜨문 경비초소가 있는 식으로 허술했기 때문에 시리아 전쟁 이전부터 시리아와 튀르키예를 오가는 밀수꾼들이 많았고, 튀르키예 정부가 발급한 난민증을 갖고 난민생활시설에 수용된 난민 수, 즉 튀르키예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피난민 숫자보다 더 많은 시리아인들이 국경을 넘었다. 2020년의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튀르키예에 있는 시리아인 불법체류자의 숫자는 거의 450만에 달한다. 헌데 급히 국경을 넘어온 시리아인들이 튀르키예어를 알 리가 없고,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먹고 살 방법이라고 해봐야 구걸과 소매치기 뿐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과거에 튀르키예를 오가고, 돈 좀 많은 시리아인들은 관광지에 자기 가게(물론 불법이다.)를 내서 같은 아랍권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한 편이다.

6. 민족기질

튀르키예인은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서 딱 이렇다고 하기 힘들다. 지방마다 문화가 다 다르기 때문 대체로 낙천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많다고들 하는데 전형적인 남유럽인의 기질과는 달리 이슬람적인 운명론에 따라 한편으로는 매우 진지한 성격이기도 하다. 튀르키예인의 언어습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샬라(알라께서 원하신다면, İnşallah), 마샬라(알라께서 지켜주시길, Maşallah) 같은 사실상 감탄사가 되어버린 표현들을 봐도 그렇다.

폴란드볼로 표현된 튀르키예인의 지역 스테레오타입[37]

튀르키예인들은 지방마다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다고들 하는데, 에게 해 지방 사람들은 허세부리는 경향이 있고, 흑해 지방 사람들은 고집만 세고, 동부 지방 사람들은 싸울 때는 목소리가 크고 호전적이지만 정이 많고, 중부 지방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차갑고 무뚝뚝한데다 장사속만 밝힌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런 편견을 가지고 지역드립에 써먹는다. 관광온 외국인들은 알 길이 없지만, 튀르키예인들과 친해지면 무지막지한 지역드립의 향연을 들을 수 있다. 아랫 문단에서 설명하겠지만, 현재는 튀르키예인이라고 묶여있지만 마치 이탈리아인들처럼 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서로 소속감 없는 사람들이었다.

