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3:43:37

저니맨

1. 개요2. 용례3. 사례
3.1. 야구3.2. 축구3.3. 농구3.4. 배구3.5. e스포츠3.6. 복싱
4. 관련 인물5. 다른 의미

1. 개요

Journeyman

본래는 서양 중세 수공업에서 장인(master)과 도제(apprentice) 사이 단계에 있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단계에 있는 수공업자로서, 번역하자면 '직인'을 일컫는 뜻이었다. 오늘날의 프리랜서와 비슷하다.

'여행'이란 뜻으로 직역되는 'Journey'에서 알 수 있듯이 떠돌이라는 인상이 물씬 풍기는 단어. 때문에 수공업이 잘 알려지지 않는 오늘날엔 위와 같은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스포츠계 용어로서 폭넓게 쓰인다.

2. 용례

원 클럽 맨과는 대척점의 성격으로 해마다 혹은 자주 여행을 다니듯 팀을 옮기는 선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저니맨이라는 단어 자체가 워낙 떠돌이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이런 선수들은 실력도 없고, 무명이고, 인격도 좋지 않아서 자주 떠돌아다니는구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느 종목이건 프로 스포츠라면 돈과 흥행이 걸려 있으니 실력, 성격, 인기 세 가지가 필수 요소다. 진짜 실력도 이름도 없고 성격도 안 좋은 선수는 알아 봐주는 사람도 없고 받아 주는 팀도 없다. 저니맨 선수를 영입하는 팀에서도 이 선수가 우리 팀에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니 돈 주고 계약하거나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하다. 애초에 신인때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부터 수많은 동년배 경쟁자들과 매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프로 명함 달았다 해도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1] 그래서 다들 알다시피 매해 쏟아지는 수많은 유망주들 중에서 1군 붙박이, 그중에서도 슈퍼스타가 되는 선수는 극히 드물며 대부분은 1군 자리에서 꾸준히 활약하지도 못한다. 프로 1군 무대에서 가늘고 길게나마 살아남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2]

저니맨들은 대부분 슈퍼스타급의 기량은 되지 않아도 프로 레벨에서 통하는 자신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1군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량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당 부분이 약점인 팀들의 꾸준한 수요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단기 계약으로 꾸준히 팀을 옮겨다니며 의외로 선수 생활도 꽤 길게 한다. 고로 저니맨들은 프로 선수들 중에서 나름 성공한 축에 드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리저리 팀을 옮겨다니긴 해도 그게 다 수요가 있다는 말이며 또한 그 선수가 잘하는 분야에 구멍난 팀이 여럿이라면 영입 과정에서 경쟁도 붙어 이적시장에서 언급도 자주 되기 때문에 나름 존재감이 상승하며 몸값도 뛰게 된다. 이럴 때는 한 팀에서 오래 활약하는 고만고만한 1군 또는 백업 레벨 선수들보다 높은 금액을 받기도 한다. 또한 성격과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인맥도 넓게 쌓이는데 이것도 나중에 무시 못한다.

야구에서는 좌완 중간계투[3], 왼손투수 킬러 대타요원[4], 내야 유틸리티, 외야 대수비, 백업 포수, 발 빠른 전문 대주자, 전용 타자라거나 어느 팀에 가도 로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만 특급은 아닌 선발투수[5] 같은 유형의 선수들이 있다.

농구에서는 몸빵형 센터, 수비 스페셜리스트, 전문 3점 슈터[6]이 있다.

축구도 이른바 빅클럽에서 방출하는 선수는 진짜로 팀 플랜에 없거나 롤플레이어로도 쓸모가 없는 선수이다. 반면 소유권을 두고 타 팀으로 임대 보내는 선수는 당장은 쓸 일이 없지만 일단 경기 감각만 유지하다 보면 발전 가능성이 있거나 싸게 사서 임대로 엄청 받고 보내는 그러면서도 이적은 안 시키고 혹시나 해서 묶어두는 선수인데, 이런 선수는 소속만 FC 바르셀로나 혹은 맨체스터 시티 FC지 실제로는 여기저기 파견가는 저니맨이다.[7] 이렇게 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순위를 끌어올려줄 정도의 실력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A급이나 S급의 선수라고 보긴 힘든 선수들이다. 예를 들어 1부리그 상위권 팀에서는 쓸 일이 없고, 중위권에서는 로테이션으로 돌릴 가치는 있으나 주전급으로 가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하위권이나 승격팀으로 가면 주전급은 보장되지만 대신 이적료나 주급 지출이 막대한 선수라면 저니맨이 된다. 그래서 승격팀 위주로 돌리고 이적료도 헐값인데 정작 그 승격팀에서 이적료 순위로 따지면 1, 2위를 밥먹듯이 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승격팀 경제력이라는 게 뻔한지라, 1년 잘 썼지만 지갑사정상 연봉을 올려주긴 힘들기에 다른 데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렇게 종목을 불문하고 확고한 붙박이 주전이 되기엔 모자라지만 프로에서 먹힐 만한 주무기 정도는 가지고 있는 선수가 저니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선수가 어느 정도 실력과 희소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본인이 현역으로 오래 뛰는 것을 원할 때 전형적인 저니맨 테크가 완성된다.

왕년의 슈퍼스타가 선수 생활 후반부에 저니맨이 되는 경우도 있다. 슈퍼스타들도 결국 나이는 어쩔수가 없는터라 노쇠화로 인한 부진 때문에 주전에서 밀려난 경우 클럽에선 장기계약을 꺼리는 분위기고[8] 자존심 때문에 바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9] 고액연봉자라 이미 돈도 많이 벌어놨고, 팀에서도 해외 코치연수, 은퇴식 등을 조건으로 명예로운 은퇴를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종목에 애정이 크거나 누적 기록 등에 미련이 있어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 원하는 왕년의 슈퍼스타들은 거액의 장기계약이 끝나고 말년에 단기 계약이나 트레이드로 여러 팀을 옮겨다니며 저니맨이 된다. 알버트 푸홀스, 스즈키 이치로, 매니 라미레즈, 제이슨 지암비, 리키 헨더슨,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등이 그 예. 주로 기록의 스포츠인 야구에 많다.

또는 장단점이 뚜렷하거나 특정 전술에만 특화된 선수들 역시 저니맨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전술을 위해 이 저니맨을 영입했는데 상황이 바뀌어 해당 전술을 철회하거나 그걸로 별 짭짤한 맛을 못보면 또 그 전술이 필요한 팀에게 이 저니맨을 넘기는 식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말이 좋아 특정 전술 특화지,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와도 같은 말이기에 유연하게 변화에 대처할 수 없어 감독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주전에서 직행으로 멀어지기에 비슷한 전술 팀을 탐색하게 되는 것이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치차리토, 루카스 포돌스키, 지동원이 이런 케이스에 속할 만하다.

