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3:01:05

파비오 카펠로

파비오 카펠로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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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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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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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대, 59대, 6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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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대, 5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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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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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대

장쑤 FC 역대 감독
최용수
(2016~2017)
파비오 카펠로
(2017~2018)
코스민 올러로이우
(20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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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오 카펠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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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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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 감독
파일:external/i.imgbox.com/vE5Gq9rQ.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파비오 카펠로
Fabio Capello
출생 1946년 6월 18일 ([age(1946-06-18)]세)
이탈리아 산칸치안디존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직업 축구 선수 (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유소년 SPAL (1962~1964)
선수 SPAL (1964~1967)
AS 로마 (1967~1970)
유벤투스 FC (1970~1976)
AC 밀란 (1976~1980)
감독 AC 밀란 (1982~1986 / 유스 감독)
AC 밀란 (1987 / 임시 감독)
AC 밀란 (1991~1996)
레알 마드리드 CF (1996~1997)
AC 밀란 (1997~1998)
AS 로마 (1999~2004)
유벤투스 FC (2004~2006)[1]
레알 마드리드 CF (2006~2007)
잉글랜드 대표팀 (2007~2012)
러시아 대표팀 (2012~2015)
장쑤 쑤닝 (2017~2018)
국가대표 32경기 8골 ( 이탈리아 / 1972~1976)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감독 스타일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리그 기록5.2.2. 국가대표 기록5.2.3. 대회 기록5.2.4. 개인 수상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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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감독으로, 별명은 'Il Sergente di Ferro(강철의 교관).'[2]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로, 1964년 SPAL 구단에서 데뷔했다. 워낙 명감독으로 알려져 부각되는 시절은 아니지만, 이래봬도 선수 커리어도 초일류 선수로, 꽤 화려한 커리어도 보냈었다. 그 후 AC 밀란, 유벤투스, AS 로마 등 명문 팀에서 활약하였고, 세리에 A 4회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우승을 거두며 나름 성공적인 선수 커리어를 보냈다.

3. 지도자 경력

3.1. AC 밀란 1기

은퇴 후 TV 해설가를 맡기도 하였던 카펠로는 1987년 AC 밀란의 감독 대행을 맡아 4승 3무 1패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UEFA컵 출전권을 지켜낸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파르마에서 빼 온 아리고 사키를 감독으로 임명하며 카펠로를 코치로 강등시켰고, 이 후 4년간의 오월동주를 거쳐 1991-92 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다. 과거 한국 스포츠 기자들은 카펠로를 '사키의 제자(?)'라고 소개했는데, 둘은 거의 동시대에 코치,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3]

파일:fabio_capello_ac_milan_in_1994.jpg

감독 데뷔 첫 시즌인 1991-92 시즌 22승 12무 0패로 데뷔 시즌 무패 우승을 거뒀다. 다음 시즌인 1992-93 시즌도 리그 우승을 하고 챔스까지 진출했지만 프랑스의 마르세유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당시 마르세유는 승부 조작으로 리그앙에서 강등당하였다. 1993-94 시즌 역시 리그 우승을 하였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명장 요한 크루이프가 이끌던 드림팀 FC 바르셀로나였다. 요한 크루이프를 비롯한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강력한 자신감을 가졌지만 정작 마르셀 드사이의 결승골로 카펠로의 AC 밀란에 0:4로 완패를 당하며 오히려 축구 레슨을 받는 망신을 당하게 되고 카펠로는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4-95 시즌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하며 3시즌 연속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약스에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무르고 리그에서도 4위를 기록하며 주춤한 카펠로는 1995-96 시즌 다시 AC 밀란을 세리에 A 우승팀으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첫 시즌 사키와 비슷하게 442를 사용했고 바레시의 전진으로 볼 배급하고 말디니 등 풀백이 높게 올라가는 등 사키 시절의 공격루트와 비슷하게 공격적으로 운영했고 실제로 득점도 많았다. 카펠로의 수비시스템보다 공격적인 운영을 했고 반바스텐과 굴리트 투톱의 피지컬적 강점을 더 살렸다고 한다. 실제로 카펠로 시절 밀란에서 직선적이고 다이렉트한 플레이가 많으니. 첫시즌은 오히려 공격적으로 운영했다고하고 이후부터 바레시도 전진을 적게하고 사키 시절 공격적인 역할을 맡던 도나도니도 카펠로 하에서 수비적인 역할과 지역방어에 좀 더 치중했다고 한다. 3번째 시즌부터 굴리트 등 스타플레이어가 떠나고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그 선수들도 4411시스템인 것은 동일했지만 레이카르트 대신 드 사이를 영입하면서 공을 받고 배급하는 것보다 좀 더 수비적인 면에 치중했다. 이렇게 스쿼드가 바뀐 93/94 시즌 34경기 36득점이라는 기록도 나온다.

