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23:10:15

루카 토니

루카 토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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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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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 · 2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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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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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KingLuca.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루카 토니
Luca Toni
출생 1977년 5월 26일 ([age(1977-05-26)]세)
에밀리아로마냐 주 프라스카티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4cm / 90kg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선수 프리냐네시 (1990~1991 / 유스)
모데나 칼초 (1991~1994 / 유스)
모데나 칼초 (1994~1996)
엠폴리 FC (1996~1997)
US 피오렌주올라 (1997~1998)
AS 로디지아니 (1998~1999)
ACD 트레비소 (1999~2000)
비첸차 칼초 (2000~2001)
브레시아 칼초 (2001~2003)
US 팔레르모 (2003~2005)
ACF 피오렌티나 (2005~2007)
FC 바이에른 뮌헨 (2007~2010)

AS 로마 (2010 / 임대)
제노아 CFC (2010~2011)
유벤투스 FC (2011~2012)
알 나스르 (2012)
ACF 피오렌티나 (2012~2013)
엘라스 베로나 (2013~2016)
국가대표 47경기 16골 ( 이탈리아 / 2004~2009)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수훈4.4. 클럽 통계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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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세리에 A, 분데스리가를 거치며 득점왕을 세차례[1]나 차지한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로 이탈리아 2006 월드컵 우승 멤버 중 한명이다. 또한 현역 시절 15개의 클럽에서 뛴 저니맨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94년 모데나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비첸자와 브레시아에서의 활약으로 "제2의 비에리"로 주목받았다. 기복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춤하던 중 2003-04 시즌 당시 세리에 B의 팔레르모로 이적하면서 잠재성이 폭발하여 45경기에서 30골을 터뜨리며 세리에 A 승격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이듬해에도 20골을 넣는 등 클럽의 잔류에 기여하였다.

2005년에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뒤 에이스 스트라이커로 클럽 약진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5-06 시즌 31골로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세리에 A에서 30골 이상 기록한 득점왕이 나온 것은 47년 만의 일이었다. 2005-06 시즌의 활약으로 유럽 각국의 클럽에서 오퍼가 있었지만, 토니 자신은 승부조작 문제도 있고 또는 클럽의 세리에 A 잔류를 목표로 하고 당분간 이적할 생각은 없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파트너였던 아드리안 무투와의 호흡도 매우 뛰어났기 때문.

2007-08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에 1,158만 유로의 이적료로 옮기게 된다. 이적 첫 번째 시즌부터 분데스리가 득점왕이 되는 24득점을 올리는 활약을 보이며 바이에른의 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분노의 현질로 같이 영입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는 빅&스몰인 듯 더블타워인 듯한[2] 묘하면서도 잘 맞아 떨어진 조합을 보여주지만 토니의 부상과 클로제의 부상으로 제대로 가동된 것은 그시즌 뿐이었다. 그래도 토니는 첫 번째 시즌은 46경기 39골 12도움, 2번째 시즌도 부상으로 아웃되기 전까지 총 35경기 18골로 월드클래스급의 성적을 보여주었다. 특히 2007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된 리가 포칼의 마지막 골을 넣으며 역사상 마지막 리가 포칼을 팀에 안겨주기도 하였다.

2008-09 시즌은 바이에른의 암흑기 중 하나,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에 야심차게 영입해 온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 못하는 역사스만 시대에서도 토니는 15골을 넣으면서 제 몫을 다했다.

2009-10 시즌 도중 감독과의 관계가 악화되며 출전 기회가 감소하고 있었기 때문에, AS 로마로 임대 이적하였다. 15경기 5골로 세리에 A에서는 명불허전임을 보여주었고, 2009-10 시즌 종료 후 바이에른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제노아 CFC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제노아의 극심한 부진 속에 2010-11 시즌 도중 제노아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유벤투스로 이적하였다. 결국 그 시즌을 30경기 5골의 저조한 성적으로 마쳤고 안토니오 콘테 감독 취임 후 후보로 밀려 떠나기로 한 곳은 중동의 알 나스르였다. 거기서도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다가, 2012년 8월 이적기한 직전에 친정팀 피오렌티나로 복귀하였다. 9월 16일 카타니아 전에서 복귀 후 첫 골을 신고한 것을 포함해 27경기 8골을 득점하며 로테이션 멤버였던 것치고 준수한 활약을 했으나 공격진에 대대적인 보강을 가한 피오렌티나를 뒤로 하고 2013년 7월,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2013-14 시즌 개인적으로는 5년 만에 리그 10골을 넘어서 후안 마누엘 이투르베와 함께 베로나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시즌 막판까지 치로 임모빌레, 카를로스 테베스37세의 나이로 득점왕 레이스를 달리다 34경기 21골이라는 스탯으로 득점 2위를 기록하였다. 안드레아 피를로, 프란체스코 토티와 함께 노익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

2014-15 시즌 2라운드 팔레르모전에서 팀의 첫 골을 터뜨리며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로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27라운드 현재 13골로 득점 3위에 랭크되어 있다. 하지만 전 시즌에 비해 수비력이 약화되고 전력 누수가 생긴 소속팀 베로나는 14~17위를 오가며 잔류를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세리에 A 카투니스트 와싯은 토니의 이번 시즌 활약을 ' 폐지 줍는 할아버지'에 빗대어 소개했다.