아니면 실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괴팍한 성격이나 독단적인 마인드 및 저질 멘탈로 하여금 현지 적응 실패나 구단 내 선수들이나 보드진, 감독 등의 코치진 및 매니저와의 잦은 불화를 겪어서 저니맨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해당되는 선수가 절대 실력이 없을 수는 없다. 성격에 문제가 있는데 실력마저 없는 선수는 영입하려 드는 팀도 없으므로(...) 저니맨이 아닌 은퇴선수가 되기 때문. 뉴캐슬 시절 앨런 시어러와 영혼의 투톱으로 유명한 크레이그 벨라미와 더불어 현재까지 이적 횟수 16번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루카 토니와 14번의 이적 횟수를 가지고 있는 니콜라 아넬카, 24세 나이부터 말썽꾼 기질로 팀을 다섯번이나 갈아치운 쿠니모토 타카히로, 그리고 현재는 은퇴한 에릭 칸토나, 크리스티안 비에리, 미도, 이천수 등이 이 방면의 레전드. 지도자로는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있다. 비교적 축구에 비해 이적이 드문 야구계에서는 이런 케이스의 저니맨으로는 풍운아 케빈 미첼이 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폭행이나 성범죄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었고 태도마저 불량한 선수였으나, MVP를 수상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던 탓에 방출이 아닌 트레이드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일본리그까지 10개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선수. 결국 실력이 있으면 어딘가 받아주는 팀이 있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국내에서는 노장진이 그나마 비교대상이 될 만하다.[10]

또한 하부리그나 해외리그가 존재하는 스포츠에서 상위리그에서 딱히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가 저니맨이 되는 케이스가 있다. 대한민국의 프로스포츠팀에 입단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이런 경우로 해당 종목의 메이저급 리그에서 경쟁에 밀려 저니맨 생활을 하던 선수들이 많다.[11] 이들은 대부분 여러 국가 프로 리그를 돌아다니는 국제 저니맨 생활을 하게 된다.[12] 외국인 선수 특성 상 즉시전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진하면 방출당하기가 일쑤다. 한 해 잘 해서 재계약했는데 다음 해 부진하면 바로 방출당한다. 파리목숨인 외국인 선수지만 어쨌든 꾸준히 좋은 활약을 하여 한 팀의 장수 외국인 선수가 될 경우 프랜차이즈 자국인 선수처럼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다.

아예 실력이 프로선수 마지노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어 방출과 재입단을 자주 반복하던 선수도 몇몇 있다. 야구 김경태가 그런 케이스이다.

비단 선수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스포츠 감독도 저니맨이 있다. 이러한 감독의 경우, 부임 직후나 1년차에는 어느 팀에 가든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는데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역량은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때문에 저니맨 감독들은 주로 전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 사임 직후 잔여 시즌까지만 팀 감독으로 맡아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소방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사실 감독계는 팀을 총지휘하는 막중한 책임때문에 구단과 마찰이 잦을 수 밖에 없어 갈등이나 피로감으로 사퇴하거나 경질당하는 일이 태반으로 조르제 제수스처럼 감독 본인이 단기계약을 선호하는 것은 특이 케이스고 오래 머물려고 했지만 나가는 경우가 보통이다.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디에고 시메오네,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등 한 팀을 오래 도맡는 반례가 오히려 드물 정도. 이중에서도 딕 아드보카트,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등 독보적인 존재도 있다.

FC 온라인에서는 팀케미를 받을 선택지가 늘어나는 점 때문에 원클럽맨보다 저니맨이 더 선호된다.

3. 사례

3.1. 야구

이 방면의 레전드 MLB에서 46세까지 현역 선수로 뛰면서 1252경기에 등판해 통산 최다 경기 등판기록을 보유한 원 포인트 릴리프의 전설 제시 오로스코나, 13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활동한 기록을 보유한 MLB 통산 최다 대타홈런기록 보유자 맷 스테어스가 있다.[13] 투수 중에는 김병현 디백스 시절 동료로 알려진 마이크 모건[14]과 론 빌론( Ron Villone)[15] 두 선수가 총 12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출전하면서 이 부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이 기록에 도전장을 낸 선수로는 2013년까지 13개 팀에서 뛴 옥타비오 도텔이 있었고, 13번째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출전하면서 맷 스테어스와 타이기록이 되었으나 이 이후 은퇴. 2019년 에드윈 잭슨이 14번째 MLB 팀을 찾으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에드윈 잭슨이 30팀 체제 속에서 14팀을 뛰었는데, 양대 리그가 첫 확장을 하기 전 16팀 체제 속에서 과반이 넘는 9팀에서 활동한 선수도 있는데 바로 보보 뉴섬이다. 이 선수는 45세로 은퇴하는 그 때 까지 211승 222패를 기록했는데, 그 돌아다닌 팀이라는게 1933년 준우승 이후 워싱턴 세네터스[16],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대공황 이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등등 약팀에서만 구른 비운의 대투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전성기를 맞아 월드 시리즈 진출의 일등공신이 되는데, 1차전에 등판에 승리한 직후 부친상을 당해 5차전에서 결의를 다지고 2승째를 수확하는데, 7차전에서 2실점 완투했으나 상대팀 선발 폴 데린저가 1실점 완투하면서... 다행히 위의 모건처럼 끗발이 다되가던 1947년 시즌 중반에 양키스로 트레이드되며 우승 반지를 끼는데는 성공했다. 마이너리거같은 경우에는 LG와 두산에서 뛴 레스 왈론드처럼 8개국 프로리그에서 승리를 거둔 경우도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는 40인 로스터의 ¼~⅓은 이렇게 단기 계약으로 뛰며 마다 새 팀을 찾아다니는 선수가 주를 이룬다. 바로 "스프링캠프 초청 마이너 계약"인데, 한 팀마다 25인 로스터 기준으로 내야 2~3명 외야 1~2자리 백업 포수 1명, 총 다섯 명[17]을 뽑기 위해 스프링캠프마다 수많은 베테랑이나 저니맨들을 데려와서 경쟁시키는데, 높게는 3: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인다.[18] 대개는 캠프 중간에 위약금도 못받고 방출당하며[19] MLB 로스터에 진입하면 봉급이 크게 상승하는 형태로, 시애틀 팜에서 성장하여 2005년에 처음 콜업을 경험했던 추신수 무릎팍도사에서 "몇 경기 벤치에만 앉아있는데도 마이너 한달 월급이 나온다"고 한 바 있다.

