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1:40:17

프랑스 외인부대

<colbgcolor=#fff> 프랑스 외인부대
Légion étrangère
French Foreign Legion
파일:프랑스 외인군단기.svg 파일:프랑스 외인군단 엠블럼.svg
깃발 엠블럼
창설일 1831년 3월 10일
국가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소속 파일:프랑스 육군 로고.svg 프랑스 육군
규모 9,000명
참전
모토 명예와 충성
Honneur et Fidélité
위치
웹사이트 파일:프랑스 외인군단 엠블럼.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편제
2.1. 프랑스 주둔2.2. 해외 주둔
3. 역사4. 생활상
4.1. 입대 조건4.2. 입대자의 국적4.3. 처우4.4. 진급4.5. 간부4.6. 입대 후 훈련4.7. 여군
5. 한국인 외인부대원
5.1. 출신 인물
6. 외인부대에 대한 오해들
6.1. 외인부대 = 특수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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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첫째. 외인부대원, 우리는 명예와 충성으로 프랑스에 복무한다.
(Légionnaire, tu es un volontaire, servant la France avec honneur et fidélité.)

둘째. 각각의 외인부대원은 국적, 인종 또는 종교를 초월한 무장한 군인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가족이며 긴밀한 연대를 보여준다.
(Chaque légionnaire est ton frère d’armes, quelle que soit sa nationalité, sa race ou sa religion. Tu lui manifestes toujours la solidarité étroite qui doit unir les membres d’une même famille.)

셋째. 전통에 대한 존중, 지휘관에 대한 헌신, 규율과 동지애는 우리의 강점이고, 용기와 충성은 우리의 긍지다.
(Respectueux des traditions, attaché à tes chefs, la discipline et la camaraderie sont ta force, le courage et la loyauté tes vertus.)

넷째. 우리는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자랑스러워하며 항상 흠잡을 데 없는 제복을 입고 항상 위엄있는 행동과 겸손한 행동을 하며 깨끗하고 위생적이게 행동한다.
(Fier de ton état de légionnaire, tu le montres dans ta tenue toujours élégante, ton comportement toujours digne mais modeste, ton casernement toujours net.)

다섯째. 우리는 엘리트 군인이다, 우리는 엄격하게 훈련하고, 무기를 가장 귀중한 소유물로 유지하고, 신체를 끊임없이 관리한다.
(Soldat d’élite, tu t’entraînes avec rigueur, tu entretiens ton arme comme ton bien le plus précieux, tu as le souci constant de ta forme physique.)

여섯째. 임무는 신성한 것이므로 끝까지 수행하고, 필요한 경우 목숨을 바쳐 수행한다.
(La mission est sacrée, tu l’exécutes jusqu’au bout et si besoin, en opérations, au péril de ta vie.)

일곱째. 전투에서 우리는 열정과 자비심을 갖추고 싸우며 패자를 존중하고 전사자, 부상자, 무기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Au combat, tu agis sans passion et sans haine, tu respectes les ennemis vaincus, tu n’abandonnes jamais ni tes morts, ni tes blessés, ni tes armes.)
Legionnaire's Code of Honour (외인부대원의 명예 규범)[1]
Legio Patria Nostra
외인부대는 나의 고향[2]
케피블랑 수여식 선서
우리의 선조들은 죽었지.
외인부대의 영광을 위해.
우리도 모두 사라질거야,
전통대로 말이야.
Le Boudin 외인부대 공식 행진곡 中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프랑스 외인부대 경례구호
Légion étrangère(레지옹 에트랑제). 프랑스 육군 소속의 외인부대. 프랑스군의 엘리트 부대이자 1순위 해외파병군 중 하나이다. 외인부대 내에선 기계화보병, 공수보병, 경보병, 기갑, 전투 공병 등 수많은 성격의 부대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신속대응군 및 충격군(Shock Troops)의 성격을 띈 정예군이다. 각 전투연대 산하에 프랑스 특수전사령부 소속으로 특공, 정찰, 흑색 작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인 코만도도 존재하는데, 아래 제2공수연대 수중팀만 봐도 알 수 있듯 애초에 다수의 전투연대들 자체가 제한적인 특수임무를 수행 가능한 수준으로 정예화되어 있다. 신병 프랑스 국민이 아닌 18~40세의 신체 건강한 남성을 모집 대상으로 한다. 현재 여군은 뽑지 않는다.[3]

흔히 용병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이들은 엄연히 프랑스 정부에서 직접 채용한 군인 공무원 군무원으로 이뤄진 정규군 조직이다. 정부 외 조직 혹은 개인이 의뢰를 받아 계약하는 일종의 외주업자들인 용병과는 전혀 다르다.

1831년 당시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와의 전쟁으로 혼란한 상태였으며, 유럽 각국에서 몰려온 부랑자, 망명자 등의 유입은 골치 아픈 문제였다.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국왕 루이필리프 1세는 외국인 부랑자, 망명자 등을 모집하여 전쟁터로 치워버린다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거기다 프랑스인들 중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범죄자, 실업자 등도 외인부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파일:FFL2eDEpara3.jpg
훈련 중인 제2외인공수연대 수중팀 요원들
19세기에 창설된 이후 전세계의 각종 분쟁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최근까지 약 3만 5천여회의 전투를 치르면서 외인부대는 우리의 고향(Legio Patria Nostra), 명예와 충성(Honneur et Fidélité)이라는 부대 정신으로 유명해졌다. 또한 프랑스의 엘리트 부대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도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활약 중이다.

공식 행진곡으로는 Le Boudin이 있다.

2. 편제

파일:attachment/외인부대/Example.jpg

부대 전체의 규모는 사단 병력의 규모이지만 외인부대는 지휘계통이 있는 부대가 아니라 하나의 병과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외인부대 사령관은 군령권이 있는 사단장이라기 보다는 공병감이나 군종감처럼 병과감에 가깝다. 외인부대 사령관은 외인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없고 인사, 행정 등 군정권만 행사한다. 미 해병대 사령관 해병대에 대해 군정권만 행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2.1. 프랑스 주둔

  • 사령부 - Commandement de la Légion étrangère (COMLE)
  • 훈련소 - Groupement du recrutement de la Légion étrangère (GRLE)
  • 1 외인 연대(오바뉴 소재) - 1er régiment étranger (1er RE) 행정부대.
  • 4 외인연대(카스텔노다리 소재) - 4e régiment étranger (4e RE) 교육부대. 훈련병들의 기초군사훈련을 맡고 있는 교육부대이다.
  • 1 외인 기병연대 - 1er régiment étranger de cavalerie (1er REC) -제6경 기갑 여단 예하.
  • 2 외인 보병연대( 소재) - 2e régiment étranger d’infanterie (2e REI) -제6경기갑여단 예하. 기계화 경보병부대의 성격을 띈다. SAED라고 불리는 특수전 성격을 띄는 코만도가 존재한다.
  • 1 외인공병연대(루더-라드와스 소재) - 1er régiment étranger de génie (1er REG) -제6경기갑여단 예하. 충격군의 성격을 띄며 산하의 PCG팀은 수중파괴공작의 특수전 성격을 띄는 코만도다.
  • 2 외인 공병연대 - 2e régiment étranger de génie (2e REG) -제27산악보병여단 예하. 충격군의 성격을 띄며 산하의 GCM팀은 산악 특공대로써 특수전 임무를 가지는 코만도다.
  • 2 외인 공수연대( 코르시카 섬 칼비 소재) - 2e régiment étranger de parachutistes (2e REP)[4] -제11공수여단 예하. 공수보병의 성격을 띈다. 산하의 GCP(공수특공대)는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코만도다.
  • 13 외인반여단(라 카발러리 소재)- 13e demi-brigade de Légion étrangère (13e DBLE)[5] - 제6경기갑여단 예하. 보병부대가 아닌 여러부대의 성격을 띄고있는 부대다. 과거엔 해외주둔부대였으나 현재는 프랑스 국내에 주둔하고 있다.

2.2. 해외 주둔

  • 3 외인보병연대( 프랑스령 기아나 주둔) - 3e régiment étranger d’infanterie (3e REI) 제2외인보병연대와 마찬가지로 산하에 SAED 팀이 존재한다.
  • 마요트 분견대(아프리카 코모로 제도 주둔.) - Détachement de Légion étrangère de Mayotte (DLEM)[6]

3. 역사

1831년 루이 필리프가 알제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창설한 5개의 외국인 용병 대대가 시초이며 이후 정규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주로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를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알제리에 기지를 두고 있었다. 또한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에서도 활동하였다. 나폴레옹 3세 때는 멕시코와의 전쟁에 파병되기도 했었는데 외인부대원 65명이 멕시코 정규군 2000여 명과 싸워 3명만 살아남은 카메론 전투가 유명하다.

1차 대전 당시에도 당연히 참전하여 용맹하게 싸웠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또한 프랑스 외인부대 휘하에서 싸웠다. 전간기에는 리프 전쟁에도 참전했다.

3.1. 제2차 세계 대전

파일:attachment/free_france_army.jpg
비르 하킴 전투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외인부대는 대부분 해외 식민지에 주둔하였고, 제13외인반여단(13e DBLE)만 유럽에 주둔하고 있었다. 13외인반여단은 프랑스 침공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했고 식민지에 주둔하던 외인부대는 자유 프랑스군과 비시 프랑스군으로 양분되어 1941년 6월 시리아 레바논 전역에서는 자유 프랑스측 13외인반여단과 비시 프랑스측 6외인보병연대가 다마스쿠스에서 서로 교전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이념이 다른 독일인들의 사례도 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자유 프랑스 소속으로 영국군과 함께 싸운 외인부대원 중 독일계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3.2. 식민지 전쟁

2차 대전 직후 프랑스 식민지 각지에서 독립 전쟁이 벌어지자 나치 독일군에 몸 담았던 군인까지 대거 받아버렸다. 아예 포로수용소에서 모병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과 싸우던 프랑스 외인부대가 나치 전범들의 소굴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프랑스 외인부대를 대표하는 말이 '과거는 물어보지 않는다'로, 이 때문에 외인부대원이 철십자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사실 프랑스쪽도 나름 이유가 있었는데, 몇 년동안 러시아에서 구르며 짬밥이 쌓인데다가 인도차이나에서 총 맞고 죽어도 별 문제가 없는 한스들을 식민지 전쟁에 밀어넣으면 그 대신 프랑스의 앙리와 샤를이 본국에서 전시 피해를 복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짬처리(...)였던 셈.

이렇게 받아들인 독일군 출신들은 약 20,000에서 30,000여명 규모였는데, 1950년에는 독일인이 부대에 너무 많다고 외인부대에서 독일인 자원자를 거절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들 대부분은 인도차이나, 알제리 등지에서 소모됐다. 이들은 하얀 케피 외인부대는 전방으로 행군한다 같은 흥겨운 독일 가락들을 프랑스에 전파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외인부대 특성상 박자가 매우 느려졌다.

프랑크 비스(Frank Biess)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서독인들이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도 했지만 그 중에는 부정적인 관심도 많았다고 한다.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할 젊은이들이 프랑스군의 모로코인이나 흑인들처럼 프랑스의 시대착오적인 식민지 이권을 위해 죽어나거나 동성애에 오염될까[7] 걱정했기 때문. 이 때문에 1953년부터 1957까지 독일인이 다른 독일인을 외국군이나 그와 비슷한 조직에 알선하는 것은 독일 형법 141조로 불법이었다.

3.2.1.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외인부대 역사상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모두 10,483명이 전사했는데 외인부대 역사상 1만 단위를 넘기는 전사자는 오로지 베트남 전쟁 뿐이었다고 한다. 전사자 중 한국 출신이 3명이 있다고 한다.

디엔비엔푸 전투에서는 베트민 측이 대포 대공포를 분해해서 산 정상까지 끌고온 뒤 조립해 포격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웠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엄청난 희생 끝에 결국 항복하였다.

또한 이 전쟁 자체가 베트남의 독립 전쟁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증오를 사고 있던 탓에 험악한 대우를 받아 포로 상당수가 죽어나갔다. 게다가 디엔비엔푸에서 붙잡힌 프랑스인들은 민간인도 아니고 포위된 상황에서 사력을 다해 싸운 정예 군인들이라 승리했지만 피해가 컸던 베트남 측으로써는 이들에 대한 감정이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 프랑스군에 대해 감정이 좋을 리가 없는 베트남인들은 포로들을 수백km 이상 떨어져있는 포로 수용소까지 도보로 이동시키면서 식량으로는 미숫가루 한줌만 지급하고 이동 중 낙오하는 포로들은 개머리판 등으로 폭행하여 강제로 일으키고 거부하거나 일어나지 못하는 포로는 현장에서 사살했다. 프랑스 당국은 포로 학대라고 분노했으나 식민지 시절에 베트남인들을 가혹하게 다루며 단두대까지 동원하여 처형했던 탓에[8] 베트남인들의 프랑스 포로 취급은 달라지지 않았다.