5월 1일 현재 리그에서 18골을 기록하며 이번 시즌도 리그 득점 2위를 기록 중이다. 당연히 엘라스 베로나 팀내 득점 1위. 다만 33경기에 나왔기에 30경기 나오고 20골을 넣은 1위 테베즈를 따라잡기 힘들어 보인다. 아니, 베로나 같은 중하위팀에서 이 정도 홀로 넣는 것도 대단하다.

그리고 위에 쓴 글을 비웃듯 현재 2015년 5월 25일 37경기 21골로 세리에 A 득점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저번 시즌 아쉽게 임모빌레한테 뺏긴 득점왕을 탈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3]

마지막 경기인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루카 토니가 한 골을 추가하면서 최종적으로는 22골이 되었다. 득점왕까지 남은 것은 현재 20골인 마우로 이카르디의 최종전 활약 여부이다.

이카르디가 최종전에서 두 골을 넣으면서 최종적으로는 이카르디와 공동 득점왕이 되었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레딧에서는 루카 토니가 앞으로 최소 반 세기 동안은 주구장창 골을 넣을 거라는 둥 드립이 터져나왔다. 다음 시즌에도 활약해주기를 기대한다. 시즌 후 일단은 베로나와의 1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보통 황혼기의 선수들이 단년 계약을 맺으며 팀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희귀한 케이스로 토니의 노익장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2015-16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비록 부상으로 3달 가까이를 쉬기도 했고 실력도 많이 떨어진 모습이지만 그래도 부동의 주전. 26라운드까지 5골을 넣었다.

하지만 30라운드 패배 이후 동료들을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며 경기 명단에서 제외되는 처분을 받았다. 팀의 강등 여부와 상관없이 베로나의 레전드로 남을 수 있었는데 말년에 이미지를 망치게 되었다.

유벤투스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경기에서 PK 골을 넣고 팀의 2:1 승리에 기여하면서 아름답게 은퇴를 하게 되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1 부폰 · 2 자카르도 · 3 그로소 · 4 데 로시 · 5 칸나바로 ⓒ · 6 바르잘리 · 7 델 피에로 · 8 가투소 · 9 토니
10 토티 · 11 질라르디노 · 12 페루치 · 13 네스타 · 14 아멜리아 · 15 이아퀸타 · 16 카모라네시 · 17 바로네
18 인자기 · 19 잠브로타 · 20 페로타 · 21 피를로 · 22 오도 · 23 마테라치

파일:060709_toni.jpg

만 27세인 2004년 8월 18일 아이슬란드 전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데뷔하였다. 이후 05-06 시즌 피오렌티나에서의 맹활약으로 인해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아주리의 주전 공격수로 낙점되어 1경기 제외 전 경기 출장하여 이탈리아의 4번째 월드컵 우승에 일조하였다. 특히 8강 우크라이나전에서는 멀티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결승전에서도 득점은 못했지만 매서운 공격으로 프랑스의 수비진을 뚫는 모습을 보여주었다.[4]

이후 역시 07-08 시즌 바이에른에서의 활약상으로 유로 2008에서 아주리 공격의 중심축으로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몇 번이나 기회를 놓치고 결국 무득점에 그쳤고 2009년 이후로는 국가대표와는 점점 멀어져 갔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이후 베로나에서 다시 부활하면서 이탈리아의 약해진 공격력을 보완할 공격수 후보군으로 물망에 올랐으니 거기에서 그쳐 토니가 대표팀에 복귀하는 일은 없었다.

3. 플레이 스타일

194cm에 90kg가 넘는 무지막지한 체격에 걸맞는 압도적인 파워와 제공권을 갖췄는데도 신체적으로 뛰어났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만큼 빨랐다. 일반적인 키 크고 덩치 큰 선수들처럼 최고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버질 반 다이크처럼 압도적인 순발력도 갖췄고, 즐라탄을 연상시키는 민첩함도 있던 선수였다. 압도적인 반응속도와 미친 가속도로 세트피스나 그에 이어지는 세컨볼 상황에서 자기보다 덩치도 작은 선수들보다 더 빨리 공에 도달하곤 했던 어마어마한 신체능력을 갖춘 강력한 스트라이커였다.