1996년에 한국에 방한하여 한국 국가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벌인 적이 있다. 결과는 2:3으로 AC 밀란의 패배.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3번째 골은 선수 부상으로 걷어낸 볼을 가로채서 넣은 것이다.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라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3.2. 레알 마드리드 CF 1기

1996-97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겼다. 카펠로의 수비적이고 조심스러운 지도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당시 슈케르, 라울, 미야토비치를 앞세워 스리톱으로 전술을 구성했으며 팀을 옮기자마자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 시즌만에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라이벌 바르셀로나가 호나우두의 스피드를 앞세워 화려한 축구를 펼친 반면에 카펠로는 직선적이고 이에로 호베르투 카를루스를 통한 롱볼 축구를 해 레알 팬들이 이 점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하나 재밌는 점은 당시 레알 마드리드 CF의 보드진이 카펠로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이후 3년간 FC 바르셀로나 감독 부임을 금지하는 특별 조항을 삽입했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화려한 축구를 질투하면서도 성적 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던 카펠로가 바르샤와 접촉하는 건 막고 싶었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셈.

3.3. AC 밀란 2기

1997-98 시즌 라치오의 구애를 물리치고 AC 밀란으로 한 시즌만에 복귀했다. 당시 AC 밀란은 많은 선수들이 떠난 상태로 리빌딩이 필요하였고, 선수들이 대거 영입되었으나 아직 조직력이 구축되지 못한 상태였다. 라이벌인 유벤투스에 완패를 당하는 등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11승 11무 12패 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10위를 기록, AC 밀란을 떠나게 된다.

3.4. AS 로마

1999-2000 시즌 AS 로마 감독으로 부임했다. 구단주였던 프랑코 센시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직한 99-00 시즌은 리그 6위로 마감했다. 당시 카펠로 감독은 스코어러인 몬텔라를 선호하지 않아 후보로 기용했고 대신 마르코 델베키오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시즌이 끝난 후 카펠로 감독은 장신의 대형 스트라이커를 필요로 했고 PSV에서 활약하던 뤼트 판니스텔로이를 영입하려 했으나 판니스텔로이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영입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피오렌티나로부터 거액을 주고 영입했고 세계적인 수비수지만 당시엔 유망주였던 왈테르 사무엘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3-4-1-2 포메이션으로 자구-사무엘- 파누치 스리백 뱅상 캉델라- 카푸의 양 윙백, 톰마시-이메르송의 강력한 중앙과 플레이 메이커 토티, 그리고 바티스투타와 델베키오를 투톱으로 내세운 AS 로마는 2000-01 시즌 리그 우승과 2001-02 시즌 리그 준우승을 하며 전성기를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2002-03 시즌에는 리그 1,2라운드 모두 패배를 당하는 등 안 좋은 모습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결국 리그 8위에 머물렀다. 2003-04 시즌에는 키부의 영입과 카사노의 각성 등 새롭게 분위기를 쇄신하여 21승 8무 5패라는 준수한 성적과 19실점이라는 극강의 수비를 자랑했으나 AC 밀란에 밀려 리그 타이틀을 내줬다.