생포된 외인부대원 가운데, 베트남과 같은 공산국가 겸 우방국이었던 동독 지역을 비롯한 당시 공산국가 지역들의 출신자에 한정하여 고향에 가는 걸 조건으로 우방국 예우 차원에서 조기 석방시켜주기도 했다. 그래서 동독 출신 및 공산권 출신의 외인부대원 중 몇명이 조기석방되는 경우도 있었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프랑스군 활주로까지 포위되어 항공 탈출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패배가 뻔히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결사항전을 각오한 것을 보면 엄청난 군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3.2.2. 알제리 전쟁

우방의 도움으로 2차대전의 승전국에 오른 프랑스 제4공화국은 시대가 바뀌어 감에도 식민지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패퇴했고, 알제리에서는 치열한 전쟁의 늪에 빠져있었다. 알제리 독립군과의 전쟁에서 자행된 각종 학살과 반인륜적인 범죄는 특히 프랑스 공수부대와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국내의 반전 운동과 해외의 비난 여론으로 프랑스 정부는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문제는 알제리는 프랑스 영토라는 우파의 압력과 여론도 거셌고 특히 보수적인 프랑스 군부는 알제리를 포기할 경우 공공연한 군사 쿠데타 협박까지 일삼고 있던 상황이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 4공화국은 무너지고 드골이 다시 정치로 복귀하면서 5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드골은 우파와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당연히 그들은 드골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알제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라고 기대했다. 알제리 전쟁 배경과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그러나 드골은 군부와 극우파의 뜻대로 알제리의 기약없는 늪에 빠져 가망없는 군사작전을 감행할 생각이 없었다. 가뜩이나 알제리 전쟁으로 프랑스 경제는 피폐해진 상황이였고 어떻게든 알제리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였다. 또한 국내에서 알제리를 둘러싼 우파 좌파의 좌우대립은 국민을 분열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군의 징집에 엄청난 저항이 일어나고 있었고 알제리 내의 프랑스 군의 학살은 해외의 비난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1961년에 드골 정부는 알제리 국민의 투표를 통해 프랑스의 일부로 남아서 똑같은 프랑스 국민으로 남던지 아니면 완전한 독립을 하던지 그 선택을 알제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에 보수적인 군부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4명의 최고위급 장군들은 드골을 제거할 군사 반란을 계획했다.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최고위급 엘리트 강성파 장군들이 군사반란을 계획하는 도중 위기를 감지한 드골 정부에서 주요 전쟁 지휘관들을 속속 해임하거나, 본국이나 유럽으로 발령을 내서 드골에 충성하는 장군들로 하나 둘 자리를 채웠다. 그 결과 군사반란 당시에는 반란군 측은 퇴역 장군이 되었거나 주요 작전사령관이 아닌 상태였다. 당시 주알제리 프랑스군은 47만 7000명 규모였는데, 이중 최정예 엘리트 부대인 공수부대 3개 연대가 포섭이 되어서 (당시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 2개 공수 사단 중 제1외인공수연대와 14 샤쇠르공수연대, 18샤쇠르공수연대 3개 연대만 포섭)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특성상 중화기가 없이 경무장을 한 이들 3개 연대의 전투력은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의 0.6%에 불과한 전력이라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결국 반란 개시 6일만에 반란군은 스스로 항복을 하고, 반란에 가담한 3개 공수연대 장교 114명을 포함한 220명의 장교가 파면되었고, 이후 반란군 색출 작업을 통해 전체 프랑스군 장교의 3%에 해당하는 1,000여명의 장교가 주로 공수부대 장교들을 중심으로 파면되었다.[9]

이 반란사건의 결과 반란에 가담한 장교들이 이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은 주동자들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략 평균 징역 15년 정도의 형벌을 받았다. 1968년 68혁명으로 드골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보수파를 결집시킬 정치적 목적으로 모두 사면되어 풀려났다. 참고로 이 군사반란 중 사망자는 반란군 측 외인공수연대의 습격에서 무선송신소를 지키다 사망한 병사 한 명이다. 당시 반란에 가담한 프랑스 정규 육군 공수부대인 녹색베레 제1외인공수연대와 붉은베레로 유명한 르파루아 제14, 18샤쇠르공수연대는 반란사건 후 즉시 부대가 해체되었다.

반란군 측에는 군내 사조직인 비밀육군조직(Organisation armée secrète, OAS) 회원이 많았는데, OAS는 당시 극한으로 치닫던 알제리 전쟁에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군사작전에 환멸을 느낀 장군들이 알제리 독립군에 대한 탈법, 불법적 보복을 위해 결정한 초법적 암살 테러단체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나 독립운동가나 정치인에 대한 암살 테러, 불법 체포 및 구금, 고문 등을 일삼았는데, 알제리 군사반란을 주도한 장군들이 OAS를 창단한 주도세력들이었다. OAS 가담 장교들은 엘리트 공수부대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반란군이 전부 공수부대였고, 반란이 실패한 후에는 일부가 탈영하여, 드골 대통령 암살 등을 시도하다가 구속되는가 하면, 알제리에서 테러를 일삼다가 사형을 당하는 등 여파가 있었다. 임영훈의 외인부대라는 에선 반란 실패 후 외인부대에서 탈영한 유고슬라비아 출신 OAS 회원이 테러를 일삼다가 총살당했다고 사진과 같이 그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OAS에 가입한 병사들은 독립군과 토벌군 사이에 점점 격해지는 전쟁 양상 속에서 독립군에 대한 보복, 복수심에서 OAS 장교들의 행동대원으로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 OAS의 반란 모의와 테러, 드골 대통령 암살 모의는 유명한 팩션 소설 자칼의 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알제리 반란 사건으로 외인부대나 공수부대와 같은 엘리트 지원병 부대의 장교들보다는 징집병 부대 장교들의 충성심이 휠씬 더 크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3.3. 현대

1960년대 콩고 내전에 참가해서 암약을 많이 했다. 외인부대 출신 용병단이 카탕가 반군에 협조해서 아일랜드 유엔 평화유지군과 싸운 자도빌 전투도 있다. 70년대에도 자이르 분란과 내전에 참가를 했고 90년대 재발한 2차 콩고 전쟁에도 외인부대 병사들이 많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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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말리 내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투입되었다. 해외파병 병력이 필요할 경우 차출 1순위인 신 신속대응군에는 프랑스 육군 제6경기갑여단과 제9경기갑해양여단, 제11공수여단, 제27산악보병여단 등이 있는데, 외인부대 병력도 이들 부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파병을 자주 가는 편이다. 파병을 나가면 기본급의 3배에 달하는 수당이 나오고, 진급 점수도 팍팍 쌓이기 때문에, 파병에 대한 선호도는 높다고 한다. 2010년대 까지 북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등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분쟁지역으로 더 이상 파병보내지 않는다.

4.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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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수급 방식이 모병제이고 수익이 짭짤하고 군장비가 좋다는 점, 훈련의 질이 보장되고 파병을 가서 실전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짬밥이 아닌 경력[10]을 따진다[11]는 점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국군과 비슷한 점이 많다.

평소의 분위기와 군기는 그래도 직업군인인 특성상 비교적 프리한 편이나, 프랑스군답게 똥군기가 꽤 심한 편이다. 또한 부대에 따라 다른데, 보통 그러한 불필요한 군기를 잡지 않거나 가혹행위가 덜한 부대가 장비와 훈련의 질 또한 좋은 곳이다. 그러나 해당 장병이 적절한 신체능력과 언어능력을 지녀야 그러한 것이 보장되는 부대로 보내준다. 나약한 신체 + 프랑스어 구사율 0%라면 낙후된 부대에 배치되어 어마어마한 부조리를 겪으며 로망과는 먼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훈련 강도는 연대마다 달라 묶어서 설명하지는 못 한다. 하지만 외인부대 내의 메이커부대 격인 대다수의 전투 담당 부대들은 모병제 프랑스군에서도 해외파병을 전담하는 엘리트 부대답게, 훈련의 강도부터가 한국에서 흔히 메이커 부대로 불리는 여러 전방부대 내 수색/정찰/특공대 간부 훈련 이상급으로 살벌하다. 이 때문에 신체가 약하거나 하자가 있다면 입대 훈련을 중도포기하고 나갈 확률이 높다. 외인부대는 아무래도 프랑스인들을 대신해 전쟁에 나가는 외국인 용병부대이기에 때문에 그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당연 왠만한 한국의 정예부대 이상급으로 훈련이 빡세며, 체력 훈련이 아닌 사격과 전술 훈련은 왠만한 국군 메이커부대들과 비교해도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다. 당장 임관을 위한 기초군사훈련만 해도 3개월이 넘는 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코로나로 인한 인력수급 부족으로 1개월 단축.)

특히 예하의 특수부대인 코만도를 가려면 아무래도 현역 베테랑 외인부대원들 중에서 극소수를 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프랑스어 실력이 좋아야하고 체력적으로 특전사 UDT/SEAL과 같은 한국군 특수부대에 입대하여 자대 배치 후 거기서도 평균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입단 시험이 아니라, 수료 후 팀에 배치되어 거기서 뒤쳐지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당연히 특수부대가 그렇겠지만, 체력만 된다고 되는게 아니라 머리도 굉장히 좋아야 한다.[12] 심지어 여긴 내부 선발이기 때문에 체력은 그냥 기본인거고, 사격 독도법, 분대전투기술 등의 전술실력이 발군이어야만 한다. 체력만 좋은 알보병은 절대로 뽑아주지 않으며, 애초에 외인부대 전투연대 자체가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본인 특기와 전술을 연마해야한다.

다만 외인부대를 무슨 전세계 특수부대들이 다 모이는 초엘리트 부대로 봐 그 허들을 너무 높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외인부대 지원자의 절반 이상은 군 경험이 없는 일반인 출신이며, 모두가 체력적으로 우수하다고 보기는 당연 매우 힘들다. 한국에서도 특전사가 아닌 그냥 육군/해병대 병 출신들이 입대해 공수연대 등으로 배치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특히 체력이 괴물 수준으로 좋은 사람들은 메이커 전투부대나 그 예하 코만도에나 있다. 애초에 이들은 체력단련만을 중시하는 부대 문화가 아니라 그렇게 목을 매진 않는다. 또한 아무리 이들이 정예라 해도 각국의 특수부대 출신들과 이들을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이다.

물론 기본 인풋이 이렇다는거지 외인부대 자체는 프랑스 군 내의 온갖 전투파병을 담당하는 부대이기 때문에, 예하 전투부대에서 정말로 제대로 복무를 한 인원들은 왠만한 국가의 군대 출신들보다도 훨씬 전술적/체력적으로 뛰어난 전문성을 지닌 인원이라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13]. 예하 코만도를 제외하곤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특수부대만 아닐 뿐이지 어마어마하게 체계적이고 실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적인 엘리트 군인이자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 육군 미 해병대 대원들로부터 립서비스가 아닌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부대가 바로 프랑스 외인부대이다. 당장 마라톤 올림픽 10위권 선수를 배출한 외인부대 마라톤 대표팀이 다른 곳도 아닌 기갑연대에 있으니, 평균적인 훈련 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미 해병대가 외인부대 정글전 학교에서 교육 중 너무 힘들다고 빤쓰런 친 전적이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인들을 대신해서 전쟁터에 나가는 정예 군인을 양성하는 곳인만큼 훈련 강도는 정말 어지간한 군대 저리가라 수준이다.

12주동안의 훈련중 본 대대에서 훈련 소대만 따로 나와서 첫 4주간 훈련을 받는데 농장(Farm)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외곽에 위치한 훈련소에서의 숙식 훈련을 받는 동안은 상당히 고되게 훈련하고 정신, 육체적으로 고생시킨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몇 가지 올라와 있는데, 이것을 들여다보면 훈련강도가 세고 분위기도 엄하다. 관물대 검사하면서 비뚤어진 물품을 그대로 쓩 떨궈버리거나, 전투화 손질 상태 검사하면서 불합격한 훈련병의 전투화를 창밖으로 휭 던져버리거나, 뻑하면 얼차려를 준다. 처음 몇 달만 버티고 나면 많이 프리해진다. 물론 처음에 비해서 프리해진다는거지 군기 자체는 여전하다. 이때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훈련중의 중도 포기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걸 통과한 사람은 나머지 2달간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정말 마음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를 제외하면 쭉 자대까지 가게 된다. (집중사격주 깔루스 1주, 산악극복훈력 미구엘 1주 , 자대배치전 종합숙달훈련 모듈 2 1주일)을 제외하고는 4연대 까스텔노다리에서 체력단련과 프랑스어 공부를 한다. 최종적으로 자대까지 가는 사람은 지원자의 10% 정도라고 한다.

