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00:25:57

호르헤 포사다

호르헤 포사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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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98 1999 200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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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0년 ~ 200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포수 부문 실버 슬러거
이반 로드리게스
( 텍사스 레인저스)
호르헤 포사다
( 뉴욕 양키스)
빅터 마르티네즈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이반 로드리게스
( 텍사스 레인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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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마우어
( 미네소타 트윈스)
호르헤 포사다
( 뉴욕 양키스)
조 마우어
( 미네소타 트윈스)

뉴욕 양키스 등번호 62번
스티브 애킨스
(1990)
호르헤 포사다
(1995)
윌리 뱅크스
(1997)
뉴욕 양키스 등번호 41번
팀 버크
(1992)
호르헤 포사다
(1996)
대런 홈즈
(1998)
뉴욕 양키스 등번호 55번
리치 몬테레온
(1990~1993)
호르헤 포사다
(1996)
월리 화이트허스트
(1996)
월리 화이트허스트
(1996)
호르헤 포사다
(1996)
라미로 멘도자
(1996~2002)
뉴욕 양키스 등번호 22번
마크 휘텐
(1997)
호르헤 포사다
(1997)
호머 부시
(1998)
뉴욕 양키스 등번호 20번
마이크 알드레티
(1996)
호르헤 포사다
(1997)
마이크 스탠리
(1997)
마이크 스탠리
(1997)
호르헤 포사다
(1997~2010)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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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rgePosada.jpg
<colbgcolor=#132448><colcolor=#ffffff> 뉴욕 양키스 No. 20
호르헤 라파엘 포사다 비예타
Jorge Rafael Posada Villeta
출생 1970년 8월 17일 ([age(1970-08-17)]세)
산후안시 산투리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푸에르토리코 기.svg 푸에르토리코)
학력 콜레지오 알레한드로 - 칼훈 커뮤니티 칼리지
신체 188cm / 97kg
포지션 포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89년 드래프트 43라운드 전체 1116번 ( NYY)
1990년 드래프트 24라운드 전체 646번 ( NYY)
소속팀 뉴욕 양키스 (1995~2011)
가족 삼촌 레오 포사다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기록4. 여담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와 함께 '코어 4'라고 불렸던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주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말년에는 지명타자로 활동했다.

여담으로 월드 시리즈 반지는 4개다. 1996년 월드 시리즈는 양키스 소속이었지만 출장하지 않았다.

2. 선수 경력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에는 포수가 아닌 내야수였고 타격도 우타자였다. 후에 아버지의 도움으로 현재의 포사다가 되었다.

2.1. 뉴욕 양키스

1990년 드래프트에서 24라운드, 전체 646위[1]로 뽑혀 양키스에 입단한다. 드래프트 순위와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듯 즉전감은 아니었다. 지명 당시에는 포수와 내야수(주로 2루수)를 봤으나 포수로 쓰기엔 송구 능력이 떨어지고, 내야수로 쓰기에는 어린 나이를 감안해도 돌글러브 기질이 심했다. 그러나 포수를 볼 수 있으면서 타격이 괜찮아 로우 A부터 트리플 AAA까지 차곡차곡 한 단계 밟아 나갔다.

그러나 당시 양키스 포수 자리에는 마이크 스탠리, 조 지라디 등이 버티고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에서도 95년 1경기 출전[2], 96년 8경기 출전[3], 97년 60경기 출전 등 점점 출전시간을 늘려나가야 했다.

그리고 주전을 꿰찬 98년, 111경기에서 17홈런으로 포수로서 상당한 장타력을 뽐냈다. 데이비드 웰스와는 배터리 궁합이 잘 맞았는지 이 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양키스 왕조의 월드 시리즈 3연패에 일조했고, 2000년에는 28홈런을 치는 등 타격이 진일보해 이후 4년 연속으로 올스타 출전, 실버슬러거 수상에 성공했다. 2003년에는 MVP 투표에서 3위까지 할 정도로 기량이 만개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취득해 4년 5240만 달러에 잔류했다.[4]