7. 행동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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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르키예군 페이스북에 올라간 사진)
튀르키예인이란
운전학원에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지
운전 중 아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앞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이고
되네르케밥과 아이란을 먹으면서 동시에 끝내는 것이고(뭐 하나가 먼저 안 끝나도록)
범퍼카에 타서는 다른 차와 충돌하지 않는 것이지
책의 서문은 읽지 않고,
기스난 CD 뒷면에다 콜로냐를 뿌리는 것이고,
가스레인지를 라이터를 가지고 켜는 것이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튀르키예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지.
  • 웃어른을 보면 손등에 키스하는 인사를 한다. 특히 손등에 키스하고나서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대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경의를 담은 인사법이다. 한국에서 하는 목례는 하지 않는데, 이유는 이슬람교의 교리에 따라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하기 때문이라고. 목례나 절은 오로지 신에게만 드릴 수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38] 그리고 친근한 사이에는 양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거나 볼과 볼을 왼쪽, 오른쪽 서로 맞대는 인사를 하는데 여기에는 동성, 이성을 가리지 않는다. 목례 인사법도 있기는 한데, 한국과는 달리 머리를 살짝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낮게 숙이는 인사로 상대방이 나보다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때 하는 아주 조심스러운 인사법이다. 처음 한두번이라면 모를까, 계속 목례인사만 고집한다면 소심하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다.
  • 집에 들어가면 신발을 벗는다. 다만 신발을 벗어놓는 곳은 따로 없어서 보통은 신발을 한쪽 구석에 놓아둔다.
  • 고인 물을 더럽다고 생각한다.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여기에도 있었구나. 때문에 튀르키예의 화장실 세면대에는 물을 막아놓는 마개가 없으며, 수도꼭지에서 세면대 바닥까지 높이도 물이 떨어지는 동안 손으로 물을 받은다음 세수하기 편하도록 상당히 높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때문에 일반적으로 집에 욕조도 없다. 샤워할때 물이 바닥에 튀지 않도록 일종의 작은 욕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물 막는 마개또한 없고. 목욕은 목욕탕에서
  •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튀르키예인의 생각에서 남자다움이란 '당당하고, 자신있고, 술과 담배를 자주 하며, 싸워야 할 상황이면 물러서지 않는'데에 있으며, 마초주의 '여자다움'이란 '집안에서 모든 일을 다 책임지며, 얌전하고 조신한 몸가짐을 보이는'데에 있다. 때문에 데이트를 할때도 항상 남자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짊어지고 가게 된다. 여자는 못이기는 척 OK만 하면 될 뿐. 심지어 결혼할때에도 집과 혼수 모두 남자측에서 장만하는게 보통일정도. 반대로 집안에서는 여자가 모든 집안일을 짊어지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데, 대부분의 튀르키예 남자들은 자기 집에서 양말이 어디있는지조차 모른다고 한다.[39][40] 특이한 점은 가부장제 정서가 짙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잠자리'도 여자의 권한에 포함되기 때문에 전적으로 여자가 주도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 성관계 자체를 집 안의 평화와 가정을 이루는 여성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튀르키예 남자들은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을 매우 혐오한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 소심한 성격을 어느정도 겸손한 성격이라고 쳐줄 때도 있는 동아시아 사람들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하는 것처럼 웃어른이나 직장 상관이라고 면전에서 눈 깔고 대하는 사람을 튀르키예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튀르키예인의 관점에서 겸손한 것과 소심한 것은 철저하게 다른데, 겸손한 것은 자신의 위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게 '배려'하는 것이라면, 소심한 것은 줏대도 없고, 남이 하자는대로 따라가기만 하고, 매사에 소극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튀르키예인에게 소심하다는 말은 찌질하다는 것과 의미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 그럼에도 매우 감정적이다. 튀르키예인의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있다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을텐데, 이런 일이 있었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 새벽 3시쯤에 갑자기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3년간 암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한 한 노인의 임종판정을 들은 친척들이 일시에 통곡을 한건데, 이를 지켜본 독일인 간호사는 표정 하나 안변하고 단호하게 'Ruhe! (조용하세요!)' 한마디만 말했다. 튀르키예에는 '남자는 평생 세번 운다'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게 자연스럽다고 여기기 때문.
  • 학생, 군인이라는 것에 꽤 큰 가치를 부여한다. 특히 튀르키예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알바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집에서 용돈 받아서 생활하고, 그나마도 거의 대부분이 절대빈곤층 수준으로 헐벗고 지내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배려심이 높다. 단지 학생이라고 해도 식당에서 서비스를 주거나, 돈을 깎아주거나, 심지어 받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학생신분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대중교통이나 박물관, 문화유적, 극장 등지에서 파격적인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역군인이거나 참전용사에게도 상당한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연애관계에서도 학생커플의 경우, 어느정도 더치페이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어차피 돈 없기는 남자나 여자나 매한가지니까. 학생들끼리 모일때에도 기본적으로 더치페이가 원칙이며, 학생 모임중 누군가가 취직을 하거나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이상은 더치페이는 계속된다.
  •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80년대에만 해도 튀르키예에선 안전벨트 착용 의무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교통사고가 많이 나자 정부에서 안전벨트착용 의무를 때렸는데, 그러자 '안전벨트가 그려진 티셔츠'가 히트를 쳤다 멀리서 보면 안전벨트를 맸는지 안맸는지 알 수 없으니까. 담배를 피울때에도 튀르키예인들은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튀르키예에서 무단흡연 벌금은 지금은 튀르키예 환율이 떨어져서 한국에 비해 싸다는 느낌이 들지만 (2020년 현재 96리라=약 14000원) 쇠고기 1.5킬로그램 정도의 가치가 있다. 금연표지판 앞에서 담배피우고 인증샷 찍는게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당당히 벌금내는것도 '남자다움'으로 여겨질 정도. 하기사 남성의 96%가 흡연자인 나라에서 금연제도 확대가 가능키나 한 일이냐마는.
  • 이 나라를 가보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청소용품 광고에 놀랄지도 모른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를 가졌고,[41]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는 가정주부의 능력은 그 집안의 정리상태로 평가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튀르키예의 주부들은 오늘도 청소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집 밖에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들어오지 않으면 집 대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주부도 있을 정도.설령 그게 남편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남의 집의 사정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탓인지, 베란다에서 빵부스러기가 묻은 식탁보를 털다가 빵부스러기가 아랫층 베란다에 고스란히 떨어져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 이 나라에서는 패스트푸드가 일종의 고급음식으로 당당히 대접을 받는다.길거리에서 파는 훨씬 더 맛있는 케밥이나 괴즐레메같은 음식들에 비하면 적어도 1.5배는 더 비싼데, 때문에 튀르키예의 맥도날드 KFC, 피자헛 등에서는 음식을 먹고나서 트레이를 따로 가져가서 버릴 필요가 없다. 가만히 냅두면 직원이 알아서 치워주기 때문.[42]
  • 음식을 불어먹는 것이 무례한 행위로 통한다. 애초에 튀르키예음식은 한국과 달리 국종류조차도 미지근하게 나오는 경우가 보통이라 불 일도 없을뿐더러, 음식을 불면 음식 속에 들어있는 동물, 혹은 식물의 정령이 빠져나간다는 옛 유목민시절의 미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식인 빵을 숭상하기 때문에, 식사후에 빵을 남겨선 안된다. 튀르키예인들은 피치못할 이유로 빵을 남길경우 그 다음 식사때 남긴 빵을 계속 먹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식으로 처리한다. 심지어 빵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거나해서 못먹게 되어버려도 빵에 키스를 하고 이마에 갖다대어 경의를 표한 다음에 동물먹이로 준다.
  • 프랑스식 예법의 영향을 받아서 음식을 먹을때 후루룩하고 마시거나 쩝쩝거리는 소리, 트림, 접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촌스럽다고 여긴다.[43] 물론 손님대접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만연하기도 하고, 괜히 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 하지 않기때문에 목전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지만 나중에 뒷담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는 편이 낫다. 자세한건 식사예절 문서의 튀르키예 문단을 참고할 것.
  •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담배를 매우 좋아한다. 이스탄불 길거리에서 히잡을 쓰고 담배피는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을 뿐더러 심지어 레스토랑에서 아이를 옆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튀르키예 여성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길빵은 기본이며 미용실 안이나 호텔 안에서 흡연을 하고 있는 튀르키예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튀르키예는 담배에 관해 정말로 사탕같은 기호식품으로 생각하는듯하다. 담배 값도 20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라 튀르키예인들이 담배를 간식처럼 어마무시하게 피워대는거일지도... 물론 건강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담배를 안피기도 하며, 성직자나 의사들이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하지만 무시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튀르키예 여행을 가는 한국인들이 담배때문에 굉장히 괴로워하는 경우가 꽤 많다. 한국인들도 한국에서 일하는 튀르키예인(주로 식당 직원이나 아이스크림 상인)과 담배피다가 친해지기도 한다.

