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30613><colcolor=#fff> 튀르키예 제7대 공화인민당 대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Kemal Kılıçdaroğlu[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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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8년 12월 17일 ([age(1948-12-17)]세) | ||
튀르키예 툰젤리 나즈미예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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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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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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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0613><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카메르 클르츠다로을루 어머니 예무시 클르츠다로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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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남매 6명 | ||
배우자 | 셀비 클르츠다로을루[2] | ||
자녀 | 1남 2녀 (아들 케렘 클르츠다로을루[3], 딸 제이넵 클르츠다로을루, 아슬르 나디르) | ||
학력 | 앙카라 가지 대학교 ( 경제학 / 학사)[4] | ||
약력 |
제7대 공화인민당 대표 (2010-2023)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부의장 (2012-2014) 대국민의회 의원 (2002-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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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이슬람 ( 알레비파) | ||
소속 정당 |
[[공화인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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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Bay Kemal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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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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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2.1. 정치인 이전
1948년 12월 17일 툰젤리(Tunceli) 도, 나즈미예(Nazımiye) 군 발르자(Ballıca)의 알레비파 가정에서 7남매중 4째로 태어났다. 원래 집성촌에[6] 거주하면서 본래 성씨는 카라불루트(Karabulut, '흑운')였으나, 그의 아버지에 의해 1960년대에 클르츠다로을루(Kılıçdaroğlu, '검객의 아들')로 개성(改姓)하였다.[7] 1967년 엘라즈으 상업 고등학교(Elazığ Ticaret Lisesini)를 졸업하고, 1971년 앙카라 가지 대학교 경제학을 전공하였다.1971년 회계사보조 시험에 합격하여, 튀르키예 재무부(Maliye Bakanlığı)에 취업하였으며, 이후 정식 회계사가 되어 프랑스에 거주한 바 있다. 군복무는 이즈미르 53여단 사령부에서 완료하였다. 1983년까지 회계사 업무를 하였으며, 세입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91년 SGK의 전신인 Bağ-Kur에서 근무하였으며, 1992~1996년, 1997~1999년 두 차례에 걸쳐 사회보험청(Sosyal Sigortalar Kurumunun) 청장을 역임하였다.
2.2. 정치 활동
당초 뷜렌트 에제비트가 이끌고 있던 민주좌파당(DSP)에 입당해 정치 생활을 시작했으나 1999년 대국민회의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부패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공화인민당 대표인 데니즈 바이칼의 눈에 들어 공화인민당 몫의 튀르키예 상업 은행(Türkiye İş Bankası)[8]이사회에 들어가게 됐다.2002년에는 공식적으로 공화인민당에 입당하여, 이스탄불 2구 에 당선되었다. 주로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부패 혐의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폭로 등으로 관심을 받았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이스탄불 제 2선거구 국회의원과, 2015년 6월, 11월[9], 2018년 선거에 각각 이즈미르 제 2선거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2009년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 나와 낙선한 바 있다.
2010년 전당대회에서 공화인민당 33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10]로 취임하였다. 하지만 당대표로서의 평은 그다지 좋지만은 못하다. 처음 취임하는 과정부터가 논란의 연속이었는데, 데니즈 바이칼 전 대표가 전당대회 직전에 불륜 스캔들[11]로 불명예 퇴진하고, 무주공산이 된 당대표 경선에 당시 공화인민당 원내대표였던 클르츠다로을루가 단독출마해 어부지리로 당선된다.
연이은 선거 패배로 인해 당세가 위축된 공화인민당으로서는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를 선출한 이후 지지세 확장과 선거 승리를 기대했으나,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그런 당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의 외연확장과 선거 승리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치른 2011년 대국민의회 선거에서는 수치상으로 지지율을 5% 가량 올리는 등 선전했으나, 이는 다른 군소 좌익정당이었던 젊은 당(Genç Parti)이 반강제로 선거 불출마 결정을 내리면서 이쪽의 지지자를 흡수했기 때문이며, 정작 정의개발당 지지율 주요 하락 원인은 정의개발당을 지지하던 동남부 쿠르드인의 표 일부가 인민민주당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2011년 선거에서도 정의개발당에게 집권당의 위치를 뺏기는커녕 전체의석 60% 확보를 간신히 저지하는 데에 그쳤다.