의무복무기간은 5년이며 계약 만료 전에 1년 단위로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처음 기본 계약기간 5년은 도중에 심신 문제나 중범죄 등으로 더 이상 군에 복무할 수 없게 되지 않는 한 무조건 복무해야만 한다.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고 의무복무기간이 주어진 군인이 탈영했다가 다시 프랑스 국내 및 해외 식민지에서 체포될 경우 곧바로 군 교도소행이며, 만기출소 후에도 잔여 복무기간을 다 채워야 한다. 이런 경우 당연하지만 탈영한 그 계급에서 진급이 막히며 장기복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자진해 돌아왔을 경우 영창 1개월 정도로 봐주며, 잔여 복무 기간 중 개인의 노력을 통해 인사상 불이익을 극복할 수 있다. 어차피 탈영 중 별도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형량도 그리 길게 선고되지 않는다. 반대로 탈영 중 공무원 신분을 유지 못할 수준의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진 복귀고 뭐고 그냥 징역 살고 민간인으로 방출된다.

병은 전원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5년을 채우지 않고 휴가 중 본국으로 출국한 뒤 복귀하지 않고 탈영해버리는 이들도 꽤 있다. 외국인인 이상 탈영 외 중범죄를 지지르지 않았다면 프랑스 정부가 타국에까지 헌병을 보내 체포해오거나 그 나라에 범죄인 인도 신청 등을 하진 않기 때문에, 아예 프랑스와 연을 끊어도 상관없으면 주저없이 이 방법을 택한다. 이런 일이 흔하다 보니 외인부대 내에서도 이를 일종의 자진 퇴역 같은 은어로 부르는데, 보통 이렇게 아예 안 돌아올 사람들은 휴가 때 싸는 짐꾸러미의 양 등을 통해 다 티가 나며, 부대에서도 웬만하면 알고도 그냥 모른 척 가게 냅두는 편이라고 한다. 굳이 부적응자를 부대에 억지로 냅둬서 부대 분위기를 헤치는 것보단, 제발로 나가주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본토와 해외 영토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를 여행하거나 국적 취득하는 데에도 별 문제가 없다. 당연히 이렇게 계약기간 안 채우고 탈영하면 부대에서도 외인부대 출신이라고 인정해주지 않으며, 탈영병으로 분류되는 즉시 급여가 입금되는 계좌를 압류당한다. 당연히 잔여 급여와 연금도 돌아와서 체포된 뒤 형기를 마치고 남은 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돌려받지 못한다. 복무하면서 모은 금액들을 사실상 다 날려버리는 행위이니 잘 생각해야 한다. 물론 탈영하기 직전에 자기 월급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하지 않고 냅두고 가는 멍청이는 없다. 프랑스 출신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해 입대한 이들은 연고지가 프랑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탈영해도 갈 곳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도망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너무 관심병사라서 기본계약기간 안에 일등병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계약 연장은 없다. 그냥 기본 복무기간만 채우고 사회로 방출한다. 이런 인원은 재도전을 할 경우 불합격이다.

기본복무기간 기준으로 부사관 진급은 최소 3년차부터 가능하다. 2022년 현재 외인부대 내부 부사관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소화하고 체력 시험을 통과할 수 있으며, 사고친 기록이 없다면 중대장 면담을 통해 지원할 수 있다. 물론, 최종 합격하려면 프랑스 국적을 취득 혹은 회복(프랑스인이 입대를 위해 국적 변경한 경우)해야 한다.

2차 대전 직후에는 갈 곳이 없어진 SS 독일 국방군 출신 혹은 경미한 전범 독일인들이 과거를 묻지 않았던 외인부대에 입대했다. 그 외에도 외국인의 신원을 추적할 방법이 없으니 범죄자 등이 입대할 개연성이 당시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출생지 등을 철저히 따져본 다음에 훈련소 입대를 허용한다. 범죄자 등은 인터폴까지 연계한 철저한 신원조사를 거쳐 가려낸다. 그래도 중범죄가 아니면 봐주는 듯하다. 인터뷰에서도 예시로 살인죄 같은 범죄가 아니라면이라 말하기도 하고, 영상에도 미국에서 폭력으로 1년 징역을 살고 온 한국계 미국인 훈련병이 나온 바 있다. 물론 장교로의 신분 전환자는 매우 철저하게 신원조사를 하기 때문에 전과자가 장교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며, 최대 부사관밖에는 지원 못 한다. 이렇게 신원조사를 하는 진짜 이유는 국제수배범이 수배를 피해 도피입대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신원조사에서 수배범임이 밝혀지면 바로 인터폴에 넘긴다.

중대 혹은 소대의 분위기에 따라 두발규제가 천양지차이다. 훈련소 입소부터 전역 직전까지 한국군 신병교육대 수준으로 밀고 살아야 하는 대원이 있는가 하면, 일병을 달자마자 투블럭을 시작하는 대원이 있을 정도다.

4.1. 입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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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옹 에트랑제 공식 홈페이지[14]

나이는 생일까지 꼼꼼히 따져서 17살 6개월 부터 39살 6개월까지만 지원자격이 있다. 39살 7개월부터는 얄짤없이 불합격이며 17살 5개월 이하의 연령은 부모 또는 후견인 동의서가 있어야 하며 외교 마찰이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대사관 공증까지 받아야 한다. 물론 그것도 14살 0개월 이하일 경우 제한된다.

서류는 자신에게 해당되는 모든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예를 들면 출신 대학교, 예비역의 경우 복무기록, 회사에 다닌 적이 있으면 재직증명서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모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며 문맹 역시 결격사유다. 입대하면 프랑스어를 새로 배워야 하는데, 문맹이라면 글을 통해 언어를 학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병검사가 엄청나게 까다롭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와전된 이야기이거나 수십년 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외인부대는 말 그대로 외국 국적자들로 이루어진 정규군, 즉 보병/기갑/공병을 비롯한 일반적인 전투병과 부대들에 배치할 신병을 뽑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군생활에 지장없는 건장한 남성을 선발하는것이다. 결국 일반적인 군 입대 전용 신체검사와 크게 다를게 없는 수준이다. 한국인 기준으로는 한국군 간부시험 신체검사 통과자 혹은 병역판정검사 1-2등급 판정자라면 별 문제없이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단 비만, 저체중, 고혈압, 에이즈, , 결핵, 당뇨병, 정신질환, 손가락 마디절단, 무릎관절 불안정, 습관성 탈구, 심각한 저시력자/저청력자, 5개 이상의 충치[15] 등은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불합격 대상에 올라간다.[16] 안경과 시력교정술로 커버가 가능한 수준의 가벼운 저시력이나, 심각하지 않은 색각 이상은 일단 합격대상이나, 병과 제한이 존재한다. 결국 군의관 재량이고 병이 있는 채로 모병소에 가봐야 선발에 이득될 거 하나 없으니, 질병이 있다면 미리 다 치료하고 가는 편이 좋다.

키/몸무게 제한은 없다. BMI 18~30 사이만 충족시키면 된다.

입대 시험은 체력측정과 정신검사가 있는데 엄정히 선발해서 뽑는것이니만큼 체력측정 기준이 그래도 있는 편이다. 생각보다는 그다지 빡세지 않은데, 이는 "훈련소에서 만들어준다."라는 개념이 크기 때문이다. 훈련소의 훈련 강도는 아무래도 프랑스 국적자들을 대신해 파병을 갈 외국인 용병들을 단기에 집중양성할 목적이라 전체적으로 강하고 실전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 턱걸이 - 매회마다 턱이 봉위로 올라가고 내려갈 땐 팔을 완전히 뻗어야 갯수가 인정된다. 최소 7회 이상해내야 합격선이지만 권장 갯수는 10개이상 이다. 본래 4회였지만 7회를 거쳐 지금은 10회 상향조정이 된 듯하다. 입대자들의 체력수준이 날로 갈수록 높아진 탓이다. 입대를 희망한다면 반드시 정자세로 연습하도록 하자. 자세를 잘못잡으면 모병소 앞에서 광탈할수도 있다.
* 셔틀런 - 20m왕복달리기로 실시한다. 방법은 20미터 트랙을 달리는데 끝까지 간 후 삑 하는 벨소리를 울려 줄 때마다 반대편으로 다시 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진행할 때마다 벨소리의 간격이 짧아지는데, 제때 못 들어오는 인원들을 감독관이 계속 걸러내는 식으로 기록을 재고, 이것을 최소 7라운드까지 해낼 수 있어야 된다. 7라운드까지 못뛴다면 얄짤없이 짐싸서 집에 가야한다. 최근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항으로는 최소 5라운드라고 하지만 7라운드 이상이 권장 사항인건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프랑스 외인부대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구보에 집착하는 군대로 악명높고 보병/공병/기갑연대의 자대 생활에서도 8-10km 뜀걸음이 일상이기 때문에 체력테스트는 못해도 10라운드 이상을 통과할 정도로 심폐지구력을 기르는것이 좋다. [17]

수영테스트는 입대테스트에 포함된 항목이 아니라 훈련소 체력측정 때 실시하는 종목이다. 고로 입대테스트 종목은 셔틀런 , 턱걸이 2종목만 본다.

위 체력테스트중 턱걸이와 달리기는 최소 기준은 그리 높진 않지만 만만하게 보고 준비하지 않으면 얄짤없이 탈락하는 수 있으니 어느정도 운동은 해놓고 가는게 좋다.

그리고 소지품도 굉장히 중요한데 현금은 50 유로 이하로 지참할 것을 당부하며 반드시 지참해야 할 물건으로는 티셔츠, 반바지, 수건, 팬티, 양말, 세면도구, 운동화 정도가 있는 반면 지참하면 안되는 물건으로는 단검 등 모든 무기 및 모든 열쇠가 있는데 지참하면 안 되는 물건을 지참하면 입대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

2020년을 휩쓸고 지나간 코로나 19는 외인부대에도 그 영향을 끼쳤다. 변종코로나 발생으로 인해 프랑스 출입국이 엄격히 제한되면서 지원자도 현저히 부족해져 최소수준만 충족한다면 입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포트 노정 외 프랑스 전국에 있는 12개의 모병소에서 체력테스트/지능검사 및 신체검사를 진행한 뒤 1차 합격자는 프랑스 남부지방 마르세유에 존재하는 외인부대 사령부 오바뉴에서 약 2주간 대기한다. 이 과정에서는 주로 작업,청소를 비롯한 잡일을 하며 심층 면접을 본다. 이 2주일 간 모병소에 있는 모든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후보생들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평가한다. 선발 과정 마지막 날에는 모병소 장교와 부사관들이 신체검사 점수, 전과기록, 군 복무 경력, 면접 점수, 체력, 대인관계 등 전반적으로 후보생들을 평가하여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발표한다. 여기서 불합격도 두 종류로 나뉘는데, 3~12달 뒤에 다시 지원이 가능한 일시적 불합격(Temporary), 두번 다시 외인부대에 지원이 불가능한 영구적인 불합격(Definite)으로 나뉜다. 모병소에서는 왜 탈락했는지 절대 알려주지 않지만, 보통 신원검사, 신체검사, 체력검정까지 다 통과했음에도 최종적으로 불합격 되는 사유들은 면접 대답의 불일치, 군생활에 부적합한 성격으로 판단되는 것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추측된다. 또한 불합격 종류에 의해 왜 불합격했는지 짐작 정도는 한다. 일시적 불합격일 경우는 자기가 평가를 제대로 못해서 탈락했다고 짐작할 수 있으며, 영구적 불합격의 경우, 애초에 지원하기 전의 행적으로 인해서 탈락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최종 합격자들은 오바뉴 외인부대 사령부에서 계약서를 서명 한 뒤 까스텔로다리에 있는 일명 까스텔훈련소라 불리는 제4외인교육연대로 입소하게된다. 이때부터 교관 등 모든 인원들이 프랑스어로만 교육 훈련을 진행하며,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한 교육 위주로 교육이 실행된다. 교육자 총원은 까스텔 훈련소에서 언제든 퇴교의사를 내비칠 수 있고 퇴교가 가능하다. 하지만 오바뉴에서 합격이 통보된 후 퇴교를 하게되면 다시는 외인부대에 입소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알아두어야 한다. 외인부대는 한 번 자진 퇴소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각 기수, 날짜마다 다르지만 통상 까스텔에서 연대 배치를 받게되며 연대배치는 철저히 "성적"순이다. 말그대로 까스텔에서 개판을 쳤다면 지원연대가 후순위로 밀려 가장 거지같은 연대로 배치받게된다. 대체로 기피하는 연대는 2REP라 불리는 2공수연대이다. 훈련도 굉장히 빡셀 뿐더러 가면 진짜 코르시카 섬에서 비지피라트(도시경비), 휴가, 교육, 파견, 파병이 아닌 이상 절대 못 나온다. 특히, 코르시카 섬이라서 해외속령도 아니고 완벽한 본토인지라 오지수당도 없는 주제에 의 특성 상 프랑스령 기아나 뺨칠 정도로 복무 여건이 가혹하다. 까스텔에서도 항상 TO가 가장 많이 남는다. 다만 2REP의 경우 근무가 길고 힘든 만큼 진급과 수당 등에서 이점이 있기에, 화려한 군 생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즉 군에 진정 뜻이 있고 빠른 진급과 수당 등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꽤 선호하는 부대이다. 가장 선호하는 연대는 한국인 기준 1REG(제1외인공병연대)와 2REG(제2공병연대) 같은 공병연대들이며, 자신이 영어가 좀 된다면 영어권 출신들이 많이 배치되는 13외인보병연대(13DBLE)로 지원해도 좋다.