심지어 기존의 커리어가 빵빵해서 자존심이 있거나 MLB 로스터의 해당 포지션 경쟁이 치열한 경우는 마이너 계약을 하고 "일정 날짜[20]까지 메이저 콜업을 못 받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이런 선수들은 대개 선수층이 얇은 다른 팀으로 입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새 팀에서도 9월 확장 로스터에서나 콜업을 받거나 1년 내내 마이너 팀에서만 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포지션별로 본다면, 대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활용가치가 뛰어난 센터라인 수비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빅리그에 올라올 가능성이 부족한 투수나 코너 외야수, 1루수들은 MLB 팀들보다도 오히려 일본프로야구 한국프로야구 등 동양 리그의 진출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금전적으로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민훈기 기자가 취재한 브랜든 나이트 브라이언 코리의 이야기를 보면 아주 파란만장하다. 독립리그까지 갔다가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웨이버 공시로 풀렸으면서도 테오 엡스타인에게 계속 계약을 제시받으면서 마이너와 트리플A를 오르내리며 정신없이 뛰다가 미국 북동부에서 멕시코 국경도시로 트레이드까지 되고 일본야구 진출도 트라이아웃에서 겨우 계약하는 등, 미국도 미국이지만 특히 도미니카 공화국 같은 중남미 출신 선수들은 이렇게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금전적 문제 등으로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고 우울증에도 시달린다고 한다.

KBO에서 가장 많은 팀을 거친 선수는 최익성, 이동수[21], 허도환으로 6개 팀에서 1군 기록을 남겼다. 이 중 가장 대표주자는 최익성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1998년 이후 거의 매 해 타 팀으로 이적하며 스토브리그를 순탄하게 보낸 경우가 없다시피 했다. 이동수 역시 삼성에서 롯데로, 1년만에 다시 쌍방울로, 쌍방울 해체 뒤 선수단을 인수한 SK에서 해태로, 또 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기는 등 엄청나게 옮겨다녔다.

지금이야 트레이드가 어느 정도 보편화가 되면서 저니맨들도 늘어났지만 트레이드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 초창기 대표적인 저니맨으로는 동봉철이 있다. 프로 생활 8년 간 5개 구단에 소속되었다. 통산 .264로 나쁜 성적은 아니었으나 포화상태인 외야 포지션 특성과 부상으로 인해 여러 팀을 이적해야 했다. 그에 앞서 1980년대에 무려 5개 팀을 전전한 이광길은 백업 내야수의 가치를 인정받아 살아남은 케이스다.

2000년대 케이스로 최향남의 경우는 아예 인생이 저니맨. 또한 투수 김영수 김경태는 좌완불펜투수로서의 가치 때문에 방출되고도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고, 그 외에도 손지환 역시 5가지 유니폼을 입으며 최익성의 기록을 위협하는 저니맨이 되었다. 손지환의 경우 아쉬운 타격에 비해 좋은 수비를 가졌기 때문에 내야에 구멍이 난 이팀 저팀 다니며 내야를 땜빵하는 케이스.

최근에는 KBO 리그에서도 트레이드가 예전보다는 활성화되면서 저니맨이 늘고 있다. 오준혁이 한화-KIA-KT를 거쳐 SK로 이적하면서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에 저니맨이 되었다. 허도환도 타격은 약하지만 1군 백업 포수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 있는 덕택에 두산-넥센-한화-SK-KT-LG 총 6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정현도 삼성-KT-SSG-NC를 거치면서 저니맨 테크를 착실히 밟다 은퇴했으며 이상호 역시 롯데-SK-NC-LG-KT를 거치며 빼도박도 못할 저니맨이 되었다. 심지어 이강준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kt-롯데-키움으로 저니맨 테크를 밟는 중이다. 외국인 선수 중에는 KBO 한정으로 8시즌을 뛰며 KIA-넥센-LG를 거쳐 SK를 마지막으로 KBO 커리어를 마무리한 헨리 소사가 대표적인 저니맨이라고 할 수 있다.[22]

이에 반해 송신영은 특이한 경우. 원래는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적통으로써 프랜차이즈로의 길을 걷고 있었으나 트레이드 마감 기한을 4시간 남겨놓고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반 시즌 뛰고 FA 대박을 터트려 한화 이글스로 떠났지만, 2012년 분식회계하며 끔찍하게 부진했다. 결국 신생팀인 NC 다이노스의 20인 외 보강 선수로 지명되어 2011년, 2012년, 2013년 모두 제각기 다른 팀에서 뛰게 되었다. 떠돌아다니는 신영언니를 보는 넥센빠들은 그저 피눈물만 짓고 있었는데… 2013년 4월 18일 뜬금없는 트레이드로 인해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로 컴백하며 프랜차이즈 선수로 복귀하였다. 즉, 프랜차이즈 선수와 저니맨을 모두 겪은 흔치 않은 케이스.[23] 그러다가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40세의 나이에 한화 이글스로 또 팀을 옮긴 뒤 그 다음해에 은퇴하였다. 이러다 보니 KBO 리그에서 이적이 가능한 방법을 거의 다 경험해 본, 흔치 않은 선수다.[24] 공교롭게도 그 송신영과 유니폼을 갈아입은 LG 트윈스 심수창도 예로 들 수 있다. 2004년부터 2011년 7월 말까지 LG 1기 시절을 보내다가 마침 위에 서술된 송신영과 트레이드 되었으며, 이후 히어로즈, 롯데, 한화를 거쳤다가 다시 LG 트윈스로 복귀했다. 저니맨 트레이드[25] 야수 쪽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채태인.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에서 방출된 뒤 삼성 라이온즈에 해외파 특별지명으로 지명된 뒤 삼성의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 타자 중 한 명이었으나,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이후 사인 앤 트레이드, 2차 드래프트를 거치며 롯데와 SK를 거쳤다.

트레이드 웨이버 공시가 국내보다 훨씬 활발한 해외의 경우엔 대형 트레이드들, 자잘한 트레이드와 로스터 무브들이 엄청나게 많이 터지는데, 그래서 메이저리그/마이너리그의 저니맨은 셀 수 없이 많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A급으로 꼽히는 선수라도 FA 시점이 다가오면 각 팀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대박 계약으로 겨우 정착하는 경우도 있다.[26] 극단적인 경우가 리그 최고의 선발 중 하나로 꼽히면서도 FA 2시즌 전부터 FA 계약때까지 4번이나 팀을 바꿔야 했던 클리프 리. 물론 그 과정에서 팀을 옮기는 선수들 중에는 빅마켓 팀의 유망주들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저니맨 생활이기에 선수 본인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역으로 로스터 끝자락 정도의 뎁스 요원 영입을 위해 메이저리거와 마이너리거의 경계에 있는 선수들도 이적이 잦다. 단적인 예로 2004년 한 해에만 5개의 메이저리그 팀에 소속되었던 커리어 초창기의 호세 바티스타, 2022~23년 오프시즌에만 4개의 메이저리그 구단을 오가는 중인 르윈 디아즈, 동일 기간동안 3번의 DFA를 경험한 박효준의 사례가 있다.