2014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주의운동당과 협력하여, 이슬람 협력기구 사무총장을 지낸 에크멜레딘 이흐사노을루(Ekmeleddin İhsanoğlu)를 후보로 냈으나, 2011년 선거에서의 공화인민당 + 민족주의운동당 지지율이었던 38.99%에도 미치지 못하는 38.44%를 득표하며 에르도안 대통령 후보에게 패배한다. 당내에서는 이 패배로 인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었고[12], 2018년 대통령 선거 후보이기도 한 무하렘 인제가 당권에 도전했으나 2015년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대표로 당선되었다.[13]
2015년 6월 대국민회의 선거에서 당대표로 선거를 이끌었으며[14], 비록 선거에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과반이 2002년 이후 13년만에 실패로 끝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상당한 타격이 되었다. 문제는, 정의개발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이 이번에도 공화인민당의 선전 때문이 아니라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쿠르드인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지지자가 민족주의운동당으로 떨어져나오고, 쿠르드인 지지자는 인민민주당으로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정부 구성에 실패한 에르도안은 조기 총선으로 승부수를 던졌고, 이어진 11월 대국민회의 선거에서는 반 쿠르드 메시지를 강화하여 떨어져 나간 지지자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한 정의개발당에 과반을 다시 내주게 되었다. 그 와중에 공화인민당의 득표율은 6월 24.95%, 11월 25.32%로 오히려 2011년보다 떨어졌다.
2017년 튀르키예 개헌 투표[15]에 대해 반대하며 같은 해 6월부터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정의의 행진(Adalet Yürüyüşü)을 주도하였다. 하지만 개헌 투표에서 반대표 비율은 2015년 11월 선거에서 민족주의운동당[16], 공화인민당, 인민민주당의 지지율 합인 47.98%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48.59%에 그치며 또 지지층 확장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무하렘 인제가 또다시 당권에 도전했으나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2018년 당대표 선거에서 인제 후보에 2연속 승리하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2018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에서 무하렘 인제(Muharrem İnce)를 후보로 내세웠으나, 1차 투표만에 패배하였다.[17] 대국민회의 선거에서는 좋은 당과 공조하여 민족 연합(Millet İttifakı)을 구성하여 다시 한 번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과반 저지는 성공하였으나, 민족주의운동당의 과거 지지자를 모두 끌어오지는 못했기 때문에 정의개발당과 민족주의운동당의 선거 연합인 공화 연합(Cumhur İttifakı)에 다시 의회 과반수를 내주었다. 이 때 좋은 당의 창당을 돕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이적시킨 것은 야당 지지세를 보전하는 데 성공한 좋은 선택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 당대표로 선거를 이끌면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는 자신이 발굴한 후보인 에크렘 이마모을루가, 앙카라 시장 선거에서 또한 자신이 설득해 복당한 만수르 야와시가 각각 승리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20년 7월 당대표 연임에 성공하였다.
2022년 민족 연합(Millet İttifakı)[18] 정당 등과 공조하여, 6자 회의(Altılı Masası)를 구성했으며,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3년 3월 6일, 공화인민당을 포함한 6개 야당의 합의로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다. # 이는 지지자들과 당원의 일반적인 기대에 반하는 결정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정의개발당의 스파이로 잠입한 알리 바바잔과 아흐멧 다우토을루가 본인의 대선 출마를 종용했다, 본인의 욕심이 과했다 등등 여러 가지 소문들이 무성하다. 이후 튀르키예 정계의 흐름으로 보아 두 가지 원인이 같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결국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출마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클르츠다로을루는 자신이 당선되면 에르도안 이전의 의원내각제 체제로 되돌려놓겠다고 공약했다. 또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고 중앙은행을 자율적 조직으로 복귀[19]시키겠다고도 약속했다.
2023년 5월 14일 열린 1차 투표에서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44.9% 득표에 그치며 2위를 기록했다. 예상을 깨고 1위로 올라선 에르도안 대통령의 득표율 역시 50% 아래로 내려오면서 어렵사리 결선 투표가 성사되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통해 득표율을 0.48%p만 끌어올리면 되는데 반해 클르차다로을루 대표 입장에서는 3위를 기록한 시난 오안 후보와 승리당 지지층까지 다시 한번 포섭해 완전히 흡수해야하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았다. 결국 이변은 없었고 에르도안이 다시 당선된다.
