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8:21:28

로베르토 만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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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만치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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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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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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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대

SS 라치오 주장
주세페 시뇨리
(1992~1997)
로베르토 만치니
(1997~1999)
알레산드로 네스타
(1999~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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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만치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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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FIFA 올해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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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만치니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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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역대 득점 순위 To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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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colcolor=#000,#fff> 순위 선수 국적 득점
1 실비오 피올라 파일:UEFA ITA.png 274
2 프란체스코 토티 파일:UEFA ITA.png 250
3 군나르 노르달 파일:UEFA SWE.png 225
4 주세페 메아차 파일:UEFA ITA.png 216
4 조제 알타피니 파일:UEFA ITA.png 파일:UEFA BRA.png 216
6 안토니오 디 나탈레 파일:UEFA ITA.png 209
7 로베르토 바조 파일:UEFA ITA.png 205
8 치로 임모빌레 파일:UEFA ITA.png 196
9 쿠르트 함린 파일:UEFA SWE.png 190
10 주세페 시뇨리 파일:UEFA ITA.png 188
10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일:UEFA ITA.png 188
10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파일:UEFA ITA.png 188
13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파일:UEFA ARG.png 183
14 파비오 콸리아렐라 파일:UEFA ITA.png 182
15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파일:UEFA ITA.png 178
16 아메데오 아마데이 파일:UEFA ITA.png 174
17 주세페 사볼디 파일:UEFA ITA.png 168
18 루이지 리바 파일:UEFA ITA.png 166
19 굴리엘모 가베토 파일:UEFA ITA.png 164
20 로베르토 보닌세냐 파일:UEFA ITA.png 162
21 루카 토니 파일:UEFA ITA.png 157
2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일:UEFA SWE.png 156
22 필리포 인자기 파일:UEFA ITA.png 156
22 로베르토 만치니 파일:UEFA ITA.png 156
25 루이스 비니시오 파일:UEFA BRA.png 155
25 카를로 레구초니 파일:UEFA ITA.png 155
27 이스트반 나이에르스 파일:UEFA HUN.png 153
27 에르난 크레스포 파일:UEFA ARG.png 153
29 아드리아노 바세토 파일:UEFA ITA.png 149
30 오마르 시보리 파일:UEFA ITA.png 파일:UEFA ARG.png 147
}}}}}}}}}}}} ||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만치니.jpg
<colbgcolor=#eeeeee> 이름 로베르토 만치니
Roberto Mancini
출생 1964년 11월 27일 ([age(1964-11-27)]세)
마르케주 안코나현 이에시[1][2]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9.6cm / 체중 74.8kg
직업 축구 선수 ( 공격수[3]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볼로냐 FC 1909 (1981~1982)
UC 삼프도리아 (1982~1997)
SS 라치오 (1997~2001)
레스터 시티 FC (2001 / 임대)
감독 SS 라치오 (2000 / 수석코치)
ACF 피오렌티나 (2001~2002)
SS 라치오 (2002~2004)
인테르나치오날레 (2004~2008)
맨체스터 시티 FC (2009~2013)
갈라타사라이 SK (2013~2014)
인테르나치오날레 (2014~2016)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7~2018)
이탈리아 대표팀 (2018~2023)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2023~2024)
국가대표 36경기 4골 ( 이탈리아 / 1984~1994)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감독 경력5. 감독 스타일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6.3. 수훈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한국전 조기 퇴장 논란
8. 여담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삼프도리아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은퇴 후 인테르, 맨체스터 시티 등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는 유로 2020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면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명과 암을 함께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중이다.[4]

2. 선수 경력

삼프도리아 통산 566경기 171골 47도움
그의 삼프도리아 시절엔 이런 유머가 돌았다.
루드 굴리트: " 베를루스코니가 말하기를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 한다."
로베르토 바조: "무슨 소리!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잔니 아녤리[5]가 인정했다."
디에고 마라도나: "모두 주목! '신(God)'이 말하기를 내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 이 때 삼프도리아 팬들이 하는 말: "마라도나, 헛소리 하지 말아라! 신(만치니)은 너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17세의 나이로 볼로냐에서 30경기 9골을 넣으며 데뷔했으며, 이후 UC 삼프도리아의 에이스로서 삼프도리아의 유일한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단지 리그 우승만이 아닌 삼프도리아의 전성기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프도리아 팬들이 만치니를 일컬어 신이라고도 부를만한 게, 만치니가 삼프도리아에서 이룬 우승은 다음과 같다.

세리에 A - 1회 (1990-91)
코파 이탈리아 - 4회 (1984-85, 1987-88, 1988-89, 1993-94)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회 (1991)
UEFA 컵위너스컵[6] - 1회 (1989-90)
이 모든 우승이 현재 삼프도리아가 지금까지 기록한 우승 횟수와 동일하다. SSC 나폴리 디에고 마라도나가 있었다면 삼프도리아에는 만치니가 있었다. 게다가 삼프도리아가 경험해 본 가장 높은 챔피언스리그 무대인 결승전까지[7] 진출시켰으며, 리그 최다 출장 기록과 최다 득점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삼프도리아의 신이자 모든 것이 만치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이기도 했던 잔루카 비알리와 짝을 맞추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니만큼 엄청난 기대를 받고 스타팅 멤버로 출전했으나, 첫 경기, 두 번째 경기 모두 후반에 자신의 교체로 들어간 당시로선 거의 무명급이었던 살바토레 스킬라치가 골을 넣는 바람에 이후로 계속 벤치 신세였으며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8]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이탈리아 축구 국가 대표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 다만 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만큼 빛나지 못해 총 36경기 출장 4골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월드컵 출전기록은 1990년 월드컵이 전부다.[9]

1997 시즌 이후 팀의 감독이던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을 따라 SS 라치오로 이적했으며 라치오에서의 3시즌 동안 스쿠데토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컵위너스컵 우승 1회를 추가하며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으며 말년에는 프리미어 리그의 레스터 시티로 임대를 가서 5경기 출전하였고, 2001년 36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요약하면 클럽에서의 화려함에 비해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아쉬웠던 선수생활이었다.

선수 시절은 이탈리아인답게 성깔도 드럽기로 유명했다고 한다.[10]

성격과 관련된 일화로 1995년 11월 경기에서 자신이 파울을 당했고 페널티킥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만치니는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자 성질을 못 이기고 자신의 주장 완장을 땅바닥으로 던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에릭손 감독은 만치니에게 욕설을 날렸다. 그가 다시 필드로 돌아온 후 그놈의 성질을 못 이기고 곧바로 심각한 파울로 퇴장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6주 동안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보이치에흐 슈체스니와도 기묘한 인연이 있는데 역시나 골리였던 슈체스니의 부친이 뛰던 클럽과 유럽대회에서 삼프도리아가 만났는데 슈체스니의 부친이 만치니에게 주먹을 날리고 퇴장 당했었다고 하며 이러한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과 비순응적인 모습들이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감독이 된 이후로는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 아니 유해진 게 아니고 아드리아누 마리오 발로텔리같은 멘탈갑들을 관용으로 품어주는 보살로 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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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본좌였던 선수 시절 때문인지 감독이 된 지금도 아웃된 볼을 처리하는 트래핑이 일품이다. 수트에 구두를 신었음에도 웬만한 현역보다 더 뛰어난 컨트롤 능력을 보여준다.
파일:ZfUUmRb.jpg
그러나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한 2014-15 시즌 제노아와의 세리에 A 경기에서 마르코 안드레올리 선수가 찬 공에 적중하여 발라당 넘어지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11]

3. 플레이 스타일

국내에서는 중년간지의 전 맨시티 감독 쯤으로나 기억되지만, 선수 시절 만치니는 이탈리아 축구와 '10번'으로 상징되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을 대표하는 레전드 중 하나로 유럽에서 손꼽힌다. 삼프도리아에서는 나폴리의 디에고 마라도나급의 넘사벽 입지를 영위하고 있으며, 당시 세리에 A 전체로 봐도 만치니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받았던 선수는 이탈리아 축구의 얼굴 그 자체였던 로베르토 바조밖에 없었다.

바조와 마찬가지로 ' 판타지스타'라는 타이틀의 대표격으로 불렸다. 주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 바로 밑의 세컨드 스트라이커 또는 보다 공격적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였지만 사실 공격 진영 어디에, 심지어 스트라이커에 배치해도 1인분은 족히 해냈으며 커리어 후반부에는 기력은 노쇠했어도 본디 이타적인 플레이스타일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축구센스를 겸비하여 팀 페이스를 조율하는 롤을 담당했다.커리어 초반에는 전형적인 그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답게 저조한 수비참여로 감독에게 구박도 받았지만, 중반부 이후에는 그 마저도 개선하여 오히려 활발한 수비 참여로도 유명해지게 되었다.

클래식 10번 유형의 선수로, 오늘날로 치면 한창 때의 메수트 외질을 방불케 하는 허를 찌르는 킬러 패스 능력과 마무리 능력, 상기한 창의력과 엄청난 시야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패스 능력 뿐만 아니라 화려한 볼 컨트롤 능력 또한 보유하여 아크로바틱한 발리슛 및 공중볼 제어에 능했으며, 특히 지네딘 지단과 비슷하게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고 고급져 팬들을 매혹시키는 드리블 스타일을 구사했다. 속력이 빠른 선수는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가속이 빨라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만치니의 드리블을 더욱 막기 힘들었다고 한다.