일본프로야구의 저니맨으로는 투수로는 쿠도 키미야스[27] 에나츠 유타카[28] 등이 꼽히는데, 이들은 영입한 팀마다 리그 우승 등에 꼬박꼬박 공헌해 '우승 청부사'라는 명예로운 별명으로 불리는 케이스. 타자로는 일본에서만 5개 팀(+ LA 다저스)에서 뛴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꼽힌다.[29]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에도 FA 제도가 생기고 포스팅 시스템 등으로 일본인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길이 생기면서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저니맨들이 여럿 생겼는데, 일본인 메이저리거의 선구자 노모 히데오도 말년은 저니맨이었고 메이저리그에서 7개 팀을 거쳐간 아오키 노리치카, 메이저리그 5개 구단에서 뛴 사이토 타카시, 일본 4개구단-메이저 3개 구단에서 뛴 요시이 마사토, 일본 4개-메이저 2개 구단에서 뛴 오카지마 히데키 등 많은 저니맨들이 있어왔다. KBO 리그를 거쳐간 이리키 사토시, 카도쿠라 켄, 다카쓰 신고 등의 일본인 선수들도 충분히 저니맨이라 할 수 있는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이다.

3.2. 축구

축구계에서 정말 오래 뛰기 위해 팀을 여러 번 옮긴 가장 대표적인 저니맨급 선수는 니콜라스 아넬카이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EPL 팀들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어서 저니맨의 대명사로 선꼽히는 선수이다.

다른 선수로는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등을 거쳤으며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공격수로 뛴 왼발의 달인 히바우두가 있다. 수상경력 중 굳이 하나만 꼽자면 1999년도 발롱도르가 있다. 1972년 생으로, 43세까지 현역이였다. 이때 마지막으로 뛰었던 2부리그에서 코치겸 선수도 아닌 구단주 겸(...) 선수로서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골을 넣으며 무릎 문제로 진짜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팀의 리그 성적을 올리는데 이바지하였다.

무려 19개 국가를 옮겨다닌 일본 축구선수도 있다. 이름은 '이토 단'이며 그는 다양한 리그 경험을 위해 한 리그에 오래 정을 두지않고 계속 옮겨다니면서 뛰고 있고, 2017년에는 동티모르리그로 옮겼다. 현재 소속팀은 28번째 소속팀.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아직 은퇴 생각 없고 다음 목표가 중앙아시아 카더라. 곧 30회 이적을 기록할 꺼 같다. 그러나 2018년 8월 삿포로에서 축구교실 코치로 활동 중이다가 2019년 사커 리그의 로버스 FC에 입단하여 다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같은 해 북마리아나 제도의 old B bank에 임대되어 뛰다가 은퇴함으로써 총 30개의 클럽에서 현역 생활을 한 축구 선수로 기록되었다. 2020년 4월부터 홋카이도의 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기네스북이 공인한 역대 최다 이적 축구 선수는 우루과이 국가대표 출신 포워드 세바스티안 아브레우이다. 기네스북 등재 당시 거쳐간 소속팀이 26개였고, 은퇴할 때 까지 32개의 클럽을 거쳤다. 주로 우루과이, 멕시코, 브라질 무대는 물론이고 스페인 1부리그에서도 뛰었으며 우루과이 국가대표로 3번의 코파 아메리카와 2번의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실력도 뛰어난 선수였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대표적인 저니맨 중 한명으로, 여러 빅클럽( 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들을 옮겨다니며 맹활약을 보여줬다. 비록 하나의 클럽에서 뛴 기간은 짧지만 뛴 클럽마다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30] 이후 LA 갤럭시에서 2019년까지 맹활약하다가 2019-20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AC 밀란으로 복귀했다. 결국 1981년생 만 41세의 나이로 은퇴했지만 그때까지도 AC밀란이라는 빅클럽 소속의 주전이었던 것을 보면[31] 참 대단한 선수라고도 볼 수 있다. 즐라탄이 어느 팀의 레전드인지 헷갈릴 수도 있는데, 보통 전성기를 보내고 2020년에 다시 복귀하여 리그 우승까지 거머쥔 것은 물론 은퇴 이후에도 팀에 남아 행정가로 일하고 있는 AC 밀란을 꼽으며, AC밀란 다음으로 오랫동안 뛰었으며 현역 시절 가장 큰 임팩트를 보여주었던 파리 생제르망의 레전드로 꼽을 수도 있다.

아시아 선수 중에선 혼다 케이스케가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총 5개의 대륙에서 뛰어본 희대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선수로는 석현준, 차두리, 이근호가 대표적이다. 석현준의 경우 실력이 아예 없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선배 이천수처럼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나 잔부상으로 인한 기복이 꽤 심해서 저니맨이 된 케이스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총 11개의 팀[32]을 거쳐갔다. 이렇게 비토리아 FC 시절을 제외하고는 한 팀에 자리를 못 잡고 옮겨다니는 동안 병역 기피 사건으로 급히 귀국했고 유럽 리그는 물론이고 선수 생활 자체도 불투명한 처지에 놓여있다.[33]

어두운 일면으로, 브라질이나 동유럽에서는 상기한 이유 뿐만 아니라 소속사나 에이전트가 계약금을 뽑아내기 위해 선수를 저니맨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선수들은 제대로 정착하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팀을 옮겨다니며 성장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제대로 된 소속팀에 정착해서 늦게야 빛을 보기도 한다. K리그나 J리그에서 성공한 브라질, 동유럽 선수 중 과거에 팀을 자주 옮겨다닌 기록이 있다면 상당수가 이런 케이스.

3.3. 농구

NBA에서는 2020년 기준으로 역대 최다 이적기록(12개 구단)을 자랑한 처키 브라운, 조 스미스, 토니 마센버그, 크리스 개틀링, 그리고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한때 3J[34]로 유명했던 짐 잭슨이 대표적이다.

특히 처키 브라운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출신으로 1989년 드래프트 전체 43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어 02년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무려 12개 구단에서 활약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와 CBA 구단에서 뛴 걸 합산하면 토니 마센버그(16개)에 이은 2위(15개)이다.

1994~1996년 휴스턴 로키츠에서 뛴 기간을 빼면 브라운은 정규시즌 초반부터 함께 하는 경우가 없었으나, 어느 구단에서든 급히 베테랑을 수혈할 필요가 있으면 늘 브라운을 불러왔다. 비록 통산 5.9 득점에 3.1 리바운드 정도의 기록이지만 최선을 다해 뛰었기 때문이다.