3.5. 유벤투스 FC

그 후, 카펠로는 2003-04 시즌 실패로 새롭게 구단을 꾸려갈 만한 감독을 필요로 하는 유벤투스의 제의를 받고 이적했다. 카펠로는 애제자였던 에메르손과 제비나 등을 같이 데려가면서 AS 로마와 AS 로마 팬들과 마찰을 빚었다.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 카펠로는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 성적은 각각 26승 8무 4패와 27승 10무 1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다만 챔피언스 리그와는 거리가 멀어 2시즌 연속 8강에 머물렀다. 2004-05 시즌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하면서 유벤투스의 상징이었던 알레산드로 델피에로가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당시 전임 감독이었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4-3-1-2 가 아닌 4-4-2 로 바뀌면서 전술의 중심이었던 파벨 네드베드가 윙으로 옮기는 대신 네드베드의 역할을 즐라탄이 이어받게 된다. 즐라탄의 '마법' 같은 발재간과 공간 창출로 공격을 풀어나가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던 2004-05 시즌엔 공격이 활발해졌으나 2년차 징크스를 겪은 2005-06 시즌엔 즐라탄이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며 공격 타이밍을 놓치는 등 하락세에 빠지게 되어 문제를 겪게 됐다. 또 에메르손의 파트너로 파트리크 비에이라를 영입하며 강력한 중앙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에이라도 하락세인지 초반 반짝 활약을 제외하면 계속 하락세를 보여줬다. 우여곡절 끝에 리그 우승은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아스날에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카펠로의 2004-05, 2005-06 시즌 리그 우승 타이틀은 승부조작 스캔들로 인해 박탈당하고 만다.

3.6. 레알 마드리드 CF 2기

유벤투스가 칼초폴리로 인해 세리에 B로 강등되고 난 후, 카펠로는 레알 마드리드의 러브콜을 받아 10년 만에 복귀했다. 복귀 직후 지키는 축구라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팀을 빠르게 재정비했고 인터뷰에서 공격적인 것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라고 하며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스타일을 버릴 것임을 공언했다. 분위기 쇄신이나 감독과의 마찰 등으로 호나우두, 데이비드 베컴 같은 톱 스타들이 카펠로 감독에게 버려졌으나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팀 내 분위기가 엉망이었고 애제자였던 카사노가 카펠로를 디스하다가 그게 기자들에게 녹화되는 바람에 방송에 타는 등 말이 아니었다. 또 리그 2연패를 하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에 상당히 뒤처지는 등 사면초가인 상태에서 자신이 내쳤던 베컴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베컴의 맹활약으로 FC 바르셀로나와의 승점 차를 뒤집고 극적으로 우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계약 마지막 해였던 베컴은 이미 LA 갤럭시와 계약한 상태였기에 카펠로 자신조차도 기왕 가는 베컴에게 하는 립 서비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쉽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어수선한 팀 내 분위기와 레알 마드리드와 어울리지 않는 카펠로의 스타일로 인해 10년 전처럼 한 시즌만에 우승시키고도 해고당했다. 베컴 프리 이적이라는 병크를 저질렀지만 갈락티코스 이후 4년 만에 차지한 우승이라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겐 후한 대접을 받는다.

3.7.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2008년에 감독 최고 연봉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하며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우승시킬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남아공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조 1위로 무난하게 32개국 본선에 진출했으며[4] 조 편성도 미국- 슬로베니아- 알제리라는 역대급 꿀조에 걸려 기대가 높았지만 미국전에서 로버트 그린 기름손 덕에 비기고 24년만에 진출한 알제리와도 비기는 바람에 조 2위로 떨어졌고 16강 상대도 가나에서 독일로 바뀌었다. 16강에서도 프랭크 램파드의 슛이 노골 선언이 되는 오심이 터졌고 결국 독일에 1:4로 완패하며 16강 13위로 탈락했다.