그러나 포수가 워낙 단명하는 포지션이기도 한 탓에 이후 자주 부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타격보다 수비의 쇠퇴가 두드러진다. 2009년에는 A.J. 버넷과의 불화설이 있었는데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했으나 실제로 포사다가 마스크를 쓸 때보다 수비형 백업포수 호세 몰리나와 배터리를 이룰 때 버넷의 성적이 훨씬 좋았던 것도 사실이고 버넷의 커브를 포사다가 블로킹하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예전 데이비드 웰스의 알콜 커브를 받아내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5] 블로킹 뿐만 아니라 2루 송구도 나빠졌다. 그렇지만 수비 하는 내내 블로킹과의 싸움을 하다가도 장타로 게임을 뒤집는 등 지명타자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로빈슨 카노가 클린업 울렁증을 극복 못했을 시기에는 간혹 5번 타자로서도 출전했을 정도다.

사실 양키스 측에서는 계약기간 내내 포사다를 포수로 쓸 생각은 아니었고 계약 후반에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닉 스위셔와 함께 1루수와 지명타자 슬롯에도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2008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가 터지자 보스가 덜컥 마크 테세이라를 질러버렸고 지명타자에는 마쓰이 히데키가 있는터라 포수 마스크를 길게 쓰게 된 면도 있다.

2011시즌엔 양키스에는 수비형 백업포수인 프란시스코 서벨리가 있고 팜에는 베네수엘라산 대형 공격형 포수 재능 헤수스 몬테로와 상당한 수준의 수비형 포수 유망주인 오스틴 로마인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논텐더로 풀린 포수 러셀 마틴마저 데려왔기 때문에 2011시즌의 포사다는 주로 지명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2010 시즌까지 통산 올스타 출전 5회, 실버 슬러거 수상 5회.

결국 2011년에는 스프링캠프부터 포수 마스크를 빼앗기고 팀 연봉만 잡아먹으면서 지명타자로 나설만큼 타격 컨디션을 유지하지도 못해서 팀의 잉여가 되었고 연봉 포기하고 은퇴하라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9번 지명타자로 나서라는 조 지라디 감독의 명령에 불응하여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고 앤드루 존스가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기도 많아지며 플래툰 시스템으로 인해 고생하기도 했다. 2011년 3천안타를 달성한 데릭 지터와 602세이브로 올타임 세이브 리더가 된 마리아노 리베라를 축하하는 모습에 양키스 팬들은 세월이 이리도 빨리 지나갔다는 데에 탄식을 내뱉었다고.

그래도 경기 중간중간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고 루키 헤수스 몬테로를 불러앉혀놓고 이리저리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끔 승부가 많이 벌어졌을 때 2루나 1루로 출전하는 모습은 양키스 덕아웃에서 닉 스위셔와 함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6], DH로든 대타로든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양키 팬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맞아줬다. 특히 포수들이 잇따라 부상을 당하면서 백업포수가 없이 나선 러셀 마틴마저 부상을 당했을 때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원정에서 DH를 보던 몬테로가 포수 장비를 준비하고 CC 사바시아가 타격에 들어서게 생겼을 때 홀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을 땐 LA까지 따라온 양키 팬들은 물론 일부 에인절스 팬들까지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포사다의 2011 첫 포수 출전.