크리스 개틀링 역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플레이로 백업에서 주전으로 올라가 1996/97 시즌 댈러스 매버릭스 시절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으나 이후 자신의 기록에만 열중하다 결국 뉴저지, 밀워키로 이적했다. 그곳에서도 식스맨 이상의 역할은 맡지 못한 채 덴버, 클리블랜드, 마이애미 등을 떠돌다 2002년 러시아 CSKA 모스크바를 거쳐 2003년 이탈리아의 빅토리아 리베르타스 피사로를 끝으로 은퇴했다.

짐 잭슨은 한때 올스타에 버금가는 실력자였고 비록 부상으로 풀시즌을 소화치 못했지만 커리어 하이가 25점-당시 리그 5위-에 달한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인해 댈러스가 3J를 해체하고[35] 나서부터는 이상하게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팀동료 키드는 레전드가 되어가고 매쉬번도 마이애미와 샬럿[36]에서 스타가 되는 동안 잭슨은 역대 최다인 12개의 팀을 옮겨다녔다. 넓은 미국 땅에서는 동부와 서부, 중부, 남부 등이 서로 문화가 다른 점이 많은데, 그는 6개 디비젼을 모두 경험했다. 실력도 괜찮고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닌데[37] 심할 정도로 일이 안 풀린 편이다.

한편 레전드나 MVP급 중에서는 샤킬 오닐이 꼽힌다. 오닐은 총 6개의 팀에서 뛰었는데 이중 피닉스, 캐벌리어스, 셀틱스는 말년에 옮긴 거지만, 슈퍼스타급 기량을 가지고 있을 때는 팀을 자의로 두 번이나 옮겼다. 올랜도에서 데뷔 후 4년만에 레이커스로 옮겨서 충격을 줬는데, 당시 오닐은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나 팀 내 또 다른 슈퍼스타 앤퍼니 하더웨이와 에이스 역할을 놓고 갈등에 휩싸인 것이다. 재밌게도 오닐은 8년 후 코비와 비슷한 상황에 휩싸였는데, 팀의 경영진이 젊은 코비를 선택했고 히트로 이적한다. 당시 오닐은 MVP급[38]이었기에 리그를 한바탕 뒤집어놓은 바가 있다.

윌트 체임벌린 역시 필라델피아 워리어즈로 데뷔했다가 연고가 샌프란시스코로 바뀌었고 이후 고향으로 가고픈 마음에 세븐티식서스,[39] LA 레이커스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미 역대급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는 2021년 기준으로 팀을 세번 옮겼는데 비슷한 '급' 선수들의 해당 나이대에 비하면 자주 옮긴 편이다.

수비형 센터로 올스타, 미 국대 경력까지 가진 타이슨 챈들러는 총 8개 팀을 거쳤는데 뉴욕, LA, 시카고, 휴스턴, 피닉스 전미 1~5위 대도시 연고를 모두 경험했다. 상기된 다른 이들은 물론 MLB, NFL, NHL 다른 종목에서도 찾기 힘든 특이 사례.

현역 가운데에는 13개 팀을 거친 단신 포인트 가드 이쉬 스미스가 대표적이다. 덴버 너기츠에서 함께 뛰었던 제프 그린 역시 총 12개 팀에서 뛰었는데 이 두 명은 22-23시즌에 커리어 첫 우승을 거두었다.

국내 프로농구에도 저니맨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전형수 황진원으로, 특히 황진원은 처음에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받아 입단했으나 첫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창원 LG 세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나마 그 시즌 도중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적, 그 다음 또 서울 SK 나이츠로, 코리아텐더에서 바뀐 부산 KTF 매직윙스로, 안양 KT&G 카이츠로, 원주 동부 프로미로, 서울 삼성 썬더스로 여러 군데 옮겨다녔다. 황진원 역시 수비력이 괜찮고 한 방이 있기 때문에 자주 옮겨다녔다. 그리고 김영만도 기아 소속으로 뛰다가, 기아의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았으나, 최희암 감독의 병크 때문에 저니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대협과 정종선도 팀을 자주 옮겨다녔던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2020년 들어서 여섯팀 이상 이적한 선수가 생겼는데 바로 오용준이다. KBL에서 저니맨의 끝판왕은 외국인 선수 리온 윌리엄스가 있다. 리온은 20-21시즌 종료를 기점으로 삼성 썬더스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제외한 총 8개팀에서 뛰었다.

WKBL에서는 김보미가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김보미는 우리은행에 지명되어 뛰다가 금호생명으로 이적했고, FA 자격을 얻어 하나외환(현 하나원큐)으로 이적했으나 곧 정선화의 보상선수로 KB 스타즈에 지명, 3번째 팀 이적을 했다. KB 스타즈에서 활약하다가 KB 스타즈가 염윤아를 영입하면서 또다시 보상선수로 하나원큐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하나원큐가 고아라를 영입하며 삼성생명에 보상선수로 내어준 이하은을 되찾아오기 위해 김보미를 보내면서 김보미는 삼성생명 선수가 되었다. WKBL 6구단 중 무려 5팀에 몸담은 전적이 있는 유일한 선수로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신한에만 이적하면 6구단 유니폼 다 수집 가능하겠다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보미는 삼성생명에서 우승을 이루어내고 은퇴하여 6구단 유니폼 수집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3.4. 배구

한국프로배구에서도 역시나 존재한다. 다만, 리그 규모가 워낙 작은 터라 사례도 많지는 않고 또한 덜 알려지는 편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유독 주전 세터들의 이적이 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황동일[40], 강민웅, 노재욱, 한수지, 황승빈에 심지어 10주년 전설 중 한명인 김사니가 대표 사례.

세터 포지션이 아닌 선수들 중에 대표적인 저니맨은 바로 한송이. 여배판 김영만이라 봐도 될 정도로 첫 소속 팀인 도로공사에서 뛸 당시 첫 FA를 맞았는데, 그 당시 프런트의 황당한 병크로 인해 저니맨이 된 사례. 남자부에서는 주상용이 대표적이다. 둘 모두 하드웨어나 공격은 그럭저럭인데 수비가 잘 안 되는 윙스파이커라 컵대회에서는 기대치가 높아지는데 외국인 선수가 합류하는 리그에서는 그 자리의 백업 혹은 원포인트로 전락해 기대 대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떠돌아다닌 경우다. 센터의 경우 전진용, 리베로의 경우에는 곽동혁이 있는데 이 경우는 하드웨어적 측면으로 팀을 많이 옮기는 편.[41][42]

외국인 선수로는 펠리페 알톤 반데로가 있다.