이후 잉글랜드를 유로 2012 16개국 본선에 진출시켰으나 2012년 2월 9일 존 테리의 주장 박탈에 대하여 잉글랜드 FA와 갈등 끝에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임하기로 했다. #

3.8.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2012년 7월 16일, 딕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러시아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계약 기간은 2년.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 러시아 대표팀은 포르투갈을 제치고 조 1위에 올라 피파 랭킹 19위로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32개국 본선에서는 벨기에, 알제리, 대한민국과 함께 H조에 편성되었다.

그러나 피파랭킹 57위 한국에게 1-1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헌납하고, 벨기에에 0-1로 패하고, 알제리와도 1-1로 비기며 조 3위 월드컵 24위로 탈락, 2014 월드컵 32개 진출국 중에서 최상위급 연봉을 받던 그가 거둔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대회 종료 후 대회 최악의 감독 중 하나로 꼽혔다. 특히 월드컵에서 승점자판기로 전락한 최약체 대한민국의 홍명보호를 상대로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헌납하여 한국 축구 팬들과 외인들에게 비웃음의 대상까지 됐다. 한국을 과대평가한 카펠로의 수비 축구는 한국을 상대로 다득점을 노리기에 부적합했으며, 아킨페프의 기름손을 감안해도 영락없는 패착이었다. 거기에 이미 평가전에서 한 번 만났기 때문에 전력도 노출된 상태였다.

탈락에 분노한 러시아 팬들은 콘돔을 투척했다. 이렇듯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어찌어찌해서 계약은 연장됐다.

11월 12일, BBC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축구 협회가 재정난으로 6월 이후 카펠로 감독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그러나 카펠로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관련 기사.

하지만 유로 2016 G조 예선에서 오스트리아에 2패하고 몰도바와 비기는 등 부진이 계속되어 결국 2015년 7월 14일에 해고당하였다.

3.9. 장쑤 쑤닝

파일:external/image2.suning.cn/149743101651988365.jpg

2017년 6월 12일, 리그 성적 부진으로 최용수를 해임한 장쑤 쑤닝 감독에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 연봉은 천만 유로(125억 원) 이라고 한다. 제자였던 잔루카 잠브로타 크리스티안 브로키를 코칭 스태프로 데려갔다. 참조

맡은 지 한달 만에 강등권(15, 16위)을 탈출하여 8월 초 현재 13위까지 올라왔다. 처음의 3경기는 최용수 감독 시절과 마찬가지로 계속 연패했으나, 수비불안의 원인이었던 홍정호를 방출하고 인터 밀란에 임대로 가있던 트렌트 세인즈버리를 불러들여 수비진을 정비했는데, 그 이후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름 이후에는 승리가 드물어지면서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2017년 시즌을 12위로 마쳤다. 비슷하게 구원 투수로 온 울리 슈틸리케가 지휘하는 톈진 터다에 12위를 빼앗길 뻔했지만, 최종 30라운드 경기에서 강팀 상하이 상강을 잡아 톈진을 밀어내고 12위를 차지했다.

2018년 A매치 브레이크까지 1승 2패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 장쑤 측과 상호 해지를 합의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와 달리 중국에서 명예 회복을 하지 못했다.

3.10. 은퇴

한국시간으로 2018년 4월 9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독 커리어를 종료하고 은퇴를 결정했다. 앞으로는 축구중계 해설자로 활동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고 로베르토 만치니를 추천했다.