경기 외적으로는 워낙 축구지능이 좋기도 하고 강한 리더십과 자기소신이 강해서 장기간 주장직을 도맡아 했다. 소위 말하는 '적극적이고 말 많은' 주장 스타일로, 피치 위에서 항상 동료들에게 말로서 파이팅을 북돋아주는가 하면 상대방 또는 주심과 마찰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다가가 항변했다. 만치니의 감독 커리어는 현역 시절 이런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단점을 뽑자면 경기력에 기복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지만 만치니의 재능과 천재성에 대한 평가에 금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굳이 최근 선수와 비교하자면 프란체스코 토티와 매우 흡사하다. 특정 클럽에서 최고 존엄으로 칭송받는 모습부터 선호 포지션과 시야 및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플레이 스타일과 고급진 드리블 스타일, 강점까지 쏙 빼닮았다.

4. 감독 경력

4.1. 초창기

선수 생활은 2001년 마감했으며, 이후 본격적인 지도자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2000년 라치오에서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의 수석코치로 일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2001년 레스터 시티 임대 도중 파티흐 테림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피오렌티나의 감독을 맡기 위해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피오렌티나의 감독직을 수락하면서 감독으로 탈바꿈했다. 감독이 된 뒤 피오렌티나를 9위로 잔류시키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파르마를 꺾고 커리어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피오렌티나는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어 프란체스코 톨도, 후이 코스타를 여름이적시장에서 이적시켜야 했다. 더구나 2001-02 시즌 피오렌티나는 주포 엔리코 키에사가 초반부터 십자인대 부상으로 아웃되어 엄청난 전력 손실을 겪었으며 만치니 역시 임금 체불에 시달리는 등 정상적으로 시즌을 치러낼 수 없었다. 결국 만치니는 2002년 1월에 사임하였고 피오렌티나는 결국 재정난 문제와 함께 4부리그인 세리에 C2로 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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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SS 라치오의 감독으로 부임하지만 새로운 팀에서도 역시 재정 문제에 시달리며 스타플레이어 에르난 크레스포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내보내야 했으며 선수들은 연봉을 80퍼센트까지 깎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만치니는 2002-03 시즌 4위와 함께 UEFA 컵에서도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보였다. 2003-04 시즌에는 리그에서 6위를 기록했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어려운 팀 여건에서도 리그에서의 호성적과 컵대회 트로피를 올리는 등 성과를 내면서 인테르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2004년 여름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4.2. 인테르 1기

인테르에서의 첫 시즌인 2004-05 시즌 만치니는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에 성공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는 인테르가 1989년 이후 16년 만에 들어올린 국내 트로피였다. 리그는 단 2패만 기록한 끝에 3위로 마쳤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까지 올라갔다. 8강에서 라이벌 AC 밀란에 가로막히면서 탈락했다. 2005-06 시즌에 인테르는 유벤투스를 꺾고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한 뒤 다시 한 번 코파이탈리아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리그는 3위로 마쳤으나 칼초폴리가 터지면서 챔피언이었던 유벤투스의 우승 박탈 및 세리에 B 강등, 2위 AC 밀란의 승점 삭감으로 인테르는 스쿠데토에 성공했다. 다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원정다득점 원칙에 의해 비야레알 CF의 돌풍에 삼켜지면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2006-07 시즌에는 17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승점 97점의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무패우승도 가능했지만 시즌 막바지인 32라운드 AS 로마에 홈에서 1-3 패배를 당하면서 무산되었다.[12]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또다시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AS 로마에 패해 준우승하면서 코파 이탈리아 4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정작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발렌시아 CF에 16강에서 일찍 탈락하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007-08 시즌 리그에서 25라운드까지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을 정도로 순항하며 또다시 3연속 스쿠데토를 예약하는듯 했으나 문제는 역시나 챔피언스리그였다. 16강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1차전 원정 2-0 패배, 2차전 홈 1-0 패배로 탈락했다. 챔피언스리그 탈락 후 돌연 시즌 후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다음날 마음을 바꾸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인해 주제 무리뉴 감독 부임설이 꾸준히 나오기 시작했으며 멀찌감치 독주하는듯 했던 리그에서의 폼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36라운드 AC 밀란전 패배, 37라운드 시에나와의 홈경기 무승부로 스쿠데토 확정이 최종전까지 밀리게 되었다. 다행히 최종전에서 파르마 원정을 떠나 부상에서 복귀하여 교체투입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2골로 인테르를 구하며 파르마를 18년 만에 강등시키고 3연속 스쿠데토만큼은 사수했다. 1주일 뒤 코파이탈리아 결승에서는 AS 로마에 패배하며 더블에는 실패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하는 등 꽤 괜찮은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챔피언스 리그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리그 내에서 성적은 3위-1위-1위-1위로 꽤 괜찮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8강-8강-16강-16강에 그치며 아쉬운 성적이었던 것.

결국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을 바랐던 모라티 구단주의 뜻에 따라, 만치니 감독은 2008년 인테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리버풀전 패배 이후 사임의사를 비치면서 시즌 종료 후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드리아누, 루이스 피구 등과의 갈등도 심했다. 이후 첼시나 중동 클럽의 러브콜을 받다가 2009년 성적 부진으로 마크 휴즈 감독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경질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공교롭게도 만치니의 후임으로 임명된 조세 무리뉴는 만치니가 4시즌 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챔스 우승을 단 2시즌만에 이뤄냈다. 그것도 트레블로!

4.3. 맨체스터 시티 FC

2009-10 시즌 12월 19일, 무승부만 계속하다 짤린 마크 휴즈 감독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시티의 새로운 감독이 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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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2009-10 시즌

데뷔전인 스토크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었고, 이 경기에서 만치니 감독의 머플러 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만치니가 새 감독이 되자마자 맨시티는 4연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고무적인 것은 휴즈 재임 시절 리그 17경기에서 무려 27실점이나 허용했으나, 만치니가 오자마자 4경기 1실점. 그러나 에버튼 원정에서 0:2로 패하며 무패행진이 깨졌다. 그리고 칼링컵 1차전 홈경기에서 맨유에 2:1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2차전 연장전에 들어갈 찰나에 추가시간 웨인 루니에게 골을 먹으며 1:3으로 패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FA컵 16강에서 스토크 시티에 재경기 끝에 패하며 FA컵마저 탈락, 사실상 우승 트로피 획득에 실패하게 되었다. 휴즈가 경질 전까지 2패를 당한 반면, 만치니는 부임한 지 2개월밖에 안됐는데 4패를 당했다. 이로 인해 만치니는 영국 언론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호비뉴와 벤자니, 블라디미르 바이스를 각각 산투스, 선덜랜드, 볼튼에 임대보내고, 아담 존슨 파트리크 비에라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맨시티는 번번히 토트넘이나 아스톤 빌라, 그리고 리버풀과의 경쟁에서 좀처럼 도망가는데 실패했다. 이를테면 첼시 FC 원정에서 4:2로 두들겨 패며 첼시의 홈 무패를 깨뜨리기도 했지만, 헐 시티 스토크 시티, 선덜랜드 등 중하위권 팀에 번번히 발목잡혔다. 3월 25일 에버튼과의 홈경기에서 0:2로 패하며 리그에서 첫 홈 패배를 당했다. 이 경기에서 만치니는 에버튼의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과 몸싸움을 벌이며 퇴장을 당했다. 에버튼에 패한 뒤 맨시티는 3연승에 14골을 몰아넣으며 4위 진입에 무난하게 골인하는 듯 했다. 35라운드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종료 직전 인저리 타임에 폴 스콜스에게 버저비터 골을 실점하며 상승세가 끊겼다. 그리고 같은 날 첼시 FC를 꺾은 토트넘 홋스퍼 FC에 밀려 5위로 내려갔다. 맨시티의 챔스 진출 여부는 5월 5일, 4위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결판나게 되었는데 이 경기에서 피터 크라우치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챔스 진출이 좌절되었다. 챔스 진출이 좌절되었음에도 맨시티의 칼 무바라크 구단주는 만치니를 신임하였다.

4.3.2. 2010-11 시즌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야야 투레, 다비드 실바, 제롬 보아텡, 마리오 발로텔리,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제임스 밀너를 폭풍 영입하였다. 그러나 맨시티는 전반기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며 만치니의 경질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12월과 1월 상승세를 타며 하루 뿐이지만 리그 선두에 올라서기도 했으며 PL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다. 만치니는 PL 12월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에딘 제코까지 데려왔다. 그러나 두 번의 버밍엄 원정, 아스톤 빌라에 0:1 충격패를 당하고, 버밍엄 시티에 2:2 무승부에 그치며 리그 우승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7라운드 웨인 루니에게 오버헤드킥을 허용하며 사실상 리그 우승은 어려워졌다. 풀럼과의 홈 경기에서도 1:1로 비기며 승점을 까먹었고, 30라운드 첼시 원정에서 졸전 끝에 0:2로 패하며 4위로 내려앉았다.

이로써 맨시티는 우승권에서 챔스권을 사수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유로파 리그에서도 16강에서 디나모 키예프에 일격을 당하며 탈락했다. 남은 우승 트로피는 FA컵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2010년 리그 5위에 머물 때 다음 잔류 조건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패할 경우 만치니는 경질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맨시티는 5월 10일, 1년 전 챔스 좌절을 맛봤던 장소에서 토트넘에 이번에는 크라우치의 자책골로 1:0으로 승리하면서 완벽하게 복수했고, 마침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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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FA컵도 준결승에서 맨유를, 결승에서 스토크시티를 꺾고 우승하면서 팀의 35년 우승 무관을 끊어냈다. 여세를 몰아 아스날의 부진을 틈타 잔여 경기도 모두 승리하며 2위 첼시와 승점이 같은 3위로 시즌을 마감.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직행에 성공했다.