신인급 선수로는 3년차에 3개의 팀으로 이적한 남자부 아웃사이드 히터 이승준과 여자부 아웃사이드 히터 김세인이 새로운 저니맨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3.5. e스포츠

e스포츠의 경우에는 오버워치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 교체가 힘들다는 특성 때문에 다른 종목들과 달리 특정 부분의 강점 때문에 저니맨이 되는 경우는 드물고, 몇몇 대기업 팀들을 제외하면 불안한 운영 구조, 혹은 2부리그나 주요 강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로의 잦은 이적 때문에 저니맨이 다른 스포츠보다 훨씬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e스포츠 특성 상 선수 생명이 짧고 게임 메타의 변동에 따라 선수의 퍼포먼스가 요동치기 때문에 정상급 기량을 지닌 선수임에도 팀을 바꾸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는 오히려 저니맨이 아닌 게이머를 찾기가 더 힘들다. LCK에서는 3년 이상을 같은 팀에 있던 선수를 찾기가 힘들 지경이며 이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어느 팀으로 이적할지 예상하는 것이 하나의 컨텐츠가 되어있다.

e스포츠 저니맨 분야의 레전드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활동하는 키키스[43], 수노, 피넛[44], , 플라이, 후니, 쵸비, 도란, 파워오브이블 선수 정도를 들 수 있으며, 코칭 스태프 중에는 김정수 감독을 들 수 있겠다. 이들 중에도 차이가 있다면 수노는 애매한 기량 때문에 점점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로 이적하며 저니맨이 되어버린 경우고, 피넛은 기량 면에서 딱히 문제될 수준이 아니지만 팀의 자본이 불안정한 탓에 자주 이적을 한 경우다.[45] 칸의 경우 초반에는 하위권 팀을 전전하는 전형적인 저니맨이었고 이후엔 포텐을 폭발시켰지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 케이스. 김정수 감독의 경우 본인 스스로 밝힌 도전정신 때문에 팀성적과 상관없이 1년만하고 팀을 나오고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게 첫 롤드컵 우승을 만들어준 IG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준비했는데도 거절하고 2부에서 승격한 담원에 먼저 연락을 한것. 그러나 2020년에는 T1과 다년계약을 맺으면서 처음으로 한팀에 1년 이상 머무는듯 했지만 롤드컵 진출 실패라는 성적에 자진사퇴. 이후 BLG를 거쳐 2022년 DRX에 5년만에 리턴했지만 개막 5경기만에 경질되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이라는 애매한 구도로 돌아가는 카트라이더 리그에도 본격적으로 저니맨이라 할 만한 선수가 생겼다. 바로 무려 6개의 프로팀에서 뛴 전대웅[46] 정승민.[47] 둘 모두 2021년 수퍼컵 기준 5번째의 프로팀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예선을 통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팀이 매각되면서 순식간에 6번째 경력이 생겼다.[48] 전대웅의 경우에는 자진퇴단과 방출을 반복하는 선수 본인의 논란과 전성기에 비해 꺾인 기량, 정승민의 경우에는 선수 생활 내내 지적받아도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약점 때문에 안정된 상위권 팀에게는 크게 메리트가 없지만 하위권 팀에게는 일단 본인들이 멱살잡고 예선을 확실하게 뚫어준다는 확고한 장점으로 인해서 여러 팀의 러브콜을 받은 케이스다.

3.6. 복싱

복싱에서의 저니맨은 다른 스포츠의 저니맨과 전혀 다른 개념으로, 여기서는 유망주의 전적 쌓기를 위해 패작을 해 주는 선수를 의미한다. 이들은 유망주를 위해 일부러 져주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전적을 보면 패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기 위해 링에 올라가는 저니맨 복서들이지만, 2~3주 간격으로 지속적인 패작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덜 맞고 몸을 보전하면서 유망주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상 복싱의 변질된 랭킹과 타이틀 체계가 만들어낸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4. 관련 인물

선수 경력과 감독 경력 중에서 하나라도 포함된다면 기재가 가능하다.

5. 다른 의미

의미가 확장되어 스포츠업계 외 다른 업계에서도 종종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한국 아이돌에서도 연습생이 데뷔 전 소속사를 여러 번 옮겨 다니면 이게 되기도 하는데, 이전 소속사에서 데뷔할 확률이 적어질 경우 기회 확보를 위해 다른 기획사로 인력이 이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DSP에서 데뷔하기 전에 드림티, 예당, 코어, 키이스트를 거친 허영지. 그러나 보통 연습생 경력은 아무리 연습생을 오래 했다고 해도 정식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새 그룹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아니라 기존 그룹에 합류하는 경우 다른 신인 그룹들에 비하여 방송국에서 받는 대우(대기실 및 음방 출연 순서 배정 등) 측면에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속사는 그대로인데 4개의 팀에 소속을 두었던 가수도 있었다.

또 연습생은 아니고 현역 가수지만, DJ DOC도 일종의 연예계의 저니맨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들은 소속사와의 잦은 불화로 인하여 그동안 자주 이 소속사 저 소속사 자주 전전하였다고 한다.

개그계에서는 박준형[49] 최국[50]이 저니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계에서는 철새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이인제 김한길이 당적 변경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향이 다른 정당으로 이동한 것에 가중을 두면 이인제가 더 저니맨에 가깝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일자리를 자주 잘리거나 여기저기 옮겨다녀 이직이나 해고가 잦은 경우에도 저니맨이라고도 한다. 이런 경우엔 대개 어중간한 스펙으로 딱히 어디에 가더라도 우대를 받지는 못하나 그렇다고 해서 오너 입장에서 아예 써먹을 만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닌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일머리는 그리 좋진 못해도 외국어는 그럭저럭 할 줄 안다든지, 아니면 영상 편집을 좀 할 줄 알거나 컴퓨터 활용 능력도 전문가급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인 경우. 물론 그냥 어중간하게 잘하는 게 아니라 진짜 뛰어난 수준이라면 차라리 프리랜서를 뛰지 저니맨 테크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문직이라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국가공인 자격증을 갖고 일하는 간호사 치위생사, 물리치료사의 경우 전 직장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어딜 가도 일단 구직이 어렵진 않지만 일반적인 직장인의 경우 이직이나 해고가 잦다면 당연히 취업 평가에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보니 30대 중후반 무렵부터는 이직에 좀 더 신중하라는 조언이 많다.

로펌 변호사나 페이닥터로 일하는 의사 역시 저니맨 테크를 타기도 한다. 물론, 이 쪽은 어딜 가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금전적 대우는 받을 수 있어서 일반적인 직장인들보다는 낫긴 하다.