프랑스의 방역 정책이 강화된 2022년 1월 현시점은 모병을 잠시 중단했다고 하니 지원자는 참고바람.

4.2. 입대자의 국적

현재 공식적으로 외인부대에서 모집하지 않는 국가는 북한, 시리아, 쿠바의 3개 국가이다.

프랑스인은 공식적으로는 병으로는 입대 거부된다. 하여 모병소에 프랑스인이 입대를 지원하면, 이름과 출생지만 바꿔서 입대하는 타국적 지원자들과 달리 캐나다인으로 국적까지 바꿔서 입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가적인 복잡한 절차가 있지는 않고, 자대배치 후에 RSM(Régularisation de Situation Militaire)이라는 과정을 통해 프랑스 국적을 되찾을 수 있다.

전세계 각지에서 외인부대에 입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스위스, 벨기에 같은 프랑스어권 선진국 출신자가 과거 한창 핫할 때는 최대 30% 정도에 달한적도 있다. 이런 프랑스어권 출신자들은 비프랑스어권 출신자들과 짝을 지어서 1:1로 교육이나 지시내용을 전파하는 역할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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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동유럽 출신자들이 있으며 북유럽이나 미국, 영국 출신들도 정말 가끔 있다. 남미, 특히 브라질, 콜롬비아 같은 라틴계열도 굉장히 많으며 네팔도 꽤나 있다. 구 프랑스 식민지 북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도 간간히 보이는 편이다. 동북아계는 현재 네팔, 몽골 출신의 청년들이 많이 지원해 좀 있는 편이다.

한중일 중에서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순이며 한국인은 그 중에서도 적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국인 중에서 프랑스 이민 등에 매력을 느껴 특수부대 전역 후 입대하는 수가 그나마 있었으나, 지금은 한국의 경제성장 덕에 프랑스 이민을 위해 5년의 위험한 삶을 선택하는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군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 중 용병업계를 생각하는 이들은 외인부대가 아니라 아예 PMC 등으로 커리어를 잡는다. 소득이 높을 뿐 아니라 계약 해지 등이 자유롭고, 이런 보직들은 군 경력이 충분하다는 가정 하에 영어만 하면 지원 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외인부대는 용병이 아닌 정규군이기에 PMC들과는 거리가 극히 멀다.

한중일 특히 한국에선 프랑스어 구사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또 하나의 외인부대 기피 사유다. 영어의 경우 특수부대원들도 전부 고졸 이상의 학력은 가지고 있으니 기본은 아는 셈이고, 인터넷에 영어 공부할 방법, 시험 성적 올리는 노하우들이 워낙 많아서 이들도 노력만 조금 하면 실력을 올리는게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프랑스어는 이런 정보가 거의 없고 제2외국어로도 접한 이들이 드물다. 심지어 스페인어 대한민국에서만 비주류일 뿐 한반도만 벗어나면 메이저한 외국어지만 프랑스어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리고 영어가 가능하면 어떻게든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생기는데 프랑스어는 한국에선 영어 뿐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등과 비교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요가 적으니 가르치는 곳도 적다.

일본인들의 경우 밀덕질하다 흥미를 느끼고 입대했다 현시창임을 깨닫고 때려치우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애초에 일본도 굳이 군사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으면 언어나 문화 문제도 없는 자위대라는 선택지가 있다. 일부 경비 업체나 밀덕 분야 종사자는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이라고 이력서에 기재해 유용하게 써먹기도 한다.

동양계 중 몽골이나 네팔 등 개도국 출신들은 아직 지원자가 꽤 있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2019년부터는 네팔 구르카인 출신 지원자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척박한 산악지대에 살면서 체력으로 튼튼하고, 전투민족으로서 영국 육군 소속으로 실전에 200년 동안 무수히 참전한만큼, 이름값은 확실히 있어서 외인부대에서도 환영한다. 영국군보다 돈도 더 주고, 여러 경제적 대우도 좋다고 구르카들에게 인기가 점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솅겐 지역 국적 해당자들은 신분증만 지참하면 되지만 그 외 국가 출신자들은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사병과 달리 장교는 프랑스 국적자만 들어갈 수 있는데, 프랑스 육군 장교 과정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소위 시절부터 외인부대 장교로 군생활을 한 경우는 프랑스 국적자 출신이고, 사병부터 쭉 진급한 인원들은 외국인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장교의 90%는 프랑스인, 10%는 외국 출신의 외국계 프랑스인이라고 한다. 물론 외인부대라도 외국인 신분으로 복무할 수 있는 신분은 병 뿐이며, 부사관 이상으로 신분을 전환하려면 프랑스 국적을 의무적으로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상 장교는 100% 프랑스인이다. 보통 초임 소위 때부터 외인부대로 군생활을 하면 사병 출신 장교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인정 받지만, 그 이상 계급에서 외인부대로 전입한 경우는 약간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 국적은 입대 후 3년 이상 근무자들부터 신청 가능하다. 무분별한 국적 부여를 막기 위해서인지, 신청은 3년 이상부터 가능하지만 연장계약을 통해 총 7년가량 복무할 의사를 비추지 않았다면 중대장 선에서 대부분 컷된다. 7년 미만 복무자라도, 복무 중 부상을 당했다면 보훈 관련 법령인 '출혈법'에 따라 무조건 국적 부여 기회를 줄 것이 보장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개인 선택에 따르는 것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

4.3. 처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유럽 출신도 많았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지원자들이 대부분 동아프리카, 동유럽에서 지원하는만큼 인적풀의 수준도 굉장히 낮은데다가, 외인부대 자체의 훈련체계 등을 떠나서 사회적 예우는 그리 좋지 못하므로 선진국 출신일수록 입대를 잘 안 한다. 오죽하면 부대원 당사자들이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오지 마"라고 한다. 훈련은 빡센데 외인 부대 이외의 본토 출신 부대들에 비해 대우받지 못 하고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외인부대의 명예니 자부심이니 이런걸 옛말이 된지 오래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썩 나쁜 처우는 아니나, 항상 1순위로 해외에 파병되어 뺑이 치는 등 그들의 강도 높은 임무에 비해선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라고 한다.

외인부대원의 진급은 제한없다. 그렇기 때문에 18살에 이등병(레조넬)부터 올라가기 시작하면 종신병장 같이 한 계급에 계속 머무르는 것을 신청하지 않고 계속 진급을 할 경우 55살에 이르러서 중령(리외트낭 코로넬)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거기가 이등병 출신으로서는 진급 상한선이다. 60살에 퇴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병이 중령까지 올라가려면 모든 진급심사를 1차에 통과해야 하는데 절대로 쉽지 않다. 일단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에 비해 진급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근데 가성비상으로 보면 차라리 대위에서 남는게 훨씬 이득이다. 일단 레지옹 에트랑제는 중대장만 되어도 완전히 임금님과 다름없을 정도로 권력이 세다. 그런데 굳이 그걸 버리고 소령으로 올라가서 높디 높으신 분들을 매일같이 알현해야 하는 수고를 자청할 인간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중령은 외인부대원들에게는 정말 꿈의 자리이긴 하나 그냥 그런 게 이 세상에 존재한다 정도만 알고 있어라 수준으로 진급 난이도가 지옥이다. 대대장이 되면 중대장에게는 없는 부관참모가 따라붙고 수행인원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꿈의 자리인 것이다.

외인부대원들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대우는 소속 부대에 따라서 다르나 꽤 상당하다. 맨 처음 입대해서 이등병이 최초로 받는 월급의 기본 베이스페이가 1,380유로(2021년 기준)로 한화 약 183만원 가량이다. 이에 여러 수당이 붙으면 평균적으로 대략 200만~280만원정도를 수령한다. 물론 수당과 보너스는 부대별로 다르다. 2e R.E.P의 공수부대원은 타 수당 제외하고 공수 수당+기본 월급만으로 이등병 기준 2,067유로(2020년 기준)인데 이는 근 300만원 가량이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하듯이, 외인부대는 파병을 전담하는 부대이므로 위의 기본 월급에 집중하기 보다는 파병 수당과 여러 부가 보너스를 합쳐야 실질적인 월급을 환산할 수 있다. 일반 외인부대원의 경우 이등병 기준 파병 수당이 2,075유로(약 284만원, 2020년 기준)다. 평균적으로 첫 복무연도에 23000유로(한화 약 3100만원) 가량을 번다고 한다. 군인이라는 특성상 의식주 비용 상당수를 아낄 수 있으니, 개인의 노력에 따라 5년만이라도 돈을 꽤 모을 수 있다. 특히 물가가 싼 후진국 출신이라면 그렇게 모은 돈이 귀국했을 때 훨씬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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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프랑스 육군 소속이므로, 정복 근무복, 전투복 등 모든 육군 군장류를 지급받는다. 과거엔 이러한 장비를 직접 돈주고 사야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확실히 지급해주는 것으로 확인된다. 허나 대원들이 재보급 시기 이전에 기본 피복류를 사비로 사 손망실분을 보충하거나 자기 취향에 맞는 개인 플레이트 캐리어나 사제 컴뱃 티셔츠 등을 사서 입는 경우는 어느 선진형 군대나 다 그렇듯이 자주 있다고 한다. 수료식 때도 프랑스 육군 정모 케피 블랑의 착용 권리를 얻었음을 선포한다.

5년 기본 복무를 다 마치면 보통 상병으로 제대하며, 10년 체류권을 받을 수 있으며 국적 신청은 연장 복무 신청을 한 3년차 이상 장병에 한해 가능하다. 하지만 프랑스 국적이 있으면 EU 어디로든 이동의 자유가 생기며, 후진국 출신이라면 이후 귀국하더라도 프랑스 같은 강대국 국적 그 자체가 나름대로 큰 자산이 된다. 그리고 많지는 않아도 연금이 주어지고, 이는 국적 미취득자나 외국 거주자도 동일하다. 보통 동아시아권 사람들이 제대 후 프랑스를 떠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한다.

연장 복무자는 병장으로 진급하며 분대장으로 오르기도 한다. 병장은 엄밀히 병 신분이나 부사관의 권리를 일부받고 사실상 부사관 취급을 받는다. 외인부대는 전체의 25% 정도는 부사관이다. 이럴 경우에는 추가 보수 및 여러 혜택이 주어지며, 기본적으로 5년 복무를 마치고 지원자에 한하여 추가 계약을 하면서 병장으로 진급할 경우[18]에도 여러 추가 혜택이 주어진다. 15년 이상 장기 복무할 경우 연금에서부터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18년 이상 복무하면 전역 당시 계급 호봉에 해당하는 봉급의 70%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 따라서 장기복무를 할 경우 웬만하면 15년까지는 채우고 제대하는 편이다.

장교의 10% 정도는 외인부대 병 출신이다. 근무평가가 아주 좋으면 15년 정도 복무한 후 장교인 소위(수 리외트낭)까지 올라가고 보통 선임원사(아쥐당 셰프)까지 올라간다. 18년의 경우 보통 소위까지 올라가고 잘 올라가면 중위(리외트낭)까지 올라간다.