8. 전통복장

튀르키예인의 복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조끼 자켓이다. 튀르키예의 전통복장은 각 지역마다 전혀 다른 민족이라 싶을만큼 이질적인 패션을 자랑하지만 이 조끼만큼은 어딜가나 전통복장의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조끼는 말타기 편하도록 개량된 유목민족의 전통복식인데다 튀르키예를 통해서 유럽에 전래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카프탄'이라고 부르는 옷 아랫단의 앞뒤로 틔여진 긴 자켓도 튀르키예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럽에서 로컬라이징을 거쳐 트렌치 코트같은 다양한 형태의 옷으로 발전한다. 또한 파자마처럼 넓은 통을 가진 바지도 튀르키예의 전통복장으로 활동성이 매우 좋기때문에 19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잠옷, 혹은 주아브부대처럼 군복으로 사용했다.

전통적으로 튀르키예인 남성은 머리를 박박 밀었기 때문에 모자 또한 튀르키예 전통복식에 있어 필수요소이다. 전통복식을 보면 튀르키예 여성은 히잡과 니캅, 차도르를 하지않는것을 알수 있다. 물론 투르크인이 이슬람교를 믿게되면서 여성들은 히잡을 쓰게 된것이다. 오스만 제국중기때만 해도 보통 남자들은 터번을 하고, 여자들은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가렸지만 마흐무트 2세의 명으로 1825년부터 제국 관료들부터 페스(fes)라는 꼭대기가 평평한 원통형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이 모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착용을 금지한 1925년까지 널리 착용되었는데, 이때의 풍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오늘날에도 튀르키예인들은 모자를 자주 착용한다. 특히 인기있는 모자는 군모 베레모인데 1980년대 독일에서 긴 자켓에 베레모는 튀르키예인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었다. 지금은 절판된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의 도이칠란트(독일) 내 터키(튀르키예)이민자에 대한 부분에도 나오는 에피소드인데, 튀르키예계 독일인에 대한 독일 내 차별을 설명하면서 한 콧수염 기른 신문기자가 튀르키예인들이 즐겨입는 긴 자켓과 베레모를 하고 맥주집에 들어가서 "남들은 바로바로 맥주 주는데 왜 나는 안줌?" 하고 따지자 가게 주인이 내쫓았다는 일화도 있다.