저 거대한 신체와 그에 걸맞는 무지막지한 힘을 갖춘 선수인만큼, 전형적인 타겟맨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의 투톱은 힘으로 상대를 박살내던 194cm의 빅맨과 빠른 스피드와 이타성, 미친 제공권을 자랑하던 스몰인척하는 빅맨 듀오는 그야말로 상대 센터백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5] 그의 힘과 밸런스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으로는 2005년에 있었던 네덜란드의 평가전 득점을 들 수 있는데 당시 토니와의 몸싸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진 선수는 당시 유망주였던 론 블라르. 이 이후 한동안 블라르는 국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 한 스트라이커였으나[6], 특이하게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원숙한 기량을 뽐냈다. 원래는 전형적인 파워풀한 스트라이커에 가까웠으나, 경력이 이어지고 경험이 쌓이면서는 우아한 볼터치와 드리블을 보여주기도 하는 원숙함을 보여준다. 대기만성형 선수의 살아있는 표본 그 자체.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피오렌티나, 바이에른 뮌헨을 거치며 커리어 말년인 헬라스 베로나에서는 30대 후반의 나이답게 하락세를 타는가 싶다가도 다시 득점력을 불태우곤 했던 노년가장 그 자체.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20대 시절에도 세리에 A와 분데스리가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었지만, 남들은 이미 은퇴할 나이인 38세에 다시 한번 유럽 빅리그 중 하나인 세리에 A에서 득점왕에 올랐다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프로 정신을 가지고 선수 생활을 했는지 알 수 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06

4.4. 클럽 통계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4-95 모데나 칼초 세리에 C1 9 3 0 0 - -
1995-96 모데나 칼초 세리에 C1 25 5 0 0 - -
1996-97 엠폴리 FC 세리에 B 3 1 0 0 - -
1997-98 US 피오렌주올라 세리에 C1 26 2 4 2 - -
1998-99 AS 로디지아니 세리에 C1 31 15 2 1 - -
1999-00 ACD 트레비소 세리에 B 35 15 4 1 - -
2000-01 비첸자 칼치오 세리에 A 31 9 2 0 - -
2001-02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A 28 13 4 1 2 0
2002-03 브레시아 칼초 세리에 A 16 2 0 0 - -
2003-04 US 팔레르모 세리에 B 45 30 2 0 - -
2004-05 US 팔레르모 세리에 A 35 20 1 1 - -
2005-06 ACF 피오렌티나 세리에 A 38 31 4 2 - -
2006-07 ACF 피오렌티나 세리에 A 29 16 0 0 - -
2007-08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1 24 4 5 11 10
2008-09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5 14 2 1 8 3
2009-10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4 0 1 1 2 0
2009-10 FC 바이에른 뮌헨 II 3.분데스리가 2 0 0 0 - -
2009-10 AS 로마 세리에 A 15 5 2 0 0 0
2010-11 제노아 CFC 세리에 A 16 3 2 4 - -
2010-11 유벤투스 세리에 A 14 2 1 0 0 0
2011-12 알 나스르 아라비안 걸프 리그 7 3 1 0 - -
2012-13 ACF 피오렌티나 세리에 A 27 8 1 0 - -
2013-14 엘라스 베로나 세리에 A 33 20 2 1 - -
2014-15 엘라스 베로나 세리에 A 38 22 1 0 - -
2015-16 엘라스 베로나 세리에 A 23 6 2 1 - -

5. 여담

  • 특유의 셀레브레이션으로 귀에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돌리는 것으로 유명했다.[8]
  • 은퇴 후에는 모데나에서 거주하고 있다.


[1] 세리에 A 2회, 분데스리가 1회 [2] 클로제의 키는 184cm로 단신이라 할 수 없지만 루카 토니의 키는 무려 194cm이다. 게다가 클로제는 파트너 공격수를 보조하는데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도 있다. [3] 사실 테베즈는 지금 반 노예 수준이라 테베즈를 탓할 게 아니라 루카 토니가 대단하다. 나이도 한국 나이로 38세. [4] 한 번은 코너킥 상황에서 우월한 피지컬로 강력한 헤딩슛을 날렸으나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한 번은 골망을 흔들었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득점이 취소됐다. [5] 물론 앞의 클럽 경력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오래 활약한 조합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우 뛰어났다. [6] 어디까지나 커리어 후반에 비해 [7]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 [8] 세계적인 보험 대기업인 AIG의 한국 광고내에서 나오는 '띠링띠링'이라는 의성어와 손동작이 비슷해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