[1] 보통 특급 유망주라면 기회를 꾸준히 주는 편이지만 특급 유망주 출신이라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수년째 팬들과 구단의 속만 태우다가 실패하고 망한 케이스 또한 차고 넘친다. 하위 라운드 지명자면 파리목숨이나 마찬가진데 대부분 구단에서 크게 기대 안하고 로또 긁듯이 가능성만 보고 지명하는 경우가 많아 잠깐의 기회 정도만 주는데 여기서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애초에 크게 기대 안하고 뽑았던 선수였던 만큼 미련없이 빠르게 방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2] 애초에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면 바로 2군으로 내쫒기는게 일상인 1군에서 저니맨이라도 한다는 것은 역으로 저니맨이라고 불리는 선수의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는 중라는 말이다. [3] 요즘은 좌완 선발보다도 좌완 A급 불펜투수가 워낙 귀해지는 바람에 몇몇 괜찮고 나이도 적당한 선수들은 2~3년 장기계약을 제시하여 독점하기도 한다. 물론 제레미 아펠트나 맷 손튼, 궈홍치(…) 같은 강력한 좌완 릴리버들의 경우는 웬만한 클로저급(그러나 막상 클로저로 기용하면 대부분의 좌완은 실패하기 때문에 그냥 셋업맨/원포인트로 기용한다.)의 대우를 받는다. 저니맨계의 슈퍼 을인 셈. 국가대표급 불펜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삼성 라이온즈도 그 권혁 하나 없어졌다고 몹시 고생했는데, 그간 잘해오던 맷 손튼과 궈홍치의 2011년처럼 털리고 다니거나 DL에나 올라있으면 그 팀의 성적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특히 경기 후반에 투수 자리에 투입할 대타가 필요한 내셔널리그에서는 상대 투수가 우투수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외야나 1루 대수비를 겸할 수 있다면 좌타자도 우타 빅뱃 못지 않게 인기가 많다. [5] 대표적 예로는 류현진과 비교되는 데이비드 웰스라던지, 유리몸으로 유명한 리치 하든, 댄 해런 같은 선수들. 혹은 선발이 부족한 팀에서 전성기가 지나 기량이 다소 저하된 왕년의 슈퍼스타 선발투수를 저렴한 몸값 또는 짧은 계약기간으로 영입하는 사례도 여기에 해당된다. [6] 2022년 기준 30대 초반임에도 벌써 NBA에서만 8개 팀을 경험한 세스 커리의 커리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스는 키식스맨급으로 입지를 다진 2016-17 시즌 이후에도 거의 매년 팀을 옮기고 있는데, 수비력과 돌파력 부족이란 단점에도 극강의 슈팅력으로 가치가 확실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선수 사가는 팀 입장에서는 "누구 줄 수 있는데? 세스 커리가 있네? 콜!" 이렇게 되고 파는 입장에서도 "주기 아까운데...뭐 슈터는 얼마든 구할 수 있으니까 씁, 어쩔 수 없지."가 되는것. 현 세대에 (커리 형제급은 아니라도) 3점슈터는 얼마든 있기 때문이다. 즉 1)확실한 상품가치 2)대체가능 자원 존재,란 두 가지가 어우러진 경우로, 1이 낮다면 팔리질 않고 2가 낮다면 팔지를 않는다. 비슷하지만 좀 다른 케이스가 스티브 커로, 세스 커리와 장단점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선수여서 팀을 꽤 옮겼지만 그가 뛰던 8,90년대엔 3점슈터의 가치가 현재만큼 높지 않아서 시장가치가 훨씬 적었다. [7] 이런 식의 장기 임대를 많이 쓰기로 악명 높은 팀이 첼시 FC. [8] 노쇠화로 폼이 떨어진 선수에겐 고액 연봉을 오랜 기간 줄수는 없는 노릇이라 보통 노장들 앞엔 짧은 기간과 떨어지는 연봉 등 열악해지는 계약서를 제시받는게 당연한 섭리다. 이렇게 서른줄 넘긴 선수에게 1년씩 짤짤이 재계약을 자주 제시하기로 악명높은 팀이 레알 마드리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르히오 라모스 등 팀 레전드들에게도 가차없는 관례로서 실제 둘 모두 이런 계약 조건을 제시받자 바로 팀을 떠나버린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둘 모두 타팀으로 옮기고선 거짓말같이 폼이 꺾여버리자 되려 레알 마드리드의 현명한 구단 운영이(...) 칭송받는 형국이다. [9] 특이한 케이스는 샤킬 오닐로, 프랜차이저에 대한 큰 미련이 없어 그냥 자주 옮기는 경우. 첫 소속팀이었던 올랜도에서 4년 뛴 후 전성기에 돌입하는 나이에 본인의 연애 커리어를 위해 자유계약으로 LA로 옮겼고, 이후 코비 브라이언트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자 미련없이 트레이드 요청, 마이애미로 옮겼다. 이후 드웨인 웨이드 위주로 리빌딩하려는 히트는 고액연봉자 노장인 오닐을 피닉스로 보냈고, 이후 다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말년에 코비의 "내가 샤크보다 반지 많음" 멘트에 우승하겠다고 보스턴과 계약했으나 부상으로 별 도움이 못 된다. 이처럼 오닐은 특이하게 리그를 호령하던 시절부터 환경이 맘에 안 들면 그냥 쿨하게 팀을 뜨곤 했고, 프랜차이저에 큰 의미를 안 두는 선수였다. [10] 한화 이글스 - 삼성 라이온즈 - 롯데 자이언츠. [11] WKBL, V리그는 예외다. 배구와 여자농구의 시장성에 비하면 대한민국 리그가 연봉과 복지수준이 꽤 괜찮은 편이기 때문이다. WKBL의 타미카 캐칭, V리그의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같은 진짜 해당 종목의 월드클래스급 선수가 활약한 것이 그 예다. [12] 대부분은 돈이 필요해서 억지로 선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저니맨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아들 병원비 때문에 여러 리그를 떠돌면서 2017년까지 뛴 카림 가르시아가 있다. [13] 심지어는 일본에서 뛴 적도 있다. 1993년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1년을 뛰며 최초의 캐나다 출신 일본프로야구 타자가 되었다. [14] 78년 데뷔해 2002년까지 선수 생활을 해서 70,80,90,2000년대의 4-decade를 모두 뛰어본 선수로도 유명하다. 김병현이 더그아웃 인터뷰에서 월드시리즈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순간 '모건 아저씨 반지는 어떡하나' 하며 주저앉았다고 밝히면서 다시금 회자되었다. [15] 이 투수는 좌완 셋업맨으로, 커리어 내내 단 한 팀에서도 3년 이상 뛴 적이 없는 진짜 저니맨이다. 길어야 2시즌 뛴 게 전부다. [16] 의외로 세네터스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월터 존슨이 등장한 이후부터 존슨이 팀을 떠난 1930년대 초반까지는 양키스와 에이스 다음가는 강팀이었다. [17] 물론 게임데이 25인을 넘어 MLB 한 시즌 40인 로스터의 경우엔 대상자가 늘어나지만, 40인 로스터에 들고 트리플A 등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은 베테랑 뿐만 아니라 서비스타임 문제로 콜업이 늦어지는 유망주들도 다수를 차지한다. [18] 물론 이런 저니맨들 외에도 마이너에서 올라온 유망주들까지 합세한다. [19] 당해 마이너 계약 선수가 정규시즌 전에 방출되는 경우엔 "당해 연봉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20] 대개는 5월 중순이다. [21] 다만 이 선수는 쌍방울-SK를 별도로 보아서 6팀이다. [22] KBO 소재 여러 팀서 뛴 외국인 선수가 경우가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대개는 2팀 한정이다. 