전형적인 이탈리아식 축구로 정평이 나 있다. 수비와 피지컬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래서 수비진의 호흡과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편. 실제로 만치니 감독 부임 이후 맨시티는 리그에서 시즌 최소 실점팀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같은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유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과 스타일이 아주 대조적이다. 윙어 덕후 퍼거슨은 사이드 라인을 기본으로 하는 빠르고 스마트한 축구를 선호하는 반면에 만치니는 피지컬과 테크닉 좋은 미드필더들로 중앙을 장악하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한때는 중앙 장악에 신경쓰다가 원톱만 선호한다고 까이기도 했는데 맨시티에 좋은 선수들이 들어온 이후 투톱도 곧잘 쓴다. 그러나 전술에 유연성이 없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는데, 이러한 단점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곧잘 성적이 좋지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에 워낙 악동 같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렇지, 선수 장악력도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무리뉴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 그렇지만 그 마리오 발로텔리가 믿고 따르는 감독이라고 하니, 그걸로 선수 장악력은 증명이 된 셈이었는데 2010-11 시즌 맨시티에서 계속 선수들끼리의 충돌, 선수와 감독의 충돌, 선수의 은퇴 땡깡 등이 일어나면서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VS "맨시티 자체가 워낙 막장이라 만치니도 별 수 없다." 같은 논란이 생기고 있다.

단점이라면 대놓고 비기기 전술이나 잠그기 축구를 꽤 자주 보여준다는 점. 관중 입장에서는 꽤 지루한 시합을 보여줄 때가 종종 있다. 다른 클럽의 서포터들은 '새가슴'이라고 대놓고 비난하기도.

그리고 만치니는 "더 이상 전술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피지컬의 발전만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다른 전술가적 감독들은 이 얘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4.3.3. 2011-12 시즌

2011-12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무패 행진으로 1위로 올라서는 등 순조로운 시작을 보였으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의 항명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지도력에 대해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처는 불확실하지만 인테르 시절에도 대다수의 선수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소식도 보도되면서 더더욱 지도력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 게다가 챔피언스 리그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시합에서 1무 1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만치니의 챔스 본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까이는 중. 그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이에른 뮌헹에게 0:2로 깨진 후, 2011년 10월 2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시합에서는 4:0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만치니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 부임 후 역사를 만들어내었다.

맨유를 올드 트래포드에서 6:1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관광을 태우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툭하면 사고치는 발로텔리[13]가 2골을 집어넣었고 특히나 팀의 조직력이 상당히 올라간 경기였기 때문에 만치니 감독의 논란은 종결될 듯 싶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가면서 주춤한 모습을 계속 보이면서 연장계약이 이뤄질지 의문시이다. 20라운드 넘어가면서 되려 안방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맨유와 똑같은 17승 3무 3패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맨유에게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첼시전을 빼면 선더랜드와 에버튼이란 중하위팀에게 패했다. FA컵과 리그컵, 챔피언스 리그, 유로파 리그는 죄다 탈락했고 남은 건 리그 우승 뿐인데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5달 넘게 유지하던 리그 1위 자리조차도 라이벌 맨유에게 빼앗겼고 31차전까지 승점 차가 크게 벌어질 위기에서 만치니조차도 리그 우승 장담이 어렵다고 실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올 시즌이 계약기간이 마지막이라 맨시티를 떠날 것이라고 예상이 많았는데 알 나얀 구단주가 만족한다면서 2년 재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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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판에 맨시티의 연승 행진과 반대로 맨유의 삽질이 이어졌고 36차전에서 극적으로 리그 1위를 탈환하면서 4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많아졌기에 다음 시즌 감독 재계약은 확실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38차전 QPR과의 경기에서 고전 끝에 겨우 3:2로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우승 확보, 감독으로서 7번째 우승컵이자 팀에겐 무려 44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안겼다. 물론 두둑한 우승 보너스는 덤. 그리고 5시즌 장기간 감독 연장 계약이 되었다.

2011-12 시즌 말에 접어들면서 신선한 언플과 심리전을 시전하는 바람에 약간 개그 캐릭터 기믹도 생겼다. "어차피 맨유가 우승해.", "여러분, 맨유 우승에 돈을 거세요."라고 어우맨을 시전해버렸고, 언론에 조롱조로 인터뷰하는 바람에 역레발로 우승했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 리그 우승 결정전인 QPR전 바로 직전까지 저런 인터뷰를 했다.

위에 썼다시피 선수 시절에는 악동 이미지였는데 감독이 되자 덕장 이미지가 강해졌다. 무리뉴도 포기한 발로텔리를 그래도 잘 조련하고 있는 것이나[14] 항명 사건까지 일으켰던 테베즈를 시즌 말에 잘 끌여들여서 우승에 큰 역할을 하게 한 것을 보면 나름 덕장은 덕장.[15] 그래서 한국 한정으로 '만보살'이라는 별명도 있다. 테베즈와는 잘 화해했는지, 테베즈는 계속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발로텔리 또한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감독은 만치니 뿐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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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4강, 한국 vs 브라질전을 관람하려고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했다가 전광판에 그의 얼굴이 비치자 야유 세례를 받았다. 한국 언론에서는 기성용을 보러 왔다느니 호들갑을 떨었지만, 네이마르를 비롯한 브라질 선수들을 보러왔다는게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4.3.4. 2012-13 시즌

2012-13 시즌에 리그 2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탈락, FA컵 준우승에 그치면서 팀이 무관으로 끝나고서 바로 경질되었다. 사실 성적이 경질의 한 이유는 되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와는 다른데, 관측과 구단의 발표에 따르면 결정적인 경질의 이유는 두가지인데 영입과 관련된 끊임없는 불만토로와 선수진과의 불화이다.

우선 지속된 영입에도 판 페르시, 데로시를 언급하면서 영입을 요구해대는 만치니의 태도에 높으신 분들이 많이 짜증이 났다고 한다. 하지만 2012년 여름 이적시장 당시 맨시티의 풋볼 디렉터였던 말우드가 만치니의 영입 타겟을 하나도 영입 성공시키지 못하고 어중간한 대체 선수들만 사왔기 때문에 만치니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실제로 2012년 여름 영입 선수들은[16] 결과적으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팀을 떠났다.

한편 나스리나 발로텔리와의 잘 알려진 불화를 제외하더라도 선수단 분위기는 대단히 안 좋았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트위터발 일설에 따르면 주장 뱅상 콩파니마저도 만치니를 경질하지 않으면 팀을 나가겠다는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고. 이 설이 사실이라면 만치니는 선수단과의 힘 싸움에서 졌다고 볼 수 있다. 덕장 스타일로 팀을 이끌기에 선수단 기강 유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평도 있었지만, 이후의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오히려 선수 시절 성깔을 다 못 죽이고 종종 신경질적으로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을 대한 탓에 개인적으로는 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즉 오히려 덕장 스타일로 알려진 것이 잘못이었던 것으로 본인의 성격이 반발을 불러온 것. 바로 다음 감독인 페예그리니가 덕장 스타일로 별다른 문제 없이 팀을 이끌면서 이 사실은 반증되고 있다.

만치니가 경질된 후에도 페예그리니 감독 시절과 펩 감독 부임 초기 시절에는 만치니가 영입하거나 성장시킨 핵심 선수들(아구에로, 다비드 실바, 야야 투레, 뱅상 콤파니 등등)이 대부분 주전으로 팀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30대 중반의 노장이 되기까지 맨시티의 주전 선수였다가 팀의 레전드로 남았다.

4.4. 갈라타사라이 SK

2013년 9월, 갈라타사라이 SK에 테림의 후임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갈라타사라이 팬들로부터 사랑받아왔던 테림이 석연찮은 이유로 팀을 떠났기 때문에 만치니를 보는 팬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겠으나, 리그에서는 그럭저럭 꾸역꾸역 승점을 챙기면서 초반의 부진을 만회하고 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끝내 팀을 16강 진출에 성공시켰다.

사실 만치니가 갈라타사라이 팬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대표적 이유는 앞에서도 서술된 바 있듯이, 수비적인 전술 때문이다. 센터백인 체쥬와 세미 카야는 세트플레이 상황을 제외하면 하프라인 밖을 벗어나지 않고, 양쪽 풀백인 리에라와 에보우에가 열심히 오버래핑을 해주면서 공격가담을 하는 게 전부다. 적극적인 공격가담과 상대팀 페널티박스에서의 공중전 수행이 큰 장점이었던 펠리페 멜로는 더욱 더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셀추크 이난 또한 센터에서의 적극적인 공격보다는 사이드에서 에보우에를 지원사격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으며, 부락 일마즈가 철저하게 고립당하면서 득점력 저하현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왜 만치니를 좋아하지 않는 지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드록바와 스네이더가 테림 감독 시절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언제까지 드록바의 개인기를 이용한 돌파나 스네이더의 폭발적인 슈팅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분명 만치니가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다.