4. 감독 스타일

전성기에는 알렉스 퍼거슨에 견줄 만한 명감독이었다. 카펠로가 클럽 감독을 역임한 91-92 시즌부터 06-07 시즌까지를 비교했을 때 카펠로는 리그 우승 7회[5],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를 기록했고, 퍼거슨은 리그 우승 9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를 기록했다. 퍼거슨이 한 클럽을 오래 맡으면서 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매니저'였다면, 카펠로는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우승을 일궈낸 '우승청부사'였다.[6] 견고한 수비 벽과 투 볼란치를 바탕으로 한 수비 축구를 지향해서 경기가 무진장 재미없어지긴 하나 압도적인 성적으로 불평을 잠재웠다. 주제 무리뉴와 같이 대표적인 안티 풋볼의 대명사.

한 성깔 한다는 웨인 루니는 한번 카펠로와 단둘이서 복도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이때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는 싸늘한 기분을 느낀 적도 있다고 한다. 역시 한 멘탈 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조차 자서전을 통해 '눈도 마주치기 힘든 감독'이라고 평할 정도로 강성 기질이 있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감독이다. 즐라탄이 본인에게 무례하게 군 선수에게 경기 내내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건 유명하고 거구인 로멜루 루카쿠에게 거침없이 패드립을 하며 말싸움을 하는 깡이 있는데도 이렇게 평할 정도면 엄청나게 카리스마가 있는 감독이다. 물론 즐라탄은 감독 자체에 대해서는 '사나이답고 멋진 사람'이라며 존경의 표현을 했다. 즐라탄이 펩 과르디올라와 불화가 있었던 건 그와 상반된 성격 및 사상, 소통 부족 등 부족했던 대인 대처법으로 인해 즐라탄과는 완전 상극이었기에 지금도 증오하는 걸 보면 카펠로는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거지 사람을 대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던 편.

큰 틀을 바꾸진 않으면서도 유럽 축구의 흐름을 잘 흡수해서 유연하게 변화했던 퍼거슨과 달리 카펠로는 말년에 전술적 고집이 심해져 성적이 떨어졌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시절부터가 그러했는데, 잉글랜드에 이어 러시아까지 최고 연봉 수령자였으나 잉글랜드 대표 시절에는 월드컵 16강, 러시아 대표 때도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로 2연속 먹튀로 전락했다. 사실 강력한 중앙을 형성하여 선 압박/수비 후 속공 위주로 특히 '나도 공격 옵션 하나 줄일 테니 너희들도 편하게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식의 카펠로 전술은 장기적인 리그보다 챔피언스 리그나 월드컵 같은 단기전에 더 어울리는 스타일처럼 보이지만 클럽 시절부터 단기전에는 초창기 3연속 챔스 결승을 경험한 밀란 시절을 제외하곤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7]

나이가 들수록 자기 고집이 강해지고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으며 더블 볼란테 시스템에, 철저한 분업화를 추구하며 각자 위치를 고수하는 카펠로식 전술은 이제 현대축구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 상기했다시피 더블 볼란치를 중점으로 투박의 정점을 달리는 수비적인 전술로 유베 시절이나 레알 시절에도 팀에 우승컵을 안겨줘도 수면제 축구라고 자팀 팬들에게조차 욕을 한사발로 얻어먹었다. 2000년대 말부터 급격히 변한 세계 축구의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리오 퍼디난드는 카펠로가 잉글랜드 지휘봉을 잡았을 때 세계 최고의 명장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생각외로 굉장히 전술적으로 경직되어 있고 구시대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독이라 놀랐다고 한다. 오직 플랜 A만 고집하는 독불장군에, 선수들이 철저히 계획에 따라서만 움직이길 바라고 조금이라도 창의성을 발휘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8]

선수 기용도 팬에게 호불호가 갈리는데 대표적으로 2006-07의 카사노, 호나우두, 베컴이 카펠로 감독에게 팽당한 이후 이적한 선수들이다. 로마 감독 시절, 알베르토 아퀼라니, 다니엘레 데로시 등을 발굴하기도 했고, 밀란 시절에는 그전에 그야말로 황금 유스가 빵빵 터져주면서[9] 유망주 영입을 꽤 한 편인데, 풋내기 시절의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에드가 다비즈, 파트리크 비에라, 옌스 레만 등이 AC 밀란을 거쳤으나 당시 암흑기라 해도 쟁쟁한 선수들[10]에게 밀려 후보로 전락하고 결국 이적해서 포텐을 만개한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리그 기록