8.1.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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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서부 에디르네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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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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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동부 엘라즈으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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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카르스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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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오스만 제국시대 얄로바 항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가지각색의 사람들 중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노인과 서구식 양복 위에 페스(Fes)를 쓴 신사가 보인다.

9. 종교

무신론자 비율은 확실하지 않은 상태지만,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무신론자이거나 무교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2010년대 이전까지 튀르키예의 주민등록증에서는 '종교'를 명시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막기 위해 실제로는 종교를 믿지 않거나, 심지어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종교를 이슬람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이고, 고학력자이고, 세속적일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은 튀르키예도 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다.

아무튼 통계적으로 봤을때 튀르키예인의 98.5%는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개신교인들이 누구는 장로회, 누구는 감리회, 누구는 침례회 교회를 다니는 식으로 서로 다른 종파를 믿듯이 튀르키예에서의 이슬람도 단 하나의 종파가 아니다. 정부의 공식적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튀르키예내 시민단체들의 통계에 따르면 대략 15~20% 정도가 시아파의 일종인 알레비파를 믿으며, 수니파내에서도 학파(튀르키예어로는 메즈헵·mezhep)에 따라, 세속주의적 성향에 따라, 따르는 종단에 따라 또 달라진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알레비파를 아예 다른 종교 보듯 하며 튀르키예 내 수니파 무슬림들은 대부분이 하나피파(Hanefilik)를 따르지만 쿠르드계가 많은 지역에서는 샤피이파(Şafiilik)를 따르는 신자들도 많다. 나머지 학파인 말리키파(Malikilik)와 한발리파(Hanbelilik)는 극소수이며 아제르바이잔 이란계 튀르키예인들 중에는 여전히 시아파를 따르는 무슬림도 존재한다.

역사적으로는 칼리파제가 소멸된 이후 튀르키예 공화국 정부에서 설치한 종교부(T.C. Diyanet İşleri Başkanlığı)에서 튀르키예 내 이슬람 종단들을 관리하며, 이 부서의 권한은 상당히 막강해서 모스크를 세우거나 허무는 일, 이맘과 사원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선출하고 퇴출하고 발령내는 일, 튀르키예인의 메카 순례자를 받고 선정하는 일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44] 덕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모스크를 짓거나 기존의 모스크에 들어와 원리주의적 설교를 하는 일은 없다. 금요예배 설교 방침 같은 것도 종교부에서 다 짜여서 나온다. 그러나 튀르키예 공화국 종교부는 어디까지나 수니파 무슬림들만을 관여하며, 알레비파나 튀르키예 내에 소수 존재하는 기독교 종파들에 대해서는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상태다. 가장 최근(2013년)에 트라브존에 위치한 수멜라 수도원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에 돌려줘서 다시 수도원으로 개장하게 한 일 정도가 전부라 당시에 어마어마하게 뉴스에 실린 적이 있다.

그래도 극단주의가 없지는 않는데, 쿠르드인이 사는 동부 지역이 특히나 극단적인 이슬람이 퍼져있는 곳으로 이유는 시리아 이라크 등 아랍 국가와 접하고 있고, 전통적으로 발전된 서부에 비해 낙후되고 소외되어 있어 종교로 한을 풀려는 성향 때문이다. 반면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카자흐나 키르기스, 우즈벡, 튀르크멘 등의 중앙아시아계 튀르키예인에게는 이슬람이 그들의 생애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 극단주의도 적다.

튀르키예내 비 무슬림들은 공식적인 통계로는 1.5% 정도이며 의외로 그중 다수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들이다. 그리스인 튀르키예 독립 전쟁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으로 거의 다수가 추방되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가 된 것이다. 그 외 이스탄불 가톨릭 신자들이 소수 있으며, 남동부 지방에는 쉬리아니(Süryani, '시리아인')라고 불리는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도 있다. 특히 마르딘(Mardin) 지역은 인구의 절반이 쉬리아니들이며 이들은 고대 아람어를 여전히 전례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튀르키예에는 종교적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이들의 전례는 허용되지만 철저한 세속주의적 원칙으로 인해 다른 종교처럼 제의를 입고 교회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종교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유대계 튀르키예인들도 있다.