이러한 만치니의 전술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테림 감독 시절의 호쾌한 공격축구를 그리워하고 있다.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에게 1-6으로 대패한 경기조차도 '갈라타사라이답게 당당히 맞서싸웠다', '적어도 전반전까지는 레알을 밀어붙이지 않았느냐' 라고 반문할 정도로 공격적인 전술에 대한 갈라타사라이 팬들의 선호는 절대적이다.[17]

그럼에도 만치니는 자신의 전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2014년 2월 22일, 베식타스 JK와의 라이벌 매치에서 1-0으로 승리한 직후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여 승점 3점을 얻은 것이다." 라고 운을 띄우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과감한 전술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술을 지향해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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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부터 계속된 무승행진으로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은 만치니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본인은 "원한다면 오늘 저녁, 아니 내일 아침에라도 떠나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 일을 하러 왔기 때문에 그런 결정은 내려줄 수 없다." 라고 맞불을 놓았다. 또한 한편으로 "4개월만에 (자기가 원하는) 팀이 완성될 수 없다." 고 말하며 서포터들에게 인내해 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부진으로 본인 또한 아리송한 답변만 계속 늘어놓으면서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갈라타사라이 前 코치였던 하샨 샤쉬[18]가 TV에 출연하여 '파티흐 테림 감독과 내가 팀을 지휘했다면 페네르바흐체가 쉽게 리그 챔피언에 오를 수 없었다' 라고 만치니를 정면비판하기도 했다.

만치니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4월 6일 페네르바흐체와의 경기는 웨슬리 스네이더의 결승골로 힘겹게 1-0 승리를 거두며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어서 팬들의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며, 지난 4월 19일에는 페네르바흐체도 아니고, 베식타스 JK도 아닌, 카슴파샤에게 홈에서 0-4 대패를 당하며 체면을 완전히 구겼다. 이 기록은 튀르크 텔레콤 아레나 개장 이후, 갈라타사라이의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이다. 그나마 5월 7일, 튀르키예 쿠파스 결승전에서 에스키세히르스포르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감독으로서 터키에서의 첫 우승 트로피를 챙겼다.

13-14 시즌 종료 후 얼마 뒤 갈라타사라이와 상호 계약 해지를 했다. 사실 만치니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예전부터 극심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무미무색의 전술과 겨울 이적시장에서만 자그마치 300억 가까이 지출하고도 선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모습은 그로부터 팬들을 등돌리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재임기간동안 선수들과의 불화설(특히 펠리페 멜로와 셀축 이난)도 심심찮게 제기되었으나, 막상 프란델리 체제의 갈라타사라이 훈련장을 직접 찾아와서 선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모습을 보면 결국 본인의 말대로 맨시티 시절과는 달리 선수들과의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타사라이와의 결별 원인은 구단의 이적 정책과 다음 시즌 예산 책정에 대한 의견차이였다.

14-15 시즌 이후 갈라타사라이 팬덤 내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만치니인데, 일단 공격지향적인 갈라타사라이 팀 전통의 컬러에 수비축구의 색채를 입히려고 했던 시도 자체는 좋았다[19]는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감독 취임 5개월만에 경질된 체사레 프란델리가 구질구질하게 스포츠 중재 재판소까지 가서 잔여연봉을 다 받아먹으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만치니는 잔여연봉 350만 유로를 쿨하게 포기하고 팀을 떠났다. 결국 프란델리 때문에 만치니는 터키 축구팬들 사이에서 졸지에 '대장부(Adam)'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탈리아 대표팀 차기 사령탑 후보에 올라 있다. # 만약 대표팀을 맡게 되면 영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태리팀 감독에 콩테 감독이 선임되어 이태리팀 감독이 되진 못했다. 한편 현재 한국팀 감독의 자리가 공석이라 여라 한국팀 감독 후보로 꼽혔지만, 높은 연봉으로 협상에도 들어가지 못한 듯 하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고, 이는 이탈리아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후 현실이 되었다.

4.5. 인테르 2기

2014년 11월 14일 마짜리 감독의 후임으로 10년만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인테르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광복절 분위기에 휩싸였다. 계약기간은 2017년까지. 링크 그리고 데뷔전이 세리에 A AC 밀란전이다.

만치니는 인테르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획득한 감독이며(총 7개)[20], 인테르의 감독으로 100경기 이상 치른 감독 중 승률이 3위이다.[21] 또한 인테르 감독 역사상 가장 적은 패를 기록한 감독이기도 하다. 유럽무대에서 약했던 전력 외에는 인테르의 기나긴 역사에서 톱을 달리는 명장이었기에 팬들의 기대는 더욱 크다.

하지만 리그 막바지에 이르는 현재 그렇게 막장이라 불리는 AC밀란보다도 1단계 순위가 낮다가 거의 끝판에서 뒤집어서 37라운드까지 8위를 거두며 11위를 거둔 밀란을 제치긴 했다. 하지만 전번 시즌 5위를 거둔 것보다 성적이 나쁜 터. 인테르 자체의 선수층의 문제도 있지만 포돌스키, 샤키리를 영입했음에도 공격진의 답답함과 그냥 서있기만 한 미드필더, 허수아비같은 수비진 등 전술에 문제가 없다고 보기엔 심각하다. 그나마 밥값을 하는건 골키퍼 한다노비치 정도.

결국 도저히 안 되겠는지 2015년 여름 이적 시정에서 맨시티, 갈라타사라이 시절 그랬듯, 보드진에 선수 사달라고 졸랐다. 지금 아니면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맞불려 인테르는 말 그대로 po영입wer을 시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만치니는 조프리 콩도비아를 시작으로 스테반 요베티치, 아뎀 랴이치에게 연달아 전화 찬스를 성공시키며 '보이스피싱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리그 초반 데르비 승리를 포함 4연승을 달리고 있다. 리그만 치르기 때문에 다른 팀들보다 조건적으로 유리한 가운데 목표한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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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까지 1, 2위를 엎치락 뒤치락 하며 시즌 전반기를 성공적으로 보냈다. 미란다 - 무리요의 강력한 중앙수비진과 방탄 골키퍼 사미르 한다노비치의 맹활약에 힘입어 15경기에서 단 9실점만을 허용했다. 다만 공격력이 다소 아쉬운 데, 15경기중 무려 8경기가 1-0 승리이다. 이로 인해 팬들은 만치니와 인테르는 '이진법축구'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2월에 해외 몇몇 언론이 난데없이 그가 2016-17 시즌 첼시 감독 후보로 올라왔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만치니 본인은 대꾸도 안하고 이탈리아 현지 반응은 헛소리라는 반응.

2016년 5월 8일, 엠폴리 전을 2-1로 승리해 4위를 확정 지었다. 챔스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인테르를 다시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것을 높게 평가 받았다.

16/17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에베르 바네가, 카네르 에르긴이라는 베테랑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마짜리 때와는 네임밸류가 다르다. 게다가 바네가는 유로파 리그 결승전 MOM까지 먹었고 자유계약이다! 야야 투레 영입을 시도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괜찮은 영입에도 새로 구단을 인수한 쑤닝 그룹 측과의 의견차이, 이카르디의 이적 관련 파동 등 팀의 악재 등이 겹치면서 프리시즌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특히나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1:6이라는 스코어로 개털리면서 만치니 본인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 자신의 장점이었던 수비력이 붕괴되자 인테르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그말싫급으로 추락. 아무리 프리시즌이라지만 마짜리의 재림에 가까운 노답 축구를 몸소 보여주었다.

결국 2016년 8월 8일 상호 합의하에 구단을 떠나고 말았다. 선수단과의 관계는 아주 좋았던 모양인데, 만치니가 이탈하자 주장 이카르디를 포함한 여러 선수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기사가 올라왔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직후 인테르가 장렬히 산화하면서 본의 아니게 재평가되고 있다. 사실 재평가할 것도 없는게 유로파권 진출 실패 팀을 4위로 끌어올려놨는데 이걸 실패라고 할 수는 없을듯. 단지 전반기가 페이스가 너무 좋았기에 후반기 저조한 퍼포먼스가 더 비참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4.6.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6월 1일,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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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르헨티나 피를 대거 수혈하고, 기존의 자원들을 정리하면서 화끈하게 스쿼드를 재편했다. 그에 따라 팬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나 초반 페이스는 오히려 엄청나게 좋다. 특유의 탄탄한 압살 축구를 기반으로 8R 현재 리그 최다득점, 리그 최소실점의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아스날 툴라전에서 뜻밖에 패배를 당하게 되는데 후에 CSKA, 로코모티프 전에서 연달아 무승부, 패배 그리고 같은 우승경쟁팀인 스파르타크전에서도 패배를 당하게되면서 스파르타크와 함께 공동 2위로 전반기를 끝나게 됐다.

현재 만치니가 영입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추운 러시아에 적응을 못하게 되면서 경기력 저하로 나타났고 또한 만치니 자신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PSG 부임을 원한다, EPL 복귀를 원한다는 발언과 함께 팀을 흔든 책임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전반기 말미에 경질설까지 돌 정도.

결과적으로 제니트에서의 도전은 1년 만에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유로파 16강탈락, 리그에서 유로파출전마저 간당해지면서 (원래 목표는 리그 or 유로파우승, 챔피언스리그 진출인데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각종 SNS에서 #manciniout 이 제니트 팬들 사이에서 보였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며 5월 13일 상호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했다. 사실상 경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4.7. 이탈리아 대표팀

전임 감독인 잔 피에로 벤투라 6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사고를 치고 경질된 뒤 2018년 5월 15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년 계약에 옵션 2년으로 연봉은 600만 유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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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안토니오 콘테가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기 전에 만치니도 감독 후보군에 있었으나 콘테의 선임으로 한 번 무산된 후 이탈리아 대표팀의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다시 만치니에게 기회가 왔다는 후일담이 있다.