패배 요인으로는 에르도안이 표를 매수하기 위해 지진으로 집을 잃은 자들에게 무상으로 집을 건축해 나눠주겠다는 등의 다량의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우며 지방 빈민들의 민심을 산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튀르키예와 소수민족 쿠르드족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한 것이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쿠르드족에 유화적 메시지를 던지며 쿠르드족 표를 흡수하려고 시도했으나, 이는 에르도안에 실망했던 지방의 서민들이 클르츠다로을루에게는 더 실망하는 계기만 만들어줬고, 결국 이는 8%밖에 되지 않는 쿠르드 표를 얻기 위해 큰 희생을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1차 투표 이후에는 시난 오안과의 연대를 거부당하고 승리당에 붙어서 선거운동을 진행했으나, 이는 클르츠다로을루가 친쿠르드-반쿠르드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만들었고, 결국 간신히 붙잡았던 쿠르드 표까지 이탈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선거 패배 이후에도 당대표직을 유지했으나, 당 안팎에서 패배 책임론이 불거지며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비판이 빗발쳤다. 그러나 꿋꿋이 자진 사임을 거부하며 직을 유지했고, 2023년 11월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며 대표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금권 선거와 권위주의 행보를 맹렬히 비난하던 야당 대선후보였다는 정체성이 무색하게, 일방적으로 본인에게만 유리한 경선 진행을 강행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 당직자들은 물론 당원들에게도 구설수에 올랐다. 당대표 후보들 간 연설에서는 타 후보들에게 촉박할 정도의 시간 제한을 두어 발언을 중간에 끊어버리기까지 해놓고 본인 혼자 투표 개시 시각을 훌쩍 넘겨 40분씩이나 연설했으며, 투표 전 대의원들에게 식사와 선물을 접대하는 등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연설이 끝난 뒤 단상에 오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으로부터 연설의 길이와 타 후보의 발언권 존중에 관한 지적을 받자 크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장장 13년을 당대표로 재임한 끝에 스스로 나선 대통령 선거에서 패했음에도 대표직을 이어가려 추태를 부린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결국 당대표 경선 결과 536표를 획득, 812표를 얻어 과반 득표를 달성한 외즈귀르 외젤 원내부대표에게 큰 격차로 패배하며 13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신임 당대표가 된 외젤 의원과 그를 지지한 이마모을루 시장의 당내 신흥 계파 '변화' 그룹이 새로운 당 주류로 떠오른데다 패배의 과정마저 깔끔하지 못했기에 향후 정치 행보가 불투명해졌다는 평. 그럼에도 오랫동안 당대표로 재임하면서 쌓아놓은 당내 지지세가 건재했는지, 본인과 동향이자 지인으로 추정되는 툰젤리 출신 지역 주민의 장례식이 치러지자 외젤 대표가 조화를 보내고 외즈귀르 첼릭 이스탄불 지역당 대표가 장례식에 직접 조문을 오는 등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임 대표로서 받는 예우도 거기까지였는지 2024년 3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인을 지지하는 당내 파벌의 대의원 출신 예비후보들이 공천에서 무더기로 탈락하는 비극을 목도해야 했다. 당연히 이에 반발하며 공천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외젤 대표와 이마모을루 시장을 중심으로 당권을 쥔 신임 지도부가 이를 수용해 제대로 번복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
그렇게 본인이 대표직에서 물러난지 5개월여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당이 35년 만의 전국 득표율 1위를 달성하고,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를 포함해 주요 5대 도시 광역단체장을 모두 석권하는 승리를 거두면서 외젤 대표 체제가 공고해지며 당내 입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당 지지층 일각에서 "당신이 에르도안 22년 장기집권의 진짜 원인이었다"며 본인의 당대표 장기 재임이 결과적으로 무능했음이 증명되었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 당내 입지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 역시 크게 줄어들 전망이라 향후 행보가 한층 암울해졌다.
3. 여담
- 반대파의 폭행이나 테러공격등 험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일을 확대시키지 말라"는 등 화내지 않고 온화하고 차분한 대처를 보여왔기 때문에 "튀르키예의 간디", "간디 케말"이라는 별명이 있다. #
- 튀르키예 출신인 알파고 시나씨는 유튜브에서 진행한 2023년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관련 평론 영상에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지역적으로도 비주류의 비주류인 지역[20]이고 심지어 종파적으로도 비주류[21]라며 그의 대권 가도에 이런 요소들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이 사람의 장남 케렘 클르츠다로을루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2 | 제22대 튀르키예 국회의원 선거 | 이스탄불 2구[22] | 347,208 (22.24%) | 당선 | 초선 | |
2007 | 제23대 튀르키예 국회의원 선거 | 418,826 (25.36%) | 재선 | |||
2009 | 제30대 이스탄불 시장 선거 | 이스탄불 시장 | 2,568,710 (36.98%) | 낙선 (2위) | ||
2011 | 제24대 튀르키예 국회의원 선거 | 이스탄불 2구 | 730,589 (29.39%) | 당선 | 3선 | |
2015 | 제25대 튀르키예 국회의원 선거 | 이즈미르 2구 | 635,152 (45.64%) | 4선 | ||
2015 | 제26대 튀르키예 국회의원 선거 | 668,344 (46.83%) | 5선 | |||
2018 | 제27대 튀르키예 국회의원 선거 | 622,748 (41.55%) | 6선 | |||
2023 | 제13대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 튀르키예 | 25,504,552 (47.82%) | 낙선 (2위) |
총선에서는 후보 명부 앞쪽 순번을 받거나 공화인민당 우세 지역에 출마하는 등 딱히 모험을 하지 않아 무조건 당선됐지만, 정작 자신의 개인적 역량이 중요한 광역단체장과 대선에서는 낙선을 이어갔다.
