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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의료체계사회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모든 주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된 체계이다.
이는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 고려의학 등을 핵심 구성 요소로 포함하고 있으며, 체계 초기에는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으로 발전했다. 북한 의료체계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도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주민 건강 증진이라는 실용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난[1] 이후 자원 부족과 시스템의 비효율성이 부각되며 위기를 겪고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어느 정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의료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북한 의료체계의 형성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시작되었다. 일제가 철수하면서 그로 인해 비어버린 의료 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해 북한은 소련, 중국,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소련은 병원 설립, 의약품 지원, 의료진 훈련 등을 통해 초기 의료체계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특히 소련의 전염병 방역 노하우와 현대적 의료 기술은 북한 의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2]1950년대 이후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북한은 전후 복구와 함께 본격적인 국가 주도의 의료체계를 구축했다. 1947년 사회보험법에 따라 무상치료제의 기초를 마련한 북한은 1953년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도입하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도시와 농촌 모두를 아우르는 완전한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시행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외부 지원을 줄이고 자립적 의료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 한의학을 현대화한 고려의학[3]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3. 특징
북한 의료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가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주의적 접근법에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채택된 주요 정책으로 무상치료제, 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 그리고 고려의학 등이 있다.3.1. 무상치료제
무상치료제는 모든 주민들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 초기에는 사회보험 가입자들에게만 혜택이 제한되었으나 점차 모든 주민들로 확대되었다.무상치료제는 대략적으로 1947-1952년의 '사회보험법에 따른 무상치료제', 1953-1959년의 '전반적 무상치료제', 1960년부터 현재까지의 '완전한 전반적 무상치료제'로 단계를 나눌 수 있다. 첫 단계에서는 사회보험에 가입한 근로자와 그 가족들에 대해서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를 넘어서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료 인프라와 인력 부족으로 한계가 있었다. 1950년대 북한은 공업화 기반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1958년에는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였고, 이에 따라 이어지는 세 번째 단계인 1960년대에 들어서는, 실질적인 의미의 무상치료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리·동 단위의 진료소를 전국적으로 확충하면서 무상치료의 실행력을 강화하였다.
다만 현재로써는 국가의 무상제공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 부담이 여전히 크고, 의료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현금을 주는 등의 일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3.2. 의사담당구역제
의사담당구역제는 의사가 지정된 지역 내의 주민들의 건강을 전담하며, 정기적으로 해당 구역을 방문해 예방과 치료를 동시에 제공하는 체계이다.북한은 이 제도를 통해 예방/치료 의료서비스가 소외 지역까지 확산되도록 노력했다. 의사담당구역제에 대해서 해방 직후부터 구상을 하였던 것으로는 보이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서 이 또한 60년대 들어 인프라가 어느정도 구축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4]
문제는 의사 1명당 5-8개의 인민반[5]을 담당하는데, 이를 대략적으로 보면 의사 1명당 대략 1200-1500명정도의 주민을 담당하는 것이 된다. 즉, 효율적인 의료의 수행이 힘들다는 것이다.[6] 또한 의사담당구역제는 의사가 특정 구역을 맡아 그 안의 의료를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의사들이 환자의 발생 수를 은폐하고 실적을 부풀릴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나타난다.
3.3. 예방의학
북한의 예방의학은 전염병 예방과 위생 교육을 중심으로 한다.북한은 예전부터 사회주의 보건의 기반을 예방으로 보았고, 특히 1966년 김일성의 연설에서 정책적 개념으로의 “예방의학”이 처음 등장하였다. 예방의학은 국가적 차원의 방역사업이나 예방접종등을 총괄하여 의미하며, 위생건강사업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 그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현대 국가에서 시행하는 방역대책과 별다를 바가 없다.
즉, “예방의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의 의료정책 선전을 위한 정치적 의미가 짙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4. 고려의학
1950년대 북한과 중국의 의학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고려의학의 위상은 북한에서 급속도로 향상되게 된다.중국은 당시 중의학과 서양의학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의학을 장려하였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북한은 고려의학을 주요 의학사업 분야로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고려의학을 장려하였다.
고려의학은 약품 부족 상황에서 중요한 대안으로 사용되었으며, 한의사들을 대중 보건사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고려의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고려병원’들을 설치하고 있으며 다양한 병원들에 고려과를 설치하고, 고려의학부를 여럿 설치하여 한의사들을 양성하고 있을뿐더러 ‘고려약 생산관리국’을 보건성 산하에 두어 약재를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현재까지도 고려의학은 북한 보건의료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고려의학은 대체제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경제난에 따라 약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지면서 그 대체자원으로 고려약과 고려의학을 찾은 것이다. 그 예시로 1998년부터는 각급 의료기관에서 고려의학의 비중을 높이고 고려의학적 이용을 위한 치료기재 및 시험기구를 제작하는 것을 독려한 바 있다.
4. 북한 의료의 성과와 한계
위의 2019년 WHO자료에 의하면, 백신 접종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여 소아마비는 북한에서 1996년 이후 보고되지 않았고, 근절 상태로 10년이 지나 2006년부터 Polio-Free 국가가 되었다. 추가적으로 몇 년동안 거의 대부분의 분만이 훈련된 의료 인력의 관리 아래에서 이루어졌고, TT2 접종률이 높아 신생아 파상풍이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2007년 홍역 접종 캠페인에서 접종률이 99%를 기록한 점은 북한이 홍역을 제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을 시사한다.이에 더불어 2012년에는 5가 백신을 정규 예방접종에 성공적으로 도입, 접종률이 97.5%에 달했으며 심각한 예방접종 부작용 및 이상반응 사례는 보고되지 않기도 하였다.
다만 이는 매우 최근 자료이고,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일정 기간동안은 위에서 보았듯 매우 빈약한 의료상태가 이어졌다. 최근 자료에서도 예방 접종 부분은 확실한 성과가 보였지만, 의료 자원(의료기기, 의약품 등)이 부족하고 도심과 시골지역 사이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 및 영양 상태에 격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전력과 수도 공급도 불규칙하여 의료 시설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북한은 WHO, UNICEF 등의 국제 기구와 긴밀히 협력하고 지원을 받으면서 의료 체계 정상화(면역 프로그램이나 NCD[8] 관리 등)에 힘쓰고 있다.
5. 출처
이성봉. (2009).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형성과정과 특징. 통일문제연구, 21(2), 323-357.김진혁, 문미라. (2019). 사회주의 진영의 북한 의료지원과 교류(1945-1958): ‘소련배우기’와 ‘주체적’ 발전의 틈새에서. 의사학, 28(1), 139-190.
WHO. (2019). WHO country cooperation strategy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14-2019
2023 북한 이해
6. 관련 문서
• 북한• 사회주의
• 주체사상
• 한의학
[1]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에 심각한 경제난이 찾아오게 된다
[2]
예를 들어 소련은 1946 여름
콜레라, 1949년 9월
일본뇌염 등 굵직한 북한의 전염병 사태를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여 성공적으로 대처하였다
[3]
남한의
한의학과 같은 단어라고 생각해도 된다. 즉, 고려의학은 ‘한의학’의 북한식 표현이다
[4]
1960년에 비해 1963년에는 병원 수가 447개소에서 538개소로, 병원 침대의 수는 32,698대에서 48,133대로 느는 등 의료시설의 확충이 마련되었다
[5]
20-40가구정도로 구성되는 북한의 인구의 단위
[6]
더 최근 자료인
WHO 자료를 보면 1명의 가정의가 130가구 정도를 담당한다고 한다.
출처
[7]
고려의학과 같은 뜻
[8]
비감염성질환(noncommunicable disease, N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