첫 경기는 2018년 5월 29일에 스위스 장크트 갈렌의 AFG 아레나에서 킥오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전이었다. 경기 결과는 2:1로 이겼으나 사우디아라비아에게 1실점 2득점이라는 성적을 거둔 것을 보면 아직 갓 걸음마를 땐 것으로 볼 수있다.

2018년 6월 2일 알리안츠 리비에라에서 열린 프랑스전은 3:1로 패배했다.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 월드컵 바로 직전의 친선 경기이고 프랑스는 러시아 월드컵을 우승했다.

6월 5일에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했던 네덜란드전은 1:1로 비겼다.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폴란드와 1:1로 비겼고, 포르투갈전은 0:1로 패했다. 10월 11일 우크라이나전은 1:1로 비겼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최근 강호로 떠오르고있다. 이후 폴란드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리그 A 잔류에 간신히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무너진 이탈리아의 급한 불만 끈 것으로 보였고 많은 팬들 역시 만치니 체제에 의문을 가졌으나, 2018년 11월 21일 미국과의 친선 경기를 1:0으로 이긴 것을 시작으로 연승을 하기 시작하더니 2019년이 들어오고 유로 2020 예선 전 경기를 전승 37득점 3실점으로 유로 2020 본선행을 확정지었다.[22] 심지어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9:1로 당연하게 이겨버리는 등 벤투라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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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연승으로 끝내고 2020년 첫 A매치인 2020-21 네이션스 리그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게 1:1로 비겨 연승은 11연승에서 끝났다. 같은 조로 편성된 네덜란드 전에서는 거의 반코트로 가둬놓는 수준의 카테나치오가 부활해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1:0으로 승리했다. 골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경기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네덜란드와 4강 진출을 놓고 경쟁했으나 만치니 감독이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아버렸다. 일단 팀은 수석코치인 알베리고 에바니가 이끌었고 다행히 이탈리아 대표팀은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무탈하게 복귀했으며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괜찮은 조편성과 성공적인 세대교체에 힘입어 A매치 24연속 무패, 동시에 10경기 연속 클린시트 승리를 기록하는 등 순항 중이다.

2021년 6월 12일 열리는 UEFA 유로 2020 본선 조별리그 1차전에서 네덜란드를 4:2로 이겨 주목을 받았던 터키를 만나 3:0으로 완파하며 유로 2020의 스타트를 완벽하게 끊었다. 스위스 또한 3:0으로 완파하며 유로 2020에서 가장 먼저 16강을 확정지으며 그 후 조르지뉴와 보누치, 돈나룸마를 제외하고 전부 로테이션을 돌렸음에도 웨일스를 1:0으로 이기며 3전 전승 7득점, 무실점을 거두며 기분좋게 16강에 갔다. A매치 30경기 무패, 공식 경기 12연승 및 12경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적수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웸블리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유로 16강전, 연장 접전끝에 키에사와 페시나의 연속골로 2-1 승리를 거두고, 뮌헨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8강전, 2:1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스페인과 1:1로 승부가 끝나고 승부차기 끝에 9년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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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망의 결승전에서 숙적 잉글랜드를 승부차기 끝에 승리해 53년만에 유로 우승을 하며 굴욕적으로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지 3년만에 아주리 군단의 부활을 화려하게 알리며, 이탈리아 축구의 오랜 숙원 중 하나를 풀어주면서 본인도 감독 커리어 통산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품에 안았다. 만치니는 국대에서 큰 활약을 거두지 못 했는데 감독으로써 새로운 커리어 하이를 맞이하며 본인의 개인적인 평가가 크게 올랐는데 처음으로 메이저 국가 대회인 유로를 들어올림으로써 감독으로 클래스를 증명했을뿐 아니라 도저히 답도 없다고 평가받던 이탈리아 대표팀을 완벽하게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UEFA 유로 2020/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에서 활약상이 있다.

단적으로 2021년 9월, 이탈리아의 피파 랭킹이 5위라는 점으로 오랜만에 한 손으로 꼽히는 상위권까지 돌아왔다는 점과 UEFA 랭킹은 독일 바로 다음인 2위까지 올라왔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23]

2021년 9월,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예선 C조에서도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스위스와의 5차전에서 36경기 연속 무패를 달성해 스페인과 브라질을 제치고 A매치 역대 최다 연속 무패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유로 본선 포함 4경기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최전방에 대한 고민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렇게 무승부가 많아지자 만치니 감독은 리투아니아전에서 최전방에 모이스 켄 자코모 라스파도리 등 젊은 공격수들을 선발로 내세웠다. 그러자 모이스 켄이 2골, 라스파도리 또한 2골에 관여하며 5:0으로 대승을 거두며 37경기 무패를 달성했다.

2021년 10월, UEFA 네이션스 리그 4강 스페인전에서 기껏 보누치를 주장으로 스타팅 했는데 경기 초반에 실점하고, 보누치가 팔꿈치 공격으로 퇴장을 받아 순식간에 페란 토레스에게 두 골이나 먹히게되며 스페인에 1:2로 지면서 38경기만에 아쉽게 패배했다. 만치니는 무패 기록도 멈췄겠다, 남은 월드컵 지역예선 2경기를 확실히 잡아 이탈리아의 19번째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가 남은 2경기는 지역예선중 이탈리아가 무승부를 기록한 불가리아랑 스위스라서 이 둘을 확실히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11월 들어 또, 조르지뉴의 PK 실축으로 스위스와 무승부에 그치고, 북아일랜드 원정에서 득점 없이 비기며 다 잡은 본선 직행을 스위스에게 넘겨주고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고 말았다. 플레이오프 조 편성 또한 저번처럼 가관인데, 첫 경기를 홈에서 북마케도니아와 단판으로 치르고, 파이널은 포르투갈과 터키의 대결 중 승자와 어웨이에서 단판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리하여 부임 이후 처음으로 가장 큰 위기에 빠진 상황인데, 어떻게 이 상황을 풀어갈지 주목되고 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유로 우승의 일등공신인 유벤투스 소속의 페데리코 키에사 마저 AS 로마와의 경기에서 십자인대 파열로 잃게 되었다.

결국 팔레르모 참사를 겪으면서 만치니는 벤투라에 이어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 감독이 되었다. 벤투라 시절부터 이어진 2연속 탈락은 이탈리아 대표팀 역사상 최초다.

아주리 군단의 원이었던 유로 우승을 하고 신으로 불렸으나, 월드컵 지역예선 2회 연속 탈락이라는 한순간에 역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질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지만 이탈리아 축구협회(FIGC)의 가브리엘레 그라비나 회장은 그대로 유임하겠다는 태도를 밝혔다. 이탈리아 언론도 여러 차이가 있긴 해도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의 스테파노 바리젤리 편집장은 "만치니 감독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투토 스포르트'의 대표인 자비에 자코벨리 기자는 한발 더 나아가 만치니 감독의 사퇴를 만류하고 나섰다. '코리엘레 델로 스포르트'에 실린 칼럼에서도 만치니 감독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면서도 경질을 언급하진 않았다.

결국, 감독 자리는 그대로 유임되었다. 사실, 만치니를 자르고 싶어도 차기 감독으로 앉힐 인재가 없는 상황이다. 일단, 월드컵 본선 탈락이라고 하지만 만치니는 유로 2020 우승 성과도 있거니와 축구계나 언론도 강력하게 밀어줄 차기 감독이 없기에 유임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며 이탈리아 축구협회도 공식적으로 만치니에게 2026년까지 이탈리아 국대감독을 계속 맡긴다고 발표했다.[24]

공격력이 이탈리아 대표팀의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키엘리니와 보누치가 빠진 후의 수비진도 약점으로 평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앙 미드필더나 2선 자원은 대표급 선수가 있고 유망한 자원도 많은 편이지만 그동안 이탈리아 대표팀의 강점으로 꼽혀 왔던 수비진에서 월클급 자원이 나오지 않으며 불안한 상황이 되었다. 현재 세리에A에서도 리그 대표급의 중앙 수비수를 꼽으라면 이탈리아 국적의 선수를 꼽는 건 망설여지는 상황이다. 바스토니 같은 유망한 수비 자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탈리아 국대 역대 수비수들의 센세이셔널한 기량과 비교하면 손색이 많다.

2022년 6월 2일에 벌어진 피날리시마 2022년 대회에선 남미 챔피언 아르헨티나에게 0-3으로 참패하여 3실점을 부임 이후 처음으로 당했다. 만치니에게 해결해야 될 숙제가 산더미같이 많음이 드러난 경기였다.

한국시간 기준으로 사흘 뒤 벌어진 UEFA 네이션스 리그 리그 A 독일과의 경기도 1대1 무승부로 끝났다. 이탈리아로서는 독일전 무패 징크스를 이번에도 이어나간 게 다행히긴 하지만, 여전히 이탈리아는 골 결정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아직 갈 길이 멀어보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도 한국시간 기준으로 사흘 뒤 헝가리전은 2대1로 승리한 것은 물론 경기력도 제법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오랜만에 이탈리아다웠다는 호평을 들었다. 참고로 이 때의 헝가리는 잉글랜드를 깬 직후였다.