5. 둘러보기
[1]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ceˈmal kɯˌɫɯtʃ.daˈɾoːɫu\]. 한글표기 시 형태소 단위로 분절한 클르츠다르오을루·클르치다르오을루 등의 다른 표기가 존재하나 언론 등재가 가장 많은 표현인 클르츠다로을루를 표제로 하였다.
[2]
Selvi Kılıçdaroğlu, 기자 출신
[3]
1983년, 튀르키예 정치학자, 고려대학교 정치학 박사
[4]
Ankara İktisadi ve Ticari İlimler Akademisi Ekonomi Maliye (Lisans)
[5]
(
공화인민당,
좋은 당, 민주당,
민주진보당,
행복당, 미래당)
[6]
혈연으로 이어진 집성촌이 아니라 1934년 성씨법이 제정되면서 주민들이 성씨를 만들어야 할 일이 생기자 귀찮았던 공무원이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성씨를 지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만들어진 집성촌이다.
[7]
튀르키예는 2013년까지 호주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호주에게만 성씨 변경 권한이 있었다.
[8]
민영은행이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설립했기 때문에 그가 주식을 갖고 있었고, 아타튀르크 사후 유언으로
공화인민당에 이 주식의 소유권을 넘겼기 때문에 공화인민당이 주요 주주로 있다.
[9]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6월 선거에서 과반의석 득표에 실패, 정부 구성이 되지 않아 조기 총선
[10]
아타튀르크,
이뇌뉘, 에제비트, 바이칼, 체틴, 외이멘에 이어 7번째.
[11]
전당대회 직전에 바이칼 전 대표와 같은 공화인민당 국회의원 네스린 바이토크가 불륜을 저지르는 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되었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바이칼의 사무실과 집에 각각 3개와 12개의 카메라를 몰래 설치해 두고 2년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불륜 사실 자체는 비도덕적인 행동이고, 특히 이곳은 이슬람 문화권인 튀르키예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12]
애초에 이흐사노을루는 케말주의, 세속주의가 기본인
공화인민당 지지자들과 결이 맞지 않음.
[13]
평당원 여론조사에서는 인제 후보가 앞섰으나 클르츠다로을루는 후술할 바와 같이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대의원들을 포섭하여 경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14]
선거 슬로건: 아나톨리아의 케말
[15]
현행 내각제 폐지, 대통령제 도입, 총리직 폐지, 국회의원수 600명 증원, 대법관 및 대법관 구성 변경 등 포함
[16]
당 공식 입장은 개헌 찬성이었으나 지지자 절대다수는 반대에 투표했다.
[17]
여기서 인제 후보는 나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2017년 개헌 국민투표 이후 갈 곳을 잃은 민족주의운동당 지지자들의 절반 가량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여 2000년 이후 공화인민당 최고 득표율인 30.64%를 기록했다.
[18]
공화인민당,
좋은 당, 민주당, 민주진보당, 행복당, 미래당
[19]
에르도안 대통령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을 강력하게 압박해 굴복시켰다.
[20]
툰젤리는 인구가 10만명도 안되는 지역인데다 나즈미예는 툰젤리에서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진 지역이다. 게다가 동부에 있어 시골이나 마찬가지
[21]
알레비파
[22]
바이람파샤,
베식타쉬, 베이오을루, 에미뇌뉘, 에센레르, 에윕, 파티흐, 가지오스만파샤, 캬으트하네, 사르예르, 쉬실리, 술탄가지, 제이틴부르누 구. 일반적으로 여행객들이 "이스탄불" 하면 떠올리는 장소들이 모두 모여있는 지역이며, 따라서 유동인구가 많고 분위기가 활발하며 교통이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치안이 불안정하고 동네가 시끄럽기 때문에 베식타쉬나 보스포러스 해협 주변을 제외하면 고소득자가 사는 지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