보수는 2외인공수=3연대>그 외 부대 순으로 높다. 마요트 파견대나 3연대는 해외 주둔부대라 봉급이 높다. 분쟁지역에 파견시 그 강도에 따라 2~3배의 위험수당과 그외에 사고시 보험금 등이 주어진다. 그리고 기본 복무 시에도 실전 참전이라든지, 위험 지역 평화유지군 파병시에도 추가 수당이나 위험수당, 보험금들이 지급된다. 저격수 EOD 등 특수 분야는 보통 중대 위로 파견을 나가게 된다. 자기가 가고 싶다고 가는 건 아니고 로테이션 식이며 파병 국가가 많을수록 더 빨리 더 자주 나갈 수 있다. 파병마다 메달 형태의 기장이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파병을 거친 외인부대원은 정복 가슴에 수많은 메달을 치렁치렁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달들이 죄다 고과성적이다. 많으면 진급이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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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육군의 기아나 정글훈련소(Centre d' entraînement à la forêt équatoriale, CEFE) 모습

한때 프랑스령 기아나는 프랑스 본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런 혜택이 없고, 당시 이등병 기준으로 약 200 유로 정도의 수당이 더 나오는 정도였다. 문제는 이 프랑스령 기아나가 외인부대의 무덤격이었다는 것인데, 근무 환경은 EU의 핵심 전략시설인 기아나 우주센터를 경비하는 중요한 임무가 부여되어 있어 긴장감 및 훈련 강도가 빡세고, 극심한 빈부격차로 치안이 불안한데다, 연평균 기온이 27도에 달하는 지독하게 덥고 습한 열대 우림 지역이다. 기아나에서 일년 중 가장 더운 한여름날의 평균 고온은 31°C이며 저온은 23°C이다. 서울에서 일년 중 가장 더운날의 평균 고온은 30°C이며 저온은 24°C, 대구에서 일년 중 가장 더운날의 평균 고온은 31°C이며 저온은 24°C이다. 때문에 프랑스령 기아나로 배치된 이유 하나로 브라질로 탈영한 외인부대원까지 생겼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프랑스 육군은 방침을 변경해 기아나로 가는 외인부대원에게 이런저런 수당을 잔득 지급해 본토 근무자보다 2배의 월 급여 수령액을 주고, 장기 복무자에게 진급 고과성적과 위에 서술한 해외 근무자들에게 적용되는 추가 혜택도 주면서 굉장히 인기가 좋은 근무지로 변했다. 일단 배치되면 2~3년은 의무적으로 그곳에서 근무해야 한다.

장기 복무하고 제대한 베테랑들은 연금이나 여러 혜택 말고도 예비역으로 외인부대에 복무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외인부대에서 관리하는 포도 농장, 와인[19] 양조장, 그 외 여러 농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외인부대용 담배 공장 같은 곳에서도 일할 수 있다. 아니면 외인부대원을 위한 휴가용 별장 관리라든지 다양한 일에도 복무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보수는 기대할 수 없지만, 직업 안정성이 높은데다 손님이 없으면 꽤 경치 좋은 별장에서 개인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장기 복무자는 연금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꽤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현지로 직접 취재를 가서 외인부대를 방문한 임영훈이 쓴 외인부대[20]를 보면 노병들의 여러 가지 활동을 지원한다고 나와 있다. 이를테면 출판이라든가, 기념품 제작 등인데, 이러한 물건들은 외인부대 박물관에서 판매된다고 한다. 노병들이 저술한 서적이 출판사 등의 루트를 통해 일반 시중에도 판매되는지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21]

폐쇄적인 집단인만큼 어두운 면모도 존재한다. # 국적취득 이전까지의 불명확한 신분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대한 제약, 그리고 그것을 방조하고 심지어 악용하기까지하는 상급부대방침,[22] 내무부조리에 대해 방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상관들의 모습[23], 전역자들이 공통적으로 수감시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잡아떼는 지휘관, 상급자에 의해 만연하게 발생하는 구타와 가혹행위 문제 등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24]

4.4. 진급

호봉
(단위: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년
이상
soldat
훈련병
15주
soldat
이등병
OR-1
기본계급
première classe
일등병
OR-2
입대 시점에서 10개월 이상 복무 경력
+ 프랑스어 구사 가능자[25]
caporal
상등병
OR-3
입대 시점에서 2년 이상
+ 상병 학교 수료자[26]
caporal chef
병장
OR-4
입대 시점에서 5년 초과자[27]
sergent
하사
OR-5
상병 계급인 상태로 총 복무기간 3년 초과
+ 부사관 시험 합격자
sergent chef
중사
OR-6
하사 복무 3년 초과자
+ 총 복무기간 7년 초과 14년 이하
없음
OR-7
Adjudant
상사
OR-8
중사 복무 3년 초과자
Adjudant Chef
선임상사
OR-9
상사 복무 4년 초과
+ 총 복무기간 14년 초과
+ 프랑스 국적자
Major
원사
OR-9
원사시험 합격자
+ 총 복무기간 14년 초과
+ 프랑스 국적자
소위 이상 호봉을 채운다고 진급시켜주는 계급이 아니다. 오직 실력만으로 진급하는 계급이다.
이등병부터 시작한 인원은 전체 장교의 10%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진급이 쉽지 않다.
훈련병부터 시작할 경우 : 선임상사 이상 + 고과성적 최우수자[28] + 소위 시험 합격자 + 프랑스 국적자
  • 해당 군인의 성실함과 능력에 따라 진급시킨다. 모든 외인부대원은 민간의 학위나 직업 경력 덕분에 승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군공 또는 진급시험에 의해서만 진급한다. 입대하기 전의 경력은 일절 무시되며 철저하게 레지옹 에트랑제 안에서의 능력 위주의 진급이기 때문에 중졸 장교도 있다.
  • 일병에서 상병진급 못하는 경우엔 한국과 비슷하게 외인부대 후배들에게 무시를 당할 수도 있다.
  • 레지옹 에트랑제 병력의 25%가 부사관이다. 딱 이 비율을 지켜서 진급시킨다. 위의 표에서 녹색이 부사관이다.
    부사관이 되면 정모도 흰색의 병사용 "캐피블랑"에서 검정색인 부사관용 "캐피누아"로 바뀐다.
  • 레지옹 에트랑제 장교의 10%가 사병부터 진급해 올라간 인원이다. 문제는 레지옹 에트랑제의 구성원 비율이 병 70%, 부사관 25%, 장교 5%라서 전체 장교의 10% 라는 것은 레지옹 에트랑제 전 구성원의 고작 0.5%만이 사병 출신 장교인 것이다. 그만큼 장교되기 어렵다.
  • 장교를 지원하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사관후보생 교육을 받은 뒤 원래 복무했던 부대로 재배치된다. 사관생도보다 훈련기간은 짧다. 정확히는 사관생도의 훈련에서 병기본 등 몸으로 구르는 훈련은 모두 제외되고[29] 지휘통솔기법이나 대대전술 등 장교로서 필요한 훈련만 받는다.
  • 병에서 장교가 되면 사실상 진급 마지노선은 대위이다. 소령 이상은 프랑스 사관학교 출신자 등 처음부터 소위로 군생활을 시작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부사관들 중 상당수가 소위로 진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소위로 진급하면 당장 보직에 대한 변화는 없지만 소위가 되어야 대위로 진급할 수 있으며 대위가 되면 중대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중대장은 종신 중대장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대장이 되려고 소위로 진급하는 것이다.

4.5. 간부

위에서도 서술되었다시피, 외인부대는 진급의 제한이 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이 덕분에 고급 부사관들이 초급 장교로 임관하려고 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게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이등병에서 시작해서 끝도 없이 올라가는 게임과도 같은 시스템 덕분에 미군, 한국군 등의 타 해외군과 비슷하게 부사관 장교가 서로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상급자-하급자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방향이다. 게다가 여기는 중대장의 권한이 엄청나서 군림 그 자체가 되기 때문에 상사 정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소대장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소대장은 이등병을 징계할 수 없지만 중대장은 소대장을 징계할 수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보직에 대한 차이도 넘사벽이고 권한과 대우 역시 넘사벽이다.

모병제 군의 부사관들은 짬이 어느정도 찬다면 권위가 어지간한 장교 부럽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표가 있지 않는 이상은 굳이 장교로 임관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군의 경우 중상사나 원사쯤 달면 직책에 따라서 소령~ 준장까지는 맞먹는게 가능하고 각군 주임원사와 같은 더 높은 직책을 달면 무려 중장~ 대장 의전을 받는 것도 가능하기에 에서 장교로 가고싶으면 부사관으로 임관하기전이나, 초급 부사관 시절에 가지 미쳤다고 상사 이상 달고서 굳이 장교의 최하 계급인 소위로 임관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짬 높은 부사관이 장교 맛을 보고 싶다면, 역시나 웬만한 영관급 장교 수준의 권위를 갖는 준사관을 택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군을 비롯한 기타 국가의 군대 모두 마찬가지다. 허나 외인부대는 위와 같은 진급 문화와 보직의 특징 덕분에 이런 게임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게 가능한 것이다. 중대장만 되면 그 중대가 완전히 내 세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중대장의 권한이 이정도로 크고 엄청난 이유가 바로 마요트 분견대 때문인데, 마요트 분견대장이 직책분류상 중대장이며 마요트로 파병된 외인부대 전체의 총책임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대장이 한 지역 전체의 수장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중대장의 권력이 장난이 아니게 될 수밖에 없다.

외인부대의 부사관은 100% 외인부대에 입대해 이등병부터 올라간 인원[30]이다.

레지옹 에트랑제는 구성원 비율상 병 70% 부사관 25% 장교 5% 정도 된다. 장교 중에 병 출신은 10%에 불과하므로 병 출신 장교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기업에서 임원 다는 난이도와 비슷하다.

어느 나라나 장교로 임관하려면 자국 국적자여야 하고, 나이 제한이 있다. 실제 외인부대를 취재한 임영훈 저, 외인부대(우리문학사, 1994)를 보면 대부분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에서도 성적이 극히 우수한 자원만 외인부대 장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외국계 프랑스인 중에서도 사병 출신 장교도 없는 것은 아닌데 장교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장교가 되는 외인부대 부사관은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과 동일한 시험을 치러 합격한 뒤 거기서 훈련을 받는다. 훈련이 완료되면 소위 계급을 달고 복무했던 부대로 다시 온다. 보직은 원사 시절 했던 중대장 보좌관을 그대로 맡는다. 물론 실질적인 진급 상한선은 대위가 되며 보직 역시 실질적으로는 중대장이 끝이다. 영관급 장교가 되려면 군공을 엄청 세워야 한다. 딴지일보에 글을 올리는 2018년 기준 현재 실제로 외인부대에 복무하는 인원의 증언에 의하면 이렇다고 한다. 실제로 미군도 타국 출신 장교들이 꽤 있다. 프랑스의 최소 장교 포마숑의 계급은 최소 외인부대 생활을 8년 이상한 세흐정쉐프( 중사) 부터 응시할수있으며 콜로넬( 연대장) 추천서와 소속중대의 캐피탄(대위)에게 동시 추천서를 받아 오바뉴 사령부 지휘관 추천서를 보낸 다음 선별후 뛰어난 성적과 자질을 갖춘 레조넬이 장교 교육을 받아 류트낭(소위)으로 임관하게 된다. 참고로 이런 코스를 밟은 병 출신 40대 중대장도 널렸다.

먼저 외인부대 출신 장교의 경우, 역사상 최고 기록은 이등병에서 시작해서 중령까지 진급한 경우가 있다. 다만 이것은 기대하기 어렵고,[31] 15년 이상 장기복무한 경우 중 일부가 위관까지 진급하는 정도이다.[32] 참고로 외인부대 역사상 한국인으로서 소위까지 진급한 이도 있으며,(지금은 제대하고 프랑스에서 민간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 중위까지 진급했으며, 아시아인으로선 중국인이 먼저 대위까지 진급했고 그 뒤를 이어 사우디인 대위까지 진급한 게 가장 높은 진급이라고 한다. 만약 본인이 외인부대 출신으로 더 높은 자리로 가고 싶다면 영주권 취득 후 사관학교를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나이만 안 찼다면 가능하며, 유럽 국가들의 장교 지원 상한 나이는 왠만하면 만 27세에서 만 30세이다. 게다가 육군만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본인이 원한다면 해군이나 공군, 헌병대 장교로도 임관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 경우는 당연히 외인부대와는 연이 끊긴다.