그리고 또 한국시간 기준으로 사흘 뒤. 잉글랜드전은 0대0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면서 조 1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또또 한국시간 기준으로 사흘 뒤. 2주만에 다시 맞붙게 된 독일전은 5대2로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5대0으로 밀리다가 독일 선수들의 정신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 2골을 넣은 것으로써 영패는 면했다. 아무리 리빌딩 중에 있다고 하지만 메이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독일에게 승리를 내줬다는 점, 빗장 수비와 같은 팀의 컬러만큼은 유지했음에도 무려 5실점이나 내준 점 등은 만치니 감독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65년만에 벌어진 이탈리아 국대 굴욕이기도 하다. 1957년 5월 12일에 당시 유고슬라비아 땅이던 자그레브에서 열린 중앙 유럽 인터내셔널 컵(Central European International Cup)[25]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에 1-6로 패한 후 A매치에서 5실점 이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역대급 참패를 당한 것이다.

네이션스 리그 다섯 번째 경기인 잉글랜드와의 홈 경기에서는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4-3-3이 아닌 3-5-2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1-0으로 꺾으면서 잉글랜드를 리그 B로 강등시킨다.

6차전 헝가리와의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2연속 파이널 진출을 성공시켰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부활을 위한 만반의 준비과정이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11월 평가전에서 알바니아에게 3:1로 승리하였지만 선제골을 내준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이어진 오스트리아전에서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하였다. 독일에게도 여태까지 패한 적이 없던 오스트리아에게 처음으로 패하는 등 계속 본인들의 기록이 깨지고 있는 점은 신경써야 될 부분이다.

게다가 2023년 3월에 치러진 유로 2024 지역예선에서는 유로 2020 결승에서 이겼던 잉글랜드에게 첫 경기부터 1-2로 지면서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 특히나 전반전은 개판 그 자체로 잉글랜드의 결정력만 좋았더라면 5-1이나 6-1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2023년 6월, SSC 나폴리의 신규 감독 부임설이 잠깐 돌았으나 13일에 뤼디 가르시아가 부임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23년 6월, 네이션스 리그 준결승 스페인전에서는 2-1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이 때 만치니의 엔트리가 매우 심각했다.
  • 페데리코 가티, 알레산드로 바스토니와 같은 젊은 센터백이 있는데도 소집하여 기용하지 않고[26], 계속 보누치라는 노쇠한 센터백을 기용했다가 그에게 기대할 수 있던 강점인 빌드업 및 롱패스 능력은 경기에서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한 채, 수비적인 측면에서 대형사고가 터져버린 것이 일단 첫 번째 문제였다. 보누치는 22-23 시즌 많은 부상에 시달려서 소속팀의 주전 경쟁에서 많이 밀려나있었고, 본인 역시 이를 인지했던 것인지 2024년을 전후하여 현역 완전 은퇴까지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폼이 많이 내려온 상태였다. 또한 여러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차원에서 기존 주전이던 로렌초 펠레그리니, 마르코 베라티[27] 페데리코 키에사를 선발로 내지 않았던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들의 교체투입을 좀 더 앞당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두 번째 문제였다.
  • 세 번째는 만치니 감독의 과감한 3백 전술이 결과론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네이션스리그 리그 A 막바지인 5, 6차전에서 3-5-2 전술로 잉글랜드 헝가리를 연파하긴 했으나, 이 2경기를 제외하면 4백과 4-3-3이 현재 만치니의 이탈리아에겐 더 검증되고 최적화된 전술이었고 실제로 만치니가 팀을 이끄는 5년 동안 입힌 기본 전술이 4백이였으며, 계속해서 4백을 써왔을 때 성과가 좋았던 팀[28]이 만치니의 이탈리아였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3백으로 출발했으면, 선제 실점 없이 리드를 뺏기지 않으면서 양쪽의 윙백인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 조반니 디로렌초에게 공격적인 작업을 주문하는 등 만치니 감독에게도 나름대로의 구상이 있었을 것이지만, 전반 3분부터 보누치의 치명적인 실수가 터진 상황 속에서 감독이 그에게 기대하던 특유의 롱패스를 통한 기회 창출 등의 장점은 거의 나오지 않는 등 여러 요소가 겹침으로써, 3백 전술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에서 만치니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29]
  • 네 번째는 기존 네이션스리그에서 성과가 좋던 자코모 라스파도리, 윌프리드 뇬토, 신성 스트라이커 마테오 레테기와 같은 공격진 혹은 국대 활약이 꾸준하던 로렌초 펠레그리니와 같은 미드필더 중 그 어느 누구도 교체로조차 기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중에서 펠레그리니를 제외하고, 이들의 경우 아직 선발로 나서기엔 무게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에 앞서 언급했던 답답한 공격력 문제를 뚫어줄 수 있는 페데리코 키에사를 선발로 사용하고 이들이 부진했을 경우 이미 보여준 바가 있는 자코모 라스파도리같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시나리오도 나쁘지 않았지만 만치니 감독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기회조차 받지 못한채로 벤치에서 팀의 패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30]

결국 정리하면 만치니 감독의 3백 전술의 아쉬움과 선수 기용의 문제가 이탈리아의 패인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2023년 8월 13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 유로 2024 예선 일정이 곧 다가오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사임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서 빠르게 후임 감독 선임 절차에 착수했다고 한다.

만치니 감독은 SNS로 "감독직 사임은 개인적인 결정이다. 유로에서 거둔 특별한 승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영광이었다"라고 작별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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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우승을 기반으로 아주리 군단의 부활을 알렸으나 결국 2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대표팀을 암흑기의 수렁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4.8.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사임하자마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부임 소문이 났으며 예상대로 8월 24일 원화 기준으로 429억원의 연봉을 받고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 당초 이탈리아 감독 사임 시에는 사우디 감독 부임설을 부인했으나 결국 사실이었다. 계약기간은 2027년까지. 사우디 감독으로 부임하며 연봉에 끝자리 0이 하나 더 붙었다. 이로써 국가대표, 클럽 팀 감독을 모두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봉급을 받는 축구 감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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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2024년 1월 인근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3 AFC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월드컵을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부임 후 9월 9일 코스타리카전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나 1-3로 패배했다.

9월 13일 연이어 한국과 평가전을 가졌는데, 당시 한국 대표팀은 지속되는 무승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각종 논란과 구설수로 상당히 어수선한 상황이었던 탓에 부임 첫 승을 기대해 볼만하다고도 평가받았으나 0-1로 패배하며 평가전 2연패를 기록하였다.

만치니가 부임하기 전 팀은 이미 걸프컵 조별리그 이라크전 0-2 패배, 오만전 1-2 패배를 비롯해 평가전 베네수엘라 1-2 패배, 볼리비아 1-2 패배로 4연패를 기록 중이었는데, 여기 두 경기가 추가되어 현재 6연패가 된 상황이다. 조바심으로 감독을 급속 경질하기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연맹의 변덕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10월 13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경기 종료직전 모하메드 칸노의 극적인 프리킥으로 2대2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다.

10월 18일 말리와의 경기에서는 3대1로 패배하며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11월 17일 파키스탄과의 2차예선 경기에서 4대0 대승을 거두며 부임 첫승을 따냈다. 5일 후 요르단 원정에서도 2:0으로 이겼다.

아시안컵에서는 조별리그 오만, 키르기스스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다. 3차전에서 태국과는 비겼지만 이미 16강이 확정된 상황에서 치러진 경기라 큰 의미는 없었다.

16강에서는 2023년 9월에 영국에서 친선경기를 치렀던 클린스만의 한국과 재대결했다. 클린스만과 지략 대결에서는 우위를 점하였는데 3 - 5 - 2 포메이션을 들고나와서 미드필더 숫자를 많이 둬서 대한민국의 헐거워진 중원을 집요하게 노리며 점유율을 거의 대등하게 가져갔고 대한민국의 공격을 효율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또한 대한민국에게 주도권이나 분위기가 넘어올 조짐을 보이자 문제점을 파악하여 즉시 교체 카드를 사용하며 보완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경기에서는 전반전과 후반전까지 잘 풀어갔고, 사우디 선수도 후반전을 시작하자마자 선제골을 넣어 감독의 전술이 잘 먹혀들어 가고 있었는데 사우디 선수들이 승기를 잡고나서 생각보다 일찍 내려앉아 버리며 주도권이 갑자기 대한민국에게로 확 넘어가 버리면서 사우디 입장에서 경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대한민국이 종료직전 조규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경기를 연장으로 이끌었고 연장전에서는 이미 체력이 빠질 대로 빠진 사우디가 고전하며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다. 연장전에 사우디 선수들에게 라인을 올릴 것을 지시했지만 선수들이 이를 무시하고 침대를 펴는 바람에 만치니 감독은 연장전 내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여러차례 잡혔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갔지만 사우디 3, 4번 키커 두명이 실축하며 대회에서 조기 탈락했다. 이 때 조현우에게 4번 키커의 슛이 막히자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기행을 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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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4번째 키커 황희찬이 깔끔하게 차넣으며 결국 사우디의 아시안컵은 16강에서 막을 내리고 말았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는 홈에서 요르단에 져버렸고, 최종예선에서 한수 아래의 인도네시아에게는 선제골을 내주고 홈에서 비겨버렸다. 중국 원정 경기에서는 겨우 승리하긴 했지만 홈에서 일본에 완패하고 바레인과의 홈 경기에서도 무득점 무승부를 거두며 만치니 감독의 자질과 연봉값을 하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나오게 되었다.