그리고 소사는 LG를 빼곤 입단 당시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했다. [23] 사실 저니맨으로 가장 유명한 최익성 삼성 라이온즈 프랜차이즈로 여겨지기도 한다. [24] 넥센에서 트레이드로 이적, LG에서 FA로 이적, 한화에서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이적, NC에서 트레이드로 이적, 넥센에서 2차 드래프트로 이적. 방출 후 이적이나 FA 보상선수를 제외한 모든 이적 방법을 다 겪었다. 특히 특별지명은 KBO 리그에서 신생팀이 새로 생겨야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 기록이다. [25] 실제로 송신영과 심수창은 트레이드 전까지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동시대에, 그리고 순식간에 저니맨이 된다. 또 두 선수는 원 소속팀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수창은 해체 후 재창단만을, 송신영은 방출 후 이적만을 경험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26] 보통 리빌딩을 계획하는 팀이 FA를 앞둔 팀의 주축 선수를 포스트 시즌을 노리는 팀에게 유망주 패키지와 트레이드한다. [27] 단, 쿠도는 세이부 라이온즈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두 차례 FA로(세이부→다이에→요미우리) 이적한 뒤 전성기가 확연히 지난 40대 이후부터 FA 보상선수로 요코하마에 이적한다던지 하는 등 본격적인 저니맨 생활을 했다. [28] 이쪽은 이미 전성기 때부터 수뇌진과의 불화 등의 문제로 이 팀 저 팀 자주 옮겨다녔다. [29] 이쪽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 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긴테쓰 구단이 소멸하면서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메이저 진출을 시도했다 실패한 뒤 후신 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었지만 부진을 보인 끝에 1년만에 방출되고 저니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30] 다만 그렇게 굵직굵직한 클럽만 돌아다녔는데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없다. 다행히 맨유에서 뛸 때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하며 유럽대항전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31] 공격수의 경우 레전드 대우를 받는 선수가 아닌 이상 대개 만 35세쯤에 빅클럽을 떠나 하위권 팀이나 약체 리그에서 말년을 보내고, 막판에 크게 벌고 은퇴할 계획이라면 MLS, J리그, 중국 슈퍼 리그, 카타르 스타즈 리그,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같은 위상은 낮지만 돈은 많이 주는 리그에서 크게 번 다음 만 37~38세쯤에 은퇴한다. [32]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중동, 포르투갈, 헝가리,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클럽들을 거쳐왔다. [33] 귀국 이후 전주시민축구단에서 석현준의 영입을 발표했으나 사법 절차가 마무리 안 된 시점이었기에 결국 구단에서 선수 등록했다가 취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현준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34] 나머지 2J는 제이슨 키드, 자말 매쉬번. [35] 가수 토니 브랙스톤을 둘러싸고 키드와 잭슨간의 마찰이 있었다. [36] 뉴올리언즈로 이전하기 전이다. [37] 상기된 여자 문제 제외하곤 큰 스캔들이나 팀 내 불화에 휘말린 적이 없다. 오히려 키드가 가정폭력으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38] 실제로 이적 직후 MVP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39] 시라큐스 내셔널스에서 이름을 바꿨다. [40] 현존하는 남자배구팀 7팀에 모두 소속된 선수 [41] 센터는 거의 리시브 면제인 포지션인데 장신선수가 워낙 적은터라 배구를 너무 늦게 입문해 기본기가 부실해도 키가 최소 190이 넘거나 육박하면 어느 팀도 탐을 낼 정도다. 지태환, 박준혁, 문명화가 그 예. [42] 리베로의 경우 2010년대 들어 부용찬, 오재성처럼 학창시절부터 리베로 포지션만 뛴 선수들이 나오긴 해도, 이강주, 이승현처럼 신장이 동포지션의 선수 중 작은 편에 서전트 점프가 안 되는 윙스파이커 혹은 세터면 포변을 시키는 경우가 잦고, 어느 경우든 리시브와 디그, 라인 조율에 유사시 2단 연결까지 모두 수준급이지 않은 데다 유일하게 교체 횟수 제한이 없어서 약점 보강이 어렵기에 팀의 상황에 따라 거취가 불안정해지면서 이적도 잦다. 특히 거론된 곽동혁은 첫 이적 당시 감독과의 악연으로 인해 무려 5년 이상 리그에 복귀하지 못했던 적이 있음에도 복귀 후 이적이 많았다. [43] 2021년 기준 무려 31개의 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44] 데뷔 이후부터 줄곧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지만 매년마다 팀을 옮겨다닌 저니맨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이후 22 시즌에 19 시즌에서 활약했던 젠지에 다시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친정팀으로 복귀를 하고 LCK 쓰리핏을 이뤄내면서 저니맨 이미지는 희석되었다...가 다시 23시즌 종료 후 스토브리그에서 또 다른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한화로 이적했다. [45] 예외는 17년의 SKT에서 킹존으로의 이적이나 19년 젠지에서 LGD로의 이적 정도. [46] 긱스타 - 아프리카 프릭스 - GC부산 이스탯츠 - 게헤나 스위퍼스 - TBP 게이밍 - Team GP [47] 긱스타 - 아프리카 프릭스 - SGA 이스포츠 - 게헤나 스위퍼스 - TBP 게이밍 - Team GP. 이쪽은 아프리카와 SGA 중간에 아마추어팀 경력이 있다. [48] 전대웅의 경우 아이티뱅크, 트리플퍼펙트를 프로팀 경력으로 포함하면 8번째다. [49] 개그 콘서트, 개그투나잇,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하였다. 방송사는 모두 다르다. [50] 개그 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 개그공화국에 출연하였다. 5개의 방송사에서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