다만, 장군이나 대령 등의 고위 장교는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들로만 배치된다고 한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출신을 차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소위라 해도 이등병부터 올라가면 나이를 너무 먹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20살에 입대해서 정말 빨리 진급해서 소위까지 15년이 걸린다고 하면 35살에 소위가 되는데 보통 프랑스 사관학교를 졸업한 소위들은 23살이면 소위다. 결국 소위 계급을 다는 시점부터 10년 이상 차이가 나버린다. 문제는 저게 최소연한 기준이고 평균연한을 따지자면 소위까지 40대 중반은 기본이다. 이 때문에 이등병부터 시작하면 중령에 진급하면 정말 빨리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60살이 다 되어 버린다. 몽클라르도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서 장군인 것이다. 다만 프랑스의 교육제도상 프랑스 육사 역시 2학년 말까지 인증시험을 치러서 합격해야 3학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들도 마찬가지로 대단한 재목들이라고 볼 수 있다.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병 출신도 대령을 달수 있는 것이 18세 최소 나이로 입대해 모든 진급을 1차로 통과한뒤 카포랄 쉐프로 진급하고 나서 외인부대 짬밥이 6년 이상 되었을때 추천서를 받아 장교로 임관하게 되면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2~3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하지만 이론적인것일 뿐 애초에 6년만에 카포랄 쉐프를 다는 거 자체가 쉬운일이 절대 아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위관급 장교의 대우는 그저 그런 병역의무 땜빵쟁이 취급 당하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높다. 프랑스군에서 장교는 정말 가리고 골라 선발하는데 그랑제콜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육해공헌병군의 사관학교나 그랑제콜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프랑스 학사장교를 통해 선발된 엄청난 인재에게 병부터 군 생활을 시켜 수십 년에 걸친 진급을 해낸 경우에만 선발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능력이 아니면 장대한 경력이 있어야만 장교가 가능한 것이 프랑스군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십년을 복무해가며 중위, 대위로 진급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레지옹 에트랑제 대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직은 어떻게 가느냐로 달라진다. 병부터 출발한 인원은 상사에서 소대장이 되고 주임상사나 원사도 소대장을 할 수 있다. 원사 중 엄선된 인원이 선임원사가 되며 선임원사에서 중대장 보좌관이 된다. 중대장 보좌관은 사실상 부중대장이지만 하는 일은 참모이며 지휘권은 없고 중대장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게 임무이다. 중대장 보좌관이 되면 중위까지 그 보직을 달고 다닌다. 중대장 보좌관은 보통 1명이 배치되지만 중대장 교체시기가 임박하면 2명을 배치해서 그 중에서 중대장으로 보직시킨다. 처음부터 소위로 임관한 인원은 병과 똑같이 훈련받고 거기에 대위의 역할을 훈련받는데 보직은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중위로 진급하면 소대장이 된다. 소위 시절에는 중위 소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대지휘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중대장이 교체되는 시기가 오면 보직이 중대장 보좌관으로 변경되었다가 중대장 자리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중위 소대장의 짬이 너무 적으면 다른 부대에서 중대장이 전입해오기도 한다. 중대장은 어떤 과정이든 대위 고정. 마치 독일 연방군처럼 장교 소대장과 부사관 소대장이 공존하는 시스템이다. #[33][34]

원사가 중대에도 배치되는데 보직은 중대장 보좌관이다. 주임상사나 원사가 중대장 보좌관을 하고 있을 때 굳이 소위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중대장이 되기 위해서이다. 소대장이나 중대장 보좌관이야 상사, 주임상사, 원사, 소위, 중위든 다 되지만 중대장은 오직 대위만의 보직이기 때문에 나중에 중대장이 되기 위해서 소위 시험을 본다. 합격해서 소위가 되면 당장은 중대장 보좌관으로 보직 변동이 없지만 차츰 진급하면서 대위가 되면 중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되는데 이렇게 병 출신 중대장이 될 경우 소령으로 진급하지 않는 한 해당 중대를 정년퇴임할 때까지 지휘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휘 욕심이 있는 부사관 중대장 보좌관은 소위 시험을 치르게 되고 합격하면 일단 신분부터 장교로 바꾼 뒤 나중에 중대장이 된다.

부사관 시험은 카포랄( 상병)부터 응시가 가능하며 이것은 중대장의 추천과 선임부사관의 추천 그리고 경력으로 응시가 가능하다. 카포랄에서 진급시험을 통과하면 세흐정 이라고 불리는 하사 계급으로 바로 진급하며 중대 부사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게다가 까스텔로다리 훈련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 하게 되면 연대장의 추천으로 이병과 일병을 건너뛰고 바로 카포랄로 수료와 동시 진급하게 되며 2년 내지 3년의 기간동안 훈련소의 조교로 군생활을 하게 된다.[35]

장교시험은 2022년 기준 세흐정쉐프 즉 중사부터 응시가 가능하며 각 중대의 중대장과 한국군의 행정보급관 과 같은 위치인 아쥐동 급 선임부사관 그리고 마지막 콜로넬이라고 불리는 연대장 의 추천을 받아야 응시가 가능하다. 프랑스어는 프랑스어권 사람의 80%는 구사 할수 있어야하며 중대의 훈련성적,파견성적,전투경력,파병경력등 이병때부터의 모든 경력과 경험을 종합하여 프랑스 국방부로 추천서를 보낸뒤 시험과 테스트 그리고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임관하게 되면 외인부대 사병출신 장교는 오로지 외인부대 안에서만 근무하게 되며 소위로 시작한다. 참고로 한국군 처럼 소위 길들이기 같은거 하다가는 맞아 죽는다. 외인부대 사병 출신 소위는 최소 경력이 8년 이상인 ("최소 "8년이다. ) 짬괴물들이며 이미 모든 훈련과 파견은 한번씩 해본 사람이다. 그리고 부대 내의 선임부사관이나 사병들과 훈련소 동기, 사병/부사관 시절 선후임 사이였기때문에 업무처리 진행속도가 엄청나게빠르다. 그리고 그만큼 유도리도 있는편이여서 중대원들에게 인기도 많은 편이다.실례로 사병출신 깨피탄( 대위)이 중대장을 잡아버리면 그 중대는 가장 편한 중대가 되기도 한다. 주임원사랑 선후배 사이여서 각종 작업이나 쓸데없는 일처리가 확 줄어들고 부사관 선후배들이 일을 봐줘서 중대의 업무스트레스가 확실히 줄어든다.

이와 달리 종신병장이라 불리는 제도도 있어 병장(카포랄쉐프)으로 진급하면 더이상의 진급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진급을 하지 않는 대신 보직변경은 거의 없고 그 섹션의 필드 책임자가 되는것다. 엘리제광장에서 행진할 때 가죽 망토를 두른 수염난 할배들이 이런 케이스다. 대한민국 공무원에 존재하는, 더 이상의 진급을 포기하는 대신 자기가 근무하는 곳에서 퇴직시까지 인사 이동하지 않는 것을 보장받은 6급 공무원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고해서 세흐정( 하사)이 계급이 더 높다고 하급자를 대하는듯이 대하는게 아닌 단독적인 기술직 계급으로서 서로 상호존대 해주는 분위기가 강하다. 계급만 병장일 뿐이지 사실 부대의 원로 취급받으며 그 섹션의 지휘자다. 특히 전투병과가 아닌 행정/참모/의무/기술 같은 기술행정부서의 카포랄쉐프의 힘은 막강하며 이 사람이 삔또상해서 업무처리를 안해버리면 업무 자체가 돌아가지가 않는다. 이러한 중요성과 전문성으로 인해 카포랄쉐프는 외인부대 내에서 가장 멋진 계급으로 통하며,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외인부대에는 65살의 병장도 있으며, 이 정도 짬이면 연대장이랑 반말하면서 맨날 논다. 왜냐하면 그 연대장과 소위때부터 굴렀던 속칭 "불알친구"사이기 때문이다. 이는 외인부대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외인부대는 다른 프랑스 육군 부대와는 다르게 둥지 개념이 있다. 소위 때부터 외인부대에 자원해 배속되면 이후 개인이 인사 신청을 통해 타 부대로의 발령을 희망하지 않는 한 외인부대 내에서만 인사 이동을 하는데, 이는 외인부대의 고유한 전통이며 깨지지 않는 불문율이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군단장은 육군 소장이며 프랑스 외인부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장성급 장교이다. 대령은 각 연대장( 여단장)과 프랑스 외인부대 참모장 정도 극소수이다.

4.6. 입대 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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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외인부대 모병소에 입소하면 각종 서약서와 신원 조회, 신체 검사, 인적성검사, 체력 측정[36]을 거친다. 그리고 여기에 통과해서 입대하게 될 경우 외인부대에서 지급하는 전투복으로 갈아입는다. 자신의 의복, 물품이 들어있는 가방은 지원자들이 테스트를 받고 훈련소로 떠나기 전까지 대기하는 오바뉴에서 맡아 중도 탈락 혹은 4개월간의 훈련을 거친 뒤 돌아오면 돌려받을 수 있다.

부대에서는 지원자가 사병으로서의 적성, 군인으로서의 적성이 맞느냐의 여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입대 후 훈련은 상당히 강도가 높으며, 특히 구보로 악명이 대단히 높다. 그 덕분에 각종 마라톤 대회에 외인부대원이 나가 상을 휩쓰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올림픽 대회에 외인부대원이 프랑스 국기를 달고 나가 7위를 달성한 적도 있다. 외인부대 마라톤 대표팀이 있는 부대는 제1외인기갑연대이며 많은 한국인들이 전차 타러 갔는데 미친 듯이 뛰기만 했다고 하소연 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자대 배치 후에는 파병을 준비하기 위해 더욱 살벌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전에 초점을 맞춘 훈련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강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시설과 훈련의 질 또한 수준급 이상으로 보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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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입대하게 되면 4개월간의 기초훈련에서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프랑스어를 무조건 교육받게 되어 있다. 외인부대는 프랑스어 구사 여부와 관계없이 모집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훈련병 때부터 새로 가르쳐주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프랑스어는 못 하더라도 영어는 무리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입대 절차 진행중일 때는 영어 통역은 해주지만 신병교육이 진행되면 될수록 프랑스어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참고로 영어조차 거의 못하더라도 면담이 좀 곤란해질지언정 테스트 자체는 볼 수 있다. 지능검사, 인성검사 문항들을 1990년대에 복무하고 있던 한국인 간부가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 두었다고 한다.[37] 일부는 이 4개월만에 상당한 성취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렇듯 프랑스어 구사는 개인 역량과 노력에 따라 성취도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5년 기본 복무기간 후에는 프랑스어를 숙달하게 된다. 프랑스어는 반드시 숙달이 필요하다. 일등병 빨리 달고 싶고 장기복무를 하고 싶으면 목숨걸고 프랑스어를 익힌다. 이 프랑스어 구사라는 게 프랑스 원어민 수준으로 철저하게 정확한 프랑스어를 요구하는 게 아니므로 여기에 걸리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사람마다 전혀 흥미없이 같은 언어를 쓰는 병사들과 어울려 영 진전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프랑스어를 숙달하지 못하면 잡무밖에 할 수 없으므로 카포랄도 못 달고 그냥 제대하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고, 제대 후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하기가 힘들다.

4.7. 여군

외인부대는 현재 여군을 직접 모병하지 않는다. 현재 외인부대에 복무 중인 여군은 타 프랑스 육군 부대에서 근무하다 외인부대로 전근을 온 것이다. 즉, 소수의 외인부대 소속 여군은 모두 프랑스 국적자이다.

그러나, 수잔 트래버스(1909년~2003년, 복무기간: 1940년~1948년) 선임상사(Adjudant-chef)의 경우와 같이 과거에는 극히 예외적으로 외인부대에서 직접 여군을 모병한 경우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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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인 외인부대원

최초의 한국인 외인부대원은 1943년에 입대한 '김'씨 성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1953년 알제리 전쟁에서 전사하여 시디벨아베스 외인부대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전해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로로 외인부대까지 오게 됐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38]

한국전쟁 유엔군의 일원이었던 프랑스 대대에서 복무한 한국인 카투사 중 10명이 외인부대에 입대하였다. 이들은 프랑스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 자연스럽게 같이 가게 되었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들 중 현재까지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39] 2021년 현재 외인부대에서 근무중인 한국인 복무자는 약 2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육군 특전사 해병대 출신이 군필 한국인 외인부대원의 7할 이상을 차지한다.

조금 특이하게도 2006년 원주타투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한국인 군악대원이 있는 것이 확인됐고, 이 대원은 2016년 프랑스 Renne에서 개최된 CISM 여자축구 대회 때도 군악대원으로 참가, 최소 이 때까진 복무했음이 확인되었다.