이로 인해 2위권은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3~4위권 유지도 불투명해지자 10월 18일을 기점으로 경질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

현지 시간 2024년 10월 24일에 경질당했다. 위약금만 무려 1080억이라고 한다. 후임으로는 카타르 월드컵 당시 사령탑이었던 에르베 르나르가 다시 복귀했다.

2024년 11월, AS 로마와 2년 계약 체결을 추진중이었으나, 과거 로마의 감독 경험이 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선임 되면서 결국 결렬되었다.

5. 감독 스타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단단한 수비와 중원을 구성해서 쉽게 지지 않는 팀을 만들고, 공격은 공격진의 개인 기량에 맡긴다.

좀 극단적일 정도로 피지컬을 강조한다. 특히 중원 구성에서 매우 두드러진다. 선수들의 기술 발달은 이미 상향평준화되어 더 상향되기 어렵기 때문에 팀 간 전력을 변별할 수 있는 요소는 선수들의 신체적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피지컬 좋은 선수라고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기반 자체가 피지컬 활용과 지공에 있다 보니 보는 맛은 떨어진다. 다만 수비진에 안정감을 불어 넣는 능력은 탁월해서 수비 불안으로 골머리를 앓는 팀에는 구세주 같은 감독.

공격수 출신이지만 공격 전술을 짜는 데에는 큰 소질이 없다. 공격진은 현역 시절 자기가 그랬듯이 피지컬보다 기술 좋고 번뜩이는, 10번형 선수를 선호하는데 그냥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31] 현재까지는 카테나치오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에 조직력과 공격력까지 장착시켜 우승후보급 팀을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조별리그에서 프랑스나 포르투갈 같은 기존 우승후보들이 부진한데 반해 이탈리아가 순항하자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기 시작했다. 또한 조별리그에서 써드 골키퍼인 알렉스 메렛을 제외하고 모두 출전시킴으로서 폭넓은 선수 기용 방식을 드러냈다.

단점은 승부처에서 한끗이 모자란 운영을 한다는 점. 특히 유럽대항전에서 두드러진다. 기본 전력을 활용해 상수를 만들고 그 상수를 붙들어 안정적으로 상대를 눌러 죽이는 운영에는 능하지만,[32] 변수 싸움에서는 약점이 드러난다. 혹 상대가 자기보다 상수가 크면 자신이 변수를 만드는 모험수도 필요한데, 영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고, 정작 시도를 해도 실패할 때가 제법 많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인 전술과 변수라는 머리싸움에서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선수를 보는 안목이 좋고, 선수단을 꾸리는 능력이 탁월해, "리빌딩"만큼은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특히 국가대표팀에서는 선수를 돈주고 영입하는게 아니라 선발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궁합이 좋을 수 밖에 없다.

클럽에서는 그가 원하는 팀을 만들려면 원하는 선수를 사다주는 구단이 필요한데, 맨시티나 갈라타사라이같은 팀은 당장의 성적을 낼 수 있는 전술 운영을 원했고, 그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로만 보여질 수 있었다. 하지만 1)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 혹은 2) 능력치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선수들을 빠르게 영입하고 팀을 꾸리는 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맨시티에서는 마크 휴즈 시절 심화된 불균형 스쿼드를 다시 성공적으로 리빌딩했다. 그때 영입했던 선수들이 다비드 실바, 야야 투레, 세르히오 아구에로이다. 인테르 2기 시절에는 만치니의 전화를 받고 중하위권 인테르로 이적한 세르단 샤키리, 포돌스키[33], 콩도비아, 맨시티의 요베티치, ATM의 미란다를 영입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선수 선발 과정에서 자기 고집 부리다가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는 몇몇 국가대표팀 감독들과는 다르게, 리그 내 활약이 좋은 선수들은 일단 뽑아서 써 보면서 3년 전 참사를 겪었던 팀을 유로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명백하게 말해 체사레 프란델리가 이끌었던 유로 2012 결승 진출 당시의 이탈리아는 모두가 결승 진출을 예상하지 않았던 언더독의 입지였지만 유로 2020의 이탈리아는 가장 팀이 잘 만들어져있으며 최소 결승전에 진출할만하다라고 평가를 받아온 우승 후보였는데, 이러한 평가 자체가 만치니의 공로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34]

하지만 이런 운영에도 단점은 있는데, 한국의 최강희호처럼 조합이 맞지 않는데도 억지로 기용하는 경향이 있다. 카타르 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에서도 북마케도니아 상대로 조합이 맞지 않는 쓰리톱을 소속팀서의 폼이 좋다고 고집하다가 0-1로 패해서 월드컵에 못 가는 대참사가 났다.

또한 조르지뉴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데, 조르지뉴를 쓰려고 니콜로 바렐라, 마누엘 로카텔리 등 미드필더를 죄다 조르지뉴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 역할으로만 쓰다 보니 선수들의 장점이 드러나지도 않고 결국 2연속 광탈리아의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6.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1991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2등급: 2021[35]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한국전 조기 퇴장 논란

파일:만치니쓸쓸한뒷모습.gif
2023 아시안컵 대한민국과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조현우에게 4번 키커의 슛이 막히자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기행을 벌였다. 이후 4번째 키커 황희찬이 깔끔하게 차넣으며 결국 사우디의 아시안컵은 16강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패색이 짙어지긴 했지만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다소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사과드린다. 경기가 끝난 줄 알았다(I thought the match was over). 누구에게도 무례하고 굴고 싶지 않았다”라고 해명했지만 횡설수설에 가까운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는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선수, 감독 경력이 많은 그가 정말 경기가 끝났다고 착각하는 건 말이 안된다는 반응이다.[36][37] 한편 'I thought it was over'이라는 답변이 경기가 정말로 끝난 줄 알았다는 해명이 아니라 '(사실상) 끝났다고 생각해서 나갔다'라는 뜻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이를 두고 알하다탈칼리지 등 사우다아라비아 매체에 따르면 야세르 빈 하산 빈 모하메드 알 마샬(50)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장은 "아시안컵 한국과 16강전에서 만치니 감독이 승부차기가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빠져나간 사유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 밝혔으며, 야세르 알 마샬 회장은 언론에 성명으로 "만치니 감독이 승부차기가 끝나기 전에 떠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그와 논의를 나눌 것"이라고 진상 파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 또한 현장을 찾은 사우디아라비아 팬들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패배의 책임을 만치니 감독에게 물으면서 "즉각 해고되어야 한다. 그는 팬들과 선수들의 꿈을 망가뜨렸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만치니 감독이 그간 쏟아냈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한국전이 끝난 뒤 후일담에 의하면 후반전 중반부터 사우디 선수들이 독단적으로 라인을 내려앉혀 버려 만치니 감독이 선수들에게 공격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했는데 선수들은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그렇게 괜히 내려앉았다가 대한민국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결국 동점골을 먹혀버려 연장전에 돌입해버리고 말았는데 연장전 경기 도중에도 만치니가 라인을 올리고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카메라에도 여러 번 잡혔다. 그러나 사우디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를 또 무시하고 수비적으로 나와서[38] 노골적으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 만치니가 승부차기 키커 순서까지 짜준 리스트를 무시하고 사우디 선수 본인들이 직접 키커를 정해서 찼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선수들과의 불화가 있었더라도 경기가 안끝났는데 감독이 먼저 경기장을 떠나버리는 행동에 대해 옹호되지는 못하며 비상식적인 행동인건 확실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화나서 먼저 나갈 만했다는 소수의 의견도 존재하기는 했다.