10. 정치

한편 지역감정 내지 정치갈등으로 인해 튀르키예인들끼리도 '흰 튀르키예인'(Beyaz Türk)과 '검은 튀르키예인'(Kara Türk)라고 자기들끼리 나누고 대립하기도 한다. 여기서 흰 튀르키예인이든 검은 튀르키예인이든 인종으로 분류하는건 아니고, 세속주의적이고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적 성향을 지지하는 도시거주민들, 군인, 공무원, 기타 엘리트들을 흰 튀르키예인이라고 하고, 반대로 종교적이고 이슬람적인 가치를 지키려고 하며 보수, 수구성향을 지지하는 시골거주민들을 검은 튀르키예인이라고 분류한다. 혹은 비하적인 의미로 검은 튀르키예인을 아시아 튀르키예인(Asya Tür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튀르키예에서도 아시아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건 진짜 빼도박도 못할 비하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용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갈등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스로 검은 튀르키예인이라고 어필하는 발언을 자주 하며, 반서구 성향의 정치인들도 흰 튀르키예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자주 한다. 물론 반대로 세속주의 정당의 정치인들이나 전통적인 엘리트들도 검은 튀르키예인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이밖에도 회색 튀르키예인(Gri Türk)이라는 분류도 있는데,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서구 문화를 향유하는데 아무런 거부감도 없지만 이슬람의 전통만은 고수하는 흰 튀르키예인과 검은 튀르키예인의 중간에 위치한 일부 도시거주민들을 일컫는다.

11. 인물

※ 역사적, 사회적 중요 인물은 볼드체로 기재 및 요약 설명.
※ 튀르키예인이 아니라 스스로 오스만인(Ottomans)이라 부르던 오스만 제국 시절을 포함한다. 튀르키예인은 20세기가 되어서 생긴 개념이다.

11.1. 왕가 정치인

11.2. 군인

  • 피리 레이스 - 16세기의 대제독 겸 지리학자
  • 오스만 누리파샤 - 1877~1878년에 벌어진 러시아와 오스만의 전쟁 당시, 요충지인 플레브네를 몇 달 동안 방어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유명해진 인물.
  • 이스마일 엔베르 - 청년 투르크당 소속으로, 오스만 제국 최후의 전제군주인 압뒬하미트 2세를 폐하고 꼭두각시 황제인 메흐메트 5세를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로써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지위에 올라 제국을 좌지우지하며, 독일과 동맹을 맺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지만 그 결과는...
  • 타흐신 야즈즈 - 6.25 전쟁 직후 전역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비중은 군 시절에 비해 미비하다.

11.3. 방송 및 예술계

11.4. 스포츠계

11.5. 성직자

12. 튀르키예인 캐릭터

※ 해당국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 오스만 제국 시절을 포함하며, 이 경우 ☪️ 표를 붙인다.

배우 및 성우가 튀르키예인인 경우 ☆표시.