이후 팀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탈락했고 그렇게 그는 2011년 시즌이 끝나고, 조 지라디 데릭 지터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월 24일 은퇴식을 가졌다. 17년동안 양키로 있을 수 있게 해준 팀과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3.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5 NYY 1 0 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000 0.0 0.0
1996 8 15 1 1 0 0 1 0 0 1 6 .071 .133 .071 .205 -0.2 -0.3
1997 60 224 47 12 0 6 29 25 1 30 33 .250 .359 .410 .768 0.6 0.6
1998 111 409 96 23 0 17 56 63 0 47 92 .268 .350 .475 .824 3.1 2.9
1999 112 437 93 19 2 12 50 57 1 53 91 .245 .341 .401 .742 1.2 1.1
2000 151 624 145 35 1 28 92 86 2 107 151 .287 .417 .527 .943 6.1 5.5
2001 138 557 134 28 1 22 59 95 2 62 132 .277 .363 .475 .838 3.5 3.0
2002 143 598 137 40 1 20 79 99 1 81 143 .268 .370 .468 .837 4.2 4.0
2003 142 588 135 24 0 30 83 101 2 93 110 .281 .405 .518 .922 6.0 5.9
2004 137 547 122 31 0 21 72 81 1 88 92 .272 .400 .481 .881 4.1 3.5
2005 142 546 124 23 0 19 67 71 1 66 94 .262 .352 .430 .782 3.3 4.4
2006 143 545 129 27 2 23 65 93 3 64 97 .277 .374 .492 .867 4.3 4.0
2007 144 589 171 42 1 20 91 90 2 74 98 .338 .426 .543 .970 5.6 5.4
2008 51 195 45 13 1 3 18 22 0 65 117 .268 .364 .411 .775 0.0 0.2
2009 111 438 109 25 0 22 55 81 1 48 101 .285 .363 .522 .885 2.3 1.6
2010 120 471 95 23 1 18 49 57 3 59 99 .248 .357 .454 .811 1.5 0.3
2011 115 387 81 14 0 14 34 44 0 39 76 .235 .315 .398 .714 -0.9 -0.4
MLB 통산
(17시즌)
1829 7150 1664 379 10 275 900 1065 20 936 1453 .273 .374 .474 .848 44.7 42.7

4. 여담

  • 2006년 초대 WBC에 푸에르토리코 국가대표팀으로서 참가를 열망했지만 당시 구단의 결사적인 반대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다.
  • 2008년에 마운드 운용에 대해 간섭하는 듯한 발언을 해 고액연봉 베테랑 + 장기 부상자가 선수단에도 왈가왈부하냐고 까였는데 그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다. 양키스의 정규시즌 중에 이벤트성으로 조 토레 감독 대신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 보스턴 레드삭스 에이스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는 철천지 앙숙관계로, 이 둘은 은퇴 후에도 서로의 좋지 않았던 사이에 관해 종종 언급하고 있다. 페드로에 따르면 2003년 양키스와의 벤치 클리어링 당시 자신이 72세 코치 돈 짐머를 넘어뜨렸을 때, 포사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페드로는 2015년 명예의 전당 입성 당시 “양키스에서 가장 빈볼을 맞추고 싶은 선수는 포사다였다. 그는 내 행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고 나중에는 어머니를 모욕했다. 라티노 선수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모욕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라고 이야기했다. 포사다 역시 “페드로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풀리지 않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 35개로 페드로에게 가장 많은 삼진을 준 선수지만 페드로를 상대로 최다 타점인 12개를 기록했고 페드로에게 4홈런 이상을 기록한 6인의 타자 중 하나이다. 통산 .204타율, .721OPS로 페드로를 상대로 한 성적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 피부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손에다 소변을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역시 맨손 타격을 했던 모이세스 알루도 같은 일화가 있다.
  • 2017년 입후보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3.8%의 득표율을 보이며 라이벌 팀 레전드와 함께 첫 해에 광탈했다.

5. 관련 문서




[1] 입단 동기가 앤디 페티트인데, 페티트는 594위로 입단했다. [2] 교체 선수로 출전해 조 아우사니오의 공을 받았다 [3] 첫번째 선발출장을 한 해로 로저 클레멘스의 공을 받았다. [4] 총액으로는 못 미치지만 평균 금액은 마이크 피아자의 메츠 계약을 뛰어넘는 계약이었다. [5] 과거 마이크 무시나의 너클커브를 받아낼 때도 이리저리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버넷도 마찬가지. [6] 실제로 8월 25일 오클랜드와의 홈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로는 처음으로 2루 대수비로 등장해서 1이닝 동안 타구처리를 해내는 등 홈팬들에게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었다. 여담으로 이 날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1경기 3개의 그랜드슬램으로 기록을 세운터라 점수차이가 큰 상태여서 포사다와 팬 모두에게 추억을 만들어준 셈. [7] 원문은 여기. [8] 2012년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다. [9] 마시멜로 이야기의 저자 호아킴 데 포사다와 호르헤는 사촌지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