외환위기 시기였던 1998년 《외인부대원 LEE》가 출판되어 외인부대 입대 붐을 낳기도 했다. 한국인 지원자 수가 기존 아시아 최다였던 일본인을 제치고 아시아 1위를 달성했다고 한다. 외인부대 입대 전 묻는 간단한 프랑스어와 적성시험을 대비한 외인부대 입시학원까지 생겼을 정도다. 후술할 이유로, 지금은 한국인 지원자가 많지 않다.

4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나서 한국이 그리워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사람 중에도 다시 돌아와서 복무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한다. 탈영 사유나 과정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보통 영창에 1개월 갔다온 후 계속 복무할 수 있다. 장기 복무시 불리해지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이다. 외인부대 특성상 고국이 그리워 탈영했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매우 많으므로 생각보다 세게 처벌하진 않는다.

또한 보스니아 내전 등 실전에 참전한 1990년대 복무자 중에는 결국 PTSD로 고생하다 휴가 미복귀를 택해 대한민국에 돌아온 사람도 있다. # 이 분은 플래툰 지에 자신의 수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연재 당시엔 현역이었고 외인부대 입대 및 유고 내전 파병 시기까지만 연재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고만 나왔다. 그 연재 수기만 봐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온갖 인간군상들의 집합체인 외인부대와 분쟁지 주민의 처참한 삶을 일부 엿볼 수 있고 실전에서 얼마나 쉽게 죽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는지 등 외인부대 내의 분위기가 결코 낭만스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외인부대원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이 프랑스에서의 생활과 외인부대에 대하여 저술한 《어느 프랑스 외인부대원 아내의 이야기》가 2018년 12월에 발간되었다. 이런 경험담 중 가장 최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부대원 가족의 고충, 받는 혜택, 생활상들을 보기가 좋다.

한국인 자대배치자 대비 탈영율은 상당하다. 한국의 삶의 질이나 경제적 여건 등이 프랑스에 비해 밀리지 않는 수준으로 올라간 데다, 외인부대보다 대우 좋고 자유로운 PMC 등의 직장도 많으니 스펙 좋은 사람들이 거길 가면 갔지 굳이 복무 중 대우도 생각만큼 좋지 않고 지긋지긋한 외인부대의 실상을 보고도 남으려고 하진 않는다. 외인부대에 입대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군필인데, 한국 군대보다 열악한 시설과 대우에 놀라는 사람이 많다.

결국 외인부대도 인력 경쟁을 하는 이상 대우를 올려주지 않으면 고급 한국인 자원을 받기 힘들지만, 어차피 외인부대는 한국 같은 선진국 출신들이 아닌, 현 외인부대의 처우에도 감지덕지할 개도국 출신들 중에도 비교적 양질의 인적 자원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으므로, 굳이 한국인 자원에 집착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같은 섹션 내 네팔인이나 인도인 외인부대원들 같은 경우 짬이 차면 해외 파병이나 작업같은 일을 기피한다. 적당히 짬 차서 올라간 기본급만으로도 자국민 평균 월급의 몇십배를 받기 때문에, 굳이 힘들고 목숨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이들은 대부분 5년 만기 후 칼같이 전역하거나, 굳이 연장한다 해도 프랑스 시민권 취득시까지 정도만 더 근무한다. 부사관에 뜻이 있고 외인부대에 뼈를 묻으려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파병길을 붙든다.

그러니 외인부대를 지원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버틸 수 있을까 잘 생각해보고 와야 한다. 외인부대에는 똥군기가 좀 있고, 외인부대에 오는 자원들 상당수가 한국보다 똥군기 등에 둔감한 국가 출신들이고 부대 분위기도 이것에 맞춰져 있어 부조리와 각종 인종차별을 버텨낼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지원하는 것이 좋다. 지원자들의 출신 국가가 국가인만큼, 어느정도 엄선되고 훈련된 인원들만이 모인 자대배치 이후는 괜찮아도 훈련소는 확실히 인적자원의 질이 굉장히 낮은 곳이니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한국인 지원자의 경우 대부분 군필 출신이다. 미필자는 오바뉴에서 99%의 확률로 탈락하게 되는데, 이유는 한국의 징병제로 인한 외교 마찰 발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미필자가 복무 중에 프랑스로 징집 영장이 날아오면 프랑스는 그 인원을 무조건 한국으로 송환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기껏 교육시켜 놨더니 한국으로 군대 간다며 떠나 보내면 프랑스 입장에선 손해이다. 미필자가 병역을 거부하거나 망명 신청을 해 프랑스 외인부대에 남아 전역한다 해도, 한국에서는 병역기피자로 분류되어 출국심사에서 막혀 국적이 말소되어 있거나 범죄자로 입국하자마자 체포될 가능성이 크다. 국적이 말소될 경우, 프랑스는 현재 이민정책의 변화로 5년차 만기 전역자에겐 체류권만 줄 뿐 시민권은 7년차 연장 복무 인원에게만 부여하고 있기에, 연장 복무에 실패하면 무국적자가 될 소지가 있다. 또한, 한국 병역미필자를 외인부대원으로 쓰는 입장에서 송환을 요구하는 한국과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어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게 좋기 때문에, 미필자는 애초에 거르려 한다. 오바뉴에서 면접을 볼 때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불가능할 경우 한국인 외인부대원이 통역해주는데, 대부분의 통역들이 면접관에게 미필자일 경우 거르라고 귀띔해 준다. 포트노정에서 첫 면접때 한국인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병역은 필했습니까?"인데, 군 복무 이력이 있으면 무시못할 가점이 되기 때문에 외인부대원이 되고 싶다면 가산점 관리한다 생각하고 한국에서 병역을 마치는 게 좋다. 물론 간혹 미필자가 붙는 경우가 있는데, 합격 후 국외여행체류허가기간이 끝나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한국에 돌아갈 수가 없다.

5.1. 출신 인물

아래 송안식 씨의 2020년 인터뷰에 따르면, 외인부대를 "만기 전역"한 한국인은 200명 가량으로, 약 50명이 프랑스에 남았고 100명 정도는 귀국했으며, 50명은 제3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외인부대를 기본계약기간 5년이상 채운 인물만 작성을 하고 중간에 탈영이나 불명예 제대한 인원은 작성하지 않는다.
  • 이진선(배우 및 보이스 코치) - 만 18세가 되던 1998년에 입대하여 2003년까지 기갑연대에서 복무했으며, 세네갈 등에 파병된 적이 있다. 검사외전, 공작 등에서 단역배우로 출연했다. 복무를 한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심적으로 힘들어 탈영 고민도 했지만 동료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잡고 결국 5년 복무하고 만기 전역하였다. 배우가 꿈이었던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연기 공부를 했으며, 현재 한국에서 활발한 배우 활동과 블루밍경영연구소 소속 보이스 코치로 기업의 임원과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고 있다.
  • 송안식(1970) -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고 싶어 1996년에 입대했고, 공수연대 산악중대 소속으로 저격수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 차드, 콩고, 가봉, 보스니아 내전에 참전했다. 프랑스군 십자무공메달과 나토(NATO)메달을 비롯해 무공훈장을 7개 받았다고 한다. 외인부대 한인 전우회 회장을 맡았으며, 2020년에는 프랑스 한인회장으로 당선되었다.

6. 외인부대에 대한 오해들

1942년 6월 북아프리카 전역의 비르 하킴 전투에서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이 아프리카에서 유달리 용감하게 싸우는 적군을 만나 어떤 군대인지 알아보라고 장교를 보냈는데, "프랑스군입니다"라는 대답을 듣자 "그럴 리가 없다! 다시 알아봐!"라고 쫓아보냈고, 다시 돌아온 장교가 "프랑스 외인부대가 확실합니다"라고 하자 "그러면 진작에 외인부대라고 말했어야지"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문 군사서적에서는 이런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취미가' 등 모형잡지 연재물이나 그 연재물을 엮은 이대영 알기 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 임영훈 저 '외인부대'(우리문학사, 1994) 등의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부 도서에만 소개가 된 된 것으로 보아.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소설로 보인다. 당시 독일군은 비르 하킴에 있던 적군이 제1자유프랑스여단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작전지도에도 비르 하킴에 자유프랑스여단이 있다고 적혀 있기 때문에 애초에 롬멜은 적군이 누군지를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8개 대대 규모의 제1자유프랑스 여단 병력 중 외인부대는 단지 2개 대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누군지 알아보라고 했다 하더라도 외인부대라는 답이 나올리가 없는 상황이다.

외인부대의 낭만적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며, 이들은 철저한 프로페셔널로 구성된 직업군인들일 뿐이다. 그저 국적이 외국인일 뿐. 프랑스인들을 위험한 전장에 보내 마구 소모시키면 여론이 나빠지니 프랑스 외국인을 선발해 수준 높은 전투원으로 만든 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이다. 즉 프랑스 정규군 예하 용병부대의 프로페셔널한 군인일 뿐으로 오히려 스페인 외인부대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프랑스 외인부대의 이미지와 더 맞는 편이다. 훈련은 고되고, 철저히 현실적인 동시에 실전적이며 분쟁지역 일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고뇌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게다가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병영부조리도 심한 편이다. 외인부대 관련 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바로 '인종차별' 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신병 교육대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로 보인다. 교관들이 설령 인종차별로 갈구더라도 그건 군기 형성이 목적인게 대다수이니 예외.[40] 문제는 동기들인데, 주로 흑인이나 아시아계(동남/동북아, 아랍계) 민족이 타겟이며, 흑인들의 경우 아프리카의 구 프랑스 식민지였던 프랑스어 구사국 출신자들이 많은데다가 같은 출신이라 기본적인 성깔이 있기에 자주 타겟이 되진 않는다. 때문에 언어도 안 통하고 유교 문화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동양인 들이 인종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사람사는 곳인 만큼 체력좋고 활달하고 능력좋으면 문제가 전혀 되지 않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1] 인종이나 민족이 같아도 체첸 VS 러시아와 같이 타국인끼리뿐만 아니라 자국인끼리도 차별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42] 군기는 훈련소에서의 첫 군인화 과정 1~2달동안만 극심할 뿐, 그 이후로는 생각보다는 프리하다.

외인부대가 일반 프랑스군이 쓰다 버린, 폐기하기 직전의 장비나 2선장비를 쓴다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다만 대우의 경우에는 정규군에 비하면 확실히 개차반 수준이다. 외인부대원의 개인 장비나 훈련시설 등을 보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 좋은 수준이다. 특히나 훈련만큼은 정규군 이상으로 빡센만큼 관련 시설이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으며 훈련의 질 또한 높다. 상술했듯이 외인부대는 전투에 관련될 확률이 비교적 높기 때문이다.

6.1. 외인부대 = 특수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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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중인 제2외인공수연대 공수 코만도 요원

외인부대는 프랑스 육군 여단에 배속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정규전 부대이다. 이 중 해외에 가장 많이 파견되었던 부대가 공수연대였고, 또 활약도 인상 깊었기 때문에 외인부대가 곧 특수부대라는 인식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수연대 자체도 특수부대가 아닌 일반적인 경보병이며, 외인부대 각 연대 내의 코만도들이 특수부대다.

외인부대는 5개의 보병 연대, 1개의 기병(기갑)연대와 2개의 공병연대, 그리고 1개의 공수연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다른 2개의 연대가 더 있지만, 이들은 사령부와 신병훈련소를 책임지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전투부대의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위의 부대 중에서 각 부대 예하의 코만도가 공식적으로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인 것이다. 즉 외인부대 자체는 특수부대가 아니며 외인부대는 하나의 병과로 인식이 될만큼 부대 내의 담당 임무가 매우 많다.

많은 밀덕들이 또는 특수부대 뽕을 맞은 사람들이 코만도를 들어가려고 하지만 이 코만도는 일반 연대에서 우선적으로 수년의 군생활을 해야한다. 체력적으로도 한국의 특수부대에 입대, 수료 후 자대배치를 받고 거기서도 무난히 평가받을만한 수준을 갖춰야 하며 거기다가 유창한 프랑스어는 물론 매우 전문적인 군사능력을 지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특수부대 뽕맞은 혹은 밀덕들이 만만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 연대들이 다 약하다는건 절대 아니다. 보병, 공수, 산악, 전투공병과 같은 외인부대 전투연대들은 특수부대만 아닐 뿐 특수부대 수준의 굉장한 체력 훈련과 심지어 그 왠만한 국가의 특수부대보다도 훨씬 더 체계적인 전술 교육과 훈련 체계를 가지고 있다.