12.1. 한국 작품

12.2. 일본 작품

12.3. 미국 작품

12.4. 기타 국가 작품

13. 관련 문서


[1] 튀르키예인의 원류 중 하나인 오스만인이며 현대 튀르키예인이 아니다. [2] 튀르키예인 개념을 만든 아타튀르크는 셀라닉 출신의 발칸 튀르키예인이며, 그리스계, 알바니아계, 유대계라는 설이 있다. 아타튀르크 본인은 확실한게 없다며 셋 다 부정했지만. [3] 라즈( 조지아)계 튀르키예인이며, 부인인 에미네 에르도안은 아랍계 튀르키예인이다. [4] 아버지는 알바니아계이고 어머니는 불가리아계이다. [5] 드라마에서 러시아인 배역으로 출연했는데 꽤 그럴듯 해 보인다. [6] 룸 술탄국이 멸망하고 그 영토에 수립된 여러 튀르크계 공국 가운데 하나인 카라만 공국의 군주(재위기간은 1261~1277년). 카라만 공국은 1250년에 창건되어 튀르크계 공국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으나, 그보다 반세기 가량 후에 역시 룸 술탄국에서 독립해 나온 초창기 오스만 제국에게 점차 밀리기 시작하더니 1483년에 오스만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7] 튀르키예의 상징 인형극이라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그리스인이라고 한다. 그리스인 노동자인 두 사람은 웃기는 말을 너무나도 잘해서 사람들을 웃겼는데 하루는 술탄의 명령으로 거대한 공사를 하던 도중 사람들이 지쳐 힘을 못쓰자 이 둘이 열심히 웃기는 이야기를 하여 사람들이 웃으며 즐겨했는데 술탄이 지나가다가 이걸 봤는데 그는 그만 오해하고 "이놈들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놀고 있는거냐?" 분노하여 두 사람을 죽이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도로 울적해하며 두 사람을 안타깝게 여겼고 신하들이 뒤늦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술탄도 경솔함을 후회하고 둘을 기리는 놀이를 하도록 했는데 그중 인기를 끌던게 바로 이 인형극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리스인들은 이걸 가지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튀르키예에선 그만큼 다양한 인종들을 품어왔고 그리스인도 추모하며 이렇게 문화로 남기는 것 아니냐며 콧방귀를 뀐다. 사실인즉 이 인형극은 16세기 초. 이르면 15세기 초에 상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시기라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무슬림이냐 기독교도냐만 문제삼던 시절이다. [8] 생각의외로 문화적 코드가 은근히 맞다. 연애문화는 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가정문화는 정말로 비슷하다 정교회권 동유럽국가와 튀르키예의 경우 사회적으로 남성이라면 남들에게 틈을 보여서는 안되고 전적으로 가정을 책임져야하며 때로는 맞서서 싸울 줄 알아야 하는 마초문화가 있으며 여성의 경우 자녀들과 남편을 위해 전적으로 가정일에 손을 놓지 말아야하는 희생정신과 생활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모두 남성들이 바깥일에만 오로지 전념하고 집안일은 물론 심지어 잠자리 마저 여성들의 고유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등 절대로 딴지걸거나 잔소리 하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다. 즉 기독교와 이슬람인 고유의 문화적인 부분만 벗겨내면 상당히 비슷한 부분. [9] 오스만 제국이 16세기에 신성로마제국과 체결한 조약에서도 둘 모두 유럽의 일원으로 간주했으며, 제국의 쇠퇴기 시절 별명이 유럽의 환자였다. 그리고 현대의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고. [10] # [11] 튀르키예 통계청에서는 소수민족, 소수종파에 대한 통계를 내지 않는다. 정부 공식 정책은 "튀르키예는 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레비나 쿠르드에 대한 통계는 매우 유연적이며, 주로 언론사나 CIA, 쿠르드정당등의 통계에 의존하는 추세이다. 위의 1000만명은 최소 통계로 최대 2,600만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으며, 알레비파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거짓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2,600만이라는 수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참고로 1,000만 명이라면 튀르키예 인구의 1/7(14%)에 해당. [12] 이즈미르 행진곡 [13] # [14] 이러한 양상은 7세기 이슬람 통치 이후의 이집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15] 물론 중국학계에서는 돌궐인들은 몽골계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16] 왼쪽 사진은 신디 크로퍼드의 1992년 시절이지만 오른쪽 사진은 튀르키예인 모델인 튈린 샤힌의 2000년대 초반 사진이다. 그녀의 부모는 아나톨리아 중부 도시인 시바스(Sivas) 출신으로 그녀는 덴마크에서 태어나 패션 모델 활동하다가 튀르키예로 돌아와서 TV 진행자, 배우를 하고 있다. [17] 물론 중동 백인과 비슷한 사람도 당연히 있다. [18] 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를 잘하는 자국인을 옷차림만 바꾸고 유럽으로 보내 스파이로 썼다. 