연도 구단 순위 경기 승점
1991-92 AC 밀란 1 34 22 12 0 74 21 56
1992-93 AC 밀란 1 34 18 14 2 65 32 50
1993-94 AC 밀란 1 34 19 12 3 36 15 50
1994-95 AC 밀란 4 34 17 9 8 53 32 60
1995-96 AC 밀란 1 34 21 10 3 60 24 73
1996-97 레알 마드리드 1 42 27 11 4 85 36 92
1997-98 AC 밀란 10 34 11 11 12 37 43 44
1999-00 AS 로마 6 34 14 12 8 57 34 54
2000-01 AS 로마 1 34 22 9 3 68 33 75
2001-02 AS 로마 2 34 19 13 2 58 24 71
2002-03 AS 로마 8 34 13 10 11 55 46 49
2003-04 AS 로마 2 34 21 8 5 68 19 71
2004-05 유벤투스 -[11] 38 26 8 4 67 27 86
2005-06 유벤투스 20[12] 38 27 10 1 71 24 91
2006-07 레알 마드리드 1 38 23 7 8 66 40 76

5.2.2. 국가대표 기록

연도 국가 경기
2007-2012 잉글랜드 42 28 8 6
2012-2015 러시아 33 17 11 5

5.2.3. 대회 기록

5.2.4.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004-05
  • 판키나도로: 1991-92, 1993-94, 2000-01
  • 유럽 올해의 축구 감독[13]: 1994
  •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1993-94
  • BBC 올해의 스포츠 퍼스널리티 감독상: 2009
  • 마르카 레전드: 2011
  • 그란 갈라 델 칼초 비평가상: 2011
  • AAIC 축구 지도자 경력상: 2016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3
  •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 2011
  • AC 밀란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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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4/05, 05/06 두 시즌 모두 리그 우승을 따냈으나, 칼초폴리가 밝혀지면서 우승기록 삭제. [2]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교관. [3] 밀란 감독을 놓고 오랜 기간 암투를 벌여서인지 사키와 카펠로는 견원지간 이상으로 사이가 나쁘다. 단적인 예로 카펠로가 2006-07 시즌 前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 루머가 뜨자 2004-05 시즌 레알의 기술 이사를 겸임했던 사키가 극구 반대했을 정도. [4] 이때 유로2008 지역예선 탈락의 아픔을 안겼던 크로아티아를 4-1, 5-1로 꺾으며 완벽한 설욕을 했다. [5] 칼초폴리로 박탈된 리그 우승 2회는 제외. [6] 다만 퍼거슨의 전성기는 애버딘 FC를 이끌던 80년대부터였고, 07-08 시즌부터 은퇴하는 12-13 시즌까지 리그 우승 4회, 챔스 우승 1회를 추가로 기록했다. [7] 덤으로 카펠로는 FA컵 계열 대회에서 단 한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8] 아이러니하게도 2021년 현재 비슷한 스타일과 똑같이 화려한 성과를 보여준 주제 무리뉴도 이런 문제들 때문에 몰락하고 있다. 그나마 AS 로마 부임 후에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한 모습을 보여주며 좀 나아졌다. [9] 대표적으로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알베리고 에바니가 있지만 이들은 아리고 사키 부임 전/후 1군으로 올라온 선수들이다. [10]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지오, 세바스티앙 로시 등이 있다. [11] 칼초폴리 판결에 의해 우승 취소. [12] 칼초폴리 판결에 의해 20위로 순위 조정 및 강등. [13] 제프 헤르베르거 어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