모병제인 프랑스군 내에서도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온갖 위험한 곳에 투입시키는 신속대응군 용병부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징병제 한국군 보병부대의 병사들에게 실시하는 체력훈련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 때문에 한국에서 특수부대 뽕 맞고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체력적인 문제+언어장벽으로 인해 자진포기 하는 사람이 많다. 애초에 외인부대 자체는 특수부대도 아닐뿐더러, 체력이나 언어가 안 되면 자연스래 주변에서 갈굼을 당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인종차별까지 당하게 되는 등 온갖 수난을 겪게 될 것이다.

강하면, 혹은 강해 보이면 특수부대로 생각하고 보는 민간인들의 대표적인 착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부대의 성격을 굳이 따지자면 (산하에 기병(기갑) 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제한적인 특수임무가 가능한 정규 경보병 부대 정도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의 육군 101 공수사단 및 82 공수사단과 비슷한 성격. 아주 높게 쳐준다면 미 75레인저부대라고 쳐줄 수도 있긴 하나 이들은 엄연한 미 경보병 특수부대이기에 평균적인 전문성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전자(101공수사단, 82공수사단 등)와도 다른 면모를 많이 보이긴 한다.

[1] 모든 외인부대원이 암기, 숙지해야 한다. 못 외우면 부사관의 무시무시한 갈굼이 다 외울 때까지 동반된다. [2] 프랑스어가 아니라 라틴어다. [3] 과거 모병 사례는 일부 있음. [4] 1외인공수연대는 아래에 서술된 알제리 반란사건(쿠데타)에 참여했다가 불명예스럽게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에, 외인부대에는 1공수연대가 없고 2공수연대만 있다. [5] 반여단은 본래 프랑스 혁명 당시 연대의 표기를 대체한 단어였다. 실제 규모도 연대급으로, 프랑스혁명 이후 반여단 표기가 폐지되어 다시 연대가 복구되었지만, 13반여단은 과거의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이 편제를 보존하고 있다. [6] 지휘관이 대위이기 때문에 중대급 부대로 분류된다. [7] 독일인 외인부대 알선자들이 동성애적인 방법으로 모병자를 끌어들였다는 주장이나 외인부대는 성적으로 퇴폐적인 곳이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런 주장은 전통적 가족상에 기반해 재건 중이던 전후 서독 사회에 큰 공포로 다가왔다고 한다. 여기에 외인부대 알선자들은 전직 외인부대 복무자라는 인식 때문에 두 주장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8] 특히 독립전쟁시기에는 프랑스군이 하이퐁 등지에서 학살을 저지른 바 있었다. [9] 항간에는 "프랑스가 아닌 외인부대 자체에 충성하는 것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식의 추측성 이야기가 일부 떠돌기도 하는데, 이런 추측은 아마 국내 이야기꾼들의 소설로 보인다. 임영훈 저, 외인부대, 우리문학사(1994) 226페이지를 보면 "프랑스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복무수칙"이라는 다음 구절에 "그러나, 외인부대원들은 이 충성이 프랑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외인부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라고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도 적어 놓고 있다. 즉, 프랑스에 충성하는게 실제 사실이고, 외인부대에 충성하는건 저자의 주관적 생각일 뿐인데, 일부 독해력이 떨어지는 독자들이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실제 사실인 것으로 오독하여 이런 소문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군사 반란은 육사 출신 정치 군인 장교들의 반란일 뿐 프랑스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외국 국적의 말단 병사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제리 군사반란을 주도한 프랑스 육사 출신 장교들은 자신들이 하는일이 프랑스 국가를 위한다는 위험한 망상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거지 외인부대를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실제 주요한 3개 반란부대 중 외인부대는 단지 1개 부대에 불과하다. [10] 파병경력, 실전경력 등. 군복무만 오래했다면 짬밥만 많고 경력이 없는 것이다. [11] 고참병인데 아직 이등병이면 아예 대놓고 관심병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짬밥이 많아도 전혀 윗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다만 짬밥과 경력은 구분하므로 같은 계급이더라도 오랜 군생활로 인해 출중한 능력과 공훈을 보인다면 계급을 막론하고 우대해준다. 단순히 복무연수가 높다고 우대하는 것이 아닌, 그 만한 능력이 있어야 대우받을 수 있다. 이는 사실 어느 선진형 군대나 마찬가지다. 다만 외인부대는 진급제한이 없는 다소 특이한 시스템을 사용하므로 타 군에 비하면 계급을 중시하는 편이다. [12] 물론 국민 대다수가 대졸인데다가 타국의 대졸 인원 비율에 준할 정도로 석박사 보유자가 있는 한국에선 그 허들이 상대적으로 꽤 낮아보일 수가 있다. [13] 물론 상기했듯, 진짜 특수부대 출신들과 비교하기엔 당연히 무리다. [14] 전세계적인 모병을 하기 때문에 여러 언어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놓았는데, 한국어 페이지는 과거에 개설됐다 현재는 없어졌다. 한국인들은 모국의 경제성장으로 프랑스보다 삶의 질도 크게 차이 안나고 해서, 이민 등에 대한 의지가 줄어서 지원자가 급감했다고 한다. 한국군 자원들은 좀 더 대우가 좋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민간군사기업 등으로 많이 빠진다고 한다. [15] 물론 이는 치료하지 않고 썩어가는 상태로 냅둔 걸 말하므로, 치과에서 갈아내고 아말감 등으로 땜질한 건 세지 않는다. [16] 이 정도 수준의 병을 앓고있다면 외인부대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딜가나 모병 시험은 100% 탈락, 징병에서도 현역을 받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몸 상태가 이렇다면 애시당초 일상생활 자체가 의학적인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17] 특히 까스텔에서 TO가 제일 많이 남아돌고 동시에 가장 훈련병들이 기피하는 2공수연대는 훈련 강도로만 따지면 한국군 특전사 수준으로 훈련을 뛴다고 봐도 좋다. 여긴 완전군장으로 뜀걸음 속도로 산악을 행군하거나 그에 준하는 고강도 훈련이 일상인 연대이며, 출신자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 작전에서 미군 그린베레(!)가 외인공수부대의 행군 속도를 못 따라온 경우도 존재했다고 한다. 외인부대가 얼마나 뜀걸음 능력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느낄수 있는 부분. [18] 다만 상병까지 복무시 사고 유무라든지 여러가지를 따지며 상병 이후의 진급부터는 시험 및 여러가지로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19] 와인 이름도 외인부대다. 의외로 본격적이라 와인 종류별로 다 만든다고 한다. 파일:/storage/upload/2009/10/23/65052705_1254940976.jpg [20] 책자는 엄청 두툼하고 실제 외인부대 군복 및 여러가지 전쟁 자료와 외인부대를 복무한 유명인 목록. 외인부대 장비 등 여러가지 정보가 많다. 그러나 1994년 초판에는 엉터리도 많았는데 외인부대원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든지, 알제리 전쟁 당시 반란 일으킨 부대가 처형당했다고 서술되었다. 2003년판 재판에서는 이런 게 다 삭제되고 수정되어 기준 입대 조건 부분에는 그런 언급이 없고, 살인 등 파렴치범,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는 프랑스 경찰에 인계된다고 적혀 있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것은 2차대전 종료 후 갈 곳이 없어진 SS나 국방군 출신 경미한 전범 등 독일인들이 과거를 묻지 않았던 외인부대에 입대했다는 부분에만 딱 한 번 언급된다. [21] 제2공수연대에 출입하는 '돈키호테'라는 민간인 짬 처리업자에 대한 부분은 한때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이 노인이 언제부터 부대에 출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분조회 없이 부대를 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간인이며, 수거한 짬으로 돼지를 사육한다는 것으로 보아 부대 인근 돼지 농장주가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노병'으로 둔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노인은 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매일 점심때 부대에 와서 조리병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짬을 수거해 갔다고 한다. 외인부대 출신이거나 현지에서 오래 거주해 부대와 연줄이 있어 잔반 수거 외주 계약을 한 번 따낸 뒤 거의 종신 계약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개정이 있었지만 이 책이 집필된 것은 1994년이니, 장장 20년도 넘어 이미 고인일 가능성이 높다. [22] 사유 재산 관련 불법부당한 각종 제약 행위 등이 있다. 부대 소재지 주변부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관련 업종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상급부대에서 직접적으로 공문을 내려서 특정 부대원과의 자동차, 부동산 등에 대한 계약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다는 정황이 암시된다. [23] 병영부조리/해외사례 항목에 실려있는 사진을 간부에게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하냐 묻자 사진이 찍힌 인원들을 포함하여 300여명의 병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으나 그 누구도 괴롭힘을 당했다고 진술한 인원이 없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답한다. 반면 민간인 혹은 NGO 인사들은 자국군을 전쟁포로 다루듯하는 모양을 보며 아연실색을 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에게 잡힌 포로들이 학대당하는 사진이 아니냐며 되묻기도 한다. [24] 동료들에 의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참지 못한 브라질 출신 일병이 차드 파병부대에서 병사 2명과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 공수연대에서 훈련중 사소한 실수를 저지른 병사의 고환에 대고 상급자가 공포탄을 발사하여 한쪽을 절단하게 된 사건 등. [25] CL1이라고도 한다. 큰 사고를 친적없고 간단한 명령어를 듣거나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면 진급심사 후에 진급 한다. 애초에 일병으로 진급 못 할정도면 파병 제한을 당하던가 영창을 가거나 탈영을 하거나 불명예제대를 당해 5년 만기복무를 할 수가 없을 정도일 것이다. [26] 반드시 상병교육을 받아야 진급을 할 수 있다. 한국처럼 야매진급 없다. 큰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5년 만기복무시에 보통 이 계급을 달고 전역한다. 이 계급으로 진급하는 순간부터 병상호간에 약간의 파워가 생긴다. [27] 이 계급부터는 진급을 안하고 계속 눌러앉아있을 수 있다. [28] 장교부터는 인원 제한이 극심하기 때문에 너무 조금만 선발하게 되는데 그래서 무조건 상대평가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년도 합격자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탈락하기도 한다. [29] 어차피 주임상사나 원사쯤 되면 병기본 같은 건 자다가 잠꼬대로 구사해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30] 세계 대부분의 군대는 전원 병에서 부사관으로 진급한다. 부사관만 따로 뽑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민간부사관 제도가 있고 또 부사관 대다수가 이쪽 출신인 한국군이 괴이한 사례에 속한다. [31] 이 정도의 진급은 거의 전투가 많아 군공을 세울 기회가 빈번하던 1960~ 70년대에나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최근에도 걸프전이나, 아프간 전쟁 같은 굵직한 전투가 있지만 아프간 전쟁에서는 2009년쯤에 10명이나 전사한 전투도 있었다. [32] 보통 15년 복무하면 한국으로 치면 원사 정도에 해당하는 아쥐당 셰프까지 진급하고 제대한다고 한다. [33] 사실 유럽의 군대는 공산권 국가(거긴 정치장교도 넣고 이것저것 끼우고빼고 해서)이거나 징병제를 하는 일부 국가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 이렇게 한다. 왜냐 하면 소대장을 전부 다 장교로만 넣어버리면 나중에 영관급 장교에서 인사적체가 발생해 심각한 고질병(정치군인)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34] 영국군 역시 영관급 장교 위관급 장교의 머릿수가 비슷한 이유가 장교 소대장과 부사관 소대장을 병용해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35] 대개 풋풋이라고 부르며, 일병으로 구르면서 배운 경험이 적기 때문에 전투부대로 전입할 시 굉장히 무시받는다. [36] 턱걸이, 셔틀런, 수영이 있다. [37] 아쉽게도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고 그냥 영어로 풀어야 한다. [38] 다만, 당시 한반도는 일본 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일본 국적( 조선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9] 참고로 기사를 쓴 사람은 전진배 [40] 미군 특수부대나 해병대 입소 훈련의 경우에도 각종 쌍욕은 물론이요, 온갖 인격모독과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해댄다. [41] 선임이 부조리하는건 아니고, 훈련소에서 부식을 짬쳐놓다가 교관한테 걸린거다. 다른 동료 부대원들이 얼차려를 받는동안 저 많은 초콜릿을 다 먹도록 강요하는 영상. 근데 영상 속 저 사람도 보통 성깔은 아닌게, 조교가 뭐라했다고 눈 부라리다가 바로 주먹을 날리는 하극상을 벌인다. 물론 먼저 가슴을 주먹으로 치는 잘못을 범한건 조교 쪽이기에, 교관이 별 다른 징계는 하지 않고 말리기만 하는걸 보면 신체적 터치는 확실히 자제하는 분위기인듯. [42] 예시로 어떤 썰에서는 팜에서 몽골인 카포랄이 자신을 아니꼽게 보고 꼬장을 부렸다는 언급이 있다. 같은 동양인끼리, 특히 같은 한국인끼리의 경우에도 항상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 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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