물론 유럽 열강들도 오스만 측에 튀르키예어를 잘하는 스파이를 보내게 했지만 말이다. [19] 데브시르메라고 해서 튀르크계가 아니더라도 일단 재능을 인정받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고위 장교나 지방 총독으로 나가는 길이 얼마든지 보장되어 있었고, 일이 잘 풀릴 경우 이브라힘 파샤같이 최고위 벼슬인 재상까지 오른 경우가 대단히 많았다. [20] 그리스인, 남슬라브인, 아르메니아인들 [21] # [22] 이건 당연히 잘못된게 대충 생김새나 문화가 비슷하다고 같은 불교, 유교 문화권인 중국, 일본을 같은 나라 아니냐고 주장하는것과 비슷하다. [23] 물론 이러한 사례는 유럽 백인을 닮은 아랍인들에게도 적용된다. [24] 사실 사정이 있긴 하다. 튀르키예 연예인들의 고향은 상당수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한 서부지방 출신이다. 또한 종교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 TV나 많은 사람들 앞에 출현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카타르, 바레인, UAE같은 걸프국가들에서 여성배우나 아나운서들이 대부분 개방적인 레바논, 이집트 출신인 이유와 비슷하다. [25] 독일 혼혈인 배우 메리옘 우제를리(Meryem Uzerli) 등. [26] 튀르키예 여배우를 본 한국사람들 반응 영상 [27] 오스만 제국이 계승한 동로마의 유산 가운데 하나가 건축 양식인데, 콘스탄티노플 정복 150년 전인 14세기 초반에 오스만 제국의 옛 수도 가운데 하나인 부르사에 지어진 부르사 대(大) 모스크만 하더라도 지붕에 동로마의 돔형 구조를 씌운 모양이다. [28] 1차대전 이후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인구 교환을 실시했다. 이 때 그리스인/튀르키예인 구분 기준이 언어도 혈통도 아닌, 종교였다. 예를 들어 카라만, 카파도키아에 살던 정교회인들은 만지케르트 이후 남하해 그리스화된 튀르크계였고 튀르키예어를 모국어로 썼지만, 그리스인으로 판명되어 죄다 추방당해서 이들의 행적은 쓸쓸한 마을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살던 집이나 성당에 가면 튀르키예어 전례문을 그리스 문자로 음차해 표기한 것을 볼 수 있다. [29] 마찬가지로 켈트, 게르만, 라틴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계 베르베르인과, 서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로 그리고 이베리아까지 건너온 아랍인이 섞인 스페인인, 포르투갈인도 외모적 특징만 보면 튀르키예인, 그리스인과 구별하기 힘들정도로 유사한데, 튀르키예인들이 백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들도 백인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물론 이베리아의 두 국가가 북부지역 한정으로만 하면 그리스와 튀르키예보다는 전 세계적인 통념상으로 인식되는 백인의 외모는 조금 더 도드라지는 편이긴 하다. 왜나하면 이런 서양인, 백인에 해당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외모가 도드라지는 켈트인은 기원전부터 게르만인은 약 4세기 후반부터 이베리아 북부에 집중적으로 정착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중부와 남부는 물론 전체적으로 가장 많이 흔하게 분포한 민족은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베리아인과 레반트 지역에서 넘어온 페니키아 혼혈인종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미세한 일부 국한된 지역적인 차이 빼고는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튀르키예 모두 다른 유럽국가들 보다는 평균적으로 외모가 염연히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30] 이 여자 머리색은 갈색에 가까운 더티 블론드 헤어다. [31] 한 조사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금발비율은 튀르키예 전체인구의 4%에 불과하나 벽안비율이 무려 튀르키예 전체인구의 18%(경기도민 인구)가 된다. # [32] 다만 상업에만 종사한 것은 아니고, 모세스 하몬(Moses Hamon) 같은 경우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쉴레이만 1세의 어의로 임명되었다. [33] 나흐츠반과 가까운 국경지대에 아제르바이잔어를 쓰는 마을이 국소적으로 분포한다. [34] 폴란드 분할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해온 폴란드 이주민의 후손. 이스탄불 근교에 폴란드인 마을인 폴로네즈쾨이(Polonezköy)가 있다. 이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고 몇 천명 정도로 추산된다. 과거에는 수만명 가량 있었으나 추후에 동화되었기에 숫자는 더 적은 걸로 보인다. [35] 요즘은 중앙아시아 지향도 포함할 수 있을만큼 중앙아시아의 튀르크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튀르크 민족주의자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하는 짓이 파시스트 같아서 문제지... [36] 과거 과대했던 민족주의 역사관의 반동으로 이 "형제의 국가"라는 것에 한국과 타민족의 연관성을 무조건 환빠로 모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실제 이 형제라는 것은 중국 한족들이 북방이민족왕조와 굴욕적인 협정을 맺으면서 형, 동생같은 군신관계로 쓴 것이 아니라 중국 학자 판광단(潘光旦)에 의하면 동류의 의식으로 쓴 내용이라는 것이다. [37] 북서쪽 트라키아 지방은 술( 라크)에 쩔어사는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과 말 끝마다 bea를 붙이는 트라키아 사투리, 서쪽은 반 에르도안의 철옹성 이즈미르, 중부는 보수( 콘야) 및 친 에르도안, 남서부 해안가는 관광객 여자들을 꼬시려고 작업하는 남자들, 모든 음식에 올리브유를 치는 에게해 지방 사람들의 습관, 흑해지방은 코믹한 이미지와 말 끝마다 'da'를 붙이는 이 지방 특유의 사투리, 함시라는 이름의 멸치과 생선을 즐겨먹는 습관, 남동쪽은 쿠르드어 단어들로 말하는 쿠르드볼들 - 참고로 하는 말들을 해석하자면 hewal (친구), biji (만세), apo (위대한), serok (지도자), kuzi keri (쿠르드어 욕설로 당나귀보지라는 뜻) - 튀르키예로 밀려들어오는 시리아볼들이 묘사되어 있다. [38] 때문에 명절날 세뱃돈 이야기를 하면 튀르키예사람들은 기겁한다. 