8. 여담

  •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맨시티 팬들에게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는 감독이다.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이루며 수비조직을 탄탄하게 다지고 FA컵과 리그 우승을 선물했기 때문. 소위 Bobby Manc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 맨시티 시절 응원가도 있다. 듣기 원곡은 Gispy Kings의 'Volare'. 두산 베어스 팬이라면 오재일의 예전 응원가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가사는 다음.
Mancini oh oh oh
Mancini oh oh oh
He comes from Italy
To manage Man City
  • 인테르, 맨시티, 이탈리아 대표팀까지 함께하고 있는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와는 돈독한 사제관계를 맺고 있으며, 발로텔리에게 그의 존재는 양아버지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리오 발로텔리의 멱살을 잡은 듯한 사진으로 불화설도 있었으나, 동료를 발을 차는 것을 그만하라고 옷을 잡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한국 기사
  • 막내아들인 1992년생 안드레아 만치니도 축구 선수이다. 아버지가 감독을 맡은 팀을 따라 인테르, 맨시티 유스에서 뛰었지만 아버지만큼의 소질은 없어서 빅리그에 머물지 못하고 서유럽 하부 리그와 헝가리, 미국 리그에서 뛴 후 프로생활 7년 만에 축구를 그만두었다.
  • 최근 부인과 이혼수속을 밟게 되었는데 소식을 접한 에이프릴 서머스라는 플레이보이 모델이 트위터로 공개구혼을 했다. 참고로 이분은 맨체스터 시티 시절부터 만치니 감독에게 지속적인 공개 구애행위를 벌이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고.
  • 2015년 12월 7일, 인테르의 콩도비아 슛 포 러브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 알려졌는데, 진행 당시 만치니 감독이 캠페인 진행 장소에서 곧 훈련을 할 예정이니 옮겨 달라고 진행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진행 측은 그냥 구단 관계자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만치니 감독인 걸 나중에야 알아서 현재 매우 후회하고 있는 중이라고...
  •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이 되며 전 세계 감독 연봉 1위를 차지했다. # 여담으로 아시안컵 기준으로 아시아 축구 연맹 소속 감독 중에 만치니 감독 다음으로 많이 연봉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진 이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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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펜싱으로 유명한 동네다. 여자 플뢰레의 전설인 그 발렌티나 베잘리의 고향이며 우승 청부사이자 서울 올림픽 남자 플뢰레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스테파노 체리오니가 펜싱을 시작한 동네이다. [2] 그러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캄파니아 살레르노의 산골 마을로 이주해서 거기서 자랐다. 그래서 마르케주 최초의 프로 축구선수는 마시모 암브로시니로 치는 모양새. [3] 주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다. [4] 유럽 선수권 우승을 이끌었으나 월드컵에서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 독일 베르티 포크츠 프랑스 로저 르메르와 유사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도 포크츠와 르메르는 월드컵 본선까진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타격은 만치니 쪽이 더 크다. [5] 유벤투스 FC 명예 구단주. [6] 이때는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7] 1991-92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팀을 이끌고 디펜딩 챔피언인 츠르베나 즈베즈다까지 제치며 결승까지 올랐었다. 다만 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FC 바르셀로나였는데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바르셀로나에게 0-1 석패를 당했다. 결승골은 그 유명한 로날드 쿠만의 188km/h 프리킥. [8] 그리고 스킬라치는 이 대회 득점왕에 오른다. 한마디로 월드컵 반짝스타의 대표적인 사례. [9] 1994년 월드컵도 갈 수 있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부진한 모습으로 팬들의 질타를 연이어 받자 개최 직전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10] 성질 더럽기로는 어디가서 지지 않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삼프도리아 시절 코너킥을 이상하게 찼는데 만치니가 와서 '공 좀 제대로 차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베론은 욱해서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는데, 경기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가니 만치니가 자기를 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베론의 표현에 따르면 다른 선수가 말리지 않았으면 죽을 뻔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2013년 1월 베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치고 받고 싸운 건 아니고 짜증만 좀 냈다고 한다. 애시당초 자신은 그 양반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만치니와 베론은 삼프도리아-라치오 선수 시절을 비롯해서 인테르에선 감독과 선수로도 만난 걸 보면 잘 해결된 모양이다. [11] 사실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걷어내려고 강하게 찬 공인데다가 근거리에서 얼굴로 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자신도 이해한 것인지 별 탈 없이 웃으며 넘어갔다. [12] 로마는 챔피언스리그 8강 맨유와의 2차전 7-1 대패의 충격이 발생한지 10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13] 인테르 시절 만시니가 1대1 면담에서 "넌 진짜 바보고 왜 내가 너 같은 놈을 사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라고 하면서 갈군 적도 있고, 담배 피우는 것울 보고 "내 아들이었으면 죽여놨을거야."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한 발로텔리의 대답이 압권. "나는 킥복싱을 배웠다" [14] 마침 발로텔리가 아들과 친구라고 한다. [15] 사실 테베즈는 구단의 압박에 돌아온 것이라는 게 중론. 그러나 빅클럽 감독이 자신에게 정면으로 개겼던 선수를 다시 중용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 데이비드 베컴 야프 스탐을 내친 사례 그리고 즐라탄 사무엘 에투를 내친 것만 봐도 거물급 감독이 자신의 리더십에 도전한 선수를 달래서 중용하는 것은 웬만한 도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16] 마이콘, 잭 로드웰, 하비 가르시아, 스콧 싱클레어 등이 있다. [17] 사실 터키의 축구는 승리보다 오락적인 요소가 더 강하기 때문에 만치니의 수비적인 축구는 터키에서 좋게 보일 수가 없다. [18] 국내에는 '하산 사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2002 한일 월드컵의 그 선수가 맞다. [19] 이미 만치니 재임기부터 소수의 팬들이 주장해오던 얘기였다. 문제는 부진한 성적으로 다수의 팬들이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20] 전설적인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와 타이, 트레블을 이룩한 무리뉴는 5개로 만치니에 이은 3위이다. [21] 61.95%의 승률, 1위는 주제 무리뉴 63% [22] 이번 유로 2020 예선에서 전승을 한 팀은 벨기에와 이탈리아 뿐이다. [23] 만치니는 현역 시절 삼프도리아를 이끌고 1992년 유러피언 컵[39] 결승전에서 로날트 쿠만에게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허용하고 FC 바르셀로나에게 패배했던 곳이 공교롭게도 웹블리 스타디움이었다. 28년이 지나 감독으로써 웸블리에서 성공적으로 우승컵을 들게 되었다. 승부차기 직후 동료로서 같이 결승전에 출장했었고 현재는 이탈리아 대표팀 단장을 맡고 있는 잔루카 비알리와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 [24] 이것은 만치니보다 더 유능한 감독을 데려오기에는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예산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제니트 시절에 만치니의 연봉이 5M 유로였지만 위에 써있듯이 이탈리아 부임 직전에는 3M 유로 정도로 알려졌다가 2.48M 유로를 받게 되었다. [25] 1927년에 시작하여 1960년까지 열린 대회로 대회가 예선이나 1년안에 다 치른 게 아니라 1년에서 5년 사이에서 천천히 대회를 열던 이벤트 대회에 가까웠다. 참가팀도 중유럽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스위스, 폴란드, 루마니아만 참가했다가 마지막 1955~60년대회에 나온 게 바로 유고슬라비아였다. 5번 열린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2번 우승하여 최다 우승(1,2회 대회)이었으며 매직 마자르 시절 헝가리가 4회 대회(1948~1953년까지 열림)우승하고 1958 월드컵 준우승 시절 전성기이던 체코슬로키아가 마지막 대회를 우승했다. 유로컵이 열린 1960년을 마지막으로 폐지. [26] 바스토니의 경우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며칠 전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 체력 안배 조치일수도 있겠으나, 바꿔 말하면 그만큼 또 실전 감각이 올라와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특히 페데리코 디마르코, 니콜로 바렐라는 계속 기용했다는 점에서 바스토니의 결장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다. [27] 다만, 국대에서와는 다르게 클럽에서 22-23시즌 막바지 즈음 활약을 고려해보면 폼이 떨어진 모습이 있긴 했다. [28] 37경기 무패행진과 유로 2020 우승 [29] 그리고 보누치는 23-24 시즌 소속팀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국대 감독도 새로이 바뀌면서 더 이상 국가대표로서 소집될 가능성이 0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실상 보누치의 국가대표 경력은 121번째 경기인 이 시합을 끝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30] 하지만 이들의 경우 소집은 되었기에 3-4위전에서라도 뛸 여지가 있지만, SS 라치오가 22-23 시즌에 세리에 A에서 2위로 차기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짓는데에 큰 기여를 했던 마티아 자카니, 유벤투스의 확고한 주전 미드필더로 도약한 마누엘 로카텔리는 소집조차 되지 않았기에 다음 경기도 뛸 수 없고 이미 결승 진출을 실패한 시점에서 이들을 왜 소집명단에서 제외했느냐는 물음이 계속 나올수 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인 상황이며, 이런 점 역시 만치니의 선수기용이 아쉬웠다고 말할 수 있는 부수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31] 만치니가 2001년 이탈리아의 코치와 심판 연수를 담당하는 코베르치아노에서 연수를 받고 쓴 논문의 제목이 10번형 선수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II Trequartista이기도 하다. [32] 그래서인지 이적 시장이 열리면 스쿼드 보강에 열을 올린다. [33] 이 선수들은 리그 중간 영입된 임대생이었으며, 결과만 보자면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인테르의 상태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네임밸류를 가진 선수들을 시즌 중간에 데려오는 것도 능력이다. [34] 대표팀에 부른 선수만 해도 60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이탈리아 국대는 사실상 무한경쟁 체제가 되었고 지금의 이탈리아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5] 인테르, 맨시티에서의 활약과 무엇보다 자국의 유로 2020 우승에 공헌하였기에 엔초 베아르초트, 디노 조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와 대등한 서열의 수훈을 얻었다. 이 명성은 2006년 월드컵의 우승 감독 마르첼로 리피조차도 3등급이기에 파격적인 대우다. 아마도 당시 이탈리아 축구의 상황이 상황이었던만큼 중흥의 불씨를 살렸다는 참작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왜 그러셨어요? [36] 당시 사우디는 네 번 골을 차서 두 번 성공, 대한민국은 세 번을 차 전부 성공시킨 상황이었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4, 5번째 키커가 모두 실패하고 사우디의 5번 키커가 성공시켰다면 동률이 될 수도 있었기에 패배가 확정된 건 아니었다. 또한 설령 만치니가 경기가 끝났다고 착각하더라도, 보통 상대편 감독과 악수를 하고, 경기장 안에 있는 선수들을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것이 관례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감독이 악수도 안하고 바로 라커룸에 들어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뉴스에 나올만한 일이다. [37] 세간에서는 만치니가 그동안 프로의식이 결여된 것으로 보이는 사우디의 선수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서 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대회전에 아시안컵에 주전으로 뛸 것이 아니면 친선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항명한 선수들이 엔트리에 제외되는 일도 있었고, 대한민국과의 경기중에 후보 선수들이 벤치에서 축구화를 벗고 있다가 만치니가 화내고 지적한다던지, 만치니의 지시를 무시하고 사우디 선수들이 라인을 내리고 텐백과 침대축구를 시전하는 등 만치니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상황이 많았기 때문. [38] 연장전부터는 사우디 선수진이 체력 고갈로 퍼지는 바람에 공격을 하기에는 무리인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