알라께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예의인 절을 사람에게 서슴없이 하는데다가 인사를 하면 돈을 준다는 대목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39] 과거의 한국에서 부엌에 들어온 남자가 남자가 왜 부엌에 들어오냐며 혼나기까지 했던 것과 같은 매커니즘인데. 이런 사회에서 남자가 스스로 밥을 해먹으려고 부엌에 들어온다는 것은 여성들만의 공간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서는 여성의 주부로서의 업무능력에 대해 대놓고 도발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은 남자가 돼서 능력도 없고 돈도 못 버니까 내가 돈을 벌어야겠어" 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 [40] 먼 곳의 문화라고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이 해주던 밥을 잘만 먹고 다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혼자 밥을 해먹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할 일이 없어저서 기뻐하기 보다는 "내가 해주는 밥이 맛이 없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가정주부라면 충분히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문제로 연결될수 있다. [41] 특히 이슬람교에서는 예고없이 찾아온 손님을 신이 보낸 사람로 여기고, 남에게 베푼 선행은 언젠가 수십배로 돌아온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더욱 더 손님에게 극진한 면도 없잖아 있다. [42] 물론 외국인 손님들은 자기나라에서 하던 버릇이 있어서 직접 자기가 먹은 트레이를 치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높은 확률로 알바들의 밝은 표정 썩소을 볼 수 있다. [43] 유럽에선 무례한 행위 맞다. 하지만 튀르키예인들도 과거에는 음식을 매우 요란하게 먹었기 때문에 시골로 내려갈수록 강박적으로 이를 지키려고 주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도시인들의 관점에서 봤을땐 촌티나는 짓이다. 사실 애초에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는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무례한 행위다. 한국도 마찬가지고. [44] 애초에 종교부라는 부처 자체가 오스만 제국 시절에 있던, 칼리프 바로 다음가는 이슬람 지도자인 셰이휠이슬람이 하던 일을 계속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그렇다. [45] 정치인이지만 축구선수로써 13년간 카슴파샤 SK에서 선수생활을 했다고한다. [46] 아제르바이잔인이며 튀르키예 국적이 있다. [47] 튀르키예계 한국인. [48] 덴마크 출생이다. [49] 에즈기 아사로올루라고도 읽으며 터키 배우중에서 국민 배우급으로 인기가 높다. [50] 독일 겔젠키르헨 태생이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해 독일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실은 튀르키예 국적도 갖고 있기 때문에 튀르키예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튀르키예계인 일카이 귄도안 엠레 찬은 튀르키예 국적이 없으므로 그냥 독일인이다. [51] 튀르키예계 독일인 [52] 튀르키예, 독일 이중국적 [53] 그리스계 튀르키예인 [54] 사실 이름만 튀르크식이지, 게임 내의 지역은 실제 튀르키예가 아닌 가상의 국가다. [55] 오스만 1세는 오스만 문명이 처음으로 추가된 문명 3, 메메드 2세는 문명 4, 쉴레이만은 문명 4부터 문명 5를 거쳐 문명 6에서 오스만의 지도자로 나왔다. 그 외에 하이르 앗 딘이나 미마르 시난을 비롯해 오스만인 몇몇이 위인으로 나오기도 했고 오스만 문명의 유닛이나 이름 없는 주민들도 모두 포함될 수 있겠으나, 성격이나 외모 등이 드러나는. 즉 캐릭터라고 할 만한 인물은 저 셋이다. [56] 출신지가 현 튀르키예 영토인 아나톨리아 지방이다. 다만 신석기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이 때 아나톨리아는 튀르키예는 그만두고 히타이트가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한국 워햄 팬덤에서는 황제를 터키인이라고 부른다거나 케밥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는 설정을 붙이기도 한다. [57] 코레류 최초의 터키인 캐릭터 [58] 이벤트로 얻을 수 있는 특전부대 레오파르트 1의 터키군 전차인 Leopard 1T "Volka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